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는 스키타이 문화권라는 거대한 연합 공동체가 존재했는데 그 중에서 몽골에서는 울란곰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울란곰 유적의 이름을 그대로 명명한 것이다.

 

마모노바는 동시대의 다른 유적에 비해서 울란곰 유적에서 어린아이의 수가 적은 편이라고 했다. 통나무관이나 돌널무덤에 혼자 묻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성인들과 함께 매장되었다. 흥미롭게도 16호에서는 남성 4인과 함께 어린아이가 매장된 경우도 발견되었다.

어린아이는 남쪽 모퉁이에서 확인되었다. II~V호 인골은 무릎을 굽힌 채 매장되었다. 그런데 II호 인골 머리 위에서는 말의 골반뼈가 발견되었다. 또 III호 인골의 다리 부근에 토기가 놓여 있었다. 이 무덤에서는 청동단검(그림 1-5), 투부(그림 1-4), 가죽주머니에 든 청동거울(그림 1-3), 청동단추(그림 1-1), 청동버클(그림 1-2) 등도 발견되었다.

 

16호(2.5×2.5m)는 앞에서 본 무덤과는 토기의 부장위치, 피장자의 구성도 다르지만 무덤구조도 다르다. 무덤의 바닥에 납작한 돌(판석)을 깐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나무방 무덤과 돌널 무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무방 무덤은 바닥에 나무를 깐 것도 있지만 이 무덤과 같이 판석을 깐 것도 있다. 아마도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인데, 좀 더 살펴보아야 할 듯 하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16호 무덤과 출토유물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16호 무덤,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 발견된 청동거울과 청동버클 장식은 다른 무덤과는 좀 다르다. 청동거울의 손잡이가 고리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인데(그림3), 16호분의 거울(그림 1-3)은 손잡이가 없다. 청동버클은 대부분 앞 부분이 둥근데(그림 4-4,5,6), 이 무덤에서는 방형(그림 1-2, 그림 5)이다.  동물 장식이 없는 무덤이다.

 유물 모양의 차이는 제작방법과 관련되기 때문에 고고학에서는 큰 구분의 기준이 될 수 있고,  시간차이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무덤구조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판석을 깐 나무방 무덤이 모두 그런 것인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그림 3. 울란곰 유적의 청동거울

 

그림 4. 울란곰 유적의 청동장신구

 

그림 5. 방형모양의 청동버클장식(가장 하단)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Nowgorodowa E. 1980 : Alte Kunst der Mongolei. Leipzig: E.A. Seemann Verlag. 1980. 280 s.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몽골의 기원전 5~3세기의 울란곰 유적을 발굴하고 연구한 노보고르도바는 이 유적이 거대 고분이 축조되는 파지리크 유적과 비교해서 평등사회를 이루었다고 보았다. 이 유적에서는 어떤 특정 무덤에서 부(富)가 집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울란곰 유적에서는 머리에 창상을 입은 남성들이 많이 확인되고, 동 시대의 다른 유적에 비해서 어린아이의 수가 적게 나오는 점으로 보아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매우 빠르게 유적이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울란곰 유적의 평등사회는 전쟁이라는 사회적 갈등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하지만 어제 포스팅에서 살펴보았듯이, 파지리크 유적과 같이 어떤 특정 무덤을 중심으로 부가 비정상적으로 집약되는 현상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평등하다고 해도 47호 무덤과 같이 울란곰 유적의 다른 무덤과는 다른 유물 출토양상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완전한 평등이라는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것은 철저하게 타자가 바라보는 시각일 수도 있다. 자신은 산양이 조각된 청동거울이 있던지 없던지 크게 상관하지 않지만, 후대의 우리가 바라보기에는 모든 사람이 특정한 스키타이 동물양식이 표현된 유물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를 둘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던 울란곰 유적은 파지리크 유적에 비해서는 대부분의 무덤이 비슷한 상태이다. 단지 나무방 무덤과 돌널무덤으로 구분되고, 전자에는 많은 사람이 부장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만 묻힌 경우도 있다.

 

노보고르도바는 스키타이 동물양식이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었다는 그리스(파르마콥스키, 아르타모노프) 혹은 이란(아르타모노프, 첼레노바) 제작설을 일축하했다. 노보고르도바는 ‘현재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의견’이라고 한다. 필자도 예전에 포스팅한 바 있는데, 20세기 초에 생긴 그 설이 영미권에서 계속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노보고르도바는 ‘스키타이 문화’의 3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동물 스타일은 사슴돌에서 출발되었다고 보았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말의 가면은 사슴을 흉내낸 것으로 사슴숭상에서 발전한 것이다.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숭배 중에 하나는 사슴숭배이고, 그 뒤로 생긴 것이 말 숭배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몽골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동물 스타일(양식)은 재지에서 살 고 있는 동물로, 고대 장인들이 보지 못한 그 지역에 살지 않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적이 없다. 예를 들면 사자와 같은 동물이다. 몽골(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양식은 흑해북안의 유물에 비해서 매우 자연스럽다. 특히 황금재질로 제작된 것은 없지만, 모든 무덤에서 동물 스타일이 발견된다. 특히 흑해 지역과 비교할 때 특정 유물이 아닌 일상생활품에서 표현된다고 보았고, 이 점이 흑해 보다 폭넓게 대중에게 자리잡은 근거라고 생각했다.

 

노보고르도바는 몽골에 대한 대단한 애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동물 스타일이 일상생활용품에만 표현되었다는 점에서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예를 들면 청동검 끝에 달린 그리핀, 청동거울 등은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다.

 

2021.04.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곰 유적] - 기원전 5~3세기 몽골 울란곰 유적의 의례품

 

기원전 5~3세기 몽골 울란곰 유적의 의례품

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은 1건을 제외하고 대부분 손잡이가 붙은 형식인데, 역시 기원전 4세기 가량에 나타나는 유물이다. 그 1건은 꼭지가 달린 거울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꼭지가

eastsearoad.tistory.com

 

흑해지역에서도 의례용품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용품에도 동물장식이 발현되는데, 청동솥이다.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솥에는 동물장식이 주조된 것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솥

 

하지만 필자도 전체적으로는 노보고르도바의 의견에 찬성한다. ‘동물 스타일’의 시작은 몽골의 청동기시대 사슴돌 및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발견되는 동물 스타일에서 일 수 있다.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아르잔-1을 발굴했던 그랴즈노프 등 수많은 러시아학자들의 생각이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Фармаковский Б.В. 1914, Архаический период в России. — MAP, №34.(파르모코프스키 1914, 러시아에서 (그리스)고대기)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5~3세기의 몽골 서부에 존재했던 울란곰 유적에서 가장 많은 수의 인골이 발견된 곳 중에 하나는 나무방 47호이다. 10개의 통나무로 된 격자 맞춤으로 만들어진 무덤방이다. 높이는 90~110cm, 남동벽은 5단의 통나무로 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50×45cm 규모의 구멍이 뚫려 있다. 바닥에는 나뭇가지를 깔았는데, 바닥에서 흩어진 인골이 발견되었다. 북동쪽 벽에 위치한 인골 1기만이 원래 피장된 모습이고 모두 흩어진 상태였다(그 이유에 대해서는 기술되지 않았다)

인골이 흩어진 상태였지만 노보고르도바는 47호를 크게 3그룹으로 나누었다.

 

가장 서쪽부터 남성과 여성 가 그룹, 중앙의 두 남성, 동쪽의 여성과 3달 된 어린아이를 나그룹, 남성, 갓난 어린아이 다 그룹으로 구분한다.

가그룹의 남녀(I호와 II호 인골)는 장년으로 연령은 파악 불가능하다. 하지만 1호 남성 주변으로는 얼룩문양이 있는 구슬 2점, 양 두개골 5점, 토제 항아리 4점과 목기 1점 등 많은 유물과 부장되었다. 2호 인골 여성은 뼈가 거의 잘 알 수 없을 정도이고, 조개, 청동펜던트 등이 부장되었다.

 

중앙의 나그룹 남성은 서로 뒤섞여 있는 상태이다. 남성 주변에서는 토기 안에 양뼈가 발견되었다!. 특히 IV호 인골의 두개골은 도끼로 맞은 창상과 화살촉에 의한 타격흔적 등이 발견되었다.

 

가장 동쪽의 다그룹에서는 V호 여성과 VI호 어린아이의 뼈는 거의 뒤섞인 상태였다. 청동으로 된 여러 장신구, 동물장식이 표현된 패식, 소의 뿔, 투부 뿐만 아니라 황금으로 싼 나무막대기 등이 발견되었다. 금제품이 거의 없는 울란곰 유적에서는 거의 유일한 유물이다. 그 옆의 VII호 남성 인골 옆에서는 산양이 새겨진 청동거울이 발견되었고, 그리핀이 그려진 청동 장식도 출토되었다. VIII호 인골은 아주 작은 뼈로 갓난아이, IX호 인골 남성의 뼈이며, 가장 동쪽에 위치한다. 개뼈, 양뼈, 골제화살촉이 옆에서 발견되었다.

 

47호 무덤에서 발견된 VII호 남성은 이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화려한 장식의 청동거울(그림 1-8)과 그리핀이 새겨진 패식(그림 1-11)을 가졌던 남성이다.

 

그림 1. 울란곰 47호 유적 출토 유물, 1-눈 모양이 그려진 구슬,2- 조개 장식, 3- 펠트 고리, 4,5-철제품, 6-화살촉, 7-청동제 칼, 8-거울, 9-11:청동장신구, 12-뿔로 만든 물건, 13-21-토제 항아리. 그림에 13번이 두 개인데, 막대모양은 V호와 VI호 주변에서 나온 막대기일 가능성이 있음. 

 

그림 2. 울란곰 유적 47호 분의 내부, 그림 설명에는 ‘7호’라고 되어 있으나 ‘4’자가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7호는 돌널무덤으로 인골 1기만 발견되었음.

 

 

청동거울의 좀 더 자세한 모습은 포스팅 참고

2021.04.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곰 유적] - 기원전 5~3세기 몽골 울란곰 유적의 의례품

 

기원전 5~3세기 몽골 울란곰 유적의 의례품

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은 1건을 제외하고 대부분 손잡이가 붙은 형식인데, 역시 기원전 4세기 가량에 나타나는 유물이다. 그 1건은 꼭지가 달린 거울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꼭지가

eastsearoad.tistory.com

I호 남성 옆에 무덤방 동쪽 벽을 따라서 4점의 토기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고 했지만 이 남성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유적에서 대부분 머리위에서 토기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적어 놓지는 않았지만 도굴 혹은 유적의 파손에 의해서 인골이 이미 많이 흩어져서 생겼을 수 있다.

산양이 그려진 청동거울과 그리핀 장식, 금으로 싼 막대기, 9명의 사람으로 보아서 아마 울란곰유적에서 가장 큰 가족 구성과 부를 가졌던 사람들로 생각된다.

 

47호분에서는 두 세대 이상의 가족이 매장되었다. 울란곰 유적의 무덤안의 인골 수는 인접한 알타이 추야 강 계곡의 여러 무덤과는 다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울란곰 북쪽의 투바지역의 사글리-바쥐 I유적에서 볼 수 있는 매장 구성원이다. 하지만 청동거울과 장신구 등에서 확인되는 산양과 그리핀의 모습은 이 유적 역시 ‘스키타이 동물스타일(양식)’의 범주 안에서 있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А.Д. Грач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М.: ГРВЛ. 1980. 256 с., вкладки.(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 고대 유목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몽골의 지역문화인 울란곰 문화는 기원전 5~3세기의 유적이다. 인접한 파지리크 문화와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또 차이점이 있다. 바로 그릇이다.

 

파지리크 문화에서 추야 강 계곡의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XII유적, 유스티드 I유적 등에서는 무덤에서 대부분 발견되는 것은 목제 그릇이었다. 주로 쟁반형태와 손잡이가 한쪽으로 달린 잔이었다.

하지만 울란곰 유적에서는 목제 쟁반이 출토되는 곳도 있지만 모든 무덤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고, 목제 잔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죽은 이들은 모두 토기와 함께 매장되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의 무덤에서도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토기가 발견되었다(그림 1).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토기

 

아마도 생업과 관련되었거나, 그릇의 재료가 되는 소재 때문일 수 있다. 기원전 1천년기 중엽(기원전 6~5세기)의 몽골에서는 말, 소, 양, 염소, 낙타 등 5종류의 가축을 길렀고, 현재도 몽골에서 기른다.

몽골 소는 독자적인 유형으로 서몽고에서 가축화 된 것이다. 야쿠티야, 동시베리아, 자바이칼(바이칼 우편), 카자흐스탄, 몽골 등지에 분포하고 있으며, 아시아 소의 한 종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기르는 동물 중 가장 선호된 것은 양인데, 투바, 알타이, 카자흐스탄 등 모두 비슷하다. 특히 양 꼬리를 선호하는데 기름기가 많은 종이 선호되었고, 그 중에서도 기름이 많은 꼬리는 유목민이 즐겨 먹는 부위이다. 그리고 양 꼬리가 무덤에서 종종 발견된다.

말은 유목민에게 부의 척도로 생각되는 동물이다. 주요 이동 수단이고, 젖도 이용할 수 있으며, 겨울에는 눈 밑에서 알아서 건초를 찾아 먹는다.

 

낙타는 건조한 지역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매우 건조한 기후에 있는 유목민은 소는 사육할 수 없고 말, 양, 낙타가 우세하다. 현재 몽골 고비에서도 이 세 종류를 가장 많이 기르며, 투르크메니아 지역에서도 얼마전까지 가축 구성이 동일하다.

기원전 1천년기 몽골의 유목민들은 아주 건조한 반사막과 같은 기후에서 고산의 초원에 이르는 지역까지 이동하면서 목축했다. 그래서 노보고르도바는 그들의 생활은 매우 유동적이며 다양한 지리적 조건 속에서 동일한 목축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동물은 기원전기 1천년기 몽골의 일반적인 가축이고, 울람곰 유적에서 낙타는 기르지 않았을 수 있다. 울란곰 유적의 주변에는 큰 호수가 많은 지역으로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 낙타는 기르지 않았을 것이다.

목이 긴 항아리 등 토기는 액체류 즉 동물의 젖이나 이를 가공한 유제품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쟁반류는 삶은 고기를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두 유물의 빈번 정도는 아마도 기르는 동물에게서 주로 얻을 수 있는 음식의 공급원 차이일 수 있다.(정도의 차이지 이 집단에서 삶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유적에서는 청동솥에서 고기 삶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죽은 이 머리 위에서 토기를 두는 행위는 이웃한 주민들이 보았을 때 분명 다른 장법이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 울란곰 유적에서는 청동제품으로 의례용품을 제작하지만 어린아이가 묻힌 무덤에는 둥근 반점이 있는 흰색 구슬로 만든 유물이 발견된다.

 

4호는 지표아래의 1m 정도의 깊이, 발견된 돌널무덤에서 인골이 발견되었다. 서쪽부위가 파괴되었지만 전체 규모를 알 수 있는데, 길이 1.6m, 너비 90cm, 높이 50cm이다. 석상의 윗부분은 납작한 도로 덮었다. 성인과 8~10세의 어린아이가 함께 매장되었다. 두개골 위에서 2점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어린아이의 아래에서 구슬과 조개가 함께 발견되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4호 무덤, 1,2: 토기, 3. 골제관, 4: 조개, 5. 골제 뚫개, 6: 반점 있는 흰색 구슬; 7: 청동버클, 8: 청동클립

 

비단 4호 뿐만 아니라 이 유적에서는 반점이 있는 흰색구슬과 조개가 늘 함께 발견된다.

노보고르도바는 이 유적에서 발견된 문양이 있는 구슬은 일종의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유적에서 갓난 어린아이들이 발견되는데, 출산 한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아서 일정한 의식이 있었다고 여긴 것이다.

이는 동 시대 울란곰 북쪽지역인 투바의 사글리 바쥐 II유적의 예를 참고로 한 것이다. 노보고르도바는 두 유적이 대가족 구성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구구조를 가진 동시기의 유사한 집단이라고 보았다. 가족구성원 뿐만 아니라 무덤의 구조 및 출토유물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유적에서는 사람 모양의 인간형상물이 발견되었는데, 일종의 부적으로 여겼다(그림 2).

 

 

그림 2. 투바 사글리 바쥐 II유적 8호 여성상

 

이는 투바에 살고 있는 현존 민족에게 전해지는 여성과 관련된 의례 ‘우루그-쿠드’ 때문이다.

재지언어로 ‘아이의 영혼’ 혹은‘태아’를 의미한다. 우루그- 쿠두를 하지 않으면 어린아이의 죽음을 초래하거나 여성에게 불임의 벌을 내린다고 믿었다. 샤먼은 의식을 거행하면서 여성의 불임 혹은 어린아이의 죽음 원인을 밝혀내었었다.

의식 중에서 우루그 꾸드의 저장소 역할을 하는 것이 인간형상물로 ‘우루글라르 에에렌’이라고 불렀다. 펠트 혹은 모피로 제작되었다.

낮에 샤먼과 친인척들이 참가한 가운데 펠트 혹은 모피로 제작했다. 이를 신생아의 요람에 넣는 의식을 거행했고, 날카로운 도구와 무기와 함께 아이에게 선물했다. 인형의 어머니는 아이의 어머니와 같다는 생각으로, 어린아이의 수호신 인 것이다.

투바와 몽골에서는 요람을 매다는 행위와 어린아이 곁에 두는 물건은 매우 한정적었는데, 대부분 날카로운 화살촉과 칼 등의 무기이다.

 

투바 지역에서 발견되는 인간형상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일종의 부적이 어린아이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반점이 있는 구슬로 생각되었다. 울란곰 유적에서 인간형상물은 출토되지 않는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인간형상물은 주로 흑해지역에서 발견되고, 알타이 및 시베리아에서는 나오지 않고, 대신 미라가 확인된다. 스스로 인간스스로 형상물이 된 가장 극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참고문헌

Соломатина С. Н. 1984, Обряды призывания уруг куду у западных тувинцев (к материалам о женских культах у народов Саяно-Алтая).— Всесоюзная научная конференция, посвященная 100-летию со дня рождения академика Б. Я. Владимирцова. Тезисы докладов. М.,(솔로마티나 1984, 투바 서부지역의 우루그 쿠드 신앙에 대해서)

А.Д. Грач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М.: ГРВЛ. 1980. 256 с., вкладки.(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 고대 유목민)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5 6 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