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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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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전 이후에는 자이사노프카 문화라고 하는 신석기시대 문화가 펼쳐진다.

앞선 보이스만 문화와 전혀 다른 토기이다.
이 다름은 문양을 시문하는 방법과 토기 문양이다.

시문하는 방법 단치구로 문양을 그어서 시문하는 침선문이고, 문양형태는 어골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지그재그(그림 1)라고 한다. 이 문양만 있는 것은 아니고 반부채꼴 형태의 문양도 존재한다(그림 3).


그림 1. 자이사노프카 문화의 토기

그림 2. 자이사노프카 문화의 토기2

그림 3. 자이사노프카 문화의 토기3

보이스만문화에 비해서 아주 대형의 토기도 나온다(그림 3, 4)

그림 4. 자이사노프카 문화의 토기. 같이 나온 분과 비교하면 대형 토기 임을 알 수 있다.


특별하게 뇌문토기(그림 5~7)라는 토기도 나온다.
북한에서는 번개무늬토기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뇌문토기라고 한다.
이 뇌문토기는 한반도의 압록강 유역과 그 주변 지역 및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 등지에서 출토된다. 필자가 유학가서 최초로 쓴 논문은 이 뇌문토기와 관련한 것이었다.

그림 5. 레티호프카 유적의 뇌문토기

그림6. 자이사노프카-1 유적의 뇌문토기

그림 7. 자이사노프카-1 유적의 뇌문토기 2


연해주와 두만강 일대에 5000년전 이후에 3800년전까지 대체로 이 문화가 분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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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그림1. 보이스만-2 유적의 가장 하층토기, 원보이스만 문화의 토기)


보이스만-2유적에서는 모두 6개 문화층에서 출토된 순서대로 토기의 연대가 지정되었다.
토기는 시문구(문양을 시문하는 도구)를 찍은 토기이다.

층마다 토기의 문양이 다르다. 시문범위, 시문방법, 문양형태.
한 층은 어떤 연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토기가 모여 있다.
보이스만 2 유적의 가장 하층(1층)은 그 상층과는 토기의 그릇형태가 다르다. 바닥이 뾰족하다.
그 상층은 모두 바닥이 편평하다. 뿐만 아니라 토기 문양형태도 차이가 있는데, 구연단에만 토기문양을 시문하고, 시문구도 단순하다. 상층의 토기에 빗살같은 도구로 찍은 토기라면, 가장 하층의 토기는 단치구로 찍은 토기이다. 그래서 가장 하층 토기를 보이스만 문화와는 다른 원(原)보이스만 문화라고 한다.


1층 보다 상층에 위치한 2층~7층 토기는 보이스만 문화라고 한다.
표의 가장 윗단에서 출토된 토기가 가장 하층이다. 토층을 거꾸로 표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된다.


표의 가장 윗단에서 출토된 토기가 가장 하층이다. 토층을 거꾸로 표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된다.
표의 가로 방향토기는 같은 층에서 출토된 토기이다. 가장 끝에 있는 숫자는 그 토기가 출토된 층에서 검출된 탄소의 반감기로 측정한 탄소연대측정치이다. 지금으로 부터 몇 년 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표의 단이 바뀔 때 마다 즉, 층 마다
토기의 시문방법, 시문범위, 입술모양 등이 차이가 있다.


사실 토기연구는 고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연구이다. 적어도 동아시아고고학에서는.
그런데 아마 대중이 가장 재미없는 부분은 이 토기와 관련된 것일 것이다.
적어도 블로그에는 좀 쉽게 적고 싶은데.....

다음 포스팅에는 좀 더 보이스만문화토기를 소개코자 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루드나야 문화의 쵸르토브이 보로타 유적의 장신구, 완벽한 옥기는 아닌 옥석, 사진외에도 장신구는 여러 점 출토되었음)

지난 포스팅에서 루드나야 문화의 박편석기 중 끝이 뾰족한 도구가 장신구(그림1)의 구멍을 뚫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뚫었을까?


러시아에서 60년대부터 소비에트 시절부터 고고학에 자연과학의 방법을 많이 도입하였다. 대표적인 연구자가 세르게이 세묘노프이다. 그 가 연구한 것은 현미경을 이용해서 석기의 날을 치밀하게 분석해서 사용흔적을 찾아내고, 그 대상물을 찾는 것이다. 미세사용흔적분석이라고 한다(세묘노프 1968). 이 방법은 미국에서 더 발전된 듯 보인다((T. 더글라스 프라이스, 2013).


 그 사람은 바이칼 유역의 베르흐냐 부레티 유적에서 출토된 부채꼴 모양으로 구부러진 골각기의 1/3지점에 세석인을 끼워 넣은 유물에 주목하였다(그림2). 이것이 일종의 콤파스로 보았고 옥에 구멍을 뚫는 도구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았다(세묘노프 1968, 그림2). 이 세석인은 끝이 예리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 유적에서는 함께 둥근 옥제품이 출토되었다. 옥제품은 완벽하게  둥글게 잘려진 것이 아니라 조잡해 보인다.

(그림 2. 1~3: 베르흐냐 부레티 출토, 4~5: 시묘노프 제시(시묘노프 1968)

그림 3. 1·5: 글라스코보,2·3: 렌코바 1호, 4: 포노마레보, 6~8: 남보력고토 유적출토


 루드나야 문화의 장신구에 뚫려진 구멍도 완벽하게 둥글지는 않다(그림1). 특히 옥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둥근 디스크 모양의 옥기는 옥귀걸이보다 만드는 방법이 어렵다. 원판으로 잘라내고 가운데만 동그랗게 잘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의 장신구는 완벽한 옥은 아님,)
 완벽하게 둥글게 잘라낸 옥기는 홍산문화에서 확인되는 옥제품으로 제작방법이 전혀 다르다.


필자는 루드나야 문화의 세석기는 석촉이 아니라 장신구 제작도구일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석촉은 이미 타제 및 마제석촉이 유적에서도 확인됨으로 구지 세석인을 석촉으로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루드나야 문화의 유적인 쵸르토브이 보로타 유적에서는 화재난 주거지여서 골각기가 많이 확인되지만 베르흐냐 부레티 유적과 같이 골제 콤파스가 출토되지는 않아서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런데, 루드나야 문화의 세석인 용도를 밝히는 것은 어떤 역사적 해석인가?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세묘노프 1968, С. А. Семенов,1968, Развитие техники в каменном веке, НАУКА Ленинградскре отделение, Ленинград

T. 더글라스 프라이스(이희준 옮김), 2013, 고고학의 방법과 실제, 사회평론


posted by 김재윤23

그림1,2은 루드나야 문화에서 사용되던 석기이다.

그림 1. 루드나야 문화의 박편석기로 제작된 도구(1/4)(김재윤 2016)


그림 1은 약간 석기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이게 왜? 할 수 있는 유물이다.
그림 1은 박편석기(박편석기는 작은 석기를 만들기 위해서 몸돌에서 떼어낸 석기를 말한다)를 다듬어서 만든 석기이다. 후기구석기시대 유물 아닌가?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사용은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이 석기가 신석기시대에도 계속 사용되는 지역이 있다. 연해주의 루드나야 문화에서도 계속 사용된다.

 그러나 후기구석기시대의 석촉인 슴베찌르게는 없다. 그림 1-1,2,7~12는 형태는 슴베찌르게처럼 생겼지만 용도는 슴베찌르게와 다르다. 제작방법도 뾰족한 끝부분과 자루에 연결되는 부분을 간접떼기로 가공하였는데, 필자는 이를 일종의 뚜르개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유물은 쵸르토브이 보로타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장신구(사진1)가 다른 유적에 비해서 많이 출토되었다. 장신구는 사람을 치장하는 것으로 구멍을 내어야 하는데 구멍을 낼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김재윤 2016).




 왜냐하면 이 유적에서는 슴베찌르게의 역할을 한 석촉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이 석촉은 일반적인 신석기시대 석촉과 유사하다. 재질에 따라서 마제(갈아서 만든 것)(그림 2-1~8)와 타제(때려서 만든 것)(그림 2-12~18) 두 개로 나눠진다. 


그림 2. 루드나야 문화의 각종석기(1/4)


 즉 세석인으로 제작된 것들은 장신구 가공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 외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신석기시대에서 확인되는 마제나 타제의 석기는 수렵채집용 혹은 목제가공용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 장신구의 구멍은 어떻게 뚫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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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사진1. 토기 입술부위가 약간 벌어지며 토기의 몸이 둥글어 졌다. 입술주위에 점토를 붙인 문양이 있는데 이는 '융기문'이라고 한다. 쵸르토브이 보로타 출토)

(사진2. 사진1과 같은 집터에서 출토되었다. 문양은 마름모 모양의 문양새기는 도구를 찍어서 생긴 것이다. 쵸르토브이 보로타 출토.)


연해주의 루드나야 문화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앞서 설명한 루드나야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세르게예프카 유형이다.


이것은 토기 특징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문화로 구분하지 않은 이유는 공통적인 토기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구연부에만 문양이 시문되며, 삼각형이나 능형 등의 문양을 새길 수 있는 문양 새기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만약에 차이점이 더 크다면 다른 문화로 구분이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하나의 문화 내부에 서로 다른 유형으로만 구분하고 있다.

루드나야 문화의 루드나야 유형 토기 모습은 앞서 설명하였다.

루드나야 문화의 세르게예프카 유형(사진 1, 사진2, 그림 1-12~34)은 루드나야 문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동체부가 둥그스럼해지면서 입술부위가 외반한다. 문양도 다양해지는데, 찍는 문양과 함께 점토띠를 붙이는 것들이 생기게 때문이다.

(그림1. 루드나야 문화의 루드나야 유형(1~11)과 세르게예프카 유형(12~34) 토기(김재윤 2014)


이 유형에는 유명한 유적이 있는데 쵸르토브이 보로타(Чёртовы варота, 악마의 문이라는 의미)의 동굴유적이다. 유적은 화재 난 집터 였는데, 인골도 확인되어 흥미로운 곳이다. 이미 포스팅한 바 있다.http://(http://eastsearoad.tistory.com/20?category=713320)

이 유형의 시기는 루드나야 유형 보다는 다소 느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적으로 7000년 전 ~6000 년 전에 유적이 많이 확인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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