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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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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가장 중앙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에는 다양한 무덤구조가 발견된다. 카자흐스탄 우측에 위치한 알타이 및 투바지역은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 흑해지역은 대략 서부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양 지역 무덤이 몇 개의 형식으로 정해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카자흐스탄 중부 지역에 흐르는 자를리 강변의 누르켄-2 유적에서는 연도가 있는 무덤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입구와 연도, 매장주체부를 구분해서 돌로 덮어서, 무덤의 구조가 잘 드러난다. 이 유적과 가까운 곳(직선거리 5km 이내) 세렉티-1 유적에서는 또 다른 무덤 구조가 발견되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외관상으로 드러난 직경은 50m로, 가장 상부는 돌로 덮은 것이었지만, 그 내부는 좀 복잡하다. 무덤구덩이는 장방형이고 연도(길이 2.75m)가 서쪽으로 있는 모습의 매장주체부이다. 그러나 입구는 봉분과 연결되지 않았다. 매장주체부에는 돌과 함께 흙을 채웠고 그 상부를 점토 덩어리로 덮었다(직경 34m, 그림 1의 평면도와 단면도 참고). 점토덩어리로 채운 경계와 떨어진 곳에 호석을 둘렀는데, 그 곳을 기준으로 한 직경 45m이다.

 

그림1. 세렉티-1 유적의 10호 평면도와 단면도

 

세렉티-1 유적에서 ‘연도(무덤안의 복도)’라고 불리는 시설은 입구와 연결되지 않아서 실제로 연도인지는 의문스럽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은 연도라고 분류했다.

 

그림 2. 세렉티-1 유적의 점토 덩어리

 

특이한 점은 무덤 내부를 채운 점토 덩어리이다(그림 2). 1960~70년대 발굴된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보고된 바 없으나, 2000년대 이후에 발굴된 유적에서는 점토덩어리가 무덤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발견되었다.

 

세렉티-1 유적, 탈디-2 유적, 나자르-3 유적 등 카자흐스탄 중부지역에 위치한 많은 스키타이 시대의 많은 유적에서 발견되는 무덤축조 재료 중에 하나이다. 이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건축재료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돌을 구할 수 없으니, 대안일 것이다.

 

이 무덤의 매장구덩이는 길이 3m, 깊이는 0.25m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무덤구조물을 특별히 만들지 않았고, 매장구덩이 안에 납작한 석판을 구덩이 중앙에 세워 놓았다. 아마 더 이상의 무덤구조물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연도는 단을 만들어서 무덤바닥으로 내려 가도록 되어 있다(그림 3). 바닥에서는 뼈로 만든 빗, 철제품, 청동화살촉(그림 3-2~4)이 나왔다.

 

그림3. 세렉티-1 유적의 무덤구덩이(1)와 출토유물(2~4)

 

세렉티-1 유적을 보면 매장주체부 보다는 무덤을 크게 만드는데 더 주력했다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직경 50m, 높이 3.9m로 만들기 위해서 점토 덩어리를 대량으로 써서 무덤을 높고 크게 만들었다. 인접한 누르켄-2 유적과 불과 5km 내외에 위치했으며, 동시대의 무덤인데, 이렇게 외관과 내부구조가 다른 무덤이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참고문헌

 

Бейсенов А.З. Дромосные курганы сакской эпохи на реке Жарлы (Центральный Казахстан). // Самарский научный вестник. – Самара: СГСПУ, 2016б. №3 (16).– С. 77–86. 베이소노프 2016, 카자흐스탄 중부의 자를리 강에 위치한 사카시대의 연도가 있는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서부의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금으로 된 십자형 그리핀이 표현된 장식판과 산양머리 장식판이 고깔모자와 상의에 부착되었다고 추정된다. 발굴당시에 고깔모자와 상의는 남아 있지 않지만 장식판의 위치로 보아서 고깔모자와 상의에 십자형 그리핀, 상의 소매 끝에 산양머리 장식판이 붙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십자형 그리핀은 여밈이 있는 상의의 가장자리에 붙은 것으로 생각하는 복원안(그림 1)과 어깨와 등판을 따라서 장식되었을 것이라는 복원안(그림 2)가 있다.

 

그림 1. 탁사이-1 유적의 여성복원

 

그림 2.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의복 복원(룩파노바 2017)

 

필자가 카자흐스탄 동부 이식 유적의 십대남성의 의복은 여밈이 있어서 시베리아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흑해지역일 가능성이 많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시베리아 특히 알타이에는 상의가 2가지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미라나 아크 알라하-3 유적의 1호 여성미라가 입고 있던 상의는 여밈이 없고 긴 상의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여성은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동물털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된 현재의 무스탕과 같은 스타일이다. 초본류를 상징하는 가죽 어플리케 장식을 붙인 것(그림 3)으로 코트의 뒤가 길게 꼬리처럼 달렸고, 앞은 여밈이 있는 형태이다(그림 4).

 

그림3.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모피코트 일부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 여성복원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여성은 모피코트 자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되었다(폴로스막 2001). 하지만 나중에 무덤에서 나온 금박은 가죽어플리케 장식에 달았던 것으로 옷에 달았던 것으로 보이며, 위에 상의(폴로스막은 모피코트로 추정)가 하나 더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나중에 나온 저서(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에는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복원(그림 6)되었다. 미라로 출토될 당시에 두 손이 마주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폴로프막 2001)에는 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는데 무게가 실렸으나, 입관 당시에 어깨에 걸치는 방법으로 착용했다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그림 5. 아크 알라하-3 유적 여성미라의 모피코트에 달렸던 가죽어플리케를 장식했던 금박

 

그림 6.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여성미라 복원(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의 또 다른 유적인 카탄타 유적에서도 여밈이 있는 상의(카프탄이라고 부름)가 출토되었는데, 가죽으로 제작되었고 가죽어플리케 장식과 담비털로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것이다.

그림 7. 카탄타 유적에서 출토된 상의(카프탄)

 

추나코바(2004)는 카탄타 유적과 파지리크 유적의 의복에 장식된 담비털은 이란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털로 그 세계관이 전해진 것으로 보았다.

그럴 수도 있지만 여밈이 있는 상의와 그 위에 장식판을 다는 것은 알타이 유적(파지리크, 아크 알라하-3, 카탄타)보다 훨씬 이른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아르잔-2호에서 이미 발견되는 것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아르잔-2호는 알타이 유적 보다 훨씬 뒤에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탁사이-1 유적과 이식 유적에서 여밈이 있는 상의는 시베리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흑해지역과 관련짓는다는 결론은 섣부르다. 거기에 달린 장식판들이 동물문양이고, 특히 십자형 그리핀은 알타이와 카자흐스탄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재지의 특징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 파지릭 사람들의 의복과 직조물

Лукпанова Я.А. Реконструкция женского костюма из элитного погребения Таксай–1: Взгляд археолога // Поволж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1 (19), 2017. – С. 234–244(룩파노바 2017, 탁사이-1 유적 엘리트 무덤에서 나온 여성의복 복원

Чунакова О. М. Пехлевийский словарь зороастрийских терминов, мифических персонажей и мифологических симꠓволов. — М.: Издат. фирма РАН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2004. — 285 с(추나코바 2004, 조로아스트교의 용어, 신화적 인물 및 신화적 상징의 팔라비 사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동부의 기원전 4세기 이식 유적에서는 화려한 의복과 고깔모자를 쓴 소년이 발굴되었다. 매장주체부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소년이 입고 있던 의복과 각종 그릇들은 남아 있었다.

 

앞서 포스팅한 바와 같이 머리에 쓰고 있는 고깔모자는 장식성이 강한데, 흑해 지역보다는 알타이 지역의 스타일과 비슷하다. 반면에 입고 있는 상의는 여밈이 있는 스타일로 여밈이 없는 알타이 지역의 의복과는 달리 흑해 부근에서 발견되는 전사 모습이 새겨진 유물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전사들은 매장될 때 의복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기도 착장하고 매장되었는데, 활과 화살을 담은 고리트, 칼과 검, 투부(전투용 도끼)가 그 대상이다.

 

이식 유적의 소년도 무기를 착장했는데 스타일이 다른 철검 2자루이다. 오른쪽의 철검이 좀 더 길었지만(그림 1의 오른쪽), 검신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병부와 신부를 함께 주조한 것으로 금으로 상감된 유물로 손잡이의 모습은 T자형이다. 손잡이에는 얇은 금사를 꼬일처럼 감았고, 검날멈추개는 V자형이다. 다른 한점은 소년의 왼쪽에서 발견된 것인데 단검이다. 검날 멈추개와 손잡이 모양은 긴 검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손잡이 끝에 두 마리 그리핀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고, 검신의 중앙에는 동물 22마리가 장식된 띠(그림2)가 부착되었다.

 

 

그림 1.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쿠르간에서 출토된 철제 검

 

그림 2.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쿠르간에서 출토된 철제 검의 부분, 그림 1의 왼쪽과 동일

 

비교적 긴 철검은 손잡이의 모습, 신부와 검날멈추개의 모습 뿐만 아니라 철에 금을 상감했다는 점에서 필리포프카 유적의 검과 비교할 수 있다. 이 유적은 우랄 남부에 위치하는데, 카자흐스탄 북쪽의 유적이다.

2020.11.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말 탄 전사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말 탄 전사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문화(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골제로 만들어진 말 탄 전사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남성은 고리트(스키타이식 활과 화살통)를 차고 있었고,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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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철검으로 짧은 검(그림 1-왼쪽)은 손잡이와 검의 신부 경계인 검날멈추개가 ‘V’자형이라기 보다는 ‘나비형’이라고 불리는 형태와 더 유사하다. 나비형 검날멈추개가 달린 짧은 검은 동유럽 스키타이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서부)에서 종종 발견되는 유물이다. 그렇지만 검 신부 중앙에 동물이 새겨진 띠는 아르잔-2호(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의 5호묘 남성의 철검에서 확인되는 제작방법이다. 더욱이 이식 소년의 검 끝을 동물장식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은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에서 주로 발견되는 방법이다. 흑해지역의 나비형 검날멈추개가 달린 검의 손 잡이 끝장식은 주로 ‘( )’모양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동물장식이 달린 손잡이는 스키타이 문화 서부지역(유럽)의 특징은 아니다.

 

때문에 이식 유적에서 나온 아키나케스 검이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단검은 스키타이 서부지역의 기본적인 형태에 손잡이 끝장식과 검신 장식판은 스키타이 동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종합하면 이식 유적의 소년은 매우 복합적인 복장을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깔모자는 알타이 것을 참고로 하고, 상의는 흑해 지역의 것과 유사하며, 단검(아키나케스)도 스키타이 동부지역과 스키타이 서부지역을 참고로 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특정 지역의 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표현방법, 만드는 소재에 따라서 재지의 특징이 가미된 것이다. 무기 착장에서도 철검을 2자루만 착용하고, 고리트와 투부가 없는 점도 알타이 전통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알타이의 아크 알라하-1 유적의 2호는 어린 소년의 무덤이지만 소년의 체격에 맞게 소형의 고리트, 투부가 따로 만들어져서 부장되는 점과는 비교 된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동부에 위치한 황금인간의 무덤이 있는 유적은 ‘이식’이라고 불리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황금인간이라고 불리는 소년의 무덤은 기원전 4~3세기로 사카 문화(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카자흐스탄 동부의 지역문화)에서는 늦은 시기이다.

 

무덤의 바닥(그림 1)에서는 소년의 복장을 제외하고 토제로 만든 그릇(그림 2), 나무로 만든 그릇(그림 3), 은으로 만든 그릇(그림 4)과 숟가락(그림 5)이 발견되었다.

알타이에서 토제 항아리를 1~2점 부장했지만 이식 유적에서는 16점이나 묻었다. 물론 토기의 기형에도 차이가 있지만 실제로 보고된 사진(그림 2)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어서 꼼꼼하게 살피기에는 부족하다. 알타이 토제항아리는 ‘쿱신’이라고 불리며 유제품을 담았던 것으로 1~2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그림 1. 이식 유적의 황금 인간 쿠르간 무덤바닥

 

그림 2.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토기

 

 

나무로 만든 그릇은 쟁반과 국자(그림 3)가 발견되었는데, 쟁반의 개수도 역시 이곳이 많다. 이곳에 고기를 담았던 것으로 생각한다면(그림 1의 좌측면의 네모모양이 목제쟁반을 의미한다) 매장당시에 소년의 무덤은 생고기의 썩는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이나 아크 알라하-3 유적에서 목제로 만든 잔에는 손잡이가 한쪽으로 붙은 것(포스팅)이 나오는데, 그에 비하면 이식 유적의 유물은 ‘국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앞 부분은 작고 손잡이가 길다(그림 3).

 

2020.01.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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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파지릭 2호분 유물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파지릭 2호분 유물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2500년 전 무덤에서는 나무로 된 무덤방 안에서 통나무관 1개가 확인되었다. 통나무관은 나무를 파서 만들었는데, 뚜껑까지 잘 제작된 것이었다. 무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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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나무 쟁반과 국자

 

은제 그릇(그림 4)은 2점이 나왔는데, 소년의 머리맡에서 나온 것이다. 그릇의 형태가 다른 2개인데, 그 중에 한 점은 바닥에 글자 혹은 기호가 적혀 있다(그림 4-2). 숟가락은 손잡이 끝이 구부러지고 끝에 날카로운 새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5).

 

그림 4.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은제 그릇

 

그림 5.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은제 숟가락

 

사카 문화의 유적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그릇류는 개수가 알타이에서 나온 것 보다 훨씬 많다. 뿔로 만든 항아리도 보이지 않는다. 뿔로 만든 항아리를 무덤속에 넣는 의미를 가장 중요한 동물을 상징한다고 보았다(폴로스막 2001).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의미를 담는 그릇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은 소년이 입고 있던 복장에 더 관심이 많다. 황금으로 장식된 붉은 옷과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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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동부에 위치한 사카 문화는 거대한 쿠르간과 황금유물로 유명하다. 사카문화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카자흐스탄 동부의 지역문화 중에 한 곳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베스샤타르 유적 외에도 이식 유적이 있다.

 

특히 이식 유적은 화려한 복장을 입은 남성이 그대로 확인되어서 여러모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식 유적의 남성은 ‘황금인간(그림 2)’이라는 별칭이 있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신생국가로서 자신의 문화적 유산을 잘 이용했는데, 1974년 이래로 황금인간은 모든 박물관에서 전시되었고, 황금인간 모자의 형상은 국가 상징물로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어김없이 이 유적도 도굴된 채 발굴되었다. 정확하게 무덤 구조는 알 수 없지만 한 봉분 아래에 여러 방이 있는 구조였을 것인데 발굴될 때 당시에는 중앙과 남쪽 측면에 두 개의 무덤방이 확인되었고, 중앙은 완전히 도굴당해서 전모를 알 수 없다. 중앙에서 남쪽으로 15m가량 떨어진 곳에 장방형의 무덤방이 하나 더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황금인간이라고 불리는 십대 소년이 매장되었다. 이곳도 매장주체부의 상단은 거의 없어진 상태였고, 나무방(3.3×1.9m, 높이 1.3~1.5m)은 통나무로 덮개가 철제 꺽쇠로 고정된 채 발견되었다(그림 1).

 

 

그림 1. 이식 유적 황금인간의 무덤방 출토상황, 위-남쪽 측면 무덤방, 아래-통나무 덮개가 내려 앉은 모습

 

 

그림 2.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이식 박물관에 전시중인 황금인간

 

 

모자와 의복을 갖춘 소년의 머리(서벽)위에는 토기 16점, 은제품 2점, 숟가락 1점이 발견되었고, 소년의 우측(남벽)에는 자작나무로 만든 잔, 접시, 국자가 있었는데,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국자와 접시 2점 뿐이다.

 

이식 유적에는 150여기의 쿠르간이 구성되어 있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17세기까지 이곳은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직경은 20~10m, 높이 1.5~15m 규모의 쿠르간이다.

 

황금인간의 무덤은 완전히 파손된 채 발견되어 봉분의 높이를 알 수는 없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쿠르간은 높이 6m, 직경 60m이다. 베스샤타르 유적과 마찬가지로 봉분은 쇄석과 점토를 섞어서 겹겹이 쌓아서 지상의 무덤주체부를 덮었고 위는 편평하다. 황금인간의 무덤도 같은 구조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황금인간이 나온 무덤은 무덤방이 최소 2개인 것을 생각하면 베스샤타르 유적의 매장주체부와 완전히 같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봉분을 쌓은 방법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식 유적이 전면 보고된 아키세프의 저서에는 황금인간이 출토된 간단한 경위와 유적에 대한 설명만 간단하고 전부 의복에 장식된 황금장신구와 관련된 내용이다. 하지만 여전한 의문점은 많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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