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2017년 5월에 부산복천동박물관의 특강 내용입니다.
1. 페그티멜암각화
추코트카는 가장 북쪽인 동시베리아해와 인접하고 있으며 바위그림은 시베리아해로 흘러가는 페그티멜 강의 하류의 지류인 카이쿨 강에서 확인되었다. 이 지점은 동시베리아해와 거리가 50km 정도이며, 페그티멜 강과 카이쿨 강 사이 1000m~1200m가량 떨어진 곳에 바위그림이 존재한다. 1965~1967년에 걸쳐서 1차 조사가 실시되고, 1968년에 1차 조사보다 약간 하류에서 2지점을 발견하였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에 관련된 보고서가 출판된(디코프 1971) 1971년에는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얀 등 몇 몇 유적도 보고되었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당시 소련에서는 시베리아 초원지대 및 알타이 지역에서 잘 알려진 바위그림이 아무르강 하류 및 추코트카 까지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당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페그티멜 바위그림에는 머리에 모자를 쓴 사람(그림 2)이 그려져 있는데, 알타이에서도 이 주제가 큰 논란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큰 호응이 있었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미사암계 점판암의 높이 25~30m가량의 암반위에 제 1지점에는 모두 11 곳의 암벽에 그림이 모두 104장면이 그려져 있다. 크게 깊은 선각과 쪼기를 해서 면을 음각으로 처리하는 방법(그림2)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주제는 다양하며, 11곳의 장소마다 그리는 대상물의 차이가 있는 것도 있고 공통적인 것도 있다.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생활습관이 그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냥하는 장면이 가장 많은데, 대상물은 고래, 사슴, 곰 등이다. 또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인데, 배에 타서 사슴을 끄는 마술과 같은 그림도 있는데(그림 3-1)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추코트카에서 행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와 함께 그려진 인간의 생활모습도 반영되어 있다. 한 그림은 배를 타고 가면서 순록을 몰던 유카리 족이 그려져 있고, 눈이 내릴 때 스키를 타고 개와 함께 걷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그림 3-2).
뿐만 아니라 머리에 버섯모자와 꼬리가 달리거나(그림 3의 가장 우측) 장화를 쓴 신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알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대규모의 성소로 알려진 바이칼 유역의 엘란가쉬 유적에서도 십여 점이 확인된 그림이다. 사람인데, 꼬리가 달린 것은 흔치 않은 것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생활습관이 그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냥하는 장면이 가장 많은데, 대상물은 고래, 사슴, 곰 등이다. 사슴도 무리를 지어 있는 도상이 있고, 혼자 있는 도상이 있다. 또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인데, 배에 타서 사슴을 끄는 마술과 같은 그림도 있는데(그림 3)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추코트카에서 행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와 함께 그려진 인간의 생활모습도 반영되어 있다. 한 그림은 배를 타고 가면서 순록을 몰던 유카리 족이 그려져 있고, 눈이 내릴 때 스키를 타고 개와 함께 걷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그림 3-2).
뿐만 아니라 머리에 버섯모자와 꼬리가 달리거나(그림 3-1의 가장 우측) 장화를 쓴 신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알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대규모의 성소로 알려진 바이칼 유역의 엘란가쉬 유적에서도 십여 점이 확인된 그림이다. 사람인데, 꼬리가 달린 것은 흔치 않은 것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고래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그림 4). 한 바위그림에는 고래가 실제로 물을 뿜어 내고 배에 탄 사람들이 이 고래를 잡은 것을 묘사한 것이 있다. 매우 사실적인데,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서 물 위로 떠오른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때 사람들이 고래를 포획하는 것을 바위그림에 그대로 그려놓은 것이다. 극동에서 고래 그림이 그려진 바위그림은 이곳과 울산의 반구대 바위그림 뿐이라는 점이 눈에 띄며 고래잡이가 생업의 한 축임을 이야기 한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에는 배가 아주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배의 모양, 배에 탄 사람의 수 등에 차이가 있다.
이 바위그림은 언제 그려진 것을 까?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한 시기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되었다. 이 유적을 조사한 디코프 박사는 추코트카 근방(북극해)의 생업과 관련을 지어서 많은 점을 해석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고래 등 해양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기원전 1000 년 기(기원전 10세기) 이전에
는 올라가지 않아서
, 바위그림에서 고래 등을 사냥하는 장면도 그 이 상 올라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추코트카에는 캄차트카에서처럼 순록유목업이 예전에는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서, 그림 가운데서 순록이 무리를 지어서 있는 것은 유목업으로 인해서 생긴 늦은 시기의 것이고, 사슴이 홀로 그려진 것이 사슴사냥을 하던 선사인이 남긴 것으로 보았다. 최소한 해양동물 사냥이 이 지역에 기원전 10세기 쯤에 생겼는데, 순록 사냥은 그 보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보았다(디코프 1971).
그런데 바위그림 가운데 9번 암각에 79번 주제 중에는 순록이 선각기법(그림 6)으로 그려진 것인데, 이는 앙가라 강의 신석기시대 유적 바위그림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순록의 크기는 추코트카의 것이 조금 작다. 그렇다면 바위그림의 순록 그림은 앙가라 강의 신석기후기 연대를 참고해서 기원전 20세기 보다 약간 늦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았으나, 디코프 박사는 이 연대에 대해서 자신감은 없어했으며, 기원전 1000년 기 전반(기원전 9~6세기)까지도 연대가 내려 갈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 뒤에 페그티멜 바위그림의 연대는 그림의 양식으로 연대가 재고되었다. 시베리아의 것과 비교해서 순록의 굽 가운데 사람 발처럼 그려진(그림 7)이 가장 이른 것으로 보았다. 시베리아 바위그림의 연대는 암각화 주변에서 발굴을 통해서 그 유적에 산 사람이 바위그림을 남긴 것으로 보았고, 유적의 연대와 바위그림 연대가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순록의 굽 모양이 사람 발처럼 그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3300년 전(기원전 13~14세기 가랑)으로 여겨졌다(피툴코 2002).
버섯 모양의 모자나 장화를 신고 있는 사람은 이 보다 더 늦은 연대로 알타이나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연대와 비교해서 기원전 14~8세기 정도로 생각된다. 가장 늦은 그림은 순록의 그림을 묘사한 형태로 결정되는데, 몸통이 삼각형이며, 다리가 막대기처럼 쭉 뻗거나 아래로 벌어진 것인데, 발이 방사상으로 표현된 것 등이다. 왜냐하면 이는 베링해 주변에서 번성했던 고대 베링고모르스카야 문화에서 확인되는 방법과 같기 때문이다. 이 문화의 연대는 대략 기원전 8~5세기로 여겨진다(디코프 1971).
이처럼 암각화는 어느 지역 이든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연대문제이다. 제일 좋은 것은 발굴을 통해서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일 텐데, 모든 암각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