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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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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5. 11:33 스키타이 무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요인인 있었지만 스키타이 사람들의 방어무기인 비늘 갑옷으로 말과 기수를 잘 보호했기 때문이라고 아리안(Arrian)이 아나바시스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림 1. 스키타이 문화의 비늘갑옷, 기원전 5~4세기

 

중무장을 한 전사는 말을 타고 다닌 기마병이다. 말은 아마도 유목민들이 이용하는 동물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다목적이었을 것이다. 타고 다니는 용도 뿐만 아니라 우유, 고기, 가죽을 제공했다. 말을 타고 다니는 지역에서 문화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속도는 농경사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말을 타고 다니던 유목민의 기마병과 농경사회의 전사가 싸우는 것은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말에 대한 정보는 다행히 무덤속에서 얻을 수 있다. 스키타이(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 무덤속에 사람과 말을 함께 부장했기 때문이다. 많은 동물을 숭배했지만(동물장식) 마지막까지도 함께 가는 동물은 말이었다. 아마도 말을 무덤에 넣는 것은 사후세계에도 말이 필요하다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장은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는 발견된 적이 없는데, 중요한 발명품이었고, 유목민들이 세계 문명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공헌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

특히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다양한 안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림 2. 기원전 5세기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의 안장과 말

 

 

 

하지만 안장이 없는 말도 무덤 속에서 많이 발견된다. 재갈과 재갈멈치, 굴레장식등은 있지만 안장이 없는 유적도 수를 헤어릴 수 없다. 예를 들어 파지리크 유적과 같이 시신을 미라 처리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이 대표적이다.

 

루덴코는 자신이 발굴한 파지리크 유적의 말도 꼼꼼히 조사했다. 파지리크 유적 아래에는 냉동고와 같은 거대한 얼음층이 형성되어서 말의 상태가 매우 양호하게 남아 있었다. 지금도 그 중에 한 마리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안장이 있는 말들은 영양상태가 좋았다고 루덴코는 기록했다. 안장을 지고 다녔던 말들은 1년 내내 목초지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녔던 말과는 달리 보살핌을 잘 받은 것으로 여겨졌다. 말굽에 기근 고리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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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3. 10.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경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알타이의 높은 곳에서는 말을 변형시킨 동물문양이 발견된다(그림 1). 미라의 문신에게서 발견되는데, 살아 생전에도 문신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말을 변형하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는 흑해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이 시대에 변형동물은 대개 그리스 신화속의 장면이 표현된 유물에서 보인다. 그리스 사람들이 흑해지역에서 많이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림 1. 알타이의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전사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 유물 가운데서 말이 나타나기는 한다. 그러나 스키타이 동물장식처럼 ‘양식화(스타일)화 되지 않았다(그림 2).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말 탄 전사가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말을 동물장식을 썼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림 1. 쿨-오바 유적의 말 탄 전사

 

말이 양식화 되어서 나타나는 것은 기원전 5세기 이후이고, 알타이에서 가장 극대화 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알타이 주변의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기원전 5~4세기 유적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크게 변형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말을 무덤에 부장하는 전통, 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전통, 말을 변형시키 동물문양의 전통은 확실히 시베리아의 지역적 특징이다.

초원을 달리는 민족에게서 가장 중요한 동물은 말이었을 것이다.

왜 다른 지역에서는 말을 양식화 한 동물문양장식은 없을까?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와 이를 변형시킨 늑대는 많은 지역에서 확인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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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3. 9.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필자는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안장의 옆에 달린 장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려하게 꾸민다는 점에서는 일정정도 이해가 갔지만, 필요 없는 유물을 만들지 않는 알타이 사람들의 특징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원전 5세기 보다 이른 말 장식을 찾으면서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파지리크 유적의 5호의 9번 말은 무덤의 가장 아래에 매장되었다. 이 말은 사슴뿔이 달린 가면(그림 1)까지 쓴 화려한 말이다. 필자는 이 말 장식은 살아 있는 그리핀처럼 보이도록 꾸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1.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말 가면

 

그림 2.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IX번 말 복원

 

그런데 그때는 머리만 집중했지만 전체적인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가면을 쓴 말의 안장에는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지게 장식을 붙였다. 펠트로 된 것인데, 주로 동물문양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장식은 변형된 말의 날개 표현일 수 있다. 말의 변형은 기원전 7세기 유적에서 처음 발견되는데 날개를 달면서 시작되었다.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말의 가면은 IX번 말에서만 발견되는데, 이 말의 안장장식이 길게 늘어진 것이다. 말의 안장 옆에 장식을 단 말들은 있지만, 이렇게 길게 늘어지지는 않는다. 비 실용적이기 때문이다(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길게 늘어진 의미심장한 말 안장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4)

 

그림 3.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의 말 안장

 

그림 4. 알타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말 안장장식

 

합성된 말은 알타이 미라의 문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몸통은 말이지만 얼굴은 독수리, 사슴뿔이 달려 있고, 그 끝에는 새머리가 달려 있는 동물은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아래포스팅참고).

2022.03.05 - [스키타이 동물장식] -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 고유의 동물문양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 고유의 동물문양

고대 알타이에는 드넓은 스키타이 문화지역과는 좀 다른 점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동물문양장식이다. 특히 문신을 한 미라는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드넓은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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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전사는 변형된 말 그림만 문신으로 남아 있어서 다른 미라와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지워진 머리 옆에 날개 표현도 남아 있는데 아마도 하나의 문양이었을 것이다(그림 5).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의 남성전사

 

파지리크 5호의 남성과 여성미라는 변형된 말 문양이 문신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5호 남성미라의 오른쪽 손목 위에는 변형되지 않는 말과 호랑이가 문신으로 남겨진 것이 발견되었다.

문신을 포함한 스키타이 동물문양은 지역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스키타이 동물문양은 기원전 4~3세기 흉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그들은 동물장식을 집안의 상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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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3. 8.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유라시아 초원의 철기시대인 스키타이(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는 동물문양장식이 매우 유행한다. 맹수, 맹금, 굽동물(사슴, 산양, 산염소) 등이 주요한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멧돼지 장식은 드물게 사용되었다.

 

초원을 누비고 다녔던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동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말은 장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잘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시베리아에서는 말을 함께 부장하는 관습이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 지속된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말을 함께 부장하는 관습이 있는 지역은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 일부지역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말을 함께 부장하는 유적이 몇몇 발견되지만, 특히 알타이 만큼 적극적으로 매장하지는 않았다.

알타이에서는 아주 큰 왕급무덤이라고 주장하는 바샤다르, 투엑타, 파지리크 유적에서 매우 화려하게 치장된 말이 부장되었다. 그리고 그 보다 높은 아크 알라하-1, 아크 알라하-3, 베르흐 칼쥔 II유적에서도 발견된다. 물론 앞에서 말한 유적보다는 말을 치장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추야강 계곡에서 발견된 한 가족의 무덤이라고 여겨지는 일렬로 서 있는 무덤에서도 말은 함께 부장되었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무덤이 만들어지기 전에 아르잔-1호에서 석제로 만든 말 머리가 발견되었다. 이 말 장식은 거의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 것으로 스타일화 한 원형맹수장식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말을 스키타이 동물장식들처럼 스타일화 한 것은 아르잔-2호(그림 2)에서 발견된다. 남성의 모자장식으로 사용된 말 장식은 매우 소박한 날개가 달려 있고, 말의 갈귀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말의 갈귀는 아르잔-1호의 석제품(그림 1)에서는 없었다.

 

그림 1. 아르잔-1호의 말 머리

 

그림 2. 아르잔-2호의 말 장식

 

말의 갈귀 표현은 알타이에서 발견된 무덤인 쿠투르군타스 유적에서 목제(그림 3)로 된 것이 출토된 적이 있다. (유적은 아크 알라하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그림 3. 쿠투르쿤타스 유적의 목제 말 장식

 

필자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해발 2500M 유적(아크 알라하-1, 아크 알라하-3, 베르흐 칼쥔 II유적)에서 나온 말의 굴레장식은 흔히들 독수리 머리 그리핀(그림 3)이라고 불리는 장식이 많이 달려 있다. 하지만 이 장식에는 단순히 독수리가 아니다. 독수리라고 하기에는 목의 길이가 길다. 필자는 말의 목과 갈귀에 독수리 머리를 붙였다고 생각한다. 설령 목이 말의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갈귀는 말의 것이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말 목제 굴레장식

 

굽동물(사슴, 산양, 산염소)은 대부분 뿔을 달고 있지만 대신에 말은 갈귀를 달고 있어서 아마도 이 부분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소중한 자산이었다는 점에서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가운데 변형 호랑이가 말을 물어 뜯고 있는 장면(아래 포스팅참고)은 아이러니하다. 호랑이의 뿔을 첨가시키는 것은 페르시아 계통의 영향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래포스팅참고). 이 장식에서 몸을 S자로 꼬고 있는 말장식은 틀림 없이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문양과 연결된다. 하지만 호랑이와 말이 대치되고 있는 이 상황은 시베리아적인 아이덴티티에서 만들어졌는지는 의문스럽다.

 

2022.02.12 - [스키타이 동물장식] -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나르는 호랑이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나르는 호랑이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여러 문화에서는 동물문양장식이 대유행했다. 시베리아에서 기원전 9세기경부터 청동으로 만든 유물을 쓰기 시작한 이후이다. 기원전 7세기경에는 유라시아 지역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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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3. 3.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알타이에서 발견된 미라의 문신은 동물문양을 이용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이용된 문양은 독수리 부리+사슴뿔+새머리+말 몸통이 혼합된 것이다. 모두 4구의 미라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의 문신

 

그림 2.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의 손목 위 문신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의 어깨 아래에 팔목에는 3개의 동물이 그룹을 이루는 문신이 있다(그림 2). 머리가 남아 있지 않는 동물은 사슴뿔 끝에 달린 새머리는 어깨에 남아 있는 문신(그림 1-1)과 같아 보이지만 몸통과 발은 호랑이의 것이다.

 

고대 오리엔트에서 존재하는 그리핀은 맹수와 맹금의 합성을 의미한다. 러시아가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고분들을 발굴하고 출토된 유물 가운데 맹수와 맹금의 합성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합성동물들을 그리핀으로 퉁쳐서 이름 지었다. 그래서 알타이의 문신에 남아 있는 동물들도 그리핀이라고 불린다.

 

문신에 남아 있는 합성동물은 아마도 알타이 사람들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단순히 포식자인 동물(맹수와 맹금)만 표현하지 않았고, 당시에 중요했던 동물의 각 요소를 다 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문신에 남아 있는 합성동물(그림 1)의 처음 모습은 호랑이 몸통에 독수리 부리를 달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말의 몸통으로 변화시켰다.

 

각 동물의 문양이 가장 자주사용되는 장소를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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