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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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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12 보이스만 문화의 유물 3
  2. 2018.01.10 보이스만문화의 유물2
  3. 2018.01.06 보이스만문화의 유물 12
  4. 2018.01.04 보이스만 문화의 편두(偏頭)2
  5. 2017.12.27 보이스만 문화 1

보이스만 문화는 처음에 보이스만-2 유적이 해안에 인접한 곳에서 확인되었고, 물고기잡이 도구가 많이 출토되면서 해양성문화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보이스만 문화의 토기가 연해주 내륙에서 유적이 확인되기도 해서 해양에만 관련된 문화로 보기는 힘들다.

 

보이스만 문화에서는 토기 이외에 뼈로 제작된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낚시, 작살, 바늘, 치레걸이 등이 있고, 조개로 만든 조개팔찌도 있다.

바늘은 바늘과 바늘통(그림 2)도 있는데, 두만강 하류의 서포항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연해주에서 바늘이 출토된 최초의 예이다. 이 보다 이른 시기인 앞서 포스팅 한 바 있는 루드나야 문화의 쵸르토브이 보로타 유적에서는 편직물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에도 가죽 이외에도 옷감을 짠 편직물과 기우는 바늘이 확인되는데,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예이다. 

 

그림1. 보이스만-2유적 출토 굽은 낚시바늘

그림 2. 보이스만-2유적 출토 작살(회전식)

그림 3. 보이스만-2유적 출토 바늘과 바늘통

그림 4. 보이스만-2유적 출토 석창(왼쪽 흑요석)

그림 5. 보이스만-2유적 출토 장신구


또한 옥으로 만든 옥 귀걸이(그림 5)도 있다.

대형작살(그림 3)은 회전식 작살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괭이 같은 땅을 파는 도구(그림 6-7), 나무 가공용 도끼(그림 6-1~7), 화살촉(그림 7-1~20) 등도 확인되었다.

앞선 문화와는 달리 흑요석제품(그림 4 왼쪽, 그림 7-26)도 출토되었는데, 창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자갈돌을 이용한 어망추(그림 7-21,22)는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다.

 

그림 6. 보이스만 문화의 석기 

그림 7. 보이스만 문화의 석기 

보이스만-2 유적이 패총인 덕택에 유기물질로 제작된 유물이 상당히 남았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1. 보이스만 문화의 1단계토기)

(그림2. 보이스만 문화의 토기 2단계)

보이스만 문화에서는 그림과 같은 토기가 출토된다.
시문구로 연속해서 찍은 토기이다.
각 층마다 시문방법(문양을 찍는 방법),  문양 범위 등이 다르다.
 특히 1단계와 2단계 토기의 구연부(그림1, 그림2)는 문양을 빽빽하게 시문하면서 마치 계단처럼 만들어졌다.

그러나 3단계가 되면서는 이러한 현상은 없어진다. 문양 시문방법에 변화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앞의 포스팅을 참고하면, 각 층의 연대를 알 수 있는데, 크게 단절 없이 연속적으로 문화층이 쌓였다고 볼 수 있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18?category=732912


그러나 1단계, 2단계와  3단계 사이에는 연대의 공백이 200년 정도 있으며 구연부의 모양차이 때문에 보이스만 문화 내에서도 구분할 필요도 제기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3단계와 4단계 사이가 문양이 가장 크게 변화하는데,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일반 독자가 볼 때는 그게 무슨 의미? 할지도 있지만 동아시아고고학에서 토기의 변화는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이다. 계통의 변화, 다른 지역으로 부터의 영향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앞서 포스팅한 루드나야 문화와의 토기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10?category=732912

http://eastsearoad.tistory.com/111?category=732912


고고학적으로는 다른 문화라고 여겨진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1. 보이스만-2 유적의 가장 하층토기, 원보이스만 문화의 토기)


보이스만-2유적에서는 모두 6개 문화층에서 출토된 순서대로 토기의 연대가 지정되었다.
토기는 시문구(문양을 시문하는 도구)를 찍은 토기이다.

층마다 토기의 문양이 다르다. 시문범위, 시문방법, 문양형태.
한 층은 어떤 연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토기가 모여 있다.
보이스만 2 유적의 가장 하층(1층)은 그 상층과는 토기의 그릇형태가 다르다. 바닥이 뾰족하다.
그 상층은 모두 바닥이 편평하다. 뿐만 아니라 토기 문양형태도 차이가 있는데, 구연단에만 토기문양을 시문하고, 시문구도 단순하다. 상층의 토기에 빗살같은 도구로 찍은 토기라면, 가장 하층의 토기는 단치구로 찍은 토기이다. 그래서 가장 하층 토기를 보이스만 문화와는 다른 원(原)보이스만 문화라고 한다.


1층 보다 상층에 위치한 2층~7층 토기는 보이스만 문화라고 한다.
표의 가장 윗단에서 출토된 토기가 가장 하층이다. 토층을 거꾸로 표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된다.


표의 가장 윗단에서 출토된 토기가 가장 하층이다. 토층을 거꾸로 표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된다.
표의 가로 방향토기는 같은 층에서 출토된 토기이다. 가장 끝에 있는 숫자는 그 토기가 출토된 층에서 검출된 탄소의 반감기로 측정한 탄소연대측정치이다. 지금으로 부터 몇 년 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표의 단이 바뀔 때 마다 즉, 층 마다
토기의 시문방법, 시문범위, 입술모양 등이 차이가 있다.


사실 토기연구는 고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연구이다. 적어도 동아시아고고학에서는.
그런데 아마 대중이 가장 재미없는 부분은 이 토기와 관련된 것일 것이다.
적어도 블로그에는 좀 쉽게 적고 싶은데.....

다음 포스팅에는 좀 더 보이스만문화토기를 소개코자 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보이스만-2 유적에서는 무덤이 확인되었다.

2점으로 나누어져서 확인되었는데, 단독으로 뭍인 경우도 있고, 집단으로 매장된 경우도 있다.

(그림1. 보이스만 문화의 집단매장묘)

주로 양 다리와 양 발을 모두 굽히거나 혹은 다리만 굽힌 경우도 있으며, 옆으로 뉘운 자세인데, 측와굴신장(側臥屈身)(그림2)이라고 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죽으면 사후강직이 일어나기 때문에, 굴신장은 의도적으로 묶어서 매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성으로 판명된 인골 옆에는 토기를 두고, 남성 인골 옆에는 활자루와 작살을 둔 흔적이 확인된다.


(그림2. 여성인골)

(그림3. 보이스만 문화의 남성인골)

앞서 무덤을 살펴보면, 무덤을 판 흔적이 없다. 무덤의 깊이가 아주 얇았거나 거의 파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보이스만 문화에는 두개골을 변형시킨 인골도 확인되었다. 이른바 편두(偏頭)의 습속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4. 보이스만2 유적 출토, 변형된 두개골)

(그림5. 극동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편두)

신석기문화에서는 장신구가 많이 확인되는데, 편두도 일종의 성형이라는 점에서 신석기인들이 미를 추구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의 의미는 사회적 위치이다. 

 편두 된 두개골의 모양은 정수리가 상당히 올라가게 변형되어 있다(그림 4). 두개골을 변형시킴으로써 자연적으로 머리변형으로 자신의 위치를 높이고자 했을 수도 있다. 모자를 쓴 효과를 내는 것처럼... 이것은 두개골의 정수리 부가 상당히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내린 추측이다.


주지하다시피 편두는 삼국지위서동이전에 가야인의 편두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는 실제로 김해예안리고분에서 출토되기도 해서 흥미로운 연구주제이기도 했다. 가야의 편두 습속이 일종의 DNA처럼 전해진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보이스만 문화의 편두와 가야의 편두를 연결시킬 고리는 충분하지 않다. 한반도 남부지방 신석기 유적에서 혹시 편두가 나온다면 또 모를까.....애매한 이야기이다.

고고학자료는 역사서 처럼 미주알고주알 적어 놓지 않아서 상상을 자극하기 좋다. 그러나 상상과 팩트의 경계는 어딜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이스만-2 유적은 패총 위에 무덤이 형성되어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보이스만 2유적의 전경, 지도상으로는 유적은 바다와 인접하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떨어져 있다)


연해주에서는 신석기시대에 무덤과 패총이 확인되었다. 앞서 설명한 바 있는 루드나야 문화와는 다른 토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남긴 유적이어서 다른 문화로 구분되었다. 이 문화의 이름은 보이스만 문화이다.

 보이스만-2유적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보이스만-2유적에서는 7000년 전부터 5000년 전 까지 6개의 층으로 문화가 변화해 온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 고고학 변화는 토기에서 관찰되는 것이 기본이다.
 
보이스만-2 유적은 연해주에서도 핫산지구 즉 제일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서 두만강 유역과의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 유적은 패총위에 형성된 무덤 유적이다. 현재의 위치는 앞의 지도와 같다. 패총은 주로 바다와 접한 곳에 생기는데, 현재의 위치는 바다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패총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동해의 기온이 계속 올라가서 유적이 바다와 접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바다와 가까운 시점이 6000년 전이다(그림 1,2,3,4).

그림 2. 6000년 전 보이스만 만의 해수면(코로트키 외 1996)(그림은 현재 극동대학교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사진찍은 것임)(64번이 보이스만 2 유적)

(그림 3. 현재의 해수면, (코로트키 외 1996)(그림은 현재 극동대학교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사진찍은 것임)(64번이 보이스만 2 유적)

그림 4. 동해의 기온변화(코르트키 1996, 김재윤 2017 재편집


패총유적이어서 뼈로 만든 골각기가 특히 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연해주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토양에 산성성분이 많아서 유기물질이 잘 남아 있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유적에 화재가 나거나, 패총 위에 유적이 형성될 경우는 뼈와 가죽과 같은 유기물질이 남아 있게 된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서 이 문화의 토기와 유물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