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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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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7. 13:07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타이 동물장식에서 몸통을 채우는 나선형과 소용돌이 문양은 동물 種에 구분 없이 사용되며, 기원전 7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해서 기원전 5세기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동물에 구분없이 몸통을 채우는 문양은 일종의 기호로서 작동했을 수 있다고 했다.

기원저너 5세기 시베리아에서 문양의 전통으로 특정 문양이 계속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면 비슷한 시점에 흑해에서는 기원전 7세기 문양을 복원한 정황이 있다고 했다(일린스카야 1971).

예를 들면 다리를 뻗은 맹수 장식과 같은 것이다. 기원전 7세기때 유행하던 동물장식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두 지역에서 기원전 5세기 경에 기원전 7세기 요소가 되풀이 된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사실 다르다. 알타이에서 나타난 기원전 5세기 나선문양 혹은 소용돌이 문양은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재갈멈치의 끝에 달린 독수리의 귀 장식 및 주인공 여성의 목걸이 등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에 이어서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 유적의 2호, 5호 동물문양 뿐만 아니라 이 보다 늦은 기원전 4~3세기의 3호, 4호 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흑해의 동물장식은 특정 동물의 특정화 된 자세가 되풀이 되는 것이다. 서 있는 맹수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일린스카야는 그리스인이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양을 복원했다고 보았다. 그리스인에게 주문제작 한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투부(아래포스팅그림참고)는 고대 이란 지역의 어느 국가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들 유물에는 동물표면을 특정한 방법으로 채우고 있는데, 동물의 종에 관계없이 채워지고, 이를 ‘스타일 인용’이라고 표현했다. 이를 페레보드치코바는 스키타이 문양에도 적용한 것이다.

2021/01/11 - [스키타이 동물장식] -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시작은...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시작은...

흑해 지역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은제 거울과 함께 출토된 투부는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 보다는 이웃한 서아시아 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이아. 아르타모노프(1961)는 투부에 표현된 동물을

eastsearoad.tistory.com

하지만 흑해 지역에서 스타일 인용은 동물의 몸통을 채우는 문양보다는 자세로 이뤄지는데 이 점이 시베리아와 다르다. 이 지역의 동물의 몸통(그림 1)은 견갑골과 대퇴부를 강조한 표현으로 좀 더 사실적인 방법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표범장식

 

그림 2. 세미브라트노예 유적 출토 철검과 검집

 

그런데 흑해지역에서 일어난 기원전 5세기 복고적인 방법(그림 2)은 세미브라트노예 유적과 같은 유적에서 발견된다. 이 시점에는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에서는 또 다른 스키타이 유물이 발견된다. 납작한 청동판에 동물문양을 음각(그림 3)한 것이다. 세미르라트노예 유물이 그리스 장인이 생산한 스키타이 유물이라면 청동판에 음각한 유물은 스키타이 인이 제작했을 수 있다.

 

그림 3.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출토 재갈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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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지역의 동물을 표현하는 방법 사실적이면서 근육을 강조한 방법은 사실 시베리아인 아르잔-2호에서도 확인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곳에서는 나선형문양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6. 13:27 카테고리 없음

 

기원전 5세기 알타이에서 발견된 동물문양장식은 통을 채우는 문양은 동물의 種에 따라서 비슷하지만 동물의 종에 따라서 동물의 ‘자세’는 공통성과 차이가 발견된다.

 

맹수나 굽동물 자세가운데 몸을 뒤틀고 있는 유물이 파지리크 유적 5호분에서 발견되었다(그림 1). 필자는 앞서 이 유물을 머리와 꼬리가 맞대어 있어서 원형의 맹수장식이 변형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을 비틀어서 머리와 꼬리를 맞대는 장식이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분

 

굽동물에도 몸을 뒤트는 자세(그림 2)는 맹수와 공통적이라고 페레보드치코바는 설명했으나, 그림 3의 굽동물의 예를 볼 때 필자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중요한지 아닌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의 안장 앞머리 장식 부분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3호분

 

 

  몸을 꼬는 자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굽동물과 맹수는 자세가 구분된다. 대부분의 굽 동물은 다리를 배쪽으로 접어 넣은 자세가 대부분이다. 앞다리를 굽히고 뒷다리는 뻗은 자세 ‘하늘을 나는 듯한’(루덴코 1960) 모습도 발견된다. 반면에 맹수는 직각으로 굽혀서 앞으로 다리를 뻗고 있다.

  사실 몸을 뒤트는 자세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변형을 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자세는 맹수는 다리를 앞으로 뻗고 굽동물은 다리를 안으로 접어 넣은 것이다.

   몸통을 꼬는 자세가 주로 발견되는 것은 맹수와 굽동물이 함께 표현되는 동물문양에서 확인되고, 맹수와 굽동물이 확연하게 다른 자세를 취하는 경우는 대부분 단독으로 표현될 때이다. 

  두 동물이 등장할 때 반드시 공격하는 장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하나의 동물 머리가 포식자의 입속에 들어가 있는 구도(그림 4)도 발견된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분, 남성 모자의 장식

 

동물의 종의 구분없이 몸통을 채우는 문양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보존되고 계속된다. 동물의 종 구분에 따라서 자세는 구분되지만, 굽동물과 맹수의 정형화 된 자세와 동물의 구도 등 거의 변동없이 지속된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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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5. 13:10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6~5세기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동물문양에는 나선문과 이와는 약간 다른 소용돌이 문양이 채워져 있다.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에 새겨진 동물문양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의 아플리케 장식, 말의 굴레 장식 등 다양하다. 전자는 평면적이고 후자는 입체적이다.

 

같은 문양이 동물의 종의 구분 없이 반복되는 현상은 만든이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주로 동물의 몸통 세부표현 혹은 표면을 채우는데 사용되었다. 문양은 네가티브한 방법으로 표현된 것이다. 스키타이 시기의 파지리크 문화 동물문양은 문양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동물의 몸통을 그 문양으로 채우려고 했다는 점이다. 스키타이 이전의 동물문양은 청동기시대 암각화 그림에서 발견된 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많다. 사슴돌의 사슴도 변형되었지만 몸통 자체를 음각으로 처리했다.

 

그림 1. 알타이의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문양

 

그림 2. 바댜사르 유적의 통나무관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4호 굴레장식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 안장덮개

 

루덴코는 파지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문양은 사슴, 맹수 및 환상의 동물의 몸체에 소용돌이 문양이 표현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또는 엉덩이 부위에는 ‘(●)’이 반복된다는 사실도 지적했다(루덴코 1960). 일정한 규칙이 확인된 것이고 이를 동물문양‘스타일’이라고 했다.

 

페레보드치코바는 루덴코(1960)의 의견에 동의하고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일종의 기호체계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흑해의 켈레르메스 투부의 동물문양도 문양의 종류는 다르지만 동물의 종과 관련없이 비슷한 문양이 반복되는데, 이 점도 같은 현상으로 보았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필자는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두 동물이 등장하더라도 포식자가 먹이감을 공격하는 장면과 두 동물이 대립하는 장면은 기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래의 두 가지 관점은 루덴코와 페레보드치코바의 생각을 여러 유물에 대입해서 내린 결과이다.

파지리크 유적의 안정덮개 장식 가운데 그리핀으로 변형된 독수리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은 장면은 외부에서 들어왔을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을 채우고 있는 문양은 알타이에서 파지리크 유적 보다 오래된 바샤다르 유적에서 발견되었고, 이 보다 더 오래된 아르잔-2 유적에서도 유행했던 문양이다. 문양은 채용했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기호체계는 알타이 전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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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전통문양(혹은 기호)를 채우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소재가 좋다. 가죽, 펠트, 나무일경우에는 평면이나 입체적이거나 모두 표현될 수 있지만 금속제품은 사용하기 힘들다. 단 기원전 6세기~5세기 이후에 그렇다. 바샤다르 유적 이전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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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4. 13:39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경에 고대 이란의 아케메니드 왕조의 페르세폴리스가 축조되는 사건은 아이러니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이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페르세폴리스를 자국의 장인 뿐만 아니라 인접한 국가의 장인을 모두 모아서 만든 결과였다. 그리고 알타이에도 서아시아 지역의 동물문양들이 발견되었다.

루덴코는 파지리크 유적의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일부 등에서 그러한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루덴코는 알타이의 문양이 앗시리아 보다 이전 문양(루덴코 1961)이라고 했지만 이는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과는 약간 다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아케메니드 왕조때 와서 미누신스크 분지, 알타이, 중앙아시아에서 이 왕조에서 사용된 동물문양이 퍼졌다고 보았다.

그녀는 이때 동물투쟁문양 가운데 원근법도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았으나, 필자는 다른 생각이다.

 

그림 1. 사자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 각배의 장식판(오른쪽)과 용(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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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투쟁문양은 페르시아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이 맹수가 포식자를 공격하는 장면과 맹수와 포식자가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으로 구분된다. 페르시아에서 발견된 맹수공격장면은 두 동물이 사실적인 표현으로 변형되지 않았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의 유물과 파지리크에서 발견된 맹수공격장면의 맹수는 변형된 것이다. 동물문양은 사실적인 것에 원칙을 두고 그 뒤에 변형이 일어나는 것임으로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것이 더 늦다. 반면에 두 동물이 물어 뜯는 장면은 사실적인 것이 알타이에서 발견되어서 이곳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그림 2. 파지리크 2호 출토 안장덮개 장식 중

 

페르세폴리스가 축조되던 시점인 기원전 5세기는 가장 높은 곳인 알타이 지역에서 스키타이문화가 나타난다. 기후변화를 다룬 논문(B. van Geel 외 2004)에서 가장 습윤한 시점을 2500B.P.(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기원전 5세기)라고 했는데, 이때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습윤도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럽도 매우 습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이 시작된 시점은 기원전 1천년기 초(기원전 10세기 가량)부터 습한 기운이 형성되었는데, 탄소연대 측정의 결과 태양활동이 감소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의 기후변화는 습지 퇴적물에도 기록되었는데, 볼가 북부 지역에는 매우 급하게 홍수가 일어났고 동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졌다((B. van Geel 외 2004).

 

루덴코(1961)과 페레보드치코바(1994)의견은 둘 다 맞을 수 있는데, 시베리아에서 서아시아의 문화가 나타나게 된 원인이 달랐을 수 있다.

 

 

참고문헌

 

B. van Geel, N.A. Bokovenkob, N.D. Burova, K.V. Chugunov, V.A. Dergachev, V.G. Dirksen, M. Kulkova, A. Nagler, H. Parzinger, J. van der Plicht, S.S. Vasiliev, G.I. Zaitseva, 2004, The sun, climate change and the expansion of the Scythian culture after 850 BC, Impact of the Environment on Human Migration in Eurasia, 151-158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중반의 알타이와 서아시아의 문화비교)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3. 13:1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의 흑해 지역의 동물장식 가운데 다리를 뻗고 있는 동물상이나 몸을 늘린 사자가 장식된 재갈멈치 등은 알타이에서 매우 유행했던 것으로 알타이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알타이에서도 그리스와 서아시아 지역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이 있다. 알타이는 아니지만 이미 아르잔-1호에서도 서아시아의 카펫이나 의복이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에 억지 주장은 아니다.

기원전 5세기 알타이에서 그리스와 서아시아의 영향을 연구한 사람은 Azarpay(1959)이다. 그가 근거로 삼은 유물은 동물투쟁문양과 머리만 따로 만들어진 동물상이다.

하지만 머리만 따로 만들어진 것은 이미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이른시기에 등장했고 동물양식의 원칙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페레보드치코바는 반박했다(1994).

  또 이미 포스팅한 바와 같이 동물투쟁문양은 두 종류가 있다. 서아시아지역에서와 같이 맹수만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이 있고(그림 1), 두 동물이 서로를 물어 뜯는 장면 2개가 존재한다. 둘은 서로 다른 기원일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맹수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 a-페르세폴리스, b-켈레르메스 유적, c-쿨 오바, d-표트르 1세, d-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e-세미브라트노예 유적, f-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품

 

아자피(1959)는 피지리크 유물에서 그리스 유물의 속성을 분리했는데, 벼슬이 있는 독수리 머리 그리핀이 대상이다. 그는 그리스의 영향이 페르시아를 통해서 알타이까지 전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서 발견된 얼굴표현물이 근거이다. 하지만 루덴코(1953)는 이 독수리 머리 그리핀을 앗시리아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작 앗시리아 그리핀에는 이빨처럼 생긴 벼슬이 없다.

 

그런데 루덴코(1961)는 그 후에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동물양식이 아케메니드의 영향이 아니라 더 고대 서아시아(기원전 8세기경의 현재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있었던 국가 및 기원전 9~8세기경 메디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아플리케 장식에서 앗시리아 보다 더 오래된 문양의 특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림 2. 알타이에서 발견된 박트리안 사슴 (Бухарский олень,Bactrian deer)장식, 은제품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중반의 알타이와 서아시아의 문화비교)

Azarpay G. Some Classical and Near Eastern motivs in the Art of Pazyryk. — Artibus Asie. 1959, vol. 22, №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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