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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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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31.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지역에서 동물문양장식 중에서 ‘호랑이’의 둔갑은 기원전 6세기 알타이에서부터 나타난다. 전신형인데 호랑이, 말, 독수리가 결합된 모습이다.

 

그러나 동물의 변형은 이미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다. 독수리(혹은 맹금류)의 모습이 변형된 것이다(그림 1). 독수리의 머리에 ‘귀’가 달린 것인데, 맹수의 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시기에 맹금류의 변형이 시작되고 기원전 6~5세기에 호랑이의 변형이 시작되면서 두 동물이 결합되고, 말의 갈기까지 달아서 만든 것이다.

 

그림 1. 아르잔-2호의 그리핀

 

스키타이 문화권의 서부지역에서는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다소 복잡하다. 간두령 장식에 달린 재지의 그리핀(그림 2) 뿐만 아니라 거울 속에 있는 그리핀, 철검 집에 그려진 반인반수는 우라르트에서 수입된 것이다. 물론 이 유적에서는 시베리아에서 기원전 9세기에 유행했던 원형맹수장식이 청동거울에도 달렸고, 골제로도 만들어진 것이 발견된다. 또한 앗시리아의 유물도 발견되는데, 특정한 문양에서 영향을 미친 것이 확인되었다.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의 그리핀

 

동부지역보다는 훨씬 다른 지역과의 교류 혹은 네트워크가 발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동부지역에서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으나 확실하게 정황이 발견되는 시기는 기원전 5세기이다. 다소 아쉬운 점은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의 가장 중심부가 도굴당한 점이다. 그곳에서 발견된 섬유조각은 오리엔트 지역과 관련성이 충분히 있는 유물 일부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졌으나 동물장식에서는 확인하기 힘들다.

 

그럼 서부지역에서 동부지역으로 영향을 미친 동물장식은 없는가?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탁사이-1 유적의 여성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무덤의 구조이다.

 

탁사이-1 유적에는 무덤이 6개 존재하는데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출토된 6호분은 낮은 곳에 위치한다. 사실 1~5호분과 다른 계곡에 위치해서, 같은 구성원이 아닐 수 있지만, 발굴자들은 같은 유적으로 묶어서 6호분이라고 명명했다(그림 1).

 

탁사이-1 유적의 다른 유적은 6호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의 무덤인 6호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다.?!

 

무덤의 중앙구덩이에서도 동쪽벽에 치우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무덤구덩이의 중앙은 비워둔채였다. 그리고 무덤구덩이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도 열을 아주 많이 받았고 청동이 녹은 흔적이 둘러쌓고 있었다. 일부분만 그런 현상이 발견되었다면 우연?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무덤구덩이를 둘러쌓고 있다는 점에서 우연일 수 없고, 의례행위의 과정중에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덤을 3겹이나 둘러쌓고 있는 붉은색과 황색의 퇴적물도 내용물은 달랐겠지만 그런 행위 중에 한 부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림1. 탁사이-1 유적의 무덤 배치도

 

 

그림 2. 탁사이-1 유적의 6호 평면도

 

탁사이-1 유적의 6호분 여성과 유사한 유물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인접한 필리포프카 유적(지도에서 확인가능함)에는 무덤구조는 전혀 다르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3곳이나 있으며 지하통로를 통해서 지하로 들어가도록 된 구조이다. 무덤의 입구는 봉분 위가 아닌 측면이다. 대개 이런 무덤 구조는 한 번 무덤을 만들면 후대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흑해 지역에서 많이 관찰된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무덤구덩이를 파고 봉분을 만든 후에 따로 입구를 설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도(무덤의 복도)가 있는 무덤구조는 나중에 다시 열 것을 염두해 두었을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서 만든 무덤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탁사이-1 유적과 거리상으로는 필리포프카 유적보다 멀지만 같은 국경 내에 있는 이식 유적은 무덤구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여러 방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으로 나무 구조물 안에서 십대 남성(황금인간)이 발견되었다. 여러 방이 있었다는 점에서 탁사이-1 유적 6호와는 다르다.

 

그래서 유라시아 초원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지역에서는 알타이와 비교적 인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을 제외하고는 무덤의 특징들이 일률적이지 않다. 다만 봉분을 높이 쌓는다는 공통점은 있다. 알타이와 흑해처럼 어떤 정형성, 규칙성들이 많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필자가 소개한 베렐 유적, 실릭티 유적, 이식 유적, 탁사이-1 유적, 타스몰라 유적은 카자흐스탄 국경안에 무덤이지만 각각 다르며, 전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볼 때 중부지역에 위치한다. [여기서 베렐 유적은 알타이 산의 자락에 위치해서,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와 유사하다.]

 

따라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자신이 살아생전 지녔던 물건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묻힌 무덤도 아마도 재지적이거나 혹은 어떤 특정 계급의 무덤일 수도 있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사제(샤먼)의 신분이었을 수 있다. 특히 무덤 안에 불을 많이 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2. 12. 13:33 스키타이 동물장식

 

흑해 북안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문화의 마구 가운데는 청동으로 제작되어 뒤에 꼭지가 달리는 굴레 장식이 있다(그림 2). 앞에는 동물장식이 달리는데 여러 동물가운데 곰이 ‘공양하는 자세’를 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청동으로 제작된 유물 외에도 뼈로 제작된 유물로도 있는데, 아마도 말의 앞 가슴을 장식했던 유물이다. 이 유물에도 곰의 머리가 새겨진 것이 발견되었다.

 

 

그림 1. 우크라이나의 숨스카야 지역에서 우연히 발견된 유물,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우크라이나에서도 북쪽인 숨스카야 지구에서 발견된 것인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경계지역이다. 흑해와 거리가 있다.

 

그림 1의 유물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된 아우 우연한 발견품으로 앞과 뒤에 동물장식이 달려 있다. 전체적으로 이 유물은 휘어진 형상인데, 양 끝의 가장자리에 각각 1마리와 3마리가 달린 것이다.

 

‘공양하는 자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야코벤코로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로 보았다(야코벤코 1969).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머리와 함께 발이 함께 그려지는 특징이 있다. 그림 1의 유물은 멧돼지 송곳니를 깍아서 만든 것으로 단순히 머리만 보고 곰으로 추정하기는 힘들었으나, 청동 굴레 장식 가운데 같은 동물문양(그림 2)을 보고 생각한 것이다(바셀레프 2004).

 

 

그림 2. 공양하는 자세를 한 곰 장식, 굴레 장식

 

흑해지역에서는 뼈나 송곳니를 깍아서 만든 유물이 발견되는데, 주로 늑대 혹은 맹수의 머리가 새겨진 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 특히 많이 발견된다(그림 3-6,). 흑해(그림 3-6~8)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북서쪽(퍄티마르이 유적, 그림 3-10, 11), 알타이(투엑타 유적, 그림 3-9)에서도 이런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알타이 아크 알라하-1 유적(포스팅)에서 그리핀 머리가 달린 채 확인된 바 있다.

 

 

그림 3. 각 지역의 굽은 마구장식, 흑해(6~8), 카자흐스탄북서쪽 퍄트마르이(10,11), 알타이(9)

 

 

2020/02/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알타이 산에서도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2명이 묻힌 1호분의 관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는 1차 무덤방에는 말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eastsearoad.tistory.com

포스팅

 

곰 머리가 새겨진 그림 1의 멧돼지 송곳니는 같은 형상의 마구장식(그림 3)과 다른 동물이 달려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알타이 투엑타에서 발견된 유물(그림 3-9)과 흑해지역의 유물(그림 3-6~8)은 맹수를 표현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참고문헌

Яковенко Э.В. Клыки с зооморфными изображениями //СА. – 1969. – № 4. – С. 200–208.(야코벤코 1969, 동물문양이 장식된 멧돼지송곳니)

Васильев Ст.А. Ананьинский звериный стиль: Истоки, основные компоненты и развитие // Археол. вести. – 2004. –№ 11. – С. 275–297.(바실레프 2004, 아나닌스카야 동물장식)

Гуляев В.И. Культ медведя и элитные курганы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Том 47 № 3 2019с. 85 – 93.(굴랴예프 2019,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되는 곰 의례의 요소)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중국에서는 신강의 청동기시대 이전을 「석기시대」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이 지역의 세석기문화는 중국 세석기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감숙성과 녕하 지역의 신석기문화는 토기가 상당히 발달한 문화인데, 만약 신강지역의 세석기가 그 지역에서 기원했다면, 그 지역 토기양상이 신강지역에서 파악되지 않는 점은 그들 연구의 모순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자국중심의 연구관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지역에서 세석기가 늦게까지 존재한다는 이유로 단순히 석기시대개념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스티- 나림 유적에서는 160,000여점의 골각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 이를 「석기시대」로 단순화 할 수 있을까? 중국 신강성과 같은 문화권을 이룬 카자흐스탄, 몽골, 시베리아 학계에서는 신석기시대 개념을 사용한다. 즉 이 지역은 4500년 전부터 석기양상이나 유사한 것으로 파악되나 국가 별로로 연구되면서 시대개념에 차이가 있다. 문화권별로 연구되었다면 좀 더 적합한 개념에 접근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가 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개념을 토기사용이 빈번하지 않는 중앙아시아와 비교하면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및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신석기시대는 토기 등장을 기준으로 한다. 신석기시대는 러복(J.Lubbok)(1865)이 작물재배, 동물길들이기, 토기발명을 시대개념으로 규정하고, 이를 고든 차일드(V. Gordon Childe)는 농경을 기본으로 한 ‘신석기혁명’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시베리아 및 극동의 신석기시대를 조사한 오클라드니코프는 고든 차일드의 신석기혁명이라는 개념이 동아시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전통적인 신석기시대 개념을 반박하는 주장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제기되었다. 토기의 발생시기는 후기 구석기시대이고 동아시아에서부터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자료로서 13000년 이상 올라가는 유적이 있는 곳은 아무르강 하류, 일본, 중국(그림15)등이고, 17000년 전 홀로세 이전부터 동아시아유적에서 출토된 예도 있다. 기원지는 새로운 발굴로 바뀔 수 있지만, 신석기시대의 기준이 된 홀로세(전신세)이후에 토기가 발명된 것이 아니라 이미 플라이스토세의 사냥채집민(후기구석기인)들에 의한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점은 토기가 모든 지역에서 균일한 시점에 발생되지 않았으며, 신석기시대 개념의 기준이 된 유럽 및 근동 보다 오히려 동아시아에서 빨리 토기가 발명되었다는 점이다(그림15).

 

그림15. 토기발생지역비교(P.Jordan, M. Zvelebil 2010재인용)(김재윤 2019)

 

 따라서 토기등장을 기준으로 한 신석기시대 개념은 유럽, 근동, 중앙아시아 등과도 다른 동아시아 특유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카자흐스탄 동부, 중국신강, 몽골의 4500년 전 지역은 토기 발생 혹은 토기사용을 근거로 한 동아시아의 신석기시대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중국 신강지역이 동북아시아와는 다른 선사문화권임을 증명한다.

우스티-나림유적에서 보이는 유물의 양상은 토기사용이 그렇게 빈번하지 않았거나 토기를 대신하는 다른 저장도구 혹은 조리도구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선사시대 연구에서 토기는 시대 및 시기구분, 지역성 등 모든 연구의 기준이 되고 있지만 중앙아시아에서는 이 점이 통하지 않고, 오히려 석기양상이 이 지역의 특징을 대변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본고의 연구대상 시대 이후에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도 주요한 유적의 성격은 무덤이라는 점에서 의례중심의 사회이다. 또한 동아시아보다 일찍 금속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청동기시대 카라숙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청동검이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세 번에 걸쳐 제국을 형성하지만 근대 중국의 대포에 의해서 제국이 굴복되었다는 점은 곧 무기로 인해서 사회가 변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조합식석인검과 조합식검은 이 사회를 대변하는 유물 중에 하나는 무기로 볼 수 있다. 이후의 청동기시대,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권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에서 청동검이 등장하기 이전에 특징적인 유물로서 유목사회의 연속성이 무기에서도 관찰된다고 볼 수 있다.

조합식석인검과 조합식석검의 분포범위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연구된 바가 없다. 시베리아의 세로보문화 및 글라스코보문화에서 확인되는 조합식검은 가장 동쪽 분포범위가 요서지역의 소하연문화까지 확인된다(김재윤 2018b). 이 문화의 조합식검도 양면떼기 한 석기를 끼워 넣었다.

 

 따라서 중국 신강의 석기시대라고 불리는 시대는 4500년 전께 동아시아보다는 검의 형태를 갖춘 유물이 일찍 확인되고, 석기와 골각기가 주된 유물이며, 토기가 주요하게 사용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동북아시아 신석기시대 개념과 맞지 않고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중국 내의 문화보다는 오히려 인접한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유라시아 초원사회의 개념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김재윤(2019)에서...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는 여간해서는 낮에 자지 않는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거의 혼자 있는 이 공간에서도 필자는 내 나름의 규칙이 있다.

재미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머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을 뿐이다.

 

지난주월요일에 답사,,,해외출장을 다녀오고 밤비행기타고 아침에 왔는데, (뱅기타는날은 천산산맥 중에 한 곳으로 해발 3000m 올라갔다왔다.)

부산오자마자 점심먹고 샤워하고 학교갔다. 줄줄이 소세지 같은 원고촉박타령때문에

그 뒤 거의 이틀을 꼬박 12시까지 일하고 나서...

그 뒤 부터는 체력이 못버티는지 토요일밤에는 10시간을 자고, 어제는 낮잠도 잤다.

 

며칠간 일본불매운동이 아주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지만,

난 댓글하나 달 시간도 없었다.

나도 고고학자이고, 고고학자가 역사학자이니,,한 마디 해야하긴 하는데...하며

소심하게 인스타에 표식을 걸었다.

 

항일감정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데,

그건 아마 오래동안 잠재된 일본에 대한 항일감정 때문일 것이다.

역사문제이다.

 

 

역사는 모든 사람의 것이기에 누구나 이야기 할 수 있다.

나의 하루하루가, 너의 하루하루가 모여서 역사가 되는게 아닌가.

나는 진짜 한반도의 울타리를 찾고 싶다.

중국의 민족주의 논리에 따른 환단고기역주본 같은 그런 거 말고.

 

나는 환단고기 원본에 대해서 한번도 언급한적 없다.

왜냐하면 환단고기의 실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환단고기(한문본)는 불행하게도 일본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것이다.아다시피.

그 부분부터 섞연치 않다. 이유립, 1979년, 광오해이사,

그리고 가지모노보루라는 일인이 일본어로 역주했고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역주된 환단고기는 1985년 김은수가 처음으로 역주했고, 1986년 임승국의 역주본은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임승국은 가지마노보루가 일역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어쩌면 환단고기는 우리에게 아직 전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문화범위가 지금 국경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각종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은 한반도의 유적과 같은 성격의 것이 많기 때문이다.

국경은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선사시대 문화권이 지금의 국경과 다른 것은 환단고기를 거명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선사시대문화권은 국경을 넘어선 ‘문화권’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의 초점은 토기이다. 고고학에서 문화권을 설정하는 것은 비슷한 생활권을 구분하는 일인데, 그 생활의 가장 밑바탕에는 토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북한에서도 한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일본에서도 문화권의 구분은 토기의 구분에서부터 시작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고고학에서 기원 혹은 기원지 찾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에 대한 별다른 고민없이 현대의 국경을 기본인식으 해서, 기원지로 여겨지는 지역을 외부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문화단위별로 연구되지 않는 한국고고학의 특성상 양 지역에 보이는 어떤 특정문화요소만을 비교하게 되면 맹목적인 기원지 찾기의 단순성이 야기된다.

그래서 필자는 원류나 계보 문제를 다루기 이전에 최소한 현재의 행정구역을 벗어난 선사인의 생활권역으로서 문화권의 구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김재윤 2017, 11페이지)

 

김재윤 2017, 『접경의 아이덴티티: 동해와 신석기문화』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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