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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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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스키타이 문화사람들이 묻힌 장소인 유스티드 XII 유적에는 인간도 2명 이상 매장되지만 말도 2필 이상 매장되는 경우가 있다. 3호, 10호, 13호, 16호, 23호, 25호이다. 그 중에서 사람은 1인이 부장되었으나 말 2필 이상인 경우는 3호, 10호, 13호, 25호이다. 16호와 23호에는 사람도 1명 이상이다.

 

그렇다면 사람 1명과 말 2마리가 부장된 무덤의 주인공은 유물도 많았을까?

10호와 13호는 인간의 뼈가 흐틀어진 채 발견되어서 후대에 무덤이 열렸을 가능성도 있어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림 1. 유스티드 XII유적의 3호 무덤, 1-재갈, 2-4: 금박으로 만든 유물, 5-거울, 6-말사슴 송곳니, 7-원판모양의 단추, 8-거울편,9-칼과 검 모형, 10-소형화 된 전투용 도끼, 11-전투용 도끼 연결을 위한 가죽띠, 12-달모양 장식판, 13-화살, 14, 15-칼, 16, 17-쟁반, 18-검은색 물감의 흔적, 19-검게 물들인 가죽 주머니, 20-항아리; 철제(1), 금박(2-4), 청동(5,8,14,15), 뼈와 뿔(6,13), 청동+나무+가죽(9,10,11), 가죽(11), 나무(7,12)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3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1과 일치

 

그림 3. 유스티드 XII유적의 10호 무덤, 1,2-재갈, 3-거울과 주머니, 4-말사슴 송곳니, 5-칼 편, 6-직조물 조각, 7,8-항아리 2점, 9-굴레장식, 10-금박장식, 11-낙엽수 껍질, 철제(1,2,5); 청동(3), 뼈(4), 실크(6), 토제(7,8)

 

 

그림 4. 유스티드 XII유적의 10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3과 일치

13호는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5. 유스티드 XII유적의 25호 무덤, 1,2-재갈+재갈멈치, 3,4-굴레장식, 5,6-사다리꼴 장식판(안장의 부속품), 7-항아리, 8-잔의 손잡이, 9-칼, 10-손잡이가 끼워진 도끼, 11-활, 12-사슴머리장식, 13-말의 장식, 14-새장식, 15-동물장식의 편, 16-황금 장식판, 17,18: 목걸이 끝장식, 19,20: 황금제 목걸이 끝장식, 21-목걸이 장식편, 22-반구형 장식판, 23-이빨모양 장식판, 24-거울, 25-거울주머니 장식아플리케, 26-허리끈 장식, 27-30: 아플리케 장식(옷), 31: 쟁반편. 철제(1,2,9,10), 목제(3,4,8,11-15, 17,18,21,26,27, 31), 뿔(5,6), 토기(7), 황금판(16,19,20,23), 청동+철+황금판(22), 청동(24), 가죽(25,28-30)

 

그림6. 유스티드 XII유적의 25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5과 일치

 

그림7. 유스티드 XII유적의 25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6과 일치

 

 

3호(구덩이 크기 225×323cm, 나무방 175×125cm)와 25호(구덩이 크기 240×329cm, 나무방182×105cm)는 모두 인간 1명과 말 2필이 매장된 무덤이다. 3호는 여성, 25호는 남성의 무덤이다.

3호에는 도끼, 화살, 칼 등 3종 스키타이 무기가 있으나, 도끼와 칼은 소형화된 이미테이션이다. 3호는 인골은 부장된 상태 그대로 였으나, 무기(그림 1-9,10,11,13)와 청동거울(그림 1-8)의 위치가 거울과 무기는 대부분 다리뼈 혹은 골반 주위에서 출토되는데 여느 무덤과는 다르다. 거울은 깨진 채로 출토된 적이 거의 없는 점도 다르다. 게다가 머리 위에서 확인된 금박유물은 모자장식이었는데 그 부분도 의심스럽다. 10호와 13호는 인골의 위치가 비정상적이라는 점에서 언제 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도굴되었을 수 있다.

 

 

앞서 살펴본 19호무덤에는 인간1명과 말 1필이 매장된 무덤으로 25호(인간 1명, 말 2마리)와 무덤구조가 거의 유사하다. 무덤 간의 차이는 있지만 부장품의 양이나 질이 확연하게 차이가 있지는 않아 보인다. 19호에 있는 여러 장식(그리핀 포함)은 여성의 의복이나 머리장식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25호에서는 맹수장식은 남성용 목걸이 장식이며 실제 크기의 투부(전투용도끼)와 화살도 남성의 것이다.

그래서 인간 1명에 말 2필이 들어간 무덤과 말 1필 무덤의 부장품의 차이는 여성용과 남성용 정도로 생각된다. 그러나 남성무덤에만 말 2필이 들어간다고 할 수 없는 것은 3호의 여성무덤에도 말 2필이 부장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에 위치한 유스티디 XII유적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 26기가 일렬로 배치되었다. 그 가운데는 혼자 묻히는 단인장 외에도 다인장으로 2명 혹은 3인이 매장된 경우가 있다. 2명이 들어간 무덤은 4호, 8호, 16호, 17호, 20호가 있다. 그 중 20호에는 성인 남녀가 함께 매장된 무덤이다.

 

무덤구덩이는 장방형(268×229cm)로, 무덤방(134×165cm)은 남쪽에 치우치게 설치되고, 구덩이의 북쪽 남은 공간에는 말이 부장되었다. 두 사람의 두향은 동향이다.

무덤구덩이의 남쪽에는 무덤방, 남는 공간 북쪽에 말이 매장되는 것은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 무덤에서 모두 일치한다. 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부터 알타이에서는 스키타이 문화가 발견된다.(투바의 아르잔-1호는 알타이 지역권이 아니다)

 

 

 

 

그림 1. 유스티디 XII유적의 20호 무덤, 1-재갈, 2-안장장식판, 3-장방형 버클장식판, 4,5-토기, 6-잔의 손잡이, 7-칼, 8-산양화 된 사슴의 조각품, 9-11: 말 형상품, 12: 사슴머리 장식판, 13-금판제 말머리, 14-금제 장식판, 15-S자형 장식판, 16-나무잎모양 장식판, 17-원뿔모양 장식판, 18-고리모양 귀걸이, 19-고리모양 귀걸이, 20-구슬, 21-목걸이 모형,22-맹수머리모양의 목걸이 끝장식, 23-그리핀 모양의 목걸이 끝장식, 24-허리띠 장식, 25-전투용도끼와 연결되는 허리끈의 장식, 26-손잡이 달린 도끼, 27-검, 28-칼, 29-주머니, 30-모형 거울, 31-깨진 목제쟁반, 32-낙엽수의 껍질, 33-동물뼈와 숯

 

 

 

 

그림 2. 유스티디 XII유적의 20호 무덤, 그림1과 번호 일치

 

 

 

 

그림 3. 유스티디 XII유적의 20호 무덤, 그림1과 번호 일치

 

 

철제품-(1,7), 뿔(2,3), 토제(4,5), 목제(6,8-12,23,24,28,30), 금박(13-17), 금제 주물(18,19), 2남색유리-(20), 가죽+청동+금박-(21), 목제+금박-(22), 가죽(25, 29), 나무+청동(27)으로 유물은 제작되었다.

 

무기 가운데서 검과 칼은 여성인골의 부장품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아르잔-2호에서도 남녀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무기 가운데서 여성이 가지지 않는 것은 활과 시위를 넣은 화살통 즉 고리트와 전투용 도끼이다. 전투용도끼와 연결된 벨트도 남성만이 착용한다.

 

21번 목걸이는 나무로 된 둥근 고리 모양에 목의 뒷부분은 청동을 달아서 연결한 것이고, 앞 부분에는 맹수장식이 마주보도록 달린 것이다. 비슷한 유물이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도 있다. 

2020/07/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베르흐 칼쥔 2유적] - 2500년 전 시베리아 남성미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2500년 전 시베리아 남성미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2500 년전 시베리아의 얼리 어답터인 기마전사(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는 새머리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깔모자는 스키타이 사람들의 표식물과도 같다고 했다. 헤로도투스도 스키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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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모두 목걸이(그림 2-22,23)를 착용했다. 목걸이 끝에는 맹수장식과 그리핀이 표현되어 있다. 특히 그리핀(2-23)은 19호 여성의 그리핀과 비슷하다.

솔직히 말해서 앞에서 보았단 그리핀 보다는 덜 조합? 덜 성형된 듯한 느낌의 잘 만든 그리핀은 아니다. 그러나 19호의 그리핀은 입은 독수리, 눈과 머리는 산양 혹은 사슴, 갈기와 날개가 붙어 있으며 맹수의 자세를 하고 있어서, 합성동물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것보다 약간은 더 못생긴 것이 20호의 그리핀이다. 물론 그림이 좀 별로 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20호는 성인남녀가 함께 묻힌 점은 검토대상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스티드 계곡 전체에서 확인된 봉분은 44기이고, 그 가운데 무덤은 71기이다. 그 중에서 여성은 33%, 남성은 30%이고, 나머지는 아이의 무덤이다.

유스티드 계곡에서 확인된 봉분의 수와 무덤의 수가 차이가 나는 것은 봉분(쿠르간)아래에 무덤이 1기 이상 들어가는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봉분 아래에 무덤은 1기씩이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확인된 남성의 무덤은 2호, 13~18호, 23호, 24호, 25호이다. 나머지는 여성 혹은 아이의 무덤 및 부부의 묘도 있다. 어린아이의 무덤은 무덤방의 크기가 작다. 그래서 일일이 무덤방 크기를 살펴보아야 어린아이와 여성의 무덤은 구분할 수 있다. 책에 적어놓았다면 별일이 아니었을 텐데,,,그렇지 않기 않다.

또한 어린아이도 남성과 여성이 구분되는데, 이 점은 어떻게 알 수 있을지.....

 그런데 앞서 살펴본 어린아이의 무덤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이 있었다. 이 유적의 1호분이 남성전사 2인의 무덤이었는데 출토유물이 거의 유사했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의 부장품 중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을 추출해서 어린아의 무덤에 대입해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살펴본 19호 무덤은 여성의 무덤이다.

필자는 처음에 남성의 무덤이라고 생각했는데, 모자장식 때문이다.19호 피장자의 머리 위에 놓였던 사슴장식은 베르흐 칼쥔 II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모자 장식과 유사하다. (모자장식 아래에 그린 것은 검은색 물감의 범위(그림 1-29)이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여성과 어린아이의 무덤으로 퉁쳐서 적어 놓은 적어 놓은 문구 가운데 19호가 포함된다는 점을 알 았다.

 

2020/02/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 년 전,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45세 남성전사

 

2500 년 전,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45세 남성전사

2500년 전 유라시아 전 지역을 휩쓸고 다녔던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묻혔는데,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여성과 동시대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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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베르흐 칼쥔 2유적]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남성미라의 헤어스타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남성미라의 헤어스타일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스키타이 문화에서 일종의 지역문화)에서 남성은 고깔모자 및 투구형 모자를 썼다는 점을 알려드린 바 있다. 2020/01/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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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성 모자도 파지릭 2호분과 아크알라하 3유적 처럼 아무 장식 없는 고깔모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하긴 위에서 살펴본 두 유적의 남성모자는 새머리고깔모자이고 사슴장식은 그 옆에 붙은 것이었는데, 유스티드 XII유적 19호는 사슴장식만 있는 것이니 면밀히 따지면 다르기는 하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 출토된  바늘(그림 1-25)과 통형으로 생긴 나무장식(그림 1-24)은 여성의 무덤에서 출토된다고 한다. 앞에서 살펴본 아크 알라하-1 유적의 1호 남성 전사의 무덤과 비교해 볼 때 없는 유물은 무기, 허리띠에 달던 장식, 목걸이 등이다. 목걸이는 여성 무덤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에 목걸이는 성별을 알 수 있는 유물은 아니다.

무기도 활과 화살, 투부(전투용 도끼), 검과 칼 중에서 검과 칼은 여성 무덤(아크 알라하 3유적,아르잔-2호의 5호 여성)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성별을 나타내는 유물은 아니다.

2020/01/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시베리아샤먼 ? 얼음공주? 부장품의 의미

 

2500년 전, 시베리아샤먼 ? 얼음공주? 부장품의 의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는 무덤방 안과 관속에서 유물이 확인되었다. 관의 뚜껑을 열자 얼음속에서 가장 머저 드러난 것은 머리부분이다(그림1). 이 여성은 오른쪽으로 누웠으며, 무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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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펴보겠지만 활과 화살은 모든 남성의 무덤에서 출토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활과 화살이 없다고 여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하나씩 살펴보면 약간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어제 빠진 유물 가운데 토제 항아리의 위치는 그림 1-27, 나무손잡이가 달린 목제 잔은 그림 1-28에 위치한다. 목제 잔은 상태가 너무 않좋았다고 한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을 비롯한 대부분의 무덤에서 확인된 토기는 19호에서 역시 주인공이 마주보는 곳 가장 위쪽에 놓여 있었다.

 

그림. 유스티드 XII유적의 18호 무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쿠바레프 1991, 유스티드 쿠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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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해발 2000m 유스티드 계곡에는 이 강의 본류인 추야 강 입구에서 사슴돌과 케렉수르가 복합된 제사유적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 서 있는 사슴돌 주변을 둘러싼 고리 모양의 돌 무더기를 발굴했다. 이 유구는 케렉수르와 같이 둥글게 돌을 두른 적석시설과는 그 모양에 차이가 있지만 제사시설인 것이 알게 되었다. 특히 서 있는 사슴돌 옆에 누운 사슴돌에는 맹수 혹은 그리핀 4점이 그려져 있었다.

 

유스티드 계곡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알타이의 지역문화인 파지릭 문화의 유적이 존재하는데 그곳에서 발견된 그리핀은 맹수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유스티드 XII유적이다.

 

그림 1. 유스티드 계곡의 고분 유적, 기원전 5세기 파지릭 유적 뿐만 아니라, 흉노시기 및 초기투르크 시대까지 유적은 계속 사용되었다. 1-유스티드 XIII, 2-유스티드 XII, 3-유스티드 III, 4-유스티드 I, 5-졸린 I, 6-졸린 II, 7-유스티드 XXII

 

 

유스티드 계곡에서 발굴된 유적 가운데 맹수자세를 취한 그리핀이 출토된 유스티드 XII을 살펴보자. 이 유적에서는 모두 28기(2~29호)의 무덤이 발굴되었고, 그 중에 28호와 29호를 제외한 26기는 모두 기원전 5세기부터 시작되는 파지릭문화의 유적이다.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무덤, 검은점-발굴된 무덤, 동그라미-발굴되지 않은 무덤, 점선동그라미-돌을 돌린 유구(원형고리유구), 발굴하지 않은 무덤은 1호뿐이다. 1호 앞에 지나가는 선은 타샨타 마을로 가는 시골길이라고 적혀있음. 열을 벗어난 무덤 28호와 29호만 다른 시기의 무덤이다. 28,29호 알타이 초기투르크문화.

 

 

(필자가 공유지도로 들어가서 보시면 희미하게 봉분이 보인다. 일주일 이상 계속 위성사진으로 쳐다보고 있지만 누렇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구글위성사진은 날씨에 따라서 잘 보일때도 있는데, 아직은 유스티드 계곡은 잘 관찰되지 않는다. 여러분도 한번씩 살펴보면 재밌을 듯. 연해주의 발해성도 날씨 좋은 날은 아주 뚜렷하게 보일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비슷해 보이지만 각 무덤마다 약간씩 특징이 다르다. 무덤시설, 사람 수, 부장유물들이 차이가 있다. 소개할 무덤은 생각나게 하는 유적이 있는데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전사이다. 또한 투바의 아르잔 2호도 떠올리게 한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쿠바레프 1991, 유스티드 쿠르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핀은 맹수와 맹금의 조합으로 제작된다. 알타이에서는 주로 독수리머리와 호랑이 몸이 합체된다. 2500년 전 남성전사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1유적과 여성샤먼의 무덤(일명 얼음공주)인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 말의 굴레장식의 용도로 만들어졌다. 나무로 제작되고, 금박으로 싸서 말을 장식했다. 이보다 이른 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유적에서는 호랑이머리와 독수리머리가 합체된 그리핀이 굴레장식으로 사용되었다. 호랑이 머리 아래에 양쪽으로 독수리 머리를 붙인 것이다. 독수리 머리를 구름처럼 간략하게 표현해서 추상화 시킨 유물도 두 유적에서는 많이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투엑타 유적과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맹수의 머리와 초본류가 합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있었다.

 

2020/07/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투엑타 유적] -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 그리핀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 그리핀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에서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어떻게 조합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었다. 그런데 부족한 점은 독수리머리 그리핀과 독수리를 구분할 수 있는데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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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지역의 동쪽 끝인 동 사얀 지역인 투바에서는 2700년 전 아르잔-2호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리핀이 있다. 퇴장지 1호에서는 청동 재갈멈치의 양쪽 끝에 호랑이가 묘사되었고, 굴레장식으로 새 머리가 출토된다. 세트로 착용되었다. 3호에서도 새의 머리가 묘사된 청동 재갈멈치가 나온다.

상상의 동물을 한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한 마리의 말에 두 동물을 배치해서 두 동물의 이점?을 모두 가지려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이 생겼을 수 있다.

이 시점에는 아직 그리핀이 한 몸으로 합성되지는 않았지만 한 마리의 말에 두 동물을 배치해서 그 효과를 누렸을 수 있다.

 

흑해에서는 그리핀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은제 거울에 묘사되었다. 이 물에는 합성된 인간과 동물이 여럿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반인반수의 합성동물 아래에 독수리 부리+맹수의 몸+날개가 합성된 그리핀이 있다. 날개달린 맹수 가운데 호랑이와 사자가 아닌 곰?에 날개달린 합성동물도 있다.

흑해의 독수리 머리 그리핀은 켈레르메스 유적과 프레페야하 유적에서 출토된 장식판도 비슷한 형상이다. 흑해의 그리핀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에서 나오는 그리핀은 독수리와 사자의 결합으로 기원전 6세기 말에서 기원전 5세기가 되어야 나타난다고 한다(시쿠르코 1982). 그런데 그리스 기원설에 대한 논점이 다시 제기되었는데(스키타이 문화의 초반인 18세기, 19세기에 유행하던 설), 스코로이(1996)가 주장했다. 앉은 자세, 짧은 부리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유물에서 볼 수 있고, 들어올린 날개 표현은 그리스와 근동을 통해서 스키타이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핀 그리스 기원설에 불을 다시 짚힌 것이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5세기부터 시작되는데, 스크로이가 주장한 프레피야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그림 1)은 기원전 7세기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쿠르코가 주장한 바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들어올린 날개표현은 시베리아에서 이미 기원전 7세기 이전에 날개를 편 유물이 있기 때문에 만약에 흑해에서 자체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가 아닌 시베리아에서 이곳으로 전해졌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유행하는 것이 더 쉽다.

 

그림 1. 프레피야하 유적에서 출토된 장식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나 덧 붙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로 인해서 이런 주장이 쉽게 제기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크로이는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페르프레하도 역시 현재는 우크라이나 국경내의 유적이다. 관계가 좋지 않은 러시아(시베리아) 보다는 그리스와의 관련설을 제기하는 것이 훨씬 자신의 입지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흑해 유적의 연구자료들을 보면 우크라이나가 독립되고 난 후와 그 전의 연구경향에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유물이 미국에서 전시되면서 그리스 발생론을 그대로 소개하는 경우가 생겼다(Scythian gold 1999).

 

 

 

참고문헌

А.И. Шкурко, 1982, Фантастические существа в искусств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юге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Ч. 2. / Тр.ГИМ. Вып. 54. М.: 1982.(스쿠르코 1982, 초원 스키타이의 예술에서 상상의 주제(동물)에 대해서)

Скорый С.А. Вооружение скифского типа в Средней Европе (к вопросу о связях Скифии и населения Средней Европы): Дисс. … канд. ист. наук // НА ИА НАНУ. — Ф. 12/611.(스크로이 유럽중부지역에서 스키타이 유형의 무기에 대해서...박사학위논문 요약본)

Ellen Reeder, 1999, Scythian Gold, Harry N. Abrams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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