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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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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네프르강 하류에 위치한 기원전 4세기 모노드비노프 쿠르간은 높이 8m, 직경 20m가량이다. 솔로하 유적,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과 같이 중심부와 측면에 무덤방이 따로 있는 구조이다. 중심 무덤방은 4개의 방이 붙은 형태이고, 입구는 봉분의 중심으로부터 하강하는 형식인데, 발굴당시에 이미 심하게 도굴당했다. 이곳에는 남성과 그의 하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함께 매장되었고, 청동솥과 암포라(그리스식 항아리)가 남아 있었다.

 

다행히도 측면의 무덤방은 완전하게 남아 있었는데, 그곳은 여성이 매장되어 있었다. 이 여성은 모자를 쓰고 있었고, 화려하게 장식된 옷을 입고 있었다. 원형의 꽃장식과 새(bird)로 장식되었다(그림 1). 새 장식은 모자의 정수리 부분에 장식되던 것인데, 고깔모자로 생각된다(야센코 2006). 그래서 이 여성의 모자는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 체르토믈리크 유적,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등 원통형의 모양과는 다르다. 물론 여성도 당연히 목걸이, 반지, 팔찌 등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림 1. 모노드비노프 쿠르간의 모자장식

 

그림 2. 모노드비노프 쿠르간의 나무 항아리

 

그리고 이 여성과 함께 나무로 된 항아리가 2점(그림 2)이 발견되었다. 항아리의 동체부가 둥글고 손잡이가 붙은 것이다. 기원전 4세기의 드네프르강 유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형식이다.

 

기원전 5세기 이후 흑해북안에서 나오는 여성의 모자는 원통형이 많다. 하지만 몇몇 유적에서는 고깔모자를 썼던 여성도 발견된다. 하지만 정수리에 새(鳥)로 장식한 예는 아직까지는 이 유적이 유일하다.

 

이 여성의 옷에는 방형의 장식판이 붙어 있었는데, 각배를 들고 술을 마시고 있는 스키타이 남성과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이 마주보고 있는 장면이다.

 

참고문헌

Яценко С. А.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М(야센코 2006, 고대 유라시아의 의복)

М. Ю. Вахтина, Ю. А. Виноградов, М. В. Медведева [и др.], Первый Мордвиновский курган = The First Mordvinovcky burial mound, Российская академия наук, Институт истории материальной культуры. -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 ИИМК РАН, 2021. - 230,с. (바흐티나, 외 2021, 모르디비노프카 쿠르간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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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19. 09:22 고깔모자와 코트

 

해발 2500m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묻힌 남성(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은 시신이 미라로 처리되었으며 새머리 고깔모자를 썼다. 인접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와 2호에서도 인골은 발견되었으나 미라로 처리된 것은 아니다. 필자가 이들 모자를 새머리 고깔모자라고 퉁쳐서 말하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따지고 들면 다르다.

2021.10.18 - [고깔모자] -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모자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모자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의 알타이에 묻힌 남성들은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오늘은 머리에 쓴 모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해발 2500m의 가장 높은 곳에 매장된 남성들은 필자가 이전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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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모자는 새머리를 펠트로 조각내고 그 상단에 굽동물장식을 세운 것이지만, 아크 알라하-1 유적의 모자는 새머리 자체가 목제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유적에서 나온 유물을 바탕으로 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추야 강, 바르부르가지 강, 우르술 강의 유적등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머리 맡에서 출토된 유물을 살펴본다면 좀 더 뚜렷해질 것이다. 이미 쿠바레프가 이들 유적을 보고 할 당시에 모자장식이라고 보고했다.

 

그런데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모자는 2종류가 있었고 그 중에서 요란한 장식이 붙은 모자(그림 1)는 매우 유니크 한 것이다. ‘ㄱ’ 자로 꺽어지는 맹금의 목에는 새 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맹금은 입에 사슴머리를 물고 있는 있는 모습이다. 펠트로 만들어진 모자에 부착해서 장식되었다고 추정한다.

어린 소년의 무덤에서 기본 틀이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 울란드리크 II유적의 8호에서 발견되었다. 물론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모자 만큼 화려하지 못하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모자 1

그림 2.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오른쪽)와 울란드리크 II유적의 8호(왼쪽)

 

또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모자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펠트로 제작된 것으로 고깔형태는 아니다. 대신 정수리에 사슴뿔을 상징하는 펠트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다.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모자

 

그림 4.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1호 남성모자

 

그런데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 남성에게도 비슷한 모자(그림 4)가 있었는데, 고깔 부위가 없는 것으로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모자와 비슷하다. 이들 모자를 투구와 흡사하다고 해서 투구형이라고 불렀다.

 

현재로써 알 수 있는 기원전 5세기 알타이 남성의 모자는 대략 3종류 정도 된다. 물론 더 있었을 수 있지만 남아 있고 발굴조사로 알 수 있는 것은 이것 정도이다. 가장 실용적인 것은 마지막에 소개한 것이다.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들 모자를 알 수 있는 것은 실제 남아 있는 유물 외에도 각종 유물에 남아 있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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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를 할 때 내편과 니편을 표시하는 방법은 유니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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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18. 09:22 고깔모자와 코트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의 알타이에 묻힌 남성들은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오늘은 머리에 쓴 모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해발 2500m의 가장 높은 곳에 매장된 남성들은 필자가 이전 포스팅에서 새머리 고깔모자라고 지칭한 모자를 쓰고 있다. 고깔의 가장 꼭대기 부분에 새머리가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자 자체는 펠트제이고 동물장식은 목제만 남아 있지만 금박으로 장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머리 고깔모자라고 지칭했지만 자세히 보면 새머리 위에는 산염소 혹은 사슴장식이 더 위에 있다. 굽동물의 뿔이 없어진채 발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동물로 특정하기는 힘들다. 새머리 고깔모자가 발견된 무덤은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같은 유적 1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와 2호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는 소년의 무덤인데, 새머리 대신에 황소가 달려 있지만 모자 자체는 거의 같은 형식이다. 이 중에서 미라로 시신이 처리된 것은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

 

그럼 이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것일까?

추야강 계곡의 울란드리크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예를들면 울란드리크 IV유적의 2호분 출토품 가운데 말을 장식한 유물은 아크 알라하-1 유적과 유사하다고 이미 이야기 했다.

 

 

2020.10.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 알타이 울란디르크 계곡의 가장 오래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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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에서 고대 자연도로 역할을 한 추야 강의 지류인 울란디르크 강 주변에는 현재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8개가 알려져 있다. ‘울란디르크’라는 명칭을 쓴 유적은 I~V번이고, 타샨타 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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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무덤은 남녀가 매장되었는데, 머리맡에서 목제 동물장식들이 발견되었는데, 아크 알라하 1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알라하 3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같다.

 

그림 4. 울란드리크 IV유적 2호분, 상단 남성 하단 여성

 

특히 이 여성의 머리 장식은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발견된 복잡한 가채에서 발견된 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머리 복원

 

울란드리크 IV유적 2호의 남성은 위에서 말한 해발 2500m의 남성들과 같은 모자를 착용했을 것이다.

 

다시 파지리크 유적으로 돌아가서 파지리크 2호에는 남녀가 매우 특이한 모자 혹은 머리장식이 발견되었다. 변형된 동물이 장식된 것은 남성, 원통형 머리장식 끝에 말총이 달린 것으로 매우 유니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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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서부지역은 우랄산맥의 남부지역으로 카스피해로 흘러가는 우랄 강이 흐르고 있다. 이곳에도 스키타이 문화권의 특징이 있는 유적이 남아 있는데, 인접한 볼가 강의 대표적인 필리포프카 유적과 인접해 있으며 동시대의 유적이어서 비교가능한 요소들이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의 3호에서는 골제로 만든 말탄 전사가 조각된 인간형상물이 발견되었다. 이 말탄 전사는 알타이의 전사들과는 달리 모자를 쓰지 않은 채로 표현되었다. 필리포프카 1유적의 동쪽벽에서 발견된 여성에게도 모자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탁사이-1 유적의 6호분은 이제까지 본 모자와는 다른 모자장식이 발견되었다. 모자의 프레임을 그대로 알 수 있는 유물인데, ∧모양으로 가장 높은 곳에는 동물장식이 달려 있다. 고깔모자의 프레임을 따라서 금 판으로 V를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금판은 단면을 ∪형으로 구부린 것으로 고깔모자에 착장하기 위해서 안을 비운 것이다. 상단에는 수염달린 산염소의 머리를 달았고, 금판 막대기의 끝에도 고리를 달고 그 끝에 장식판을 달아서 마무리 했다. 프레임 전체 높이가 48.9cm이다(그림 1).

 

 

그림 1. 탁사이-1 유적 6호분 고깔모자 프레임

 

그림 2. 탁사이-1 유적 6호분 고깔모자

 

고깔모자를 쓴 남성들은 모자에 장식이 붙은 모자, 단순한 고깔모자(빳빳한 재질), 축 처지는 고깔모자(상의에 붙은 것)로 구분되고 모자 없는 남성들도 종종 있다.

 

여성은 좀 더 복잡하다. 단순한 고깔모자 아래에 높은 가채를 쓴 머리 스타일(아크 알라하-3 유적), 원판형 목제 모자에 높게 올린 머리카락의 구조로 된 복잡한 가발장치는 파지리크 유적-2, 표트르 1세의 수집품 안에서 발견된다. 반면에 흑해지역에서는 삼각뿔 모양의 장식판을 머리에 쓰고 베일을 드리운 여성 머리장식이 카라고이데야쉬흐 유적의 삼각판을 통해서 알 수 있다(아래 포스팅). 이 외에도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비슷한 스타일로 추정된다.

2020.12.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쌍두마차 탄 스키타이 태양신

 

쌍두마차 탄 스키타이 태양신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전차의 모습을 2종류를 보았다. 알타이 파지릭 5호분에서 발견된 4륜의 나무로 된 마차와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2륜의 마차이다. 각각 4륜의 마차(파지릭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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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사이-1 유적의 고깔모자 V자형 금판 프레임은 여성이 고깔모자를 썼다는 점은 알 수 있지만 알타이 보다는 낮고 장식이 달린 유물이라는 점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유적에서 나온 목제 빗(그림 3)에는 3명의 남성이 표현되어 있는데, 전차를 타고 있는 남성 2명과 마주보고 있는 남성은 귀를 덮은 고깔모자를 쓰고 고리트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키타이 남성임을 알 수 있다. 전차를 탄 남성은 페르시아 인으로 추정된다. 목제 빗(그림 3)이라고 명명되었지만, 사실 빗의 용도보다는 영웅담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제작되었고 고깔모자를 쓴 여성과 함께 부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림 3. 탁사이-1 유적 목제 빗

 

여러모로 탁사이-1 유적과 필리포프카 유적은 비교할 수 있는데, 탁사이-1 유적에서는 남녀 모두 고깔모자를 썼을 수 있지만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보이지 않다. 우랄 남부지역은 유럽 스키타이 특징과 시베리아 특징이 모두 보인다는 맥락이 이 점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

 

참고문헌

 

Сдыков М.Н., Лукпанова Я.А. Ранние кочевники Запад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на примере комплекса Таксай I). – Уральск: Полиграфсервис, 2013. – 292 с (스디코프, 루크파노바 2013, 카자흐스탄 서부의 이른 유목민(탁사이 1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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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동남부의 알마티 시와 가까운 곳에는 ‘이식’이라고 불리는 거대 봉분이 있는 무덤 150기가 있는 유적이 있다. 이곳에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17세기 까지 거의 천년 동안 무덤으로 사용된 유적이다. 그 중에서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무덤은 15세 가량의 소년이 화려한 복장을 입은채 묻힌 무덤이다. 물론 이 무덤도 도굴된 채 발견되어서 정확한 무덤의 구조는 알 수 없다. 인접한 베스샤타르 유적을 참고로 할 때 지상위에 무덤을 축조하고 그 위를 돌로 덮었던 구조였다는 점만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소년은 황금장식을 화려하게 치장한 붉은 색 옷을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황금인간’이라고 불린다. 특히 소년은 높이 60~65cm 가량의 고깔모자(직경 22cm)를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깔모자에는 각종 동물장식 및 자연(산)을 형상화 해 붙였던 황금장식으로 인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림 1. 이식 출토, 두개골과 고깔모자의 황금장식 출토장면

 

그림 2. 그림 1의 복원도

 

간접적으로 스키타이 사람들이 고깔모자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기록과 페르시아의 궁전(그림 3-2)에 남아 있다. 헤로도투스가 쓴 역사에서 다른 민족과 구분하는 스키타이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로 고깔모자를 언급한 바 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궁전에도 스키타이 사람들을 표현할 때 귀를 덮는 고깔모자가 표현되었다.

 

그림 3. 흑해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 속 남성, 2: 아케메네스 궁전벽, 스키타이 사람들

 

 

유물 속에서는 흑해 지역의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항아리 속(그림 3-1)에 여러 남성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까운 알타이에서는 실물자료가 발견되었다. 파지리크 유적 및 가장 높은 곳의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전사, 아크 알라하-1 유적의 1호 남성 전사 들도 고깔모자를 착용했다. 뿐만 아니라 추야강 계곡의 남성전사들 무덤에서도 두개골 상단에 모자에 달았던 장식이 발견되어서 대부분 고깔모자를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림 4.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고깔모자

 

그런데 고깔모자도 종류가 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고깔모자(그림 4, 5)는 동물장식으로 모자를 꾸몄다. 모자의 끝에 새머리 조각을 붙여서 장식하는 것인데, 모자의 안쪽으로 끼우게 되어 있고, 고깔모자의 하단에도 산양이나 염소상을 붙여서 장식하는 스타일이다.

흑해지역과 인접한 지역(그림 3)에서 발견되는 고깔모자는 장식 없이 귀를 덮는 스타일이다. 대략적인 구분인데 세밀한 것은 차차 설명하도록 하자.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는 화려한 장식을 달았다는 점에서 알타이의 모자와 같은 아이디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깔모자의 가장 끝에 산양장식(높이 1.2cm, 너비 1.2cm)이 달려 있어서 모자의 끝을 동물장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같다. 또한 유적을 발굴한 아키세프는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도 펠트, 가죽, 자작나무 등으로 제작되어서 스키타이 문화가 끝난 뒤에도 아시아 여러 민족이 계속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알타이와는 다른 재질?로 제작되었고, 모자에 부착되는 동물장식의 종류와 위치, 재질의 차이가 있고, 모자의 높이도 다르다.

알타이 남성전사들의 모자는 펠트로 제작되었고, 동물장식을 나무로 만들어서 단 이유는 펠트가 저절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고깔모자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식 유적의 모자는 어떤 물질인지 정확하게 표기되지는 않았지만, 복원대로라면 매우 빳빳한 재질일 수 있다. 모자의 안쪽에 어떤 장치가 발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펠트는 알타이 무덤에서는 매우 많이 사용되는 직조물인데, 카자흐스탄의 산악지역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다.)

그래서 이식 유적의 모자를 만든 재질 자체는 유럽 스키타이 고깔모자와 가까울 수 있어서,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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