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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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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지역의 스키타이 유물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스키타이 신화 속의 어떤 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흑해지역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스키타이 연구자들이 인용하고 있다. 불분명한 점이 너무 많다.

분명한 것은 시작은 러시아에서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 연구자와 우크라이나 연구자가 약간씩 다르게 본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연구자는 스키타이 신화와 그리스 신화를 섞는 경향이 심하고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유적에 쉽게 대입한다.

 

스키타이 신화에는 남성도 있지만 여성도 있다는 것은 여러번 소개했다.

오늘 소개하는 것은 크라스노다르스키 지역의 아나파 도시 부근에서 1876년에 발굴되었다고 알려진 메르디잔(Мерджаны, Merdzhany) 쿠르간에서 출토된 각배를 감 쌓던 장식판이다.

이제 까지 소개한 아르김파사와는 전혀 다른 여성이다. 날개 달려 있고 두 손으로 동물을 감싼 여성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으로 매우 높은 신분의 여성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른손에는 둥근 그릇을 들고 있으며, 그 녀의 오른쪽에는 나무와 나뭇잎이 있어서 자연의 생산력을 의인화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왼쪽에는 말의 두개골이 꽂혀 있는 막대기가 서 있다.

 

같은 쪽에는 망토를 입은 수염이 있는 전사가 말을 타고 달려가는데, 그는 오른손에 리톤(각배)를 들고 있다.

 

 

그림 1. 메르디잔 쿠르간 출토 금제 장식판

 

이 남성은 망토를 입고 있는데, 기원전 4세기이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스키타이 전사의 옷과는 전혀 다르다(그림 2).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의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되는 그리스 신화속의 장면에서 나오는 남성과도 전혀 다른 인물이다(그림 3). 그리스 신화속의 인물들은 거의 나신인 상태가 많다. 소위 ‘스키타이-그리스’ 양식의 유물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림 2. 쿨 오바 유적의 스키타이 전사

 

그림 3. 체르토믈리크 유적 출토 고리트 장식판, 체르토믈리크 유적은 스키타이 전통의 무덤인데, 고리트(활과 화살통)를 장식하던 판은 그리스 신화로 표현되어서 당시의 역학적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astsearoad.tistory.com

 

 

아르타모노프는 이 유물 속의 남성을 게레메소프 쿠르간 혹은 오구즈 쿠르간 등에서 발견 재지의, 고유한 전통의, 원형의 의례전통을 담은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르타모노프는 스키타이 유물 속의 인물을 스키타이 신화와 비교한 대표적인 연구자이면서, 그리스 유물에도 밝은 연구자였고, 알렉세예프와 비교해 보면 스키타이 전통을 강조하기 보다는 그리스적인 연구자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유물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을 것이다.

 

신화를 떠나서 이 유물속에서 분명히 여성은 남성보다 지위가 높은 인물이다. 그리고 남녀 모두 그리스 속의 인물은 아니다.

 

더보기

파지리크 5호, 카페트 속의 여성과 남성 유사한 점 있음.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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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 강을 중심으로 인접한 지역에는 18개의 거대 성 유적이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을 요새화 했다고 표현하는데 100헥타르가 넘는 성을 기준으로 했을 때 ‘자이언트 성곽’이라고 표현했다. 그 중에 벨스크 성은 가장 크며 드네프르 강의 지류에 위치한다.

 

모리니치 성곽은 125헥타르, 성벽의 길이는 2.5~3km이고, 현재는 일부 구간만 남아 있다.

 

그림 1. 모리니치 성곽의 평면도

 

그림 2. 모리니치 성곽의 평면, 구글지도

 

코마로프 성곽도 매우 일부 구간만 성벽이 남아 있어서 구글지도로는 보기 힙들다. 지형도 많이 바뀌어서 더욱더 힘들다. 다가란이 확인한 성벽은 대략 6km 구간이다. 전체 성의 면적은 260헥타르 정도로 추측된다.

 

그림 3. 코마로프 성곽

 

주르지네츠코예 성곽은 평면적은 326헥타르, 성의 길이는 9.5km 이다.

 

그림 4. 주르지네츠코예 성곽

 

그림 5.주르지네츠코예 성곽, 구글지도

 

타라샤 성곽의 평면적은 214헥타르, 성벽은 5.6km 정도이다. 성의 북서쪽은 매우 가파른 경사면에 설치된 곳이다.

 

그림6. 타라샤 성곽

 

그림7. 타라샤 성곽, 구글지도

 

모트로닌스코예 성곽은 106헥타르, 성벽은 4km이고, 내성의 평면은 49헥타르이다.

 

그림 8. 모트로닌스코예 성곽의 평면도

 

프리스카체프스코예 성곽은 19세기 지도에도 남아 있는데, 타원형에 가까운 평면형태(0.7~0.75km×0.5km)이다.

 

그림 9. 플리스카체프스코예 성곽

 

트라흐테미로프스코예 성곽은 드네프르강의 우안에 위치하는데, 높지는 않지만 4~5m성벽이 남아 있다. 가장 높은 곳의 성벽고도차는(성벽부터 해자까지 포함) 8m정도도 있다. 전체 평면적은 524헥타르 정도이다. 이 성의 북서쪽에는 내성이 있는데 말르이 발키라고 한다.

 

그림 10. 트라흐테미로프스코예 성곽

 

비하 유적도 드네프르강 유역에 바로 입지하는데 성벽의 평면적은 대략 20헥타르 정도 된다.

 

그림11. 비하(1) 성곽과 체르니시(2,3) 성곽

 

호토소프스코예 성곽은 드네프르강 유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성 유적이다. 드네프르강의 지류를 따라서 대략 7km정도 유적은 형성되어 있다.

 

그림 12. 호토소프스코예 성곽

 

므리노크 성곽은 호토소프스코예 성곽에서 서쪽으로 52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성벽의 높이는 3m, 너비는 20m, 해자의 깊이는 2~2.5m이다.

 

그림 13. 므리노크 성곽

 

파스티르스코예 성곽은 가장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가장 이른 성곽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그 너비는 작은 편인데, 25헥타르이고, 그 주변에는 3개의 성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샤르포프스코예 성곽은 16헥타르, 마케예프스코예 성곽은 24헥타르, 부댠스코예 성곽은 20헥타르 정도이다. 파스티르스코예 성곽을 제외하고는 기원전 6~5세기에 만들어진 유적이다.

앞서 설명한 유적에 비해서 매우 적은 규모이다.

 

 

그림 14. 파스트리스코예 성곽 유적

그림 15. 마케예프스코예 성곽(1), 부댜-마케예프스코예(2), 파스티르스코예(3), 샤르포프스코예(4)

 

위에서 설명한 드네프르강 유역의 스키타이 성곽은 평면형태나 크기는 제각각이고, 모두 지형과 관련되어 있다. 

재미는 없지만, 사람들은 매우 많이 살았다.

 

참고문헌

 

Дараган М.Н., 2017, Городища-гиганты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в Украинской Лесостепи (особенности расположения и фортификации). Вводные замечания(다라간 2017, 우크라이나 삼림스템지역의 스키타이 시대 거대한 성곽배치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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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 강을 중심으로 성의 면적이 100헥타르 이상인 스키타이 시대 거대 성곽 유적이 18기 존재한다. 벨스크 성곽은 그 중에서 가장 크고 기원전 7세기부터 성곽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성곽은 트라흐테미로프스코예(Трахтемировское, Trakhtemirovskoe)성곽, 파스티르스코예(Пастырское, Pastyrskoje)성곽, 모트로닌스코예(Мотронинское,Motroninskoje) 성곽이다.

기원전 6~5세기경의 유적은 네미로프스코예(Немировское, 코마로프스코예(Комаровское, Komarovskoe); 주르지네츠스코예(Журжинецкое, Zhurzhinetskoe), 타라샤(Тараща,Tarashcha), 모트로닌스코예( Мотронинское, Motroninskoe), 치미례프카(Чмыревка, Chmyrevka), 비하(Виха, Viha), 호도소프스코예(Ходосовское, Khodosovsky), 호토프스코예( Хотовское, Khotovskoe), 므리노크(Млынок, Mlynok), 쿠티키( Крутьки, Krut'ki); 바슈티니츠(Васютинцы, Vasyutintsy), 바스코예(Басовское,Basovskoe) 성곽이다.

 

플리스카체프스코예 (Плискачевское, Pliskachevskoe) 성곽은 기원전 4세기 유적이다.

 

기원전 7세기 중반부터 기원전 6세기경에 산림 스텝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규모 방어구조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인구들이 살았을까?

 

기원전 7세기 경에 세워진 벨스크 성곽은 비교적 발굴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거주공간은 매우 조밀하게 발견되었고 성 내의 빈 공간이 많다는 점이 밝혀졌다. 드네프르 강과 가까운 모트로닌스코예, 트라흐테미로프스코예, 네미로프스코예 유적 등이 그 당시에 만들어졌는데 이들 유적에는 빈 공간이 많다. 성 내의 내부 공간 중에 넓은 공간이 살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스키타이 학자들이 믿어 온 작은 마을에 살던 사람이 어떤 위험에 대비해서 모든 재산과 가축을 가지고 큰 성이 있는 마을에 숨어 있었다는 관점은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성곽은 모두 각자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일치된 성곽의 평면형태를 띠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곽의 평면형태는 자연적 조건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림 1. 네미로프스코예 유적(다라간 2017)

 

그림 2. 네미로프스코예 유적 구글지도

 

그림 3. 모트로닌스코예 성곽(106헥타르) 

 

그림 4. 트라흐테미로프스코예 성곽(1), 말리예 발키(2) 성곽은 트라흐테미로프스코예 성곽의 내부 성이다. 19

 

벨스크 성곽은 오랫동안 사용되었기 때문에(기원전 7~4세기) 건축의 전통기술이 축척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나머지 성곽들은 매우 짧은 기간동안 만들어졌고 각 성의 평면형태도 다르다.

 

그렇다면 그들은 각자 독립적인 그룹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성벽을 축조하는 기술은 이 지역 무덤 매장주체부를 만들던 기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나무목재를 결구시켜서 만드는 고분만들던 기술은 성벽을 만들던 기술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다라간은 매우 수사적으로 표현했는데, ‘거주공간은 일종의 소우주이고 장례 구조도 일종의 우주이기 때문에 세부사항 중에 일치하는 것이 있고 시각적인 부분도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참고문헌

Дараган М.Н., 2017, Городища-гиганты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в Украинской Лесостепи (особенности расположения и фортификации). Вводные замечания(다라간 2017, 우크라이나 삼림스템지역의 스키타이 시대 거대한 성곽배치의 특징)

Шрамко Б. А. Бельское городище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город Гелон). К., 1987. (시람코 1987, 스키타이 시대의 벨스크 성곽: 헬온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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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네프르 강 유역의 최대 성곽은 벨스크 성곽으로 대략 4000헥타르 너비로 스키타이 문화에 해당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 까지 사용되었고 정확하게는 지리상으로 드네프르강의 지류에 위치한다.

 

그런데 벨스크 성곽 보다 좀 더 드네프르 강 유역에 가까운 곳에는 이 유적보다는 작지만 꽤 규모가 큰 성곽 유적이 17개 존재한다. 아래 지도에는 벨스크 성곽을 제외하고 16개를 표시해 놓았는데, 1곳은 지도에는 있지만 논문에 소개가 되지 않아서 보류해 놓은 곳이다.

 

루보틴 성곽과 같이 구글지도로 성곽을 살펴보는 재미는 없다. 성곽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곽도 무덤과 마찬가지로 파손이 심각한 듯 하다.

 

성곽 유적은 전면이 발굴된 경우는 없다. 이건 세상 어디서나 똑같은데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성조사는 무덤에 비해서 출토되는 유물은 시덥치 않은데, 발굴비용은 훨씬 많이 들기 때문이다. 흑해 지역의 무덤이야 대부분 도굴된 무덤을 다시 재조사이지만 그래도 유물들은 19세기나 20세기 초의 발굴된 것을 바탕으로 새로 분석해 볼 것이 많다. 하지만 이 마저도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는 유물들은 러시아에 많기 때문에 마땅치 않을 것이다. 안타깝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성곽 조사의 경우에 발굴 대신에 물리탐사로 흙 아래의 건축물의 규모를 추정하는 조사를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곽 내에서는 실생활과 관련된 유물들이 출토되기 때문에 발굴조사는 필요하다. 벨스크 성곽에서는 특히 동물뼈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 새 뼈가 많이 출토되었다.

 

성곽 유적은 주로 드네프르강 유역의 중류역에 대부분 분포하며, 하류역에는 큰 성곽 유적은 없다. 아직 드네프르강 유역의 무덤을 모두 지도에 표시하지는 않아서 중류역에 무덤이 분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규모가 있고 잘 알려진 무덤은 성곽 보다 하류역에 위치한다(그림 1).

 

그림 1. 드네프르 강 유역의 스키타이 거대 성곽 유적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참고문헌

Дараган М.Н., 2017, Городища-гиганты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в Украинской Лесостепи (особенности расположения и фортификации). Вводные замечания(다라간 2017, 우크라이나 삼림스템지역의 스키타이 시대 거대한 성곽배치의 특징)

Шрамко Б. А. Бельское городище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город Гелон). К., 1987. (시람코 1987, 스키타이 시대의 벨스크 성곽: 헬온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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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강 유역의 최대 성곽인 스키타이 문화의 벨스크 성곽에서는 특히 동쪽 성에서 토제로 된 인간형상물들이 발견된다. 인간형상물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성을 알 수 없는 유물들도 발견된다. 모든 인간형상물의 출토 위치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지만 집자리에서 발견되었다.

 

누가 보아도 여성을 형상화 한 인간형상물(그림 1-11) 중에 한 점은 집자리 13-25-1974호에서 발견되었다.(집자리 호수가 이렇게 복잡한 경우는 처음본다. 1974는 발굴한 연도이고, 13과 25는 발굴범위내에서 1m간격으로 표시된 격자번호이다. 문제는 발굴평면도가 없어서 동쪽 성의 어디에 주거지가 위치하는지 정확치가 않다.) 13a-25-1974호는 13호 보다 늦게 생긴 것으로 이곳에서는 토기가 출토되었다.

 

 

그림 1.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내의 집자리 출토품. 1~3: 31-30-1982호 출토, 4,5: 40-26-1976호, 6: 1-19-1969호, 7: 14-22-1973호, 8,9: 8-23-1975호, 10~16: 13-25-1974호, 17~19: 13a-25-1974호

1,7-송곳, 2-무기의 앞부분, 3-주외, 4-칼, 5-날, 6-화살촉, 8-창의 지지대, 10-점토 숟가락, 9,11-인간형상물, 12, 15-소 형상물Bucranium, 13-가죽 가공 용도의 석기, 16-구멍이 뚫린 지지대, 17-동물형상물, 18-토기, 19-긁개(1-2,5,7-8: 철, 4: 철과 뼈, 3,6: 청동, 9~12, 14-17: 점토, 13-석제품, 19-뼈제품)

 

그런데 이 여성형상물이 출토된 집자리는 다른 집과는 다른 장방형평면형태(9.35×5.6m,깊이 1.1m)이고 규모도 크다(그림 2-1).

이 집자리에서는 원뿔 모양으로 된 점토 받침대(그림 2-16)가 발견되었는데, 막대기를 꽂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인간형상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동물모양의 점토인형(그림 2-15)이 함께 발견되었다. 여성형상물의 머리는 훼손된 채 매장되었다. 동물장식은 소를 형상화(букрании, Bucranium)했다고 보고자는 생각했으나 의아하다(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벨스크 유적에서는 좀 더 사실적인 동물모양형상물이 출토되기 때문이다(그림 3).

 

그림 2.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의 집자리

 

그림 3. 벨스크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모양 점토인형

 

아뭏튼 시람코는 벨스크 성곽의 동쪽 성내에서 발견된 집자리 중에서 13-25-1974호를 특별하다고 생각한 듯 하다.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집자리 8-25-1984호(그림 1-2)에서도 인간형상물이 토기 옆에서 출토되었다(그림은 없음).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집자리에서는 인간형상물이 출토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일반집과는 무엇가는 다를 수 있다. 일종의 신(神)을 모신 집자리 일 수 있다. 매우 현실적인 종교 생활?이다.

 

참고문헌

 

Шрамко Б. А. Бельское городище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город Гелон). К., 1987. (시람코 1987, 스키타이 시대의 벨스크 성곽: 헬온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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