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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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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과학'아카데미일까?

필자에겐 별로 이상하지 않지만, 번역된 글로보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이상할 것이다.

역사학박사라면서, 왠 과학아카데미?

 

과학은 ‘наук’ .. science로 번역된다.

우리는 인문학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인문과학이다.

인문학과 예술의 아리송한 경계를 구분한 것인데

자연과학,물리과학,인문과학 등등

 

러시아 인문과학은 매우 논리적이다.

나도 스스로를 논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잘 맞다.

이런 건 사전지식에 없었는데,,,,

그냥 운이 좋았다라는 표현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강한 이끌림과 목적이었다.

 

김 재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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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까지 극동고고학 발굴은 해안가 조사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괄목할 만한 신진 연구자 가랄드 이바노비치 안드례예프(1926~1970)였다. 그는 위대한 고고학자 키셀료프의 제자로, 모스크바 대학 고고학 학교를 졸업하였다(그림 13).


그림 13. 안드레예프

 하지만 그의 운명은 비극적이었다. 그는 연해주 고고학과 시베리아 고고학을 연결하려고 했지만,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서 완성시키지는 못했다. 그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극동고고학자들이 안타까워한다. 그는 연해주의 선사시대를 주로 연구하였지만 새로운 성곽을 발견하기도 하였고, 기존의 알려진 성곽도 재조사도 하였다. 소콜치 마을의 서쪽에 있는 성벽, 체르노루치야 마을에서 아래로 4km 떨어진 곳에 있는 성벽, 바튜킨 성벽, 키시네프카, 라조프카, 브루실로프카, 크라스키노 등을 조사하였다.
  오클라드니코프의 발굴대와 동시기에 안드레예바(역자 주. 안드레예프의 아내)는 연해주의 여러 유적을 조사하였다. 1961년에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그녀는 블라디보스톡에 위치한 소련 과학원 시베리아분소 역사분소(역자 주. 러시아과학원 극동분소 고고역사민속학연구소)로 왔다. 그 뒤 몇 번의 여름 발굴을 마치고 그녀는 연해주 남부와 동부의 지표조사를 사게 되었는데, 다층위 유적들을 많이 찾았다. 그 중에서는 제르칼나야 마을에서 조금 올라가면 있는 성벽과 카미쇼브이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있는 성벽, 우수리 강의 좌안에 있는 이즈비린카 마을에서 하류 쪽에 있는 성벽, 브레프카 상류 마을에서 아래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있는 곳, 사마르카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있는 성벽, 플라호트뉴킨스카 성지 등도 조사하였다.  
 1960년대 말 가르코빅은 그녀의 스승인 안드레예프와 안드레예바와 함께 크라스노아르메이스키 지구의 두브로프카 마을에 있는 성지를 조사하였다.
 196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는 빅탈리이 드미트레비치 레니코프(1938~1995)는 아주 열정적으로 유적을 조사하였다(그림 14). 일찍이 안드레예프는 라조프카 지구와 키시네프카 지구의 성지를 발견하고, 이를 조사해서 유적의 절대연대와 문화적 특징들을 밝혔다. 레니코프도 프라호트뉴킨스카, 예카테리노프카, 스탈리스트카 성지 등을 조사했는데, 특히 중세고고학의 금속유물을 전공하던 유일한 전문가였다.

그림 14. 비탈리 드미트례비치 레니코프


 1970년대 초반 세메니첸코는 그의 스승 샤프쿠노프와 함께 발해의 유적들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노보고르데예프카 성지가 다층위유적임을 밝혔고 스타로레첸노프카 성곽들을 조사하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볼딘과 이블리예프는 크라스키노 발해성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노보고르데예프카 성지, 니콜라예프카-1,2, 미하일로프카 지구의 성지 등 다층위 유적을 발굴하였는데, 유적에서 리도프카 문화, 말갈문화, 발해문화와 연해주 여진 문화 등을 구분하였다 .
 여진의 고고학적 연구에 있어서 호레프 연구도 빼 놓을 수 없다. 크라스노야르 성지와 아나나예프카 성지를 발굴 조사하였고 동료들과 함께 라조프카, 올가, 미하일로프카, 옥캬브르스키 지구의 크라프쵸프카, 구시예프카, 비소코예, 스테클뉴하-2 성지들을 연구하였다.
 1973년부터 연해주 북동지역의 연구는 1972년 노보시베르스크 국립대학을 졸업한 댜코프와 댜코바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973년 달네고르스키 지구와 테르네이스키 지구의 많은 성지들을 조사하였는데, 그 대상은 체렘샤니, 클류치 성지, 쿠날레이스코예, 드지기토프카, 모노마호프카 성지 등이고, 또한 고금속기시대 층도 확인되는 케드로프카 토성도 포함된다. 그 이듬해 암구 마을 부근의 소프카 류브비 성곽을 조사하였다. 그 성지에서는 아래층은 고금속기시대의 리도프카 문화, 그 상층에서는 연해주의 여진시대 문화가 확인되었다. 또한 쿠댜 성지에서는 리도프카 문화가 확인되었다. 1990년대 댜코프는 연해주의 서쪽을 조사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 노보러시야, 포그라니치노예-1, 보구슬라프카-1 유적 등 3개의 성지를 조사였다.
 1993년에는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단이 연해주 북동지역의 고대와 중세시대 성지를 연구할 목적으로 구성되었다. 댜코프와 댜코바는 고금속기시대의 토성 유적인 미스 스타라스느이, 두브로빈스코예, 우툐스노예, 켐스코예-스칼리스토예, 소욘스코예, 우스티-제르칼노예 등 기원전 10세기경의 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말갈의 유적으로 쿠즈네초프스코예, 미스 테플리이, 우스티-소보레프스코예 유적 등이 발견되었다. 발해 유적으로는 에스톤카, 크라스노예 오제로, 드지기토프카, 고르노레첸카-2, 예딘카 유적, 여진 유적으로는 쿠날레이스코예ㅡ 시바이고우, 소프카 류브비,포드네베스노예 유적 등이 있고, 석성 유적으로 자볼레첸나야, 시미르코프 클류치, 바시노프카, 클류치 석성 등이 있다. 자볼레첸나야 강의 석성 등도 발견하게 된다.
 이블리예프는 마이카 성지를 3년 여름동안 발굴 한 뒤에 그 성이 거란성으로 여진 보다 늦은 것으로 판단하였고, 노보셀리세 성지는 말갈문화의 것으로 보았다.
 1980년에는 시란티예프가 바실리프카, 베레조프카, 사도브이 클류치 성지와 시로코예 계곡위의 성벽 등을 조사하였고 평면도를 작성하였고, 그 중에 사도브이 클류치 성지는 발해의 성 유적으로 판단하였다.
 1983년과 1986년에는 샤프쿠노프가 연해주 성곽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갈락티오노프와 함께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그 조사단에는 평면도를 전문적으로 작성하는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었고, 많은 성지의 평면도를 작성해서, 후대를 위해서 남겨두려고 했지만 그 때 작성된 것들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갈락티오노프는 아누치노 성지, 아우로프카 성지, 오르로프카 성지, 루다노프카 성지, 스토고프카 성지, 티그로프카 성지, 로반노프카-1,2 성지, 고르노레첸노프카-2 성지, 베뉴코보 성지, 마리야노프카 성지, 크리로프카 성지, 유르코프카 성지, 사로프카 성지, 타보로프카 성지, 바튜킨 성지, 키신네프카 성지, 니콜라예프카-1,2 성지, 오트라인카 성지. 쿠날레이카 성지, 드지긴노토프카 성지, 콕샤로프카 성지, 사라토프카 성지, 두보바야 소프카 성지, 이지베스토프카 성지, 노보네진노프카 성지, 스몰니노프카 성지 등을 새롭게 조사하였다.
 1970~1990년대에는 타타르니코프에 의해서 아주 많은 성곽들이 새로이 발견되고 연구되었다. 1984년에 테르네이 지구의 북쪽을 답사하던 가운데 아르세네프는 예딘카, 쿠즈네쵸프카, 우스티-소볼레프카, 테프로예, 부릴로프카, 오아시스 성곽들을 발견했다. 1998년에는 제르칼나야 강 유역의 대형 성 유적인 시바이고우 성곽을 발견하고, 이 유적은 뒤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다.
 향토사학자 크바신은 연해주 성곽 연구도 업적을 남겼다. 아르세네프의 기행로를 따라서 가족과 함께 답사하였다. 그는 연해주의 이미 알려진 고고학 유적들을 돌아보고 많은 성지의 평면도를 육안으로 관찰한 결과로 작성하고, 지표에서 유물들을 모았다. 그는 우스티-벨림베, 켐스코예-스칼리스트카, 셀셀레프카, 소욘노프카 , 우스티-페야 성곽들의 평면도를 작성하고, 새로운 취락도 몇 개 확인하였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니키틴은 여러 지역에서 성곽을 조사하였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분소 역사`고고학`민속학 연구소 중세시대 고고학전공실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조사하였는데, 그 중에는 청동기시대의 체르냐치노-3, 중세시대 성지인 콘스탄틴노프카-2, 다층위 유적인 노보-게오르기예프카-3, 오크라인카-2, 파브로프카-1,3, 추구예프카, 고르노레체노프카-1,3 유적들을 조사하였다. 파르티잔 지구의 니콜라예프카 다층위 유적도 여러 해 동안 조사하였는데, 철기시대인 크로우노프카 문화와 올가-폴체 문화 및 여진 문화층 등이 알려졌다.
 1980년대에는 극동대학교의 알렉산드로프가 시코토프카와 스테클뉴하 강가의 유적인 스테클뉴하-1성지, 스테늘뉴하-2~4 성지, 시로타 언덕의 성지 등을 여러 해 조사하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아르데미예바가 성지 발굴조사를 아주 활발하게 하였다. 그녀는 오클라드니코프 이후에 크라스노야르 성지와 샤프쿠노프의 뒤를 따라서 샤이긴카 성지와 니콜라예프카 성지를 39년 동안 조사하였다.
 1995년부터 사크마로프는 연해주의 중세시대 성지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표드로프카 성지를 새롭게 발견하고 카파로프 이후에 처음으로 라즈돌라나야 강(수분하)에 남아 있는 여러 성벽들을 조사하였다.
 1994년에 바실레프가 이전에 오클라드니코프가 고르니 후토르 유적을 35년 동안 발굴했다. 이 유적의 총 면적 3000㎡를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이 성은 여진시기로 판단되었다. 1998년부터는 레니코프가 조사한 적 있는 동하국의 성으로 알려진 예카테리노프카 성곽 유적을 발굴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극동대학교의 고고학 발굴대에 의해서 아주 흥미로운 연해주의 성지 연구가 많이 알려졌는데, 그 중에 하나가 레소자보드 지구의 라조프카 성지이다. 이 탐험대는 주로 우수리 강 중류의 크라스니이 클류치 성지, 크릴로프카 성지, 카리노프카 성지 등을 조사하였다. 각 성지들이 고금속기시대-철기시대-중세시대 등 여러 시기에 걸쳐서 축조된 것을 알았고, 교통망과 관련되었다고 밝혔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극동분소 역사`고고학`민속학 연구소의 발굴대는 라즈돌나야 강 중류의 유적에는 성이 있는 마을과 없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1990년대 말 나다로프와 아르세네프, 메젠제프, 크라딘, 니키틴은 다시 노보포크로프카-2 성지를 발굴하고 동하국의 북쪽 성지로 보았다. 1996년에 크라딘은 크라스노아르미 지구에서 카메누시카-1, 베르흐니이 페레발 5~7 등 여러 시대의 유적을 조사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샤프쿠노프(B.Э.)(역자 주. 앞서 설명한 상트 페제르부르그 출신의 샤프쿠노프(Э.В,)의 아들)가 10~12세기의 스몰린카, 아우로프카 성지 등을 여러 해 동안 발굴하고 므시 막시모바, 이즈베스토프카, 사라토프카-1,2 유적 등을 지표 조사하였다.

 연해주 성곽 유적들이 거의 150년간 조사되었는데, 1950년대 중반 부터는 오클라드니코프가 책임을 맏은 고고학 발굴대의 연구를 시작으로 전문가에 의해서 이루어진 시기이다. 그 때 고고학유적이 학문적 목적으로 연구되는 기관이 있던 곳은 전 러시아에서 노보시비르스크,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톡 뿐 이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 연해주 전체에 산포해 있는 성지들의 위치 및, 그 유적의 입지, 문화적 특징 혹은 고대 국가의 소속이나 연대 등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편년문제 혹은 교통망 뿐 만 아니라 성곽을 유형화 시킬 만큼 많은 유적 조사가 이루어졌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후세대 들이 연구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1955년 레닌그라드 대학교(역자 주. 현재 상트페테르부르그 대학)의 동방학과를 졸업 후에 오클라드니코프 밑에서 고고학을 연구하고자 한 학자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예.붸.샤프쿠노프로 후에 발해사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연구를 위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왔는데, 소련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분소의 극동지부의 역사연구실에서 연구를 시작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 후에 자신의 제자들이 된 극동대학교의 역사학과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림 12. 에른스트 블라비미로비치 샤프쿠노프 . 샤프쿠노프의 저작은 한국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이 젊은 역사학자는 특히 발해와 여진의 유적들에 관심을 많이 기우렸는데, 샤이긴스코예 성지를 30년 동안 연구하였다. 이 성지는 나중에 연해주 여진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특히 동하국(1217~1234) 연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유적이다. 부세, 표드로프, 오클라드니코프 등의 연구결과를 따라서 샤프쿠노프는 우수리스크 지역의 성지를 계속해서 조사했었다. 특히 1960~70년대 그와 함께 이러한 성지를 조사한 제자들-레니코프,베.데., 세메니첸코, 엘.예., 호레프 붸. 아., 볼딘, 붸.,갈락티오노프, 오.세. 등은 연해주 성지 연구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들이 조사한 성지는 노보고르데예프카, 오를로프카, 스토고프카, 시클라예프카, 마리야노프카, 유르코프스카, 노보파크로프카-2, 라조프카, 예카테리노프카, 니콜라예프카, 마이스카, 크라스킨노, 콕샤노프카-1,3, 프라호트뉴킨스카, 두보바야 소프카, 노보네진스카, 스몰린노프카, 스테클뉴하-1 등인데, 이 유적들은 여진 고고학연구에 초석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연히 지식인을 보다가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중고등학생의 질문이 많았다.

예전 내 생각이 나서 글을 쓰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고고학전공이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해야 한다.
고고학은 역사학과는 달리 유물과 유적을 대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임으로 사학과는 다르다. 물론 사학과내에 고고학 전공을 하고 고고학 수업도 있는 학교도 있지만, 아무래도 고고학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해야 한다.
대체로 국립대 중 거점을 중심으로 고고학과 혹은 고고00학과 들이 있다. 고고미술사학과, 고고인류학과, 문화인류학과 등. 사립대에도 이런 학과가 있는 학교가 몇 몇이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요건을 고려해서 외국 유학을 해도 된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으로 간다.
미국과 유럽은 고고학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미국은 인류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유럽(일본, 중국 포함)은 문화사 즉 역사학 관점에서 접근한다. 왜 그런가는 미국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학부과정은 한국에서 마치는 경향이 있다. 학부 뿐만 아니라 석사과정도 한국서 마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필자도 그렇다. 다들 돌아와서를 생각하는 것인데,
학생들 모두가 똑같은 방법으로 적용되진 않을 테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국내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는 것이다.



고고학과 혹은 기타 유사학과를 전공하면 모든 학과가 마찬가지지만 자기 전공과 무관하게 취직하는 사람도 있다.
고고학을 전공해서 취업을 바라는 경우는 대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눠진다. 필자가 입학 할때와는 달리 현재 한국에는 문화재 관련한 매장문화재를 발굴하고 보고서작성을 주 업무로 하는 기관이 많이 생겼다. 이곳으로 취업을 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전국에 분포해 있다.
 두 번째는 국공립박물관이나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으로 취업하는 경우다. 학예연구사 라는 시험(공무원)을 쳐야 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엄청나다. 두 번째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석사이상으로 조건을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대학원에서 졸업논문을 쓰고 석사과정을 마쳐야 한다. 첫 번 째 보다는 전공공부에 투자 하는 시간이 많다. 첫 번째 경우에도 대게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원 석사과정 정도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 박물관에서는 주로 전시나 사회교육, 연구 등의 업무를 많이 하게 되고, 문화재연구소는 주로 학술발굴을 담당한다.
  극소수이지만 박사과정까지 진학해서 계속 연구를 하며, 대학에서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고고학자는 발굴하면서 연구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두 경우다 고고학자라고 할 수 있지만 자기 적성에 무엇이 더 적당한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아쉽게도 사회적으로 알려진 고고학자가 많지 않아서 롤모델을 말하기는 어렵다.(필자도 어릴 때 꿈을 정하게 된 계기가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나서니깐...ㅋㅋㅋ 하지만 영화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그래도 요즘은 간혹 박물관에서 특별전이나 전시를 통해 ‘큐레이터와의 대화’라는 주제로 교육이 열리기도 하고, 매장전문기관에서 사회교육 일환으로 ‘발굴’관련한 주제로 행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각종 기관의 사이트를 기웃하는 것도 방법이다. 모든 기관은 사이트를 운영하고 홍보한다.


고고학은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어서 역사학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 대상이 사료(역사책)가 아니라 유물과 유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 점에서 여러 분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림 1. 스키타이 문화의 나무 관


그림 2. 스키타이 문화의 나무 관 2


그림 3. 스키타이 문화의 여성미라


그림 4. 스키타이 문화의 말장식품(나무 위에 금박종이를 씌운것)


그림 5. 스키타이 문화의 말 안장 장식


그림 6. 스키타이 문화의 말 장식 중 일부. 그리핀. 목제+금박


그림 7.후기구석기시대 말타 유적의 비너스(앞서 스키타이 문화와 같이 유물이 아주 많은 시기도 발굴하고 연구할 수 있고, 구석기시대와 같이 돌과 뼈만 나오는 시대도 발굴 및 연구할 수 있다)

 

그림 8. 보즈네세노프카 문화의 토기(신석기시대에는 유물이 대부분 토기, 석기, 골기 등이다. 화려한 있는 유물이 있는 시기이든,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시기도 있지만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연구하기 나름이지 않을 까.... 필자가 찍은 사진이 한국유물 사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러시아에서 유학 할 당시의 사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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