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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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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8.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해발 1500m 무덤에는 매우 다채로운 물질문화가 발견되었다. 알타이에서 제작된 유물도 있지만 흑해지역이나 고대 오리엔트에서 들어온 문화도 있었다. 특히 흑해지역에서 들어와서 재해석한 문양은 양모천에 사용되기도 했다. 페르시아 계통의 동물투쟁문양도 그대로 사용되지 않고 재해석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파지리크 5호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에 하나는 벽을 장식한 캐노피인데, 그곳에는 반인반수가 발견되었다. 다양한 색을 사용한 것으로 앞다리와 뒷다리의 모양도 다르고, 날개, 꼬리 표현 등 일반적인 알타이 유물과 다르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중에서 반인반수

 

반인반수의 전통은 기원전 2000년기(기원전 14세기경)에 고대 오리엔트에서 처음 나타난다. 히타이트 도시의 조각품에 발견된 바 있다. 비슷한 주제는 앗시리아와 우라르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우라르투에서는 청동상 등 다양한 유물이 있고 앗시리아의 인장 및 시리아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시리아(그림 2)에서 발견된 반인반수는 동물의 자세가 파지리크 5호품과 유사한 편이다. 또 앗시리아의 Nimrud Palace의 부조(그림 3)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2. 시리아의 반인반수

 

그림 3. 앗시리아의 Nimrud Palace의 부조

 

코카서스 남쪽의 우라르투에서도 반인반수가 상당히 유행했고, 기원전 7세기경에는 이미 흑해지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반인반수도 고대 오리엔트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흑해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던 문양의 재해석일 수 있다.

 

그런데 반인반수가 문양이 그려진 카페트에는 동양인 얼굴을 한 여성과 서양인 얼굴을 한 남성이 만나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남성은 스키타이 무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복장은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남성의 복장과도 달라서 전혀 다른 민족이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재해석 된 유물과 함께 복합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20.03.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 벽걸이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 벽걸이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계곡의 2500년 전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다. 계곡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다. 필자가 어제 공개한 유물은 2017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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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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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북쪽의 스키타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7세기 경부터 베레잔 섬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가 발견된다. 그곳에서 발견된 토기들은 채색토기로 이오니아 섬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 후반의 토기들 보다 기원전 6세기 경 유물들이 많다.

 

채색토기 가운데 기원전 7세기 및 기원전 6세기 경 토기로 사자가 굽 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진 토기가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원전 6세기 경 유물에는 반인반수가 그려진 채색 토기도 발견되었다. 히노스 섬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그림 1. 기원전 7세기 토기, 흑해 북안의 베레잔 유적 출토, 히노스 섬 제작

 

그림 2. 기원전 6세기 토기, 흑해 북안의 베레잔 유적 출토, 이오이나 섬의 북쪽

 

그림 3. 기원전 6세기(기원전 580~550년) 토기, 쿠복, 흑해 북안의 히노스 섬 제작

 

반인반수는 몸통은 사자이고 머리는 사람얼굴을 하고 있다. 이 토기는 기원전 580~550년에 제작된 것으로 매우 구체적인 연대가 있다. 토기의 생김새에 따른 명칭은 쿠복(Кубок)이다. 쿠복은 러시아에서는 와인, 맥주, 꿀물 등 고급스런 음료를 따라 마시는 잔을 통칭한 것이다. 유적에서 나온 토기를 명칭한 것은 와인을 마신 일종의 잔으로써 ‘쿠복’으로 명명되었다.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도 반인반수가 그려진 유물이 있는데 은제 거울이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이다. 베레잔 유적보다 이른 시기에 이미 반인반수의 유물이 있었고, 우라르투에서는 기원전8세기에 이미 사용되었던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사자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은 스키타이 지역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사자가 피식자를 공격하는 장면이 있고, 맹수와 굽동물이 서로를 공격하는 장면으로 구분되며, ‘동물투쟁문양’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후자는 스키타이 지역인 알타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전자(사자-->먹이)의 그림은 앗시리아 유물에서 주로 발견된다(루덴코). 또한 이 유적에서 나온 유물을 보면 그리스 유물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맹수가 약한 동물을 공격하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맹수가 동물을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이 스키타이 유물에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스키타이 지역에서 많이 유행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Борисфен-Березань. Начало античной эпохи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СПб.: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2005(에르미타주 박물관, 2005, 보리스펜-베레잔, 흑해 북안의 그리스 상고기의 시작유적, 유적 발굴 120주년 기념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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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7세기의 우라르트 마지막 도시인 테이시바이니에서는 스키타이 화살촉이 다량 발굴되면서 스키타이 사람들에 의해서 망했다고 보고 있다.

스키타이 유물은 화살촉 뿐만 아니라 재갈멈치 및 철제 무기와 구슬 등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우라르트 왕국의 특징적인 유물들도 전해지는데 청동으로 된 인물상 뿐만 아니라 우라르트 재갈멈치, 투부도 있다.

 

그림 1. 우라르트에서 제작된 청동인물상, 테이시바이니 유적출토

 

그림 2. 우라르트의 재갈멈치, 테이시바이니 유적

 

그림 3. 앗시리아의 청동그릇, 테이시바이니 유적

 

그런데 우라르트에는 역시 앗시라아 제품들도 많이 발견되었는데, 청동그릇, 실린더 모양의 도장과 같은 유물이다. 코카서스 산맥 북쪽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앗시리아의 유물은 우라르트를 통해서 수입된 것이다.

 

우라르트에서 제작된 청동인물상(그림 1)은 스키타이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은제거울이나 투부가 그리스에서 제작되었다고 하는 논거의 반박자료로 충분하다.

 

그리스에서 제작되었다고 하는 설이 설득력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이유는, 서양의 고대근원이 그리스라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현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우라르트 보다는 그리스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먹혔?다고 할까?

 

테이시바이니 유적의 성곽 주변에서는 무덤도 발견되었는데 카미르 블루르 유적에서는 골제로 된 동물장식이 발견되었는데, 굴레장식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비슷한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그림 4. 카미르 블루르 유적

 

유적을 발굴한 피오트로프스키는 이 유물을 그리핀으로 보았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카미르 블루르 유적에서는 말이 매장된 무덤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코카서스 산맥 북쪽의 켈레르메스 유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코카서스 산맥도 충분히 높기 때문에 문화적 구분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유적에서 나타나는 상황은 매우 흡사하다.

 

 

 

참고문헌

Б.Б. Пиотровский Скифы и древний Восток(Доклад на Конференции по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й археологии).// СА. 1954. XIX. С. 141-158(피오트로프스키 1954, 스키타이와 고대동방)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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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지역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 스키타이 남성이 유물속에 등장하는 일은 많지 않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그래도 등장하지만 그 이전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은제 거울 속에는 스키타이 여신과 그 반대편에 남성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한다(그림 1-5). 두 남성의 온몸은 털로 덮힌 것처럼 표현 되었는데,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이다. 두 남성은 그리핀을 맨손으로 잡는 모습이다. 물론 이 거울 속에는 반인반수(그림 1-7, 그림 2-3)도 존재하지만 이들을 인간으로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은제거울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은제거울

 

전체 거울의 그림 구도에서 여신과 남성만 제외하고는 거울의 각 칸에는 동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동물이 또 표현되어 있다. 반인반수(그림 1-7,그림 2-3) 아래에도 각각 그리핀과 표범이 그려져 있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는 날개를 펴고 양 손에 맹수를 잡고 있는데, 그 하단에는 별도로 동물은 그려지지 않았다. 반대편의 남성 2인 아래에는 동물 대신해서 기하학적 문양이 그려있다. 제작자가 그림 1-5를 반인반수라고 생각했다면 그 아래에 동물을 표현했을 것이다.

거울의 5번 칸의 남성과 그리핀이 싸우는 장면과 기하학적 문양 사이에는 선을 깊게 새겼다. 이 선은 양 옆의 동물의 발 아래에도 그려져 있는데, 거울의 다른 칸에는 확인되지 않는 선이다. 이로 보아서 거울의 세 칸은 한 장면일 수 있다.

 

이제까지 간과했는데, 이 거울의 여성만 주목했는데, 스키타이 남성도 거울속에 분명히 표현되었다. 스키타이 남성신이 가장 먼저 나타난 유물은 켈레르메스 거울일 수 있다. 이 유물은 그리스나 우라르트에서 제작했지만 스키타이 여신이 등장하고, 동물문양가운데 표범(3번 칸)(그림 2-3)등은 스키타이 전통을 따르고 있어서, 스키타이 인들이 주문제작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모든 연구자들이 거울속의 날개 달린 여성을 여신이라고 하니, 거울속의 남성은 스키타이 일반 남성이라고 볼 수는 없고, 스키타이 남성신 가운데 한명이었을 수 있다.

 

누구였을까? 만든이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을까? 만든이가 스키타이 귀족의 주문을 충실히 따랐을까?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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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는 기원전 5~3세기대의 유물이 출토되어서 유적도 그 당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키타이 스타일의 동물문양장식과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유물도 있지만 그리스 스타일도 있고, 페르시아에서 제작된 유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유적에서 출토된 금 제품은 아케메니드 왕조의 금제품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그런데 아직 알려드리지 않은 유물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스핑크스처럼 생긴 반인반수가 원판형 속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있다. 앉아 있는 스핑크스로 오른쪽 앞발을 올리고 있고, 반구형의 모자를 쓰고 있고 이마 경계에는 진주?알 문양의 목걸이가 돌아간다. 모자 아래에는 머리카락을 뒤로 모은 스타일이다. 날개의 윤곽을 따라서는 깃털을 표현했고 그 끝에는 맹수가 달려 있다. 이 유물은 옷의 장신구(직경 5cm, 직경 4.2cm)이다.

사람얼굴 대신 날개 끝에 붙은 동물의 얼굴만 있는 유물도 있다(그림 2).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반인반수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사자얼굴그리핀

 

이 원판 속의 반인반수는 동물과 인간이 한몸으로 표현된 것이다. 사람얼굴과 마주보는 동물의 얼굴은 사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사자와 다르다. 오히려 코가 짧고 갈기 표현이 없어서 호랑이?와 가깝다. 옷에 원판을 다는 스타일은 고대 이란 민족을 포함해서 아주 널리 퍼져 있던 유행으로 원판을 단 것으로 만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반인반수(맹수몸통+새 날개+ 인간얼굴)는 이미 아케메니드 왕조 이전의 근동 지역에서 제작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유적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제이말 1979).

 

 

 

제이말이 이야기한 근동은 카프카스 산맥 남쪽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 지역에 앗시리아가 존재했을 때 그 보다 북쪽산악 지역에는 우라르트가 번성했다. 기원전 8세기에는 앗시리아 보다 우라르트가 훨씬 강성했다고 알려졌다.

우라르트의 고대 도시인 토파흐 칼레에서 발굴된 유물 가운데 청동으로 제작된 유물 가운데 반인반수 상이 알려져 있다(그림 2, 그림 3).

 

그림 3. 우라르트의 반인반수, 높이 16cm

 

그림 4. 그림3과 동일 유물.

 

청동솥에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날개를 편 새의 모습에 인간 얼굴이 달려 있는 유물도 발견되었다. 알리샤르 유적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림 5. 우라르트의 알리샤르 유적 출토의 청동제품

 

스키타이 문화에서 반인반수는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아르김파사가 그려진 은제거울에서 이미 나온다. 맹수몸통에 날개를 달고 머리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며, 그들은 스키타이 표범장식을 발 아래에 밟고 있다.(아래 포스팅에서 거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2020/08/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흑해 스키타이 여신, Argimpasa

 

흑해 스키타이 여신, Argimpasa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가 번성했을 때 인접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유물이 있다. 그리스, 우라르트, 앗시리아에서 제작된 유물은 스키타이 인이 주문해서 제작했던 것이다.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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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나온 스핑크스 모습을 그리스 스타일이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반인반수, 스핑크스, 인간얼굴이 달린 그리핀 모두 인간과 동물이 동등하다고 생각될 때 만들어질 수 있는 물건이지 않을까?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1959 :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М.: 1959. 260 с.(피트로프스크 1969, 우라르트 제국)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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