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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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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6. 13:53 스키타이 동물장식

볼가-카마 강 유역의 타이가 지대에 있던 초기철기시대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일찍부터 등장하는 동물장식은 날개를 편 새 장식이다. 이들 유물은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일찍이 날개 편 새가 등장하며, 이곳에서 타이가 지대로 새 장식을 수입했을 것이다. 타이가 지역의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취락 유적과 무덤 유적에서 출토된다.

 

흑해지역의 새 장식은 날개를 펴고 머리를 돌린 스타일이지만 이 지역의 유물은 대부분 정면을 향하고 있다. 흑해 지역의 새 장식 유물은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서부지역의 특징적인 이다(갈라리나 2006).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새 장식이 유행한 시기는 기원전 7~5세기이다.

그런데 흑해지역에서 출토된 새 장식은 독수리 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독수리 보다는 제비를 닮은 형상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나오는 새 형상은 아나닌스카야 문화(볼가-카마강 유역)의 특징도 있지만 오비 강 유역의 타이가 지대에 있던 우랄-이르티스 문화에서도 출토된다.

 

 

그림 1.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새 장식(청동제품), 1~54:그랴데노프스코예 뼈유구, 55-바르쉬 마을 부근에서 출토

 

볼가 강, 오비 강은 시베리아 전체에서 볼 때 서부에 해당한다. 새는 이 지역에서 토템으로 많이 사용되며 중세시대인 7~9세기 투르크 시대에서도 출토된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제비로 추정되는 새 장식이지만 오비 강 유역에 사는 현존하는 우고르 족 사이에서는 부엉이를 우상화하는 풍습이 있다. 이 민족에게 부엉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몰래 날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신화에는 샤만이 저승의 통치자인 토룸에게 갈 때 타고 가는 동물이 맹금류라고 전해진다.

 

이 지역에서는 19세기~20세기 초까지 지역 민족들은 곰 축제를 즐겼다. 또한 새도 토템으로 여긴 민족지 자료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최근?의 특징이 최초로 보이는 것은 초기 철기시대인 아나닌스카야 문화이다. 이 문화의 초기(기원전 7세기)부터 새 장식은 발견됨으로 최소한 곰과 새를 토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간직된 그들의 전통인 것이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새 모양 가운데서 가슴에 동물의 얼굴(26, 27, 28)을 표현한 복합 형상이 있다. 이 얼굴을 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힘든데, 투르크 시대의 중세시대 유물에는 날개 편 새의 가슴에 사람얼굴을 새기고 새의 얼굴은 곰의 형상을 한 유물이 출토된다.

 

그림 2. 새-곰-인간의 합성 청동장식, 기원후 7~9세기

 

그림 3. 페름 지역의 동물인간 합성장식, 기원후 11~12세기 (페름은 카마 강 유역의 도시 이름이다)

 

 

참고문헌

Косарев М.Ф. Западная Сибирь в древности. — М.: Наука, 1984.(코사로프 1984, 시베리아 서부의 고대문화)

Ю.П. Чемякин, С.В. Кузьминых. 2009, Металлические орнитоморфные изображения эпохи раннего железа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и Урала//У истоков археологии Волго-Камья (к 150-летию открытия Ананьинского могильника)(체먀킨, 쿠지미니흐 2009, 우랄과 동유럽 초기철기시대 금속제문양장식)

В.А. Оборин, Г.Н. Чагин Чудские древности Рифея. Пермский звериный стиль. Пермь: Аврора, 1988 (오보린, 차긴, 1988, 페름 지역의 동물 장식)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여신이 표현된 금속제품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거울, 침발카 유적의 마면장식, 쿨 오바 유적과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의 장식판,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의 귀걸이가 있다. 그 중에서 켈레르메스 유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원전 4세기이다.

 

기원전 4세기의 여신은 소형의 유물이 대부분이지만, 오늘 보여 드리는 유물은 비교적 크고 여신의 모습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청동에 표현된 여신은 고곤 메두사의 얼굴이다. 머리가 크고 눈이 크게 과장되고, 혀를 내밀고 있다. 머리는 곱슬머리이고, 머리에서 대칭형으로 올라가는 뱀이 돋을 새김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연꽃 문양이 장식되었다.

 

이 유물은 어디의 일부일까?

 

스키타이 문화에서 방호용구로 투구(헬멧), 방패를 소개해 드렸는데, 이 유물은 인체의 상반신을 보호하는 갑옷이다.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진 갑옷 조각은 가슴가리개 부분인데, 청동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리스로부터 수입된 유물이다.

 

 

그림 1.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의 5호분, 기원전 5~4세기, 1914년 베셀로프스키 발굴, 너비 41cm, 길이 44cm.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진 갑옷은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4호(그림 2, 그림 3)에서도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갑옷은 철판을 잘라서 가죽끈으로 이어 붙인 미늘 갑옷(찰갑)이다. 메두사의 얼굴이 장식된 갑옷보다는 보호의 기능에 충실한 유물이 대부분이다. 기원전 6세기의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과 우스티-라빈스키 유적에서 미늘갑옷이 출토된다.

 

그림 2.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4호에서 출토된 갑옷조각, 기원전 4세기

 

그림 3. 그림 2의 복원

 

미늘갑옷을 구성하는 철판의 길이는 2~5cm가량이고, 길이의 1/2 혹은 2/3이상 겹쳐서 가죽으로 이은 것이다(그림 4). 몸통, 어깨, 배꼽아래 부분의 크기가 다르다(그림 4).

 

 

그림 4. 주로프카 유적의 401호 출토품, 보르빈스키 1903년 발굴, 기원전 5세기.

 

그런데 우리는 이미 비슷한 미늘 갑옷을 본 적이 있다.

 

솔로하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출토된 황금빗에 표현된 말탄 무사는 이렇게 생긴 갑옷을 입고 머리에는 그리스식 투구를 쓰고 있는 그리스 전사이다(포스팅 참고).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astsearoad.tistory.com

 

 

마면장식이나 갑옷에 표현된 스키타이 여신은 일종의 보호용구에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의 작은 장식판도 부적의 기능을 했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는 원래 다산의 여신이었으나, 기원전 4세기 이후가 되면 모습도 각양각색이고, 엄격한 모습(침발카 유적)부터 배 나온 여신(톨스타야 마길라)까지 표현도 자유로워진다. 여신의 역할을 사람들이 거의 기억 못했을 수 있다.  대신 보호구와 장식판으로 사용되는 점을 보아서  단순한 보호(부적)의 의미(기능)가 강해졌을 수 있다. 알 수 없다.

 

상상해 본다. '어디서 들었는데,,이 얼굴이 있으면 안 다친데,,,,그냥 보호만 해준다면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어...라고 하면서' 갑옷을 입는 스키타이 전사를..

 

 

참고문헌

Черненко Е.В. 1968 : Скифский доспех.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68. 190 с(체르넨코 1968, 스키타이 갑옷)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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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남성 석인상은 헬멧을 쓴 남성 무사가 무기를 풀 착장한 채로 확인되기도 했다. 청동투구(헬멧)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면서 기원전 7세기에 사용되었던 방어용구이다.

 

청동헬멧을 쓴 남성 무사는 어떤 말을 타고 다녔을까?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켈레르메스 유적 1호에서는 모두 24마리의 말이 남서쪽벽에 나란히 매장되었다(그림 5). 서쪽벽에 말 12마리가 누워 있었는데, 그 중 10마리는 마구를 착장하지 않았다. 두 마리에는 은제 마구장식(말의 볼 가리개)(그림 1) 이 착장되었다. 남쪽벽의 말(13~18번)은 6마리는 황금 굴레장식, 나머지 6마리는 뼈로 만들어진 굴레장식(그림 2)을 착장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동물이 새겨진 굴레장식, 뼈(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황금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필자편집)

 

그중에서 말의 얼굴장식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남쪽벽의 13번 말이다(그림 3)

이마부터 콧 등까지 가리는 앞 장식판(그림 3-1)과 재갈멈치 위에 달린 볼 가리개(그림 3-2, 3)와 굴레를 감싼 장식판으로 구성된 것이다. 볼가리개는 양 면(그림 3-2,3)의 문양이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선문양을 배치했다는 점은 같으나, 왼쪽 뺨 가리개(그림 3-2)는 다섯 개의 동심원문양 안에 나선문양을 배치한 것이고, 오른족 뺨 가리개(그림 3-3)은 두 개의 동심원문양을 기본 프레임으로 한 것이다. 굴레를 감싼 다른 장식판에도 모두 나선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의 복원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5.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베셀로프스키 발굴)의 평면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고분에서 남과 서쪽으로 나누어서 말을 매장한 것은 왕실의 환경이 혼합민족을 구성을 암시하며 스키타이 인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의 사람을 의미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말의 장식이 은, 뼈, 금으로 차등을 둔 것에 대해서 사회적 위계를 반영한다고도 한다(갈라리나 2006).

 

갈라리나의 생각이 딱히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의 장식을 만든 소재가 다른 것은 용도에 따라서 달랐을 가능성도 한 가지 덧 붙이고자 한다.  청동 헬멧을 쓴 무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거다.  의전용이라면 황금장식판을 단 말을 탔을 것이고, 전쟁에 나갈 참이었다면 뼈로 만든 굴레장식이 달린 말을 탔을 것이다.  동물장식은 일종의 부적(amulet)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3번 말의 굴레장식은 이 유적에서 출토된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의 유물과는 관련이 없는 지역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나선문양은 동물문양과 함께 흑해 스키타이에서 유행하던 유물이기 때문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금으로 장식된 검과 투부, 은제 거울 때문에 그것에 관심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계속 포스팅을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앞에서 소개 해 드린 2개의 무덤과는 달리 소년의 무덤에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미세하게 따지고 들면 다 다르다고 말씀드릴 수 있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는 차이점을 추려보도록 하자.

 

우선 앞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일명 얼음공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남성 2인)무덤에서는 나무로 짠 무덤방에 시신을 바로 안치하지 않고, 그 안에 관을 따로 두었다. 관은 큰 통나무를 파서 만든 통나무관이다. 그런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무덤에는 무덤방에 바로 소년이 안치되었다. 이 무덤에는 통나무관은 없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는 말이 9마리나 들어가 있고, 그 말을 장식하던 굴레가 7벌 확인되었다. 굴레를 장식하던 주요 동물문양장식이 그리핀이었기 때문에 그리핀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설명하는 소년의 무덤에는 그리핀은 있었을까?

(뭔가 있으니깐 물어 보는 거 겠지요?)

 

소년의 무덤에는 완전하게 남은 그리핀은 없고, 이미 망가졌지만 있었다.

말이 한 마리 있었지만, 굴레장식은 없었고 입에 물린 재갈만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한점은 소개한 소년의 고깔모자 장식 중에서 정수리 위에 달던 동물문양장식 말고 소년의 머리 바로 위에서 확인된 그리핀 날개이다. 머리부근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고깔모자에서도 낮은 부분에 부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8세 소년, 2번이 고깔모자 장식, 금제품(그림 2), 6번-투부(그림 3)의 위치,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8세 소년의 머리장식 중 그리핀 날개, 금제

 

 

한 점이 더 있다. 그 한점은 소년의 무릎 주변에서 모피의 조각 아래서 나온 투부(전쟁용 도끼)에 부착되었다. 투부의 전체 길이는 12.5cm가량이다. 앞서서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출토품이 65cm였기 때문에 이 유물도 소년의 체격에 맞게 작게 만든 것이다.

투부는 허리띠에 달아서 착용했을 것이다. 나무 손잡이와 청동제 날부분은 T자 모양으로 결합되어 있는데, 가죽끈으로 단단하게 고정했다. 그 가죽의 끝에는 고리를 만들었고, 고리 끝에 그리핀 머리, 좀 더 정확하게 부리가 달려 있다.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되었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2호분 8세 소년의 투부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 소년의 부장품, 번호 없는 유물이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된 그리핀의 부리. 앞에 포스팅에서 번호 없는 유물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했는데, 투부를 설명하는 부분에 있었다. 정정한다.

 

 

 

소년도 그리핀을 고깔모자와 투부에 달고 무덤속에서 영원한 잠을 청했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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