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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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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의 스키타이문화권에서도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파지릭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은 8세 소년의 무덤이다. 고깔모자, 토기, 금제 귀걸이, 청동 목걸이, 투부(전투용도끼), 모피, 칼집과 청동칼, 화살촉, 목기등이 소년과 함께 묻혔다.

그 중 목기는 남아있지는 않지만 양뼈조각이 있었고, 다른 유적들의 예로 보아서 목기 위에 고기덩어리가 올려진 장면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 일명 얼음공주의 무덤에서도 뿔, 나무, 흙으로 만든 그릇이 확인되었다.

 

2020/01/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미라'의 무덤] - 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목제 잔, 우유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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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유적에는 없지만, 이 유적이 속한 파지릭 문화에는 금속으로 만든 그릇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솥이다. 바닥에는 솥을 지지하기 위한 높임 다리가 있으며, 양 쪽에는 손잡이가 있고 자작나무 껍질이 감긴 채로 확인되었다. 안에는 돌이 들어 있었다. 함께 출토된 막대기가 6개(1.2m 가량) 있었다.

 

 

이 솥과 막대기는 같은 공간에서 출토되어서 세트이다. 무슨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솥은 금이 가 있고, 솥 안에는 탄화된 대마씨가 발견되었다. 금이 간 이유는 뜨거운 돌의 열기에 의했을 가능성이 많고, 대마씨가 탄화된 것도 돌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연구자들의 생각이 맞다면, 청동솥과 막대기는 대마씨에 나오는 연기 흡입용이다.

6개의 막대기를 묶고 그 위를 펠트로 씌우면 일종의 텐트가 된다. 그 텐트 안에서 청동솥에 달군 돌을 넣고, 대마씨앗을 뿌려서 그 향을 맡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탄화된 대마씨가 가득 들어간 가죽주머니도 같은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기록된 스키타이 부족에 대한 내용은 러시아학계에서는 아주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다가 이 유물이 발굴된 후에 약간 시각이 바뀌었는데, 그가 설명한 스키타이 인의 정화의식에 대한 내용 중에 이 부분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헤로도투스가 74~75절에 썼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위의 유물과 일치해서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대한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헤로도투스는 마지막에 스키타이 사람들의 정화의식을 그리스의 증기욕과 관련시켰다(그리스, 로마 사회의 목욕문화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무덤을 발굴한 루덴코(1953)는 직접 반박했다. 헤로도투스의 내용과 이 유물이 연기흡입과 관련된 건 가능성이 있지만, 그리스의 목욕문화와는 헤로도투스의 착각이라고.

청동솥 위에 뿌려진 대마씨 때문에 연기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의미가 그리스 증기욕과는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유물은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출토되었고, 루덴코는 그 유적의 2호분을 직접발굴한 사람이다.

파지릭 2호분에서 나온 청동솥과 막대기 6개는 용도는 명료해진 것도 있지만 문제가 복잡해지게 된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왜냐하면 헤로도투스가 본 스키타이 인이라는 사람이 그리스와 인접한 흑해 북안이라는 주장이 팽배했는데, 그가 설명한 부분이 알타이 산맥의 유적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청동솥과 막대기, 가죽주머니 안의 탄화된 대마씨는 의료용일지 모른다. 지금도 마약은 의료용으로 사용된다. 스키타이 인들은 죽은 사람의 내장을 걷어내고 미라를 만들던 기술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파지릭 유적 2호분에는 미라가 2구 확인되었다.

 

 

그림1.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높이 13.8cm, 동최대경 9.8cm), 청동솥(2)과 막대기(3), 손잡이는 자작나무 껍질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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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송쿨. 해발 3000m, 7월 모습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로 헤로도투스를 꼽는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실제로 보거나 방문해서 알아낸 기록이라기 보다는 전해들은 내용이 많고, 설화적인 내용이 많다. 헤로도투스 자신도 00족에게 들었다고 많이 밝히고 있다. ‘외눈박이 부족’이라던지,....엄격한 기준으로 보자면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 오랫동안 남아서 신화화 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의 역사기술이 서양을 중심이기 때문에 그나마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인 그 책이 아직까지 bible처럼 여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긴 또 다른 이가 히포크라테스이다. 필자가 느끼기에 히포크라테스는 실제로 스키타이 인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크게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의 저서에서 스키타이 사람들이 춥고 건조한 기후에 따라서 외모와 출생률에 대한 기록을 서술했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저런 피지컬이면 출생력은 뛰어나지 않을 것 같다(공기, 물, 흙에 대해서 ,28장’) ‘말을 자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종양이나 관절염, 통풍 등으로 고생을 심하게 하기 때문에 성적인 즐거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성적 능력을 상실하는 문제 때문에 그들은 항상 바지를 착용했다.(공기, 물, 흙에 대해서, 30장).‘스키타이 인들은 상위로 올라갈수록 내시가 많다(공기, 물, 흙에 대해서, 29장)’

 

이 기록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점은 히포크라테스가 살던 그리스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스키타이 인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육체적 조건, 의복 및 고위 계급의 특징도 그리스와는 매우 달랐다. 히포크라테스가 스키타이 인들을 언급한 내용을 반대로 해석하면 그리스 사회일 수 있다.

특히 ‘스키타이 인들은 상위로 올라갈수록 내시가 많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히포크라테스)가 속한 사회와 달랐기 때문에 이런 구절을 쓸 수 있었다.

 

필자는 ‘내시가 많다’라는 말을 종교를 직업으로 한 사람을 일컬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종교관련인이 결혼하지 않은 사례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을 들 수 있다. 단인장이 드문사회였으나 혼자 묻혔다면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직업이 샤먼이면서 고위층인사였다는 점은 상위층이 가질 수 있는 목걸이나 실크 블라우스, 높은 머리 장식등으로 알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언급한 스키타이 인들의 낮은 가임율은 환경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고원지대의 환경은 생물학적 가임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성관계 가능 기간을 포함한 모든 성장을 늦춘다고 한다(코마로바 1991).

 

필자가 해발 3000m의 송쿨이라는 곳에서 말을 작년에 한 시간 정도 타 본적이 있다. 재미는 있었는데, 점심 먹고 바로 뻗었다. 한 여름이었으나 낮에도 겨울옷을 입어야 했고, 밤에는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다. 확실히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지금 계속 이야기 해 드리고 있는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아랄하 1유적이 있는 우코크 고원은 2500m정도 되는 곳이다. 거기도 비슷하다.

 

현재와 같이 모든 정보가 누구의 것이 아닌 사회에서도 서로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마당에 당시에 서로 다른 이들에 대한 충격은 아마 상당했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도 그런 충격속에서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헤로도투스처럼 외눈박이 부족 등의 표현은 없다. 필자는 ‘외눈박이 부족’이라는 구절만 보아도 그의 진정성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코마로바 1991, Комарова О.Д. Демографические аспекты этнической экологии // Этническая экология. Теория и практика. М.: Наука, 1991. С. 44-77.(코마로바 1991, 민족생태학에서 본 인구학적인 측면)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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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새머리는 비었다-

 

2500년 전 소년의 모자는 펠트로 제작되었고 전체적인 모양은 고깔모양이고, 가장 위에는 동물문양장식을 나무로 제작해서 장식했다. 펠트는 앞에서 설명한 적이 있는데, 양모를 응축시켜서 만든 것이다. 자세히 쳐다보면 부직포 같다. 소년의 무덤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이다. 바로 옆에 소년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 2인이 묻힌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도 새머리 고깔모자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새머리 고깔모자는 그 이전에 발굴된 자료들의 궁금증을 말끔히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머리 위에서 출토되는 동물문양장식이 도대체 무슨 용도였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펠트는 유기물질이어서 특정한 환경이 아니면 잘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직접 모자가 출토되지는 않았지만, 알타이 지역에서 나오는 모자와 이를 벗어난 지역에서 나오는 유물간의 차이점은 귀 아래로 늘어지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했다. 그런데 눈여겨보셨다면,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의 황금장식판에 그려진 스키타이 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어제 포스팅 참고), 고깔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뭔가 다르다.

 

그렇다.

그 유물은 고깔모자가 곧추서지 않고, 뒤로 누워져서 힘이 없는 모습이다. 만약 모자를 펠트로만 만들었다면 이렇게 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알타이 산맥에서 출토되는 모자들은 모두 동물문양장식이 불룩 솟아서 그 부분이 드러난다.

 

왜 그럴까?

 

어제 소년의 고깔모자 위를 장식하던 동물문양장식 아래의 원통형 장치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다. 소년의 고깔모자 위 동물문양장식 아래에 원통형 장치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새머리모양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새머리, 2호분의 원통형은 가장 꼭대기를 장식하기 위한 매개 같은 역할을 하지만 장식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기능도 함께 한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모자는 이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장치인 새머리 안은 비어 있고, 그 아래로 목심을 끼워서 동물문양장식을 뒷받치는 장치가 들어가 있다.

소년의 고깔모자도 비슷한 방법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그림.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의 새머리 고깔모자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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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에는 8세 소년의 무덤 바닥에는 소년이 착장했던 도구 및 장레식때 사용되었던 토기 및 목기도 부장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깔모자, 귀걸이, 허리띠, 투부, 고리트, 모피 등을 착장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 출토 소년의 고깔모자

 

그 중에서 소년이 썼던 고깔모자(그림1)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마찬가지로 고깔모자로 추정된다. 정수리 부분 장식은 소 장식품이 남아 있었는데, 소년의 두개골과 떨어진 부분에서 출토되었는데(그림 2-1), 고깔모자를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의 소년 두개골 정수리 위

 

아크 알라하 1유적은 고깔모자의 정수리에 새모양 조각이 붙어 있고 그 위를 산양 혹은 염소를 꼭대기에 장식한 것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 소년의 소 모양 장식품도 바로 고깔에 부착되지 않고 중간 장치를 두고 부착했다고 볼 수 있다. 폴로시막은 소 장식품 아래는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다고 여겨서 원통형을 붙였다(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비슷하게 생긴 고깔모자는 베르흐 칼쥔 2유적의 1호분(그림 3-a)과 3호분(그림 3-d)에서도 출토된다(그림3-a, d). 베르흐 칼쥔 2유적의 모자는 정수리 장식을 목제로 붙인 것이 아니라 펠트제로 모자의 원판과 함께 오려 붙인 것이다. 목제장식을 붙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알타이 산맥에서 중부지역에 위치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고깔모자가 알려졌다(그림 3-e). 고깔은 새가 아닌 그리핀으로 생각된다. 2호분의 남성 고깔모자이다.

 

실물이 아닌 고깔모자도 궁전, 항아리 등에 새겨진 채 확인되는데,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그림 3-h),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항아리(그림 3-f)에 새겨진 스키타이 인의 모자이다. 아무다리야 퇴장 유적의 황금 장식판에 새겨진 스키타이 고깔모자(그림 3- g)는 앞서 살펴본 느낌과는 다른데, 뒤로 젖혀진 모양이다.

 

전체적인 모양은 고깔형태이지만, 차이가 있는데, 알타이 산맥에서는 고깔모자에 귀를 덮고 그 아래까지 길게 늘어지지만(그림 3-a~h), 알타이 산맥이 아닌 페르세폴리스와 흑해북안에서 확인되는 모자(그림 3-f~h)는 귀만 덮는 형태이다.

 

그림 3. 스키타이 사람들의 고깔모자. a~h:실제로 출토된 고깔모자, f~h: 유물과 유적에 새겨진 고깔모자.

 

현존하는 소수민족도 서로를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의복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선사 및 고대사회는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를때 같은 옷이나 같은 상징성이 있는 표식은 큰 의미를 차지했을 것이다.

거기까지 예를 들지 않더라도 내가 한국인임을 표시하는 것 중에 하나도 한복을 입고 하는 세레모니다. 남미의 쿠바에서도 여러 세대가 흘렀고 거의 한국인의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국인임을 자체하고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말을 배우고, 춤과 노래를 배운다. 한복을 입고 춤을 춘다.

문득 든 생각은 어디까지 한국인이라고 해야 할까? 고대사회를 연구하면 할수록 어디까지를 하나의 민족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같은 맥락의 고민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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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2호분은 8살 소년의 무덤이다.

8세이지만, 어른과 거의 같은 복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아래 포스팅에는 소년을 복원한 그림을 알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인 고깔모자, 바지 뿐만 아니라 허리띠도 착장 했다.)

 

2020/02/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 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스키타이문화의 8세 소년무덤부장품

2500 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스키타이문화의 8세 소년무덤부장품

러시아 알타이 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2500m가량의 우코크 고원에는 아크 알라하라고 불리는 강 줄기를 따라서 대략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들이 묻혀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아크 알라하’ 유적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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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청동칼, 투부, 화살 등 무기류도 함께 부장되었다.

 

재밌는 점은 화살이 담기었던 고리트는 없어지고, 화살촉만 소년의 발끝에서 8점 확인되었다.

화살촉은 뼈로 만들어졌고 화살꼬리와 활은 이미 없어졌다.

화살은 크기가 3cm 가량이고, 단면은 삼각형이다.

 

그런데 이 화살촉은 소년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어른무덤에서 출토된 화살촉과 어떻게 다른지?

 

앞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화살촉은 아래 포스팅에서 볼 수 있다.

 

2020/02/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15~16세의 남성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뭍힌 통나무관이 출토되었다. 소년의 관에는 동물문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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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은 거의 유사하고, 단면도 삼각형이다.

그런데 1호분에서 출토된 것은 길이가 6.5cm이다. 부장된 촉의 개수도 차이가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소년의 화살촉은 성인용에 비해서 1/2크기인데, 체격에 맞게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년이 실제로 활과 화살촉을 들고 사용했는지는 모르겠고, 또 부장용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흥미로운 점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2호분 화살촉은 모두 뼈로 제작되었다.

 

크기는 다르지만 모양과 소재가 같은 화살촉 외에도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과 2호분의 공통점은 귀걸이 한쪽이다. 1호분에는 15~16세 남성과 45~50세 남성, 2호분은 8세의 남성인데 모두 귀걸이를 한쪽 씩만 착용했으며 오른쪽 이다.

 

8세 소년의 귀걸이는 어디서 본적이 있는 것 같지 않으신지?

 

소년의 귀걸이와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의 15세 소년의 귀걸이가 거의 유사하다.

 

2020/02/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 년 전,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45세 남성전사

2500 년 전,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45세 남성전사

2500년 전 유라시아 전 지역을 휩쓸고 다녔던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묻혔는데,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여성과 동시대의 인물이었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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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링에 그 아래에 작은 링이 붙어 있고, 불꽃 모양을 거꾸로 한 듯한 모양의 펜던트가 붙어 있다. 펜던트의 중간은 소용돌이를 도려내었다. 금제품이다.

 

친자관계는 DNA 분석을 한다면 알 수 있겠지만, 자료를 찾았으나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면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들만 귀걸이를 착용했을까?

 

사실 시베리아에서는 남성들이 귀걸이를 착용하는 예가 많다.

스키타이 문화 이전인 청동기시대 안드로노보문화, 카라숙문화에서는 청동유물이 많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유물중에 하나가 청동으로 만들어진 귀걸이다. 단순하게 둥근 링만 있는 것, 그 아래에 펜던트가 달린 것 등 다양하다.

 

요즘 남성들은 자신을 꾸미는 도구가 시계, 넥타이 정도이고 커퍼스 단추, 팔찌, 목걸이 등도 착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귀걸이 하는 남성을 욕하는 경우가 있었던 시기도 있는데, 생각보다 한쪽 귀걸이를 착장하는 습관?은 오래되었다.

 

금속제라는 소재로 한정하면 귀걸이 보다 더 오래된 금속제 장신구는 반지이다. 순동시대부터 있었다. 물론 남성 혹은 여성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시베리아의 순동시대인 글라스코보 문화에서는 아주 작은 소형의 순동유물이 나오는데, 아무런 장식없는 둥근반지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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