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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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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21. 15:19 실크로드, 교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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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길목의 유적

우즈베키스탄에서 농업은 기원전 2000년기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대는 청동기시대로 관개농업으로 경제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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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 씀

posted by 김재윤23

 

코카서스 남쪽의 우라르트 마지막 도시인 테이시바이니는 우라르트 최대의 유적으로 점토벽돌로 만들어진 성곽 유적이다. 벽의 두께가 3.5m에 달하는 지점도 있다. 계단식의 구조인 건축물은 한방의 창이 다른 방의 지붕으로 이어지는 구조이고, 벽돌의 1개의 크기 중에 가장 큰 것은 0.5m이상이다.

 

모든 창고(약 120개의 방)는 방별로 인감으로 밀봉되었다. 성곽에서는 라즈단 강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도관이 설치되었는데, 도관은 둥근 돌 파이프로 연결되었는데, 에레부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거주공간에서는 녹로, 빵을 굽던 화덕자리, 곡물 분쇄기 및 가정용품 등이 발견되었다.

 

성곽은 메소포타미아 건물스타일로 진흙 벽돌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현무암 기초위에 진흙 벽돌로 쌓은 것이다. 현재는 원시 벽돌은 벽동 세공의 선이 보이는 정도로 점토 덩어리로 변했다(그림 4)

 

그림 1. 1950년 사진 테이시바이니 유적의 정리된 바닥

 

그림 2. 1950년 점토벽돌로 된 성벽, 6줄의 벽돌

 

 

그림 3. 테이스바이니 성곽의 중앙문 복원도

 

그림 4. 현재 남아 있는 성벽

 

그림 5. 구글 위성으로 본 테이시바이니 유적

 

유적에서는 금속가공소가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사진이나 그림은 구할 수 없었다. 그 대신에 철제품은 남아 있는데 처음에는 무기를 사용했고 나중에는 노동도구를 제작했다고 알려졌다.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는 금속덩어리와 거푸집이 발견되었습니다. 장검, 단검, 창, 화살 등과 같은 무기가 많다.

 

그림 6.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삽날

 

그림 7. 테이시바이니 유적의 철제품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에서 유스티드 계곡에 위치한 유적은 유스티드 강과 인접한 산이 만든 곳에 위치한다. 이 강은 추야강의 지류이다.

추야강은 알타이를 북서와 동남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 현재에도 이 강을 따라서 알타이를 이동하는 주요도로가 나 있다. 이 도로(P-256)를 따라서 몽골의 서부로 연결된다. 반대편으로 이 도로를 따라서 가면 카프카스 산맥까지 연결되는 대상도로이다. 협곡사이로 꼬불꼬불하게 연결되는 매우 아름다운 도로이다.

추야강은 그 언제가부터 계속 이용된 자연교통로이다. 그 강의 지류에는 수 많은 무덤이 만들어져 있다. 유스티드 강은 추야 강에서 북쪽방향으로 갈라진 강이고, 강의 중류에 무덤이 위치한다. 무덤은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만들어졌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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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드 강과 반대편으로 뻗은 강은 울란드리크 강이 있다. 이곳에도 유적이 있는데, 모두 8개로(유스티드 I~V, 타샨타 I~III유적)이다. 타샨타는 이곳의 마을명을 그대로 유적이름으로 붙여서 발견순서대로 번호를 매긴 것이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발견된 투구모양의 머리장식을 소개하면서 인접한 지역의 유적으로 울란디르크 유적을 잠시 소개한 바 있다. 그 중에서 동물문양장식이 없으면서 이 유물의 출토위치가 인골부근이 아닌 그릇 두는 곳(그림 1-14, 그림 2-14)에서 출토되었던 유물은 울란디르크 III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유적에는 8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이 유적의 무덤에 대한 정보가 유스티드 계곡보다는 많은 편이다. 예를 들면 무덤상부를 덮은 직경, 깊이, 구덩이 크기와 같은 것이다. 울란디르크 유적 1호분의 지름(무덤 위를 덮은 돌의 지름)은 10m이고 높이는 50~60cm이다. 구덩이 크기는 300×240cm이다. 길이 160~170cm의 통나무 4개(무덤 한쪽벽 기준)를 이용해서 양 가장자리에 15~20cm를 남기고 무덤방을 만들었다. 무덤방의 구덩이 남쪽과 동쪽 및 서쪽에 돌을 채웠다.

 

 

그림 1. 울란드리크III유적의 1호분

1-철제 재갈, 2-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굴레장식, 목제품, 3-목제 재갈멈치 편, 4-가죽조각과 목제 사슴머리장식 편, 5-목제 버클 장식판, 6-허리띠 장식판, 7-자루가 끼워진 전투용 도끼, 8-청동검, 9-목제 검집, 10-목제 단추, 11-청동거울, 12~13-목제장식판, 15-목제 화살통 지지대편, 16-뿔로 만든 화살촉과 화살대 편, 17-목제쟁반과 철제 칼, 18-토제 항아리, 19-목제 칼, 20-검은색 물감의 범위

 

 

그림 2. 울란드리크III유적의 1호분의 출토유물, 그림1과 일치

 

이 유적에서는 재자리가 아닌 모자장식 뿐만 아니라 울란드리크 계곡과 유스티드 계곡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동물장식이 부착된 청동검(그림 2-8)과 전투용 투부(그림 2-7)가 출토되었다. 알타이 추야강변에서 출토되는 파지릭 문화의 청동검은 대부분 손잡이가 T자형이며, 손잡이와 날의 경계에 나비모양으로 벌어진 칼날멈추개가 형성되어 있다(그림 3).

 

그림 3. 알타이 추야강과 우르슬라강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파지릭문화의 검

 

그런데 청동검은 손잡이 끝 장식과 칼날멈추개에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것이다. 추야강 일대의 유적에서도 몇 점 출토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청동제 전투용도끼의 끝 장식도 맹수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동네에서 검 손잡이에 동물장식을 붙이는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무덤은 아르잔-2호의 5호무덤었다. 물론 이 보다 훨씬 정교하게 만들어진 철검으로 금으로 상감한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전설 속의 여신인 듯한 인물과 그리핀이 함께 표현된 금판은 침발카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 가리개에 부착된 것이다. 스키타이 인들이 주문해서 그리스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출토된 유적은 흑해의 드네프르강 하류의 좌안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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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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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유적 가운데서도 매우 이른 시기에 발굴된 것으로 19세기말(1867~1868)에 발굴된 것이다. 발굴한 자발렌에 의하면 이미 유적의 북서쪽과 북동쪽에는 도굴구덩이가 직경 2m씩 파여서 무덤방으로 연결된 채 있었다. 그에 의하면 무덤방과 말무덤이 유적에서는 발견되었으며, 높이는 14~15m 정도 된다.

 

자벨린의 보고서는 매우 간략해서 정확하게 어떤 구조인지 알기 힘든데, 무덤방이 3개인 구조 정도로 파악된다. 말 무덤은 장방형으로 각 무덤방에는 세 마리씩 매장되었다. 각 무덤방의 말은 화려하게 치장되었는데 은제 굴레장식을 쓴 말 2마리와 금제 굴레장식과 마면 마스크를 쓴 말이 1마리씩 배치되었다. 무덤방이 아닌 남쪽의 마운드에서는 7번째 말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정황 상 침발카 유적은 인접한 곳에 위치하며 같은 시간대의 톨스타야 마길라와 가장 유사한 구조로 생각된다. 톨스타야 마길라에는 중앙에 큰 방이 있고 작은 방 2개에 부장공간이 있는 구조이다(그림 1, 2).

 

 

그림 1. 톨스타야 마길라 평면도, I-중앙무덤과 2개의 방, II-무덤의 입구, III-측면 무덤방, IV~V: 말무덤, VI~VIII: 토광묘(인간)(모졸레프스키 1979)

 

그림 2. 톨스타야 마길라 단면도, 그림 1에서 중앙의 절개면의 단면도, 위-АБ라인, 아래-BГ라인

 

그림 3. 톨스타야 마길라 평면도, 중앙무덤과 우측에 위치한 부속묘(필자편집)

 

톨스타야 마길라는 앞에서 보여드린 켈레르메스 고분과는 전혀 다른 무덤구조이다.

 

톨스타야 마길라의 무덤구조는 호석을 두르고 무덤방을 중앙에 만들지만, 무덤의 입구는 봉분의 중앙에 두지 않고 가장자리에 위치하면서, 일종의 복도가 만들어진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복도를 연도라고 한다.

톨스타야 마길라에서는 암포라(양쪽에 손잡이가 있고 바닥이 좁고, 입구가 벌어진 형태의 토기) 토기가 출토되는데, 기원전 340~320년에 해당된다.

 

그래서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스 유적과는 침발카 유적,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은 300년 이상 시간차이가 생기면서 무덤구조에 변화가 크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무덤구조는 이해가 어려운데, 비슷한 시간대의 유적으로 설명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원전 4세기의 여신이 표현된 마면 가리개는 스키타이 인이 주문했고 그리스에서 제조되어서,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1982 : Курган Цимбалка и дата его сооружения. // СГЭ. [Вып.] XLVII. Л.: «Искусство». 1982. С. 33-35.(알렉세예프 1982, 침발카 고분과 연대)

Мозолевській Б.M. Товста Могила. Київ, 1979, с. 40(모졸레프스키 1979, 톨스타야 마길라, 우크라이나어, 도면참고, )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올해의 첫 번째 답사를 다녀오고, 두 번째 답사를 준비하면서, 일주일도 안된 기억이 가물해진다.

첫 번째 답사는 주로 중국의 몽골지역인 내몽골지역이었다. 꼭 보고 싶은 유적의 유물이 오늘 소개할 곳이다.

왜냐하면, 이 유적에서 확인된 토기와 조합식석인검은 시베리아의 특징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유적은 혹자는 홍산문화의 유적이라고 하고, 혹자는 홍산문화와는 다른 문화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후자 쪽이고, 후자 가운데서도 중국사람들과는 생각이 좀 다르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시간은 없다....

 

통요시(그림 1)에서 대략 60km 떨어진 곳에 합민망합(哈民忙哈)유적(그림 2)이라는 곳이다.

 

통요시의 위치
그림 2. 합민망합 유적의 위치

통요시는 내몽골에서도 작은 도시이지만, 중국 고속철의 경유지(그림 3)이기도 하다.

그런 작은 도시에서도 생전 누가 찾을 까 싶은 곳에 박물관(그림4~6) 이 있다.

유적을 그대로 남겨둔 유적박물관과 유물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 3. 통요역. 고속철의 경유지
그림 4. 유적지의 입구.
그림 5. 유적 박물관

 

그림 6. 유물전시관 입구

 

 

이곳은 2011년 전국십대고고발굴로 뽑히기도 했고, 중국 학계에서 엄청나게 소개된 유적이다.

 

그림 7. 유적 박물관 내부. 발굴된 집터. 목채는 집의 구조물이다. 화재난 집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유적에서 이러한 집터가 여러 채 있고, 특히 세간의 관심을 받은 집터는 40호이다. 집을 무덤으로 사용했는데, 집 안에 인골이 98기가 접혀서 확인되었다. 하지만 40호 집은 이 사진의 앞에서 두 번째 위치한 곳이다. 이 집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 집에 대해서는 이미 출간된 책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소개해 드리겠다. 

 

그림 8. 나는 참 싫어하는 유리로 만든 바닥이다. 이렇게 해서 발굴된 집터 위에 설치해서 좀 더 잘 볼 수 있게 한 것 같은데, 나는 이런 바닥이 너무 싫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래서 사진도 흔들렸다. 중국박물관에는 이런 곳이 많다. 유리바닥으로 된 전시관.

 

앞서서 이곳을 홍산문화 유적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가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옥기 때문이다. 이 유적의 집 내부에서 우하량유적에서 출토된 옥기와 비슷한 것들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기와 석기 등은 홍산문화와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순히 홍산문화 유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림 9. 합민망합 유적의 토기

 

그림 10. 합민망합 유적의 토기 2

 

이 토기의 문양을 중국에서는 ‘망점문’이라고 하던데, 일종의 타날문이다.

타날문은 앞서 시베리아 신석기문화를 소개하면서 설명한 바 있다.

방형의 나무판에 노끈을 감아서 만든 도구를 박자라고 하는데, 이 박자를 두드려서 만든 것이다.

 

앞서, 홍산문화의 토기를 설명한 바 있는데, 홍산문화의 토기 특징은 압인之문양으로, 도구를 눌러서 之문양으로 찍은 것이다(그림 11). 

 

그림 11. 적봉박물관에서 소개한 지자문양새기는방법

 

그림 9,10에 소개한 합민망합 유적의 토기와 아래 홍산문화의 토기(우하량 유적)와는 매우 차이가 있다.

 

 

그림 12. 우하량 유적에서 출토된 압인지자문양토기

 

필자는 이 유적의 토기를 직접 보고 싶었고, 조합식석인검(그림 13,14)도 직접 보고 싶었으나, 이 유적의 출토품은 보지 못했고, 대신 이 이전부터 매우 오랫동안 이 조합식석인검이 이 지역에서 확인된다는 것을 여러 보고서를 통해서 알았으나, 눈으로 확인했다. 기뻤다. 

 

그림 13. 7000년 전 조조합식석인검
그림 14. 그림 13의 유물을 다른 각도에서 찍음.

그리고 할 일이 너무 많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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