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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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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거의 20여일에 걸쳐서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 고원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여성미라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얼음공주라고도 알려졌다. 그녀는 죽어서 매우 여행을 많이 했다. 93년에 발굴되어서, 95년에는 서울과 부산에도 다녀갔고, 미국 뉴욕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지금은 그녀가 묻힌 곳과 최대한 가까운 고르노 알타이 시의 박물관에 있다. 원주민들은 박물관과 분쟁 중이다.

필자는 생각해 보니 그녀와 2번 만났다. 95년 대학 1학년때 가을에 한 번, 2009년에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고 노보시베리스크의 아카뎀고로독에 있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고고연구소의 전시실에서 그녀를 보았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알타이 산맥 부근에 위치한 파지릭 문화에서는 여성이 혼자 묻힌 경우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이 처음이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 베렐 유적, 바샤다르 유적과같이 높은 계급의 무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여성이 배장된 경우는 대부분 남성과 함께이다. 투엑타 유적이라고 하는 무덤2호에서 단독 여성이 8마리의 말과 함께 확인되었는데, 너무 도굴이 심해서 여성 1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어쨌든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혼자 단독으로 묻힌 유일한 여성미라다.

학자들이 두 무덤을 자주 비교하는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을 최상급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투엑타 유적의 2호분 때문이다. 이 무덤은 직경이 32m,높이가 2.6m인데, 아크 탈라하 3유적은 직경이 18m,높이가 0.57m이다. 무덤 크기의 차이는 동원인력의 차이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유목을 기반으로 한 생업경제를 하는 사람들은 흩어져서 지내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것은 결국 힘의 차이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겨울이 되기 직전에 무덤을 만들어야 할 때는 겨울이 되기 전에 여름 목초지에 있던 사람이 겨울목초지로 이동하기 전에 모여야 한다. 여름이 되기 직전에 무덤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 보다 힘든데, 겨울목초지에서는 사람들이 더 분산되어서 지내기 때문이다(클라쉬토르니이, 술타노프 1992).

앞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사람들이 봄과 가을에 무덤을 쓴다고 했는데, 영구동토대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아마 목초지를 바꾸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모이게 하기 위해서도 한 몫 했을 꺼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무튼 그들은 죽는 것도 계획해서 죽었을 껏 같다. 나무도 태어나기 전부터 구해야 하고, 죽을 때도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시절을 택해야 했다니...

 

 

그런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다른 파지릭문화의 고분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이 유적의 2호분과 3호분은 투르크시대의 무덤이기 때문에 기원후 7세기대의 무덤이다. 그녀는 무덤안에서도 혼자 있었지만, 그 주변에도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파지릭 문화의 고분은 대게 가족장으로 한 계곡에는 친족구성원(그림1)들이 열을 이루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것은 아니지만 민족지자료를 살펴보면 이런 식의 무덤은 대게 살아 생전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사람이거나, 샤먼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노비크 1984).

 

그림1.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문화의 고분

 

그럼 이 여성의 신분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청동거울, 여러 소재로 만든 그릇 등은 일반무사 계급에서도 출토된다. 문신도 특별하기는 하지만, 일반무사의 어깨에서도 문신이 새겨지는 점을 볼 때 그녀의 직업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러시아학자들은 말 6마리의 말 장식을 주목한다. 목제로 보이지만, 그 위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일반무사의 무덤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다. 대형 무덤방, 통나무관 및 통나무관에 부착된 아플리케 장식, 발삼처리 된 시신 등은 최상은 아니지만 보통의 계급도 아니다. 이외에도 그녀의 계급을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은 실크로 만든 여밈없는 블라우스 라고 한다. (위에 거론된 유물은 전부 앞의 포스팅에서 확인가능하다.)

이 여성의 무덤에서는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목제 쟁반 아래의 철제 칼은 고기를 자른 칼로 생각한다. 파지릭의 여성전자? 무덤은 아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 복원도. 머리장식에 새가 없어서, 완전한 모습은 아니다. 머리장식은 앞의 포스팅을 참고시기 바란다. 

그림3. 얼음공주의 가발 장식 가운데 붉은 삼각형 머리위를 장식한 사슴모양장식(금박+목제). 실제 책에는 이에 관련한 내용은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았지만 필자가 촬영한 사진에서 찾았다. 뿔이 떨어진 흔적이 있다. 금박은 쉽게 벗겨져서 말을 장식한 마구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필자촬영 

 

그림 4. 그림3과 같은 유물, 다른 방향에서 찍음

 

러시아학자들은 전문화된 특별한 재능(샤먼)을 가진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누가 알겠는가?

 

참고문헌

 

클라쉬토르니이, 술타노프 1992 Кляшторный С.Г., Султанов Т.И. Летопись трёх тысячелетий. Алма-Ата: Изд-во Казахстан — Петербург, 1992. 373 с.(클라쉬토르니이, 술타노프, 3000년의 연대기)

노비크 1984 Новик Е.С. Обряд и фольклор в сибирском шаманизме. М.: Наука, 1984. С. 294.(노비크 1984,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의식과 민속)

폴로시막 2001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산맥 스키타이문화의 한 일종인 파지릭문화에 해당하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실크제 상의와 양모로 직조한 천을 이용해서 만든 치마를 착용했다.

 

그림 1.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치마 상세 사이즈(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그리고 그 치마 아래에는 타이즈를 신었다. 알타이 산맥의 스키타이문화 한 일종인 파지릭문화에서는 베르흐 칼쥔-2유적의 1호와 3호 남성고분에서 발견되었고,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발견되었다. 모두 남성무덤이다. 이 타이즈는 남성무덤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성별과 관련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타이즈를 신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은 치마 아래에, 남성은 짧은 바지위에 입었는데, 이 타이즈가 어떻게 달라붙게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기마문화와 관련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치마 아래에는 양모펠트로 제작된 타이즈 한 쌍이 공주에게 신겨져 있었다. 흰색 양모펠트로 제작되었고, 발 바닥에는 붉은색으로 천이 덧대워져 있고, 발의 반대쪽 방향인 즉 넓적다리 부분에는 붉은색 양모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었다. 발목에도 덧양말을 신은 것처럼 붉은 색 천을 덧대었다. 넓적다리 부분에 아플리케 장식이 있었던 것은 여성용이다(그림 2,3). 아플리케 장식은 소용돌이 문양이 양모펠트 아플리케로 제작되었다. 발의 길이는 21~22cm, 스타킹의 길이는 89cm이다. 발의 바닥에 댄 붉은색 발모양은 20cm가량이다. 

 

그림 2.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타이즈, 필자촬영

 

 

그림 3.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타이즈(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그림 2와 같은 유물

 

 

 

 

 

 

참고문헌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기원전 4~3세기 알타이 산맥 파지릭문화의 의상과 직물)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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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고분 중 가장 최상급이라고 여겨지는 파지릭고분을 발굴한 루덴코는 남성이나 여성의 상의가 거의 일치한다고 했다. 여밈없는 셔츠 스타일이다.

 

아크 알라하-3유적의 1호분 고분에 묻힌 여성이 입은 셔츠는 매우 길어서 무릎까지 내려온다. 등쪽 길이는 113cm, 앞쪽은 110cm, 넓이는 80cm이다. 소매는 어깨끝을 기준으로 60cm가량으로 손을 덮을 정도로 내려온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셔츠는 앞과 뒷부분은 각 각 다른 천으로 기운 것이다. 목과 어깨, 소매끝, 셔츠의 중앙은 붉은색 양모로 꼬은 끈을 달았다(그림1).

 

그림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얼음공주의 상의, 필자촬영

 

상의를 만든 천은 넓이가 130cm이상이다. 이 제품은 실크제품이다. 그런데 현재 알려진 고대 중국의 실크는 너비가 48~50cm정도이다. 이 너비는 실크를 짜는 직조기의 구조 때문이라고 한다(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이 보다 넓은 실크는 당대가 되어서라고 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것을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와 스위스의 Abegg-Stiftung에서 독자적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산 실크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실크는 1㎠를 기준으로 그 치밀도가 80(날실)×33.5(씨실)의 조직으로 짜여졌다. 실크섬유조직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양잠용인 아닌 야생누에에서 뽑아낸 것이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것이 아니라 나방고치에서 뽑은 것이다. 당연히 중국 실크는 양잠용에서 뽑아낸 것임으로 중국산이 아니다.

 

이 비중국적 실크는 동투르케스탄(현재의 중국 신강성)혹은 인도 동북부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동투르케스탄에서는 기원전 2~1세기가 되어서야 나옴으로, 이 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4세기 혹은 기원전 5세기 임으로 맞지 않다. 그래서 인도의 야생실크를 뽑는 기술(Dhamija 1995)에 주목을 했다. 현재까지도 아쌈과 인도의 동쪽 일대에서는 야생실크를 만드는데 누에고치가 아니라 식물의 잎을 파먹는 벌레로부터 뽑아낸다(드자야크리쉬난 1987).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는 하의는 양모로 직조한 천 3단을 이어붙였다. 전체평면형태는 사다리꼴 모양이다. 길이는 144cm, 위쪽의 넓이는 90cm, 하단의 넓이는 112.5cm이다. 상단과 하단은 붉은색, 중단은 흰색이었으나 현재는 황색으로 퇴색되었다. 가장 상단의 너비는 52cm, 중앙부의 너비는 51cm, 하부의 너비는 39cm이다. 옆부분의 솔기는 한쪽이고 한쪽으로 겹치게 해서 입었다(그림 2). 

*양모를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펠트가 아닌 직조로 한 것이다. 앞의 포스팅에서 양모로 하의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펠트가 아닌 직조한 천이다. 양털을 실로 만들고 날실과 씨실을 교차해서 만드는 직조한 양모천이 얼음공주의 치마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와 유사한 치마는 2번 더 발견되었는데, 알타이 산맥에서와 중국 신강성에서이다. 알타이 산맥에서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미라가 붉은색 천과 녹색의 양모펠트를 번 갈라 꿰매어 붙인 것이다. 중국신강성 유적은 수바쉬 유적 6B고분에서도 출토되었는데, 거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와 거의 복제한 듯 이 똑같은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중국 수바쉬 유적의 6B고분출토품도 탄소연대측정한 결과 기원전 4세기대로 측정되었다(Mair 1995)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치마

 

 

참고문헌

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Лубо-Лесниченко Е.И. Китай на шёлковом пути.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332 с.(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중국 실크의 길)

Джаякришнан Ш. Ткачество // Индия. М.: Прогресс, 1987. С. 67-73.(드자야크르쉬난 1987, 직물//인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Dhamija J. The woven silk of India. Marg Publications, 1995. 156 p.

Mair V.H. Mummies of the Tarim Basin // Archaeology. 1995. March/April. P. 28.3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라고 불리는 고원에서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30세가 안되는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별명은 얼음공주이다.

앞에서 얼음공주의 머리 정수리 장식 중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사슴머리가 새겨진 나무판을 넣었는데, 이데올로기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가 또 있는 것이 문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문신

 

이 여성의 왼쪽 어깨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5섯 마리의 동물이다. 가장 첫 번째 왼쪽 어깨와 가까운 부위에는 영양과 사슴의 뿔을 도식화 한 것이고 다리엔 굽이 달려 있고 날개가 달려 있어 그리핀으로 보인다(그림4).. 그 아래에 몸통을 비틀고 있는 얼굴모습이 다른 그리핀이 그려져 있다. 하완골의 시작부위에는 뒤를 바라보는 양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양의 다리쪽에는 기다란 꼬리를 늘어 뜨린 점박이 표범이 표현되었다. 그 밑으로는 머리가 없는 육식동물의 몸통이 남아 있다(그림1,그림3)발톱을 드러낸 발과 얼룩무늬 호랑이 꼬리, 사슴몸통으로 이루어졌고, 등허리에는 도식화된 그리핀의 머리가 달려 있다. 사슴의 끝머리에는 그리핀의 머리로 장식이 되었다. 여성미라의 왼쪽 손목에는 뿔이 늘어진 사슴머리가 보인다(그림 1).

오른손 하완골에는 비틀어진 몸통이 그려졌는데(그림 1의 오른팔 참고), 양처럼 보이지만 정확하게 무슨 동물인지 알기 어렵다. 오른손 엄지손가락(그림5 )에도 문신이 그려졌다.

 

이 여성의 문신은 바늘을 찌르는 방법으로 문신을 새겼다. 바늘을 찔러서 피부 깊숙이 색소 성분을 침투시켰는데, 그 성분은 루덴코에 따르면 그을음으로 추정된다. 문신을 넣기 전에 밑그림을 그렸는지, 아니면 스탬프 같은 것으로 밑그림을 찍어 놓고 문신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문신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무기화학연구소와 촉매화학연구소의 도움으로 엑스레이기법과 미세현미경을 이용해서 살갗을 스캐닝했다. 20마이크론 정도의 범위에서 칼륨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점들이 드러났다. 칼륨함유가 많은 것은 문신에 쓴 색소가 식물계통으로 식물을 오래 태워서 얻은 재나 숯에서 얻어낸 경우로 분석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 보다 이전에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확인된 남성미라(그림 6)의 몸에 새겨진 문신,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에서 확인된 문신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새기는 방법과 스타일, 모티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파지릭 유적은 1948년에 미라가 발굴되었는데, 60세의 몽골로이드 남성이었다. 그의 양쪽 팔, 등허리의 상부, 정강이(그림 6) 등에 환상적이며 사실적인 동물을 그려넣었다(루덴코 1949). 파지릭 유적의 미라 설명은 다시 할 예정이다.

베르흐 칼쥔-2 유적 3호분에서는 젊은 남성의 왼쪽어깨에만 굽이 달린 환상의 동물 그리핀이 그려져 있었다. 베르흐 칼쥔 2 유적에서 확인된 남성의 어깨에는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여성과는 다른 스타일의 그리핀이 있다. 최소 4마리가 혼합된 문양이다. 몸통은 사슴인데,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또 다른 표현으로 굽달린 다리가 표현되어 있고, 날개도 표현되었다. 사슴의 배쪽에는 그리핀의 머리가 그려졌다(그림 2).

 

 

 

 

그림 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

 

3구의 미라에 새겨진 문신이 모두 한 사람의 기술자가 새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분석된 나이테연대측정법의 결과 이 세 유적을 매장한 시기는 매우 가깝다. 특히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과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은 거의 동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세 사람은 어떤 관계였는지, 심히 궁금하지만, 그런 연구는 없었다. 아니면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재밌는 스토리라인이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왼쪽 팔 문신(국립중앙박물관 1995)

 

 

 

그림 4.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왼쪽 어깨 사슴문양문신(https://scfh.ru/news/dvadtsat-pyat-vekov-nazad-konoplyu-kurili-ne-tolko-na-pamire-no-i-v-gornom-altae/

 

 

 

그림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문신이 새겨져 있다. 미라의 상태가 매우 좋아서 얼음이 녹아서 그녀에게 접근가능했을때 미라의 팔뚝은 탄력이 남아 있어서 누르면 부드러운 느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림 6.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미라.

 

 

 

참고문헌

 

https://scfh.ru/news/dvadtsat-pyat-vekov-nazad-konoplyu-kurili-ne-tolko-na-pamire-no-i-v-gornom-altae/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문명전

루덴코 1949, Руденко С.И. 1949 : Древнейшая «скифская» татуировка. // СЭ. 1949. №3. С. 133-143.(루덴코 1949, 고대 스키타이인의 문신에 대해서)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주인공의 무덤방의 바닥과 관의 바닥 등에도 양털이 깔려 있다. 양털을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펠트이다.

1940년대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최상위 계급 무덤에서 확인된 이후에 그간 다른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다가 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펠트제 유물이 출토되기 시작했다. 말안장 덮개, 옷, 타이즈, 모자 등을 제외하고는 나무방의 바닥깔개, 통나무관의 바닥깔개, 주인공의 베개와 수건 등이 출토되었다.

 

나무방의 바닥(그림 1,2)에서는 2장의 검은색 펠트가 깔려 있었는데, 실제로 살던 집 벽에 걸었던 일종의 캐노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2장 중 1장에는 펠트제 고리가 달려 있어서, 실제로 집의 벽에 걸었다고 보인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무덤의 가장 바닥에서 출토된 펠트제 깔개 2점을 수습하는 장면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무덤방 깔개의 수습 장면, 깔개의 크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적혀있지 않았으나, 사진으로 보아서 무덤방 바닥을 전면에 덮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여성의 머리밑에는 작은 베개(30×36cm)가 놓여 있는데, 짙은 색 펠트로 만들었는데, 큰 바늘로 모직실로 땀을 딴 것이다. 이 베개 안에는 얇고 검은색, 두꺼운 갈색 펠트 2조각과 모피조각, 잡초, 털실 등이 베개 안에 들어 있었다.

 

지금도 알타이 지역에서는 부부의 침대를 가리기 위해서, 가죽으로 만든 커튼을 결혼식때 걸어둔다. 또한 알타이 인에게 침대에 깔린 흰색 펠트제 깔개의 질이 좋을수록 가족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으며, 베개는 가장 귀한 물건을 담아 둔다고 한다(시트나코바 1986).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바닥깔개는 문양 등은 없었고 단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장 유명한 펠트제 캐노피는 파지릭 5호분(그림 3~5)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크기는 4.5×6.5m에 해당되며, 무덤의 벽에 걸어두었다. 앉아 있는 여신과 말탄 전사가 서로 마주보는 장면을 2단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편집했다. 네모꼴의 펠트에 아플리케 기법으로 덧붙인 것이다.

펠트는 화려하지만 매우 경제적으로 사용했다. 통나무관의 깔개처럼 큰 펠트제품이나 타이즈, 안장깔개, 안장의 치레걸이, 주머니 등은 작은 제품은 짜투리를 모아서 얼기설기 이어 붙인 것이다.

 

 

그림3. 파지릭 5호분의 무덤방 벽 장식. 매우 화려하다.(루덴코 1968)

 

 

그림4. 그림 3을 칼라사진으로 복원, 파지릭 유적의 5호분 출토 벽장식 (루덴코 1968)

 

그림5. 그림 3을 칼라사진으로 복원, 파지릭 유적의 5호분 출토 벽장식(루덴코 1968)

 

파지릭 유적과 표트르 대제의 시베리아 콜렉션을 분석하고 연구한 루덴코(1968)에 의하면 펠트제 아플리케를 이용해서 펠트제를 꾸미는 방법은 귀금속 가공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현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전시되어 있는 표트르 대제 콜렉션의 황금유물이나 아무다리야 강의 매납유구에서 출토된 유물, 아프카니스탄의 틸리아-테페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유물들은 모두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이거나 혹은 연대가 늦은 것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황금유물은 모두 상감기법으로 보석을 박아 넣은 것인데, 펠트제 유물에서 펠트 위에 아플리케 장식을 조각을 이어 붙인 것과 같은 느낌이다. 아플리케 장식도 한판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여러 조각을 나누어서 이어 붙여서, 짐승 몸의 근육느낌을 강조해서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황금 유물에도 상감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8, Руденко С.И. 1968 : Древнейшие в мире художественные ковры и ткани из оледенелых курганов Горного Алтая. М.: «Искусство». 1968. 136 с.(루덴코, 1968, 알타이 산맥의 얼음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양모제품과 직조물의 세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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