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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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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18. 12:48 스키타이 동물장식

페레보드치코바는 기원전 5세기에 페르세폴리스 축조를 기점으로 스키타이 동물장식이 각 지역으로 널리 퍼진 것으로 보았다. 이 건물을 축조할 당시에 자국의 장인들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의 장인까지 모아서 건조했을 것이고, 그곳에 나타난 스키타이 문양들도 이런과정에서 그곳에 나타났다. 예를 들면 페르세폴리스의 검집 장식으로 나타난 삼각형의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원래 스키타이 문양 가운데 하나였던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의 변형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추론은 스키타이 문화의 서부지역의 관점에 초점이 들어간 것이다.

 

기원전 5세기 흑해지역의 유적에서는 그간 그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과 다른 동물장식이 발견된다. 이미지는 사자이지만, 그 이미지가 만들고 있는 형상은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기원전 5세기의 재갈멈치는 ∫자형(그림 1-1)이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사자몸이 ‘탈구’된 것처럼 표현되었다고 한다. 정확하게 사자 몸이 표현된 것은 아니고 몸을 쭉 늘린듯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케르치 해협에서 발견된 것이 있는데, 그곳에는 그리스 장인이 작업하던 공방이 있었던 곳이다(이 유물의 그림은 좋은 그림을 구하면 올려놓겠다. 일린스카야는 그리스 공방에서 몸을 늘린 사자모양 재갈멈치를 제작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미 브라트노예 유적(그림 1-1)에서도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맹수 장식 가운데 다리를 뻗고 머리를 들고 있는 동물형상과 다리를 구부리고 있지만 머리를 들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흑해지역 가운데서도 케르치 해협과 가까운 심페로폴 지역의 졸로토이 쿠르간에서 출토된 것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그림 1. 흑해지역에서 발견된 기원전 5세기 재갈멈치, 사자, 1

 

그림 2. 졸로토이 쿠르간 출토 사자

 

그림 3. 투줄린스키 네크로폴출토품

 

 

일린스카야는 기원전 5세기에 흑해지역에서 나타나는 사자머리는 그 시절 그리스의 영향이 아니라, 기원전 7세기 유물 가운데 이오니아 양식이나 우라르트 양식을 재해석 하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했으며, 이란 지역과는 관계 없다고 보았다(일린스카야 1971).

 그래서 사자머리를 달고 있는 동물 가운데 몸통이 있는 재갈멈치와 다리를 뻗은 모습은 오히려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그림 4, 5)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페레보드치코바는 이 시점의 몸을 쭉 늘린듯한 ∫자형 재갈멈치(그림 3)는 사자머리 외에도 그리핀의 머리가 달린 유물이 있는데 그리스의 영향으로 보았다. 

 

일린스카야와는 다른 견해이다. 그런데 이 유물도 역시 기원전 7세기에 이미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은제 거울 속의 그리핀과 유사한 것이다. 구지 그리스의 영향이 아닌  기원전 7세기에 이미 있었던 문양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재갈멈치만 두고 보면 두 의견 모두 경청할 필요가 있지만,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대로라면 졸로토이 쿠르간에서 출토된 다리를 뻗고 있는 사자문양이나 스키타이 문화 동부지역의 문화이동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진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의 재갈멈치

 

그림 5. 파지리크 유적의 동물장

 

 

 

맹수장식 등을 살펴보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동과 서의 유물이 함께 뒤섞이는 현상들이 발견되고 있다. 서쪽에서는 페르세폴리스의 건조가 큰 계기가 되었다면 동쪽에서는 스키타이 문화가 서쪽으로 퍼져가는 현상을 일으키게 한 동기가 된 어떤 것이 무엇이 있을까?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

€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7. 12:49 스키타이 동물장식

 

흑해의 스키타이 동물장식에서 이웃한 지역 가운데 그리스의 특징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기원전 5세기 이다. 그럼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 속으로 침투?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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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스설은 파르마콥스키가 처음 제기했고, 이는 기원전 7세기 유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흑해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와 기원전 5세기에는 그리스와 스키타이 문화가 어떤 양상이든지 매우 밀접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주체가 누구인가가 문제이다. 

 이때 흑해 북안의 올리비아라는 도시가 생겨났고, 케르치 해협에는 보스퍼러스 왕국도 있었다. 올리비아는 그리스 식민도시로 알려졌고 보스퍼러스 왕국은 여러 설이 있지만, 어찌 되었던 그리스의 영향력이 있는 국가라고 알려졌다. 올리비아에는 그리스인이 물건을 제작하는 공방이 있었고, 그 뒤에 보스퍼르스 왕국의 수도인 파니키움에서 올리비아의 역할을 물려 받았다고 알려졌다.

 

2020/08/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침발카유적에서 출토된 마면장식에 여신이 표현되어 있다. 양손에 그리핀 머리를 움켜잡고 있는데, 몸통은 뱀의 형상이다. 유물은 그리스에서 제작되었으나, 스키타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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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흑해북안의 도시인 올리비아 혹은 케르치 해협의 보스퍼러스 국의 공방에서 제작된 유물로 생각되는 유물이 슈메이코 유적(그림 1-1)과 토마코프스키 고분(그림 1-2)에서 출토되었다. 나온 유물 가운데 검집 장식에 두 마리 맹수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발끝에는 발톱이 있고, 콧 구멍과 입은 서로 연결되어 타원형처럼 보이고, 주둥이는 길며, 꼬리 끝은 새의 머리모양이다.

두 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장면은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 끝, 은제 거울의 사자 2마리 등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림 1.기원전 5세기 유물의 검 손잡이에 나타난 맹수(1-슈메이코 유적, 2-토마코프스키 유적)

 

올리비아에서 발견된 십자형 장식판의 중앙 원에는 몸을 말고 있는 동물장식이 있고 끝에는 세 마리 독수리 머리가 부착되었다. 두 동물장식은 어딘가 익숙한 모습인데, 기원전 7세기의 유물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앙 원의 몸을 말고 있는 맹수 장식은 원형과는 다르다. 독수리 머리는 간두령의 장식으로 표현된 적이 있다. 비슷하게 생긴 청동판이 오피실랸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네모꼴 막대 부분에는 다리를 내린 맹수 4마리가 수직으로 그려져 있고, 원 안에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와 초식동물이 함께 그려져 있다.

가브릴로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거울 손잡이에는 맹수장식이 연속으로 표현되었고 끝에는 초본류가 표현되었다. 팔메트 문양이라고 불리는 이 장식은 그리스의 유물에서 자주 목격된다.

 

그림 2. 기원전 5세기 초의 그리스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청동 유물 1-오피쉬랸카 유적, 2-순투크 고분 출토, 3-가블릴로프카 유적 출토, 4-바소프카 유적의 482호 무덤, 5-올리비아의 청동장식판

 

위에서 보여드린 유물은 기원전 5세기 유물로 그리스 장인이 200~300년 전 스키타이 유물의 모티브를 리뉴얼 한 것이다. 스키타이인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스키타이 모티브를 다시 가져와서 제작했으나 원래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말 그리스 공방에서 제작된 유물에는 동물의 몸통의 스키타이 특징은 사라지고 그림 구성 및 자세만 약간씩 변형되어 결합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그리스 장인들의 목적은 동물의 이미지를 재현한다기 보다는 보이기 위한 디자인과 이를 활용해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장식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 장인이 초기 스키타이 유물에서 모티브를 채용해서 다시 재작업한 기간은 기원전 5세기 초부터 5세기 중반까지 그리 길지 않았다(일린스카야 1971).

스키타이 문화가 대체적으로 기원전 9세기부터 시작되어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산된 것은 기원전 7세기이고, 이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기원전 4~3세기로,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그 안에서도 복고풍?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럼 그리스 장인들은 왜 스키타이 인들의 모티브를 재사용해서 여러 물건을 만들었을까?

일린스카야(1971)는 ‘스키타이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다’는 표현을 썼다. 즉 수요자가 스키타이 인이었기 때문이다.

유물에 남아 있는 그리스적인 요소는 그리스 인들이 유물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요소도 남겨지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키타이 유물에 그리스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해서 이를 그리스 문화의 대단함?으로만 연결시킨다면 너무 단세포적인 생각이다.

 

 

참고문헌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6. 13:12 스키타이 동물장식

호랑이를 포함한 맹수모양장식은 몇 가지 자세로 구분되는데 아시다시피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가장 먼저 확인된다.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서 그렇다.

 

아르잔-1호의 연대는 기원전 9세기 중반이고, 이 유물이 흑해부터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남부의 미누신스크 분지까지 퍼지는 것은 흑해, 중앙아시아에는 기원전 7세기, 미누신스크 분지에는 기원전 6세기에 발견된다. 기원전 7세기에는 원형 맹수장식 뿐만 아니라 몸을 펴고 있는 맹수장식도 여러 지역에서 나온다.

 

흑해 지역의 기원전 7세기 유물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거울 끝장식(그림 1-3), 금제 패식의 표범장식의 발끝 장식(그림 1-5), 켈레르메스 유적의 골제 굴레장식(그림 1-4)이다. 테미르 고라 유적의 뼈제품(그림 1-1), 다레프카 유적의 손잡이 끝 장식(그림 1-6)이다. 고대 이란 지역의 지비예 유적에서도 (그림 1-7) 나왔다.

 

그림 1. 흑해와 중앙아시아의 원형맹수장식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서부의 마이에미르 유적(알타이와 가까운 지역)에서는 10개의 금판에 맹수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1-8). 우이가락 유적에서도 청동판에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1-12,13). 이 유물은 칠릭타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과 크기는 다르지만 비슷 모습이다(그림 1-9,10). 이들 유물 때문에 표트르 1세의 원형 맹수장식도 카자흐스탄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아르타모노프 19, 루덴코 1962, 일린스카야 1971). 이들 유적은 카자흐스탄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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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이에미르 유적은 알타이와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국한할 필요가 없다. 알타이에서 원형의 맹수장식이 기원전 7세기에 존재했다고도 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 유물은 아르잔-1호 유물과 비교해 볼 때 목과 어깨 부위의 견갑부가 돌출되게 표현되었다는 점과 반대면을 강하게 눌러서 앞 면이 좀 더 튀어나오도록 제작되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점은 흑해 지역의 유물과도 구분이 된다.  또 흑해지역의 유물에는 지비예 유물의 특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유물은 지비예의 제작공인이 스키타이 유물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르잔-1호의 북쪽에 위치한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대표적인 유적: 살브익 고분)에서도 원형 맹수장식이 발견된다. 청동곳의 상단 혹은 청동고리의 상판에 만들어진 것이다. 귀의 모양은 반원형이고 입모양이 길다. 타가르 문화에서는 청동판의 칼집에 새겨진 문양 가운데 다리를 내리고 있는 표범장식이 있는데 원형 장식의 눈, 코, 입과 비슷하다.

 

그림 2. 미누신스크 분지 타가르 문화의 원형 맹수장식

 

알타이에서는 기원전 6세기에 투엑타 유적에서 몸을 비틀고 머리와 꼬리가 붙은 호랑이 장식이 발견되었다. 원형의 맹수장식이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 문화의 전지역에서 발견되고, 기원전 6세기에는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문헌

С.И. Руденко.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САИ. д.3-9. 1962, табл. VI, 1, текст, стр. 31.(루덴코 19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

€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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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5. 12:51 스키타이 동물장식

 

아르잔-1호에서 처음 보이는 원형맹수장식은 가장 널리 오랫동안 사용된다. 삼각형 구도를 이루는 것은 기원전 5세기 페르세폴리스의 궁전에 검집 끝에서 발견되었다. 비슷한 유물은 이집트, 시리아, 박트리아 등지에서도 다양한 재질로 발견된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런데 아르잔-1호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알타이의 투엑타 유적(기원전 6세기)에서는 호랑이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것이 발견되었다. 호랑이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유물은 S자형으로 변화된다. 물론 두 유물은 평면과 입체 이기 때문에 느낌이 다르다. 그러나 호랑이의 귀, 입, 눈은 변형 없이 날개만 부착되었다. 날개만 빼면 가장 사실적이다. 이 유물은 원형의 모티브 보다는 배제되고 호랑이라는 주제가 초점에 맞추어 진 것이다.

 

그림 1. 투엑타 유적의 날개 달린 호랑이

 

그런데 같은 유적에서 발견된 호랑이머리와 독수리머리가 합체된 굴레장식(그림 2)에는 호랑이의 귀 끝은 뾰족하다. 날개 달린 호랑이의 얼굴과는 차이가 있다.

딱딱하게 설명하지 않고 느낀 대로 설명한다면 이 동물의 얼굴은 대단히 희화되었는데, 처음에 봤을 때 웃는 느낌이었다. 필자가 생각할 때 이 동물은 호랑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애매하다(그림 2).  단순히 호랑이 얼굴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유물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출토, 맹수장식

 

몸을 말고 있는 원형 맹수장식의 변화는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 유적의 유물에서도 확인된다. 호랑이가 몸을 비틀어서 머리와 꼬리를 말고 있는 장식이다. 이 유물은 주둥이가 길어지고 귀의 모양도 삼각형에 가깝다. 호랑이라기 보다는 늑대에 가깝다(그림 4).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출토, 맹수 장식.

 

 

그림 4. 늑대장식

 

동물장식 가운데 귀가 뾰족한 것은 독수리 머리그리핀에 달린 귀에서 먼저 관찰된다. 기원전 6세기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유적의 독수리 머리 그리핀에서 있다(그림 4).

 

2021/01/10 - [스키타이 동물장식] - 알타이의 그리핀

 

알타이의 그리핀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알타이의 지역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에서 현재까지 가장 이르다고 알려진 기원전 6세기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유적에는 독수리와 호랑이를 변형시킨 그리핀이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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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투엑타 유적 출토 그리핀, 말의 이마 장식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은 S자형으로 호랑이에게 날개가 변화되는 것, 몸을 비틀어서 원형을 이루는 형태로 모습을 바뀌게 된다. 후자는 호랑이라기 보다는 늑대에 가깝다. 

 

왜 동물을 변형시켰을까? 

 

 

참고문헌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4. 12:16 스키타이 동물장식

 

알타이에서 19세기(1865년)에 발견된 스키타이 시기(파지리크 문화)의 대형 고분 중에 하나이다. 유적은 현재 마을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카툰 강의 상류와 하류 강사이의 왼쪽 단구대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매우 우연하게 발견되었는데, 강둑 위에 설치된 19세기 말에 판 군대의 참호 때문에 무덤 구덩이가 우연히 드러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이미 말의 매장부분은 파손되었다.

19세기 말에는 라즈돌로프가 발굴했고, 100년 뒤에는 가브릴로바가 새롭게 발굴했는데, 라즈돌로프가 발굴한 스키타이 시기가 아닌 그 뒷 시기(투르크 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2020년에는 노보시베리스크 고고학연구소가 발굴해서 청동기시대(아파나시에보 문화,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의 무덤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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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탄타 유적에는 많은 고분이 있었다고 알려졌는데 매우 도굴이 심했다. 라즈돌로프는 그 중에서 가장 큰 무덤인 높이 2.1m, 지름 40m의 무덤을 발굴했다(2호). 그 안에는 이중 천장이 있는 나무방이 발견되었다. 나무 방은 통나무 7~9개를 천장으로 쌓아 올린 형태였다. 나무 방 안에서는 관이 2개 발견되었다. 통나무가 8000개 정도 사용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림 1. 카탄다 유적의 1호(1~3), 2호(4~9) 무덤 발굴

 

이미 도굴이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유물이 잘 남아 있지 않았나. 모피코트가 잘 알려져 있다.

허리와 소매는 녹색, 노란색 및 갈색으로 염색된 모피이다. 모피에 달았던 아플리케는 비늘 모양으로 금판을 이어 붙인 것이다(그림 1). 금박은 3000여개가 붙어 있었다. 또 한 점이 알려져 있는데, 꼬리가 붙은 형태이다.

 

그림 2. 카탄다 유적의 모피코트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어제 보여드린 호랑이가 사슴의 목을 잡는 장면이 새겨진 나무장식과 함께 발견된 목제 동물장식이다. 여기에는 두 마리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곰과 함께 신화적 동물이 그려져 있다고 라즈돌로프는 평가했다. 다리는 초식동물의 발굽이고, 새의 머리는 뿔로 장식된 그리핀이며, 몸통은 호랑이인 동물이 곰의 머리를 한 동물과 함께 엉켜 있는 장면이다(그림 3-2). 몸통을 표현하고 있지만 머리가 중점이 된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부분이 많은 동물장식이다. 곰이라고 본 동물은 가장 중간에 큰 머리가 있는 동물이다. 이 유물은 반구형이다(그림 4).

 

이 유적은 파지리크 유적과 같은 시기로 보고 있다. 

 

그림 3. 카탄타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장식. 목제품.

 

 

 

그림 4. 카탄다 유적의 유물, 반구형의 동물장식은 그림 3-2와 동일유물

 

참고문헌

Радлов В. В. Из Сибири: Страницы дневника. М.: Наука. 1989.— 749 с.;(라드롤로프 1989, 시베리아에서, 야장(일기장)의 한 장면)

https://smotrim.ru/article/246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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