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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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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목걸이와 비슷한 스타일로 만들어진 팔찌는 대부분 흑해지역에선 기원전4~3세기 유물로 알려졌으며 있다. 넓은 판이나, 여러 번 감고 끝에 동물장식을 하는 스타일은 모두 스키타이 시대의 가장 마지막 시기(기원전 3세기) 혹은 그 보다 늦은 시기(늦은 사르마트 시기)에 발견되는 것이다.

 

시르다니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 유역의 고분은 대부분 20세기 초에 파헤쳐져서 정확하게 연대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뒤에 발굴된 유적과 비교해 볼 때 기원전 5세기 대의 유물 중에서 팔찌들이 발견된다(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이곳에서 동쪽으로 더 이동하면 현재 카자흐스탄 중부 평원지역에서 발견되는 ‘타스몰린 문화’(기원전 7세기~기원전 3?2?세기의 스키타이 문화권내의 지역문화)에서도 팔찌는 발견된 바 없다.

 

타스몰린 문화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알타이와 투바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의 유물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여러 나라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아르잔-2호에서 발굴된 유물가운데 유사한 유물이 많다(추구노프 2011). 하지만 타스몰린 문화의 유적에서도 팔찌는 발견되지 않았다(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중앙아시아지역에서 발견되는 유적 군은 주로 시르다니야강과 아무다리야 강 사이 지역, 카자흐스탄 중부의 평원, 카자흐스탄 동부 산악지대(산악지대의 북쪽은 알타이와 가까운 쪽, 남쪽은 천산산맥의 일부지역)에 산포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동부 산악지대라고 하지만 비교적 낮은 지역에 무덤이 들어섰다. 모두 평지(혹은 비교적 낮은 구릉)에 높은 봉분이 있어서 눈에 쉽게 뛰었고, 이들의 운명은 흑해지역과 같이 거의 도굴 당했거나, 도굴과 같은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

 

그러나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는 주인공 5호묘 여성, 13호묘 여성이 팔찌를 차고 매장된 것이 확인되었다. 5호묘 여성은 현대의 체인처럼 금을 꼬아서 만든 팔찌이고 13호묘 여성은 여러 종류의 돌을 구슬로 만들어 만든(그림 2-12~16, 17, 그림 3-8~24) 팔찌이다. 아르잔-2 유적은 기원전 7세기 중반 유적이기 때문에 가장 이른 팔찌라고 볼 수 있다.

 

그림1. 아르잔-2호 5호묘 여성의 팔찌(2)

 

그림 2. 아르잔-2호 13A호묘 여성의 팔찌(12~16), 17 복원품

 

 

그림 2. 아르잔-2호 13B호묘 여성의 팔찌(8~23), 24 복원품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황금 여성상은 나신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흑해 북안의 남성 석인상은 목걸이와 벨트는 착용했으나 팔찌는 없었다(올호프스키 외 1994). 흑해 지역의 무덤속 주인공이 여성인 경우에만 팔찌가 나왔다.

 

그래서 스키타이 시대에는 여성만이 팔찌를 착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 남성에게 팔찌 착용 전통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청동기시대 문화에서는 청동제 장신구가 대단히 많이 발견되고, 남성도 장신구 착용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스키타이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Петренко В.Г. Украшения Скифии VII-III вв. до н.э. М., 1978 // САИ. Вып. Д.4-5. С. 41.(페트렌코 1978,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의 장신구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 Серия: 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т. 10] М.: 1992. 494 с (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내의 아시아 초원지역)

Чугунов, К. В. “Аржан-2: реконструкция этапов функционирования погребально поминального комплекса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его хронологии.” 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ежегодник .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СПб ГУ, 2011, С. 262-335(추구노프 2011, 아르잔-2호: 무덤의 축조과정 복원과 절대연대에 대한 질문)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표트르 1세의 수집품 중 황금으로 된 여성상은 나신임에도 불구하고 팔찌를 착용한 것이 눈에 띄는 특징 중에 하나이다. 팔찌는 유라시아 초원 유목민의 특징적인 유물 중에 하나이다(사르아디니 1983).

표트르 1세의 켈렉션 중에는 목걸이 뿐만 아니라 팔찌도 여러 점 포함되어 있다. 장소가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진 유물 2점은 1909년에 시르다니아 강 유역의 ‘두즈락’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림 1. 1-시르다니야 강 유역의 두즈락에서 발견된 팔찌, 2-1716년 가가린 수집품(루덴코 1962)

 

그림 2. 시르다니야 강 유역의 두즈락에서 발견된 팔찌 2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이는 러시아 최초의 고고학연구기관인 ‘제국고고학위원회’의 활동으로 모은 유물도 있다. 이 기관은 1859년에 공식적으로 창립되었고 1909년에 당시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시르다니야 강 유역의 ‘두즈락’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얻은 금제 팔찌 2점을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보냈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으로 일컬어지는 유물 가운데1716년이 가가린이 모은 수집품, 1734~1735년 밀러가 발굴한 유물 보다 가장 늦게 입수된 유물 중에 하나이다.

 

이 유물에 대한 정보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물질문화연구소의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시르다리아 지역을 관할하던 주지사가 보낸 편지(1907년 7월 31일)에 금팔찌와 금으로 된 뱀을 보냈다고 기록되었다. 당시에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제국고고학위원회에서는 이 두 유물을 금의 양을 기준으로 150루블을 책정했다. 표트르 1세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났으나 당시에 표트르 1세의 수집품을 연구하던 제국고고학 위원회장(스트로가노프 С.Г. Строганов)의 주도로 유물은 표트르 1세의 수집품과 함께 등록되어서 전시되었다.

 

 

두즈락에서 발견된 팔찌 2점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그림 1-1의 ‘팔찌’는 늑대의 머리와 그리핀의 머리가 표현된 것이다. 하지만 이 유물은 팔찌로 보기에는 너무 작지만 팔찌라고 추정하는 이유를 그림 1-2의 유물에서 찾는다. 그림 1-2의 팔찌는 16번 감긴 코일 모양의 팔찌의 가장 끝장식이다(그림 3). 그림 3은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유물로, 16번 감긴 코일에 연결되어 발견되었지만, 보관중에 분리되어 루덴코(1962)(그림 1-2)가 보고한 것이다.

 

그림 3.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표트르 1세의 수집품(그림 1-2와 동일 유물, 동물장식 끝에 땜질한 흔적이 있다)

 

두즈락에서 발견된 또 다른 팔찌는 양쪽으로 개페가 가능한 것인데, 경첩으로 연결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호랑이가 장식된 개폐가 가능한 목걸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작된 것인데, 연구자에 따라서 기원전 4세기, 기원전 2세기 등 연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미냐예프는 자바이칼 지역(바이칼의 우측)에서 출토되는 흉노 유물(기원전 3세기 이후)과 비교했고, 아르타모노프는 기원전 4세기의 팔찌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시르다니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 유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과 비교하는 것은 빼 놓을 수 없는 논쟁 중에 하나이다.

늑대와 그리핀의 조합은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벨트 장식(그림 4)에서 발견되는 주제이지만, 그 표현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벨트장식과의 관련성은 약한 것으로 이 유물의 연대를 기원전 일천년기 후반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연구(자비투히나 2001)도 있다. 중앙아시아에는 여러 곳에서 비철금속이 채굴되었으며 제작장소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4.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표트르 1세의 수집품(호랑이와 싸우는 늑대+그리핀)

 

참고문헌

 

М.П. Завитухина Золотые браслеты из местности Дуздак (Туздак) в Средней Азии и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Евразия сквозь века. СПб: 2001. С. 200-203.(자비투히나 200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켈렉션과 중앙아시아 두즈락에서 발견된 황금팔찌)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М.И. Артамонов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1973 // М.: «Искусство». 1973. 280 с (아르타모노프 1973, 사카족의 부)

М.П. Завитухина Собрание М.П. Гагарина 1716 г. в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 АСГЭ. Вып. 18. Л.: 1977. С. 41-51 (자비투히나 1977,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표트르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Сарианиди В.И. : Афганистан: сокровища безымянных царей. М.: ГРВЛ. 1983. (사리아디니 1983, 아프카니스탄 이름없는 차르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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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된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은 여러 경로로 입수된 유물을 한 번에 부른 명칭이다. 표트르 1세가 사실상 시베리아를 러시아제국의 영토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이 모은 황금 유물도 있지만, 좀 더 학문적인 경로?로 모은 유물도 있는데 1734~1744년 동안 제2의 캄챠트카 대탐험 프로젝트 중에 밀러가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의 유물(그림 3~5)을 모은 것도 포함된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밀러의 발굴품

 

그림 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밀러의 발굴품 2

 

제2의 캄챠트카 대탐험은 표트르 1세 이후 예카테리나 1세와 엘리자베타 여왕 기에 있었던 짧게 이야기 하면 시베리아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보낸 대 탐험대이다. 총 책임자는 베링이었고, 우랄에서 태평양 연안, 추코트카 반도까지 북극해안을 포함한 모든 시베리아를 조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시기에는 현재 러시아의 극동도 시베리아 지역에 포함되었다.

주축은 러시아과학아카데미였고 밀러는 역사 전문가로 참가하게 된다. 이 탐험대에는 500명이 넘는 과학자, 측량사, 노동자, 군인, 선원 등이 포함되었다. 주로 천연자원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원래 사는 주민의 경제와 역사, 지리 등을 연구하기 위해서 관련된 연구자 들이 대거 파견된 것이다. 북극해를 연구하기 위해서 쇄빙선 함대가 투입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밀러는 1735년 겨울에 크라스노야르스크를 방문해서 고대 무덤에서 구리로 된 유물을 대량으로 발견했다는 보고서를 남겼고, 그 지역에 구리광석이 산포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그 지역은 사얀(미누신스크 분지 부근)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유물들은 주로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분포하던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타가르 문화의 산염소와 사슴모양 입상이며(그림 3,4), 타가르 문화의 이른 시기인 기원전 7세기 경의 유물이다. 이 뿐만 아니라 철제품도 있었는데, 등자와 재갈멈치(그림 5)이다. 출토된 곳은 미누신스크 분지인데, 등자를 사용하던 시기는 예니세이 키르키스 문화라고 불리는 기원후 9세기 경(자비투히나 1977)으로 보았다.

그러나 최근 연구된 유적에서는 알타이에서 등자가 발견되는 시점은 기원후 5세기 중반이다(세레긴). 자비투히나는 1940년대 연구를 근거(에프투호바 1948)로 예니세이 강(미누신스크 분지) 유역에서 발견된 밀러 의 등자를 기원후 9세기로 보았다.

 

그림 3. 밀러의 발굴품

 

그림 4. 밀러의 발굴품

 

그림 5. 밀러의 발굴품

 

그런데 밀러가 조사한 시베리아의 역사는 1937년에 간행되어 그의 시베리아 탐험에 관한 내용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조사한 유물로 소개된 책(밀러 1937)에는 말탄 궁수와 목을 돌리고 있는 사슴 및 귀걸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오비강과 이르티시 강 사이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로 기록되었다(그림 5). 밀러는 크라스노야스크 지역 외에 오비강과 이르티시 강 주변의 무덤에서도 조사한 것이다.

아마도 표트르 1세에게 유물을 보낸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과 거의 비슷한 지점에서 유적을 조사 했다.

흥미로운 것은 밀러, 가가린 등은 자신이 발견 혹은 취득한 유물을 모두 무게를 달아서 기입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당시에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보기에는 시베리아를 보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그림 6. 밀러가 조사한 이르티시~오비강 유역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

 

참고문헌

Г.Ф. Миллер История Сибири. Том I. // М.-Л.: 1937. 608 с.(밀러 1937, 시베리아 역사1권)

Серегин Н.Н. Матренин С.С. 2016 Погребальный обряд кочевников Алтая во II в. до н.э. – XI в. н.э.(세레긴, 마트레닌 2016, 기원전 2~기원후 11세기 알타이 유목민의 무덤)

Элерт А. Х. 2008, По следам академического отряда Великой Северной экспедиции , том 18, №6//(에레르트 2008, 위대한 북방 탐험대의 학문적 분리를 위한 발자취)

Завитухина М.П. 1978 : Коллекция Г.Ф. Миллера из Сибири — одно из древнейших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собраний России. // СГЭ. [ Вып. ] XLIII. Л.: 1978. C. 37-40(자비투히나 1978, 러시아 고고학자료가운데 가장 오래된 밀러의 시베리아 수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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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에서 발견된 남성상은 공통점이 있는데 한 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말을 탄 상태에서 활을 쏘고 있다는 점이다. 나무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벨트 장식 속의 남성만 말을 타고 있지 않다(그림 1).

 

그림 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1716년 가가린 수집

 

1859년 밀러의 발굴품으로 알려진 말탄 전사(그림 2)도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으로 등록된 유물이다. 그 외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벨트 장식에 여러 명의 남성이 나오는데 모두 멧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으로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그림 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밀러의 발굴품

 

그림 3.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1716년 가가린 수집

 

그림 4.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1716년 가가린 수집

 

그림 5. a,b-그림 3, c,d-4의 말탄 활을 쏘는 전사

 

남성들은 1명을 제외하고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으며, 장발의 남성이다. 휴식을 하고 있는 남성이든, 멧돼지를 사냥하는 남성이든지 남성은 장발이고 코에 수염을 달고 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을 연구한 자비투히나는 이 남성들의 얼굴이 유럽인도 아니고 완전한 몽골로이드도 아닌 혼합된 얼굴로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벨트를 만든 장인은 확실히 몽골로이드와 유럽인종을 구분해서 만들었다. 이것은 나무아래 쉬고 있는 3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는데, 이 여성은 둥근얼굴과 상대적으로 적은 찢어진 눈 덕분에 동양인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여성이 쓰고 있는 모자는 파지리크 유적 2호분에서 그대로 확인되었고, 2호분의 여성미라는 몽골로이드, 남성미라는 유로포이드로 이미 밝혀진 바 있다(루덴코 1953).

 

자히투히나는 사냥하는 장면이 그려진 벨트의 연대를 기원전 5~4세기로 보았는데, 그 이유는 이 남성들의 얼굴모습이 파지리크 유적 5호분에서 발견된 벽걸이 캐노피에서 본 남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캐노피 속의 남성(그림 6-?)은 상대적으로 높은 코, 수염 등은 분명히 동양인의 얼굴모습은 아니지만 그가 착용하고 있는 무기 특히 고리트(화살통)과 말의 마구 등은 스키타이 문화의 것이었다. 이는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벨트장식의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고리트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캐노피의 남성(그림 6-2)과 일맥상통한다.

 

그림 6.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의 캐노피

 

파지리크 유적에서 남성은 매우 화려한 모자를 썼었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이든지, 캐노피의 남성이든지 동양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남성(혼혈 혹은 유럽피언)은 1명을 제외하고는(그림 4-b,그림 3) 모자를 쓰지 않았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으로 알려진 방형의 통에 그려진 전사 5인과는 다른 모습이다.

 

1716년 가가린의 수집품 가운데 황금나무(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인터넷사이트)

 

참고문헌

Завитухина М.П. 1978 : Коллекция Г.Ф. Миллера из Сибири — одно из древнейших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собраний России. // СГЭ. [ Вып. ] XLIII. Л.: 1978. C. 37-40(자비투히나 1978, 러시아 고고학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밀러의 시베리아 발굴품)

М.П. Завитухина Собрание М.П. Гагарина 1716 г. в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 АСГЭ. Вып. 18. Л.: 1977. С. 41-51 (자비투히나 1977,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표트르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https://www.hermitagemuseum.org/

 

Hermitage

 

www.hermitage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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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이 보낸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황금여성상은 보기드문존재이다. 소형 여성상이 주로 만들어지는 시기는 시베리아의 후기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가운데 오쿠네보 문화이고 모두 골제로 제작되었다. 신석기시대에도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성을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 여성상은 나신으로 여성성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금으로 제작되었다.

 

스키타이 문화권의 흑해 북부, 크림반도, 코카서스 산맥 부근의 유적에서는 돌로 제작된 남성상들이 확인된다. 이 남성상은 기원전 7~3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시간에 따라서 손에 들고 있는 각배, 허리띠, 무기, 장신구(목걸이), 헬멧, 손모양 등에 따라서 연대가 구분된다. 간혹 여성상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남성상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인 표트르1세의 황금여성상은 나신으로 착용하고 있는 것은 팔찌뿐이고, 머리에는 모자? 와 같은 것을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의 손 모양은 왼손이 위, 오른손이 아래이며 나란히 가슴 바로 아래 전면의 정중앙에 두고 있다.

 

2021.05.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황금 여성상은 어디서?

 

황금 여성상은 어디서?

18세기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은 1716년 12월 12일 표트르 1세에게 두 번째 소포를 보낸다. 그때 황제는 외국에 출장중이었고, 모스코프가 소포를 대신받았다. 이 사실은 표트르 1세와 함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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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남성석인상도 흑해북안과 카프카스 산맥부근에서 이런 손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기원전 7~6세기의 유적(그림 1,2)에서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유적 이후의 석인상은 각배(그림 3)를 들고 있다. 석인상의 손 모양은 손을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것, 마주하고 팔꿈치를 굽힌 것, 양손을 아래로 내려 놓은 것, 손 한쪽은 위+ 다른 손은 아래로 한 것 등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서 손모양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특징을 황금 여성상에 대입한다면 이 유물은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몸을 말고 있는 맹수상과 같이 매우 이르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남성상(입상),기원전 7~6세기, 살라뱐카 유적

 

그림 2.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남성상(좌상),기원전 7~6세기, 상단-비노그라도프카 유적

 

그림 3.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석인상(입상), 기원전 5세기, 테레노프카 유적

 

하지만 이 여성상은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발견된 여성의 모습은 대부분 어떤 유물의 한 부분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예를 들면 거울) 옷을 입고 있다. 옷을 거의 벗거나 얇은 옷을 입혀서 신체를 드러낸 여성상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추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물에서 발견된다.

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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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성성을 드러낸 청동기시대 유물도 대부분 옷을 입은 것으로,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흥미롭게도 머리카락 표현으로 여성성을 드러내고 있다. 후기구석기시대 이후로 나신으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극히 드물다.

 

그림 4.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의 여성상(4~7), 남성상(8~10)

 

그래서 이 표트르 1세의 황금여성상은 손 모양은 스키타이 지역의 유물이지만, 나신이라는 점에서  불확실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Завитухина Золотая статуэтка из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оллекции.// СГЭ. [ Вып. ] XXXVIII. Л.: 1974. С. 41-44(자비투히나 1974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중에서 황금상에 대해서)

김재윤 2021,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 골제 인간형상물에 대한 검토」, 『영남고고학』, 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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