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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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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에 해당되는 글 194

  1. 2020.09.10 상상의 동물 그리핀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 2020.09.05 흑해 스키타이 그리핀은 어디서?
  3. 2020.09.01 그리핀을 탄 스키타이 남성무사
  4. 2020.08.31 스키타이 문화 속의 토끼
  5. 2020.08.30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핀은 맹수와 맹금의 조합으로 제작된다. 알타이에서는 주로 독수리머리와 호랑이 몸이 합체된다. 2500년 전 남성전사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1유적과 여성샤먼의 무덤(일명 얼음공주)인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 말의 굴레장식의 용도로 만들어졌다. 나무로 제작되고, 금박으로 싸서 말을 장식했다. 이보다 이른 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유적에서는 호랑이머리와 독수리머리가 합체된 그리핀이 굴레장식으로 사용되었다. 호랑이 머리 아래에 양쪽으로 독수리 머리를 붙인 것이다. 독수리 머리를 구름처럼 간략하게 표현해서 추상화 시킨 유물도 두 유적에서는 많이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투엑타 유적과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맹수의 머리와 초본류가 합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있었다.

 

2020/07/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투엑타 유적] -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 그리핀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 그리핀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에서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어떻게 조합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었다. 그런데 부족한 점은 독수리머리 그리핀과 독수리를 구분할 수 있는데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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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지역의 동쪽 끝인 동 사얀 지역인 투바에서는 2700년 전 아르잔-2호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리핀이 있다. 퇴장지 1호에서는 청동 재갈멈치의 양쪽 끝에 호랑이가 묘사되었고, 굴레장식으로 새 머리가 출토된다. 세트로 착용되었다. 3호에서도 새의 머리가 묘사된 청동 재갈멈치가 나온다.

상상의 동물을 한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한 마리의 말에 두 동물을 배치해서 두 동물의 이점?을 모두 가지려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이 생겼을 수 있다.

이 시점에는 아직 그리핀이 한 몸으로 합성되지는 않았지만 한 마리의 말에 두 동물을 배치해서 그 효과를 누렸을 수 있다.

 

흑해에서는 그리핀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은제 거울에 묘사되었다. 이 물에는 합성된 인간과 동물이 여럿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반인반수의 합성동물 아래에 독수리 부리+맹수의 몸+날개가 합성된 그리핀이 있다. 날개달린 맹수 가운데 호랑이와 사자가 아닌 곰?에 날개달린 합성동물도 있다.

흑해의 독수리 머리 그리핀은 켈레르메스 유적과 프레페야하 유적에서 출토된 장식판도 비슷한 형상이다. 흑해의 그리핀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에서 나오는 그리핀은 독수리와 사자의 결합으로 기원전 6세기 말에서 기원전 5세기가 되어야 나타난다고 한다(시쿠르코 1982). 그런데 그리스 기원설에 대한 논점이 다시 제기되었는데(스키타이 문화의 초반인 18세기, 19세기에 유행하던 설), 스코로이(1996)가 주장했다. 앉은 자세, 짧은 부리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유물에서 볼 수 있고, 들어올린 날개 표현은 그리스와 근동을 통해서 스키타이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핀 그리스 기원설에 불을 다시 짚힌 것이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5세기부터 시작되는데, 스크로이가 주장한 프레피야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그림 1)은 기원전 7세기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쿠르코가 주장한 바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들어올린 날개표현은 시베리아에서 이미 기원전 7세기 이전에 날개를 편 유물이 있기 때문에 만약에 흑해에서 자체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가 아닌 시베리아에서 이곳으로 전해졌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유행하는 것이 더 쉽다.

 

그림 1. 프레피야하 유적에서 출토된 장식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나 덧 붙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로 인해서 이런 주장이 쉽게 제기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크로이는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페르프레하도 역시 현재는 우크라이나 국경내의 유적이다. 관계가 좋지 않은 러시아(시베리아) 보다는 그리스와의 관련설을 제기하는 것이 훨씬 자신의 입지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흑해 유적의 연구자료들을 보면 우크라이나가 독립되고 난 후와 그 전의 연구경향에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유물이 미국에서 전시되면서 그리스 발생론을 그대로 소개하는 경우가 생겼다(Scythian gold 1999).

 

 

 

참고문헌

А.И. Шкурко, 1982, Фантастические существа в искусств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юге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Ч. 2. / Тр.ГИМ. Вып. 54. М.: 1982.(스쿠르코 1982, 초원 스키타이의 예술에서 상상의 주제(동물)에 대해서)

Скорый С.А. Вооружение скифского типа в Средней Европе (к вопросу о связях Скифии и населения Средней Европы): Дисс. … канд. ист. наук // НА ИА НАНУ. — Ф. 12/611.(스크로이 유럽중부지역에서 스키타이 유형의 무기에 대해서...박사학위논문 요약본)

Ellen Reeder, 1999, Scythian Gold, Harry N. Abr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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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인 타르기타우스 혹은 아폴론(그림1)이 타고 있던 그리핀은 흑해에서는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을까?

 

그림 1. 흑해의 드네프르 지역, 스로노프스카야 블리즈니차 유적 출토품, 앞서 소개한 바 있음 유물의 뒷면(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인용)

 

그가 타고 있는 그리핀은 사자머리 그리핀이다. 이 유물은 기원전 4세기 유물이니, 그리핀의 최초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핀은 여러 동물의 합성한 일종의 상상 속의 동물이다. 맹수와 조류의 합성인데, 이 조합은 시베리아 뿐만 아니라 흑해 그리핀을 만드는 공식?에도 적용되는 듯 하다.

흑해에서 두 유물이 조합된 경우는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거울에서 이미 본적이 있다. 아르김파사가 묘사된 거울의 왼쪽 2칸 옆에 반인반수 아래에 그리핀이 표현되었다(아래 포스팅 참고).

 

2020/04/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이제까지 2500년 전 알타이 위주로 스키타이 문화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는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까지 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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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켈레르메스 유적의 그리핀은 이미 조합된 상태이다. 그리고 스키타이 스타일이 아닌 우라르트(고대 아나톨리 지역의 국가) 혹은 그리스 스타일로 보기도 한다. 반인반수는 페르시아보다 우라르트에서 먼저 발생한 것이다(피오트로프스키이 1962).

켈레르메스 유적의 굴레장식 가운데 몸을 말고 있는 맹수가 표현된 뼈로 된 유물(아래 포스팅 참고)이 있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표현과 새의 부리가 함께 조합된 청동판이 올리비아(그림 2)에서 출토된다. 올리비아의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식민도시라고 알려졌는데 이곳 공방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스키타이 스타일의 유물이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와 큰 눈이 달린 새 부리의 조합이다.

 

올리비아 도시는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들어졌다는 설과 기원전 6세기 부터라는 주장도 있다. 이 공방에서 그리스 제작자들은 스키타이 귀족의 주문에 따라서 금속유물을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08/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사람의 무기와 마구장식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사람의 무기와 마구장식

스키타이 문화는 흑해 및 인접한 카프카스 산맥 북쪽, 돈강 및 볼가강, 알타이,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천산산맥(카자흐스탄)인접지역이 포함된다(그림 1). 그림1. 스키타이 문화권(에르미타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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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리비아에서 발견된 두 유물은 이미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한 유물로 결합된 것은 아니지만 청동으로 만들어진 간두식에는 새가 표현되었고, 몸을 말고 있는 맹수 굴레장식도 각각 확인된다. 같은 시기의 울스키 아울에서 출토된 청동 간두령에 표현된 과장된 새의 표현은 올리비아 장식판과 같다(아래포스팅 참고).

 

2020/07/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흑해 부근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방울

 

흑해 부근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방울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무덤인 투엑타 유적의 1호에서는 코젤(산염소)의 뿔을 나무로 만든 것이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에 씌웠던 말의 가면 중 뿔에 해당하는 유물이었다. 쌍으로 확인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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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올리비아 이전에 이미 두 유물은 각각의 모습으로 확인되어 스키타이 그리핀은 올리비아 출토품 보다 더 올래된 그리핀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림 2. 올리비아 출토품, 파르마코프스키 1910년 발굴, 11.2×10cm, 청동(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인용)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Пиотровский Б.Б. 1962 : Искусство Урарту. VIII-VI вв. до н.э. Л.: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1962. 164 с.(피오트로프스키 1962, 기원전 8~6세기 우라르트의 예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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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으로 만들어진 간두식(막대기 끝장식)은 흑해 북안에서 나오는 스키타이 대형묘에서 자주 출토된다.

앞에서는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에서 확인된 여신이 표현된 간두식을 소개했는데, 기원전 4세기 마지막 시기의 유적이었다.

 그러나 ‘간두식’이라는 용도의 청동 유물은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서 무덤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새머리가 표현되었고, 그 아래에는 방울을 넣어서 소리나도록 한 것인데, 이 유물 자체는 막대기 끝장식이다.(아래 포스팅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0/08/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사람의 무기와 마구장식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사람의 무기와 마구장식

스키타이 문화는 흑해 및 인접한 카프카스 산맥 북쪽, 돈강 및 볼가강, 알타이,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천산산맥(카자흐스탄)인접지역이 포함된다(그림 1). 그림1. 스키타이 문화권(에르미타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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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의 간두식 가운데는 말 대신 그리핀을 탄 남성무사가 묘사된 청동 간두식이 발견된다. 흑해의 드레프르 강 유역의 유적이다.

 

그림 1. 흑해의 드네프르 지역, 스로노프스카야 블리즈니차 유적, 1861년 발굴, 기원전 4세기, 청동, 높이 16.3cm

 

 

이 유물은 주제를 보는 관점은 두 가지가 있다. 사자머리를 한 그리핀을 타고 있는 전사가 창으로 사슴을 찌르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혹은 남자는 서서 단검으로 그리핀을 찌르고 그리핀은 넘어진 사슴의 목을 앞발로 공격한다는 의견도 있다.

 

 해석도 두가지가 존재한다. 스키타이 영웅 타르기타우스의 행위를 묘사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또 다른 해석은 당시 흑해 북안에 크게 유행했던 고이토스르 라는 것이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신과 그리스 신을 비교해서 기록했는데, 고이토시르는 아폴론과 같다고 했다.

 

2020/08/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같은 시기의 다른 유적에서도 같은 스타일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기본적으로 T자 모양으로 자루를 끼우기 위한 부분의 양 옆에 반원의 고리가 달려 있다. 이 고리에는 방울이 달려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위에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이다.

 

남성무사는 없지만 그리핀과 해마가 싸우는 장면이다. 해마는 그리스 주제이지만, 꼬리는 물고기 꼬리로 양 갈래로 갈라지게 표현된다. 하지만 이 유물에는 꼬리가 고양이과의 꼬리형태로 제작되었다. 해마는 그리스 주제이지만 그리스 스타일을 약간 꼬아서 표현한 것이다. 스키타이 장인이 제작한 것이다.

 

 

그림 2. 흑해의 드네프르 지역, 크라스느이 쿠트 유적, 1860년 발굴품, 기원전 4세기, 높이 13.3cm

 

 

두 유물은 1991년에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국립중앙박물관 1991, 『스키타이 황금』, 소련 국립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특별전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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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크림반도 끝에 위치한 케르치 반도의 쿨-오바 유적에서는 사슴 장식판이 발견되었다. 이 장식판은 흑해의 동물문양을 대표하는 코스트롬스카야 사슴장식판과 비슷하다. 그런데 쿨-오바 유적의 사슴장식판에는 사슴이 여러 동물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그 중에 한 마리는 토끼가 있었다.

 

그런데 토끼는 우연히 그곳에 표현된 것이 아니다.

토끼가 표현된 또 다른 장식판이 발견되었다.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황금장식판에 묘사되었다. 스키타이 무사가 말을 타고 있고 토끼는 말 발굽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다. 기마병사의 의복과 헤어스타일은 그가 스키타이 인 임을 말해준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5-4세기,  황금장식판, 너비: 5.2cm,높이 4.3cm

 

그런데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다리우스가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그곳에 남아 있던 스키타이 인들이 페르시아인과 말을 몰고 나와서 전투를 청했다. 스키타이 인들이 계급별로 배열했을 때 그들 사이로 토끼가 떨어졌고 스키타이인들이 매우 크게 외치면서 이를 쫒기 시작했다. 다리우스가 스키타이인들이 토끼를 쫓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매우 분노했다. 왜냐하면 다리우스는 스키타이 인들이 재미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 이란의 대중은 토끼를 죽이면 전투에서 행운과 승리를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라예프스키 1970). 사슴 장식판 뿐만 아니라 토끼 사냥이 묘사된 뼈 제품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 후반에는 토끼 이미지가 장식용 금판에서 매우 인기를 얻었고 스키타이 동물문양 중에 중요한 동물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보스포러스 왕국이 그리스적, 비그리스적이라는 말로 양분 할 수 없는 국제적인 왕국이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스키타이 여신의 모습이 시간이 감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되는데, 그 바탕에는 인접한 국가의 교류로 인한 것이라는 알았다. 토끼 문양도 고대 이란의 대중신화 속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원래 스키타이 인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Раевский Д.С. 1970 : Скифский мифологический сюжет в искусстве и идеологии царства Атея. // СА. 1970. №3. С. 90-101(라에프스키 1970, 스카타이와 예술품 속의 스키타이 신화주제와 아테네 왕조의 이데올로기)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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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섞인 문화적 특징이 나타난다. 이 문화를 바탕으로 생긴 보스포러스 왕국은 437~438년에 스파르토키드(Spartocids) 왕조가 들어섰다. 이 왕조는 케르치 해협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통합하고 케르치 지역 뿐만 아니라 쿠반지역(카프카스 산맥 북쪽)까지 통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떻게 이 왕조가 어떻게 들어섰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Spartok’이란 이름에서 추정해서 그리스에서 보낸 트리아스 용병의 지도자였고 일종의 쿠데타로 이 왕조가 들어섰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이를 더 잘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케르치 해협에서 발견된 쿨-오바와 같은 거대 고분에서 확인되는 그리스 건축양식이 가미된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고 보스포러스 왕국을 단순히 그리스화된 국가로 생각할 수 없다. 쿨-오바 유적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스파르토키드 왕조가 그리스 왕조였다면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유목민의 남성이 묘사된 황금 장식판과 황금항아리가 설명되지 않는다.

 

스키타이 인들은 오랫동안 트라키아 인과 밀접한 관련을 유지했고, 스키타이 종족 중에는 부족 독립성을 유지한 트라키아 부족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더욱이 스키타이 이전에는 흑해를 지배했던 킴메리아 인이 곧 트라키아 인이고 갑자기 스키타이 인들이 들어와서, 그들 중 일부가 흑해 지역에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보스포러스 왕국의 스파르토키드 왕조는 그리스에서 보낸 트라키아 출신이 아니라 지역의 키메르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흑해에 스키타이인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8~7세기임으로 2~300년 동안 스키타이 문화에서 살았던 키메르 인은 스키타이 인과 구분할 수 없다.

 

흑해북쪽에서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 남기 시작한 시점은 기원전 5세기이지만, 서로의 문화가 교차되는 현상이 보이는 것은 기원전 4~3세기에 집중된다.

쿨 오바 유적은 기원전 8~7세기의 켈레르메스, 멜구노프 유적과 달리 돌로 무덤방을 만들었다.

 

특히 무덤방의 천장은 들여쌓는 방법으로 만드는데, ‘계단식’ 천장이다. 그 아래에는 나무로 된 목관이 설치되었다. 이곳에서는 앞서 설명한 황금항아리, 말탄 무사가 표현된 황금장식판, 스키타이 여신 등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리스 유물과 스키타이 유물이 함께 확인된다.(아래포스팅참고)

 

2020/08/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말 탄 스키타이 무사

 

말 탄 스키타이 무사

기원전 4세기는 스키타이가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스키타이 왕국은 가장 절정에 달했고 외부세계와 활발하게 통하던 시기이다. 스키타이 여신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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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유적이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이 있는데 사슴이 표현된 황금장식판이다. 고리트(스키타이 인의 전통적인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통)의 장식판이다. 이 유물은 유적이 발굴되는 과정에 밤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들이 취득한 것을 도로 뺏은 것이다. 무덤방의 입구인 북서쪽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5~4세기, 길이 31.5cm, 에르미타주 소장

 

 

어디선가 비슷한 유물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요?

 

기원전 6세기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발견된 사슴장식판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전체적인 사슴의 모양과 제작방법은 같다. 특히 사슴의 뿔이 앞쪽으로는 2가닥, 뒤쪽으로는 S자가 연속되는 점, 몸통에 타출기법으로 근육을 표현한 점, 다리를 배쪽으로 집어 넣은 점, 굽의 세세한 표현, 둥근 눈, 입의 표현 등 은 코스트롬스카야 사슴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것이다. (사슴뿔이 앞으로 2가닥 표현되는 것은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이다) 단지 쿨-오바 유적에는 사슴 안에 5마리의 동물이 더 표현되어 있다. 몸통에는 그리핀, 토끼, 사자, 목 아래에는 개?, 뿔의 가장 마지막에는 산양 혹은 산염소가 표현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유물을 근거로 쿨-오바 유적이 기원전 6세기까지 올라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출토되는 그리스 유물 때문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그래서 유적을 기원전 4세기 후반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2020/08/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코스트롬스카야 유적] -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의 무기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의 무기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서 공격용무기인 전투용 도끼, 단검(아키나케스) 등은 기원전 8~7세기부터 있었고,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청동 화살(그림 1)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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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모양 황금패식은 쿨-오바 유적의 정체성이 오히려 흑해 스키타이 문화를 더 따르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를 바탕으로 그리스 문화가 흑해 북쪽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는 유적이지, 완전히 그리스 스타일은 아니라는 여러 근거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보스포러스 왕국의 스파르토키드왕조는 ‘비그리스적’이라고 여러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컬렉션,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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