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스키타이 신화는 아시다시피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곳에는 스키타이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그리스 신과 비교되어 있다.

2020.08.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에서 전해진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

eastsearoad.tistory.com

 

 

스키타이 유물에는 의인화된 사람들이 많이 표현되는데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들과 비교되었다. 그 중에서 여신인 아르김파사와 티파티는 각각 기원전 7세기 유물과 기원전 5세기~4세기 유물에서 드러났다.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여성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부터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갑옷 장식판, 귀걸이, 마면장식, 간두령 등 다양한 유물에 표현되었다.

티파티는 거울과 각배가 나오는 의식에서 등장한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 베일에 달려서 장식되었던 것이고, 이 유적의 주인공 역시 여성이다.

거울을 들고 있는 티파티는 측면이 표현된 것이지만,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으로 전면이 표현된 머리장식이 사하노프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되었다. 역시 기원전 4세기 유적이다.

이 유물은 10인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여성을 기준으로 양 쪽에는 남성 9인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성의 좌측에는 뿔잔으로 술을 마시며 의형제를 맺는 장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우측에는 허리에 고리트를 차고 한손에는 지팡이와 각배를 들고 있는 남성이 있고, 그 옆에 하프켜는 사람, 가장 끝에는  커다란 항아리에서 술을 나누어 담는 장면이다.

 

그림 1. 사흐노프스키 쿠르간 출토 머리장식, 길이 36.5cm, 너비 9.8cm, 무게 64.58g

 

그림 2. 그림1과 동일

 

이 장면을 분석한 여러 연구자들은 크게 의례장면, 결혼장면, 장례식과 관련된 모습으로 해석했다. 오래된 연구일수록 의례장면(로스토프체프 1913),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포도주를 마시는 의례장면(아르타모노프 1961)으로 간략하게 분석했다. 왕과 여신 티파티의 신성한 결혼식 장면(라에프스키 2006) 혹은 결혼식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 대상은 아르김파사일 수도 있다고도 한다(베스소노바 1983). 장례식 장면이라고 추정한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스키타이 문화에 국한 하기 보다는 인도-이란 계통의 눈을 넓혔다. 먼저 쿠로치킨은 이란 청동기시대에 비슷한 도상학적인 표현이 있었음을 말했다. 베르티엔코는 인도-이란 장례식에서는 의식의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치러지는 것을 고려해서 이 유물은 주인공의 좌측인 의형제를 맺는 장면부터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2009).

 

베스소노바가 아르김파사라고 추정한 이유는 체르토믈리크 고분의 티파티가 측면을 향하는데 사하노프스키 머리장식의 여성은 정면을 향해서 오히려 아르김파사와 더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각배를 들고 의식을 치르는 장면(아래 포스팅)은 솔로하 유적에서도 장식판에서 표현된 남성 2인과 매우 유사해서 사흐노프스키 머리장식판의 표현과 같은 의례장면 혹은 일부 일 수 있다.

 

2020.02.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기록과 솔로하 유적의 2.5cm 황금 장식판

 

기록과 솔로하 유적의 2.5cm 황금 장식판

헤로도투스의 역사 제4권 70장에는 스키타이 인들이 맹약을 하는 장면이 소개되었다. ‘스키타이족은 누구와 맹약을 하든 다음과 같이 한다. 큼직한 토기 항아리에 술을 붙고 거기에 계약 당사

eastsearoad.tistory.com

 

결혼장면이든지 장례식장면이든지 의례 혹은 명절에 지내는 의식일 수 밖에 없다. 술마시고, 사람을 죽이고, 다른 한쪽에는 악기를 켜는 장면이 함께 묘사된 머리장식판은 스키타이 의례와 관련된 것을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세밀한) 유물은 아니어서 원래의 작품은 따로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견해(베스소노바 1983)이다.

 

필자가 관찰한 바는 여신이 등장하는 체르토믈리크 유적, 노사키 유적의 장신판에는 가장자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는데, 그림 1의 유물은 하단에만 꽃 장식이 있고 상단과 그 옆에는 구멍만 남아 있어 마무리가 좋지 못해서 다른 방법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또 이 유물은 편평하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머리앞을 장식하기 위한 것으로 둥글게 제작되어야 한다. 인물표현도 하고 둥글게 제작하려면 두꺼운 금판은 사용하기 힘들었을 테고 그게 가능한 유기물질로 원판을 제작한 후 이를 금박으로 마무리 했다면  얇은 금박(64.58g)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금박 아래에 원래 판이 따로 제작되고 거기의 조각이 금박에 남아서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금박 위의 표현은 그다지 세밀하지 못했을 수 있다.  

 

 

비슷한 유물은 가이모노바 유적의 말 굴레장식이다. 목판이나 가죽, 뼈등 유기물질로 제작한 뒤에 금박을 싸서  만들었는데, 현재는 금박만 남아 있다. 금박에 남은 표현은 원판의 조각에서 찍힌 것이 남은 것이다. 

 

2021.09.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가이모노바 유적] - 목제 스키타이 굴레장식의 흔적

 

목제 스키타이 굴레장식의 흔적

동유럽 가이모노바 쿠르간은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으로 4개의 무덤방이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인 말이 매장된 곳은 2번 무덤방으로 피장자가 안치된 곳의 입구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 И. . 1961,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1961. Вып. 2. (아르타모노프 1961,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의인화 된 신)

Вертиенко А.В. 2009, К интерпретации семантики золотой пластины из Сахновки // Боспорский феномен. Искусство на периферии античного мира. Мат-лы

МНК. – СПб., 2009. – С.515-522.(베르티에넨코 2009, 사흐노프키 금판의 해석)

Г. Н. Курочкин. Богиня с зеркалом и герой с секирой (к проблеме антропоморфизации скифского искусства) // Скифия и Боспор. Материалы конференции памяти акад. М. И. Ростовцева. Новочеркасск, 1993.(쿠로치킨 1993, 거울든 여신과 도끼 든 영웅-스키타이 예술에서 인물상의 문제-)

С. С. Бессонова. Религиоз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скифов. К., 1983. (베스소노바 1983, 스키타이 종교의 표현

Д. С. Раевский. Мир скифской культуры. М., 2006. (라에프스키 2006, 스키타이 문화의 세계

М. И. Ростовцев. Представление о монархической власти в Скифии и на Боспоре // ИАК. 1913. № 49. (로스토프체프 1913, 보스포로스 해협 스키타이 군주의 표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이제까지 규모가 큰 성곽 유적만 보니 재미가 없어서, 무덤 유적 하나를 파고자 한다. ‘가이마노바 무덤 유적이다(지도에 이미 표시되어 있음). 흑해 주변의 유적에서는 워낙 흥미로운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은제품은 덜 관심을 받는 듯 하다.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는 은제로 된 스키타이 그릇이 한 점 발견되었다. 평면형태 반원형의 손잡이가 양쪽으로 달린 그릇인데, 높이가 낮고 안정감 있는 형태이다. 드네프르강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볼가 강 유역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목제로 된 그릇이 여러점 발견되었는데 이와 같은 기형이었고, 목제그릇은 금판으로 장식된 것이었다(아래포스팅참고).물론 가이모노바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 그릇의 형태는 가까운 솔로하 유적(그림 3)에서도 출토된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은제 그릇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의 무덤 1호의 감실1호 출토

 

2020.11.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 스키타이의 목제 그릇

 

우랄 남부 스키타이의 목제 그릇

남부 우랄의 기원전 5?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이 나타나면서도 남부 시베리아 지역의 특징도 보인다. 또 이란계통의 유물 특징이 드러나서 기원전 4세기 이후

eastsearoad.tistory.com

 

 

그림 3. 솔로하 유적의 은제 그릇

 

하지만 가이모노바 유적과 솔로하 유적의 은제 그릇에 표현된 문양은 전혀 다르다.

가이모노바 유적의 그림은 두 남성이 마주보고 있는데, 한 명은 왼손에 고리트를 차고 있고 또 한명은 오른손에 스키타이 검과 다른 한손에는 막대를 차고 있다. 남성의 고리트는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스키타이 고리트이고, 또 다른 남성은 실제로 유적에서 나오는 철검으로 아키나케스이다.

남성이 들고 있는 철검 아키나케스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손잡이 끝은 T자형이고, 검의 신부는 이등변삼각형에 가까운 형태는 체르토믈리크 형식이라고 불린다(그림 4). 그런데 체르토믈리크 형식의 검에는 문양이 없지만 가이모노바 은제 그릇 속의 남성이 들고 있는 검은 문양이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나온 철검에도 금으로 상감된 문양이 표현된 검이 출토된 바 있다(포스팅 참고). 그래서 같은 형식의 그릇이 나오는 솔로하 유적보다는 필리포프카 유적을 먼저 떠올렸다.

 

그림 4. 체르토믈리크 형식의 단검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의 단검

2020.11.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말 탄 전사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말 탄 전사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문화(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골제로 만들어진 말 탄 전사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남성은 고리트(스키타이식 활과 화살통)를 차고 있었고, 스

eastsearoad.tistory.com

 

가이모노바 유적의 은제그릇 속의 두 남성은 얼굴이 너무 똑같아서 동일인물일 수도 있는데, 신화 속의 인물일 가능성은 있다. 남성이 입은 옷이나 턱수염을 기른 모습 등에서 차스티예 쿠르간에서 나온 인물과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 차스티예 쿠르간에서 나온 4명의 남성은 고리트, 전투용 도끼,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고 한 명은 고리트를 받는 장면이었다(포스팅). 반면에 가이모노바 유적에는 고리트와 검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무기 세트에서 차이가 있다.

 

2021.08.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은 항아리 속의 스키타이 전사들

 

은 항아리 속의 스키타이 전사들

최근 포스팅은 흑해 지역의 철기 제작소를 찾아서 헤매어 다닌 것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빠짐 없이 출토되는 것은 화살촉이다. 그런데 활과 관련된 스키타이 신화가 있다. 고리트(활과 화살을

eastsearoad.tistory.com

 

유적에서는 은제그릇 외에도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Топал Д.А. Финальная линия развития мечей классической Скифии. Соотношение типов Чертомлык и Шульговка // Stratum plus: Археология и куль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 3.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 Кишинёв – Одесса – Бухарест, 2014. С. 129–156.(토팔 2014, 스키타이 전형적인 철검의  후기 발전방향)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동유럽 최대의 성곽은 스키타이 시대의 성곽으로써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했으며 기원전 3세기 까지 사용되었다. 거의 4000헥타르에 달하는 이 성곽은 20세기 초 모스크바의 크기와 맞먹는다.

 

벨스크 성곽은 동과 서쪽에 각각의 성곽이 따로 존재하다가 기원전 6~5세기경에 이를 통합하는 성벽이 만들어졌고 이를 볼쇼이 벨스크 성곽이라고 부른다. 북쪽에 있는 쿠즈민 성은 이 후에 생겼고, 현재는 성벽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동과 서의 성곽은 모양도 다르고 그 곳에서 발견되는 구조물의 성격도 다르다. 특히 동쪽에는 토기와 청동기를 만들던 노지가 발견되어서 공방을 주로 담당했던 것 같다.

흥미로운 필자에게는 반가운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토제로 된 인간형상물이 발견되었다. 유물은 성을 구부할 수 있는 유물들이 있다. 남성은 성기(그림 1-1,3~10), 여성(그림 1-13~16)은 가슴이 강조되었다. 물론 애매한 유물도 있다.

 

그런데 토우로 된 남성을 연구자들 대부분은 청동으로 된 파파이(그림 1-2, 그림 2)를 연상한다. 파파이(papai)는 헤로도투스가 전하는 스키타이 신화에서 제우스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림 1.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에서 발견된 인간형상물

 

그림 2. 청동 파파이, 그림 1-2와 동일

 

그림 2의 청동으로 된 유물은 드네프르강 하류에서 발견된 유물로 기원전 4세기 유물이다.

2020.12.2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나무 위의 스키타이 신(神) 파파이(Papai)

 

나무 위의 스키타이 신(神) 파파이(Papai)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흑해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물 가운데는 지팡이 끝에 꽂는 방울이 있다. 간두령이라고 하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발견된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은 방울 끝에 새 혹은 동물문

eastsearoad.tistory.com

 

하지만 토제로 된 유물과 청동으로 된 유물이 같은 인물일 수 있을까? 파파이가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필자는 시람코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림 1의 남성 인간형상물을 파파이로 생각할 수 있고, 그래서 동쪽 성 안에 ‘신전’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 매우 놀랬다. 물론 유적에서 그리스 토기가 발견되기 때문에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아직 소개하지 않았지만 이 주변에 거대한 성곽 유적이 16기나 더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지역이 요새화 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라면, 동유럽의 다른 스텝지역보다는 더 특별한 지역일 수 있다.

그래도 너무 쉽게 러시아 연구자들에 비해서 우크라이나 연구자들은 쉽게, 비판없이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믿는게 아닐까?

 

만약 토제로 된 유물이 스키타이 사람들의 남성신이라고 만들었다고 해도 기원전 7세기 경과 기원전 5세기 유물은 다른 생각 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벨스크 성곽이 기원전 7세기 경의 유적이라는 점에서 인간형상물도 그 시기의 유물이다. 헤로도투스가 말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유물로 선사시대 이래로 전해져 오는 조상신 개념일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보는 신화 속의 신과는 전혀 다른 이념일 수 있다. 다만 신의 이름은 참고할 수 있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Дараган М.Н., 2017, Городища-гиганты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в Украинской Лесостепи (особенности расположения и фортификации). Вводные замечания(다라간 2017, 우크라이나 삼림스템지역의 스키타이 시대 거대한 성곽배치의 특징)

Шрамко Б. А. Бельское городище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город Гелон). К., 1987. (시람코 1987, 스키타이 시대의 벨스크 성곽: 헬온 도시)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최근 포스팅은 흑해 지역의 철기 제작소를 찾아서 헤매어 다닌 것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빠짐 없이 출토되는 것은 화살촉이다.

 

그런데 활과 관련된 스키타이 신화가 있다. 고리트(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스키타이 특유의 화살통)를 늘 차고 다닌 것으로 알려진 타르기타우스와 관련된 것이다. 타르기타우스는 스키타이 사람들이 믿는 신화 속의 인물로 스키타이 땅에 최초로 태어난 인물로 알려졌다. 그에게 3아들이 있었는데, 활을 당기고 허리띠를 맬 수 있는 아들을 드네프르강의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서 시합을 벌였다고 한다. 이를 할 수 있었던 인물이 3째 아들(schytes)로 타르기타우스의 후계자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신화와 관련된 유물이 차스티예 쿠르간(기원전 4세기)에서 발견되었다(그림 1~4). 은 항아리인데, 타르기타우스는 고리트를 차고 있고(그림 2의 우측, 그림 3-2), 그가 활을 건너는 인물이 3째 아들이다(그림 3). 첫 번째 아들은 전투용 도끼를 들고 있었으며(그림 2) 두 번째 아들은 창과 방패(그림 4)를 들고 있다.

 

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가 적은 역사의 4권에 스키타이 사람들에 대한 기록 중에 한 부분이다. 스키타이 사람들의 신화, 강역, 주변 민족, 기원과 생활풍습, 전쟁풍습, 종교, 왕이 장례치르던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사람들의 기원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스키타이 사람들이 믿는 자신들의 신화와 그리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스키타이 신화는 약간 다르다.

 

 

그림 1. 차스티예 쿠르간 출토 은 항아리

 

그림 2. 차스티예 쿠르간, 은 항아리, 타르기타우스(우측)와 큰 아들(좌측)

 

그림 3. 차스티예 쿠르간, 은 항아리, 타르기타우스와 셋째 아들(1)

 

그림 4. 차스티예 쿠르간, 은 항아리, 둘 째 아들

 

한편, 비슷하게 생긴 항아리가 쿨-오바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위에서 전한 신화 속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 전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그림 5).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림 5. 쿨-오바 유적 출토 금 항아리

 

신화와 고고유물을 비교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긴 하지만 사실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은 유물에 대한 스토리를 넣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 보다는 기왕에 있는 신화로 그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재미있다.

 

분명한 사실은 활과 화살을 넣는 고리트는 스키타이 유물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이라는 점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 동과 서쪽 지역의 대부분 연구자(알렉세예프, 쿠바레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들이  화살촉을 연대 판단의 근거로 삼는 다는 점이다.(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살촉은 연대판단의 근거로 삼는 예가 왕왕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타르기타우스가 고리트를 차고 다녔다는 문구는 스키타이 사람들을 상징하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할 수 있다.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1989. 46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89, 소비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오늘은 5월에 출판된 필자의 책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의 내용은 서문(프롤로그)에 적은 글이고, 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필자의 관심사 등을 간단하게 적어 두었다. 웬지는 모르겠는데 매우 어색하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문구가 있는데 '모든 책은 운명이 있다'.

 

1. ‘교과서 밖의 역사’의 시작은

 

어느 날 필자를 찾아온 검색어 덕분에 시작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2년 넘게 운영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강의는 몇 년 째 했지만 둘을 연결할 생각은 못했는데, 검색어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 복원’이라는 검색어가 어느 날 집중되었고, 유라시아의 고대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몇 년 째 모아오고 있는 대학교 강의 자료를 블로그에 풀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는 우리가 배웠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내용이고, 독자들에게도 거대한 공백과 같다고 여겨질 것이다. 특히 분단된 한국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연구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이미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와 문화는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주제로 연구되고 있는데, 아직도 기초자료에 대한 정보는 역부족이다. 필자는 ‘인간형상물’과 그 출토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서 미약하지만 앞으로 여러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블로그에 글을 적으면서 전달을 쉽게 하기 위해서 풀어적으니 내용이 자세해 져서 독자에 따라서는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보시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것이라고 믿는다. 연구자와 일반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필자는 선사시대 유적에 부장되는 인간형상물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커서 유학 당시부터 그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시작은 아무르강 하류의 극동전신상토우(김재윤 2008) 였지만 중국동북지방(김재윤 2019b)부터 최근에는 시베리아(김재윤 2019 a, 김재윤2021)와 흑해(김재윤 2019a)까지 넓히고 있다.

인류사 전체에 있어서 인간형상물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은 후기구석기시대 흑해와 시베리아 지역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까지 인간형상물이 이어지다가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지역에서는 인간 스스로 형상물이 된 미라가 이를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5장에서 설명하겠지만 미라를 연구한 학자들은 시신을 미라 처리하는 이유를 ‘부활’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으로 해석한다. 때문에 그 이전 시대 무덤에 부장된 인간형상물도 부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오랫동안 전통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상징물로 볼 수 있다.

스키타이 서부 지역인 흑해에서는 미라를 대신해서 여신상이 유물에 표현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부터 기원전 5~4세기 귀걸이, 장신구, 등에서 여신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동부 지역에서 미라가 발견되는 모습과는 대비된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비너스상 전통이 연속된다고도 볼 수 있다.

 

3. 글의 전개과정

이 책에서는 ‘스키타이’ 문화라고 명명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문화권을 잇는 스키타이 3요소 가운데서 가장 특징적인 동물양식을 ‘스키타이 동물양식’이라고 부른다. 가뜩이나 어려운 러시아 지역명이 많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서 간략하게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자 한다. 실제로 이 책에 다루고 있는 아르잔-1호(그랴즈노프 1980, 스미르노프 2012)나 아르잔-2호(추구노프 외 2017)를 다룬 책이나 논문에서도 ‘스키타이’라고 간략하게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참고로 했다.

미라는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에서만 출토된다. 지리크 문화의 유적 가운데 아크 알라하-3 유적은 이미 국내에 번역서(N.A.폴로스막(강인욱 역) 2016)가 있다. 그러나 파지리크 유적에 대한 소개는 자세하게 없어서 필요한 부분이다. 알타이와 인접한 중국 신강성에서도 미라는 발견되지만 중국 자료는 러시아 자료에 비해서 이미 잘 알려져 있기에 이에 대해서는 제외했다.

이와 함께 스키타이 문화권의 기원지로 일컬어지는 아르잔-1호와 인접한 아르잔-2호 유적도 포함된다. 최근에 발굴되어서 도굴되지 않은 유적으로써 아르잔-1호와 다른 아르잔-2호의 무덤 구조는 파지리크 문화와도 일정정도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아르잔-1호는 그랴즈노프(1980)의 책과 아르잔-2호는 종합보고서 성격의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2017)를 참고로 했다.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인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및 파지리크 유적은 루덴코(1953, 1960)과 그랴즈노프(1950)의 책이 주요 원천이다.

 

아크 알라하-3유적은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면서 가장 완성도 높은 미라가 출토된 유적이다. 필자가 촬영한 사진을 위주로 정리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경희대학교 강인욱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폴로스막(2016)의 저서를 참고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라고 명명된 III절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그랴즈노프(1980), 추구노프 외(2017), 루덴코(1953, 1960), 폴로스막(2001, 2016)의 책을 정리하고 필자의 의견을 붙인 것이다. 각 소절의 마지막에 참고문헌을 표기해 두었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권은 매우 넓은 지역에 다양한 문화가 알려져 있지만 스키타이 문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은 흑해이다. 1859년 제국고고학위원회가 설치 되기 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으며, 원래 스키타이 문화를 협의의 개념으로 이해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 지역에 관심을 두었던 이유는 미라가 출토되지 않지만,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어떤 지역보다 인간형상물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베리아와 함께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비너스상’이 출토되기 시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인간형상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지인 시베리아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문화적 공통성이 나타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적과 유물을 살펴볼 수 밖에 없었고, 학교 강의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서 그 자료를 공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흑해지역의 무덤은 평지에 높은 봉분이 있는 외형으로 인해서 쉽게 눈에 띄어서, 고고학이란 학문이 자리를 잡기 전부터 도굴이 성행했다. 그래서 아르잔-2호 유적과 같은 수많은 정보를 알기가 힘들어서 가장 이른 유적으로 일컬어지는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위주로 설명했다. 기원전 5세기 이후는 인간형상물이 발견된 유적을 중심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시베리아 유적은 20세기에 발굴되어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지만, 이 지역의 자료19세기 이전부터 연구되기 시작해서 여러 사람에 의해서 출판되는 경우가 많았고, 정보의 내용도 흡족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 점이 많다.

심리적으로 섬나라인 한국에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먼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독립운동을 했던 만주지역의 가장 끝인 대흥안령만 넘어 가면 바로 유라시아 초원이다.

 

끝으로 파랑새처럼 검색어로 나의 블로그에 찾아온 네티즌과 자신이 아는 바를 블로그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라고 권유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2017년 이후는 필자가 매우힘들었는데, 바빠지고 정신없이 살면서 삶의 원동력을 찾았다. 책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싶다. 또 이 책을 엮는데 고생을 한 부산대학교 박사과정의 강나리 학생에게도 감사를 표시한다. 러시아로 가는 길을 열어 주신 경희대학교 강인욱 선생님께도 감사를 표시한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진인진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