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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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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우코크 고원의 남성미라가 뭍힌 곳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이다. 발굴된 여느 스키타이 문화(정확하게는 파지릭문화)의 무덤과 마찬가지로 무덤구덩이 안에는 나무 무덤방이 만들어지고, 그 밖에는 말이 매장되었다.

 

말이 매장되는 무덤은 대부분 한 마리 이상 매장되는데, 멀지 않은 곳에 묻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도 말6마리가 확인되었다. 미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나 남성전사 2명이 함께 묻힌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도 말이 9마리가 들어갔다.

 

그러나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는 말이 매장된 북쪽의 상태가 좋지않아서 말이 2마리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잘 알 수 없다. 스키타이 사람들은 매우 공간을 아껴서 사용한 것 같다. 말의 매장공간은 좁은데 많이 밀어 넣는다. 구덩이가 커지면 노동력도 들고 무덤방도 커져야 할 것이니, 아마도 이런 것들은 미리 계산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는 말이 매장된 북쪽이 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말의 두수는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말과 관련된 마구는 말에 착장한 것이 아니라 벗은 상태에서 1벌(그림 1)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의 북서쪽 모서리에서 전부 출토되었다. 굴레장식 가운데 몇 점은 말 부근에서 출토되기도 했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 유적 3호분, 남성미라 무덤에서 출토된 마구 세트

 

 

 

말의 재갈은 철제로 만들어진 것이고, 말의 굴레에 달았던 J자형 굴레장식은 멧돼지 송곳니처럼 보이지만 나무로 제작되었다. 말의 이마를 장식한 당호(그림 1에서 둥근 형태)는 만화에 나오는 UFO모양과 같은데(ㅋㅋ ), 재갈멈치와 함께 나무를 깍아서 만든 것이다. 당호는 납작한 원판 위에 약간 두툼한 원판을 붙인 형태로 얼음공주 무덤 , 아크 알라하 1 유적에서도 말이 착장한 예가 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 무덤 속의 출토유물, 유물배치도에서 1~5번이 마구 및 굴레장식이다. 4번은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펜던트라고 적혀 있었으나(먼저 설명한 것) 실제로는 나무로 제작된 것이다. 멧돼지 송곳니 모양이라고 한다. 원고를 적은 사람과 도면을 만든 사람이 달랐을 것이다.ㅠㅠ

 

 

재갈멈치는 한쪽 끝에 팔메트 문양으로 만든 것이다. 팔메트 문양의 재갈멈치는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적이 있는데, 재갈멈치 양쪽 끝이 장식되었다. S자형으로 굽은 모양이었다.

 

2020/01/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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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알타이 산에서도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2명이 묻힌 1호분의 관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는 1차 무덤방에는 말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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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에서 철제로 제작된 유일한 유물은 앞서 본 목제 쟁반 위의 칼과 재갈(그림 3)이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 유적 3호분, 남성미라 무덤에서 출토된 철제재갈

 

이 점은 앞서 살펴본 남성전사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고리가 둥근 재갈이 청동으로 제작된 것과는 다르다. 쿠바레프는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출토되는 청동재갈이 고식이고, 베르흐 칼쥔 II유적에서 출토된 철제재갈은 새로운 스타일로서 새로운 문화요소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철제 재갈은 청동재갈에서 형태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쿠바레프 1992).

 

철제무기는 이미 아르잔-2유적에서 처음 출토되지만, 재갈은 전부 청동제였다. 얼음공주 무덤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재갈도 청동제였다. 그렇다면 베르흐 칼쥔 II유적 기마전사는 자신의 말에 가장 혁신적인 재갈을 물렸을 것이다. 새로운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J자형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멧돼지 송곳니 모양 끝에 그리핀 얼굴이 그려진 채 출토된 적이 있다. 유물의 전체 평면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이 유적에서는 그리핀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지만, 같은 모양의 이마장식, 재갈멈치 등이 출토된다는 점으로 보아서 충분히 그리핀을 상징하는 유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쿠바레프, 1992, 사일류겜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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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에서는 2500년 전 무덤 속에 나무 무덤방이 설치된 유적들이 발견된다. 일부 유적에서는 ‘미라’가 발견되기도 한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알타이에서 발견된 문화로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 문화는 동물문양장식, 무기, 마구를 문화의 아이덴티티로 사용했는데,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묶을 수 있는 지역은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몽골 및 만주지역의 내몽골지역에서도 그 흔적이 확인된다. 파지릭문화는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가장 중심에 분포했던 알타이에서 위치한다.

 

이 시절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무덤에서는 여러 경우가 있지만 공통적인 현상이 있는데, 무덤방 안에는 그릇을 놓아 둔다는 점이다. 토제, 목제, 뿔로 만든 그릇이다. 토기는 액체용기를 담기 위해서 항아리(호형)가 있고, 뿔로 만든 용기도 확인된다. 목제로 된 그릇은 두 종류의 그릇 중 쟁반 위에는 고기와 철제 칼이 놓여 있다. 양의 엉덩이 뼈가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서 꼬리 부위를 잘라서 두었던 것 으로 생각된다.

얼음공주 미라가 발견된 아크 알라하-3유적, 남성 전사 2인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1 유적 등에서도 모두 시신이 안치된 곳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확인되었다. 주로 시신이 보는 방향에 목제 쟁반이 놓인다.

 남성미라의 무덤인 베르흐 칼쥔-2 유적에서도 마찬가지로 목제 쟁반 위(그림 1)에 고기 덩어리와 철제 칼(그림 3-2)이 확인되었다. 다리가 낮은 쟁반으로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다. 목제 쟁반의 한쪽은 약간 부서진 상태이다. 한쪽에는 구멍이 두 개 있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 유적 3호분 출토 목제 쟁반(필자촬영)

 

파지릭 유적에서도 다리가 높은 목제 쟁반(그림 2)이 확인되었다.  다리에는 여러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도굴로 이미 무덤 속이 흐틀어졌으나, 비슷한 장례의식 가운데서 목제 쟁반 위에 고기 덩어리를 놓고 의식을 치뤘을 것이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목제 쟁반 혹은 목제 상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에서 확인된 철제 칼은 손잡이가 둥글고 날이 한 쪽 방향으로 있는 것으로 얼음공주 무덤의 것과 거의 유사하다.  도면(그림 3)이 부실해서 안타깝다. 필자가 찍은 사진에도 없었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유적 출토 3호분 목제 쟁반(1:그림 1과 동일)과 칼(2)

 

목제로 된 또 하나의 그릇은 잔이다. 손잡이가 한쪽에만 붙어 있는 잔으로 손잡이는 둥글다. 손잡이가 한쪽에만 붙어 있는 잔은 2700년 전 유적인 아르잔-2호에서부터 출토되었다. 물론 손잡이 모양은 다르지만, 목기의 몸통이 ‘잔’인 점은 공통적이다.

아르잔-2호와 이 유적의 연대차이가 200년 이상 있지만 손잡이의 모양이 그대로 이어진 유물도 있고, 변화가 생긴 유물도 있다. 목제 잔을 사용하는 전통은 계속 이어진 것 같다.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목제 잔(그림 4)와 유사한 잔은 파지릭 유적의 2호분(그림 5)에서 출토된다.베르흐 칼쥔 II유적 남성의 잔은 손잡이가 심플한 둥근 것(그림 6)이다. 얼음공주의 잔(그림 7)은 손잡이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마주보게 장식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둥근 손잡이를 응용한 것이다.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출토된 펠트제 받침대(그림 5-2)는 남성미라(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와 여성미라(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도 출토된 유물이다.

쟁반이 아닌 목제용기는 유제품을 위한 그릇이다.

 

그림 4. 아르잔-2호분 무덤방 5호분의 목제 그릇(2700년 전)

 

그림 5.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목제 잔(2500년 전)

 

 

그림 5-2. 그림 5와 세트, 펠트제 받침대

 

 

그림 6.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 출토(2500년 전), 남성미라의 목제 잔과 받침대(필자촬영)

 

그림 7. 아크 알라하 3유적, 얼음공주 미라의 목제 잔(2500년 전)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에서 출토된 목제 쟁반에는 모두 상단에 사용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죽음을 위해서 만든 부장품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했던 용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미 앞에서 포스팅 한 바 있지만 미라 혹은 사자 들이 입고 있는 옷도 전부 수선했던 흔적이 남아 있고, 사용했던 의복이었다. 죽음을 위해서 만들어 둔 것이 아니다.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스키타이 문화에서 일종의 지역문화)에서 남성은 고깔모자 및 투구형 모자를 썼다는 점을 알려드린 바 있다.

 

2020/01/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필자도 중국 상해, 남경 등 학과 답사로 같이 참여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비자피와 얼마간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취소보다 병이 창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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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고깔모자에 대해서는 헤로도투스도 자신의 저서에서 스키타이 인들의 특징을 묘사할 때 적어 놓은 바 있고,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벽에 새겨진 조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손에 스타킹을 들고 있는 사람, 말을 부리고 있는 사람, 고리트(스키타이 인들의 화살통)를 차고 있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단순한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의 쿨오바라고 하는 고분에서 출토된 황금 항아리에도 고깔모자를 쓴 사람이 확인된다. 그리스 장인이 만든 황금 빗(표트르 대제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중에서)에서도 스키타이 전사의 목 뒤에 고깔모자가 매달려 있었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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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 얼음 속에서 확인되는 우코크 고원의 고깔모자는 좀 더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 특히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 남성 미라가 쓴 고깔모자(펠트)는 정수리에 목제로 된 새 머리장식이 붙어 있고, 그 상단에 산염소 한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고깔모자의 앞과 옆에는 목제로 된 산염소가 부착되어 있다. 발견 당시에 산염소의 뿔은 없어지고 구멍만 남아 있지만 뿔을 조각해서 삽입했던 것이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미라가 썼던 고깔모자

 

그런데 이 남성은 모자가 한 점 더 있었다.

어제 소개해 드린 유물 배치도에 보면 어깨와 허리부위에 모자장식이라고 설명된 부분이 있다. 목제로 된 사슴 혹은 산염소 조각 장식이다. 뿔이 없어져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같은 종류의 동물 3마리이다. 가장 큰 한 마리는 고깔모자의 왼쪽옆에 붙어 있었고, 한 머리는 이마 앞쪽에 다른 한 마리는 고깔모자의 머리 끝에 붙어 있었다(그림2). 이 고깔모자는 장식만 나무로 만들어졌고, 기본적인 모자는 펠트로 제작되었으며, 정수리 끝에는 새머리가 함께 재단되어서 제작된 것이다. 새는 부리가 표현되어 있고, 부리 뒤쪽에는 금박을 입혔다. 펠트제 모자는 모피코트 속에서 발견되었다. 모자는 귀를 덮는 스타일이다.

앞에서 포스팅한 여러 곳의 고깔모자가 약간 씩 전부 다르지만 공통적인 점은 귀를 덮는 긴 끈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페르시아 시절의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궁전 벽화, 쿨 오바의 황금 항아리 속의 남성 등 모든 남성의 모자는 정수리 끝 장식은 다르지만 귀를 덮은 점이 공통적이다.

 

이미 포스팅에서 소개해 드린 그림은 폴로스막의 책에 있었던 것에는 목제 장식이 따로 구성되었지만 필자가 실제로 본 사진에서는 원래 자리로 생각되는 곳에 복원되어 있었다(그림 2).

 

위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미라 모자(필자촬영)

 

 

 

그림 3. 그림2의 가장 상단에 부착된 동물장식 (필자촬영)

 

 

 

 

그림 4. 그림 2의 동물장식(필자촬영)

 

 

 

 그림 5. 그림 2의 동물장식(필자촬영)

 

그런데 이런 모자를 썻던 남성의 헤어스타일은 어땠을까?

 

이제까지 소개해 드린 얼음공주(아크 알라하 3 유적)와 파지릭 2호분의 여성미라는 모두 삭발을 했었다. 파지릭 5호분에서 확인된 캐노피의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여성도 삭발했었다.

 

그러나 남성은 좀 더 다양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지릭 2호분에서 출토된 남성미라는 앞부분만 머리를 밀었고, 파지릭 5호분에서도 남성미라는 앞부분만 밀고 뒤는 그냥 둔 채였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의 뒷 머리 스타일은 정확하지 않은데, 머리가 벗겨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남성은 머리는 좀 다르다. 이 남성은 머리의 정수리 부분의 머리는 길러서 땋았고, 그 주변은 밀었다.

 

 

 

 

그림 6.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 남성미라의 헤어스타일

 

그렇다면 고깔모자 아래로 땋은 머리가 2갈래로 내려왔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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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전사는 2500년 전 어느 날 미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얼음공주 미라(아크 알라하-3)와 매우 가까운 곳에 묻혔고, 다행히 완벽하게 미라의 모습이 남아 있었으나, 세간의 관심은 덜 했다. ‘얼음왕자’이런 별명도 없고, 그는 얼음공주에 비해서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유적은 1994년에 발견되었고 1995년에 발굴되었다. 1995년 얼음공주가 부산에 왔을 때 그는 이제 막 사람들이 무덤 속에서 끄집어 내었다.

 

 

앞에서 소개한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 1, 3 유적과 마찬가지로 말은 무덤방 북쪽에 매장되었다. 무덤방의 크기는 그림 1에서 목제의 돌출부를 제외하고는 실제 무덤방은 164×113m가량이다. 나무는 통나무를 반으로 나누어서 사용한 것이다. 바닥의 나무는 4개만 깔렸고, 목기와 토기 등의 그릇이 놓은 부분에는 나무가 깔려 있지 않았다. 나무방의 벽은 통나무를 2층으로 올린 것이다.

 

나무방 덮개를 열자 나타난 것은 남성 미라가 무릎을 굽힌 채로 잠들어 있었다. 미라로 제작된 아크 알라하 3유적, 파지릭 유적 2호분, 파지릭 5호분과는 달리 통나무관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자세는 이제 까지 설명된 무덤에서 줄 곧 확인되는 자세이다. 쭉 뻗고 하늘을 쳐다보는 (앙신직지) 시신처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 1.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의 남성미라 무덤,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무덤방의 유물은 여느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처럼 많지 않았다. 더욱이 부장된 말의 수와 출토된 유물도 적은 편이어서 전체 적으로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림 2.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의 남성미라 무덤,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에서 출토된 유물

 

그림 2에서 이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종류를 알 수 있다. 목제 쟁반 위의 양뼈(엉덩이뼈), 그 옆의 칼, 그곳에서 떨어진 곳에서 출토된 토기 1점, 목기 1점 등 실제로 사용했던 유물이다.

 

그런데 이 남성은 관이 없었지만 미라로 제작되었고, 문신이 있었으며, 모피코트를 입고, 고깔모자를 쓰고, 펠트로 된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특히 남성이 쓰고 있는 고깔모자는 먼저 발굴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 발견된 동물문양장식이 어떤 용도로 씌인 것인지 알게 했다. 이 유적이 발굴되기 전에는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발견된 남성전사 머리 위의 동물문양장식이 용도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말의 수는 적지만 출토된 마구는 아크 알라하 3유적과 비교되었다.

 

그림 3. 시베리아 알타이의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1: 얼음속의 미라; 2: 미라를 발굴하는 장면)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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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흐 칼쥔(Верх Кальджин, Verkh Kal'dzhin) II 유적은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해발 2500m)에 위치한다. 앞서 설명했던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알라하 3유적에서 서쪽으로 4km 떨어진 곳(지도2)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현재까지 발굴된 남성 미라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남성미라(2호분,5호분)는 해발 1500m인 파지릭 계곡에서 확인된 것이다.

 

지도 1. 스키타이 문화 중 파지릭문화의 유적

 

 

지도 2. 우코크 고원의 베르흐 칼쥔 II유적(푸른색)과 아크 알라하 3유적(오렌지색), 지도 1의 확대, 지도1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확인가능하다.

 

https://www.google.com/maps/d/drive?state=%7B%22ids%22%3A%5B%22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22%5D%2C%22action%22%3A%22open%22%2C%22userId%22%3A%22104839998633637810520%22%7D&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유적은 칼진(Кальджин, Kal'dzhin)강의 상류에 위치한다. 유적의 이름은 칼쥔 강의 베르흐(Верх: 상류)를 그대로 명명한 것이다. 러시아 지명은 이런 경우가 많은데, 이를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유명사로 그대로 부르는 것이 나중에 혼돈이 적을 것이다. 일본에서 나온 책들은 이를 일일이 번역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그 유적이 어떤 유적인지 알 수 없다.

 

베르흐-칼쥔 II유적에는 4개의 고분이 일렬로 설치되었는데, 3개를 발굴했다. 그 중 남성미라가 확인된 곳은 3호분이다. 1호분에서 11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무덤, 까맣게 칠한 것이 발굴된 무덤이다. 위의 화살표 옆에는 칼쥔 강 입구까지 50m. 가장 오른쪽 화살표C는 북쪽을 의미.

 

 

무덤은 앞에서 본 아크 알라하 3유적, 파지릭 유적의 1,2,5호분과 마찬가지로 지표상에서는 큰 돌을 쌓은 것이 확인되었다(그림 2). 돌을 들어내자 무덤 가장자리를 둘러싼 호석(6~7.6m)(그림 3)이 확인되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표토를 벋겨내자 드러난 돌. 화산암이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적석을 들어내고 남은 호석

 

그런데 이 무덤의 단면도(그림 4)를 보면 앞서 본 아크 아라하 3유적과는 다르다는 점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나무 무덤방이 설치되는 가장 아래의 무덤구덩이를 한 번에 파지 않고 단을 만들어서 팠다는 점이다. 표토의 생토를 기준으로 50cm정도 들어가저 첫 번째 단인 확인되었다.

 

그림 4.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단면도

 

2020/0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얼음이 녹자 드러난 무덤의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성샤먼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발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아크-알라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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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구덩이(2.6×2.2m)의 깊이는 2m이고, 구덩이 안에 나무방을 설치하고 시신을 안치했다. 위에서부터 121cm정도 들어가자 무덤방의 덮개가 확인되었다(그림 5).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무덤방 덮개

 

무덤구덩이에 나무 무덤방을 만들고 무덤 방 바깥에는 말을 부장하는 구조는 앞에서 본 2500년 전 파지릭문화(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문화)에서 보았던 것이다.

무덤방은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결구한 무덤방인데, 내부에 관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무덤방이 관의 역할을 한 것이다. 무덤방 바깥에는 말을 매장했는데, 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2 마리 이상이지만 정확하게 몇 마리를 매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잘 남아 있는 목제 굴레장식과 철제 재갈은 한 벌이다.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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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