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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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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1호에서 고대 이란의 페르시아 유물인 금제 항아리와 은제 각배 등이 출토되기는 했으나, 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지역의 유물이었다. 입이 과도하게 튀어나오고 다리가 짧고, 뿔이 화려한 사슴도 흑해나 시베리아에서 출토되는 사슴형태와는 다르다. 황금 사슴과 외국 그릇은 1호 무덤의 감실에서 출토되었다. 또 황금사슴은 무덤의 입구 구덩이에서도 출토되었다.

 

그런데 1호 무덤을 제외하고는 다른 무덤에서는 상기한 유물은 나오지 않는다. 1호 무덤은 규모도 가장 크고 외국의 유물 뿐만 아니라 이 지역 특색인 황금 사슴이 들어가 있어서 분명히 필리포프카 유적에 묻힌 사람들 가운데 중요한 일 혹은 외교 업무를 담당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무덤에서 나온 일반적인 유물과 자주 출토되는 유물이 우랄 남부 스키타이 문화인 사브로마트 문화를 대표한 다고 할 수 있다.

 

필리포프카 무덤 가운데 가장 많은 인골이 부장된 무덤 중에 하나인 7호 무덤은 직경은 20m, 높이는 30cm밖에 되지 않는다. 무덤의 평면은 무덤의 입구를 제외하고 장방형 무덤방 3개가 연결된 모양이다.

모두 9인이 매장되었는데, 1차장으로 사지를 뻗은 채 매장된 사람은 6인이고, 무덤의 동북쪽에 2차장으로 매장된 2인의 뼈와 남쪽에도 1인의 뼈가 확인되었다.

1호 무덤에서는 인골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유적 전체에서 확인 가능한 경우 인골은 대부분 사지를 뻗은 채 묻혔다. 2차장은 사자를 그대로 묻지 않고, 뼈만 수습해서 넣은 경우이다. 책에는 뼈를 태운 흔적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어서 정확한 상황은 모른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7호 무덤 평면도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7호 무덤 내부

 

7호에 묻힌 사람들은 모두 같은 유물을 부장한 것은 아니다. 청동거울을 가진 사람(인골 3번), 2점 가진 사람(인골 5번), 그리핀(인골 4번, 인골 3번)이나 맹수 장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도 따로 있다.

그 중에서 6번 인골은 맹수장식이 그려진 뼈로 된 숟가락(그림 3-5)을 가지고 있었다. 동물 뿔 모양?이 붙은 숟가락 한 점도 함께 부장되었다. 이 사람은 아키나케스 검(그림 2-8)과 철제 창(그림 2-1)을 가지고 있었다. 인골 상반신을 철제 미늘갑옷(찰갑)(그림 2-9)이 덮고 있었으나 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철제 갑옷을 입은채 로 묻혔다고 볼 수 있다. 검과 창을 들고 갑옷 입고 죽은 사람 옆에 놓인 숟가락 2점과 토기....의례행위라면 가능도 할 수도 있겠다.

 

 뼈로 된 숟가락(그림 3-5)라고 하지만 실제 사진(그림 4)은 앞 부분이 편평해서 숟가락이 아닐 수도 있다. 유적 전체에서 이와 같은 유물은 1점 출토되어서 다른 유물과의 비교가 힘들다. 숟가락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유물은 아니다. 그래서 이 유물이 숟가락이 아니라 일종의 부적?과 같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던 동물문양 중에 맹수머리 혹은 그리핀 장식이 있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숟가락은 1점만 출토되어 인골 6호만의 특징이다.  무덤의 모든 인골이 똑같은 물건이 부장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개개인의 특징이 있을 수 있으니.

그래도 숟가락에 다른 문양을 장식했을 수도 있지만 구지 맹수머리 혹은 그리핀 머리를 장식한 것은 ‘스키타이 문화 상징’으로서의 의미가 내포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은..페레보드치코바(1994)의 의견대로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과 같은...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7호의 인골 6번 부장품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7호, 그림 3-5

 

참고문헌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추야 강 지류인 바르부르가지 강 유역이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상 러시아연방 내의 알타이 공화국이다. 이 유적 보다 북쪽에 위치한 부구준 강 유역에서도 스키타이시대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말라투 IV유적이다. 이곳은 거의 알타이 공화국을 벗어난 투바 공화국에 위치한다. 물론 러시아 연방의 연방국가 중에 하나이다. 투바는 우육 계곡의 아르잔-1 유적이 있던 곳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말라투 IV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시대 24기의 무덤이 발굴되었으나 이제까지 본 유적과는 다르다. 열을 이루는 듯 해 보이지만 세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물론 바르부르가지 I유적도 2열로 있었으나 1열과 2열 사이에는 거리가 멀지 않았으나, 말라투 IV유적은 확연하게 거리를 두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한 듯 해 보인다.

 

 

그림 1. 말라투 IV유적, 26번은 투르크 시대 무덤 그 외는 스키타이 무덤.

 

말라투 IV유적에서는 대부분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들었다. 어제 살펴본 바르부르가지I유적처럼 돌널무덤(석관묘)가 사용되지 않았다. 무덤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세 그룹의 무덤이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매장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1번 그룹과 2번 그룹 사이에 매장된 9번은 중간의 공간을 이용한 무덤으로 가장 늦은 무덤으로 생각했다. 부장된 유물도 거의 없다.

이 유적에서 말이 매장된 무덤은 11~13호와 9호이다. 그 외는 말이 없었다.

특히 비슷한 시기의 타샨타 유적에서 대부분 발견되던 목제의 말 모양이나 산양모자장식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 금박종이에 동물문양이 남아 있는 무덤은 말이 있는 무덤에서는 확인된다. 말이 있는 무덤에서 대부분 발견되는 유물은 간단한 칼이나 무기류이다. 가장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남아 있는 무덤은 18호로 말은 부장되지 않았다.

타샨타 유적과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몇몇 무덤에서 발견된 맹수달린 목걸이도 이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재갈멈치에도 거의 장식이 없었다.

즉 이 유적의 사람들은 모자에 목제로 된 동물인형이나, 맹수달린 목걸이 장식을 하지 않았다.

 

 

그림 2. 말라투 IV유적의 9호분

 

 

그림 3. 말라투 IV유적의 11호

 

 

그림 4. 말라투 IV유적의 12호

 

그림 5. 말라투 IV유적의 13호

 

 

그림 6. 말라투 IV유적의 13호 유물

그림 7. 말라투 IV유적의 18호 유물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는 맹수 달린 목걸이 장식을 한 무덤이 4호(늑대), 10호(불명확), 17호(호랑이), 18호(산양), 26호(늑대)에서 확인된다. 목걸이 끝을 장식한 동물은 늑대와 호랑이 장식이다. 타샨타 I유적 2호분에서는 재갈멈치에 호랑이가 부착되었고, 늑대모양 맹수 끝장식을 단 무덤이 있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호랑이와 늑대는 같은 지역 내에 거주하지 않는 동물로 알려졌다. 원래 호랑이 장식이 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부터 목제로 확인되고, 좀더 이전인 아르잔-2호에서는 금판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동물장식이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 이후가 되면 호랑이도 있지만 같이 살지 않는 늑대도 나타난다(늑대는좀 더 이른 시기에도 있으나 이 시점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그런 동물문양이 없어지는 말라투 VI유적과 같이 있다. 혹시 이 시점 쯤에 호랑이는 전설의 동물이 되고, 대신 늑대가 그를 대신해서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 이유는......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울란디르크 강은 알타이의 북서와 동남쪽을 가로질러 흐르며 고대 유목민의 도로가 된 추야강의 남쪽 방향 지류이다. 북쪽방향으로 갈라진 유스티드 계곡에도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7개가 확인되었고, 각 유적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울란디르크 계곡과 유사한 것들이 출토되었다. 물론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이 대부분 유사하지만,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 무덤에서 흔하지 않은 유물 가운데서 같은 특징을 가진 유물이 울란디르크 III유적에 있는데, 예를 들면 투구형 모자장식이다.

 

울란디르크 III유적에는 모두 8기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모두 발굴되었다(그림 1). 2호와 5호는 투르크 시대의 무덤이고, 6기는 모두 스키타이 무덤이다. 이 중에서 외관상 가장 큰 무덤은 3호(직경 10m,높이 30~50cm), 4호(직경 10m, 높이 50cm)이다.

 

그림1. 울란디르크 III유적 평면도

 

3호(구덩이 직경: 250×200×225, 무덤방: 200×160cm)와 4호(구덩이 직경: 300×210×240cm, 무덤방: 205×145cm) 모두 말이 2마리씩 매장되었고 구덩이의 직경과 무덤방의 크기도 비슷하다.

3호는 무덤시설물과 인골, 말의 상태 모두 않좋았는데, 나무무덤방이 썩어 내리면서 인골과 말이 이미 흩어진 상태였고, 유물의 위치도 모두 따로 흩어졌다. 4호도 북쪽벽이 흘러내리면서 말의 두개골과 무덤방 바닥이 약간씩 이동을 한 상태이다.

 

그림 2.울란디르크 III유적의 3호분

1,3- 목제 굴레장식, 2: 목제 장식판, 4: 말 이마장식(쿠바레프는 고리트 장식으로 보고했으나, 후대에 발굴된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아라하 1유적에서는 이 유물이 말 이마 장식이라는 점이 밝혀졌., 5-목제 장식판, 6-목제 활, 7-목제 고리트 지지대, 8-투부의 손잡이, 9,10-목제 말장식, 11-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목제품, 12,13-청동거울, 14-물감이 칠해진 가죽주머니, 15,17-청동검, 16,18-목제검집

 

그림 3. 울란디르크 III유적 3호분과 유물, 그림의 번호와 일치

 

그림 4. 울란디르크 III유적 4호분

 

그림 5. 울란디르크 III유적 4호분과 유물

 

 그런데 무덤의 규모와 무덤방의 축조방법, 말의 두수가 비슷하지만 유물은 차이가 있다. 무기의 종류와 수가 다르다는 점은 그림(3,5)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 동물문양장식은 대부분 모자의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3호분 유물 가운데 말모양 장식(그림 3-9,10)은 모자장식이다. 4호분에서도 동물문양장식은 모자장식(그림 5-12)으로 사용되었으나, 목제 사슴장식이며, 앞다리와 뒷다리 시작하는 부위에 산양과 산염소의 머리가 표현되었고, 뒷다리의 발에는 인간의 머리(그림 5-13)장식이 붙어 있다. 뿔이 달린 모습으로 금박으로 마감된 것이다. 이 유물은 울란디르크 강의 계곡에 있는 유적 8개를 통틀어 하나뿐이다.

 

보고서에는 두 무덤 주인공의 성별에 대해서는 보고되지 않아서 두 모자가 다른 것이 성별의 차이로 보기도 힘들다. 동 시대에 모두 같은 모자를 쓰지 않았을 수 있다.

3호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는데, 발견하셨나요?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은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유스티드 XII유적의 21호에서는 출토된 여성의 이마를 장식하던 모자장식으로 두 동물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중앙에 돌출된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은 유스티드 XII유적(21호, 8호, 19호)에서만 출토된다.

2020/10/0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XII 고분] - 알타이 스키타이의 성인여성?무덤

 

알타이 스키타이의 성인여성?무덤

알타이의 유스티드 XII 유적에서 26기의 무덤 가운데 아이의 무덤이 10기이다. 어른과 함께 매장된 경우(4호, 8호)를 제외한 것이다. 그 중에서 아이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21호를 소개하고자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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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드 XII유적을 제외하고 10기의 무덤이 발견되고 대부분이 발굴된 유스티드 I유적에서는 이와 같은 유물은 없다. 이 유적 전체에서 목제 모자장식은 3호의 아이 머리 위에서만 출토되었다(그림 4). 2호에서는 가죽으로 된 모자장식이 출토되었다(그림 3-17). 그 외는 3호 여성(그림 3)과 6호 남성무덤의 2인(그림 8), 10호 남성 2인의 머리 상단에서 금박장식(그림 11)이 출토되었다는 표식만 있다.

3호에서는 목제사슴장식과 청동으로 된 그리핀(그림 4-4, 5,6)이 있다. 금박을 씌운 것이다. 그 중 1점은 청동거울의 표면을 장식했던 것이지만 거울과는 떨어져서 출토되었다(그림 2).

 

 

그림 1. 유스티드 I유적, 1호분의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토기편, 1-문양이 남아 있는 목제편, 2-골제 덮개편

 

 

그림 2. 유스티드 I유적의 2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검은색 물감의 범위, b-금박편, c- 돌

1,2-토기편, 3-복합궁, 4-활의 끝편, 5-산양화된 사슴, 환상의 동물, 6,7-목걸이, 8-검집, 9-알 수 없는 유물, 목제품, 10,11-거울, 12-골제 귀걸이 편, 13-멧돼지 송곳니 이미테이션, 14, 펜던트, 15-자작나무껍질, 16-나무 막대기, 17-모자장식의 상단부, 1,2-토제품, 3-9,13,16-목제품, 10-12: 청동, 14-뼈, 15-자작나무껍질, 17-뼈

 

 

그림 3. 2. 유스티드 I유적의 2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그림 2의 번호와 일치, 유스티드 I유적에서도 유스트디 XII유적에 없던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는데, 말려 있는 자작나무 껍질과 막대기이다(그림 3-15, 16).

 

 

그림 4.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금박편, 1,2-토기, 3-목제 사슴의 상부편, 4~6-그리핀이 표현된 납작한 판, 7-거울편, 8-모형화 된 검, 9-검집, 10-거울, 11-검을 달기 위한 가죽끈 조각, 12-단추, 13- 칼, 1,2: 토제, 3,9,12-목제, 4~6: 청동과 금박, 7,8,10-청동, 11-가죽, 13-철제품

그림 5.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그림 3과 번호 일치

 

그림 5.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 출토유물, 그림 4와 번호 일치

 

 

그림 6. 유스티드 유스티드 I유적의 4호분 평면도와 단면도, a-돌, b-무덤구덩이를 파고 다시 덮은 흙, c-무덤구덩이를 채운 흙, d-무덤구덩의 범위와 내부의 무덤방 위치, e-생토(인간이 손대지 않은 층)

 

그림7. 유스티드 I유적의 4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검은색 물감의 범위, b-금박편, 1,2-토기, 3-청동거울, 4-청동제버클장식, 5-목걸이(管모양)의 연결장치, 청동편, 6-철제 검의 부분, 7-골제 칼, 8-철제 검

 

그림 8. 유스티드 I유적의 6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금박편, c-숯 조각, 1-토기, 2-칼, 3, 9,10-검, 4,8-거울, 5~7:전투용 도끼, 11, 12-돌 베개, 1-토기, 2-철제품, 3~10: 청동제품

 

그림 9. 유스티드 I유적의 6호분 출토유물, 그림 7과 번호 일치

 

그림 10. 유스티드 I유적의 7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숯, 1-목제 쟁반, 2-토제 항아리, 3-목제 칼(철제품의 이미테이션), 4,5-구슬, 6-청동단추, 7-펜던트

 

그림 11. 유스티드 I유적의 10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1-재갈, 2-버클장식, 3,4-원판형 장식, 5-전투용 도끼와 자루, 6-원판형 장식, 7-검, 8-칼, 9,10-칼, 11,12-항아리, 13-금박, 14-검은색 물감의 범위, 철제품(1,9), 뿔제품(2~4), 청동+목제(5), 목제(6), 청동(7,10), 토제품(11,12)

 

그림 12. 유스티드 I유적의 10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0과 번호 일치

 

유스티드 I유적과 유스티드 XII유적을 비교해보면 동물문양장식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특히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모자에 달던 동물문양장식으로 산양화된 사슴, 말, 사슴장식등이 남녀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 모자에 달던 목제 동물문양장식은 3호의 아이에게서만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활이 존재한 무덤도 2호 뿐이다.  무엇보다 이 유적에는 말이 있는 무덤은 10호 뿐이다. 대부분 말 없이 매장한 유적이다.

 

그 외에 유스티드 I유적에서만 출토된 유물도 있다. 2호에서 출토된 자작나무 껍데기와 막대기, 6호에서 출토된 돌 베개(그림 8-11, 12), 7호의 목제 칼(그림 9-3)과 상감된 구슬(그림 9-4,5)이다.

돌 베개는 평면도의 그림과 쿠바레프의 설명으로 보아서 파지릭 2호분과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목침과 비슷한 형태이다. 목제의 이미테이션인가 싶기도 하다.

2020/03/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무덤방 안, 관의 내부사정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무덤방 안, 관의 내부사정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의 무덤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다. 남성과 여성 모두 미라 처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발굴당시에 루덴코가 본 것은 이미 산산히 조각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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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레프는 이러한 유적 간의 차이를 시간차이로 보았다. 유스티드 I유적은 유스티드 XII유적 보다 늦은 기원전 3세기로 보았다. (그러나 약간 조정이 필요하다.)

말이 무덤 안에서 사라진 것은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기여서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사회적인 큰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다.

스키타이 문화 이후에는 다시 무덤 속에서 말이 확인되기 때문에 이 유적만의 특수한 현상일 수도 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유적 중에 가장 이른 시기의 켈레르메스 유적(기원전 8~7세기)에서는 청동거울이 출토되었다. 청동거울에는 꼭지에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부착되었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이 유적의 굴레장식으로도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더 이른 스키티이 유적인 시베리아의 아르잔-1 유적(기원전 9세기)에서 출토된 바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은 1903년부터 슐츠가 발굴했는데, 그 중 2호분(슐츠의 번호)에서는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청동솥은 다리가 나팔상으로 붙어 있고, 손잡이에 산양 두 마리가 달려 있는 것이다. 솥의 입구 가까이에는 삼각형 문양이 표현되었다(그림 1).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그림 2.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청동솥은 1점 더 있는데, 동체부에 산양장식과 기하학적 문양이 붙어 있고 손잡이에도 산양장식이 달려 있는 것이다. 청동솥 바닥에는 아래에 다리가 붙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전체모양은 그림 1과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출토당시에 이미 부서진 채 확인되었다.

 

슐츠는 무덤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대에 발굴된 바에 따라서 살펴보면 슐츠는 무덤의 크기를 매우 과장되게 설명했다(갈라니나 2006).

 

한편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는 켈레르메스 유적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유적이다. 기억하시겠지만,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방 5호에는 2중으로 나무방이 만들어졌는데, 그 사이에 청동솥 2점이 확인되었다. 청동솥은 나팔상의 다리가 달린 점은 비슷하지만 손잡이의 형태는 차이가 있다.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는 점 등은 유사하다.

 

2020/05/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시베리아의 알타이 투바 공화국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3000~27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 마을에 위치해서 아르잔 유적이라고 부른다. 아르잔-1호와 달리 아르잔-2호는 무덤 구덩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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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8~7세기 청동솥은 동물문양장식이 주요하게 부착되었으나,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진다. 문양의 요소에도 그리스적인 요소가 더 가미된다.

 

그림 3. 라스코파나 모길라 출토, 기원전 4세기

 

기원전 8~7세기의 스키타이 문화에서 시베리아와 흑해에서 모두 청동솥이 확인되지만 아르잔-2 유적 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솥은 동물문양이 부착되면서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지는 차이점이 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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