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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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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스키타이 문화권의 3요소를 설명하는 것 중에 하나의 유물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유물 중에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전사 2인의 무덤에서 각각 1점씩 출토되었다. 그런데 이 투부는 전투용 도끼라고 불리지만 무기만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례에도 사용되었던 정황이 확인된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45세 가량의 남성관에서는 붉은색 바지옆에서 오른쪽 무릎과 같은 높이에서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가 출토되었다. 이 투부는 머리가 위쪽을 향했다.(아래포스팅에서 투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2020/02/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알타이 산맥 남성전사 붉은색 바지의 허리

 

2500년 전 알타이 산맥 남성전사 붉은색 바지의 허리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45~50세 남성의 무덤을 다시 보자.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통나무관, 오른쪽이 45~50세 남성전사이고, 오늘 설명하..

eastsearoad.tistory.com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투부

 

투부는 소년의 관에서도 출토되었는데, 그림이 소개되어 있다. 이 투부는 길이가 65cm가량이 나무손잡이와 도끼의 날이 함께 착장된 채 출토되었다. 도끼의 날은 자루를 끼우는 부분과 날 부분이 함께 주물기법으로 성형된 것인데, 철제이다. 손잡이의 끝에는 장타원형 안에 능형으로 침선을 한 표식이 새겨져 있다.

 

스키타이 문화권 중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릭 문화에서 투부는 주로 날이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이 보다 좀 더 작다. 좀 더 예리하고 작은 크기의 투부가 무기로서 사용하기에는 훨씬 유리한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투부는 이와는 좀 다른 양상이다.

 

 

그림2. 파지릭문화에서 출토되는 전투용 도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는 도끼의 날과 그 반대부분이 전혀 다르다.

 

쿠바레프(1987)는 이 유물의 손잡이 단면에 주목했다. 그는 창과 같은 무기의 손잡이 단면은 둥근 것이 사용하기에 편하다고 하면서, 만약에 손잡이가 타원형이라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투부는 전쟁이나 싸움할 때에는 주로 허리춤 벨트에 손잡이가 아래로 향하도록 고정시켰다.

 

이 점은 투부의 출토위치나 상태로 보아서 이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에서 출토된 투부의 손잡이는 타원형으로 빠르고 정확함을 요구하는 무기로 쓰기에 불편하다. 이 유물은 상태가 매우 좋은채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그림1에서 확인하면 날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무디고, 반대쪽도 거의 날이 서 있지 않다. 그림2의 도끼와는 사뭇다른 형태이다.

 

뿐만 아니라 파괴력이 크려면 작고 예리해야 하는데, 이 유물은 다른 투부에 비해서는 크기가 크다. 어쩌면 장례식이나 의식 때 말을 죽이거나 혹은 사람을 죽일 때 사용했던 유물일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쿠바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라디르카 유적)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15~16세의 남성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뭍힌 통나무관이 출토되었다. 소년의 관에는 동물문양장식이 조각된 활집 장식품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활집 옆에는 화살통이 놓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화살촉이 소년의 관에는 5점, 남성의 관에는 7점 출토되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두 관에서 출토된 화살촉은 뼈로 제작된 것이었고, 활대가 붙어 있었다. 화살촉의 촉 부분은 단면이 삼각형(그림 1-1)이고, 자루를 끼우는 부분의 단면은 긴 네모꼴이다. 활촉의 길이는 6.5cm이다.

활대도 남아 있었는데, 활에 현을 끼우기 위한 부분(그림 1-7)과 활의 라벨과 같은 역할을 하는 침선문양이 3줄씩 2군데 남아 있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화살과 활의 부속품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투엑타 1호분의 예를 보아서도 화살과 활집은 가죽으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한번 이미 언급했는데,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가죽부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화살 부근에서 평면모양은 꽃 모양이고, 단면은 사다리꼴에 가까우며, 중앙에 구멍이 있는 활집에 달았던 벨트의 일부로 생각되는 목제 장식판(그림 1-6)이 출토되었다.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알타이 산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의 유적 무덤에서는 뼈로 만들어진 화살은 10개 내외로 확인된다. 간혹 청동제가 있기는 하지만 뼈로 제작된 것이 훨씬 많다(쿠바레프 1992, 코체프 1987).

아크 알라하 1유적은 기원전 4~5세기이지만, 이미 앞서 포스팅 한 바와 같이, 철제로 제작된 재갈이 이 유적에서 확인되었고, 이 유적과 비슷하게 생긴 철제 재갈은 아르잔 고분의 26호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그랴즈노프 1980).

 금속제를 사용했지만, 무덤에 부장된 화살촉은 골제를 사용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두 남성관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실제로 사용한 유물을 넣었기 때문에 무덤부장품으로 골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살던 집도 뜯어서 무덤방으로 제작한 흔적이 남아 있다.

 

싸움에 능한 사람들로 알려졌지만, 정작 무덤에는 뼈로 제작된 화살을 10개가 되지 않게 무덤 속에  넣었다.

 

그림2.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의 시베리아 황금 콜렉션 중에서..

 

참고문헌

 

쿠바레프 1992,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쿠바레프 1992, 사일류겜 무덤 유적)

코체프 1987, Кочеев В.А. О костяных наконечниках стрел эпохи раннего железа из курганов Горного Алтая // Проблемы истории Горного Алтая. Горно-Алтайск: Алт. кн. изд-во. Горно-Алт. отд., 1987. С. 55-60.(코체프 1987, 초기 철기시대 산악 알타이의 골제 화살촉에 대해서)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Аржан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 Наука, 1980. 61 с.(그랴즈노프 1980, 아르잔-초기 스키타이문화의 차르 고분유적)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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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헤로도투스의 역사 제4권 70장에는 스키타이 인들이 맹약을 하는 장면이 소개되었다.

 

‘스키타이족은 누구와 맹약을 하든 다음과 같이 한다. 큼직한 토기 항아리에 술을 붙고 거기에 계약 당사자들의 피를 섞는다. 그들은 송곳으로 몸을 찌르거나 칼로 몸을 조금 베거나 하여 피를 뽑느다. 그리고 칼, 화살, 투부, 창을 항아리에 담그며 길게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계약 당사자들과 그들의 수행원들 가운데 요인들이 술과 피가 섞인 것을 마신다(헤로도투스 2009)’

번역서에 따라서 술은 포도주로도 해석되었다.

 

 

러시아학자들은 헤로도투스가 설명한 맹세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물을 솔로하유적에서 출토된 가로 세로 2.5cm의 황금제 치레걸이로 예를 든다. 솔로하 유적에서는 300여개의 작은 장식판이 출토되었는데, 피장자의 옷에 부착되었다고 본다(그림1).

황금치레걸이의 두 남성이 들고 있는 것은 뿔잔 1개이고, 술 혹은 어떤 음료일 것이다. 왼쪽남성이 차고 있는 것은 칼이 있지만, 주변에 다른 전쟁용 도구는 있지 않다. 두 사람은 머리스타일과 옷이 다르기 때문에 스키타이족과 다른 종족일 가능성이 많은데 먼가 협약이나 맹약을 하는 장면으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헤로도투스가 묘사한 장면에서 이야기한 토기는 솔로하 유적 출토품에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어떤 맹세를 위한 장면임은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무기들을 담근 채 기도 한 후, 술과 피를 섞어서 마신다는 표현은 은유적인 것이다.

 

틀리기도 하지만, 맞는 것도 있다. 읽다가 보면,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림1. 솔로하 유적 출토, 1913년 베셀로프스키 발굴, 에르미타주 소장

 

 

 

참고문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역사 (헤로도토스)(천병희 역), 2009,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네모꼴 나무방패를 살펴보다가 우리는 ‘솔로하’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에도 비슷한 유물이 새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유물이 소장된 곳은 표트르 1세라고 불리는, 러시아 사람들은 표트르 대제라고 하는 러시아 차르의 겨울궁전인 에르미타주(Эрмитаж, Hermitage ‘에르미타시’라고 쓰는게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데, 필자가 계속 에르미타주라고 하는 이유는 그 이름이 이미 한국에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대로 번역하면 ‘표트르 대제 시베리아 수집품(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Великого, the Siberian collection of the Peter the Great )’ 이다. 현재 총 240점이 전해진다.

 

그는 1689년부터 재위했는데, 러시아 영토가 된 모든 곳의 민족 고대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1715년에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은 표트르에게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황금 유물 10점을 바쳤다. 표트르는 이 유물의 중요성을 바로 알았고, 비슷한 유물을 수집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1718년의 날짜가 적힌 포고령에는 시베리아의 유물을 수집하고 출토품을 모으라고 강요했다. 특별포고령에 의해서 고대 유물을 숨기거나 녹이는 것을 매우 금지시켰다. 17세기 말경부터는 도굴로 엄청난 양의 황금유물이 황금을 얻기 위해서 녹여졌기 때문에 이를 금지시킨 것이다.

 

1715년~1718년에 시베리아에서 가가린이 수집한 금제품 240개가 보내졌다. 가가린은 농민들로부터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농민들은 고분을 도굴해서 그에게 팔았다.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봉분이 있는 무덤은 쉽게 눈에 띈다. 그리고 도굴되었다.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가 죽은 후 1727년에 이 수집품들은 러시아의 첫 번째 국립박물관인 쿤스트카메라(Кунсткамера, Kunstkamera)(그림1)에 기증되어 전시되었다. 그 뒤에 1859년에 제국 고고학 위원회에서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이송시켜 보관했다.

 

그림 1.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유물이 처음 보관된 쿤스트카메라, 1741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과학아카데미 건물이었던 쿤스트카메라의 모습을 동판화에 새겨서 찍은 것이다. 현재 에르미타주에 보관되어 있다. Christian-Alber Wortmann작품. 47cm, 62.6cm

쿤스트카메라는 처음에는 매우 작게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매우 커졌다. 1714년에는 수백마리 물고기, 새, 뱀이 항아리에 보존되었고, 1698년부터 해부학에 관심을 가져서 기괴한 해부학 작품도 많다. 1716년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동물 등이 보관되었고, 1717년에는 동물 해부학표본, 식물과 나비 박제 등도 구입해서 전시했다. 식물동물표본 뿐만 아니라 각종 기계와 도구도 모았다. 쿤스트카메라는 에르미타주와 매우 가까운데, 한번 가보시길 바란다. 필자가 들렀을때는 한국관도 있었는데, 주로 민속품 등이 전시되었다.

 

시베리아 콜렉션이라는 명칭은 19세기 후반의 스피친이라는 고고학자가 표트르 1세의 유품들을 정리했는데, 그 때 시베리아에서 온 골동품이 담긴 소포, 여러 편지와 목록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스피친이 이 유물들을 시베리아 콜렉션이라고 했고, 표트르 대제의 이름을 함께 붙여서 그를 기념했다.

 

쿤스트카메라에 유물이 있는 동안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인 흑해북안의 쿠르간 발굴유물도 함께 보관되었는데,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유물과 함께 에르미타주에 보관되었다. 그래서 에르미타주에 시베리아 유물 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 고분의 유물도 함께 있게 되었다.

 

표트르 1세가 남긴 편지 등에서 알아낸 것은 시베리아 수집품의 출토지역은 가가린이 총독으로 있던 토볼스크와 톰스크 외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에 발굴품을 토대로 시베리아 콜렉션은 오비강, 이르티스 강, 알타이의 서쪽 지대와 현재 카자흐스탄 북부(시베리아 남부)라는 주장이 강한데, 이에 대한 반론도 크다고 한다.

 

어쨌든 시베리아 콜렉션을 두고 이견이 없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스키타이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라는 점이다.

 

 

그림 2.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3.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4.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5.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6.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7.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8.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참고문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45~50세 남성의 무덤을 다시 보자.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통나무관, 오른쪽이 45~50세 남성전사이고, 오늘 설명하는 바지 입은 주인공이다.

 

남성의 무덤에는 바지와 신발이 신었다. 양모로 만든 붉은색 바지인데, 색은 많이 바랬다. 옆에 있는 소년 전사의 무덤에서도 바지의 흔적은 있으나 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역시 붉은 색이었다고 전한다.

 

바지는 모두 6조각의 천을 기워서 만든 것이다(그림2).

4조각은 긴네모꼴인데,  발목 가까이는 사다리꼴로 접혔으며, 다리의 앞판과 뒷판을 구성한다. 1조각은 삼각형에 가깝고, 나머지 한 조각도 긴네모꼴이지만, 다리를 구성하는 판이 아니라 삼각형은 허리의 앞쪽(그림 2-a, 4, 그림 3-b)을 대었고, 긴 네모꼴(그림 2-5)은 접어서 다리 사이에 부착되었다. 바지의 다리를 이루는 긴 네모판은 너비 27~28cm, 길이는 102~104cm가량이다.

바지의 다리를 구성하는 부분은 긴 네모꼴이지만, 발목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스타일이다. 안쪽으로 접은 부분의 길이는 0.7~0.8cm로, 아랫단의 너비가 20.5~21.5cm가량이다. 바지의 입구(허리부분)은 바깥으로 접어서 감침질 되었다.

 

앞판의 허리부위에 삼각형을 덧댄 스타일(그림 3-b)은 또 다른 남성 무사의 무덤인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1호와 3호 유적에서는 볼 수 없다. 삼각형 판을 댐으로써 낸 효과는?

허리 사이즈를 늘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혹시 살이 쪄서 바지를 수선했던 건 아닐까? 어쨌든 이 바지는 허리를 늘인 흔적(그림 3-b)이 있다.

 

바지의 소재는 양모를 짠 것인데, 천을 바이어스 방향으로 이용했다.

천을 바이어스(사선) 방향으로 이용하면, 신축성이 좋아진다. 바지가 헐렁해서 신축성은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천을 좀 더 오랫동안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축성이 필요한 옷은 주로 몸에 달라 붙는 옷에 많이 필요하다. 허리를 늘린 이 바지와 수선흔 흔적,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바지들이 수선된 흔적 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의복은 경제적인 문제와 클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도 자세히 살펴보면 씨실과 날실 방향으로 천을 재단해서 옷을 만든 것이 있고, 바이어스 방향으로 이용한 옷도 있다. 주로 여성의 스커트 중 플레어 스커트에서 많이 확인된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입고 다니던 교복이 딱 플레어 스커트였는데, 바이어스 방향으로 재단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과목 중 세상에 쓸모없는 과목이 가정이었다고 생각했는데...갑자기 미안해진다.)

 

허리 사이즈 조절은 끈으로 조절했는데, 소년관에서 바지의 흔적과 함께 끈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분 사진을 보시면 뭔가 어정쩡하지 않은가? 예전에 일명 ‘똥싼바지’가 유행 했었는데,...비슷한 느낌이다.

왜냐하면 품이 커서이기도 하지만 밑위보다 다리사이에서부터 발목까지의 길이가 짧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다리가 짧을까?

 

타이즈를 신었기 때문에 바지의 다리 길이가 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 1에서도 바지의 흔적은 발목까지 그려져 있지 않다. 이 무덤에는 타이즈가 남아 있지 않지만, 또 다른 남성 무덤인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전사는 바지를 입고 타이즈를 신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45~50세 남성전사의 붉은 바지.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45~50세 남성전사의 붉은 바지 2, 그림 2와 같은 유물, b가 앞면으로, 삼각형 양모천을 덧대서 허리를 늘렸다는 것이 잘 보인다. 그림 2-a와 같은 방향.

 

참고문헌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기원전 4~3세기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 의복과 직조물)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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