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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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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 환단고기역주본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신강성의 신석기문화에 대해서 설명한바 있다.

 

(앞선 포스팅 참고)

2017/12/20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국과 신강고고학 자료] - 환국과 신강

 

환국과 신강

신강에서는 신석기시대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아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묶어서 석기시대라고 한다. 앞서 포스팅한 바 있지만 흔히들 구석기시대 유물로 생각되는 세석기가 이 지역에서는 늦은 시기 까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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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국과 신강고고학 자료] - 신강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4000~3000 부터.

 

신강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4000~3000 부터.

현재 조사된 신강의 석기시대 유적은 모두 33개소로 전해진다. 그런데 유적은 대부분 지표조사된 유적이고, 일부만이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되더라도 주로 청동기시대 하층에서 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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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문화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인접하고 있는 지역과의 비교가 필수적이다. 카자흐스탄 동부의 우스티-나림문화 뿐만 아니라 이와 인접한 켈테미나르문화의 유물도 중국 신강, 몽골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이 지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화가 위치한 곳은 천산산맥에서 발원해서 아랄해로 들어가는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니야강의 하류이다.

 

2019/07/03 - [교과서 밖의 역사:유라시아선사시대/신석기시대] -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의 신석기문화비교1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의 신석기문화비교1

필자가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로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인접한 카자흐스탄과 몽골의 신석기시대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강성의 천산산맥은 동서방향 보다는 약간 틀어져서 비스듬하게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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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테미나르문화

기원전 4000년기 후반~2000년 기 전반까지 아랄해의 서부 및 남부와 북부에 켈테미나르문화가 존재했다. 대표적인 유적은 잔바스-4, 대형주거지가 확인된 톨스토프, 카바트-7 유적 등이 발굴되었다.

카바트-7유적에서 발굴된 주거지는 타원형주거지(그림-5,6)로 크기가 30~31×18~19m정도이다. 유사한 주거지가 확인된 잔바스-4 유적(그림5-1)을 참고하면 이 집터는 수혈의 흔적이 거의 없는 텐트형주거지인데, 집의 건축재인 사슴의 가죽(360~380㎡)과 목채가 실제로 남아있었다. 집의 중앙에는 돌을 두른 노지 및 그 주변에서 저장구덩이 내부에서 대량 토기가 확인되었다.

토기는 저부가 약간 둥글며, 한쪽 끝이 주구처럼 형성되어는 소형토기(그림5-32) 및 구연부가 외반하는 옹형토기(그림5-33, 34)가 기본적이다. 문양은 침선하거나 찍은 방법으로 시문되었고, 대체적으로 횡방향으로 구연부 부근까지만 시문되는 토기가 많다. 토기 문양 중에서 기하학적인 삼각집선문(그림5-37) 혹은 지그재그(그림5-34), 방형문양(그림5-36) 등이 시문되었다.

석기는 규조암제를 이용한 눌러떼기기법을 이용해서 제작한 세석인석기(그림5-7~30)가 많은데, 특히 비대칭으로 가장자리를 잔손질 한 경우가 많다. 석촉은 양 가장자리를 비대칭으로 떼어내는데, 한쪽은 짧게 다른 한쪽은 길게 떼어내어 한쪽만 슴베(그림5-24~27)가 생기게 했다. 이 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석인석기를 이용한 유물가운데 여러 형식의 뚜르개(그림5-18, 21~23)가 확인되는데, 한쪽변 만 잔손질한 뚜르개(그림5-22), 끝이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다듬은 뚜르개(그림5-23) 등이 확인된다.

긁개 가운데는 한쪽 변을 부채꼴 모양으로 들어가게 손질한 것(그림5-28)도 석촉(그림5-24~27)과 함께 이 문화의 특징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평면형태 방형에 가까우며, 끝을 약간 둥글게 잔손질한 긁개(그림5-13~15)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문화에서는 평면형태가 사다리꼴인 양인 마제석부(그림5-31)가 출토되었다.

 

그림5. 아랄해 주변의 켈테미나르문화(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재편집, 김재윤 2019)(1~4: 잔바스 4유적, 5·6: 카바트-7, 7~39: 톨스토프 출토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최근에 홍콩에서는 반중국정부에 대한 시위가 한참이다. 거기에서 중국의 신강성에 사는 위구르인들도 함께 동참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나는 위구르인들이 꼭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한다. 그 땅이 중국에 들어간건 청나라 때 건륭제때이다.

 

작년에 중국신강성을 처음 가보았는데, 정말 무시무시한 시골동네였다. 대낮에 장총을 들고다니는 공안들이 거리에 가득차 있었고, 현과 현을 넘어 갈때는 반드시 신분증 검사를 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기사를 보다가 작년에 썼던 아직 공개되지 않는 글이 생각나서 공개하려고 한다.

 

그림 . 신강지역의 신석기유적(1. 삼도령유적, 2. 칠각정유적, 3. 시와보유적, 4.아사탑나유적, 5. 곽가힐나륵유적, 소륵당파아유적)(김재윤 2019)

우연한 기회에 작년에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고 아이러니 하지만, 그 계기로 필자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 신석기문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흔히들 이야기하는 ‘신석기혁명’에 대한 개념이다.

신석기혁명은 고든 차일드(V. Gordon Childe)라고 하는 사람의 논의로 알려져 있다. 신석기시대는 농경의 시작과 토기 발생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된 생각이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신석기시대’라는 개념은 러복(J.Lubbok)(1865)이 작물재배, 동물길들이기, 토기발명을 시대개념으로 규정했다. 어찌되었던, 두 사람은 유럽과 인접한 근동지역을 근거로 해서 신석기시대 혹은 신석기혁명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는 특히 중국동북지방 흔히들 만주, 연해주 및 아무르강, 한반도, 일본에는 ‘토기’를 근거로 신석기시대를 정의한다. 즉 토기가 출토되어야만 신석기시대라고 부를수 있다는 것이다.

 

.  앞서 필자가 학생들에게 신석기혁명에 대한 과제를 내주었다고 했는데(아래 포스팅 참고), 그 그림의 반원모양 지도는 가장 최근의 탄소연대로 살펴본 토기발생지를 묶은 것이다. 유럽학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토기는 동북아시아에서 먼저 제작되었다. 그 그림이 실린 논문에는 좀 더 파격적인 제안이 있었다. 토기의 발생시기는 후기 구석기시대이고 동아시아에서부터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자료로서 13000년 이상 올라가는 유적이 있는 곳은 아무르강 하류, 일본, 중국 등이고(그림15), 17000년 전 홀로세 이전부터 동아시아유적에서 출토된 예도 있다. 기원지는 새로운 발굴로 바뀔 수 있지만, 신석기시대의 기준이 된 홀로세(전신세)이후에 토기가 발명된 것이 아니라 이미 플라이스토세의 사냥채집민(후기구석기인)들에 의한 것이다( P.Jordan, M. Zvelebil, 2010)

 

2019/06/04 - [미래의 인디아나존스를 위해서../고고학] - 신석기혁명과 과제

 

가장 빠른 토기의 발생지가 어디일지는 시간의 문제이다. 어떻게 되었든 만주지역 혹은 아무르강 하류, 중국 황하강일 수도 있다. 필자는 이점은 시간이 지나야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점은 토기가 모든 지역에서 균일한 시점에 발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경은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농경을 신석기시대 구분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즉 신석기시대의 개념으로 토기와 농경을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좀 더 이야기 하면 신석기시대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 예를 들어낼 수 있는 지역이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이다.

 

중국 신강성에서는 형체를 알 수 있는 토기가 확인되는 것이 청동기시대부터이기 때문에 그 이전 시기를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특히 세석인이라고 하는 동북아시아의 후기구석기시대 유물이 청동기시대 직전까지 유적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물론 석기시대 내에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와 가까운 시기를 구분하기는 하지만 역사서술에서 신석기시대는 없고, 그냥 석기시대라고 한다.

이는 철저하게 동아시아적 관점 좀 더 구체적으로는 중국인학자들이 중국 신강성을 바라본 관점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지역의 유물을 인접한 지역과 비교했는데, 단순히 석기시대라는 용어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더욱이 너무나 편협하게 이 지역이 연구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에게도 그들의 신석기시대만의 특징이 있다고 하거나, 아니면 신석기시대 개념 자체가 틀렸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질문도 있을 수 있다.

'신석기시대 특징에는 간석기도 있던데요?, 국사책에요'

하지만 간석기(마제석기)는 이미 오래 전 부터 후기구석기시대에 나오기 시작한다는 걸 다 알고 논문에도 많이 있다.

그 문제는 국사교과서 쓰는 사람의 문제라고 해 두고 싶다. 혹은 틀렸지만 그냥 고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석기시대 개념에 대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참고문헌

 

P.Jordan, M. Zvelebil, 2010, “Ex Oriente Lux: The Prehistory of Hunter-Gather Ceramic Dispersals.” Ceramic before farming: the dispersal of pottery among prehistoric Eurasian hunter-gathers. P.Jordan, M. Zvelebil ed. London: Publications of the Institute of Archaeology University College London, pp.31-89.

posted by 김재윤23

 

필자가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어느 덧 2년 가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게 누군가 많이 보지는 않지만

필자의 포스팅에 관심을 가지는 중학생도 있었고,

이미 성년이 된 사람도 있다. 고고학에 관심이 있어 하면서,..여러 가지 필자에게 물어본다.

답이 10일정도 늦어서 많이 미안했다... 네이버 블로그를 안하게 되면서 네이버에 접속조차 잘 안하게 되니 그랬다. 다시 한번 미안하고 그 분이 꼭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한다.

 

지금도 생소한 이 학문을

필자는 예전 포스팅에 적었지만 영화를 보고 알게되었다.

그 떨리던, 함몰되던 기분, 그 짜릿한 기분.

보자마자 내꺼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어린애의 생각은 진짜 비현실적인데..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러시아유학결심할 때랑 꼭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는 그 비현실적인 것이 내꺼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엄마 아빠도 공부잘하는 딸이기를 바랬지만, 내가 무엇할 것인가에 반대하지 않으셨다.

고고학과..재밌어보인다. 그런데 가면 꼭 제일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바라셨다..

내 전공을 두고 크게 다툰적이 없다.나는 늘 커서도 그 점에 감사해한다.

아마 내가 성실하기도 했고, 믿음도 주었을 것이다..꼭 먼가 하겠다 하면 했으니깐.

 

물론 한때 원하던 곳을 못가게 되어서 못 마땅해도 했지만,,,

그때 마침 아빠와 관계도 많이 않좋아서....그게 더 좋게 작용한 것이지

그 때만 해도 지금만큼 취업 운운하던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었다.

 

요즘 학생들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교육부를 거친 학생들이다.

그때 특히 교육부는 취업안되는 과는 없애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대학생이 되어도, 생각을 못하는 애들이 많다.

강의 중에 내어준 과제물 피드백을 했는데, 한 학생은 말도 안되게 나의 피드백에 반감을 비친다.. 자기가 최고인데, 니가 먼데 피드백을 하냐는 식의....

걔는 나보다 거의 20살이 어린 학생인데 생각하는 수준은.... 

그 애는 동화책 읽기부터 해야. 글짓기도 안된다.

그러나 그래도 내가 잘못했다고 우기고, 자기는 자기가 받은 피드백이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과제물은 한 장정도만 '자기생각'을 적어오라는 거였다.

난 과제물을 거창한 걸 내지 않고, 자신생각을 적는걸 좋아한다. 거창한 거 내봐야....그냥 결국 남의 연구 편집이 대부분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필자는 도면 한장 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걸 과제로 준다.

또 그런 과제 보고 탄복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도면 한 장을 보고도 여러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정말 사람은 다 너무 나 다르구나.

학생에 대한 불평을 적기는 했지만,, 대부분 원만한 사람의 사람머리속은 비슷한데 다 다르다.

민주주의 그 자체다.

그래서 애들을 존중해주려고 하고 그들이 하는 얘기를 맞다고 하고 또 첨삭해준다.

그러나 위에 적은 학생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너무 머릿속에 남는다.스트레스 잘받는 필자에게 학생의 이런 피드백은.....

 

그 과제에 제시된 그림은 아래의 것이다.

아래 그림은 각 지역에서 토기가 발생되는 지역을 최근 자료로 표시한 것이다.

이것과 고든 차일드가 설명한 ‘신석기혁명(1951년)’이라는 개념과 비교해서 자신의 생각을 한 장에 적어오라는 거였다. 물론 한장 보다 많아도 된다. 

신석기혁명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개념이다. 그걸 처음 입에서 말한 사람이 고든차일드라는 고고학자이다.

토기발생지역비교(P.Jordan, M. Zvelebil 2010)

참고문헌

P.Jordan, M. Zvelebil. “Ex Oriente Lux: The Prehistory of Hunter-Gather Ceramic Dispersals.” Ceramic before farming: the dispersal of pottery among prehistoric Eurasian hunter-gathers. P.Jordan, M. Zvelebil ed. London: Publications of the Institute of Archaeology University College London, 2010. pp.31-89.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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