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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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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0. 20:4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이것은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한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에 그려진 것이다.

암각화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언제 그려졌는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에 발굴된 유적에서 바위그림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극적인 예가 확인되었다.

절대연대측정치도 있다.


이에 대한 논의를 해 볼까 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얼굴모양을 그린 모티브가 원이라는 것이다


원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겹치고 있다.

이것에서 시작한다....



그림 1.2. 상단의 그림과 하단의 그림은 다른 유적이다.

그런데 유사하지 않은가.. 중앙의 동심원문을 축으로 눈을 그리고 있다.

사카치 알리안은 이런 그림이 많이 확인된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풀어가겠다.

한반도와도 관련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8. 16:1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내용은 2017년도 복천동박물관에서 특강한 내용입니다.
 
아래 본문에 나오는 페그티멜 암각화(http://eastsearoad.tistory.com/33)
사카치알리안 암각화(http://eastsearoad.tistory.com/34)
반구대암각화(http://eastsearoad.tistory.com/35)는 이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바위그림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구석기시대부터 남겨진 선사인의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극동에서만 확인되는 바위그림의 주제가 있는데, 추코트카 페그티멜 바위그림, 울산반구대 바위그림에만 있는 고래이다. 바위그림이 많이 남아 있는 알타이, 앙가라 강 유역, 카자흐스탄, 몽골 등지에는 없는 주제이다. 고래가 그려진 것은 이를 그린 사람들이 고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같은 극동지역이라도 앞 서 살핀 사카치 알리안에는 없고, 추코트카와 울산에서만 확인될까?

 이것은 바위그림이 위치한 곳의 입지와 관련이 있다. 추코트카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동시베리아해와 직선거리가 50km 정도이며, 반구대는 울산만과 약 25km거리이다. 바다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며, 반구대 바위그림은 동해안의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했다면 바위그림이 그려질 당시는 바다와 반구대가 좀 더 가까웠을 가능성이 있다(황상일 윤순옥 1995). 실제로 동해안에는 지금 보다 해수면이 높았던 시기가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7000~5000 년 전과 4000~3500년 전이다(카로트키 외 1996). 페그티멜 바위그림도 기온변화로 인해서 현재보다 더 바다가 더 가까웠을 때 그려졌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에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하지만 동해까지의 거리가 대략 500km 정도 되기 때문에 고래가 살 수 있는 환경 혹은 고래를 생업에 이용했을 것은 아니기다. 즉 고래는 바다와 인접한 지역의 바위그림에서 그려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고래 중에서 물을 뽑는 모습을 표현한 주제는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반구대 바위그림이 유사하다 (그림 4 , 그림 1-A ).
 하지만 반구대 바위그림은 바위그림의 가장 큰 주제가 고래와 사슴이며, 고래가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모습을 주로 그렸다는 점은 페그티멜 바위그림과는 차별이다. 하지만 유라시아 전 지역의 바위그림에서 고래가 확인되는 반구대 바위그림과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극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북유라시아 바위그림 가운데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는 사슴이며 어디에서든지 확인된다. 극동의 추코트카의 페그티멜 바위그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 반구대 바위그림 모두 주요 주제이다.
 
 그러나 극동 바위그림의 사슴 표현법은 각양 각색이다. 추코트카의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의 사슴 그림은 그리는 방법이 다르다. 추코트카의 사슴은 선각 혹은 전면을 쪼아서 음각한 것(그림 1:3:4)인데, 사슴의 내면에 따로 문양을 그리지는 않는다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은 몸통을 전면 음각하지 않고 내면에 문양을 표현 하는데,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내면을 격자문으로 표현한 것(그림 3-2)과 동심원 등의 곡선(그림 3-1)으로 표현 한 것이 있다. 반구대 바위그림은 페그티멜 바위그림처럼 전면을 음각한 것도 있고(그림 1-A), 사카치 알리안의 사슴표현처럼 내면을 격자모양(그림 1-B)으로 그려 놓은 것도 있다.
사카치 알리안의 사슴 중에서 내면이 동심원 문양으로 그려진 것은 알타이의 사슴바위그림에서 자주 확인되는 표현법이다. 또한 극동의 바위그림에 사슴그림이 있다는 것은 공통적이고 일부 사슴표현도 같은 방법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사슴의 뿔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이것은 극동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위도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사슴의 종류에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상대적으로 북쪽에 위치한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의 사슴은 사슴과의 순록(숫컷)이며, 이들은 그들의 뿔이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사슴과보다는 훨씬 수려하다. 추코트카 바위그림의 사슴 그리는 방법은 반구대의 것과 유사하다.

주지하다시피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하며 동시에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 지역에 위치한다. 아무르강은 하류에서 급격하게 강의 방향이 바뀌는데 이는 오른쪽에 시호테 알린 산맥이라는 대 산맥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시호테알린 산맥 중 중부지역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 곳에는 시베리아 호랑이 즉 백두산 호랑이의 주요 서식지로 알려진 곳이다. 사카치 알리안 유적에서 호랑이 주제도 확인된다. 이 유적의 사슴표현 중 내면을 격자로 표현한 것은 호랑이에도 그대로 표현된다(그림 3-3). 그런데 반구대 바위그림 호랑이 그림(그림 3-B)과 꽤 유사하다.

또한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에는 배 그림이 상당히 많으며, 반구대바위그림에도 있다. 특히 배에 탄 사람의 수도 차이가 심해서 배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반구대 바위그림과 같은 동해안변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죽변유적이나 오산리 유적에서 배로 추정되는 목제가 출토되었고, 위치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창녕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도 배가 출토되었다. 기원전 6000년 전의 것인데 소나무를 파서 만든 환목주(丸木舟)에 속한다. 신석기시대 배의 이용이 실제로 있었음을 이야기 해 준다.

극동의 암각화는 서로 유사한 면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고래라는 주제가 그려지고, 사슴을 그리는 방법 등은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반구대 암각화가 유사하지만, 사카치 알리안의 사슴과 호랑이 그리는 방법도 반구대에서 확인된다. 뒤에서 좀 더 설명하겠지만 암각화가 마을이나 부족의 제의적인 장소라면 원거리지만 극동에서 확인되는 바위그림은 어떤 아이덴티티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5. 15:39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이 내용은 2017년도 복천박물관에서 특강한 것입니다.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은 태화강의 상류에 위치하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의 암각화가 유라시아에 비해서 적은편이지만 바위그림 가운데 가장 사실적으로 고래, 인간, , 어로도구, 사슴, 호랑이, 멧돼지, , 토끼, 여우 등 300여점의 도상이 아주 잘 묘사가 되어 있어서 흥미로운 점이  많다. 한국의 바위그림은 가운데서 가장 사실적인 표현으로 다른 바위그림이 기하학적인 문양이 주를 이루는 것과 차별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만과의 거리는 직선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울산대학교 박물관의 조사(울산대학교 박물관 2000)에 따르면 그림 중에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이 동물상(65.2%)이고, 확인되지 않는 미상의 것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인물상(4.7%) 등의 순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동물상 중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이 고래(30%)이며,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사슴(29.5%)도 그려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래는 무리를 지어서 그려져 있는데, 위에서 내려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등 그림의 관점도 다양하며, 표현된 고래도 물을 뿜는 고래의 모습(그림 1-A), 새끼를 업고 이동하는 모습, 작살이 몸속에 박힌 고래 등 여러 모습을 그렸다(그림 1). 고래는 주로 쪼기 기법으로 면을 음각으로 처리한 것이 대부분이다(김호석 2008, 이상목 2011).

사슴은 쪼아서 전면을 음각한 것(그림 2-A)과 외곽을 선 새김 한 후 내면에도 모양(그림 9-B)을 그려 넣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가 우세하다. 하지만 후자의 방법으로 그려진 것이 사슴 뿐만 아니라 멧돼지(그림 3-C), 호랑이(그림 3-A·B) 등 여러 동물을 그리는 데 이용되고 있다.


고래는 무리를 지어서 그려져 있는데, 위에서 내려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등 그림의 관점도 다양하며, 표현된 고래도 물을 뿜는 고래의 모습(그림 1-A), 새끼를 업고 이동하는 모습, 작살이 몸속에 박힌 고래 등 여러 모습을 그렸다(그림 1). 고래는 주로 쪼기 기법으로 면을 음각으로 처리한 것이 대부분이다(김호석 2008, 이상목 2011). 


사슴은 쪼아서 전면을 음각한 것(그림 2-A)과 외곽을 선 새김 한 후 내면에도 모양(그림 2-B)을 그려 넣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가 우세하다. 하지만 후자의 방법으로 그려진 것이 사슴 뿐만 아니라 멧돼지(그림 3-C), 호랑이(그림 3-A·B) 등 여러 동물을 그리는 데 이용되고 있다.





반구대 바위그림의 인간 그림이 모두 14점 있는데, 그 중 12점은 전신상이며 2점인 인면문이다. 그 중 전신상(그림 1-B)을 샤먼으로 본 견해(장석호 2007, 이필영 1988)와 샤냥꾼(정동찬 1988)으로 본 견해로 나눌 수 있다. 샤먼으로 본 견해는 남성의 상징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은 해부학적으로 인간과 일치하지 않으며, 샤먼의 특수한 무복이라고 보거나, 바다사냥 중 물을 담은 물통이거나 비상식량주머니를 허리에 찬 모습으로 고래사냥하는 샤먼이라는 것(이필영 1988)이다. 반면에 이를 완전 배제하고 허리에 튀어나온 부분이 성기가 아닌 사냥꾼의 활과 같은 도구를 허리에 찬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박정근 2001).


하지만 유라시아 대륙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호주 등 전 세계에서 확인되는 바위그림의 주요 주제는 성(), 식량, 영토이며(엠마누엘 아나티 2003), 알타이, 카자흐스탄, 몽골 등지에서 확인되는 바위그림에도 남자와 여자의 성기, 성교장면 등은 늘 등장하는 주제이다.
반구대 바위그림은 다른 바위그림 등과 마찬가지로 제작 연대의 문제, 제작 집단 등 여러 가지 논쟁이 되는 것이 많다. 반구대 바위그림의 제작 연대는 신석기시대 설과 청동기시대 설이 있는데, 주변에서 이를 증명할 만한 유적이 없는 점이 안타깝다. 러시아의 바위그림은 주변에서 바위그림과 관련된 유적 등이 확인되어서 연대 추정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반구대 바위그림의 가장 주요한 소재는 고래와 사슴인데, 앞서 살펴본 페그티멜 바위그림과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에서도 본 듯 하지 않은가? 공통점과 차이점을 추출해 보자.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4. 19:45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이 내용은 2017년도 복천동박물관 특강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2. 사카치 알리안 바위그림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매우 잘 알려진 곳이다. 사카치 알리안 마을에서부터 상류쪽으로 말리셰보 마을까지 아무르 강가의 5km 범위 내에 화산암 바위 위에 그림이 남겨져 있다. 페그티멜 유적과 반구대가 절벽위에 그려져 있다면, 사카치 알리안은 강가에 바로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은 좋지만 유적파괴도 극심하다. 이곳은 아무르 강 하류에서 500 km 떨어진 곳으로 바다보다는 훨씬 내만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의 바위그림은 인간의 얼굴 혹은 마스크를 쓴 얼굴, , 사람, , 사슴-, 사공이 탄 배, , 원심원 및 동심원 문양 등 기하적인 것도 백 여점 이상으로 그려져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원심문양이나 동심원문인데,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인간의 얼굴모양(그림 2)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설이 크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메드베제프 2005) 또한 태양 주술과 관련되었다는 형상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인면문은 다양한데, 얼굴만 그린 것과 몸통까지 다 표현한 것이 있다. 얼굴형만 그린 것은 얼굴의 기본형태가 타원형, 하트형, 역삼각형, 그 내부를 눈, 입만 표현한 것, ··입 다 표현한 것이 있다. 또한 얼굴에 마스크를 쓴 얼굴을 표한한 것도 있는데, 마스크의 표현방법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공이 탄 배도 사람의 수가 4~9명 등 다양해서 선사시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사차키 알리안 암각화의 사슴은 외곽의 선 새김을 내면에도 선을 새겨서 내면에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다. 또한 사카치 알리안 암각화에는 맹수도 그려져 있는데, 호랑이로 추정된다(그림 3-3). 호랑이는긴 꼬리를 치켜들고 있고, 앞 다리를 들고 있으며, 귀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몸통에는 격자문양이 시문되어는 모습이다. 호랑이와 함께 그려진 동물 역시 격자문으로 몸통이 그려져 있고, 다리는 4개이다(그림 3-2). 




이곳의 바위그림은 인간의 얼굴 혹은 마스크를 쓴 얼굴, , 사람, , 사슴-, 사공이 탄 배, , 원심원 및 동심원 문양 등 기하적인 것도 백 여점 이상으로 그려져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원심문양이나 동심원문인데,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인간의 얼굴모양(그림 2)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설이 크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메드베제프 2005) 또한 태양 주술과 관련되었다는 형상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인면문은 다양한데, 얼굴만 그린 것과 몸통까지 다 표현한 것이 있다. 얼굴형만 그린 것은 얼굴의 기본형태가 타원형, 하트형, 역삼각형, 그 내부를 눈, 입만 표현한 것, ··입 다 표현한 것이 있다. 또한 얼굴에 마스크를 쓴 얼굴을 표한한 것도 있는데, 마스크의 표현방법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공이 탄 배도 사람의 수가 4~9명 등 다양해서 선사시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사차키 알리안 암각화의 사슴은 외곽의 선 새김을 내면에도 선을 새겨서 내면에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다. 또한 사카치 알리안 암각화에는 맹수도 그려져 있는데, 호랑이로 추정된다(그림 3-3). 호랑이는긴 꼬리를 치켜들고 있고, 앞 다리를 들고 있으며, 귀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몸통에는 격자문양이 시문되어는 모습이다. 호랑이와 함께 그려진 동물 역시 격자문으로 몸통이 그려져 있고, 다리는 4개이다(그림 3-2). 





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3. 16:28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내용은 2017년 5월에 부산복천동박물관의 특강 내용입니다.


1. 페그티멜암각화
추코트카는 가장 북쪽인 동시베리아해와 인접하고 있으며 바위그림은 시베리아해로 흘러가는 페그티멜 강의 하류의 지류인 카이쿨 강에서 확인되었다. 이 지점은 동시베리아해와 거리가 50km 정도이며, 페그티멜 강과 카이쿨 강 사이 1000m~1200m가량 떨어진 곳에 바위그림이 존재한다. 1965~1967년에 걸쳐서 1차 조사가 실시되고, 1968년에 1차 조사보다 약간 하류에서 2지점을 발견하였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에 관련된 보고서가 출판된(디코프 1971) 1971년에는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얀 등 몇 몇 유적도 보고되었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당시 소련에서는 시베리아 초원지대 및 알타이 지역에서 잘 알려진 바위그림이 아무르강 하류 및 추코트카 까지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당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페그티멜 바위그림에는 머리에 모자를 쓴 사람(그림 2)이 그려져 있는데, 알타이에서도 이 주제가 큰 논란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큰 호응이 있었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미사암계 점판암의 높이 25~30m가량의 암반위에 제 1지점에는 모두 11 곳의 암벽에 그림이 모두 104장면이 그려져 있다. 크게 깊은 선각과 쪼기를 해서 면을 음각으로 처리하는 방법(그림2)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주제는 다양하며, 11곳의 장소마다 그리는 대상물의 차이가 있는 것도 있고 공통적인 것도 있다.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생활습관이 그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냥하는 장면이 가장 많은데, 대상물은 고래, 사슴, 곰 등이다 또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인데, 배에 타서 사슴을 끄는 마술과 같은 그림도 있는데(그림 3-1)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추코트카에서 행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와 함께 그려진 인간의 생활모습도 반영되어 있다. 한 그림은 배를 타고 가면서 순록을 몰던 유카리 족이 그려져 있고, 눈이 내릴 때 스키를 타고 개와 함께 걷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그림 3-2).
뿐만 아니라 머리에 버섯모자와 꼬리가 달리거나(그림 3의 가장 우측) 장화를 쓴 신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알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대규모의 성소로 알려진 바이칼 유역의 엘란가쉬 유적에서도 십여 점이 확인된 그림이다. 사람인데, 꼬리가 달린 것은 흔치 않은 것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생활습관이 그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냥하는 장면이 가장 많은데, 대상물은 고래, 사슴, 곰 등이다. 사슴도 무리를 지어 있는 도상이 있고, 혼자 있는 도상이 있다. 또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인데, 배에 타서 사슴을 끄는 마술과 같은 그림도 있는데(그림 3)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추코트카에서 행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와 함께 그려진 인간의 생활모습도 반영되어 있다. 한 그림은 배를 타고 가면서 순록을 몰던 유카리 족이 그려져 있고, 눈이 내릴 때 스키를 타고 개와 함께 걷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그림 3-2).



뿐만 아니라 머리에 버섯모자와 꼬리가 달리거나(그림 3-1의 가장 우측) 장화를 쓴 신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알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대규모의 성소로 알려진 바이칼 유역의 엘란가쉬 유적에서도 십여 점이 확인된 그림이다. 사람인데, 꼬리가 달린 것은 흔치 않은 것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고래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그림 4). 한 바위그림에는 고래가 실제로 물을 뿜어 내고 배에 탄 사람들이 이 고래를 잡은 것을 묘사한 것이 있다. 매우 사실적인데,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서 물 위로 떠오른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때 사람들이 고래를 포획하는 것을 바위그림에 그대로 그려놓은 것이다. 극동에서 고래 그림이 그려진 바위그림은 이곳과 울산의 반구대 바위그림 뿐이라는 점이 눈에 띄며 고래잡이가 생업의 한 축임을 이야기 한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에는 배가 아주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배의 모양, 배에 탄 사람의 수 등에 차이가 있다.




이 바위그림은 언제 그려진 것을 까?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한 시기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되었다. 이 유적을 조사한 디코프 박사는 추코트카 근방(북극해)의 생업과 관련을 지어서 많은 점을 해석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고래 등 해양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기원전 1000 년 기(기원전 10세기) 이전에

는 올라가지 않아서

, 바위그림에서 고래 등을 사냥하는 장면도 그 이 상 올라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추코트카에는 캄차트카에서처럼 순록유목업이 예전에는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서, 그림 가운데서 순록이 무리를 지어서 있는 것은 유목업으로 인해서 생긴 늦은 시기의 것이고, 사슴이 홀로 그려진 것이 사슴사냥을 하던 선사인이 남긴 것으로 보았다. 최소한 해양동물 사냥이 이 지역에 기원전 10세기 쯤에 생겼는데, 순록 사냥은 그 보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보았다(디코프 1971).


 그런데 바위그림 가운데 9번 암각에 79번 주제 중에는 순록이 선각기법(그림 6)으로 그려진 것인데, 이는 앙가라 강의 신석기시대 유적 바위그림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순록의 크기는 추코트카의 것이 조금 작다. 그렇다면 바위그림의 순록 그림은 앙가라 강의 신석기후기 연대를 참고해서 기원전 20세기 보다 약간 늦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았으나, 디코프 박사는 이 연대에 대해서 자신감은 없어했으며, 기원전 1000년 기 전반(기원전 9~6세기)까지도 연대가 내려 갈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 뒤에 페그티멜 바위그림의 연대는 그림의 양식으로 연대가 재고되었다. 시베리아의 것과 비교해서 순록의 굽 가운데 사람 발처럼 그려진(그림 7)이 가장 이른 것으로 보았다. 시베리아 바위그림의 연대는 암각화 주변에서 발굴을 통해서 그 유적에 산 사람이 바위그림을 남긴 것으로 보았고, 유적의 연대와 바위그림 연대가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순록의 굽 모양이 사람 발처럼 그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3300년 전(기원전 13~14세기 가랑)으로 여겨졌다(피툴코 2002).

버섯 모양의 모자나 장화를 신고 있는 사람은 이 보다 더 늦은 연대로 알타이나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연대와 비교해서 기원전 14~8세기 정도로 생각된다. 가장 늦은 그림은 순록의 그림을 묘사한 형태로 결정되는데, 몸통이 삼각형이며, 다리가 막대기처럼 쭉 뻗거나 아래로 벌어진 것인데, 발이 방사상으로 표현된 것 등이다. 왜냐하면 이는 베링해 주변에서 번성했던 고대 베링고모르스카야 문화에서 확인되는 방법과 같기 때문이다. 이 문화의 연대는 대략 기원전 8~5세기로 여겨진다(디코프 1971).
이처럼 암각화는 어느 지역 이든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연대문제이다. 제일 좋은 것은 발굴을 통해서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일 텐데, 모든 암각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다.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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