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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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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사슴이 가죽, 청동, 뿔로 제작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미 살펴본 아크 알라하 3유적이나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사슴과 같은 우제류는 말을 꾸미는 장식으로 사용되었으나, 이 유적은 유물이 거의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남겨진 사슴문양들도 모두 조각이다. 말의 굴레장식은 간단한 원판을 기본 모티브로 한 것이 주로 남았는데, 필자는 그리핀과 호랑이의 추상적인 표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샤다르 유적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투엑타 유적에서 사실적인 동물문양장식과 함께 추상적인 표현물이 함께 출토되기 때문이다.

 

투엑타 유적에서는 사슴을 모티브로 한 굴레장식이 출토된다. 눈이 둥글고 귀와 뿔이 표현되었다. 뿔은 크지 않다. 사슴 머리 3개가 달려서 삼각구도를 이루는 사슴문양장식(그림 1-6), 머리가 2개를 이루는 문양 장식(그림 1-4,5)은 같은유적(1호분)에서 함께 출토된 초본류를 형상화한 장식판(그림 2)과 전체적인 구도? 스타일이 유사하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출토 굴레장식, 사슴문양

 

그림 2. 투엑타 유적 출토 굴레장식, 초본문양

 

투엑타 유적은 투엑타 강(현재 카툰 강)의 왼쪽 지류인 우르술 강의 계곡부에 위치한다(그리 3, 4). 1950년대에는 이 계곡에 무덤이 197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덤은 등고선의 수직방향으로 열을 이루어 군집되었다. 가장 큰 고분은 유적에서 동쪽에 위치한다. 1호-68m, 3호-62m, 4호-48m, 6호-52m이고, 대형 무덤 옆에는 작은 무덤이 있다. 1954년에 루덴코는 1호와 2호를 발굴했는데, 1호는 루덴코가 알타이에서 발굴한 무덤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이었다(그림 5).

 

그림 3. 투엑타 유적 1, 구글지도

 

그림 4. 투엑타 유적과 바샤다르 유적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지도는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그림 5. 투엑타 유적의 평면도

 

1호는 지름이 68m, 높이는 4m로 초대형 무덤이다. 무덤을 덮은 돌은 대략 6000평방미터 가량이었는데, 돌을 덜어내기 위해서 트럭을 이용해서 돌을 옮겼다. 그림 5의 하단에는 당시 투엑타 마을이 표시되었는데, 도로가 표시되어 있다.

 

그림 6. 투엑타 유적의 전경 (1-대형고분 가운데 가장 남쪽의 3개 4,5,6호분, 2-무덤덮은 돌을 제거하는 광경, 사람을 보면 무덤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림 7. 1954년 투엑타 유적 발굴광경.

 

그런데 1950년 이전에도 이 유적은 이미 1935년 세르게예프와 1937년에 키셀레프가 발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자료는 발표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고분들이 도굴한 흔적이 많이 남았다. 특히 앞서 이야기 한 대형고분에 바로 인접한 무덤에 도굴흔적이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루덴코는 가장 큰 고분인 1호와 바로 북쪽에 붙어 있는 2호분을 발굴하기로 결정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본 가장 큰 무덤의 구조와 그 내부가 궁금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7. 17. 12:15 세계의 박물관

 

유라시아 암각화 주제로 가장 많이 애용된 것은 사슴과 같이 뿔이 있고 굽달린 동물이다. 필자가 앞서 소개한 키르기스스탄의 촐폰아타(Чолпон-Ата, Cholpon-Ata 유적에서 사슴도 그려지지만 가장 많이 확인되는 것은 산염소(코젤, kozel)(그림1)으로 629개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총 그림의 숫자는 93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림 1. 촐폰아타 암각화의 산염소 1(필자촬영)

 

그림 2. 촐폰아타 암각화, 그림 1의 왼쪽 위, 사냥하는 장면

 

그림 3. 촐폰아타 암각화의 산염소 2(필자촬영)

 

 

 

산염소는 뒤로 휘어진 뿔, 측면 몸통, 다리, 짧은 꼬리가 가장 기본적인 구성이다. 산양표현은 시간에 따라서 좀 더 통통하게 그려지거나 추상화되고 단순하게 선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다리가 네 개 또는 두 개, 뿔도 한 개에서 두 개로 바뀐다. 산양은 무리를 이루거나 맹수와 마주보는 장면, 사냥에서 쫒기는 장면, 서 있는 모습 등 다양한 장면에서 나타난다.

그림 1과 그림 3은 모두 코젤(산염소)를 그린 것이지만 표현법이 다르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 차이가 있다.

 

 

산염소 다음으로 많이 그려지는 것은 사슴(이전 포스팅 그림)이다. 산염소와 전체적으로 비슷하지만 뿔이 차이가 있는데, 가지가 여러 개 그려진다. 주로 나무 모양과 가깝다.

 

 

암각화는 이식 쿨(Иссык-Куль, Issyk-Kul)호수 부근에 위치하는데, 쿠네이 알라-투(Кунгей Ала-Тоо, Kungei Ala-Too) 산의 남쪽 기슭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이 산의 협곡에서 흘러나온 화산암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흩어져 있는데 이 곳에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 그 구역은 서쪽으로는 4km, 폭은 0.6~2km에 달한다.

 

그림 3. 촐폰아타 유적의 범위(유적의 위치는 이전 포스팅 참고)

 

 

 

그림 4. 이식-쿨 호수(이곳은 소비에트 시절부터 유명한 관광지 중에 한 곳이다.)

 

키르기스스탄은 넓게 보면 천산산맥에 입지한 국가로 이식 쿨 분지의 암각화(촐폰아타)와 알타이의 암각화는 자연환경에서 차이가 있음으로 사는 식생도 차이가 있다.

 

촐폰아타 암각화의 주제는 산염소, 사슴, 황소, 말, 개, 늑대 등 동물만 그려진 것과 사람이 동물을 공격하는 장면, 말을 탄 무사와 낙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돌 하나에는 2~3개부터 가장 많은 것은 20개의 주제까지 그려진다.

 

암각화의 모든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림의 제작연대이다. 이 유적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동물문양은 스키타이 시대의 것으로 천산산맥 주변의 문화였던 사카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 연대는 암각화가 주로 그려졌던 시점이고, 그 이전인 청동기시대부터 기원후 까지(기원전 2천년기~기원후 8세기) 그림은 계속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로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나라는 모든 영역에서 소비에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역사 고고학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촐폰아타, 이식-쿨, 쿠네이 알라-투 등 지명은 키르기스스어이고 음차해서 러시아어로 쓴 것이다]

 

 

촐폰아타 암각화박물관은 야외박물관이다. (우리나라에 잘 없는 야외박물관...) 촐폰아타가 이식 쿨 호수와 인접하고 있어서 관공도시로 이 유적도 관광지이다. 그래서 그 주변에서는 가기가 쉬운 박물관이다. 한국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는 직항은 없지만, 카자흐스탄의 구수도인 알마티로는 가면 이곳으로 갈 수 있다. 한마디로 가기 힘들다.ㅋ...그래도 꿋꿋한 한국인들은 탐방기를 남긴다..

 

 

 

참고문헌

 

Миклашевич Е.А. 1995 : Петроглифы Чолпон-Аты (Киргизия). //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Азии. Петроглифы. Кемерово: 1995. С. 63-68(미크라세비치 1995, 촐폰아타 암각화(키르기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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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박물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르메니아의 예레부니 박물관  (0) 2021.11.28
posted by 김재윤23

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는 높은 곳에 깊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들고 말과 함께 매장하는 장례식이 행해졌다. 2600년 전 이전에도 장례식 이후에 축조된 결과물은 다르지만 성대한 장례식은 있었다는 사실은 앞에서 소개한 바 있다

 

파지릭 유적, 바샤다르 유적, 투엑타 유적등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파지릭문화를 밝혀 낸 루덴코는 자신이 실제로 참석한 카자흐스탄 한 부족의 장례식 기념행사를 적어놓았다. 자신이 발굴한 유적에서 치러진 장례식이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며, 발트해부터 알타이 북동부 지역까지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왔을 가능성을 비추었다(루덴코 1960).

 

1927년 루덴코는 카자흐스탄 흑해로 흘러가는 이르티시 강 주변에 있는 한 부족의 장례식을 경험했다. 3월 25일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은 같은해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치러졌다.

장례식에는 30개의 펠트 마차(펠트마차로 번역이 되지만 문맥 상 일종의 텐트와 함께 겸비된 것으로 일종의 캠핑카?정도로 이해가 된다)가 줄을 있었고, 그 중 5개는 죽은 이의 아들을 위한 것이다. 손님을 위한 것도 15개나 준비되었고 그 중에는 여성을 위한 것도 있다. 손님을 위한 음식은 4마리의 말, 6마리의 황소, 25마리의 숫양이 준비되었고, 2~3개의 큰 용기에 쿠미즈(양 지방 유제품)로 가득채워서 준비했다. 쿠미즈는 선반에 담겨서 옮겼는데, 아주 비싼 카펫으로 장식된 낙타가 행렬을 이끌었다. 낙타뒤에는 여자, 그 뒤에 남자가 서 있었다.

 

손님들도 양과 말을 장례를 위해서 가져왔는데 손님들이 가져온 30마리의 숫양 중에 25마리를 죽여서 손님들을 대접했다. 낮에는 차와 쿠미즈가 간식으로 아침과 저녁에는 고기가 손님들에게 제공되었다. 음식은 특별히 지정된 노지(화덕자리)에서 만들어졌다. 고기는 신선하게 하기위해서 같은 장소에서 죽이고 같은 장소에서 음식을 했다. 음식은 2~4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에 실려서 손님이 끌고 온 마차로 배달되었다.

루덴코가 본 장례식에는 부족의 허락이 없어서 말 경주 대회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말 경주대회가 장례식에 있었던 것을 그는 나이만족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1896년에 사망한 나이만족이 경험한 장례식은 매우 성대한 것이었다. 3일 동안 장례식이 치러 졌는데, 아주 먼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모였는데, 심지어 해외에서도 왔다. 손님을 위한 텐트(마차)가 300개나 설치되었고, 손님을 위해서 각 마차에 한 사람, 말 한 마리가 배정되었다. 손님들은 쿠미즈(유제품)와 빵반죽을 직접가져왔다.

말 경주는 장례식 전날부터 첫 번째 경주가 시작되었다. 이날은 장례식 음식 준비를 위해서 음식하기 위한 구덩이를 판 날이고, 말 경주가 열린다.  말 경주는 첫 번째와 네번 째 날 열렸다.  네 번째 경주는 장례식 마지막 날 열리는 데 25마일을 달리는 것이었다. 최대 250여마리의 말이 참가했고 그 중에 20마리에게 상이 수여되었다. 1등 말은 말2마리, 낙타1마리와 은을 받았고 나머지 말은 말 1마리를 받았다.

세 번째 대회는 낙타경주이다. 50마리의 낙타가 경주해서 10개의 상이 수여되었다.

 

이러한 성대하고 체계적인 음식문화를 동반한 혼잡한 기념은 부자와 귀족 사이에서 가능했다. 다양한 대회와 음식 때문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일수 있었고 거대한 토루 등의 건설은 짧은 기간에 가능했다.

 

비슷한 광경이 19세기말~20세기 초 뿐만 아니라 2600년 전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루덴코는 추정했다.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6m의 구덩이를 파고 무덤방을 설치하는 작업은 많은 노동력이 동원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0세기 초에 루덴코가 목격한 장례식에서도 3월에 죽은 이를 9월에 묻었는데, 이는 2600년 전 파지릭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장례식은 봄과 가을에 치러진다고 했다. 20세기 초에는 그 사이에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2600년 전에는 죽고 나서 묻기 전의  몇 달동안 시신은 미라로 처리해서 보관했다. 

바샤다르 유적의 2호분에는 남성시신은 도둑맞았고 여성시신은 훼손이 심해서 죽은 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그러나 1호분에는 부패가 심해서 잘 남아 있지는 않지만 미라처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남아 있었다. 미라는 피부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지만 이 인골은 두개골과 여러 뼈에 미라처리 흔적만이 남아 있다. 두개골에 구멍을 파고 뇌를 제거한 흔적이 남아 있다(그림1).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얼음공주 미라도 두개골에 그림 1과 같은 구멍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바샤다르 1호분의 남성미라는 좀 다른데, 경추(그림 2-1), 척추 등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곳으로 방부제를 투입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10~12번째 흉추(그림 2-2), 나머지 흉추(그림 2-3,4)에 청공되었다. 요추에도 뚫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구멍이 잘 남아 있지 않다. 흉추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복강(배)은 내장을 추출하기 위해서 개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바샤다르 유적 1호분 남성미라의 뇌

 

 

 

그림 2. 바샤다르 유적 1호분 남성미라의 척추

 

미라처리의 관건은 뇌를 제거하고 피부는 남기고 그 밑의 지방과 근육을 제거하는 것인데, 뼈에 구멍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근육이 이미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샤다르 유적 1호분의 남성도 미라이다. 아시다시피, 바샤다르 유적의 1호분은 무덤구덩이가 깊지 않았고, 얼음층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서 다른 유적에 비해서 유기물질이 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남성 미라의 피부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참고문헌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에서 동물문양은 단독으로 그려진 것도 있지만 여러 동물이 함께 한 장면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맹수류가 우제류를 공격하는 장면과 동물이 열을 이루고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다.

먼저 설명한 문양을 ‘동물투쟁문양’이라고 하는데, 주로 호랑이, 독수리 혹은 그리핀이 사슴 혹은 염소 등을 공격하는 주제를 그린 것이다. 동물투쟁문양은 기원전 5세기 대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파지릭 유적(그림 1)에서 다양한 동물투쟁문양이 발견되었다. 대체로 2~3마리의 동물이 한 주제로 그려진다.

 

 

그림1. 맹수와 우제류가 싸우는 장면, 동물투쟁문양(마지막 유물 제외하고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의 주제, k-카탄다 유적)

 

며 칠 전에 설명드린 파지릭 유적의 5호분 여성의 오른쪽 손목 위에서도 동물투쟁문양이 발견되었다. 그 문양은 동물투쟁문양이 5마리가 등장하는데,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해서 보면 동물투쟁문양 2개가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정된 카메라로 인해서 사지가 굳은 미라의 손목 안쪽은 찍기가 힘들어서 손목 그림 중에서 특히 위쪽의 팔목 안쪽 그림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대략 사슴이 호랑이에게 물어 뜯기는 장면이 그려졌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림 1의 동물투쟁문양은 주로 우제류의 등을 물어 뜯는 장면이어서 판멸하기가 쉬운편이지만, 맹수의 입안에 동물머리가 들어있는 표현은 알기 힘들다.

 

여러 마리가 한 장면을 구성하는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동물투쟁문양 외에도 여러 동물이 나란히 줄을 서는 주제도 있다. 동물투쟁문양에 비해서 평화롭다는 느낌이 든다.

현재 살펴보고 있는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 발견된 통나무관에는 호랑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호랑이는 평화롭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밑에 사슴, 산양, 멧돼지 등을 밟고 있다는 점에서 나란히 서 있는 동물구도와 투쟁문양이 함께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물투쟁문양과 열상동물문양(별로 예쁜 이름은 아니지만)이 함께 그려진 것이 바샤다르 유적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두 동물문양장식은 100년 정도 늦은 파지릭 유적에서는 개별요소로 나타난다. 동물투쟁문양은 파지릭 유적에서 자주 확인되는 요소이다. 그런데 열상동물문양은 파지릭 유적에는 없는 요소처럼 보였으나, 5호분 남성 미라의 왼쪽 무릎 아래(그림 2)에 그려져서 확인된다. 즉 여성은 동물투쟁문양, 남성은 열상의 동물문양이 각각 팔과 다리에 그려져서 확인된 것이다.

 

*파지릭 유적 5호분 미라의 문신은 아래 포스팅참고

 

2020/07/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미라에 그려진 동물문양문신

 

2500년 전 미라에 그려진 동물문양문신

현재까지 알타이의 큰 고분에서 발굴된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 미라가 남아 있는 곳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일명 얼음공주), 파지릭 2호분의 남녀, 파지릭 5호분의 남녀, 베르흐 칼쥔 II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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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드립니다. 위 포스팅의 그림 10~13에 캡션이 잘못되어서 고쳤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는 그림 10~13을 파지릭 유적 2호분으로 적었는데, 5호분으로 정정했습니다. 지금의 것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아마 흥분해서 눈에 헛것이 보였나 봅니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동물투쟁문양이 생긴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지만, 사실 바샤다르 유적(기원전 6세기)의 예를 참고로 한다면 동물투쟁문양과 열상 동물문양은 이 유적에서부터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물투쟁문양은 파지릭 유적에서는 주로 펠트로 안장덮개의 장식으로 많이 확인되지만,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유물 중에는 금속제(그림 3)로도 많이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시다시피, 유물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 중인데, 끈에 끼워서 사용하는 용도로 제작된 것이다.

 

그림 3.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표트르 1세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맹수가 약한 동물을 공격하는 동물투쟁문양은 알타이에서만 확인되는 것이다. 알타이 보다 아래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의 산에서도 ‘수수께끼 그림’으로 불리는 여러 마리 구도의 동물문양장식이 헴칙 봄, 타스몰라 유적 등에서 확인되지만 알타이의 것과는 다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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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바샤다르 무덤 2호에서는 잣나무로 만들어진 통나무관이 확인되었다. 관에는 관의 덮개와 하부 모두에 호랑이와 여러 굽동물들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슴, 산양, 멧돼지 등이다. 호랑이를 제외한 나머지 동물들은 몸통의 문양장식이 일정한데, 어깨와 엉덩이 부위에 나선문양을 채운 것이다.

 

통나무관이 놓였던 무덤방 안에서도 사슴과 그리핀 등의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된다. 사슴은 가죽, 청동, 뿔로 만들어진 것이다. 가죽과 청동은 납작한 판으로 문양을 장식했다는 점에서 평면적이고, 뿔로 만들어진 것은 입체감 있게 제작된 것이다. 아주 얇은 염소가죽을 잘라서 만든 사슴문양(그림 1), 청동판에 찍어서 새긴 사슴(그림 2), 뿔을 깎아서 만든 사슴머리(그림 3)이다.

 

 

 

 

그림 1. 바샤다르 유적 2호 출토, 가죽, 사슴

 

아주 얇은 염소가죽인데, 붉은색으로 염색되었을 것이나, 발굴과정 중에서 검게 변했다.

 

 

 

그림 2. 바샤다르 유적 2호 출토, 청동판에 찍힌 사슴머리, 뿔이 없는 사슴이다.

 

청동판에 찍힌 동물(그림 2)는 만약 이 유물만 출토되었다면 어떤 유물인지 약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통나무관에 그려진 사슴의 눈표현과 거의 유사하다(아래포스팅참고). 통나무관에 새겨진 사슴문양도 눈이 둥글게 표현되었고 눈 주변을 동심원문으로 둘러 싸고 있는데 비슷하다.

 

2020/07/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바샤다르 유적] - 2600년 전 시베리아 잣나무관, 동물문양, 나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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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바샤다르 유적 2호 출토, 뿔로 깍아서 만든 사슴머리

 

청동판에 찍힌 동물이 한 점 더 있는데, 반쯤 사라진 그리핀(그림 4)이다. 그림 2의 사슴과 같이 얇은 청동판에 찍은 모양인데, 날개를 펴고 있으며, 부리와 다리가 과장되게 표현했고, 독수리 머리에 귀를 붙인 하이브리드 동물표현이다. 부리와 다리는 나선형에 가깝게 표현되었다.

 

 

 

그림4. 바샤다르 유적 2호 출토, 청동판에 새긴 날개 핀 그리핀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그리핀의 여러 자세 가운데서 날개를 편 그리핀이 출토되는 유적으로 이 유적을 소개한 바 있다. 목제로 제작된 그리핀으로 청동판에 새겨진 그리핀과 거의 같은 표현이다. 무덤방의 바깥쪽인 말 매장 구역에서 출토되었는데, 안장장식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2020/04/2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바샤다르 유적] -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 무덤 속, 날개 편 그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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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정확하게 유물의 용도는 알 수 없지만 무덤방의 남동쪽 모서리 부근에서 출토되었는데 각종 가죽조각과 비드(목걸이)와 함께 출토되어서, 일종의 장신구 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 확인된 동물문양은 통나무관 뿐만 아니라 무덤방 안의 동물문양에도 나선문양이 주요한 문양장식이다. 말을 장식한 굴레장식도 사실적 표현보다는 기하학적인 표현에 가깝다.

 

그리고 사슴문양은 유라시아 동물문양장식 중 가장 널리 사용된 문양이다. 무덤 속에 들어가는 문양모티브 였을 뿐만 아니라 암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현재 소개하고 있는 바샤다르 유적은 기원전 6세기 경의 유적이지만 이 보다 더 오래된 시베리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사슴이 바위에 그려진다.  암각화 주제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처럼 바위그림이 많이 없는 곳에서도 사슴은 확인된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육상동물가운데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사슴문양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신석기패총에 남아 있는 가장 많은 뼈는 사슴이다. 사슴뼈는 곧고 단단해서 도구 만들기에 가장 좋은 뼈라고 한다.

 

유라시아 대륙 각 지역에서 시간과 지역에 따라서 사슴의 표현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사슴을 공통적으로 그린다는 사실이다. 

 

 

 

그림 5. 키르기스스탄의 촐본아타 암각화 박물관, 사슴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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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ogliphs Museum

★★★★☆ · 박물관 · Cholpon Ata

www.google.co.kr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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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