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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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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우랄의 기원전 5?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이 나타나면서도 남부 시베리아 지역의 특징도 보인다. 또 이란계통의 유물 특징이 드러나서 기원전 4세기 이후에 이 지역에 들어선 사르마트 문화가 이미 이 시점에 보여서 이른 사르마트 문화 혹은 유럽 스키타이-사르마트 문화라고도 한다.

남부 시베리아의 특징이라는 유물은 바로 목제 잔이다. 기원전 7세기 투바의 아르잔-2호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스키타이 유적에서도 계속 나오는 유물이다.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에서는 2개의 감실이 있었고 그 곳에는 ‘황금 사슴상’ 뿐만 아니라 목제 잔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목제 잔의 손잡이는 황금으로 장식되었다.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세로로 부착되는 손잡이(그림 1)과 가로로 부착되는 손잡이(그림2)다. 앞의 것은 동물의 몸통 자체가 손잡이가 되는 모습이고, 동물의 종류는 맹수, 새 등 다양하다. 뒤의 것은 동물 두 마리가 서로 싸우는 모양이 가로 방향으로 묘사된 (그림 2의 1의 상단)이다. 이 손잡이는 사슴문양 장식판 사이의 구멍에 끼울 수 있는 형태(그림 2-2)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무덤 1호, 감실 1호 출토, 높이 11.5cm, 입구의 지름: 9.5cm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The Golden Deer of Eurasia, 필자편집)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무덤 1호, 감실 1호 출토(The Golden Deer of Eurasia)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무덤 1호, 감실 1호 출토, 그림 2의 복원도(.(Пшеничнюк А.Х. 2012)

 

투바 아르잔-2호는 손잡이 부분의 장식판 없이 목제 잔의 목제 손잡이를 금판으로 감쌌는데, 5호무덤의 주인공 무덤에서는 양다리 모양이었다. 기원전 5세기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는 맹수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도록 손잡이가 장식된 유물이다. 알타이의 유스티드 XII유적,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도 목제잔은 여전히 출토된다. 너무 많아서 쿠바레프 보고서에는 도면 없이 출토되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잔 부분은 유적 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바닥이 편평하고 U자형에 가깝다. 그러나 손잡이는 약간 씩 차이가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의 목제잔은 손잡이 옆에 장식판을 붙였는데, 앞서 보여 드렸던 필리포프카의 특징적인 사슴문양이다. 그리고 세로 손잡이의 목제 잔(그림 1)과 가로 손잡이의 잔(그림 2)은 동체부의 모양이 다르다(그림 3). 가로 손잡이의 잔은 바리모양에 가까운데, 사실 이 그릇 모양은 흑해 스키타이 유적인 쿨-오바 유적(그림 4)에서 출토된 은제 그릇과 비슷하다. 동체부의 모양, 가로 손잡이 등이 서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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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살펴본다면 쿨-오바의 은제 그릇은 바닥에 굽이 받어 있어서 필리포프카 유적의 목제 그릇과는 차이는 있다. 그러나 흑해 지역에서 가로 손잡이가 달린 그릇은 그리스식 암포라 토기 혹은 금제 항아리에 달린 손잡이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특히 기원전 7세기 가량에는 출토되지 않고 기원전 5세기 이후의 몇 몇 유적에서만 출토되는 특징적인 그릇이다. 

그림 4. 쿨-오바 유적 출토, 은제 그릇, 높이 13cm, 직경 18.7cm(Артамонов М.И. 1966)

 

동물모양손잡이 달린 목제 잔과 그릇은 무덤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에 하나인 감실에 황금사슴과 함께 부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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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제 잔은 이 유적의 지리적 위치(시베리아와 흑해 중간지역) 및 문화적 성격(사르마트 문화 보다는 스키타이 문화적 성격이 더 뚜렷함, 두 개의 스키타이 문화적 성격이 더 뚜렷함) 을 대변하는 유물로 볼 수 있다.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 무덤평면도, 좌측의 별도로 마련된 아주 작은 두 개의 구멍이 감실이다.(Пшеничнюк А.Х. 2012)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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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다. 그런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앞서 소개한 바 있는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도 중심무덤방 옆에 또 다른 무덤방이 만들어지는 구조이다. 기원전 4세기의 유적이다.

 

체르토믈리크 무덤은 그 규모 뿐만 아니라 출토된 유물로도 유명한데, 고리트를 감쌓던 황금 장식판, 의례용 철검과 금제 검집이 함께 출토되었다. 무덤 입구를 통과하면 처음 들어가는 무덤방에서 남쪽에 위치한 일종의 감실(k)(그림 1)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무덤의 평면도(Алексеев А.Ю., Мурзин В.Ю., Ролле Р. 1991, 필자편집, 본문의 내용대로 넘버링)

 

고리트의 본체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드러진 것이지만 남아 있지 않고 금판장식만 남아 있다. 상하단에는 동물투쟁문과 식물문양이 타출되어 표현되어 있다. 타출은 반대편을 도구로 두드려서 다른면이 튀어나오도록 하는 기법이다. 기본적으로 여러 판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림 2. 체르토믈리크 무덤에서 출토된 고리트 장식판(Алексеев А.Ю. 2012)

 

 

중앙은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은 상단왼쪽 에 있는 활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가 아킬레스다(그림 3-위). 두번째 장면은 스코로스 섬의 리코메데스 궁전에 아킬레스를 여장해서 숨기는 장면, 리코메데스의 딸 사이에서 아킬레스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그림 3-아래), 리코메데스 왕에게 아킬레스가 작별인사하는 모습이다.

 

 

 

그림 3. 그림 2의 상단(Алексеев А.Ю. 2012)

 

하단은 리코메데스의 아내이자 데이아미아(리코메데스의 딸로 그의 궁전에 숨어서 연애함, 아킬레스의 연인?)의 어머니인 여왕, 리코메데스의 다른 딸과 작별인사하는 장면이다(그림 4의 위). 벽에 기대고 있는 인물이 아킬레스이다. 마지막 장면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를 보여주고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은 아가메논이라는 설이 있다. 또 아킬레스가 트로이왕 프리암(프리아모스)이 아들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 받으러 온 장면을 그린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란계 영웅서사시를 묘사했다는 설도 있다(그림 4의 아래). 하단의 마지막 장면은 파리스에게 화살을 맞아 죽은 아킬레스의 유골을 항아리에 운반하는 그의 어머니 테티스를 묘사한 장면이다(그림 5).

 

 

 

그림 4. 그림 2의 하단(Алексеев А.Ю. 2012)

 

 

 

그림 5. 그림 2의 하단 가장 마지막(Алексеев А.Ю. 2012)

 

이 유물을 분석한 알렉세예프는 유물이 제작된 곳은 보스포러스 왕국(케르치 해협에 위치, 스키타이 유목민족과 그리스 인이 특징이 함께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 대표적인 유적 쿨-오바)의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본다. 다른 부족과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의식적이고 권위 있는 물품을 배포해서 외교정책을 한 Perisade I(Paerisades I)때로 기원전 330~320년에 제작되고 배포되었던 것으로 본다.

 

체르톰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스키타이 문양(동물)과 함께 그리스 신화가 묘사된 것으로 확실히 스키타이 특징만 나타난 지역에서는 제작되기 힘들었던 유물이다. 그래서 드레프르강 하류의 체르톰리크 유적이 위치한 스키타이 지역 보다는 당시에 그리스 문화의 특징이 나타난 캐레치 해협(흑해와 아조프해의 연결반도)보스퍼러스 왕국의 공방이 제작지였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캐레치 해협의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은 보르포러스 왕국의 무덤으로 여겨지는데 스키타이 차르의 체르톰리크 무덤과는 전혀 다른 무덤구조(포스팅 참고)이다. 확실히 이 시점에는 흑해 스키타이 지역은 각 지역마다 자신의 지역색이 뚜렷해졌다.

 

이 유물이 그리스 신화로만 구성되었다면 별로 재미없었을 것인데, 가장자리는 동물과 식물문양을 넣어서 장식했다는 점은 중요한 점이다. 특히 상단에 위치한 동물이 투쟁하는 문양의 특징은 스키타이 특유의 문양이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лексеев А.Ю., Мурзин В.Ю., Ролле Р. 1991 : Чертомлык.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IV в. до н.э.).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91. 416 с.(알렉세예프, 무르진, 롤레 1991, 체르토믈리크(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차르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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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게 나타난 유물들이 벌써 나타나는 현상이 있었다.

흑해지역에서는 지난 여름에 소개해 드린 쿨-오바 유적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잇는 지역에 위치한 쿨-오바 유적은 아르타모노프가 스키타이 귀족의 그리스화라고 부를 만큼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된 곳이다.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적인 특징의 결합으로 ‘보스포러스 왕국’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astsearoad.tistory.com

 

 

흑해 지역에서 쿨-오바 유적과 같은 시기에 케르치 해협이 아닌 비교적 내륙으로 드네프르 강 유역의 체르톰리크 유적에서도 이색적인? 혹은 자신과 다른 색채의 유물이 왕창 발견되었다. 드네프르 강 하류에 위치한 유적이 위치한 곳은 평지이다. 높이 20m, 직경 350m의 고분이 들어섰다면 거의 산을 하나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국경내에 위치하는데, 니코폴 시의 북쪽에 위치하며 1862~1864년에 걸쳐 발굴되었다. 유적을 발굴한 자벨린은 아래(그림1)와 같은 유적의 평면도(그림 1-2, 그림 2, 그림 3)와 단면도(그림 1-1)을 남겼다. 무덤의 외관은 봉분의 끝이 편평한 점은 이 지역의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과는 비교된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그림1. 체르토믈리크 유적 단면도(위)와 평면도(아래), 평면도는 그림 2와 방향이 다름, 이 그림에서 북쪽은 오른쪽, 자벨린 작성( 알렉세프외 1991)

 

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 평면도, 자벨린 작성( 알렉세프외 1991), 무덤을 둘러싼 호석을 벗기고 난 후 무덤 바닥의 평면도, 무덤의 입구는 ‘P’, 북쪽은 화살표의 끝방향

 

그림 3.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중심무덤방의 평면도, 자벨린 작성( 알렉세프외 1991), 그림2에서 가장 센터에 위치한 무덤방을 자세하게 그린 것이다.

 

유적의 중심부에 위치한 주인공의 무덤방은 깊이 11m 깊이에 위치하고 그림 3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고 4개의 무덤방을 따로 만들어 그곳에 유물을 부장했다. 그래서 도굴은 면할 수 있었다. 날개처럼 달린 무덤방은 일종의 동굴처럼 만든 장소이다(그림 3의 단면도 확인). 특히 북서쪽 방향에 위치한 무덤방은 안쪽으로 계속 연결되어 넓은 공간이 따로 마련되었다. 이곳은 북서쪽에 위치한 무덤의 입구(그림 2-P)와 연결되었다. 말이 매장된 곳은 중심무덤방의 동쪽에 따로 3개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북서쪽 방향에 위치한 무덤방은 주인공이 묻힌 곳인데, 통나무 무덤방 안에 여성이 매장되었다. 북서쪽 무덤방의 양쪽에 위치한 무덤방에는 남성이 매장되었고, 북서쪽 무덤방과 대각선으로 위치한 무덤방에는 동물뼈(개?)와 유물이 부장되었다. 주인공 무덤과 연결된 무덤방(무덤입구와 바로 연결되는 무덤방)에는 남성의 인골이 확인되었다.

 

유적에는 도굴의 흔적이 있었지만 무덤의 최상부를 뚫고 들어오다가 흙이 무너져서 붕괴되어서 중단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복잡한 무덤 구조 덕분에 주인공이 매장된 곳과 이곳과 연결된 무덤방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그림 4. 체르톰므리크 출토, 고리트(활과화살을 함께 담는 스키타이 특유의  통)를 감싼 장식, 27.3×46.8cm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Мурзин В.Ю., Ролле Р. 1991 : Чертомлык.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IV в. до н.э.).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91. 416 с.(알렉세예프, 무르진, 롤레 1991, 체르토믈리크(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차르의 무덤)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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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우랄 지역에서도 기원전 7세기부터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사우로마트 문화가 나타난다. 이 뒤를 이어서 기원전 5세기는 사르마트 문화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며, 기원전 4세기는 완전히 사르마트 문화가 이 지역과 흑해 지역까지 차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부우랄지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필리포프카 유적은 기원전 5세기(알렉세예프 1987)혹은 기원전 4세기(피세니축 2012)라고 약간 씩 차이가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을 ‘이른 사르마트 문화’라고 하는 이유는 이란계통의 유물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그림1. 스키타이 문화권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그림 1은 붉은 색으로 표시된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에서 나타나는 각 지역의 문화이다. 그 가운데 흑해 주변에 표시된 코반 문화와 킴메르인은 스키타이 문화 이전의 문화로 스키타이 문화가 만들어지는데 기반이 된 문화(코반 문화)와 스키타이 문화로 인해서 이동을 하게 된 민족(킴메르인)을 표시한 것이다. 알타이 문화는 이제까지 설명했던 파지릭 문화를 일컫는다.

 

어제 보여드린 사슴은 투바 및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사슴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이 유적의 유물에는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동물문양과 공통된 점이 많다.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안장덮개의 장식으로 부착되었던 늑대(그림 2),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 전면에 묘사된 적이 있는 호랑이 장식(그림 3)이다. 늑대와 호랑이가 취하고 있는 자세도 매우 유사하고, 동물 몸통 내부를 문양으로 채우는 방법도 비슷하다. 늑대와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장면도 그렇다.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 문화와 공통적인 문양이다. 그러나 이 유적만의 특징적인 유물도 많이 있다.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호 무덤, 감실 1호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 무덤, 감실 1호

 

몇 개의 유물이 있지만 그 가운데 수사슴도 포함된다. 어제 소개해 드린 대형의 수사슴은 무덤의 입구에서 출토된 것도 있지만 1호에는 일종의 ‘감실(龕室)’이 2곳 발견되었는데, 그 곳에서도 출토되었다. 감실에는 가장 많이 들어 있었던 것이 목제 그릇이다. 목제 잔을 장식하는 장식판은 위와 같은 맹수 동물문양장식도 있고, 사슴처럼 보이는 문양(그림 4)도 있다.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 무덤, 감실 1호

 

목제 잔에 장식판에 묘사된 사슴(그림 4)은 역시 사슴으로 보기에는 어색하게 입주둥이가 튀어나오고, 귀도 크다. 사슴의 자세도 알타이의 사슴문양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무덤 입구에 세워진 사슴을 평면으로 묘사한 것이다. 물론 목제 잔의 입술부위를 장식하기 때문에 유물은 목제 잔에 맞추어 약간 굽었다.

 

 

이 유적에서는 인골 머리 맡에서 동물문양(목제, 금속품)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 알타이의 울란디르크 I유적(12호의 우측 인골)과 같이 어떤 이는 아무런 부장품 없어도 인골의 머리 위에는 금박종이가 발견되어 고깔모자를 썼었는데...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1987 : Хронография Скифии второй половины IV в. до н.э. // АСГЭ. Вып. 28. Л.: 1987. С. 38-51.(알렉세예프 1987, 기원전 4세기 후반 스키타이 문화의 편년)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프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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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강의 필리포프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봉분을 쌓아 만드는 쿠르간(봉분무덤)이 있고, 그 내부의 부장품도 철검(아키나크 검), 화살촉, 재갈, 재갈멈추개,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어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과 공통성이 있다. 물론 동물장식도 포함한다.

 

특히 필리포프카 유적의 사슴장식(그림 1~3)은 유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역의 사슴 스타일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유적에서 모두 5개가 출토되었는데 무덤의 입구 좌측에서 출토되었다(그림 4-16). 원래는 모두 세워진 상태로 부장되었을 것이다.

유물은 황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 청동, 은을 합금했고, 그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사슴의 원형이 남아 있다. 유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나의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여러 조각을 이어붙인 것도 있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출토 당시의 사슴

 

사실 뿔만 아니면 이 동물을 사슴으로 보기 힘들다. 지나치게 튀어나온 입과 사슴치고는 짧은 다리 때문이다. (알타이의 사슴과 비교해보면 세밀하지 않다).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출토 사슴복원, 높이 49~51cm, 뿔의 너비 29~30cm, 몸통전체길이 39~41cm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출토 사슴, 그림2의 옆 모습

 

그림4.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사슴이 출토된 무덤 1호의 평면도, 16번 자리에서 사슴이 출토되었다. 남쪽으로 난 길다란 계단복도가 입구이다.다시 설명드리겠다(Пшеничнюк А.Х. 2012)

 

 

 

황금사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목제 사슴을 감싼 부분이 금, 은, 청동으로 합금한 금속물질이다. 나무조각을 금으로 싸는 동물장식은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문화의 동물장식 특징이다. 물론 사슴을 표현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이 유적에서는 알타이와 투바에서 출토되는 목제 잔이 출토된다. 물론 손잡이 모양은 다르다. 유적에서는 금과 합금한 금속판으로 만든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발굴할 당시인 1986년에는 흥분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현재의 자료로 보면 기원전 4? 기원전 5세기에는 이미 당대에 존재하던 기술로 만든 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기원전 7세기경의 시베리아 투바 아르잔-2 유적에서 훨씬 세련된 동물문양장식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프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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