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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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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무덤에는 사람과 함께 역시 말이 매장된다. 말의 굴레에 장식을 하는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은 아마 이 시점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나무로 만든 굴레장식을 말한다. 물론 이 보다 더 이르고 지역적으로도 약간 차이가 있지만 아르잔-2호에서도 굴레로 장식하기는 하지만 청동제 혹은 단순한 장식품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이지만, 파지릭 문화의 유적이 입지한 곳은 알타이 지역이고,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가 위치한 곳은 알타이의 경계구역을 벗어난 샨-수벤스키 지역으로 구분한다.)

 

나무를 깎아서 만드는 제품의 특성상 좀 더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 루덴코는 그림 1의 그리핀을 투엑타 1호에서 가장 특별한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말의 머리 장식(당호)으로 원판형이다. 이제까지 보여드린 원판형 머리장식은 모두 문양이 없었으나  오늘 소개해 드리는 유물에는 그리핀 2마리가 원을 그리고 있다. 같은 구도로 그리핀 2마리가 원을 그리는 유물은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출토되었다. 대마씨가 보관된 가죽용기이다.

 

그림 1. 2600년 전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말머리장식. 지름 12.7cm

 

얼핏 보면 독수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리핀이다. 맹수의 귀가 표현되었고, 갈기, 맹수의 발톱표현 등은 독수리에서는 볼 수 없다. 특히 투엑타 1호분의 그리핀은 목 부분에 반원모양으로 비늘 표현도 실제 독수리와는 거리가 있다.

그림 1은 독수리가 주체이고, 맹수의 부분이 가미된 것이다. 그리고 갈기는 다른 동물과 관련되어 있다. 어쨌든 그림 2의 독수리머리 그리핀 전신형과는 다르다.

 

 

독수리머리 그리핀 전신형은 독수리머리에 호랑이 몸통이 부착되었다(그림2). 여기에 맹금류의 날개를 가져왔다. 그림 1의 그리핀 발은 맹수의 발톱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실제 독수리 발톱은 매우 날카롭지만 저렇게 크지 않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독수리머리 그리핀 전신형.

 

그 옛날 그리핀 만들던 마스터는 그리핀을 표현할 때 귀와 갈기로서 독수리가 아닌 그리핀임을 나타냈다.

 

그림 3.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독수리 머리 그리핀 머리형. 굴레장식

 

그림 4.투엑타 유적 1호분의 독수리 머리 그리핀 머리형. 굴레장식, 귀 부분에 구멍이 있는데 가죽으로 귀를 만들어 넣었을 것이다. 같은 표현법은 파지릭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수리머리 그리핀 중에서 머리형은 모두 귀와 갈기가 실제 독수리에는 없는 요소이다.

 

 

*위의 사진은 1991년 10월에 한국에서 열린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 도록을 참고한 것이다(알타이 얼음공주 특별전은 1995년에 열린 것이다). 그해 고르바초프가 제주도를 4월에 방문했고, 한국과 수교했다. 루덴코의 저서(1960)에도 사진은 있으나 좀 더 좋은 사진을 보여드리고자 했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1991, 소련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황금』 특별전 도록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무덤에는 사람 뿐 만 아니라 말도 함께 매장되었다. 말의 숫자는 정확하게 어떤 원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덤 마다 다르다.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는 남녀가 말 14마리와 함께 매장되었다. 앞서 살펴본 무덤은 무덤구덩이가 깊고, 무덤방 아래에 얼음층이 두텁게 형성된 경우 말 뿐만 아니라 기타 유기물질이 잘 냉동?되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무덤구덩이가 상대적으로 깊지 않고(2m), 얼음층이 덜 형성된 바샤다르 유적 1호분에서는 나무로 된 무덤방도 북쪽벽이 무너졌고, 유기물질로 된 유물도 잘 남아 있지 않은 편이었다.

 

바샤다르 유적의 2호분은 깊이가 6m나 되는 무덤구덩이 속에 무덤방이 설치되어서, 유기물질로 된 유물들은 남아 있다. 그러나 도굴로 인해서 유물은 많이 없어진 상태이다. 특히 말의 매장지에도 손을 대어서 말 장식 세트도 거의 흩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생생한 것이 한 벌 남아 있어서 앞서 소개한 바 있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말의 굴레장식은 앞에서 본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과는 달리 동물문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의 재갈멈치 장식판에 달린 구름?모양은 그리핀으로 볼 수 있다. 재갈멈치 가운데 그리핀이 남아 있는 유물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샤다르 유적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투엑타 유적의 유물을 살펴보면 구름처럼 장식판이 그리핀을 최소한으로 표현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그림 1-1). 뿐만 아니라 바샤다르 유적 2호에서 굴레장식에 달았던 삼판 장식(그림 3)은 투엑타 유적에서 호랑이 얼굴(그림 1-2,3, 그림 2)과 함께 표현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말과 관련된 도구 각 부위 명칭은 앞서 바샤다르 유적 2호분의 마구를 소개한 글에서 알 수 있다.

 

 

그림 1. 투엑타 유적의 굴레장식판(1-재갈멈치, 2,3-굴레장식판)

 

그림 2. 투엑타 유적의 굴레장식판.투엑타 유적에서 표현된 호랑이는 파지릭 유적의 유물 보다 희화되었다(좀 우스꽝 스런 모습이다..귀엽기도 하다).

 

 

그림 3. 바샤다르 유적 2호분의 굴레장식판

 

그림 4. 바사댜르 유적 2호분의 굴레장식판

 

 

그림 3의 원판장식은 둥근 상단과 구름모양의 하단으로 구성되었는데, 투엑타 유적의 유물도 마찬가지이다. 투엑타 유적의 유물에서는 원판 대신에 호랑이 얼굴을 붙이고, 호랑이 얼굴과 어울리도록 하단에는 구름모양 판에 좀 더 세밀한 원판을 새긴 것이다.

 

투엑타 유적에서는 그림 1, 그림 2와 같은 호랑이 굴레장식판과 함께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간략한 장식판(그림 5)이 같은 무덤에서 출토된다. 바샤다르 유적이 도굴되지 않았고 좀 더 잘 남아 있었다면 투엑타 유적과 같은 호랑이 굴레장식판이 함께 출토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5. 투엑타 유적 1호분의 굴레장식 판

 

투엑타 유적에서는 날개 편 그리핀(그림 6)이 여러 점 확인된다. 크게 두 종류인데, 머리에 뿔이 달리고 귀 끝이 뾰족한 그리핀(그림 6-4, 6) 와 뿔이 없고 귀가 둥근 그리핀(그림 6-1~3)이다. 머리에 뿔 달린 그리핀은 100년 뒤의 아크 알라하 유적 1호분과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많이 확인되어 계속된다. 머리에 뿔 없고 귀가 둥근 그리핀은 역시 100년 뒤에도 볼 수 있는데, 파지릭 유적이다.

 

그림 6.투엑타 유적 1호분의 그리핀

 

그리핀은 매우 다양한데, 바샤다르 유적과 같이 독수리를 메인 모티브로 해서 제작한 유물 외에도 여러 가지 가 있다.

 

맹수의 머리와 몸통에 우제류의 뿔과 날개가 붙는 스타일이 있다. 사자머리가 붙으면 페르시안 스타일(그림 7,8), 호랑이 머리가 붙는 스타일(그림 9)이 있다.

 

그림 7. 파지릭 유적 2호분, 구리판에 찍힌 그리핀, 관련된 앞선 포스팅 참고

 

그림 8, 파지릭 유적 2호분 여성 목걸이, 목제. 관련된 앞선 포스팅 참고

 

그림 9.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안장덮개, 펠트, 관련된 앞선 포스팅 참고

 

 

그리핀은 맹수(호랑이 혹은 독수리)가 기본이라는 원칙에서는 벗어나서 일부 표현된 유물도 있다. 사슴몸통에 독수리 부리가 붙고 뿔이 화려한 환상의 동물이다(그림 10).

 

그림 10.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 미라(왼손)의 타투 동물문양

 

알타이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은 독수리를 기본으로 한 그리핀과 호랑이를 기본으로 한 스타일이다. 각각의 동물문양은 표현되는 부위에 따라서 더 분류가 가능하다. 전신이 보이는 경우, 머리만 표현되는 경우 등등...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투엑타 유적의 호랑이 장식판(그림 1, 그림 2)은 아래에 달린 장식판을 날개의 변형으로 본다면 이 또한 그리핀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함께 출토된 간략화된 장식판(그림 5)도? 바샤다르 유적의 것(그림 3,4)도?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아르잔-2호에는 말을 위한 무덤 시설이 있었다. 무덤방 16호인데, 금속제 마구는 이곳에서 대부분 출토되었다. 사람이 들어간 무덤방에서 마구가 확인된 적은 없다. 무덤방 16호를 제외하고 금속제 마구가 있는 곳은 무덤의 경계벽 아래에 있는 ‘퇴장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모두 4곳 혹은 5곳이 있다.

 

퇴장지는 무덤의 북서쪽 구역에서만 확인된다. 별다른 시설 없이 무덤경계벽 사이 혹은 아래좁은 공간에서 유물이 확인되었다.

2호는 2a와 2b로 번호가 두 곳으로 나눠진 것이다. 두 공간에서 나누어서 유물이 출토된다는 가정에서 퇴장지의 번호를 구분한 것인데, 2a(그림 5-1,2)와 2b(그림 5-3~10)가 유물로 보아서 그렇게 관련성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하여간 5공간에서 마구 및 무기가 출토된다.

 

1호 퇴장지에서는 재갈+재갈멈치+굴레장식 및 각종 마구장식이 출토되었다. 재갈 멈치의 양쪽 끝에는 동물문양장식이 있고, 재갈멈치 뒤에 따로 굴레를 달기 위한 고리(그림 1-2,3)가 마련되어 있다. 재갈(그림 2-9)은 재갈멈치와 연결되는 부위의 고리가 사각형이다. 안장을 고정시킬 때 사용했던 벨트에 달았던 벨트장치(그림 2-11,12)과 굴레장식이 있다. 굴레장식은 낙타머리 3점(그림 2-1~3)을 제외하고는 모두 호랑이 모양인데, 오른쪽(그림 3-12~16)과 왼쪽(그림 3-17~21)에 착장했던 유물의 방향이 다르다. 용도(그림 2-5~8, 10)가 정확하지 않은 말과 관련된 유물도 여럿 있다. 대부분 장신구이다. 갈기(그림1-1)와 꼬리(그림1-4)에 달았던 금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동제이다.

 

그림 1. 아르잔 –2호 퇴장지 1호

 

그림 2. 아르잔 –2호 퇴장지 1호

 

그림 3. 아르잔 –2호 퇴장지 1호

 

 

그림 4. 1호 퇴장지 출토 재갈, 재갈멈치와 굴레 복원도

 

2A 퇴장지에서는 벨트장식(그림5-1)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청동판(그림5-2)만 출토되었고, 2B에서는 재갈멈치 없이 재갈(그림5 -4)만 출토되었다. 화살촉과 벨트장식(그림5-3)도 있다. 청동제품이다.

 

그림 5. 아르잔-2호 퇴장지 2A와 2B

 

3호에서는 재갈(그림6-2)과 재갈멈치(그림6-1,3) 외에 원뿔모양의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원뿔모양의 청동유물은 굴레에 달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3호 재갈은 재갈멈치와 연결되는 고리가 완전하게 네모이다. 재갈멈치는 양쪽에 수직으로 구멍이 있고 위쪽 끝에만 동물문양이 장식되었다. 재갈멈치 끝에 붙은 고리는 굴레와 연결하기 위한 고리이다. 3호 재갈멈치의 동물은 그리핀이다. 독수리 얼굴과 부리에 목 부위에는 갈기가 표현되어 있는 그리핀(그림 7-4)이다.

 

4호에서는 금제로 만든 갈기와 꼬리 장식이 출토되었는데, 1호와 거의 같은 형태이다.

 

 

그림 6. 아르잔-2호 3호(1~7)와 4호 퇴장지(8.9)

 

퇴장지에서 출토되는 재갈과 재갈멈치는 특히 무덤방 16호와 다르다. 재갈멈치는 굴레를 매기 위한 고리의 위치와 형태, 가장자리 끝 부분 장식 등이 매우 차이가 있다. 재갈멈치의 고리 위치는 굴레 착장하는 방법과도 관련이 되기 때문에 별꺼 아닌게 아니다. 그림 3의 말 복원도를 보면 알 수 있다. 3호에서 출토된 재갈멈치는 굴레와 연결을 위한 구멍 위치가 전혀 다르다. 재갈 가장자리의 재갈멈치와 연결되는 부위의 모양에 차이가 있다.

 

3호 퇴장지에서 확인된 재갈멈치에 표현된 그리핀은 아르잔-2호에서 확인된 유일한 유물이다.

 

그림 7. 아르잔-2호 3호(3~5)와 4호 퇴장지(1,2)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발견되었다. 한 계곡에는 여러 기의 무덤이 확인되는데, 주로 가족 혹은 친족들이 같은 공간을 차지했다. 이 시절 이 곳에는 매우 큰 무덤구덩이를 파고 구덩이 안에는 무덤방과 통나무관을 안치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무덤은 아니고 소형무덤도 있다. 파지릭계곡에서 큰 무덤은 모두 5기이다. 어제 소개한 1호 무덤은 상부에 드러난 돌의 범위가 직경이 47m,높이는 2.2m정도이다. 그 안에 무덤 구덩이 크기는 7.2×7.2m가량이다.

 

무덤 구덩이 안에 무덤방 안은 관을 넣어두는 공간을 빼고는 빈 공간이 대부분이고, 무덤구덩이를 통나무 300개와 흙, 돌을 차례대로 채워 넣었기 때문에 대단히 계획적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무덤방안에서 관은 한쪽 벽에 치우치게 배치되어 정중앙은 비어 있는 상태가 된다. 아마도 파지릭 인들은 무덤 구덩이가 내려앉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다.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그들 조상의 무덤을 보아서도 관은 한쪽 벽으로 부쳐두었을 것이다. 이 유적은 2500년 전으로 멀지 않은 곳에 바샤다르 유적이 있는데, 파지릭 유적보다 약 100여년 빠르다. 파지릭 유적에 매장된 혹은 무덤을 만든 사람들은 바샤다르 유적을 알았을 것이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1호 통나무 관

 

 

그림 2. 파지릭 유적 1호 통나무 관 복원

 

1호 통나무관은 관은 길이가 371cm, 너비 65-78cm, 높이가 58-60cm가량이다.(어제 포스팅에 잘못된 수치를 넣었다.) 뚜껑은 길이 371cm, 너비 54-61cm, 높이가 25-27cm이다.

이 관은 낙엽송의 하부를 이용한 것이다. 관의 구멍은 무덤으로 내려간 밧줄을 지탱하기 위한 구멍이다. 관의 바닥 두께는 9~11cm, 측벽 두께는 1.5~3cm, 상단 끝의 두께는 최대 25cm이다. 뚜껑은 큰 청동못으로 관에 고정되었지만, 이미 제거된 상태이다. 주로 나무못을 많이 사용하는데, 베렐 유적, 아크 알라하 3 유적에서는 청동못을 사용했다.

 

통나무관의 길이는 주인공의 계급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족장은 3.25m에서 긴 것은 5m까지, 귀족은 2.5~3m이고, 일반인은 관 대신에 나무판 위에 올려놓은 경우도 많다. 아이의 무덤은 무덤방을 따로 만들지 않고 1~1.3m의 나무판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만든다.

 

파지릭 1호 통나무관의 측벽에는 나무 마개가 삽입되었는데, 비슷한 마개가 다른 관에서도 관찰된다. 통나무관의 뚜껑에는 금이 가 있는데, 이는 관을 만드는 동안에 생겨서 가죽끈으로 이를 보수한 흔적이 있다.

 

관은 가죽이나 자작나무껍질로 장식된다. 파지릭 무덤의 1호 관에는 통나무관의 양 측벽에 14개의 가죽아플리케가 조각되어 있다. 가장 중앙(그림 3-1)에는 수탉 머리와 날개가 표현된 가죽장식이 부착되었고(그림 2), 양 쪽에는 수탉의 전신(그림 3-2, 그림 2)이 가죽을 잘라서 만들어서 붙였다. 두 가죽 장식 모두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자른 것이다.

 

수탉은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독수리 보다 늦게 등장하는데, 큰 동물의 뿔과 갈기에 표현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다. 닭이 이 지역에서 길렀다는 증거는 아직 없지만, 중국북부(만주)에는 암탉이 존재했다. 수탉은 의복, 토기, 못의 대가리, 문신 등에서 머리 혹은 머리의 벼슬만이 주로 확인된다. 러시아 학자들은 수탉이 독수리를 대체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예를 보이는 것이 베렐 유적에서는 거울 손잡이에 독수리와 수탉이 함께 장식된 유물이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1호 관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 1-길이 18.5cm, 너비: 12cm, 2-길이: 18.5cm, 15.5cm.

 

그런데 정말로 수탉이 독수리를 대체했을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유적의 5호에서는 마차가 해체된 채 무덤에 부장되었다. 마차는 4바퀴가 달린 마차이다. 해체되었지만 마차는 대부분 복원되었다.

 

그런데 파지릭 5호분의 무덤 단면도를 다시 보시기 바란다. 무덤 단면도에 있는 유물은 대부분 필자가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설명하지 않은 유물 가운데서 펠트로 만든 백조모양의 새인형이 있다(그림1). 모두 4점 출토되었고, 분해된 마차 위의 대형 벽걸이 캐노피 위에 놓인 채 출토되었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백조모양인형. 펠트제. 

 

위와 같은 유물,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아즈벨레프 2019)

 

 

백조모양 새 인형은 펠트를 꿰매어 만든 것으로 속은 사슴털로 채워졌다. 처음에 백조는 흰색 몸통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누렇게 변했다. 꼬리는 붉고, 날개의 끝은 검고 아래로 쳐지게 표현했다. 모두 4점이 출토되었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실크로 만든 안장 덮개와 함께 중국기원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유물로 인해서 마차도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 것이다. 무덤 전체가 스키타이문화의 것이지만, 이렇게 백조 때문에 다른 것들도 의심을 받게 되었다.

 

루덴코(1953)는 이 유물을 마차의 장식품으로 마차의 지붕위에 부착했던 유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랴즈노프는(1958) 무덤의 가장 높은 곳을 장식하던 유물로 생각했다(그림 2). 그리고 두 사람의 의견은 현재까지도 지속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백조인형이 마차와 관련있다는 설득력이 더 큰 힘이 실리게 되었다(아즈벨레프 2019)

 

 

그림 2. 그랴즈노프가 생각한 파지릭 5호분의 내부, 필자의 전 포스팅에서 무덤방 크기와 벽걸이 캐노피의 크기가 맞지 않음을 언급했다.

 

그랴즈노프가 주장한 백조가 벽걸이 장식의 상단을 차지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벽걸이 캐노피를 지지 하는 막대기의 각 때문이다. 약간 안으로 기울어져서 기둥을 세워서 착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림 2).

 

 

그림 3. 그래픽 복원에 의한 파지릭 5호분 벽걸이의 착장복원(국, 니콜라예프 2011)

 

그런데 파지릭 유적의 5호분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남아 있는 캐노피를 3D 그래픽 복원한 결과 캐노피가 직각으로 그림2와 같이 직각으로 서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국, 니콜라예프 2011), 펠트(벽걸이 캐노프)를 지지하는 막대기는 피라미드 구조와(그림 3)과 비슷해서, 무덤 천장의 꼭대기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아즈벨레프 2011).

 

백조인형은 벽걸이 장식과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벽걸이 캐노피가 아닌 펠트 조각 중에서 검은색 펠트가 있었는데, 이는 마차의 천장덮개 크기와 일치한다. 백조모양 새 다리에 긴 막대기(그림 1의 하단)가 연결된 것이 있는데 , 백조를 천장에 착장하기 위한 장치로 판명했다(니콜라예프 ,국 2017). 결국 백조모양 펠트인형은 마차의 상부덮개에 달렸던 유물이다(그림 4)

 

 

그림 4.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의 복원(아즈벨레프 2019)

 

 

그리고 ‘백조모양’은 말 그대로 백조모양이다. 앞에서 백조는 원래 흰색펠트로 제작되었다고 말씀드렸다. 흰색백조의 날개는 완전한 순백색이고 저렇게 길지 않다(그림 1). 그림 1의 새 날개는 백조날개가 아닌 독수리 날개이다 독수리의 날개는 아주 길고 갈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 1이 백조이고,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드문유물로 생각했다면, 아니다. 이 새 조차도 독수리와 합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지릭 5호분 보다 더 이른 기원전 7세기 아르잔 2 유적에서는 마차가 그려진 암각화가 무덤 내에서 출토되었고, 기원전 13~8세기의 카라숙문화(시베리아 청동기시대)에서 마차의 부속품이 출토되어서, 이미 시베리아에는 마차가 존재했다.

 

참고문헌

아즈벨레프 2011, Азбелев П.П. 2011,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в экспозиц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Методическое пособие.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1. 32 с.(아즈벨레프 2011, 에르미타주 박물관 파지릭 5호분 특별전)

아즈벨레프 2019, Азбелев П.П. 2019 : Пазырыкские лебеди. // Актуальн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ыргызского народа: прошлое, настоящее и будущее. Сб. статей в честь 70-летия кыргызского историка и востоковеда Мокеева А.М. Бишкек: 2019.(아즈벨레프 2019, 파지릭 유적의 백조)

국, 니콜라예프 2011, Гук Д.Ю., Николаев Н.Н. Замечания к реконструкции погребального шатра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Методика междисциплинарных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Омск: 2011. С. 49-61.(국, 니콜라예프 201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 캐노피의 복원)

니콜라예프, 국 2017, Николаев Н.Н., Гук Д.Ю. 2017, Проверка гипотезы на 3D модели находок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V (XXI) Все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съезд [Электронный ресурс]. / отв. ред. А.П. Деревянко, А.А. Тишкин. Электрон. текст. дан. (36,739 Мб). Барнаул: ФГБОУ ВО «Алтай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2017(니콜라예프, 국 2017, 파지릭 5호분 출토 유물을 3D그래픽 복원으로 검증)

그랴즈노프 1958 Грязнов М.П.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Л.: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1958(그랴즈노프 1968, 알타이의 고대 예술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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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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