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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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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2. 14:58 카테고리 없음

 

여러분은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나 드라마가 있으신가요?

저는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2018년 부터는 본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래저래 영화보러 가는 것도 귀찮기도 하고, 사실 그 만큼 맘에 여유가 없다는 설명이 가장 정확한거 같네요.

 

그래도 작년에는 영화는 아니지만 미드인 ‘체르노빌’을 재밌게? 봤습니다.

재밌게? 라는 표현은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지만, 실제 같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영화로 구상한다는 것, 제가 감독이라면 진짜 어려울 것도 같은데, 또 잘만 만들면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팩트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재밌게 본 이유 중에 하나는 영화의 현실감입니다.

거기 나오는 도시의 분위기, 소비에트 도시의 분위기,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의 연구소

연구소 내부의 인테리어, 중앙계단으로 올라가서, 중앙에는 2,3층으로 이어지는 높은 벽이 있고 거기에는 연구소를 상징하는 심볼이 걸려 있고, 건물 내부의 목제 인테리어, 바닥의 인테리어 등... 필자가 처음 유학갔을 때 많이 남아 있던 과학아카데미 건물의 모습과도 매우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습니다만. 소비에트 건물은 비슷하면서 서로 다른데, 그런 연구소 분위기가 너무나 생생했답니다.

 

그런데 어색했던것도 있는데 그건 사람의 이름입니다.

예를 들면, 핵발전소에서 마지막에 셧다운 키를 눌렀던 ‘아키모프’는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입니다. 러시아 사람의 성.

그리고 거기 나온 모든 사람은 서로를 지칭할 때 성으로 지칭합니다.

예를 들면 저한테 ‘김!’이라고 하는 것처럼.

 

감독 혹은 작가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두 가지로 추측됩니다.

첫 번째는 러시아인의 이름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러시아인은 푸틴 대통령입니다.

그 분의  풀 네임은 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러시아어), Vladimir Vladimirovich Putin(영문)입니다.

제일 앞 ‘블라디미르’는 이름이고, 그 다음 오는 ‘블라드미르비치Владимирович’는 아버지의 이름에 вич 혹은 ич를 붙인 것입니다. ‘부칭’이라고 합니다.

즉 블라디미르의 아들 블라디미르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성이 푸틴입니다.

 

그럼 여성은?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은 남성 이름이기 때문에 여성한테는 안 씁니다. 그래서 약간 예를 달리하면 올가Олга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아버지가 블라디미르 이면 그 여성의 이름은 ‘올가 블라디미로브나(Владимировна)’이고 아버지의 성에 ‘a’를 붙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성이 푸틴이면 그 딸은 ‘푸티나(Путинa)’가 됩니다.

 

여성 이름 ‘올가 블라디미로브나 푸티나’ (Олга Владимировна Путинa).

 

눈치가 빠르시군요.

이름 만 봐도 여성인줄 알수 있습니다. 부칭과 성의 끝이 ‘a’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 포스팅에서 이름만 봐도 여성인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너무 길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공으로 쓸일 이 있을 때, 논문, 기사, 글, 등에는 ‘올가 블라디미로브나 푸티나’ (Олга Владимировна Путинa)를 다 쓰지 않고, 성과 이름과 부칭의 앞 글자만 씁니다.

푸티나(Путинa О. В.)-->성은 앞에 쓸 수도 있고, 뒤에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럼 러시아에서 사람 이름을 부를 때는 어떻게 부를까요?

친구끼리는 매우 친밀하게 부릅니다. ‘올가’는 ‘올가’ 올랴, ‘올’ 등등..

‘이브게니’는 ‘이브게니부터, ‘제냐’ ‘젠칸’

‘세르게이’는 세르게이, 세료가, 세료자,

‘니콜라이’는 니콜라이 ‘꼴랴’ ‘꼴’

 

재밌죠? 러시아이름에는 애칭이 있습니다. 친할수록 짧게 축약해서 부릅니다.

아니 스트레스라구요.....^^

 

반대로, 손윗사람이나, 상사 혹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부칭까지 붙이는 게 예의입니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비치’ ‘올가 블라드미로브나’ 등.

 

그러나 상대를 성만 부르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전쟁과 평화나 죄와 벌, 등 러시아의 소설에는 등장 인물 이름만 엄청나서 이 사정을 잘 모르면, 독자가 혼란스럽습니다. 앞에 나온 사람 이름 ‘세르게이’가 뒤에서는 ‘세료자’라고 부를 수도 있고 부르는 사람이 그 사람 보다 낮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면 '세르게이 블라디미르비치'라고 부를 수도 있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다른 나라사람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분명 ‘체르노빌’은 러시아 사정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어’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사람 이름입니다.

어짜피 다른 나라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러시아권 사람들이 보면 뭐야?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앞 포스팅에서 필자가 러시아어 논문이름만 보고도 전혀 모르는 분임에도 여성인줄 안다고 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2020년이 밝았는데, 필자도 결심한 것들도 많은데, 마음만큼 되는 것도 있고, 되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경험상). 저도 여러분도 좋은일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앞서 살핀 지역에서 신석기시대의 시작연대는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표1). 그런데 중국 신강성과 인접한 지역에서 공통적인 문화양상을 보이는 시점은 4500년 전부터이다(그림12).

 

표1. 각 지역의 신석기문화(현재까지 알려진 이 지역의 신석기문화)

중국 신강 3유형과 몽골 1단계는 5500년 전 께 해당되는데, 원통형 및 원추형 석인석핵이 출토된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내용이 빈약하며, 각 지역에서 뒤를 잇고 있는 신강 4유형, 몽골 2단계의 유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5500년 전께는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강 4유형이 되면 카자흐스탄 동부의 우스티-나림 문화와 몽골의 신석기시대 2단계는 아주 유사한 유물조합을 보인다(그림12). 원통형(그림12-2,5)과 원뿔형 석인석핵(그림11-1,4), 석핵형 긁개(그림12-3,13)는 이들 지역에서 모두 확인된다.

시묘노프는 원통형과 원뿔형 석인석핵은 규조암을 눌러떼기 방법으로 석인을 잘라내는 가운데 생기는 것으로 구석기시대에는 부정형이다가 신석기시대가 되면서 고착되는 것으로 보았다Семенов С.А. 1968). 끝이 둥글게 처리된 긁개는 석인기법을 이용한 석기로서 신강의 4유형(그림12-11,12)과 우스티-나림(그림12-10) 문화, 몽골 2단계(그림12-13), 3단계에서 동일하게 확인된다. 그 외에 석도는 세 지역에서 확인되는데, 인부가 직인으로 ‘ㄱ자 형 석도(그림12-16,18,22) 및 반타원형에 가까운 석도(그림12-15,19)가 우스티-나림과 신강 4유형, 몽골 3단계에서 확인된다. 마연된 어망추(그림 11-23,24)와 장타원형의 석인 제작도구(그림12-25,28)는 우스티-나림문화과 신강 4유형에서 같은 형태의 것이 각 지역에 출토되었다. 우스티-나림문화와 몽골에서는 유사한 타제 석부(그림12-29,30)가 확인되며, 몽골과 신강에서는 마제 공이(그림12-40,42)도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는 모두 켈테미나르문화의 흔적이 확인된다. 석인 가운데 한쪽변만 잔손질해서 다른 쪽 보다 길게 처리한 뚜르개(그림12-33)는 우스티-나림문화(그림12-36), 신강, 몽골(그림12-41) 모두에서 확인된다. 또한 켈테미나르문화의 석촉(그림12-33)도 신강 4유형(그림12-36)에서 보인다. 평면형태 사다리꼴인 켈테미나르문화와 유사한 형식의 마제석부가 신강(그림12-40), 몽골(그림12-42)에서 출토되었다.

한편 바이칼 유역의 석기는 타제석창(그림12-45)과 유경식 석촉(그림12-46,47)이 신강 유역(그림12-43,44)에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우스티-나림문화에서는 시베리아에서 가져온 석재로 제작된 석인석핵 및 골각기 가운데 낚시바늘, 납작한 석기, 조합식검이 시베리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또한 몽골에서는 바이칼 유역의 토기 및 조합식검이 바로 북쪽에 위치한 바이칼 지역에서 영향을 받았다(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

따라서 카자흐스탄 동부~신강~몽골은 석기양상으로 보아서 한 문화권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시점은 4500년 전 부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몽골, 카자흐스탄 동부, 신강 지역에서 좀 더 이른 시기의 유적이 확인된다면 그 시기는 더 빠를 수도 있다. 또한 이 지역은 바이칼 유역 및 카자흐스탄 동부보다 서쪽인 켈테미나르문화와의 관련성도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림12).

그림12. 4500년 전 카자흐스탄 동부~신강~몽골 및 관련된 지역의 석기양상

필자가 이 지역을 고고문화보다 좀 더 큰 의미인 문화권으로 설정한 것은 주거양상 및 토기 때문이다. 토기가 많지는 않지만, 지역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스티-나림문화에서는 시베리아 신석기토기와 인접한 켈테미나르문화의 토기가 확인된다(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신강 지역은 시베리아 토기에 대한 언급은 없고 채색토기가 출토되며(伊第利斯·阿不都热苏勒,1993), 몽골 3단계에도 채색토기(그림7-54~58), 시베리아 토기(그림7-59~65)가 있다. 만약 신강 4유형에 망상문 토기, 첨저토기 등 시베리아토기가 확인되었다면 몽골 3단계와 이 지역이 켈테미나르문화의 영향을 받은 카자흐스탄 동부에 비해서는 더 유사한 지역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주거양상은 카자흐스탄의 켈테미나르문화(그림4) 및 우스티-나림문화가 텐트형주거식(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인 것에 비해서 주거지가 확인된 몽골은 수혈식(그림7-5)이다. 즉 석기양상은 같은 문화권으로 보이지만, 주거양상이나 토기양상에서는 신강지역과 몽골이 더 관련성이 깊다.

 

참고문헌

Семенов С.А. 1968, Развитие техники в каменном веке.(Ленинград:НАУКА, 1968). pp. 46~51.

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Неолит Северной Евразии, Москва, НАУКАIbid. pp.130.

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осква:НАУКА, pp. 70~73.

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Неолит Северной Евразии, Москва, НАУКА Ibid. pp.130.

伊第利斯·阿不都热苏勒,1993, 「新疆地区细石器遗存」.『新疆文物』, 4期, pp.15~59.,宋亦箫, 2010, 「新疆石器时代考古文化探論」, 『西部考古』, 第4輯,pp.4~9.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바이칼 유역의 신석기시대는 대체로 7000 년 전~6000년 전(Мамонова Н.Н., Сулержицкий Л.Д. 1986)의 키토이 문화부터, 5200~4700년 전(Горюнова О.И., 2002) 이사코보 문화, 5000~4500년 전(김재윤, 2018a) 세로보 문화로 변화된다. 각각 문화의 토기와 석기양상(그림 9)에 차이가 있지만, 연속적으로 확인되는 유물은 골제와 석제를 결합해서 제작한 조합식검(그림 10,11)이다.

 

그림9 . 바이칼유역의 신석기문화 유물(김재윤 2018b 재편집)(키토이문화의 유물(1:키토이 무덤 비트코프스키 1호, 2~7,14:키토이 무덤 비트코브스키 발굴 6호, 15, 22: 치클로드롬 1950년 10호;                                                                                                                                 이사코보문화의 유물(16: 포노모레보 11호, 17·18: 포노마레보 10호, 19: 포노마레보 12호, 29: 포노마레보 8호);                                                세로보문화의 유물(24~27: 포노마레보 7호, 28: 세레드키노 1호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중국 신강성에서 확인되는 석촉과 석창 가운데 세로보 문화와 관련성이 있는 유물도 보인다(그림12). 또한 몽골이나 카자흐스탄에서 확인되는 시베리아의 망상문 혹은 격자문이 남아 있는 토기는 키토이문화, 이사코보문화, 세로보 문화에서 모두 확인된다(김재윤, 2018b).

세로보 문화는 앞선 문화에 비해선 토기가 좀 더 많이 확인된다. 동체부가 둥글고, 구연부로 올라갈수록 축약되었다가 다시 외반되며, 저부는 원저이다. 파수가 수직으로 구연부와 저부 부근에 달리는 것도 있다. 토기 기면에는 타날문 혹은 그물흔적을 지우고 정면을 해서 매끈하게 처리하였다. 문양에도 다치구를 이용해서 눌러서 시문한 것(그림9-22), 침선문(그림9-21), 구순각목문(그림9-20) 등이 있다. 그 중 침선문 토기는 구연부가 외반하면서 횡주어골문이 시문되었다.

석창은 전면이 타제로 제작된 것이다. 좌우 대칭이며, 세장한 능형이나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횡단면은 대체로 렌즈 모양이다(그림9-28). 인부는 가장자리에 형성되었는데, 잔손질되었다. 창의 용도 뿐만 아니라 칼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촉은 경부의 모양에 따라서 오목하게 들어가 홈을 이루거나, 다른 하나는 일단경식(그림9-24,25)으로 구분된다. 이사코보 문화에 비해서 슴베가 있는 것이 양이 좀 더 많으며, 석촉의 무게가 크고 무겁다.

세로보문화는 시묘노보, 세로보 유적에서 연대측정 되었는데 대략 5000~4700 년 전에 존재했다(김재윤, 2018a).

조합식 검은 키토이문화(그림 10-1~8), 이사코보문화(그림10-9~16), 세로보문화(그림11)에서 모두 확인된다. 키토이문화의 조합식검은 양면을 떼어낸 석기를 골제와 조합된 조합식검(그림10-1~8)도 출토된다. 이사코보문화에서는 조합식검(그림10-9~12,16)뿐만 아니라 구부러진 뼈를 이용한 조합식도(그림10-13~15)도 확인되되는데, 앞선 키토이문화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림 10. 키토이문화와 이사코보문화의 조합식검(키토이문화(1~4: 라스푸티노 5,6: 우스티-벨라야 69-4호, 7·8: 치클로드롬 48-3호 ;                     이사코보문화(9: 브랏스키ㅣ 카멘, 10·12·15: 포노마레보 10호, 11: 샤먼 ,13: 샤먼 3, 14: 베르홀렌스크, 16: 베르홀렌스크 30-4호)(김재윤 2019)

 

참고문헌

 

Мамонова Н.Н., Сулержицкий Л.Д. 1986, “Возраст некоторых неолитических и ненеолитических погребений Прибайкалья по радиоуглеродным данным”,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 этнограф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в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итоги и перспективы), pp. 19-30.

Горюнова О.И., 2002, Древние погребения могильник Прибайкалья, Иркутск: Издательство Иркут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pp.14.

김재윤, 2018a, 「요서지역 소하연문화의 재검토」, 『한국상고사학보』, 99호, pp.34~35.

김재윤, 2018b, 「제2장 신석기시대」, 『북방고고학개론』,(재)중앙문화재연구원, pp.62~88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앞서서 중국 신강성의 4500년 전 석기시대문화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중국 신강성과 바로 인접한 카자흐스탄의 동부지역과 그에 인접한 문화를 살펴보았다.

2019/07/03 - [교과서 밖의 역사:유라시아선사시대/신석기시대] -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의 신석기문화비교1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의 신석기문화비교1

필자가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로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인접한 카자흐스탄과 몽골의 신석기시대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강성의 천산산맥은 동서방향 보다는 약간 틀어져서 비스듬하게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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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 [교과서 밖의 역사:유라시아선사시대/신석기시대] -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 신석기문화비교2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 신석기문화비교2

앞서서 환단고기역주본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신강성의 신석기문화에 대해서 설명한바 있다. (앞선 포스팅 참고) 2017/12/20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국과 신강고고학 자료] - 환국과 신강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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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2 - [교과서 밖의 역사:유라시아선사시대/신석기시대] - 카자흐스탄 동부의 신석기문화

 

카자흐스탄 동부의 신석기문화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문화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인접한 지역의 자료를 비교하고 있다. 우선 살핀 것은 바로 인접했지는 않았지만, 오늘 살펴볼 카자흐스탄 동부지역과 바로 인접한 지역의 문화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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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강성의 오른쪽은 몽골과도 접하고 있다.

 

몽골은 지리적으로 바이칼 유역과 가까워 이 지역의 신석기문화와 관련성이 많다(Окладников А.П., 1964,.)

몽골의 신석기시대는 대체로 2~3단계로 구분되는데, 1단계는 기원전 4천년기(6000~5000년 전), 2단계는 기원전 3천년기(5000~4000년 전), 3단계를 기원전 2천년기(4000~3000년 전)로 구분하는 의견(도르지)과 2단계의 문화가 순동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된다는 의견(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으로 구분된다.

1단계는 석기제작소와 주거지가 확인된 쏠론케르 쏘몬 유적이 있다. 원추형의 석인석핵(그림7-2,3), 석핵형 긁개(그림7-1), 조합식검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첨저의 토기도 확인되었다.

2단계는 탐차그-불락유적은 주거유적(그림7-5~9)으로 원뿔형태의 석인석핵(그림7-15), 뚜르개(그림7-26,27), 긁개, 한쪽변만 잔손질 된 세석인석기(그림7-20), 조합식석인검 (그림7-25)등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골각제인 화살촉과 송곳니로 제작된 장신구 등도 주거지 바닥에서 여러 점이 함께 출토되었다. 주거지 바닥에서는 무덤 4기(그림7-6~7)가 확인되었는데, 피장자가 앉은 자세로 다리를 묶은 채로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적을 기준으로 탐차그-불락 문화가 설정되었다. 듀나-2 유적에서도 유사한 유물양상이 확인되었다. 타제석도(그림7-34,36), 타제석부(그림7-37), 마제석부(그림7-38)등이 있다.

3단계는 사라바크-우스 유적의 상층이 대표적인데, 탐차그-불락문화의 유물과 거의 유사하다. 이 유적은 두 층위로 나눠지는데, 아래층은 원추형(그림7-40~42)과 원통형 석인석핵, 뚜르개, 끝이 둥글게 처리된 긁개(그림7-43~45), ㄱ자형으로 처리된 타제석도(그림7-52)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기하학적인 무늬가 침선된 그물문양(그림7-59, 50), 압인(그림7-63~65) 등이 확인되었다. 당시 아래층은 바이칼 유역의 이사코보문화(5000~4700B.P.)와 비교되어서(Окладников А.П., 1964), 2단계에 해당한다.

그림7 . 몽골의 신석기문화유물((1~4: 쏠론케르 쏘몬, 5~9,15~20,23, 25~30: 탐차크-불락유적 ,11,12,21,24,31,33,34,37~39: 듀나-II, 40~52: 사바라크-우수, 53~62: 투그르인-쉬레트, 63~65: 케룰렌강) (노보고르도바 1989 재편집)

상층에서는 석기는 하층과 유사한 바이칼 유역의 토기 뿐만 아니라 채색토기(그림7-54~58)가 확인되면서 3단계로 보았다. 뚜그르기인-쉬레트 유적에서도 비슷한 석기양상(그림7-53)과 채색토기가 확인되었다.

그런데 2,3 단계 유물은 3단계의 채색토기를 제외하고는 석기 및 토기양상이 거의 유사하다(그림7-54~58). 뚜그르기인-쉬레트 유적에서 채색토기가 출토되면서 사바라크-우스 유적의 상층과 같은 3단계로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쉬레트 지역의 듀나-II유적의 출토품이 우스티-나림유적과 비슷하다고 연구되었다(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김재윤 2019).

그림8 . 바이칼유역과 몽골의 신석기시대 유적 위치(1: 브랏스키 카멘, 2: 라스푸티노, 3:세로보유적, 4: 베르홀렌스크, 5: 포노마레보, 6: 키토이, 7: 치콜로드롬, 8 뚜그레인-쉬레트, 9: 사바라크-우수, 10: 듀나-II, 11: 쏠로케르-소몬, 12: 탐차크-불락유적(김재윤 2019)

 

 

 

 

참고문헌

Окладников А.П., 1964, Первоытная Монглия-К впросы древнейшеи история Монголя, УБ. pp.39-40

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осква:НАУКА, pp.63.

Окладников А.П., 1964, Первоытная Монглия-К впросы древнейшеи история Монголя, УБ.

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осква:НАУКА, pp.60.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문화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인접한 지역의 자료를 비교하고 있다. 우선 살핀 것은 바로 인접했지는 않았지만, 오늘 살펴볼 카자흐스탄 동부지역과 바로 인접한 지역의 문화를 설명했다. 이 지역은 천산산맥에서 발원한 아무다리야강의 하류로 아랄해 부근에 위치한 문화였다. 중국 신강성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문화에서 조합식석인검과 조합식검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2019/07/07 - [교과서 밖의 역사:유라시아선사시대/신석기시대] -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 신석기문화비교2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 신석기문화비교2

앞서서 환단고기역주본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신강성의 신석기문화에 대해서 설명한바 있다. (앞선 포스팅 참고) 2017/12/20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국과 신강고고학 자료] - 환국과 신강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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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국 신강성과 천산산맥을 두고 바로 인접한 카자흐스탄 동부의 우스티-나림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카자흐스탄 동부의 신석기문화는 우스티-나림 유적을 지표로 한 문화에서는 석기 및 골각기가 60,000여점이 출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기도 출토되지만 완형이 확인되지 않아서 토기 전모는 알 수 없다. 다만 토기는 기벽이 얇고, 문양은 남아 있는데, 망상문, 어골문, 격자문 등으로 시베리아 바이칼 유역 및 켈테미나르문화의 신석기토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스티-나림 유적에서는 규조암으로 제작된 원통형 석인석핵(그림6-4), 원추형 석인석핵(그림6-3), 베개형으로 양쪽에서 때어낸 석인석핵(그림6-6), 긁개형 석인석핵(그림6-1,5,9) 등 다양한 석핵석기와 석인박편으로 제작된 세석인석기(그림6-7,8)가 가장 많다. 그 중 세석인은 양 가장자리를 잔손질 한 것이 많은 양을 차지한다.

다양한 긁개류가 많이 확인되었는데, 양 가장자리가 타원형으로 들어가며 잔손질 된 것(그림6-14) 뿐만 아니라 끝부분만 부채꼴 모양으로 잔손질 된 것(그림6-10) 등도 확인되었다. 세석인석기를 이용한 유물 가운데, 끝을 뾰족하게 잔손질하고, 긴 장단의 한쪽면만 잔손질한 석촉과 긴 변의 한쪽만 잔손질 한 뚜르개(그림6-24,25)와 긁개(그림6-14)가 출토된다. 양면을 잔손질해서 떼어낸 타제 석도(그림6-15~17,21)도 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그림6-21)과, ‘ㄱ자형으로 굽어지게 잔손질된 것(그림6-16,17), 타원형(그림6-15) 등이다. 그 외 타제석부(그림6-26,27) 등도 출토되었다. 마연된 석기로는 석제 어망추(그림6-13) 및 장타원형의 도구(그림6-12)가 있다. 어망추는 평면형태가 육면체에 가깝고 중앙에 홈을 낸 형태이다. 이 유적에서는 대량의 골각기가 출토되었고, 그 중 많은 양이 낚시바늘이 라고 보고되었다. 장타원형도구는 석기제작시에 사용된 누르는 도구로 알려졌다.

그림6. 카자흐스탄 동부의 우스티-나림 유적출토품(Коробкова Г.Ф. 1996b 재편집)(김재윤 2019)

 

 이 문화의 연대는 신석기 문화 가운데서도 가장 늦은 시기의 것으로 하한은 기원전 2000년 기 전반에 해당된다. 그런데 상한연대는 이 유적에서 켈테미나르문화의 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서 켈테미나르문화의 늦은 시기인 기원전 3000년 기 후반에는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동부에서 이 보다 이른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카자흐스탄 아랄해 주변의 북부에 위치한 켈테미나르문화에서 확인되는 화살촉과 뚜르개(그림6-24,25)가 확인되는데, 우스티-나림 문화에서도 확인되어서 켈테미나르문화가 카자흐스탄의 동부지역까지 그 영향이 확대되었다. 석인석핵 가운데서는 알타이에서 채취된 원료로 제작된 것도 있고, 양쪽면을 떼어낸 석핵석기, 가장자리가 타원형으로 들어간 긁개, 조합식검, 낚시바늘 및 각종 골각기 등도 시베리아의 문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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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