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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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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문화의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두 명의 남성무덤으로 전사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서 살펴보았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여성무덤으로 미라가 출토되었는데, 무덤에서는 말 6섯마리가 함께 부장되었다. 재갈과 굴레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그러나 말은 매우 좁은 공간에 ‘우겨서’넣은 느낌으로 밀어넣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는 말 9마리가 부장되었는데, 1차무덤방 안에서 확인되었고 아크 알라하 3유적 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 말이 부장되어서, 이 공간을 ‘말무덤’으로 이야기 할 정도이다.

 

말 9마리 중에 7마리의 말 꾸미개가 출토되었는데, 5섯 벌은 말에 착장된 상태였고, 2벌은 말 옆에 둔 채로 확인되었다. 말 꾸미개는 1벌을 제외하고는 이미 소개했다.

말 안장의 앞에는 ‘메달’이라고 불리는 장식판이 붙었는데, 펠트(양모를 압축해서 만드는 소재, 이미 설명되었음)로 그리핀을 아플리케 조각으로 붙인 것이다. 안장의 옆에는 물고기 모양장식판이 있다.

 

아직 설명하지 못한 말 안장덮개는 늑대(그림2) 4마리를 양쪽에 각각 배치했다. 머리를 밑으로 향하게 둔 것이다. 길이가 85cm, 너비가 25cm이다. 늑대의 가장자리를 오려내고,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인 것이다. 이빨을 드러낸 입, 발톱을 내고, 꼬리를 내린 채 앉아있는 맹수는 갈기와 몸통의 근육도 표현되었다(그림 1, 그림 2).

 늑대라고 발굴자는 이야기 하지만, 사실 표범이나 호랑이 일 수도 있다. 두 동물은 서식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구분될 것이다. 호랑이와 같은 고양이과의 동물은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나무가 있는 곳에 산다.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늑대를 장식한 안장덮개 복원도

 

이런 안장덮개와 화려한 말을 꾸며서 한 장례식은 무슨 의미일까? 그 장례식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의식이라도 있었나?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안장덮개 중 늑대장식

 

화려한 말은 어제 소개한 전사와 함께 부장되었다.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아래 그림에 다 표기했다.

기원전 5~3세기 사이의 출토유물을 바탕으로 복원했다.

그림에는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창에 매단 적의 머릿가죽은 헤로도투스가 스키타이족을 묘사했던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3.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설명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한 고원인 우코크 고원 중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인 남성전사 무덤을 살펴보았다. 한명은 15~16세의 소년이고, 또 다른 한명은 45~50세의 유로포이드 남성이다. 두명은 앞서 살펴보았던 ‘얼음공주’가 나온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에 비해서 그들의 직업에 대한 논란은 없다. 간단하게 전직 무사들이다.

 

 

알타이 산맥의 곳 곳에서 확인되는 스키타이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는 고고학적 연구 뿐만 아니라 인류학적인 연구도 있다. 두 연구가 일치한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DNA연구가 점차 도입된다면 좀 더 선명해 지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문제점도 있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남성 2인은 DNA방법을 도입해서 분석한 결과, 소년은 발굴당시에는 소녀라고 인류학적으로 판단했으나, 소녀라는 점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 나온 사람들이 유로포이드라고 해서 2500년 전 알타이의 스키타이문화가 유로포이드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알타이 산에서 가장 최상급이며,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앞으로 소개될 파지릭 유적에서 나온 인골은 몽골로이드 때문이다. 바르코바와 고흐만(2001)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파지릭문화의 최상계층 사람들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계속 거주한 몽골로이드로 밝혀진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유로포이드의 요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인접한 알타이, 투바, 서부 몽골의 일반 무사급과 비교했을 때 몽골로이드의 비율이 아주 높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파지릭 문화에서 확인되는 몽골로이드의 특징은 비슷하며, 최상위 남성들에서만 확인되었다. 그 예외인 유적이 치키셰바는 일명 얼음공주라고 별칭이 붙은 여성미라가 출토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을 꼽았다. 이 여성에서 고시베리아 몽골로이드의 요소가 있다고 본 것이다. 치키셰바가 말하는 몽골계통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 중에 하나인 오쿠네보 문화 시기에 형성된 형질인류학적인 요소이다(1997).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는데, 둘 다 몽골로이드로 알려졌다. 고고학적 유물이나 고분의 크기로 보아서 파지릭 유적의 2호가 상위라고 학자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를 제외하고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이 착용한 옷, 목걸이. 마구장식 등은 서로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유전학적인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그러나 이 문제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얼음공주는 알타이 원주민들이 박물관과 분쟁중이어서, 몽골로이드라는 것도 숨기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지릭 유적 2호분 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이 좀 더 조명을 받는 이유는 오롯이 혼자 묻힌 몽골로이드 여성무덤이기 때문이다.

 

 

 

2인의 여성을 제외하고 최상위남성들만 몽골로이드라고 주장하는 문제도 확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여성 무덤 수 보다 남성 무덤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총 22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는데, 성인은 남성 15명, 여성 6명, 유아~청소년기의 아이 5인이 발견되었다. 여성의 수는 적고, 평균수명(29.6세)은 남성(38.5세)에 비해서 낮기 때문에 상위계급의 남성들에서만 몽골로이드가 발견된다고 확정하기는 힘들다.

 

아무튼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알타이 지역에 있던 파지릭문화에는 몽골로이드, 유로포이드 계통 사람들이 모두 발견되지만, 몽골로이드 계통의 남성들이 좀 더 큰 무덤에서 많은 부장품과 함께 발견되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의 남성들은 유로포이드 남성전사들이었다.

 

 

그림1.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스키타이 문화의 전사. 기원전 5~3세기대 유적 출토품을 바탕으로 한 복원. 

 

 

참고문헌

치키세바 1997 Чикишева Т.А. К вопросу об антропологическом сходстве населения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 сакской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общности // Новейшие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 этнографические открытия в Сибири: Материалы V годовой итоговой сессии институ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СО РАН. Новосибирск: Изд-во ИАЭт, СО РАН, 1997. С. 314-320. (치키세바 1997, 파지릭문화와 사카문화 공동체 사람들의 인류학적 공통점에 대한 고찰)

바르코바, 고흐만 2001, Баркова Л.Л., Гохман И.И. 2001 : Ещё раз о мумиях человека из Пазырык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35. СПб: 2001. С. 78-90(바르코바 ,고흐만 2001, 파지릭유적의 무덤에서 나온 미라에 대해서 한 번 더)..제목은 그대로 번역해서, 재미를 느껴보시라고..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뼈로 제작된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두 명이 묻혔는데, 화살통과 활까지 부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전사의 왼쪽 옆에는 활과 화살을 동시에 넣은 통(고리투스)까지 확인되었다. 화살은 스스로 날아가지 못한다. 날려보낼 장치인 활이 필요하다. 소년관에서는 동물장식이 조각된 고리투스(활과 화살을 동시에 넣은 통)의 장식이 출토되었다. 그들의 활은 그리스인의 눈에도 매우 독특했던 것으로 보인다.

 

헤로도투스는 역사에서 7권의 64장에 박트리아인과 비교해서 스키타이인을 묘사했다.

‘박트리아인은 메디아 인과 아주 비슷한 모자를 머리에 쓰고 행군했으나 갈대로 만든 박트리안 산 활과 단창을 들었다. 스퀴타이(스키타이)족인 사카이(사카)족은 끝이 뾰족하고 빳빳한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었고, 고유의 활과 단검 말고도 사가레이스라고 불리는 투부(전투용 도끼)를 들고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스키타이족을 사카이(사카)족이라고 부른다.

 

7권은 페르시아전쟁을 묘사했기 때문에 참가한 각 민족을 묘사해 놓은 것인데, 스키타이인에 대한 묘사는 고깔모자, 활, 단검, 전투용도끼로 박트리아인과 구분했다.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의 북쪽 면에는 스키타이인이 조각되어 있는데, 단검을 들고 있는 사람(그림 1의 왼쪽), 왼쪽 허리에 활집을 차고 있는 사람(그림 1의 중앙), 그 뒤에는 활집을 허리에 차고 전투용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그림 1의 오른쪽)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기원전 4세기에 해당된다.

 

그림1.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 북쪽면

 

스키타이 인들의 활은 비교적 짧은데 75~100cm가량이고, 활은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나무와 심이 들어 있는 복합적인 구조로 만들어지는데 이를 스키타이 활이라고 부른다. 나무 한 겹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활 보다는 훨씬 더 튼튼했다(G Rausing 1967).

 

아크 알라하 1유적 보다 200년이나 앞선 아르잔-2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이 유적은 투바라고 지역인데, 알타이 산 보다 북쪽이며, 상대적으로 바이칼 호수와 가깝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중에서도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데, 초기 스키타이문화를 이야기 하게 되면 반드시 이야기 될 유적이다.

 

가장 유명한 활과 화살을 동시에 넣는 통(고리투스) 장식은 그림 2의 유물이다. 흑해 북쪽의 켈레르메스 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길이 40.5cm, 폭은 22.2cm로 384.08g가량이다.

 원래는 원통형이었겠지만 1904년에 발굴되어서 당시에 그냥 핀 채로 보관되어서 여러분이 현재 보시면 그냥 장방형의 금제품이다. 지금이라면 하지 않았겠지만....그래서 이 유물을 그냥 휙 보면 활집의 '밖'을 장식하는 유물인지 모르실 것이다.

 

 

그림 2.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흑해 북쪽, 켈레르메스 4호, 기원전 5세기, 이 유물은 원래는 활집이었기 때문에 둥글게 말렸다.

 

겉은 화려한 황금으로 꾸미고 그 안에는 가죽 혹은 나무 또는 나무껍데기로 만들었다. 사슴은 무릎을 꿇고 있고 사슴뒤에는 표범이 표현되었다. 이 유물의 원래 모습을 생각한다면 표범장식은 두 줄이 되고, 사슴문양은 3줄이 투조된 모습으로 설계한 것이 된다.

 

만드는 사람은 어디에 포인트를 둔 것일까?

표범일까? 사슴일까? 아니면 금딱지 보다는 안의 내용물에 더 신경을 썼을까? 하는..

보이는 것은 사슴이 눈에 들어오지만, 사실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에 더 손이 많이 갔을 것이다. 사슴만 그리면 끝날 텐데 구지 금박을 접어서 연결하는 부위의 작은 공간에 2줄의 표범을 촘촘히 새긴 것이다.

 

그리고 원래 중요한 것은 숨기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금딱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헤로도투스도 적어 놓았다. 아무도 별로 아직까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헛소리로만 여겼을 수도 있다....그리고 너무 머리가 아프다..어떻게 하지?.....

 

 

참고문헌

G Rausing, The Bow, Some notes Its Origin and Development.Acta Archaeological Lundesia 6. 1967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역사 (헤로도토스)(천병희 역), 2009, 숲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의 시베리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잊어버리신 건 아니지요?

 

이 무덤에는 무덤방 속에 2개의 관이 있었고 소년과 지금의 기준으로 하면 중년인 남성이 각각 묻혔다. 소년의 관에는 목제칼이 있다고는 했는데, 앞서 살펴본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무덤에서 출토된 금속제 칼은 확인되지 않았다. 중년 남성의 관에도 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앞에서 살펴본 2.5cm크기의 황금 장식판에도 칼을 차고 있는 전사를 표현할 정도인데...

그리고 스키타이문화권이라고 불리는 각 지역의 스키타이문화를 아우르는 공통적인 요소 중에 하나가 무기라고 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출토 청동칼

 

그런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바로 옆에는 2호분이 있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이 무덤속에는 철제칼이 아닌 청동제 칼이 확인되었다. 시신의 오른쪽 대퇴골 근처에는 17.5cm의 단검(짧은 검)이 칼집속에 든 채로 확인되었다(그림 1,2). 청동제 칼이다. 칼집은 한쪽면은 목제이고, 다른면은 가죽제였다. 목제로 남은 면이 바깥이었는데, 원형의 단추가 3점 달려 있었다. 칼집의 반대편은 두터운 가죽으로 제작되었고 동그란 목제 단추가 칼의 뾰족한 부분과 가까운 부분에 붙어 있다.

 

청동칼은 손잡이와 검신이 한몸으로 제작된 것으로, 손잡이 끝에는 아무런 장식이 붙어 있지 않고 손잡이 부분에만 홈이 있다. 칼의 중앙에는 칼의 끝부터 손잡이가 시작되는 부분까지 능이 서 있는 모습이다(그림 2-2).

 

그림 2.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출토 청동칼, 그림1과 같음

 

검집에 검이 들어가 있는 상태(그림 2-3)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는 점이 있다.

검이 외부에 노출되는 부분은 날이 아니라 손잡이이다. 따라서 검에 어떤 장식적 요소를 더한다면 검의 손잡이에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이를 잘 알 수 있는 유물이 그림 3의 유물이다. 알타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그림3. 알타이에서 출토된 청동칼, 손잡이에 그리핀이 부착되었다. 검코에도 기하학적인 동물문양장식이 표현되었다.

 

그런데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 청동칼은 알타이 지역 뿐만 아니라 타가르문화에서 많이 알려졌다. 타가르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알타이 산이 아닌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분지에 알려진 문화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은 스키타이문화(권) 중에서도 알타이 산에서 확인되는 파지릭문화에 해당된다. 타가르 문화는 대체로 기원전 8~7세기 정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타이의 북쪽에 위치하는데, 비교적(상대적으로) 가깝다. 스키타이문화권에서 지역문화로 생각하시면 된다.

 

타가르 문화에서 청동검(그림4)은 전체적인 청동칼의 모습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출토품과 유사하지만, 손잡이를 많이 꾸민 청동검이 확인된다.

검을 잡은 부분과 검의 코 및 그 끝을 동물문양장식으로 장식되었다.

 

그림4. 미누신스크 분지 출토, 타가르 문화의 청동칼, 기원전 6~5세기

 

그림4의 유물은 손잡이 끝이 그리핀이 서로 마주보도록 설계되었다. 그리핀의 부리가 휘어져서 특히 윗부분이 아래부분을 감싸고 있다. 손잡이가 시작되는 부분인 검 코에는 늑대가 표현되었다. 두 마리가 서로 대칭으로 있다. 다리 사이에 꼬리를 감춘 채 이마를 맞대고 있다. 손잡이 부분에는 중앙에 홈이 손잡이 방향으로 깊게 파져 있다. 길이는 26cm이다. 검날의 중앙에 능이 확실하게 서 있다.

 

동물문양장식에는 마구, 장신구, 무기 등 이곳저곳에 모두 응용되었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아크 알라하 3유적과는 달리 말무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정보를 공유했다.

말은 9마리가 들어가 있었으며, 5벌은 마구와 말을 치장하는 굴레장식 등이 완벽하게 치장되어 있었지고, 2벌은 말 옆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을 장식하는 굴레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된 것이 그리핀이었다.

그리핀은 상상의 동물이다. 두 마리 이상의 동물이 한 형상으로 합체된 것이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아크 알라하 1 유적에서 출토된 말을 장식하던 그리핀(그림 1,2)은 특징이 독수리 부리모양의 부리, 머리 정수리를 장식하는 상투, 목을 따라서 표현된 갈기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가장 유사한 것은 루덴코가 발굴한 투엑타 1호분(그림3, 그림 4-5)에서 출토되었다. 얼굴과 갈기모양 등이 유사하다. 특히 그림 3-5,6 그림 4-5유물은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출토된 그리핀과 같이 입체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목의 하단에는  날개부분에 착장할 수 있게 자루가 만들어졌다. 날개는 따로 제작되었다. 

 

그림3. 투엑타 1호분의 그리핀 장식.

 

그림4. 투엑타 1호분의 그리핀 장식. 5번 유물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유사하다. 4번은 재갈멈치이다.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은 폴로시막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을 단행본으로 엮으면서 낸 책의 제목이다. 계속 저의 포스팅을 주시한 분은 아실 것이다. 필자가 해석을 해 놓았음으로..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의 이야기는 헤로도투스가 역사에서 4권 27장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폴로시막은 이 구절을 책의 제목으로 낸 것이다.

 

‘잇세도네스족 북쪽에 외눈박이 부족과 황금을 지키는 그륍스(그리핀)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잇세도네스족 자신들이며, 이것을 스키타이족이 잇세도네스족에게 듣고 우리에게 전했고, 우리는 또 스키타이족에게서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13장에는 아리스테아스의 서사시를 인용해서 잇세도네스족 너머에 외눈박이 아리마스포이족 너머에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아리스테아스의 이야기와 스키타이족의 이야기가 다르다고 헤로도투스는 전한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잇세도네스 족은 대머리부족의 동쪽 땅에 사는 사람들이고, 대머리부족은 여러 스키타이 족 가운데서 가장 동쪽의 고산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잇세도네스 족의 제사지내는 관습도 26장에 전해지는데,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족의 제사지내는 관습과 비슷하게 묘사했다.

 

고고학자료에서 나타나는 그리핀의 기원은 근동이라고 불리는 서아시아지역, 그리스, 스키타이 기원설이 있다. 스키타이 유형의 그리핀 머리는 짐승 귀가 붙은 맹금류인데, 특히 독수리머리와 비슷하게 형상화되었다는 것이 식별되었다(포그레보바 1948).

그러나 초원지역의 스키타이문화에서 출토된 그리핀은 즈로 산양과 독수리의 결합이 많은데, 산양머리와 부리는 독수리로, 스키타이문화의 초기부터 나타나는 형태이고, 동그리스와 페르시아에서 나타나는 그리핀은 독수리와 사자의 결합으로 기원전 6세기 말에서 기원전 5세기가 되어야 나타난다고 지적되었다(시크루코 1982).

 

즉 그리핀의 기원은 스키타이문화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스키타이문화의 그리핀은 독수리머리에 짐승의 귀가 붙고, 몸통은 표범 혹은 호랑이인 경우가 많다.

 

 

참고문헌

바르코바 1987 Баркова Л.Л. 1987 : Образ орлиноголового грифона в искусстве древнего Алтая (по материалам Больших Алтай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28. Л.: 1987. С. 5-29. (바르코바, 1987, 알타이 고대 예술에서 독수리형 그리핀의 모양에 대해서: 알타이의 대형 무덤출토품을 중심으로)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포그레보바 1948, Н.Н. Погребова 1948, Грифон в искусстве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в эпоху архаики. // КСИИМК. Вып. XXII. 1948. С. 62-65.(고대 흑해북안의 그리핀연구)

시쿠르코 1982, А.И. Шкурко, 1982, Фантастические существа в искусств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юге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Ч. 2. / Тр.ГИМ. Вып. 54. М.: 1982.(초원 스키타이의 예술에서 상상의 주제(동물)에 대해서)

역사 (헤로도토스)(천병희 역), 2009, 숲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