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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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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나야 강 유역의 지리학적 입지는 이 강 주변의 유적입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비교적 덜 가파른 동쪽 경사면에서 이 강이 발원함에도 불구하고 그 상류가 매우 높은 언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현재까지 상류와 중류 역에서는 방어시설은 하나도 확인되지 않는다. 모두 5개의 유적이 확인되는데 하류에서 확인된다. 그 유적은 에스톤카 성곽, 모노마호프스코예 성곽, 바시코프스코예 성곽, 프리스탄 성곽, 달네고르스코예 방어시설 등이다. 이 중 에스톤카 성곽과 프리스탄 성곽은 평지성으로서, 중국 영향을 받은 발해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모노마호프스코예 성곽은 산지성으로 역시 발해시대에 축조되었고, 달네고르스코예 자연 방어성, 석성인 바시코프스코예 성곽도 발해시기에 축조되었는데 일종의 곶 성이다. 


http://루드나야강유역: 바시코프스코예 발해성곽

http://루드나야 강 유역: 에스톤카 발해성곽

http://루드나야 강 유역: 모노마호보스코예 성곽

https://www.google.com/maps/place/Unnamed+Road,+Primorskiy+kray,+러시아+692434/@44.3645455,135.6795226,40634m/data=!3m1!1e3!4m5!3m4!1s0x5fa96b455dc84a43:0x49f7b21216643bd4!8m2!3d44.352075!4d135.8008982


이들 유적의 입지는 제르칼나야 강과 루드나야 강의 발해 교통로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한다. 제르칼나야 강 계곡에서부터 루드나야 강 유역으로 가는 길은 테튜헤 고개 중에 가장 낮은 부분으로 1950년대까지 주민들이 이동하던 경로였다. 지금은 그곳에 도로가 놓여서 ‘보고폴 도로’로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루드나야 강의 우안 지류인 모나스티르카 강은 루드나야 강의 입구 근처에서 합쳐지고, 테튜헤 고개가 모나스티르카 강을 지나간다. 이 강 유역에는 유적이 많아서 고고학자들이 아주 흥미 있게 생각한다. 


루드나야 강 유역에는 4개의 성곽과 1개의 자연방어시설이 존재한다. 2개의 성은 장방향 평지성(에스톤카 성)이고, 다른 한 개는 곶 성으로 한쪽의 성벽이 없는 개방형(프리스탄 성)이다. 곶 성으로 한쪽 성벽이 없는 석성(바시코프스코예 성곽)과 산지성(모노마호프스코예 성곽), 자연방어물(달네고르프코예 성곽)이 그것이다. 모든 방어시설물은 발해국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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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코프스코예 성곽


 스미치카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1.5~2km 떨어진 곳으로 모나스티르카 강의 우안 언덕 위에 위치한다. 성의 남쪽 부분은 절벽이다(그림 37).
 언덕의 정상부를 안쪽으로 하고 북쪽과 서쪽의 석벽이 둥글게 돌아가게 축조되어 있다. 성벽의 안쪽에서부터 높이는 1m에 달하고, 외면은 언덕의 경사면 돌에 의해서 쓸려서 내려갔다. 성벽의 중앙에는 돌로 쌓아진 모나스트르카 강의 입구 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석축이 있다. 석축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으로 크기는 3.5×4m이고, 작은 문이 있다. 성벽의 모서리에는 펴연형태 1.5~1m 크기 타원형의 수혈이 있는데, 가장자리에 큰 돌이 둘러져 있다. 성벽의 둘레에는 타원형 수혈이 2기 존재하고, 길이는 160m이다. 성의 전체 크기는 1260㎡이다.
 1995년 타타르니코프에 의해서 처음으로 성이 발견되었다. 1997년, 2001년, 2003년에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대에 의해서 조사되었다. 성에서 시굴조사 한 결과 다음과 같은 토층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림37. 루드나야강 유역의 바시코프스코예 발해성곽


1. 부식토층의 두께는 0.03m

2. 암갈색 사양토가 혼입된 자갈층

В 지점의 시굴에서는 말갈문화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 바시코프스코예 성곽은 산지성으로 한쪽 성벽이 없는 부채꼴 모양의 성벽으로 크기는 중형에 해당한다. 성벽은 돌로 축조되었고, 성에는 치가 없다. 성곽의 내부에는 내성과 보루가 확인되지 않으며 단순하다. 성곽의 용도는 방어용으로 생각된다. 석벽은 고구려의 것과는 관계가 없다(보로비요프 1961).
   이 유적은 발해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인접한 스미치카 마을의 발해 마을유적과 12~13세기까지 잔존하였던 모나스티르카-3 말갈 분묘 유적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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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스톤카 성곽


 달네고르스크 지역의 모노마호보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1.5km 떨어진 루드나야 강의 입구에 위치한다(그림34). 19세기 말부터 주민들에 의해 에스톤카 성곽으로 불리었다. 1989년 아무르 지역 연구회에서 테튜헤 강 계곡의 요새로써 팔체프스키의 정보에 의해서 알려졌다. 1980년대에는 타타르니코프에 의해 유적이 조사되었다. 1992년 댜코바에 의해서 성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보와 평면도가 작성되었다. 1996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대에 의해서 지표조사 및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


 성벽은 아주 정확한 장방형으로 각 성벽은 동서남북 방향과 일치 하며, 장축방향은 남북이다(그림 34). 성벽은 돌과 흙을 이용해서 축조하였다. 성의 장축은 100m, 단축은 85m이고, 정의 평면적은 8500㎡이다. 동쪽 성벽은 높은 편인데, 외측면에서는 2~2.5m, 내측면에서는 1.2m정도이다. 서쪽과 동쪽 벽을 따라서 해자가 있다. 북쪽벽에 문지가 있다. 남쪽은 성벽을 따라서 이중 해자가 존재한다. 이 곳에는 문지가 있는데, 문지를 기준으로 해서 서쪽방향으로 남쪽 성벽이 2중으로 설치되어 있다. 성의 남쪽 바깥에는 강으로부터 들어오는 입구를 막는 방어용 성벽이 일자로 뻗어 있다. 성에는 돌로 만든 우물이 잔존한다.


그림34. 에스톤카 발해성곽 평면도


 성에서는 지표조사 및 시굴조사를 통해서 토층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그림 35). 상층은 부식토층으로 민속학적인 유물이 남아 있었는데, 19세기 성안에 살았던 농부의 것이다. 아래층은 사양토층으로 8~10세기경의 발해 토기편이 확인되었다(그림 36).


그림 35. 에스톤카 발해성곽의 시굴토층도


그림36. 에스톤카 성곽출토 발해 토기편


 * 에스톤카 성은 평지성으로 장방형 평면형태이고, 성 내부에는 내성과 보루 등의 별다른 시설이 없다. 크기로는 소형으로, 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은 돌과 흙으로 축조되었는데, 용도는 취락의 방어용으로 생각된다. 발해국(7~10세기) 시기에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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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나야 강은 큰 강으로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사면에서 동해로 떨어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30페이지 지도, 사진 12). 길이는 73km, 전체 수계의 너비는 1140㎢이다. 강으로 떨어지는 전체 길이가 942m이고, 경사는 12.9도 이다. 이 강 유역에는 지류를 포함해서 942개의 강이 있고, 전체 길이는 939km에 달한다. 강 네트워크의 평균 밀도는 0.82㎢이다. 가장 큰 지류는 고르부샤(Горбуша, Gorbusha) (강의 좌안, 길이 16km), 크리바야(Кривая, Kribaya) (강의 우안, 길이 37km), 프라마야(Прямая, Pramaya)(강의 우안, 길이 24km), 모나스티르카( Монастырка, Monactyrka) (강의 우안, 길이 23km)이다.
 이 강의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백의 동쪽 산 기슭 부분부터 시작된다. 집수지는 고지대나 높이 1000~1200m 높이의 암벽사이이다. 산의 아래 부분에는 훨씬 매끈하고 높이도 300~500m정도로 낮아졌다. 산의 경사면에는 계곡성 지류와 폭포 등이 있다.
  강 유역에서는 많은 광물자원 들이 확인되는데, 대부분 모래와 실트암이 많고 드물게는 석회암이 판상으로 들어가 있는 종류석이 있다. 강의 계곡에서 생토층은 모래, 점토, 쇄석으로 성층된 실트암층이다. 집수지의 수풀 밀집도는 82%에 달한다.
 강의 입구는 매우 넓어서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생각된다. 루드나야 강의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루드나야 강 유역에서 1906년 아르세네프는 그의 3번 일기장에서 ‘테튜헤 강과 리브나야 강에는 아주 넓은 평야 지역으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적합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림 31. 루드나야 강 유역의 성곽



 이 강 유역에는 모두 4개의 성곽 유적이 발견되었다(그림 31). 에스톤카, 모호마호프스코예, 바시코프스코예, 프리스탄스코예 성곽 유적과 자연방어시설인 달네고르스코예 유적, 단순 참호시설로 보이는 모나스트르스코예 유적이다. 다음은 성곽에 대한 설명인데, 강 상류에서부터 하류로 설명하고자 한다.


1. 모노마호보스코예 성곽 

 모노마호보스크 마을에서 서쪽으로 2km 떨어진 곳으로 루드나야 강의 하류로 들어가는 프라마야강의 지류인 라즈드보예노예(Раздвоенны, Razdvoenny)샘과 볼로(Болотны, Bolotny)샘 사이의 단층 경사면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언덕의 경사가 동서 방향과 일치한다. 언덕의 너비는 80m정도이다. 경사면에는 중앙이다. 성에 아주 조그마하게 불룩 솟아 있다. 북과 남쪽은 절벽과 맞닿아 있다.
 성벽은 삼면만 잔존해서 ‘ㄷ’자 모양이다. 북쪽벽은 절벽인  자연적 입지를 그대로 이용하였다. 동쪽벽은 높이 1.5m로 너비 3m의 문에 의해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부채꼴 모양의 북쪽벽과 직선의 남쪽벽이다. 동쪽벽의 길이는 70m이다. 남쪽벽은 직선인데, 높이는 1m 길이는 108m 정도이다. 성벽의 남동쪽 모서리에서 40m 떨어진 부분에 너비 4m의 절개면이 있는데 문지로 보인다. 이 곳에는 남쪽 경사를 따라서 나 있는 길이 하나 지나간다. 서쪽면에는 이중 성벽인데, 외벽은 둥그스럼한데 길이가 90m정도이다.
 서벽은 남쪽벽과 연결되어서 북쪽부분의 돌출부로 연결되어 있다. 서벽의 길이는 70m이고 높이는 2~6m이다. 내성벽은 2중의 외성벽에 의해서 둘러쌓여 있고, 길이는 60m를 넘지 않는다. 성곽의 평면크기는 7000㎡이다. 성벽은 돌과 흙으로 축조되었다. 내성벽의 남서 모서리 안쪽에는 돌로 막음 되어 있다(그림 33).
 시굴 결과 다음과 같은 토층상황을 알 수 있었다.
 1. 부식토층의 두께: 0.03~0.05m
 2. 돌이 섞인 암갈색 사양토 두께: 0.01m
 3. 돌과 쇄석이 섞인 암갈색 사양토 생토

 문화층은 제 2층으로 암갈색 사양토인데, 횡방향의 차양형 파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발해문화에서 아주 특징적인 유물이다.
 1953년에 오클라드니코프를 단장으로 한 극동 고고학탐사대가 처음으로 조사하였고(오클라드니코프 1959), 1973년에는 지표조사 및 평면도를 작성하였다. 1978~1979년에는 간단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림 32. 모노마호프스코예 성곽유적

*성곽은 산지성으로 평면형태가 ‘ㄷ’자형으로 개방형이다. 성벽이 여러 개로 복잡하다. 성의 구조물에는 치는 없고, 두 개의 문지만 확인된다. 성 내부는 아주 단순하며, 내성과 보루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은 돌과 흙으로 축조되었다. 용도는 모나스트르카 강 계곡의 교통로를 통제하는 방어시설 및 마을로 생각된다. 발해국가 시기(7~10세기)에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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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18. 6. 9. 18:00 책소개

책소개..

2년 전에 원고작성된 글이 공동저작으로 나왔습니다.

제목은 고고학이지만, 신화, 민속학, 고고학 등 여러분야를 전공하는 연구자가

북방과 제사라는 주제로 적은 글입니다.

https://www.kras.or.kr:6033/?c=user&mcd=ksc0002b&me=bbs_detail&idx=101007

(링크는 한국고고학회 홈페이지의 신간소개. 제목, 목차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의 주제에 암각화도 넣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2년 전만해도 거기까지 오지랖을 넓힐 여력이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해야지...하면서도.


제의..제사...신..이런 것을 고고학으로 밝힌 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일입니다.

하지만 유물 가운데 그런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정말 실용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물론 무덤과 거기서 나온 출토품도 실용적인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그런것들이 나오거든요.

그런 것들은 종교적인 해석으로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토우(흙으로 만든 인형), 암각화...이런 것들이 해당될 것입니다.

신화학자와 민속학자가 같이 해서 더 좋은 것도 같네요.

(저의 글은 약간 이미 퇴색한 듯도 한 것이 원래 이 책이 2016년에 나와야 하고, 저의 단행본은 2017년에 나오는 것이 맞는데...이 책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하여간 나와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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