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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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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투엑타 유적'에 해당되는 글 12

  1. 2020.07.24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 그리핀
  2. 2020.07.23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제일 큰 무덤
  3. 2020.07.22 나무로 된 동물 뿔 제작방법1
  4. 2020.07.21 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가장 큰 무덤 주인공
  5. 2020.07.20 뱅뱅 도는 그리핀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에서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어떻게 조합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었다. 그런데 부족한 점은 독수리머리 그리핀과 독수리를 구분할 수 있는데 결정적인 갈기표현이다. 물론 말의 갈기일 가능성이야 크다. 그리핀으로 장식하는 대상은 말이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해 볼 만 하다. 그러나 보이는 유물이 있으면 좀 더 설명하기가 쉽다.

 

그런데 투엑타 유적에서는 갈기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료가 있다.

그림 1에서 1,2와 4,5는 얼릉 보기에는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까지 관찰해 온 스키타이 유물은 특히 동물표현은 약간의 차이도 이유가 있다. [동물과 매우 밀접하게 생활한 몽골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한국어 아는) 그들은 동물의 약간씩 다른 차이로도 동물을 매우 세밀하게 구분한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 출토 말의 재갈멈치(2) 및 굴레장식(1,3~5), 1,2-그리핀, 4,5-말, 목제

 

그림 1에서 위의 그림(1,2)과 아래 그림(4,5)는 귀가 다르다. 때문에 다른 대상물을 표현한 것이다.

이 점은 루덴코도 4,5는 말이라고 분명히 지적했다.  날개달린 호랑이에(그림 2) 말의 갈기를 붙인 것이다. 이 유물(그림 1-2)의 용도는 말의 재갈멈치이고, 나머지는 말의 굴레장식일 가능성이 많다.

 

 

그림2.  투엑타 유적 1호분 출토 날개 달린 호랑이 장식

 

나무로 깎은 말은 독수리 머리 그리핀의 갈기표현에도 응용되었을 수 있다(그림 3).

마치 그림 1에서 보이는 호랑이형 그리핀에 말의 갈기를 붙인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림3. 투엑타 유적 1호분에서 출토되는 그리핀의 조합

 

 

 

그리핀은 사방에 보이는 동물을 조합으로 만든 동물이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어떤 규칙도 숨어 있다. 동물의 종에 따라서 의미적인 속성(특징)들이 보존된다. 때로는 무의미적 특징도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표현되는 동물의 개별 세부요소들 중 중요한 요소는 보존되고 계속된다.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는 표현은 동물의 주둥이와 정해진 자세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Баркова Л.Л. 1987 : Образ орлиноголового грифона в искусстве древнего Алтая (по материалам Больших Алтай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28. Л.: 1987. С. 5-29. (바르코바, 1987, 알타이 고대 예술에서 독수리형 그리핀의 모양에 대해서: 알타이의 대형 무덤출토품을 중심으로)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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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투엑타 강에 인접한 해발 1000m가량 높이에서 확인된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은 무덤의 수도 많았고, 직경이 68m나 되는 초대형 무덤이 있는 유적이었다. 직경 68m의 무덤은 1호 무덤은 처음 시굴(발굴 전에 땅 밑에 문화층이 있는지 조사)조사한 것은 1949년 이었고, 발굴은 1954년에 무덤을 덮은 돌을 제거하고 1955년에 바닥조사까지 완료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무덤이어서 돌을 모두 들어내지 못하고 매장주체부(무덤방)과 무덤의 구조를 알 수 있을 만큼(약 30m) 만 조사했다(그림 1). 무덤을 덮은 돌의 무게는 개당 150kg이상이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의 평면도와 단면도, 단면도는 남북방향이다. C-북. 단면도에서 먼저 것은 무덤방 바닥까지 그린 단면도, 단면도의 아래 것은 봉분의 자른 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내부, 어마어마한 규모의 무덤이다.

 

무덤구조는 앞서 설명한 파지릭 유적과 흡사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을 설치한다는 점은 같은 구조이다.

 

무덤구덩이는 너비가 7.53×7.88m, 깊이는 4.5m이다. 무덤방을 설치하고 상부는 돌로 채웠다(그림 4). 무덤방은 2중 무덤방이다.(바깥 1차-4.98×5.91m, 높이 2.12m, 안쪽 2차-4.15×4.90m, 높이 1.75~1.85m). 무덤방 안에는 통나무관 1기가 놓여 있다(그림 4).

 

무덤방 제작에 사용된 나무는 자작나무를 이용했고 길이가 4.9~6.9m에 달한다.

2중 무덤방은 각각의 덮개가 있고, 3번 통나무를 덮었다. 무덤방 바깥에 무덤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수직으로 통나무 12개(길이 2.83m, 직경 42cm)를 세우고 그 위를 남북방향으로 덮었다(그림 3). 그 위는 작은 통나무로 동서방향으로 채운 후 가장 상부에는 다시 남북방향으로 통나무로 덮었다(그림 4, 이 지점은 무덤상부에서부터 2m 되는 지점). 루덴코는 무덤방을 5번 덮은 것으로 표현했다.

 

그림 3. 투엑타 유적 1호분의 외곽 무덤방 덮개, 도굴구멍의 크기는 1.58×1.87m.

 

그림 4.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무덤방 단면도, 오른쪽 북쪽.

 

그림 5. 투엑타 유적 1호분의 통나무관, 가장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다.

 

말은 무덤구덩이 북쪽에서 8마리가 확인되었다. 머리에 체칸(전투용도끼)으로 내려 친 흔적이 남아 있었고, 수직으로 세운 통나무 사이에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돌이 20cm정도 깔려 있었고, 머리는 동쪽으로 다리는 굽힌채로 옆으로 뉘웠다. 그 위를 자작나무 16개로 덮었다(그림 4).

 

 

 

투엑타 2호분은 1호분의 북쪽에 위치한다. 1호분이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작아보이지만 직경 32m이고, 높이는 2.6m이다(그림 6).

 

 

 

그림 6. 투엑타 유적 2호분의 평면도와 단면도, 단면도 위의 것은 남북방향, 아래 것은 동서방향이다. 각각 단면도의 왼쪽이 북쪽(C)과 서쪽(З)이다.

 

무덤구덩이(4.5×5.8m, 깊이 4.5m) 안에 무덤방(3,3×3.7m)을 만들고 그 안에 통나무관을 놓은 구조이다. 무덤구덩이 내부에서 북쪽은 말을 위한 공간이고 남쪽에 무덤방이 설치되었다(그림 8). 무덤방 외곽에는 남쪽과 북쪽에 수직으로 기둥(길이 1.48m, 직경 50cm)을 세워서 상부의 하중을 견디기 쉽게 했다. 이 위로 남북방향으로 통나무를 덮고 다시 동서방향으로 통나무 13개를 나란히 눕혀서 덮었다. 가장 상부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덮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무덤구덩이 북쪽에는 말 8마리 분이 있었다.

 

그림 7. 투엑타 유적 2호분의 무덤방 단면도

 

그림 8. 투엑타 유적 2호분 무덤방 평면도

 

투엑타 유적의 무덤구조가 앞서 살펴본 유적인 바샤다르 유적과 파지릭 유적과 다른 점은 무덤 상부를 덮은 재료이다. 물론 여러 번 무덤방을 덮은 점은 같지만,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무덤구덩이의 상단부분을 통나무로 채웠으나 투엑타 유적은 상부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 나무를 덮고 그 내부는 돌(1호)과 흙(2호)으로 채웠다.

 

2020/07/0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바샤다르 유적] - 2600년 전 알타이 유적의 없어진 미라

 

2600년 전 알타이 유적의 없어진 미라

바샤다르 유적은 앞서 살펴본 파지릭 유적 보다 대략 100년 정도 이른 유적으로 생각한다. 대체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를 일종의 지역문화로서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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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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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 유적에는 사람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 사람도 인위적인 과정을 거쳐서 미라로 만들어졌고, 말도 화려하게 꾸민 상태로 함께 묻혔다. 특히 파지릭 유적에는 말의 머리에 마스크를 씌웠다. 마스크에는 특히 화려한 뿔 장식이 달린 것이었다.

 

 

2020/03/2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말 마스크와 살아있는 그리핀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말 마스크와 살아있는 그리핀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파지릭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부장되어 있었고, 말 6마리는 말을 장식하는 굴레장식이 있었고, 1마리는 아무 장식이 없었다. 우리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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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엑타 유적 1호분에서도 말의 마스크 장식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뿔 장식인데 말의 마스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슴 보다는 뿔이 뒤로 굽은 동물은 산염소 혹은 산양이다.

 

쌍으로 확인된 것은 3쌍(그림 1~3)이고, 목제 뿔의 부속품(그림 4)도 있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4쌍이지만 이 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이 유물과 같은 형태의 부속품 등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이다.(이 무덤도 역시 도굴당했다. 바샤다르 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그림 1.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1

 

 

그림 2.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2

 

그림 3.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3

 

그림 4.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4의 부속품, 뿔 모양은 가죽, 반원판은 목제

 

 

어떻게 곧은 나무를 휘어지도록 표현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나무조각을 이어서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밀리니코프(2018)가 투엑타 1호에서 발견된 목제 뿔의 제작과정에 대해서 적은 글을 며칠 전 발견했다.

 

목제 뿔은 나무 3 가지를 이어서 붙인 것이다. 곧은 나무를 부채꼴처럼 붙일 수 있었던 핵심 기술은 나무 조각을 길게 비스듬하게 잘라서 붙인 것(그림 5-1, 2)이다.

 

 

그림 5.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나무를 길게 비스듬하게 잘라서 이어 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2번 그림 중 가장 아래면은 뿔의 아래면인데, 비스듬하게 자른 면이 아래로 향하도록 붙였다.(밀리니코프 2018 인용)

 

 

목제 뿔의 상단에는 반타원형의 장식판이 붙어 있는데, 목제 뿔에 삽입하도록 제작된 것이다(그림 6). 나무를 파낸 흔적(그림 6-3)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비스듬하게 자른 면을 잇는 방법도 뿔의 지점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그림 6-2, 4). 뿔이 마스크와 붙이는 부위(그림 6-4), 뿔의 상단 부위(그림 6-2)이다. 같은 쌍의 또 다른 유물에는 가죽(그림 6-1)으로 연결한 흔적도 남아 있다.

 

그림 6.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반원형의 장식판을 빼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고 찍은 사진.(밀리니코프 2018 인용)

 

 

삽입된 반원형 나무장식판은 두 판을 이어 붙인 것이다(그림 7). 옆 면에는 뿔에 삽입해서 고정할 때 필요한 구멍이 있다. 나무 못으로 고정시켰다. 상단에도 또 다른 장식을 삽입하게 위해서 사각형(그림 7-2 왼쪽) 으로 잘라내거나 구멍을 뚫는 경우(그림 8-1)도 있다.

 

그림 7.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의 장식판.(밀리니코프 2018 인용)

 

 

반원형 상단에는 그림8과 같이 뿔 모양으로 자른 가죽을 끼워 넣어서 장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8.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의 장식판 2(밀리니코프 2018 인용)

 

 

 

목제뿔에 삽입되는 장식판은 반원형 이외에도 반원형의 하단이 확장되어 홈이 있는 형태(그림 9-2)도 있다. 호랑이(3.5~6cm)는 따로 조각되어서 구멍에 삽입된 것이다.

 

그림 9.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그림 3과 동일유물). 1-제작자의 표시 ‘X’,

반원형 장식판 8~12cm. 전체 길이 62.5cm, 굽은상태높이 33.5cm(밀리니코프 2018 인용)

 

 

 

참고문헌

Мыльников В.П. Технология изготовления деревянных рогов для парадных погребальных масок коней на Алтае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Новосибирск: 2018, 49-58C. (밀리니코프 2018,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목제 뿔의 제작방법)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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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바샤다르 무덤 1호에서는 미라가 발견되었다. 이 무덤은 구덩이가 깊지 않고 얼음층이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아서 미라가 잘 보존되지 않아서 미라의 피부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두개골 뒤를 잘라내고 뇌를 꺼낸 흔적이 남아 있고, 뼈의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일종의 방부제를 주입했을 것으로 본다. 바샤다르 무덤 2호는 여성미라는 도굴꾼이 갈기갈기 찢어서 무덤방 여러 곳곳에 널려 있었고, 남성은 통째로 꺼내간 상황이어서 어떤 미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바샤다르 유적 보다도 100년 가량 늦은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5호분에서도 통나무관 안에 남녀의 미라가 함께 매장되었다. 파지릭 1호분도 도굴로 인해서 상황은 알 수 없으나, 말 10마리나 매장된 것을 보면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같은 시기로 파지릭 유적 보다 1000mrfid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유적과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도 미라가 발견되었다. 전자는 여성, 후자는 남성이 각각 단독으로 묻혔다.

  아시다시피 아크 알라하 3유적은 현대인들은 얼음공주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고, 살아서는 샤먼이었다고 생각되는 여성의 무덤이다. 여성단독 무덤이 잘 없는 파지릭 문화(스키타이 문화 중 알타이 지역문화)에서 매우 특이한 혹은 특별한 유적이다.

 

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과 아주 가까운 투엑타 강(현재 카툰 강)의 계곡에 위치한 투엑타 유적 1호분은 직경이 68m인 초대형 무덤이다. 누구의 무덤일까?

 

40~45세의 남성 단독무덤이다. 키가 178cm나 되는데, 미라로 처리되지 않았다(그림 1).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남성 두개골(미라 아님)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북쪽에 붙어 있는 2호분은 35세 가량의 여성 무덤이다. 이 여성은 키가 144cm정도로 작은 키이다. 투엑타 유적의 1호분과 2호분의 두개골로 살펴보면 유로포이드이다.

 

루덴코가 발굴한 무덤(파지릭, 바샤다르, 투엑타 유적)에서 인종구분은 형질인류학적인 분석이다(1947년, 1950년, 1954년의 발굴해서 1953년과 1960년에 연구결과를 내어놓았다.). 두개골 뿐만 아니라 중요한 판단 기준 중에 하나가 머리카락 형태와 피부 색이다. 파지릭 유적에서 확인되는 3호분과 5호분 여성, 2호분 여성은 유로포이드의 머리카락 형태와 피부색이었다. 머리카락은 매우 가늘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으로 어두운 갈색이었다. 그런데 파지릭 2호분과 5호분의 남성은 몽골로이드이다.

루덴코는 파지릭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몽골로이드와 유로포이드의 혼합 매장은 결혼에 의한 것과 전쟁으로 인한 인구 유입의 가능성을 이야기 했다. 예를 들면 어떤 그룹의 리더가 그들을 도와줄 알타이의 리더를 찾아서 가족 및 친척이 알타이로 숨어들어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지릭 유적은 현재 살펴보고 있는 투엑타 유적 보다 100년 정도 늦다.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미라로 시신을 처리했으나 동시대의 투엑타 유적은 미라 처리를 하지 않았다. 투엑타 1호분이 가장 알타이 전체에서 가장 큰 무덤 무덤인데도 불구하고.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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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무덤에는 사람과 함께 역시 말이 매장된다. 말의 굴레에 장식을 하는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은 아마 이 시점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나무로 만든 굴레장식을 말한다. 물론 이 보다 더 이르고 지역적으로도 약간 차이가 있지만 아르잔-2호에서도 굴레로 장식하기는 하지만 청동제 혹은 단순한 장식품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이지만, 파지릭 문화의 유적이 입지한 곳은 알타이 지역이고,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가 위치한 곳은 알타이의 경계구역을 벗어난 샨-수벤스키 지역으로 구분한다.)

 

나무를 깎아서 만드는 제품의 특성상 좀 더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 루덴코는 그림 1의 그리핀을 투엑타 1호에서 가장 특별한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말의 머리 장식(당호)으로 원판형이다. 이제까지 보여드린 원판형 머리장식은 모두 문양이 없었으나  오늘 소개해 드리는 유물에는 그리핀 2마리가 원을 그리고 있다. 같은 구도로 그리핀 2마리가 원을 그리는 유물은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출토되었다. 대마씨가 보관된 가죽용기이다.

 

그림 1. 2600년 전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말머리장식. 지름 12.7cm

 

얼핏 보면 독수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리핀이다. 맹수의 귀가 표현되었고, 갈기, 맹수의 발톱표현 등은 독수리에서는 볼 수 없다. 특히 투엑타 1호분의 그리핀은 목 부분에 반원모양으로 비늘 표현도 실제 독수리와는 거리가 있다.

그림 1은 독수리가 주체이고, 맹수의 부분이 가미된 것이다. 그리고 갈기는 다른 동물과 관련되어 있다. 어쨌든 그림 2의 독수리머리 그리핀 전신형과는 다르다.

 

 

독수리머리 그리핀 전신형은 독수리머리에 호랑이 몸통이 부착되었다(그림2). 여기에 맹금류의 날개를 가져왔다. 그림 1의 그리핀 발은 맹수의 발톱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실제 독수리 발톱은 매우 날카롭지만 저렇게 크지 않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독수리머리 그리핀 전신형.

 

그 옛날 그리핀 만들던 마스터는 그리핀을 표현할 때 귀와 갈기로서 독수리가 아닌 그리핀임을 나타냈다.

 

그림 3.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독수리 머리 그리핀 머리형. 굴레장식

 

그림 4.투엑타 유적 1호분의 독수리 머리 그리핀 머리형. 굴레장식, 귀 부분에 구멍이 있는데 가죽으로 귀를 만들어 넣었을 것이다. 같은 표현법은 파지릭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수리머리 그리핀 중에서 머리형은 모두 귀와 갈기가 실제 독수리에는 없는 요소이다.

 

 

*위의 사진은 1991년 10월에 한국에서 열린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 도록을 참고한 것이다(알타이 얼음공주 특별전은 1995년에 열린 것이다). 그해 고르바초프가 제주도를 4월에 방문했고, 한국과 수교했다. 루덴코의 저서(1960)에도 사진은 있으나 좀 더 좋은 사진을 보여드리고자 했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1991, 소련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황금』 특별전 도록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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