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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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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소볼레프카 강 유역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동지역과 걸쳐있지만 고개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 유일하게 말갈 성지가 있는데, 강의 하류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고 해안가의 교통로를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12) 쿠즈네쵸바 강 유역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사면에 걸쳐 있다. 서쪽은 비킨 강의 지류인-제바(Зева,Zeva)와 볼샤야 스베트로보드나야(Большая Светловодная, Bol'shaya Svetlovodnaya) 강과 통한다. 그러나 서쪽으로 넘어가는 고개길은 없다. 이 강의 하류에는 강 하류에서 바다까지 약 3km 떨어졌는데, 리도프카 문화층과 발해문화층이 발견된 성이 1기 존재한다.

이곳에도 북쪽으로 에딘카 하류까지 연결된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이 길은 부르릴바야 강 하류에서는 오아시스 성곽이 표지가 되고, 더 북쪽에 있는 페야 강 하류에는 우스티-페야 성곽으로 통한다


아르세네프는 쿠즈네쵸바 곶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오로치 족은 그 곳으로 걸어다니지 않고 말을 타고 다녔다는 기록을 남겼다.



오로치 족은 전통적으로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다녔다. 퉁구-만주족은 여름에는 강을 건널 때는 배를 타고 다니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다녔다.

아래 링크를 참고하면 각 강유역의 성곽 위치와 성곽에 대한 설명을 참고할 수 있다

  

http://소볼레프카 강 유역의 성곽

http://예딘카 강 유역의 성곽

http://사마르가 강 유역의 성곽



13) 예딘카 강 유역

강의 상류는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사면에 걸쳐있고, 서쪽 사면과도 가까워서 비킨 강의 지류로 통하기 쉽다. 서쪽으로 흐르는 작은 시내가 있는데 그 곳이 영서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사마르가 강과 비킨 강에는 우데기 족이 이용한 길이 알려져 있다.

예딘카 강의 하류에는 말갈 문화와 관련된 성곽이 한 곳 알려져 있다. 이곳의 교통로를 이용하면 시호테 알린 산맥에서부터 아무르강 하류의 타타르 해협까지 다다를 수 있다.

 

14) 사마르가 강 유역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과 동쪽 경사면을 연결하며,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강의 하류에 청동기시대 사마르가-6 토성이 발견되었다. 또한 타타르 해협으로부터 들어오는 길을 방어하는 고르 크루글라야라고 하는 자연방어시설이 있다. 사마르가 강은 지류가 많은 강으로 길이 어디로 통하는 지 알기 어렵다. 육로인 해안로와 수로가 서로 엉켜져 있다. 배로 어디까지 이동하고 그 다음은 육로를 따라서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다. 아직까지 연구가 많지 않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서지역에서 출발 한다면 온 장소로부터 배를 타고 이동했다면 어떤 장소까지 해안로로 가야만 한다. 만약에 해안을 따라서 북쪽으로 이동한다면 사마르가 강 하류에서부터 해안로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남쪽 예딘카 강 하류로 간다면 나자로프카(Назаровска, Nazarovska) 강 하류까지 배를 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시호테 알린 산맥의 중부 영동지역에서 선사시대 부터 교통로는 고고학적으로나 민족학적으로 보아서 각기 다른 교통로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해안로는 동해안을 따라서 타타르 해협까지 이어진다. 또한 시호테 알린 산맥의 고개를 이용해서 제르칼나야 강, 드지기토프카 강, 세레브랸카 강, 타요시나야 강, 케마 강, 예딘카 강, 사마르가 강 유역의 교통로가 각기 지나가는데, 이는 산맥의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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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페세르나야 강과 페르바야 우툐스나야 강 유역

케마 강에서부터 이 강의 하류까지 북쪽으로 13~15km 떨어져 있다. 청동기시대 교통로에는 우툐스노예 토성과 미스 알렉산드라 2중벽이 남아있다. 발해시기의 유적은 야수 성곽이다. 이 지역 교통로를 처음 연구한 사람은 아르세네프다. 고대의 교통로가 있는데, 강을 넘을 수 있는 여울 근처에 성곽을 지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성곽은 주로 교통로의 바로 옆이나 그곳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당연히 이곳에는 육로와 해안가로 이어지는 교통로가 있었을 것인데, 성곽이 도로가 있던 시기의 것인지 아니면 도로가 다른 성곽과 관련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암구 강의 하류까지는 70~80km 떨어졌는데, 이 도로는 해안가와 거의 붙어 있고 편평하다. 지금까지도 해안가 언덕은 매우 습한 흙으로 전부 풀로 뒤덮여 있는데, 힘들 길이다. 이곳으로 지나는 바다길은 20세기 말까지 이용되었다.


각 강유역의 좀 더 정확한 성의 위치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지보피스나야 강 유역의 성곽 1

 http://암구강 유역의 성곽 1



9) 암구 강 유역

암구 강 유역은 다른 강 유역과는 달리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동과 연결되지 않고, 서쪽으로 가는 고개도 없다. 마시모프카 강 상류에서 끝난다. 암구 강의 지형적 특징에 따라서 언덕을 넘어서 해안가를 따라서 올라가는 교통로가 있었다. 청동기시대에는 이 도로에 있던 유적이 소프카 류브비(리도프카 문화층), 쿠댜, 데두시킨 클류치, 미스 테플리이(리도프카 문화층)가 있고, 중세시대에는 소프카 류브비(여진 층), 미스 테플리이(말갈 층), 말라야 카르마, 카라민스키 흐레베트 유적 등이 있다. 이 길은 지보피스나야 강 하류까지 가장 짧은 길인데, 9km를 넘지 않는데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아르세네프는 여행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암구 강에서 쿠수누Кусуну 강까지 길에서 절벽이 바다를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고대의 도로가 있다. 수혈이 있는데 그 크기가 큰 걸음으로 300걸음 정도 되고 깊이는 약 4.3m 정도 된다. 또 다른 길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다..확실히 고대의 도로는 소욘(지보피스나야 강)강으로 이어진다. 성곽이 있는 곳은 교통로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케마 강 하류에서 암구 강 까지의 청동기시대부터 발해시기 교통로는 바다를 따라서 이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바다와 인접한 강의 하류에 성곽이 축조되었다. 성곽 간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은데, 바다로 들어가는 강의 하류에 입지 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성지 사이의 거리가 9~15km도 있고, 휠 씬 더 벌어진 것도 있다. 산지성은 먼 곳을 감시하거나 관찰하는 방어시설용이고, 해안가 평지성은 항구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암구 강 유역에는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으로 들어가는 문이 없고 교통로는 해안가 길뿐이다



 

10) 지보피스나야 강 유역

세셀레프카 강, 세바스노프카(Севастьяновкa, Sevast'yanovka) 강과 지보피스나야 강을 포함하는데, 시호테 알린 산맥과는 관계되지 않는다. 암구 강과 마시모프카 강은 서로 연결된다. 아르세네프는 현대의 지보피스나야 강의 하구는 고대 항구로 그곳에 소욘스코예, 세셀레프스코예, 지보피스노예 성곽이 축조된 것으로 보았다.

암구 강에서부터 시작된 해안가 교통로는 이 강 유역까지는 청동기시대부터 발해 및 여진시대까지 모두 이용되었다. 이 성곽은 강의 하류를 통제하면서 보호-방어하는 역할이고, 바다로 들어가는 문지역할이다. 해안가 길은 계속해서 북쪽으로 마시모프카 강와 소볼레프카 강 까지 이어진다. 지보피스나야 강 유역에는 동해안을 따라서 올라가는 교통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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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과 서를 연결하는 해서 동해로 들어가는 길목이 있는 중요한 집수구역이다. 이곳에는 2개의 길이 있고, 체레무호바야 집수지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첫 번째 길은 루드나야 강 유역에서부터 고루부샤 고개를 넘어서 체레무호바야 집수지로 들어오는 길이다. 이 강의 중류역에는 체렘샤니 발해 성곽이 위치하고 있다. 또 다른 길은 아무르 강 유역과 관련되었는데,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과 연결되고, 연해주의 대륙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산의 문지 역할을 하는 곳은 포드네베스느이 성곽이다. 이 길은 볼쇼야 우수르카 강과 이르티스 강과도 관련되어 있으며, 거의 드지기토프카 강의 상류와도 연결된다. 체레무호바야 강 하류는 루드나야 강의 지류와 합쳐져서 드지기트 만의 바다로 들어간다. 이 강 유역의 전체 길이는 70km 정도이다. 이 강의 길에는 발해 성곽과 동하국 성곽이 (포드네베스나야, 드지기토프스코예, 쿠날레이스코예, 크라스노예 오제로, 클류치 성곽) 지키고 있다


왜 드지기토프카 강의 좌안으로 길이 지나갔을까? 고개성 산지성인 포드네베스느이 성곽에서 출발한 도로는 지금도 이 강의 좌안을 따라 나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는 드지기토프스코예 성곽과 쿠날레이스코예 성곽이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쿠날레이스코예 성곽에서 출발한 길은 드지기토프카 강 하류에 위치한 크라스노예 오제로와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한 클류치 성곽까지 강을 따라서 갈 수 있었는데, 가장 짧은 길이다. 그 길이가 8km를 넘지 않는다. 그 길은 지금도 일부구간이 남아 있다. 클류치 성곽은 드지기토프카 강의 좌안에 위치하는데, 드지기트 항구를 지키는 역할을 하며, 강의 하류를 통제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발해시기 까지 바다와 가까운 언덕의 아래쪽에 성지를 축조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석호가 확인되는 곳이다.

따라서,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의 교통로는 선사시대 부터 확인된다. 남쪽의 루드나야 강은 체레무호바야 고개를 통해서 연결되었고, 서쪽은 포드네베스카야 고개를 넘어서 아무르 강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림. 드지기토프카강과 세레브랸카강 유역의 위치



 http://세레브랸카 강 유역의 석성 1.

위를 참고하면 세레브랸카 강 유역의 성곽 위치를 좀 더 자세히 알수 있다.


4)세레브랸카 강 유역


아르세네프는 하룻밤에 테르네이 항구에서 시호테 알린 산맥을 넘어 아무르강 유역의 이만 강 까지 갈 수는 있지만 매우 힘들었다고 기록했다. 세레브랸카 강은 세 곳의 고개에서부터 출발한 강이 하나로 합쳐진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콜룸베 수원지는 볼샤야 우수르카 강의 우안 지류로서, 이곳도 교통로라고 하는데,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첫째로 고개에는 성곽이 없고, 두 번째 주변의 대부분 고고학 유적과 성곽은 세레브랸카 강 유역의 중류와 하류역이나 좌안 지류인 자볼로첸나야 강 유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2개의 석성 유적(자볼레첸나야 성곽과 스미리코프 클류치 성곽), 세레브랸카 강 하류에는 청동기시대의 취락마을 유적인 미스-스트라시느이 유적이 있다. 고고학 유적을 바탕으로 교통로를 복원해 본다면 세레브란캬 강의 하류에서 출발해서 자볼레체나야 강 하류쪽을 돌아서 북쪽으로 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사할린 고개를 넘으면 콜룸베 강에 다다르고, 그 다음 볼쇼야 우수르카 강과 아무르강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르세네프는 세레브란캬 강의 하류에서 타요시나야 강의 하류까지 가는 길이 있다고 했다. 이 길은 산을 넘어가는 것으로 현재에도 바다로 통하는 길이 있다. 이 길의 흔적은 아마도 터널, 보초시설, 표식 등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세레브랸카 강 유역에는 2개의 육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하나는 세레브랸카 강의 하류에서 자볼레첸나야 강을 지나 사할린 고개를 통해 아무르 강까지 연결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세레브란캬 강 하류에서 타요시나야 강까지 연결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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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루드나야 강 유역


루드나야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동지역인데, 이 강 유역의 서쪽은 볼샤야 우수르카 강의 지류와 맞닿은 곳이다. 강 상류 지점에서 이곳으로 통하는 길이 있지만 산이 높고 험준하기 때문에 이곳에는 고고학적 유적이 없다


청동기시대 리도프카 문화의 유적모나스트르카-1~4, 루드나야 프린스탄(Рудная Пристань, Rudnaya Pristan'), 므라모르나야(Мраморная, Mramornaya), 미스 브린네라(Мыс Бриннера,Mys Brinnera), 루체이 페르보마이스키(Ручей Первомайский, Ruchey Pervomayskiy), 달네고르스크-투르바자(Дальнегорск-турбаза, Dal'negorsk-turbaza), 보엔느이 고로독(Военный городок, Voyennyy gorodok), 도조르나야(Дозорная, Dozornaya), 프리모르스카야(Приморская, Primorskaya)-1, 2, 보도라즈젤나야(Водораздельная, Vodorazdel'naya)유적)은 이 강의 중류와 하류 역에 위치한다


루드나야 강 유역. 왼쪽 지도와 비교하면 대략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루드나야강 유역의 성곽 유적은 다음을 참고하면 된다. http://루드나야 강 유역: 모노마호보스코예 성곽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접근하기가 쉬운 곳은 남쪽에서 오는 곳이다. 테튜힌 고개를 통해서 이 곳으로 들어오면 모나스트르카 강으로 갈 수 있는데, 바다로 가는 아주 적합한 길이다.

루드나야 강의 하류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높지 않은 리도프카 고개가 있는데, 이곳으로 내려가면 리도프카 강의 하류가 있고, 그 곳에 청동기시대 유적인 리도프카-1 유적과 두브로빈스코예 토성이 있다. 이 시기의 교통로는 리도프카 문화의 마을 유적인 카멘카 유적이 있는 리포보이(Рифовой, Rifovoy) 곶 까지 이어지고, 오프리츠닌카(Опричнинка, Oprichninka)강까지 이어진다. 이곳에 방어기능을 하는 토성이 있는데 이를 증명한다.


 발해시기 및 그 이후가 되면 이곳의 교통로는 좀 더 복잡해진다. 모나스트르카야 도로는 발해시대와 발해 후 시기의 4에스톤카, 모노마호프스코예, 바시코프스코예, 프리스탄스코예 성곽성곽이 표식으로 남아 있다


http://루드나야 강 유역: 에스톤카 발해성곽

http://루드나야강유역: 바시코프스코예 발해성곽

http://2 장. 루드나야 강 유역의 발해성곽 특징


이 도로망의 길이는 60km를 넘지 않는다. 모든 성지는 각기 지점마다의 성격이 있다. 바시코프스코예 성지는 루드나야 하류와 루드나야 항구를 통제하고 지킨다. 프리스탄스코예 성지는 강의 좌안에서 하류부근과 항구를 지킨다. 이 곳에는 여진족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루드나야 강 유역은 북쪽지류인 모나스트르카 강의 교통로를 통해서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으로 통한다. 길은 고르부샤 강을 따라서 나지막한 고루부샤 고개를 넘어서 체레무호바야 강(드지기토프카 강의 오른쪽 지류)의 수원까지 갈 수 있다. 체레무호바야 길은 체렘샤니 발해 성지까지 내려갈 수 있다. 아르세네프에 의하면 루드나야 강 유역과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을 모두 방어하는 고르부샤 고개에 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성에서 바다까지의 거리는 대략 64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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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시호테 알린산맥 중부 영동지역의 교통로

 

극동 고고학에 있어서 선사시대 및 고대의 교통로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시호테 알린 산맥에 대한 교통로는 중국 사서에 언급되어 있고, 키차노프(1966), 보로비요프(1975), 타스킨(1968), 샤프쿠노프(1968) 등이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는 만주와 한국과 관련된 것이 더 많다. 연해주와 아무르 지역까지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러시아 극동에 대한 여러 가지 도로망에 대한 정보는 러시아인으로 처음 이주한 러시아인이자 군인장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다. 아무르 강에서 동해안으로 가는 길은 베뉴코프에 의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었다(베뉴코프 1970).

가장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아르세네프의 연구이다. 그는 시호테 알린 산맥을 여러번 조사했는데, 이를 토대로 기록하였다. 퉁구 만주족과 고아시아족의 길 뿐만 아니라 선사시대와 중세시대의 보존된 도로에 관한 것이 망라되어 정리되었다. 그는 고개로 넘어가는 도로가 있으면 반드시 그곳에 성곽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많은 조사 및 경험을 통해서 기록을 남겼다(아르세네프 1950, 베뉴코프 1970). 그의 연구 및 기록은 100년이 지난 1970년대 소로비예프가 『Китайские отхотники и их географические названия в Примпрье(연해주의 중국 사냥꾼과 그 지형적 명칭)에서 사냥꾼 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교통로(그림 134) 등으로 아르세네프가 시호테 알린 산맥을 조사하고 발견한 성곽을 소개하고 있다(솔로비예프 1973).



그림 134. 1914년 아르세네프가 작성한 중국인의 겨울 무역로

 


1. 고고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교통로

 

선사시대 및 발해~여진 시기의 교통로에 대한 연구가 적은 것은 고고학적 유물이 거의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교통로는 가족, 종족, 국가 등 각기 다른 인간의 요소 등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가족혈통 시스템이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다.


 행정, 군사, 생계경제 등 어떠한 목적이라도 그 영역은 길이 있어야 통할 수 있다. 당연히 도로에는 도로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 아마도 바위에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도로의 역참이나 중요한 곳에 건물을 짓는 등이 표시가 된다. 도로 보통 마을 가까이 설치되고, 도시 및 상업의 중심지등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도로위에는 그들을 감시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들이 생겨나게 된다. 도로 자체에는 흔적이 남게 되는데, 돌로 세운 표시나 표식, 터널 등이 있다. 간접적으로는 수레의 부속품-마차 바퀴의 마개 등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 또는 같은 혹은 다른 종족의 기마병 존재나 수입된 상품 등을 통해서도 길의 존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판단가능하다.

  모두 선사시대 및 고대의 도로를 복원할 수 있는 흔적으로 도로와 관련된 고고학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도로망은 그 지역의 지형학적 특징과 관련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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