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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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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24 암구강 유역의 성곽 1
  2. 2018.07.20 케마 강 유역의 성곽에 대한 결론
  3. 2018.07.20 케마 강 유역 석성 3
  4. 2018.07.20 케마 강 유역의 성곽 2
  5. 2018.07.20 케마 강 유역의 성곽 1

암구 강은 높지 않은 산에서 발원하는데, 막시모프카 강과 암구 강으로 갈라진다. 이 강은 동쪽 방향으로 흐르는데, 중류역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꺾여서 동해(암구 마을)로 들어간다. 강의 길이는 거의 50km 이다. 이 강의 좌안은 레오노프카 강이고 우안은 헤르바토프카 강이다. 강의 입구는 넓은데, 자주 홍수가 난다.

 암구 강의 상류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과 관련되지 않았고, 마시모프카 강(크후친)의 상류가 그 경계이다. 이 강의 상류역에는 높이가 1400~1500m에 달하는 산(두만, 세르바타야)의 정상부가 이 강 유역의 상류쪽과 관련있다. 이 강 중류역의 산 높이는 500~800m이고, 하류역은 300m이다. 이 강 유역에는 많은 강이 흐르고 있다.


그림 96. 암구강 유역


1. 쿠댜 성곽


암구 마을에서 서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사진 57, 그림 96~98, 10, 30페이지 지도). 1974년에 댜코바가 이 성의 평면도를 작성하였다. 2001년에 아무르-연해주고고학탐사단이 지표조사 하였다. 쿠댜 강의 좌안에 위치한 언덕의 정상부에서 13개의 원형 수혈이 확인되었다. 언덕의 북쪽은 고개로 이어지는데, 이곳에 부채꼴 모양의 벽이 잔존한다. 이 성벽의 길이는 75m이다

 서쪽에는 독립된 벽이 남아 있는데, 언덕의 정상부를 따라서 길이 15m가량 남아 있다. 벽은 언덕의 정상에서 보이는 자갈로 축조되었다. 벽의 높이는 안쪽에서는 0.3~0.4m가량이고, 바깥쪽에서는 언덕의 경사면으로 바로 떨어지고 있다. 성벽의 너비는 1.5~2m이다.

  


그림 97. 쿠댜성곽 평면도


언덕의 정상부에는 시굴흔적이 남아 있는데, 다음과 같은 토층상황이 확인된다.


1.부식토층으로 두께 0.05m

2.쇄석이 혼입된 갈색 사양토 두께 0.1m

3. 갈색조가 혼입된 자갈층으로 생토

 

2층에서는 문양이 없는 연질 토기가 2점 확인되었는데, 토제 방추차도 확인되었다.


쿠댜 환호는 산지성으로 개방형이고, 성벽은 부채꼴 모양이다. 성의 안은 편평하고, 내성과 보루 등도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에는 치와 같은 구조물은 없고, 성벽은 돌로만 축조되었다. 성의 용도는 취락을 방어하는 용도로 제작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리도프카 문화로 기원전 1 천년 기에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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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케마 강 유역의 소결


케마 강 유역에서는 확인되는 제일 이른 성곽 혹은 환호 유적은 고금속기시대로 기원전 1000년기 후반의 켐스코예-스칼리스토예 성곽이다. 산지성으로는 스트라시니 언덕 위의 성(세레브란캬 유역), 두브로빈스코예 성곽(리도프카 강 유역), 우스티-제르칼노예 성(제르칼나야 강 유역), 우스티 벨림베(타요시나야 강 유역) 등이 확인되었다. 케마 강의 하류에 이 성을 축조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데, 거주용이 아니라 방어용인데, 동해로부터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서 축조되었다.


발해시기 성곽은 켐스코예-돌린노예,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곽이 있는데, 모두 해안가로 가기위한 도로를 따라서 축조된 것으로 이 길의 위험을 막고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서 축조되었다.


케마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동지역으로서, 지형학적인 특징으로 서쪽으로부터 험준한 산맥으로 인해서 고립된 곳이다. 케마 강의 하류로 부터는 들어오기가 쉽지만, 상류는 거의 가능성이 없다. 탈니코바야 강 유역으로부터 들어오는 길에 위치한 우스티-일모 성곽이 이 곳으로 들어오는 문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성에서부터 도로가 뻗어서 하류의 두 성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서 이 유적의 정확한 연대를 아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발해 이후에 축조 되어서, 그 뒤에도 오랜 기간 이용되었다고 확실하게 생각된다.


그림 78. 케마 강 유역의 성곽 분포도(35-우스티 일모, 36-켐스코예-스칼리스토, 37-켐스코예-돌리노예, 38-켐스코예-모르스코예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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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곽


벨리카야 케마 강 하류의 동해 바닷가에 위치한다. 1908~1909년 사이에 아르세네프에 의해서 유적의 평면도가 작성되었다(그림 88).




그림88.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곽(1908~1909년에 아르세네프가 육안으로 작성함)


유적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에 가깝고, 장축방향은 남북이다. 아르세네프는 이 요새에서부터 북--북 쪽으로 약 3km 정도 가면 산 정상위에 3개의 구덩이가 있다. 좀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고대인 들이 이 곳에서 자신의 집을 위해서 편편한 돌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적었다


아르세네프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사람들이 이야기 하기를, 타케마 강에는 아주 오래전에 남쪽에서 어떤 사람들이 와서 강 하류 부근에 성을 짓고, 갔다고 하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20명 정도의 군인이 와서, 그들은 이 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는데, 10인 정도가 남고 나머지는 가버렸다. 그 사람들은 모두 검과 활과 화살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에 그들한테 오로치 족들이 다가가서 활을 쏘았고, 그 중에서 2명이 살아나서, 반대쪽 강가로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도 타케마 강가로 오지 않았다고 한다.

2001년 연해주-아무르 고고학탐사대는 이 곳을 조사하였는데, 이 성은 거의 파괴되고 남아 있지 않았다.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곽은 평지성으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이 성의 용도는 방어 감시용으로, 동해의 시토르모바야 항구쪽에서 강의 하류로 들어오는 곳을 통제하기 위해서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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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켐스코예-돌리노예 성곽


케마 강의 왼쪽 해안가에 이 강의 하구에서 1.5km 떨어진 곳으로 벨린카야 케마 마을 안에 위치한다. 처음으로 1907년 아르세네프가 유적의 평면도를 작성하였다(그림 86).


그림 86 1907년 아르세네프가 육안으로 작성한 유적의 평면도


2001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단이 이 곳을 조사하였다. 성곽은 케마강의 좌안 강가와 강 줄기 사이에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북쪽의 양 모서리가 깎인 방형이다(그림 86, 87).


그림 87. 켐스콩예-돌리노예 성곽 평면도(2001년 작성)



성벽의 길이가 130m가량이고 평면적은 1700에 달한다. 유적에는 총 3개의 문시설이 있는데, 북쪽, 서쪽, 동쪽 벽의 중앙에 위치한다. 문의 너비는 5~7m이다. 성벽은 흙과 큰 자갈돌로 쌓아졌다. 성벽의 높이는 대부분 1~1.5m가량이고, 북서쪽은 2m가량이다. 성벽의 기저부 너비는 5m가량이다. 성벽의 상부 너비는 1m이다. 성내부안에는 여러 번 축조가 반복되어서, 성의 구조물들이 파괴된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층을 조사했는데,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고, 지표에서 시대를 알 수 없는 토기편 들이 채집되었다.


p.s. 유적은 발해시기에 조성 혹은 제작된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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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마 강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사면에서부터 시작하는 큰 강으로, 이 강의 수원지는 시호테 알린 산맥과 접하고 있다(사진 49, 그림 78). 강은 북서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동해의 시토르마야 항구로 흐른다. 길이는 119km이다. 이 강의 왼쪽 지류가 세레브랸카, 브루스니치나야, 돌리나야 강이고, 오른쪽 지류는 스메호프카, 포로지스타야, 자파드나야 케마, 탈니코바야 강이다.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에 위치하며, 이 지역의 산은 산맥에서도 울퉁불퉁하고 높지 않은 곳으로 아주 많은 강이 흐르고 있다. 산의 높이는 1000~1400m, 강의 하류역은 400~600m가량이다. 강의 하류에는 아주 넓고, 편평해서 사람 살기에 적합하다.

1907년에는 아르세네프는 타케미에서 살기에 적합한 곳은 강 하류에서부터 2.5베르스타(2.7km) 떨어진 곳이라고 하였다. 강 유역의 전 지역은 침엽수림이 많은데, 강의 상류는 툰드라 식물들로 덮여 있었다.

케마 강 유역에는 4개의 성이 확인되었는데, 동해의 시토르마야 항구로 흐르는 강의 상류에서부터 우스티 일모, 켐스코예 돌리노예, 켐스코예 스칼리스토예 , 캠스코예 모르스코예 성이 있다.

 

1. 우스티-일모 성곽

벨리카야 케마 마을에서 북쪽으로 17km 떨어진 탈니코마야 강 입구에서부터 서쪽으로 0.5km 떨어진 곳으로 케마강의 오른쪽 강가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 성은 아르세네프에 의해 1907년에 성의 평면도가 작성되었고, 1992년에 크바신에 의해서 작성되었다. 2001년에는 도굴꾼이 트렌치를 파고 금속탐지기로 작업한 흔적을 남겨 놓았다.

2002년에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대가 조사하였는데, 이때 정확한 평면도와 수혈을 조사하였다.

 

그림79. 1907년 아르세네프가 육안으로 작성한 우스티 일모 성곽의 위치 및 평면도



성은 높이 10m가량의 테라스에 위치하는데, 이 곳의 동쪽면은 현대도로가 거의 성벽이 있는 곳까지 놓여서 테라스를 잘라먹은 상태이다.

성의 형태와 성벽은 자연적 입지를 아주 잘 따르고 있는데, 남쪽과 동쪽은 테라스의 경사면이 아주 가파르기 때문에 성벽은 하나이고, 북쪽과 서쪽은 자연적인 방어시설이 없이 테라스가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유적이 4개의 부채꼴 모양의 성벽과 해자가 있는데, 북서쪽의 모서리가 평행한다. 기본적으로 성벽은 폐쇄형으로 성의 평면형태가 거의 방형인데, 긴쪽의 길이가 50m이고, 평면적은 2500이다.



그림 80. 우스티 일모 성의 평면도



성에는 문지가 동쪽과 서쪽에 서로 마주보고 2개 위치한다. 문의 너비는 1m, 깊이는 0.25~0.3m가량이다. 동쪽문으로 도로가 하나 지나가며,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두 번째 도로는 테라스에서부터 올라와서 북동쪽 모서리에 있다. 남쪽 성벽에는 3개의 절개면과 0.5×0.7m 크기의 수혈이 하나 있다.

성의 내면은 서쪽으로 갈수록 2m가량 높아진다. 그 곳에서 많은 수혈 등이 확인되었는데, 대략 면적은 15~25이다. 그 곳에서 토층을 조사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를 알 수 있었다.

 

1. 부식토의 두께 0.1~0.15m

2. 암갈색 사양토 두께 0.3~0.4m, 문화층

3. 명갈색 사양토로 발해토기가 확인됨. 주춧돌

 

가장 안의 내 성벽은 폐쇄형으로, 큰 돌로 축조된 석벽이다. 하지만 이 돌의 크기는 각기 다른 것으로 10×20, 40×30, 50×30cm로 다양하다. 몇몇 장소에는 돌이 아주 많이 쌓여 있는 곳도 있다. 내성벽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는데, 북쪽벽은 0.3~0.5m, 동쪽은 0.9m, 너비는 5~7m 가량이다. 성벽의 정상부는 편평하고 너비는 1~1.5m이다.

외 성벽은 흙과 돌로 제작되었는데, 내 성벽과 내성벽에서 부터 첫 번째로 위치한 성벽 사이에는 깊이 0.5m의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성벽은 테라스를 두고 축조되었는데, 이 성벽의 높이는 0.3~0.6m로 일정하지 않다 세 번째 성벽의 너비는 2~4m, 네 번째 성벽의 너비는 7m이다.

 

*우스티 일모 성곽은 언덕형으로 평면형태는 방형에 가깝다. 내부에는 테라스, 내부성, 보루 등이 없고, 성벽의 구조물로써 치는 없지만 옹성이 설치된 문이 2개 있다. 소형으로, 취락 방어용으로 제작되었다. 성의 축조시기는 출토된 토기로 보아 발해시기이며, 10세기 말에서 12세기 초까지 계속해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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