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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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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28. 09:22 세계의 박물관

오늘은 필자가 발견한 박물관 가운데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이곳저곳 많은 박물관을 본 경험에 의하면 굉장한 느낌 곳일 꺼라고 생각한다.

 

코카서스 남쪽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기원전 8세기 유적인 예레부니 성곽 바로 앞에 위치한 예레부니 박물관이다. 앞에서 필자가 예레부니 유적의 위치를 잘못 표시했는데, 아래 링크로 가면 바로 볼 수 있다. 예레부니 유적 보다 늦게 만들어진 테이시바이니 유적은 점토벽돌로 만들어진 성곽이라서 지금은 녹아내려서 상대적으로 잘 남아 있지 않지만, 예레부니 유적은 잘 남아 있고, 구글 위성으로도 뚜렷하게 보인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그림 1. 예레부니 성곽과 박물관

 

그림 2. 예레부니 성곽(오른쪽 보라색)과 테이시바이니 성곽(왼쪽 표시), 구글지도에 표시

 

그림 3. 아라라트 분지와 두 성곽의 위치

 

예레부니 박물관은 1968년에 소비에트 시절에 설립되었으니, 당시에는 소비에트 박물관 중에 한 곳이었다. 예레반(그루지아의 수도)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진 2750주년 기념으로 10월 19일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 박물관을 만든 근거는 예레반 시에서 발견된 고대 유적지인 아린 베르드(예레부니 성곽의 언덕 명칭), 카미르 블루르(테이시바이니 성곽의 언덕 명칭), Shengavit의 발견을 기념하고 만들어진 것이다. 건축물은 1970년 소련 건축가 연맹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 4.1968년 박물관 개관 당시의 인민, 사진 앞의 사람들은 유적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박물관은 칼디 신의 사원을 그대로 모방한 디자인이다.

 

그림 5. 1968년 박물관 개관 당시의 예레부니 성곽

 

그림 5. 예레부니 박물관의 입구, 칼디 신을 묘사

 

사실 필자가 깜짝 놀란 것은 유적 앞에 박물관을 세우고, 유적을 그대로 교육의 장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물론 유적이 벽돌로 된 성곽이라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졌기도 하지만, 이를 활용할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예레부니 유적 자체에서 유물이 많이 나오지는 않아서 박물관에는 유물이 많이 없을 수도 있지만, 유적을 그대로 이용한다는 점은...

 

1968년이다.

 

 

더보기

오늘은 새벽부터 일어나 난리를 치렀더니 너무 피곤해서 자료를 찾다가 엉뚱하게 박물관 표지를 보고 여기에 꽂혔다. 역사인식이 없는 나라에 살다보니, 별 것이 다 부럽다. 

 

김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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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촐폰아타 암각화박물관  (0) 2020.07.17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스텝(초원)지역보다 북쪽에 위치한 타이가(삼림)지대에는 기원전 8세기부터 아나닌스카야 문화가 남쪽의 스키타이 문화와 공존해서 존재했다. 이들의 문화에는 스텦지역의 사람들을 알고 지냈던 흔적이 동물문양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남쪽에 위치한 흑해 우안의 코카서스 부근 뿐만 아니라 동쪽 미누신스크 분지, 알타이 남쪽 사람들과도 알고 지냈다.

아직 알타이 남쪽에 위치한 동물장식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지만, 코카서스 부근, 미누신스크 분지와 비슷한 유물은 대부분 모방했거나 일부는 직접 수입했을 수 있다. 하지만 동물문양이 달린 것은 아나닌스카야 문화 사람들이 만들었을 수 있다.

 

동물문양만을 초점에 맞추면 스키타이 문화와의 관련성이 아주 크게 부각되지만, 숲속의 아나닌스카야 사람들은 자신의 야금술 기술이 있었다. 금속을 제련하는 기술이 주로 발견되는 곳은 카마 강 유역과 그의 지류인 뱌트크(Вятк, Vyatk)와 베트루그(Ветлуг, Vetlug) 강의 검은 숲속이다. 유적에서는 금속 제련하는 흔적 외에도 동물을 기르거나 혹은 사냥을 주로 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문화에서는 금속제련 기술은 성행했지만, 그 정도는 ‘недостаточно развитой железообработке’ 수준높은 철제품으로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철제품의 강도가 그렇게 센 정도는 아니었다(쿠즈미니흐 1983).

 

 

 

그림 1.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노동도구(전시장에 걸린 도끼는 몇 점 되지 않지만 실제로 가장 많은 금속제품은 도끼이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금속제품인 철제 도끼‘кельт(celt)’(그림 1-2,3)라고 불리지만 실제로 크기는 길이가 10cm내외로 작아서 오히려 목제를 자르는 도끼보다는 목제를 다듬는 도구에 더 적합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화에서는 유적에서 집과 무덤, 성채에 나무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노동과 관련된 도구 외에도 금속제품으로 많이 만든 물건은 허리띠와 머리장식(여성) 이다. 유적에서 많이 나오는데 스키타이 문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화려하니 관심도 덜하다. 이 문화의 사람들도 모자를 착용했다. 이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루고프스코이(Луговской , Lugovskoy) 무덤에서 나온 유물을 바탕으로 복원했다(그림 2).

 

 

그림 2. 루고프스코이 무덤 인물 복원상, 복원-게라시모프 Герасимов 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참고문헌

 

Кузьминых С. В. Металлургия Волго-Камья в раннем железном веке: Медь и бронза. — М.: Наука, 1983. — 257 с.(쿠지미니흐 1983, 볼가-카마 강 유역의 초기철기시대: 순동과 청동 금속제작).

아나닌스카야 문화 사람의 청동상 아래참고(상트페테르부르그 시의 쿤스트카메라 박물관, 에르미타주 박물관 뒤에 다리 건너면 있음, 러시아 최초의 공립박물관, 표트르 1세가 1714년 건립,  한국관이 따로 있음, 주로 조선시대 유물 전시, 2020년 11월12일~2021년 2월 15일까지 한국특별전이 있었음)

http://collection.kunstkamera.ru/entity/OBJECT/36347?query=%D0%B0%D0%BD%D0%B0%D0%BD%D1%8C%D0%B8%D0%BD%D1%81%D0%BA%D0%B0%D1%8F%20%D0%BA%D1%83%D0%BB%D1%8C%D1%82%D1%83%D1%80%D0%B0&index=0

 

www.kunstkamera.ru/

 

«Кунсткамера» — музей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Журнал призван отразить все многообразие актуальных научных интересов сотрудников музея, а также их коллег из российских и зарубежных исс

www.kunstkamera.ru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7. 17. 12:15 세계의 박물관

 

유라시아 암각화 주제로 가장 많이 애용된 것은 사슴과 같이 뿔이 있고 굽달린 동물이다. 필자가 앞서 소개한 키르기스스탄의 촐폰아타(Чолпон-Ата, Cholpon-Ata 유적에서 사슴도 그려지지만 가장 많이 확인되는 것은 산염소(코젤, kozel)(그림1)으로 629개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총 그림의 숫자는 93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림 1. 촐폰아타 암각화의 산염소 1(필자촬영)

 

그림 2. 촐폰아타 암각화, 그림 1의 왼쪽 위, 사냥하는 장면

 

그림 3. 촐폰아타 암각화의 산염소 2(필자촬영)

 

 

 

산염소는 뒤로 휘어진 뿔, 측면 몸통, 다리, 짧은 꼬리가 가장 기본적인 구성이다. 산양표현은 시간에 따라서 좀 더 통통하게 그려지거나 추상화되고 단순하게 선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다리가 네 개 또는 두 개, 뿔도 한 개에서 두 개로 바뀐다. 산양은 무리를 이루거나 맹수와 마주보는 장면, 사냥에서 쫒기는 장면, 서 있는 모습 등 다양한 장면에서 나타난다.

그림 1과 그림 3은 모두 코젤(산염소)를 그린 것이지만 표현법이 다르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 차이가 있다.

 

 

산염소 다음으로 많이 그려지는 것은 사슴(이전 포스팅 그림)이다. 산염소와 전체적으로 비슷하지만 뿔이 차이가 있는데, 가지가 여러 개 그려진다. 주로 나무 모양과 가깝다.

 

 

암각화는 이식 쿨(Иссык-Куль, Issyk-Kul)호수 부근에 위치하는데, 쿠네이 알라-투(Кунгей Ала-Тоо, Kungei Ala-Too) 산의 남쪽 기슭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이 산의 협곡에서 흘러나온 화산암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흩어져 있는데 이 곳에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 그 구역은 서쪽으로는 4km, 폭은 0.6~2km에 달한다.

 

그림 3. 촐폰아타 유적의 범위(유적의 위치는 이전 포스팅 참고)

 

 

 

그림 4. 이식-쿨 호수(이곳은 소비에트 시절부터 유명한 관광지 중에 한 곳이다.)

 

키르기스스탄은 넓게 보면 천산산맥에 입지한 국가로 이식 쿨 분지의 암각화(촐폰아타)와 알타이의 암각화는 자연환경에서 차이가 있음으로 사는 식생도 차이가 있다.

 

촐폰아타 암각화의 주제는 산염소, 사슴, 황소, 말, 개, 늑대 등 동물만 그려진 것과 사람이 동물을 공격하는 장면, 말을 탄 무사와 낙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돌 하나에는 2~3개부터 가장 많은 것은 20개의 주제까지 그려진다.

 

암각화의 모든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림의 제작연대이다. 이 유적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동물문양은 스키타이 시대의 것으로 천산산맥 주변의 문화였던 사카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 연대는 암각화가 주로 그려졌던 시점이고, 그 이전인 청동기시대부터 기원후 까지(기원전 2천년기~기원후 8세기) 그림은 계속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로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나라는 모든 영역에서 소비에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역사 고고학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촐폰아타, 이식-쿨, 쿠네이 알라-투 등 지명은 키르기스스어이고 음차해서 러시아어로 쓴 것이다]

 

 

촐폰아타 암각화박물관은 야외박물관이다. (우리나라에 잘 없는 야외박물관...) 촐폰아타가 이식 쿨 호수와 인접하고 있어서 관공도시로 이 유적도 관광지이다. 그래서 그 주변에서는 가기가 쉬운 박물관이다. 한국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는 직항은 없지만, 카자흐스탄의 구수도인 알마티로는 가면 이곳으로 갈 수 있다. 한마디로 가기 힘들다.ㅋ...그래도 꿋꿋한 한국인들은 탐방기를 남긴다..

 

 

 

참고문헌

 

Миклашевич Е.А. 1995 : Петроглифы Чолпон-Аты (Киргизия). //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Азии. Петроглифы. Кемерово: 1995. С. 63-68(미크라세비치 1995, 촐폰아타 암각화(키르기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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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예레부니 박물관  (0) 2021.11.28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네모꼴 나무방패를 살펴보다가 우리는 ‘솔로하’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에도 비슷한 유물이 새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유물이 소장된 곳은 표트르 1세라고 불리는, 러시아 사람들은 표트르 대제라고 하는 러시아 차르의 겨울궁전인 에르미타주(Эрмитаж, Hermitage ‘에르미타시’라고 쓰는게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데, 필자가 계속 에르미타주라고 하는 이유는 그 이름이 이미 한국에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대로 번역하면 ‘표트르 대제 시베리아 수집품(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Великого, the Siberian collection of the Peter the Great )’ 이다. 현재 총 240점이 전해진다.

 

그는 1689년부터 재위했는데, 러시아 영토가 된 모든 곳의 민족 고대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1715년에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은 표트르에게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황금 유물 10점을 바쳤다. 표트르는 이 유물의 중요성을 바로 알았고, 비슷한 유물을 수집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1718년의 날짜가 적힌 포고령에는 시베리아의 유물을 수집하고 출토품을 모으라고 강요했다. 특별포고령에 의해서 고대 유물을 숨기거나 녹이는 것을 매우 금지시켰다. 17세기 말경부터는 도굴로 엄청난 양의 황금유물이 황금을 얻기 위해서 녹여졌기 때문에 이를 금지시킨 것이다.

 

1715년~1718년에 시베리아에서 가가린이 수집한 금제품 240개가 보내졌다. 가가린은 농민들로부터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농민들은 고분을 도굴해서 그에게 팔았다.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봉분이 있는 무덤은 쉽게 눈에 띈다. 그리고 도굴되었다.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가 죽은 후 1727년에 이 수집품들은 러시아의 첫 번째 국립박물관인 쿤스트카메라(Кунсткамера, Kunstkamera)(그림1)에 기증되어 전시되었다. 그 뒤에 1859년에 제국 고고학 위원회에서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이송시켜 보관했다.

 

그림 1.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유물이 처음 보관된 쿤스트카메라, 1741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과학아카데미 건물이었던 쿤스트카메라의 모습을 동판화에 새겨서 찍은 것이다. 현재 에르미타주에 보관되어 있다. Christian-Alber Wortmann작품. 47cm, 62.6cm

쿤스트카메라는 처음에는 매우 작게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매우 커졌다. 1714년에는 수백마리 물고기, 새, 뱀이 항아리에 보존되었고, 1698년부터 해부학에 관심을 가져서 기괴한 해부학 작품도 많다. 1716년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동물 등이 보관되었고, 1717년에는 동물 해부학표본, 식물과 나비 박제 등도 구입해서 전시했다. 식물동물표본 뿐만 아니라 각종 기계와 도구도 모았다. 쿤스트카메라는 에르미타주와 매우 가까운데, 한번 가보시길 바란다. 필자가 들렀을때는 한국관도 있었는데, 주로 민속품 등이 전시되었다.

 

시베리아 콜렉션이라는 명칭은 19세기 후반의 스피친이라는 고고학자가 표트르 1세의 유품들을 정리했는데, 그 때 시베리아에서 온 골동품이 담긴 소포, 여러 편지와 목록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스피친이 이 유물들을 시베리아 콜렉션이라고 했고, 표트르 대제의 이름을 함께 붙여서 그를 기념했다.

 

쿤스트카메라에 유물이 있는 동안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인 흑해북안의 쿠르간 발굴유물도 함께 보관되었는데,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유물과 함께 에르미타주에 보관되었다. 그래서 에르미타주에 시베리아 유물 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 고분의 유물도 함께 있게 되었다.

 

표트르 1세가 남긴 편지 등에서 알아낸 것은 시베리아 수집품의 출토지역은 가가린이 총독으로 있던 토볼스크와 톰스크 외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에 발굴품을 토대로 시베리아 콜렉션은 오비강, 이르티스 강, 알타이의 서쪽 지대와 현재 카자흐스탄 북부(시베리아 남부)라는 주장이 강한데, 이에 대한 반론도 크다고 한다.

 

어쨌든 시베리아 콜렉션을 두고 이견이 없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스키타이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라는 점이다.

 

 

그림 2.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3.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4.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5.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6.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7.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8.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참고문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금번 답사에서 유적 위에 지어진 유적박물관을 소개하는 중인데, 이도정자유적박물관을 끝으로 마지막으로 하고자 한다.

답사의 더 심도깊은 내용은 논문으로 쓸 것이고, 완성되면 소개할 예정이다.

 

이도정자유적박물관은 이도정자라고 하는 유적(그림1)을 발굴한 채로 두고 덮은 박물관이다. 앞서 소개한 박물관과는 달리 유물전시관을 따로 짖지 않았고, 유적박물관의 가장자리에 유물을 약간 전시해 둔 정도이다.

 

그림 1. 중국에는 유적에는 꼭 비석을 세워둔다.. 찾기 쉽다..
그림 2. 이도정자유적박물관 입구

 

그림 3. 이도정자유적박물관 입구

 

그림 4. 이도정자 유적 박물관 내부

 

이도정자 유적은 적봉(赤峰)시(그림 5)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그림 6). 적봉시는 한자 그대로, 적봉시에 위치한 봉우리가 붉은 색이었고, 그 곳에서 홍산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홍산유적이 발굴되었다. 홍산유적보다 더 먼저 알려진 것은 홍산후라고 하는 유적인데, 그건 일인학자들이 발굴한 것으로 처음에는 신석기시대 유적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림 5. 치펑이라고 적힌 곳이 적봉시이다. 라오닝이라고 적힌 곳은 요녕.
그림 6. 이도정자 유적의 위치
그림 7. 2011년에 찍은 적봉시의 홍산
그림 8. 홍산에서 내려 다 본 적봉시(2011년 촬영)
그림 9. 홍산유적지가 있는 산림공원. 위의 두 사진은 이 공원 안에서 찍었다. 암튼 적봉시는 그런 연유가 있는 도시이다. 이번이 세 번째 인데, 숙소를 두고 묶은 것은 처음이었다.

 

필자는 이 유적을 사실 2011년에 가 본 적이 있다. 도로를 내기 위해서 발굴하다가,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서 컨테이너로 보존했을 때 가 보았다(그림 10~12). 그 때도 장관이었다.

 

그림 10. 2011년에 찍은 이도정자 유적과 도로. 그림 6에서 알수 있지만 도로와 유적의 위치가 일치한다.
그림 11. 이도정자 유적을 덮은 모습(2011년)
그림 12. 이도정자 유적의 컨테이너 시설 내부 모습. 2011년 필자 촬영

이 유적은 중국 요서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이후에 청동기시대인 하가점하층문화의 마을유적이다. 한국과는 달리 토벽이나 석벽을 쌓아서 집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잘 남아 있다(그림 4, 그림 12, 그림 13).

물론 하가점하층문화에서는 구덩이를 파서 만드는 움집이 있는 유적도 있고, 이런 지상식 구조물이 남아 있는 마을 유적도 있다.

하가점하층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 등은 차차 소개하기로 한다.

 

그림 13. 2019년 현재 이도정자유적박물과 내부
그림 14. 이도정자 유적의 발굴당시 항공사진. 이도정자유적박물관의 패널을 필자가 찍음.

 

암튼 중국의 국가차원에서 역사를 공작하는 중이니,,, 그 우연한 파생물인 유적박물관은 아이러니하게도 고고학도인 나에게는 무지 탐나는 아이템이다.

 

우리도 좀 괜찮은 유적은 신라, 가야 이런 역사시대 것 뿐만 아니라 선사시대의 유적도 좀 보존했으면 좋겠다..물론 그런 유적이 발굴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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