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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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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유형. 평지성


이 성지는 강 주변에 설치되는데, 그 중에서도 높고 편평한 범람원으로 홍수의 영향이 받지 않는 곳이 선택된다. 연해주의 북동지역에서 평지성은 모두 12개로 브루실로프스코예, 사도비 클류치, 보고폴예, 에스톤카, 프리스탄스코예, 드지기토프스코예, 크라스노예 오제로, 체렘샤니, 말라야 케마, 켐스코예-돌리노예,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우스티-소볼레프스코예 성곽 등이다.

평지성은 농경에도 편한 지역으로 물과 접근성이 좋은 중류역이나 하류에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진다. 1) 방형(장방형), 2) 다각형, 3) 궁형(개방형)

 

(1) 1형식. 방형 성지

현존하는 평면형태 방형의 평지성은 브루실로프스코예 http://브루실로프카 성곽 유적 , 사도브이 클류치, 에스톤카http://루드나야 강 유역: 에스톤카 발해성곽, 드지기토프스코예, 프리스탄스코예, 크라스노예 오제로, 말라야 케마, 체렘샤니, 켐스코예-모르스코예 성지 등 모두 9기이다.



. 평면형태. 단순하고, 내성과 보루가 없다. 예외적으로 드지기토프스코예 성지에는 아주 작은 내성이 있다. 성지의 내부는 아주 편평하고, 장대가 없다. 성내부에서 소토가 확인되는 유적은 브루실로프스코예, 드지기토프스코예, 크라스노예 오제로, 에스톤카, 체렘샤니 유적 등이다. 성벽과 가까운 곳에서 구덩이가 확인되는데, 이 곳에는 성벽을 축조할 때 사용된 흙을 채취한 흔적으로 생각된다. 돌로 만들어진 우물도 확인되는데 이러한 유적은 에스톤카, 브루실로프스코예 유적 등이다. 성의 내부에서는 생활구역과 생산구역으로 나누어진다.

 

. 성벽의 축조방법. 성벽은 치가 없는 단순구조로, 성의 크기를 계측한 후 모서리부터 축조되기 시작한다. 성벽은 흙을 층층이 다져서 쌓아 올리는 판축기법을 이용하였는데, 성벽의 외벽은 돌을 경사지게 해서 쌓아올렸다. 이렇게 성벽을 경사지게 쌓아 올리는 것은 성의 다른 곳에서도 보인다.

. 평면특징. 방형의 성에서는 문지가 2~4기 확인되는 것이 보통인데, 드물지만 1개인 것도 있다. 문지는 대개 단순한데, 2~5m의 성벽을 절개해서 만든다. 여기에 다른 기술을 더한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의 높이는 산성과는 차이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높지 않고 1~2~2.5m에서 가량이다.

평면형태 방형의 성지는 성벽 외측에 해자가 있는 것이 보통인데, 보로비요프가 언급했듯이 2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성으로부터 물이 빠져나가게 하는 일종의 하수도 역할과 다른 하나는 방어적인 요소이다(보로비요프 1983).

가장 큰 방형 평지성은 디지기토프스코예 성으로 57,600, 다음은 브루실로프스코예 성곽으로 28,900이다. 나머지 성곽의 평면적은 10,000를 넘지 않는다.

 

. 용도. 평지에 위치한 성지는 높지 않은 성벽과, 단순한 성문, 치와 집석 시설의 부재, 화재나 다른 파손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보아서 평온한 시기에 평지의 방형성지가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성들은 사냥, 어업 등 퉁구스-만주족의 생업활동을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베뉴코프 1960). 성곽에서 생활구역을 발굴한 결과, 그 곳에서 오랜기간 동안 정주한 흔적이 있다. 이는 방형 성지가 취락을 위한 것임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 문화의 특징과 연대.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현재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현재는 방형 성지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대략 3가지로 구분되는데, 연질토기, 녹로제 토기, 손으로 만든 후 녹로위에서 완성되는 토기로 구분된다. 연질토기는 원래 원주민의 전통으로 모든 유적에서 말갈토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녹로제 토기는 발해형식의 토기로써, 방형 성지가 발해국가와 관계가 많음을 보여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유적에서 발해토기가 출토하게 된 것은 발해와 말갈 간의 경제교류가 아주 깊었거나 혹은 이 지역에 발해인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많다. 녹로제 토기는 인화문이 시문되어 있다. 이러한 토기는 필자가 예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발해국의 남쪽인 연해주에서 보이는 이 토기가 아무르강 하류 여진족 문화의 일부와 유사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토기를 녹로에 놓고 성형하는 기술과 기형 등은 중국의 기술이다. 그래서 평지성 중에 방형 성지도 연해주 동북쪽에 위치한 성곽은 말갈문화의 것으로 생각된다. 말갈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국가가 발해(698~9226), 여진(115~1234), 동하국(1217~1234)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볼 수 있다. 방형 평지성에서 출토된 토기는 전체적 양상으로 보아서 8~10세기 발해 국가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적에서 출토된 말갈토기 옹형 토기의 기형은 9~10세기에 유행한 것이기 때문에 유적의 연대는 그에 따르는 것이 더 정확한 것으로 판단된다(댜코바 1983).

 

. 기원. 방형 평지성은 아주 잘 지어진 방어시설로서 기원전 10세기부터 10세기 까지 이 지역에는 없었던 건축물이다. 방어시설이라도 단순히 곶 위에 짓는 정도이다. 바둑판 같이 반듯한 평지성은 고대부터 중국의 기술로 정확한 계측을 통해서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이다. 주로 방형성은 궁정 등을 짓는데 이용되었다(이보츠키나 2003). 러시아 극동에서 방형성지는 발해(698~926)이후에야 볼 수 있는 건물지이다. 발해는 연해주로 바로 들어온 것은 아니다. 중국 사료에 기록되어 있듯이, 중국 당나라의 행정을 모방해서 국가의 기초를 9세기 초반에 만들었고, 방형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오랑캐의 땅인 연해주도 하나의 현으로 들어가서 지역 주민들을 통제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치가 없는 방형의 평지성에서는 확인되는 고고유물 가운데 무기가 지표에서도 수습되지 않고, 토층에서도 거의 확인되지 않는데, 이러한 점은 연해주의 북동 지역에 발해는 처음에는 아주 평화로웠다는 점을 반증한다. 성은 그 지역과 주민의 관할하는 하나의 관청으로써 역할이었다. 성의 지위는 그 규모와도 일치하는데, 드지기토프스코예 성지는 동북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성곽은 인접한 포드네베스노예 성곽에서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 사면으로부터 들어오는 문지를 지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곳은 동해까지 이어져서 드지기트 항구까지 다다르는 길을 통제한다. 또한 드지기토프스코예 성곽의 위상은 내성의 조재로도 알 수 있다. 고고학유물 중에서 확인되는 말갈토기의 존재는 이 평지성이 지역민인 말갈 군인들이 관장하던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는데, 아직까지 외래문화(발해문화)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해가 존재하던 시기에 발해 토기가 나타난 것은 이 지역에 새로운 고고문화를 규명할 수 있다. 방형의 평지성과 녹로제 토기 등은 중국 전통인데, 중요한 것은 성벽의 축조방법이다. 현재까지 러시아의 연구자들은 판축 기법이 예외적으로 연해주에서는 여진족과 관련된 12~13세기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평지의 방형성이 발해의 것이라는 판단이었지만, 성벽축조에서는 위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연해주의 북동지역에서 말갈족에게는 너무 이른 기술이었는데, 아마도 중국 기술자에 의해서 평지성이 계획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간접적으로 발해의 국가 영역에 들어간 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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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예딘카 강 유역



예딘카 강은 연해주에서 큰 강 중에 하나로 시호테 알린 산맥의 이름 없는 수원지 두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곳은 한자(Ханза, Hansa) 산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곳으로, 높이는 1666m이다. 강은 산의 동쪽면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아주 많은 지류가 흘러서 계곡이 형성되었다. 왼쪽으로는 아브로라(Аврора, Avrora), (Бе,Be), 보도파드느이(Водопадный,Vodopadnyy), 체르니셰프카(Чернышевка,Chernyshevka) 니즈니이 사마로프스키이(Нижний Самаровский, Nizhny Samarobskii)강인데, 20~30km 가량 계속 흐른다. 오른쪽에는 이즈유리니이(Изюбриный, Izyubrinyy), 토포그라피체스카야(Топографическая, Topograficheskaya), 옐리세프 클류치(Елисеев Ключ, Eliseev Kluch), 솔로하(Шолоха, Soloha), 아듀가(Адюга, Adyuga), 콜레티프카(Коллективка, Kollectivka), 파세치느이(Пасечный, Pasechnyy)등으로 그 길이가 12~30km가량이다. 강 수계의 높이는 1300m가량이다. 예딘카 강은 타타르 만으로 흘러들어가며, 길이는 113km 이다. 집수지의 너비는 2,120,000가량이다. 예딘카 집수지는 비킨 강, 사마르가 강, 카반예이 강(Кабаньей, Kaban'yey), 베뉴코프카 강, 쵸르나야 레치카(Черная речка, Chernaya rechka)강과 같은 곳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강의 하류는 지반이 낮은 심한 늪지대로 지류가 심하게 갈라져 있으며, 이 지류들은 잘 없어지기도 한다. 하류의 너비는 50~500m정도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물이 올라오면 범람되기도 한다. 넓은 곳에서 강의 유속은 강의 온도와도 관련이 있다. 예딘카 강의 물은 연해주 다른 강보다 아주 찬 편이다. 예딘카 강의 수계는 아주 넓은데,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과 서쪽을 연결하는 것과도 관련이 되어 있다. 이 강의 상류는 아무르 강의 지류인 비킨 강과도 가깝다.

예딘카 강 유역에는 1기의 성곽이 알려져 있다(그림 125)

  


그림 125. 예딘카 강 유역(54번 예딘카 강 유역의 성곽)

  


1) 예딘킨스코예 성곽


예단카 강의 좌안으로, 그 강의 한 지류의 오른쪽 강안 단구대 위에 위치하는데, 강의 하류에서부터 15~17km 떨어진 곳으로, 에딘카 마을의 헬리곱터 광장에서부터 북동쪽으로 2~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 성은 높이 12m의 예딘카 강의 절벽위에 위치한다(그림 126). 절벽 끝에 2줄 성벽이 있는데, 폐쇄형이다. 성벽 내측 높이는 해자에서부터 3m이고, 해자를 제외하고는 0.3m가량이다. 성벽 외측 높이가 1.5~3.5m가량이며, 성벽의 너비는 6~7m이다. 성의 남서쪽에는 높이 0.5m 가량의 세 번째 성벽이 약간 남아 있다. 성벽을 따라서는 해자가 둘러져 있는데, 성벽의 길이는 100m가량이다.

2006년에 처음으로 댜코프와 댜코바가 이 유적을 조사하였다.


  

그림 126. 예딘스코예 강 유역의 성곽

 

이 성은 평지성으로 평면형태는 자형이고, 성의 안에는 내성이나 보루가 없고, 편평하다. 성벽의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취락을 방어하기 위해서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말갈의 것으로 대략 10세기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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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부르리바야 강 유역


부르리바야 강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계면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렌타(Алента) 산의 북쪽 타타르(Татар) 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강의 범위는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계면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산의 정상부는 높지 않고 울퉁불퉁 하며, 강의 지류가 많아서 계곡이 많다. 산의 수원지 높이는 800~1300m이고, 하류는 200~300m이다. 강의 왼쪽으로는 타라소프(Тарасов), 오른쪽으로는 예레멘킨(Еременкин)과 푸도프(Пудов) 지류가 있다. 강의 계곡은 좁고, 경사가 심하며, 강 하류의 너비는 2km 가량이다.

부르리바야 강 유역에는 오아지스 성곽 1기가 알려져 있다(그림 122, 30페이지 지도).

 

그림 122. 브루리바야 강 유역의 성곽 (52번은 오아시스 성곽의 위치)

 


1) 오아시스 성곽

쿠즈네쵸바 마을에서 북쪽으로 7km 떨어진 해안 단구대 위에, 부르리바야 강 하류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단구대의 남쪽과 서쪽은 알렌타 산의 경사면과 맞닿아 있고 하류인 동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는데, 산과 접한 부분은 가파른 경사로 인해서 접근이 쉽지 않다. 이 성곽은 단구대 북쪽으로 2줄의 토성벽이 있다(그림 123, 13). 1984년도 타타르니코바가 처음 조사했는데, 유적에서 말갈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123. 1984년 타타르니코프가 작성한 오아시스 성곽의 평면도

 

*오아지스 성곽은 평지성으로 성벽은 개방형이다. 성 내부에는 내성과 보루 등은 확인되지 않고 편평하고, 성벽에는 치 등의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은 바다로 가는 길을 통제하기 위해서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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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소볼레프카 강 유역


소볼레프카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사면에서부터 시작해서 우스티-소볼레프카(Усть-Соболевка )마을 주변의 동해로 떨어진다. 강의 길이는 68km, 지류는 상류에 있는데, 좌안에 레바야 소볼레프카(Левая-Соболевка) 강, 우안에는 수하야-소볼레프카(Сухая- Соболевка) 강이 있으며, 산에서부터 흘러 내린다. 산의 높이는 1000m가량이고, 중류역은 500~700m, 하류역은 최대 400m이다. 해안가와 가까운 곳에는 경사면은 가파르지 않고, 낮은 경사면을 이룬다. 산에서 강과 시내가 많이 흘러서 골짜기가 많이 형성되었다. 이 곳에서는 암벽과 암반이 무너진 곳이 확인된다. 강 유역에는 침엽수가 95%가량으로 덮여 있다. 강의 하류는 2km가량으로 넓고, 농사를 짓기에 알맞다(그림 114).



그림 114. 소볼레프카 강 유역(50, 우스티 소볼레프카 성곽)

 


1) 우스티-소볼레프카 성곽


우스티-소볼레프프카 마을에서 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으로 소볼레프카 항구의 북쪽 해안단구에 위치한다(사진 62, 그림 115, 116, 12).

1908~1909년도 아르세네프가 유적의 평면도를 처음 작성하였다(그림 115). 이 성은 해안가의 단구대 위에 축조되었고, 장축 방향은 남북방향으로, 소볼레프스카 강의 지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림 115. 우스티- 소볼레프카 성곽 평면도



성의 서쪽에는 석벽과 해자가 3줄 축조되어 있고, 동쪽에는 1열의 석벽과 바깥쪽으로 깊지 않은 구덩이가 석벽을 따라있다. 석벽의 높이는 1m, 해자의 깊이는 0.5m이다. 시굴 구덩이에서는 깊이 0.5m 지점에서 연질토기와 寛永명 동전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일본의 연호로 1624년부터 19세기 까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에 타타르니코바가 이 성곽을 발굴하였다. 말갈토기 가운데서 트로이츠코예 형식의 토기가 확인되었다.

2001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단이 성을 지표조사 하였는데, 개발로 인해서 성은 10~15정도만 남아 있었고 파손이 심각했다(그림 116).

출토된 유물로 보아서 이 성은 말갈문화 중에서도 트로이츠코예 그룹과 관련되어 있고 10세기 정도로 생각된다.



그림 116. 시굴 구덩이의 토층도

 

*이 성은 평지성으로 평면형태는 개방형으로, 성벽은 부채꼴 모양이다. 내부는 편평하고, 내성과 보루가 없다. 성에는 치와 같은 시설물이 없고, 성벽은 돌로 쌓아졌고, 용도는 취락을 보호하는 것으로 말갈문화의 사람들이 축조한 것으로 10세기 무렵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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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욘 토성

암구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11km 떨어진 곳으로, 지보피스나야 강의 좌안으로 하류에서 상류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절벽의 정상부에 위치한다(그림 111~113, 11). 1907년 아르세네프가 처음으로 성을 조사하였고, 1908~1909년 재조사하였는데, 성을 시굴할 때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유물이 확인되었다.

  

그는 소욘 강 유역은 늪지대 이기 때문에 항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언덕 위에는 유적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나중에 그 곳에 성곽이 설치되었다. 발굴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확인되었는데, 긁개, 밀개 등이다. 그것과 함께 신석기시대의 석기가 함께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그림 111. 아르세네프가 작성한 소욘 토성의 입지



그림 112. 아르세네프가 작성한 소욘토성평면도

 

1992년에는 크바신이 유적의 평면도를 재작성하였다. 그림 1132001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 탐사대가 작성한 것이다.



그림 113. 2001년에 작성된 소욘 토성

 

토성은 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이다. 서쪽, 북쪽, 남쪽 벽의 길이는 65m 이고, 동쪽 성벽의 길이는 50m이다. 전체 평면적은 3300이다. 벽은 돌이 섞인 흙으로 축조되었는데, 벽면이 비스듬하다. 바깥쪽에서 잰 성벽의 높이는 0.3~0.4m인데, 한쪽은 아주 경사가 급한 곳도 있다. 안쪽에서 잰 벽의 높이는 0.5m 정도이다. 벽의 서쪽에는 집석 한 곳이 확인된다. 동쪽 벽의 바깥쪽에 해자가 있는데, 너비는 4~5m이고, 깊이는 1m에 달한다.

 

벽의 동쪽에서 시굴 구덩이를 팠는데, 다음과 같은 토층상황을 알 수 있었다.

1. 부식토 층으로 두께가 0.05m

2. 자갈이 혼입된 암갈색 사양토 두께가 0.25m

3. 자갈이 혼입된 명갈색 사양토, 생토바닥

2층에서는 문양이 없는 연질 토기가 확인되었는데, 구연부가 외반하는데, 편평하고 둥근 형태이다. 이 유물에 따르면 이 성은 청동기시대로 판단된다

 

소욘 토성은 산지성으로 평면형태는 말각방형이다. 내부에는 내성과 보루 등은 확인되지 않고, 성벽에서 치도 없다. 돌이 섞인 흙으로 축조되었는데, 용도는 취락용이다. 유물로 보아 청동기시대로 판단되지만, 이 성곽의 평면모양은 다른 청동기시대 토성과는 차이가 있다. 시굴내에서 중세시대 층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평면모양으로 보아서 이 성은 중세시대까지 사용된 다층위 유적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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