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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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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류브비 소프카 성곽


암구 마을에서 남쪽으로 0.5km 떨어진 곳으로, 이름 없는 강의 오른쪽 강가로 이 강의 하류에서는 1.5km 떨어진 곳으로 류브비 소프카 위에 성곽이 위치한다(그림 102). 성은 남쪽 경사면의 떨어지는 곳에 위치하는데, 늪지대의 아래에서부터 언덕의 기슭을 따라서 2줄의 부채꼴 모양의 성벽과 해자가 있다. 북쪽과 서쪽에는 절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자연적인 경계가 가능하다. 언덕의 절벽은 세르바토프카(암구 강의 오른쪽 지류)와 암구 강과 맞닿아 있다. 성벽은 돌로 쌓아져 있는데 높이는 0.7~1m이다. 해자의 너비는 1m이고, 깊이는 0.5m, 성의 평면크기는 4500이다


의 내부에는 인공적인 테라스로 인해서 편평하지 않다. 테라스에는 온돌이 설치된 주거지가 확안되었다. 내성과 보루는 없다.


이 성은 1908~1909년 아르세네프가 처음으로 평면도를 작성하였는데, 이 성에는 3개의 짧은 성벽이 언덕의 정상부 쪽으로 있고, 문지가 있다고 표시해 놓았다. 1974 년에는 성은 댜코바에 의해서 조사되었는데, 유적에서는 문화층이 2층 확인되었다. 아래층은 갈색 사양토로 고금속기시대로 리도프카 문화와 관련되었고, 상층은 중세시대 문화층이다.




그림 102. 1974년 댜코프가 육안으로 그린 류보비 소프카 성곽 평면도


1982년에 니키틴과 이블리예프에 의해서 유적이 조사되었는데, 온돌이 있는 주거지에 트렌치를 넣어서 조사하였다.

1997년에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대는 이 곳을 지표조사 하였는데, 이 곳이 2층의 문화층임을 다시 확인하였는데, 상층은 동하국과 관련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출토된 유물은 회색의 녹로제 토기로 화병형 토기와 푸른색의 관옥이다.

* 류브비 소프카 성곽은 산지성으로 개방형으로, 성 안은 편평하지 않다. 성 내부에는 내성과 보루 등이 확인되지 않고, 성벽의 구조물로는 치가 없다. 성벽은 흙과 돌로 쌓아져 있다. 이 성의 크기는 소형으로 용도는 취락을 방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동해쪽에서 항구로 들어오는 문과 성에서 북서쪽 해안가를 따라서 가는 길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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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루드나야 강은 큰 강으로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사면에서 동해로 떨어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30페이지 지도, 사진 12). 길이는 73km, 전체 수계의 너비는 1140㎢이다. 강으로 떨어지는 전체 길이가 942m이고, 경사는 12.9도 이다. 이 강 유역에는 지류를 포함해서 942개의 강이 있고, 전체 길이는 939km에 달한다. 강 네트워크의 평균 밀도는 0.82㎢이다. 가장 큰 지류는 고르부샤(Горбуша, Gorbusha) (강의 좌안, 길이 16km), 크리바야(Кривая, Kribaya) (강의 우안, 길이 37km), 프라마야(Прямая, Pramaya)(강의 우안, 길이 24km), 모나스티르카( Монастырка, Monactyrka) (강의 우안, 길이 23km)이다.
 이 강의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백의 동쪽 산 기슭 부분부터 시작된다. 집수지는 고지대나 높이 1000~1200m 높이의 암벽사이이다. 산의 아래 부분에는 훨씬 매끈하고 높이도 300~500m정도로 낮아졌다. 산의 경사면에는 계곡성 지류와 폭포 등이 있다.
  강 유역에서는 많은 광물자원 들이 확인되는데, 대부분 모래와 실트암이 많고 드물게는 석회암이 판상으로 들어가 있는 종류석이 있다. 강의 계곡에서 생토층은 모래, 점토, 쇄석으로 성층된 실트암층이다. 집수지의 수풀 밀집도는 82%에 달한다.
 강의 입구는 매우 넓어서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생각된다. 루드나야 강의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루드나야 강 유역에서 1906년 아르세네프는 그의 3번 일기장에서 ‘테튜헤 강과 리브나야 강에는 아주 넓은 평야 지역으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적합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림 31. 루드나야 강 유역의 성곽



 이 강 유역에는 모두 4개의 성곽 유적이 발견되었다(그림 31). 에스톤카, 모호마호프스코예, 바시코프스코예, 프리스탄스코예 성곽 유적과 자연방어시설인 달네고르스코예 유적, 단순 참호시설로 보이는 모나스트르스코예 유적이다. 다음은 성곽에 대한 설명인데, 강 상류에서부터 하류로 설명하고자 한다.


1. 모노마호보스코예 성곽 

 모노마호보스크 마을에서 서쪽으로 2km 떨어진 곳으로 루드나야 강의 하류로 들어가는 프라마야강의 지류인 라즈드보예노예(Раздвоенны, Razdvoenny)샘과 볼로(Болотны, Bolotny)샘 사이의 단층 경사면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언덕의 경사가 동서 방향과 일치한다. 언덕의 너비는 80m정도이다. 경사면에는 중앙이다. 성에 아주 조그마하게 불룩 솟아 있다. 북과 남쪽은 절벽과 맞닿아 있다.
 성벽은 삼면만 잔존해서 ‘ㄷ’자 모양이다. 북쪽벽은 절벽인  자연적 입지를 그대로 이용하였다. 동쪽벽은 높이 1.5m로 너비 3m의 문에 의해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부채꼴 모양의 북쪽벽과 직선의 남쪽벽이다. 동쪽벽의 길이는 70m이다. 남쪽벽은 직선인데, 높이는 1m 길이는 108m 정도이다. 성벽의 남동쪽 모서리에서 40m 떨어진 부분에 너비 4m의 절개면이 있는데 문지로 보인다. 이 곳에는 남쪽 경사를 따라서 나 있는 길이 하나 지나간다. 서쪽면에는 이중 성벽인데, 외벽은 둥그스럼한데 길이가 90m정도이다.
 서벽은 남쪽벽과 연결되어서 북쪽부분의 돌출부로 연결되어 있다. 서벽의 길이는 70m이고 높이는 2~6m이다. 내성벽은 2중의 외성벽에 의해서 둘러쌓여 있고, 길이는 60m를 넘지 않는다. 성곽의 평면크기는 7000㎡이다. 성벽은 돌과 흙으로 축조되었다. 내성벽의 남서 모서리 안쪽에는 돌로 막음 되어 있다(그림 33).
 시굴 결과 다음과 같은 토층상황을 알 수 있었다.
 1. 부식토층의 두께: 0.03~0.05m
 2. 돌이 섞인 암갈색 사양토 두께: 0.01m
 3. 돌과 쇄석이 섞인 암갈색 사양토 생토

 문화층은 제 2층으로 암갈색 사양토인데, 횡방향의 차양형 파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발해문화에서 아주 특징적인 유물이다.
 1953년에 오클라드니코프를 단장으로 한 극동 고고학탐사대가 처음으로 조사하였고(오클라드니코프 1959), 1973년에는 지표조사 및 평면도를 작성하였다. 1978~1979년에는 간단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림 32. 모노마호프스코예 성곽유적

*성곽은 산지성으로 평면형태가 ‘ㄷ’자형으로 개방형이다. 성벽이 여러 개로 복잡하다. 성의 구조물에는 치는 없고, 두 개의 문지만 확인된다. 성 내부는 아주 단순하며, 내성과 보루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은 돌과 흙으로 축조되었다. 용도는 모나스트르카 강 계곡의 교통로를 통제하는 방어시설 및 마을로 생각된다. 발해국가 시기(7~10세기)에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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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바이고우 성곽

 제르칼나야 강과 그 오른쪽 지류인 우스티노프카 강(시바이고우) 사이의 가장자리 산맥부에 위치하는 카발레로프 지구의 우스티노프카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950년대 지질학자가 발견했고, 2000년에 타타르니코프(2001)가 조사했다. 2002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 탐사단에 의해서 조사되었는데, 그 때 정확한 평면도를 작성하고 치와 방어시설, 집(152㎡) 등을 발굴 조사하였다.
 우스티노프카 강 입구에는 강에 의해서 분수령이 두 개의 구릉으로 나누어진다. 북쪽 구릉은 동서 방향으로 쭉 뻗어 있고, 남쪽의 작은 구릉은 남동쪽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굽어져 있다. 강 반대 방향으로 떨어지는 구릉의 경사면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다. 반면에 강 쪽의 경사면은 매우 가파르고 암반절벽이다. 구릉의 정상부에는 아래에 위치한 조그만 강으로 합쳐지는 작은 시냇물이 있다. 전체 북쪽 구릉의 경사는 북쪽의 언덕은 경사가 그렇게 크지 않고 점차적으로 작아지고 있다. 분수령이 나누어지는 지점의 너비는 100m이고, 동쪽방향에서 남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15~20m이다.
 유적의 내외면적인 특징은 연해주의 동하국의 산지성과 아주 유사하다. 구릉의 정상부에 건축물이 위치하다. 행정관청, 주거구역과 생산경제와 관련된 건물은 구릉의 경사면에 인공적인 테라스를 만들어서 축조하였다(사진 8, 9, 그림 25).
 


그림 25. 시바이고우 성의 평면도

성의 특징


 성벽은 구릉의 정상부에 형성되어 있고 전체 길이는 1686m이다. 성벽은 북쪽(1005m), 남쪽(410m), 서쪽은(271m)이다. 성벽은 부슬거리는 흙에 작은 돌이 혼입되어 있다. 구릉의 정상부와 성벽을 따라서 유물이 채집되었다. 북쪽의 성벽 안쪽을 따라서 도로의 흔적이 있다. 도로에서부터 성벽의 높이가 1m정도이다. 성벽의 외벽은 높이가 3m에 달한다.

1)문지
문은 두 곳에서 확인되는데, 첫 번째 문은 성벽이 약 2m정도 절개되어 있다. 문은 구릉의 정상부에 북쪽과 남쪽 성벽이 갈라지는 부분에 문이 위치한다. 두 번째 문은 자연적인 문으로 남쪽 구릉으로 뻗어지는 그 부분을 이용하였다.
 성곽내의 방어를 위한 시설물은 서쪽, 북쪽, 남쪽 성벽에 설치해서 되어 있다.

2)서쪽방어시설
 가장 크고 두꺼운 방어시설로 자연적인 지형을 가장 잘 이용하였다. 서쪽성벽은 북쪽 성벽에 연결되는데, 서벽의 바깥쪽에 벽을 쌓아서 평면형태 삼각형 모양의 옹성을 만들었다. 이 곳의 북쪽길이는 270m, 서족의 길이는 271m이다. 이 서쪽방어시설에는 자체적으로 3개의 방어시설이 있다.

(1) 제1 방어구역
 성벽과 해자와 더불어 5개의 치가 확인된다.
 1번 치.-북벽과 서벽의 접하는 부분에 위치하며 성곽에서 가장 높은 지점(강을 기준 148m)이다. 치의 기본적인 평면형태는 타원형으로 20×25m이다. 치의 상부는 반타원형으로 상부의 크기는 7.5×6.5m이고, 치의 높이는 3.5m이다. 측면은 둥글다.
 치의 앞쪽에 궁형 모양의 치를 호위하는 성벽이 존재하는데, 길이는 40m, 높이는 0.3~0.5m이다. 성벽과 치 사이에는 해자가 돌아간다. 해자는 치를 따라서 돌아가는데 깊이가 1m에 달한다.
 이 치 밖의 이중성벽은 분수령의 산마루와 교차하는데, 이곳에서 10m 떨어진 곳에 해자가 길이 15m, 너비 4m, 깊이 0.4~0.5m로 설치되었다.
 치와 서벽사이에는 성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곳에 2개의 투척기가 설치되었다. 투척기의 크기는 3×7m, 다른 한 개는 2×4m이다. 투석은 지름 0.12~0.2m의 바다 자갈로 만들어져 있는데, 좀 더 큰 것도(0.15~0.25m)있다. 대부분 돌은 2kg을 넘지 않는다.

●  1번 치를 발굴조사해서 축토양상을 살펴보았다. 상부는 4×5m의 반타원형으로 넓고 편평하다. 중앙에는 삼각형 형태로 돌로 쌓아진 곳이 확인되는데, 높이는 0.3~0.5m 정도이고 크기는 1.3×0.9m이다. 큰 쇄석으로 쌓여져 있는데, 이 석축의 주변은 비교적 편평한 돌로 쌓여져 있는데 특히 측면은 길쭉하고 큰 돌로 쌓여져 있다. 석축의 중앙에는 여러 크기의 돌이 쌓여 있다. 이 석축의 동쪽에는 연접해서 쇄석으로 둥글게 쌓아 놓은 석축이 있으며, 높이와 깊이가 0.3m 정도이다.
 치의 측면부 상측에는 넓고 편평한 강 바위가 놓여 있고, 남쪽에는 여러 크기의 돌이 길이 3m, 너비 1~1.9m가량 쌓여 있다. 이 돌 사이에서는 목탄과 소토, 금속제품등이 확인되며,  건축 부자재로 생각된다.
 치의 북쪽에는 아래로 떨어지는 계단모양의 4각형 석축이 쌓여져 있다. 상면의 길이는 3.5~3m, 하면의 길이는 2.5~1.5m, 너비는 0.2~0.3m 이다.
 성벽과 치가 접하는 부분은 돌로 연결되어 있다.
 
● 2번 치는 1번치로부터 54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평면크기 4×4.5m 반원형이고, 높이는 3.5m 정도이다. 치의 상단은 넓고 편평하며, 중앙은 지름 1.5m 너비로 둥글게 약간 파여 있다. 치의 서쪽에는 평면형태 타원형으로(5×2m) 높이 0.2~0.25m 정도로 돌이 축척되어 있다. 이 석축위로 성벽까지 단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 3번 치는 1번 치에서부터 148m, 2번 치에서부터 25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치의 평면형태는 반원형으로 평면크기는 12×15m이다. 치의 상단부는 다른 치와 마찬가지로 높이 0.12~0.15m의 석축이 쌓여있다. 너비는 3×3.2m이다. 치의 상단부는 편평하고 너비 2m가량, 깊이 0.18m가량으로 둥글게 파져 있다. 이 석축은 1번치 방향으로 향해있고, 치의 높이는 외면에서는 4.6m, 내면에서는 3.1m에 달한다. 이곳의 치에는 대부분 맞배지붕 구조의 주거지가 확인되는데, 3번에서도 확인된다. 평면형태 16㎡로 기둥구멍흔적과 온돌시설물이 설치되었던 것이 확인된다.
●  4번 치는 1번 치에서 33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평면크기 3×3m의 반원형이다. 중간에는 타원형의 구덩이가 1×1.5m로 파져 있다.
●  5번 치는 1번치에서부터 130m 떨어진 곳, 4번치로부터 97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치의 상부에는 평면크기 3×3m 반원형의 석축이 남서방향으로 불룩 튀어 나와 있다. 중앙에는 직경 0.5m 정도 크기의 원형수혈이 있다. 치의 모서리는 1번 치의 모서리쪽이 0.3m 정도 높여있다.

(2) 제2 방어구역

 1번치의 모서리에서부터 서쪽으로 65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삼각형 모양의 옹성과 치가 설치된 곳으로 평면적은 3000㎡이다. 이 곳은 성벽이 이중으로 설치된 곳으로 외벽의 길이는 115m, 원래의 성벽인 내벽은 75m이다. 중앙에는 너비 2m, 높이 20m 가량의 문이 설치되어 있다. 옹성의 내부에는 계단식의 공간이 있다.
 6번 치는 1번 치에서부터 82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이중 성벽이 설치되었다. 치의 상단부는 반타원형으로 크기가 4×5m이고, 외면에서 잰 높이는 6.5m이다.
 2번 방어구역은 옹성으로써 서쪽에서부터 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절벽 쪽으로 문이 하나더 확인된다.

3) 제 3 방어구역
 1 번치에서부터 북벽을 따라서 22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지형적으로 분수령에서 약간 튀어나온 곳에 위치한다. 반타원형의 평면형태로 크기가 50×30m,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타원의 장축방향이 원래 성벽방향과 같이 일치하고 있다. 외성의 길이는 60m정도인데, 외벽은 높이가 4m에 달하지만 안쪽에서는 1.3m 정도이다. 이 옹성의 안쪽에는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면적이 45~150㎡이다.
 옹성의 안쪽에는 평면크기 4×3m의 4개 방형수혈이 있다. 옹성 내의 북쪽 구릉의 정상에 가까운 곳에는 3×2m의 작은 수혈이 확인된다. 
성벽의 안쪽 면에서부터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는 도로가 확인되는데, 문지의 너비는 2.5m이다.
 이 곳에는 돌이 많이 쌓아져 있는 곳이 있는데, 타원형으로 쌓인 모양 으로 보아서 주거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3)북쪽 방어시설
 이곳에는 제4 방어구역과 함께 7번 치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구릉을 쭉 따라서 동쪽분수령이 끝나는 부분까지 성벽이 이어져 있다. 성의 안쪽에서 높이는 1m가량으로 바깥쪽도 비슷하다. 북벽의 길이는 735m에 달한다.

(1)제4 방어구역
 북쪽 벽의 가장 동쪽부분에 위치하는데, 성벽이 경사면 상부의 돌출부 산마루를 따라서 축조되었다. 산마루 부분을 반원형으로 돌아가면서 설치되었다. 평면적 10~30×130m가 해당되고 , 이곳에는 7~8번 치와 두 개의 작은 보루가 확인된다.
 
●  7번 치.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고, 분수령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높이는 69m이고, 평면형태는 타원형으로 5×6m의 너비이다. 동향이다. 치의 높이는 대략 3m이고, 중앙에는 직경 3m 가량의 수혈이 있다.
●  8번 치. 평면형태 반원형으로 크기는 15×12m이고, 성벽과 평행하고 있다. 외면은 편평하나 서쪽방향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  1번 보루. 4번방어구역의 중간에 위치한다. 방형으로 평면크기는 7.5×7.5m, 4면이 동서남북과 일치하게 방향하고 있다. 벽의 내면 높이는 0.2~0.4m 가량 잔존하고, 외면의 높이는 0.7m이다. 벽의 북쪽은 돌출부의 경사와 맞닿아 있고, 해자가 돌아간다. 보루의 내부는 중앙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지고 있다.
●  2번 보루. 1번 보루에서 북서쪽으로 8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방형으로 너비는 7×7m이고, 4면이 동서남북방향과 일치하고 있다. 벽의 외면 높이는 0.3m가량이고, 내면의 높이는 0.5m이다.

4) 남쪽 방어시설
 남쪽면은 거의 절벽이어서 지형적인 이유로 특별한 시설물 없이도 방어가 가능하였다. 구릉정상부를 따라서 성벽이 축조되어 있고, 2개의 치가 있는데, 1개는 성벽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다. 성벽의 일부가 성의 남동쪽 외벽에 위치한다.
 성벽은 우스티노프카 강의 계곡부 정상에 위치하는데, 성의 높이는 0.5m를 넘지 않고, 산마루의 일부분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있다. 길이는 410m이다.   

● 9번 치. 서쪽과 남쪽 성벽사이의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다. 평면형태 반원형으로 크기는 3×3m이고, 성벽의 방향과 평행하고 있다.

● 10번 치. 남벽의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치는 반원형의 공간이 두 부분 상하로 있는데, 상면의 평면크기는 9×6.5m, 하면의 크기는 6×5m정도이고 3.5m가량 떨어져 있다. 하단의 중앙에는 직경 1.5m, 깊이 0.3m가량의 수혈이 있다. 이 공간 옆에는 바다자갈이 무작위로 쌓여진 곳이 0.15~0.2m가량 쌓여져 있고, 평균 무게는 1.5kg이다.

5) 떨어져 있는 성벽
 
동쪽 산마루 끝의 경사면에서 우스티노프카 강 쪽으로 성벽이 잔존한다. 성의 남쪽면을 방어하는 부분으로 보이는데, 성벽은 직선이고 길이 30m, 높이 0.8m로 쌓여져 있고, 돌과 흙으로 축조되었다. 돌은 강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이는데, 둥근 자갈돌이 대부분이다.

6) 성의 내부
 성의 내부에는 전통에 따라서 여러 시설물이 확인되는데, 성의 내성, 보루, 생활공간 등이 내성벽으로 분리되어 있다.

(1) 보루
 보루는 북쪽벽에서부터 남쪽으로 29km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평면형태 정방형으로 크기는 25×25m이고, 높이는 1.5∼2m이고, 보루의 안쪽에서 높이는 5m에 달한다. 보루 남쪽벽의 정중앙에는 문지로 보이는 곳이 2m정도 절개되어 있다. 보루문을 통해서 도로가 설치되어 있다.

(2)생활공간
 북쪽과 남쪽의 인공적으로 구축된 테라스위에 위치한다. 토층상에서 보면 이 인공적인 테라스는은 아주 엄격하게 판축기법에 따라서 축조되었다. 맨 아래에 구릉의 경사면을 다듬어서 그 위에 소토로 가장 하단부를 만들고 그 위에 무거운 흙을 한겹 더 덮었다. 인공 단층의 어떤 부위에는 높이 10~12m에 달하는 곳도 있다. 이 곳의 북쪽에는 319개의 장방형 주거지 수혈이 확인되는데 큰 것은 3×5m이다. 테라스의 크기에 따라서 주거지가 1개부터 5개까지 잔존한다. 당연히 주거지 주변에는 생업과 관련된 구역이 있는데 농사짓던 곳도 있었다.

 (3)생활공간
 성 내에서 주거지 1동을 포함해서 한 곳 확인되었다.
 주거지. 지상식 주거지로, 평면형태 장방형으로 6×4m로 그 크기는 24㎡이고, ‘ㄱ’자형 온돌시설과 기둥구멍 등이 주거지의 시설물로 확인되었다. 주거지 장축방향은 북쪽이다. 주거지 중앙에는 지름과 깊이가 0.4m인 기둥구멍이 있는데, 그 안에 돌이 있었다. 다른 기둥구멍은 직경이 0.3~0.4m이고, 온돌의 맞은편에는 벽체가 일부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남쪽벽에는 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의 왼쪽에는 길이 1.4m의 돌로 만들어진 부뚜막이 설치되어 있다. 부뚜막의 높이는 0.4m 정도이다. 구들장은 바닥에서 높이 0.2m정도로 너비 1.5×4m가량이다. 연도는 편평한 돌로 놓여 있는데, 주거지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에 잔존한다. 온돌의 연기는 굴뚝을 통해서 외부로 빠져 나갔을 것이다. 연도의 단면은 직경 0.6m로 둥글고, 돌로 제작되어 있다.
 주거지의 바닥은 5cm정도 두께로 점토 다짐되어 있다. 주거지에서는 북송시대화폐인 崇寧重寶(1102~1106년에 사용)가 발견되었다.
 
 생업 시설물. 주거지의 동쪽에서 아주 심하게 교란된 채로 확인되는데, 테라스를 따라서 주거지 앞에 임시적인 노지가 몇 기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4) 내성

유적의 북서쪽에 남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이 내성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전체적으로 ‘ㄱ’자 평면으로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지는데, ‘ㄱ’자의 모서리 부분의 평면형태 5각형의 공간과 그 각각의 가장자리에 장방형의 공간이다. 성벽의 가장자리는 모두 흙을 덮어 처리하였다. 내성벽의 높이는 0.5m이다. 성벽을 따라서 도로가 지나가는데, 이 도로는 북쪽 산마루의 경사면을 따라서 나 있다. 
 산마루 정상부에 시설물이 위치하는데, 평면형태 장방형으로 30×35m이다. 테라스 위에는 5개의 편평한 곳이 있다. 서쪽벽에는 너비 1.5m의 문이 있고, 성의 위쪽으로 향하고 있다. 성의 동쪽 모서리 부분에는 내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 있다.
 경사면 아래에는 두 번째 시설물이 있는데, 그 내부에는 벽이 있고, 그 사이에 도로가 나 있다. 상기한 건축물은 장방형으로 크기가 95.7×40×35m이다. 내부는 7개로 나눠지는데 점차 지형에 따라서 낮아진다. 테라스의 높이는 17m에 달한다. 이 공간의 바로 아래쪽에는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공간의 모가 줄어지며 전체 내성 모양이 ‘ㄱ’자 모양이 되었다. 평면형태 삼각형모양의 벽의 길이는 각각 35, 30, 60m이다. 문은 남동쪽 방향으로 나 있는데 너비가 1.5m가량이다. 이 곳에 연접된 평면형태 5각형 모양의 공간에는 ‘ㄷ’자 모양으로 높이 30cm정도의 토벽이 있는데, 남서벽이 없다.
 이 내성은 행정관청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바이고우 성은 산지성으로 그 평면형태는 자연적인 지형 탓에 부정형이다. 크기는 매우 대형이고, 성안에 내성과 보루 등이 존재한다.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하였다. 성에는 치와 투석기 등이 확인되는데, 전쟁 시에 사용 되었던 행정적인 용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화병형 토기, 철제품, 숭녕중보 등이 확인되었다. 시바이고우 성은 동하국이 존재했던 1217년부터 1234년 사이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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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르노레첸스크-3 성곽
 고르노레첸스크 마을의 동쪽부에 위치하는데, 사도바야 거리 11번지의 집 맞은편 다리에서 150m 덜어진 곳에 위치한다. 언덕은 동서로 길게 늘어진 타원형으로 곳곳에 말라버린 강줄기 등이 확인된다. 언덕의 남쪽부는 절벽으로 높이 17m이다. 언덕 가장자리에 석벽과 해자가 있다. 석벽은 많이 허물어져 있는데, 돌의 크기는 대략 5~45cm로 다양하다.성의 직경은 3~3.5m이고, 높이는 0.5m이다. 성의 평면형태는 모서리가 여러 곳인 부정형이다. 남북의 길이는 49.5m, 동서의 길이는 43m이다. 성의 평면적은 20,200㎡이다(그림 24, 표2).


그림 24. 고르노레첸스코예-3 유적의 성곽 평면도(댜코바 작성)


 1996년에 볼딘 붸.이. 니키틴 유.게. 에 의해서 조사되었다 . 2002년 러시아과학원 역사`고고학`민속학 연구소의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단에 의해서 조사되었는데, 성의 토층은 다음과 같다.

시굴1
1. 표토층
2. 인공적으로 부순 돌이 섞인 부엽토가 혼입된 녹색의 사양토
3. 작은 돌이 혼입된 편상 갈색 점토
 가장 밑바닥은 검은 사양성 사질토로 종종 흰색의 석회화로 제작된 석기박편 등이 확인되는데, 중석기시대층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석기박편은 제르칼나야 강 유역에서 아주 많이 확인되는 석기박편이다.
 유적에서는 문화층은 2개 확인되는데, 아래층은 녹색의 사양토층으로 중석기시대층, 상층은 표토층인데, 발해시대로 생각되며, 성곽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성곽을축조하는데 급급했던 것으로 보이고, 크게 이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성곽의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확인되지 못했다.


● 고르노레첸스크-3 성곽은 곶 성으로 평면형태는 부정형이다. 성벽은 돌로 만들어졌고, 크기는 작은 편이다. 성은 매우 단순한데, 성 내부에는 마을이나 방어시설 등이 확인되지 않았다. 육안으로 주거지의 흔적도 확인되지 않고, 치와 같은 시설이나 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성은 방어시설로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성의 평면형태로 보아서 발해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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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제르칼나야 강 유역(구지명: 타두시 강)


제르칼나야 강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 집수지에서부터 시작해서 타투시 합류점에서 합쳐져서 큰 강이 된다. 길이는 82km, 합류점의 너비는 420km이다. 이 강이 시작하는 산 계곡부 정상의 높이는 600~1300m이고, 하류의 높이는 250~400m이다. 강 계곡은 좁고 구불구불하고, 평균 너비는 1~2.3km이다. 합류지점에서는 곳에 따라서 3.6km까지 넓어지는 곳도 있다. 산의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여러 곳에 낭떠러지가 있다. 제르칼나야 강의 왼쪽 지류는 높은 곳에서부터 기원하는 카바레로프카 강이다. 오른쪽 지류는 우스티노프카 강(시바이고우), 사도바야 강이 있고, 종착지는 동해의 제르칼나야 만이며, 강의 하류는 아주 넓다. 제르칼나야 강은 시호테알린 산맥에서 영서와 영동을 연결하는 동맥과 같은 곳이다. 이 강 유역의 전체가 인간이 거주하기 편했던 곳으로 생각된다.
제르칼나야 강 유역에서는 8개의 성, 2개의 환호, 1개의 자연 방어시설이 있다. 성지 유적에는 고르노레첸스코예 1~3 성, 시바이고우 성, 보고폴예 성, 우스티-제르칼닌스코예 성, 사도븨 클류치 성 등이다. 그 외에 제르칼나야 환호, 시로코예 계곡 환호 등이 있고, 데르수 바위 자연방어시설 등이 있다(그림 17). 

그림 17. 제르칼나야 강 유역의 성곽위치도, 2-베뉴코프스코예 성곽, 3- 데르수 바위 자연방어시설, 4~6-고르노레첸스코예 1~3, 7-시바이고우 성곽, 8-사도븨 클류치 성곽, 9-보고폴 성곽, 10-제르칼나야 환호, 11-우스티 제르칼노예 성곽, 12-쉬로코예 계곡의 환호


 
1, 베뉴코보 성곽
베뉴코보 고개에 위치하며, 카발레로프 마을의 북서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유적이 위치한다(그림 17, 사진 2). 성벽은 현재 3면만이 남아 있는데, 장방형 평면형태로 추정된다. 성의 북쪽 벽은 블라디보스톡에서 달네고르스크 시로 가는 도로에 의해서 파손되었다.
성벽의 서면 길이는 344m, 동면은 198m, 남면은 244m이다. 성벽의 내면의 높이는 0.7~1.8m, 외면에서는 1.3~2m인데, 가장 높은 부분은 동벽이다. 성벽의 상부는 편평하며, 대략 1~1.4m 너비이다. 성벽의 기저부 너비는 10m이다. 성벽을 따라서 해자가 둘러져 있는데 해자의 너비는 3~7m이다. 동쪽 성벽의 중앙에 너비 5m의 절개면이 있는데, 해자가 이 곳을 따라서 성 밖에서 안쪽으로 흘러 들어오고 해 둔 것으로 생각된다.
성의 내부는 비교적 편평한데, 전체적으로 북동방향이다. 성의 내부 면적은 80000㎡이다. 이 성은 1907년 시호테 알린 산맥을 따라서 조사하던 아르세네프가 제일 처음 발견하였고, 평면도를 완성하였다.
그는 이 성곽에 대해서 ‘타투시 강의 푸진나 지류로부터 시호테 알린 산맥을 가는 곳에 요새가 하나 있다. 그 요새는 아주 크고, 남쪽길에는 사원지가 현재 남아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서 이 고개에는 사방에서 오는 적으로 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요새를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아르세네프. 『1907년 여행기』)’.
 
아르세네프가 조사한 베뉴코보 성은 평면형태가 ‘ㄷ’자 모양이고 남쪽의 성벽이 없고, 문지도 표시 되지 않은 채 그려져 있다. 성의 북쪽은 제르칼나야 강이 위치하고, 언덕 위에는 절이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그림 18). 

처음으로 극동을 탐험한 러시아인(베뉴코프 1970)의 설명에 의하면, 이 암자는 장방형의 목제 가옥으로 맞배지붕 구조이며, 한쪽 벽면의 길이는 한 아르신으로 알려져 있다. 절은 높은 절벽위에 위치한다. 대체적으로 암자는 도로나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에 가까운 곳에 설치되었다. 잠시 들르는 길손들, 전쟁에 참가하거나 쫒기는 사람과 장사 하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해야만 했다.
1983년 갈락티오노프가 새로 평면도를 작성하였다. 그 작성도에 의하면 아르세네예프가 그린 것과 달리 북벽이 결실 된 것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 평면도가 더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2002년에는 러시아과학원 극동분소 역사·고고학·민속학 연구소의 아무르-연해주 고고학 발굴대가 이곳을 새로 조사하였고, 보다 정확한 평면도를 작성하였다(그림 19).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성곽의 평면형태나 특징으로 보아서 발해 혹은 더 늦은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18. 1907년에 아르세네프가 작성한 베뉴코보 성곽


그림 19. 베뉴코보 성곽 평면도


베뉴스코보 성곽은 산성으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작은 성이다. 성벽은 토성이고, 치와 같은 시설물은 없다. 평면이 매우 단순한데 성의 내부에 마을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 성은 제르칼나야 강 계곡의 남과 서쪽의 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길을 통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이 곳에는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큰 도로가 있었을 것이고, 이곳에 암자가 위치해서 긴 길을 떠나는 여행객의 영혼의 안식처 같은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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