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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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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원전 5~3세기 울란곰 유적에서는 9명까지 매장된 무덤이 발견되었다. 유적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들어간 무덤으로 부장품도 다른 유적에 비해서 풍부하다. 토기 9점 외에도 동물장식이 있는 거울, 무릎을 굽히고 있는 굽동물, 낙타가 있는 동물 장식 등이 출토되었다. 동물장식은 아니지만 나뭇잎 혹은 풀 잎이 4개 돌아가는 장신구도 나왔다(그림 1).

 그런데 이 유물은 금속만 남아 있으나 잎모양 안에는 돌이나 보석류를 끼워서 제작되었을 수 있다. 소형의 금속제품에 다른 재질을 끼워넣는 방법은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유물로 보아서 널리 유행했던 제작기법이다.

 

그림 1. 울란곰 유적 47호 출토 풀잎 모양 장신구

 

그런데 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를 닮은 금속제 이미테이션이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에서 발견된 바 있다. 목이 긴 항아리 모양(그림 2-11, 53,54), 손잡이가 한쪽에 달린 목기(그림 2-21)가 발견되었다.

 

손잡이가 한쪽에 달린 목기를 연상케 하는 유물은 필자가 이미 소개한 바 있고 새로운 정보는 아니다. 목이 긴 토기를 연상케 하는 유물 중 외형상으로 가까운 것은 그림 2-53.55이다. 금제품의 목이 길고 곧기 때문이다. 울란곰 유적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에서 발견되는 항아리(쿱신)을 형상화 했다. 손잡이처럼 보이는(그림 2-55) 부분은 어딘가에 달기 위해서 만든 고리 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금속제품의 동체부를 비교하는 것이 더 유효하다. 토기는 아니지만 아르잔-2호에서는 청동솥을 닮은 모형이 출토된 바 있어서 같은 의미 혹은 용도로 토기 모형을 만들었을 수 있다.

 

그림 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표트르 1세가 모은 황금 유물이 시베리아에서 가져간 것이기 때문에 도굴된 어떤 무덤 중에 한 곳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투바의 아르잔-2호가 발굴되기 전에는 그림 2에서 보이는 누금기법(작은 구슬을 덧붙이는 방법)은 시베리아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생겼다. 또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실제 청동솥은 무덤방 바깥에서 나왔고, 솥의 모형은 남성과 여성 인골 사이에서 위치했다.

수많은 유물 가운데서 금속 모형제품을 만드는 것은 토기, 목기, 청동솥 등 스키타이시대 그릇이 단순한 음식기의 용도이지 않고 어떤 특수한 의미 일 수 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Barbara Armbruster 2009 Gold technology of the ancient Scythians –gold from the kurgan Arzhan 2, Tuva, Archeo Sciences, 33, 2009, p. 187-193

Nowgorodowa E. 1980 : Alte Kunst der Mongolei. Leipzig: E.A. Seemann Verlag. 1980. 280 s.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몽골 울란곰 유적에서는 스키타이시대의 무덤이 수십기 발견되었다. 나무로 무덤과 돌로 만든 무덤이 있다. 인접한 알타이 추야강 계곡의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에서는 대부분 단인장 혹은 다인장이라고 해도 2인정도였지만, 몽골 무덤에서는 최대 9명이 한 무덤에 들어간 것이 발견되었다. 출토유물은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과는 비슷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해 보인다.

 

울란곰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가운데 청동거울은 보는 면이 아닌 뒷면에 음각으로 그림 그려진 것이 발견되었다. 이는 유스티드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과 유사한 방법으로 그려진 것이다(그림 1-오른쪽)

 

 

그림 1. 울란드리크 유적(왼쪽)과 유스티드 유적의 청동거울(오른쪽), 어제 포스팅에서 보여 드렸던 그림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알타이 문명전(국립중앙박물관 1995)를 참고로 한 것인데, 그 도록은 캡션이 잘못 된 것이 많다. 그래서 어제 필자가 그림 설명에 물음표를 달아 놓은 것이다.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거울은 손잡이만 아래에 달리고 문양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뒷면에 그림이 있거나 손잡이에 장식이 달린 경우가 있다. 그림 1의 예가 그런 유물이다. 왼쪽의 청동거울은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2020.10.1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 알타이의 고대 도로와 유적

 

알타이의 고대 도로와 유적

 알타이에서 유스티드 계곡에 위치한 유적은 유스티드 강과 인접한 산이 만든 곳에 위치한다. 이 강은 추야강의 지류이다. 추야강은 알타이를 북서와 동남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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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분 출토유물

 

무덤배치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투부 옆의 목제 장식아래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포스팅 참고). 쿠바레프는 이 유물에 달린 동물을 멧돼지라고 했다(쿠바레프 1987). 필자도 선명한 사진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나쳤다. 그런데 그림 1을 보면 멧돼지라고 할 수 없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멧돼지 문양은 울란드리크 유적보다 앞선 아르잔-2호나 바샤다르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다. 입주둥이가 길고 귀의 끝이 뾰족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실제 멧돼지는 청동거울의 동물처럼 꼬리가 짧지 않다.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분 청동거울은 오히려 곰에 가깝다. 필리포프카 유적과 솔로하 유적 등지에서 발견되는 곰의 형상(그림 3, 그림 4)과 유사하다. 실제 곰보다 훨씬 동체부를 얇게 만들어진 이유는 청동거울의 손잡이로써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기 때문이다.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목제 그릇 장식, 기원전 4세기?

 

그림 4. 솔로하유적의 곰 모양의 손잡이와 금판, 기원전 5세기

 

이 유적에서는 청동단검에 그리핀(그림 6)이 장식된 것도 발견되었는데, 알타이의 유적에서 몇 점출토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무덤에서는 모자장식의 일부로 생각되는 목판(그림 2-14) 유물도 출토되었다. 비슷한 예가 울란드리크 XII유적에도 있는데, 쿠바레프는 남성의 모자장식으로 생각했다. 파지리크 유적의 2호분에서도 모자장식(그림 5-1)으로 나무판이 발견된 바 있는데, 유스티드 III유적 1호분(그림 2-14)유물도 같은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았다.

 

그림 5. 파지리크 유적의 남성 모자장식

 

 

그림 6. 울란드리크 III유적 1호분의 청동검

 

울란드리크 III유적 1호분은 다른 무덤에 비해서 동물이 장식된 무기류가 많이 출토되었다...

추야강과 울란곰은 교통로로 연결된 유적이기 때문에 비교검토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Яблонский Л.Т. Новые необыкновенные находки из кургана 1 могильника Филипповка-1//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Том 43 № 2 2015(야블론스키 2015, 필리포프카-1 유적의 1호 무덤에서 찾은 특별한 새로운 유물)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 문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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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에서 세계관을 설명하는 유물로 간두령뿐만 아니라 동물문양이 장식된 검도 포함된다(페레보드치코바, 라에프스키 1981). 수직적 구조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유물이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에서 검은 어느 지역에서나 출토되지만 간두령은 알타이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기원전 7세기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물이다.

2020/12/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스키타이 문화의 전사와 간두령

 

멜레틴스키(1976)에 의하면 스키타이 사람들의 세계관은 수직 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가장 널리 유행한 원형의 맹수장식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 동물장식은 머리와 꼬리가 둥글게 연결되었고 접은 다리 사이를 뚫어서 표현했다. 멜레틴스키는 이러한 표현방법이 어떤 것의 중앙을 감싸고 있는데, 동물의 몸통자체는 가장자리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가장자리는 하계를 의미하는 것이다(멜레틴스키 1976).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장식중에 가장 이른 유물이 원형의 맹수장식이고,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그림 1)에서 시작되었다. 이 유물은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미누신스크 분지, 중국 오르도스에서도 발견되고 청동, 금 등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크기,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사실 표범 혹은 호랑이와 비슷한 것은 시베리아와 그 인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이고 흑해 지역의 것은 주둥이가 튀어나와서 늑대와 가깝다고 여겨진다.

대부분 장신구이겠지만 그 용도는 약간씩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아르잔-1호의 원형 맹수는 단순히 말의 가슴장식으로 생각했지만, 스미르노프는 전차를 몰던 말의 장신구로 생각했던 것처럼, 각 지역의 원형맹수장식은 각기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2020/12/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스키타이 원형 맹수장식의 뒷면

 

시베리아 스키타이 원형 맹수장식의 뒷면

원형맹수장식의 또 다른 사용처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에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기원전 6세기에 나타난다.아시다시피 원형의 맹수장식은 투바의 아르잔-1호 출토품이 최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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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다양한 동물의 種, 금속, 크기) ‘맹수’를 ‘원형’으로 만든 이유를 스키타이 문화연구자들은  유물에 내포된 ‘의미’때문이라고 로 본 것이다. 이것이 스키타이 인들의 세계관 중에 수평적 사고와 관련될 것이다. 또한 기호와 같은 역할이었을 것이라는 페레보드치코바(1994)의 생각에 필자도 동의한다. 스키타이인들은 매우 실용적이었기 때문이다.

 

스키타이 인들이 실용적이었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동물장식이 그냥 장식으로만 단독으로 존재한 것이 드물기 떄문이다. 어딘가의 부속품이었다. 가장 쉬운 예가 재갈멈치에 부착되는 동물장식이다.

드네프르 강 하류의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스타르샤야 마길라 유적에서 발견된 재갈멈치는 골제로 제작된 막대기 형태로 끝에만 동물문양이 부착되었다(그림2). 그러나 기원전 5세기 경에는 재갈멈치가 S자 형으로 변화되면서 동물의 몸통이 뒤틀리게 표현되었다(그림3).

 

그림 2. 스타르샤야 유적의 재갈멈치, 뼈제품(12제외)

 

그림3. 악슈틴츠 유적 1호의 재갈과 재갈멈치(2), 철제품

 

비슷한 현상은 알타이에서도 확인된다.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대부분 재갈멈치의 양쪽 끝에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다. 이때 동물은 전신이 부착되지 않고 머리 등의 부분이 달려 있다. 그런데 파지리크 1호에서 출토된 3번, 4번, 6번 말의 굴레장식에는 사슴, 산양 등 동물의 전신이 부착되었다. 이때 동물은 앞다리를 접고 뒷다리는 뒤로 펴서 ‘하늘을 나는 자세’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되었다. 이는 스키타이 초식동물의 일반적인 자세와는 다르게 변형된 것이다. 동물문양장식이 재갈멈치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즉 매우 장식적인처럼 보이지만 실용적이라는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특징은 알타이에서도 통용된다고 볼 수 있다.

 

2020/04/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서는 한 가족 혹은 친족의 무덤이 함께 만들어진 것이 확인된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과 그 안에는 관을 두고, 무덤방 밖에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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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Ильинская В.А. Скифы днепровского Лесостепного Левобережья. Киев, 1968.(일린스카야 1968, 산림스텦지역의 드레프르 강 좌안의 스키타이 유적)

Мелетинский Е.М. Поэтика мифа. М., 1976(멜레틴스키 1976, 신화의 시학(poetics))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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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맹수장식의 또 다른 사용처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에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기원전 6세기에 나타난다.아시다시피 원형의 맹수장식은 투바의 아르잔-1호 출토품이 최초의 것이다.

그랴즈노프는 이 유물이 말의 가슴을 했던 장식판으로 보았다(그림 1-67).

 그런데 이 유물의 용도를 달리 생각하는 연구(스미로노프 2012)를 찾았다.

 

아르잔-1호 원형맹수장식(그림 2-9)의 뒷면에는 꼭지가 2개 달려 있는데, 구멍의 방향은 위 아래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림 1-67)의 말 가슴장식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는 꼭지의 방향이 옆으로 향하게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원형맹수장식의 꼭지대로 끈을 끼우면 그림 1-67처럼 착장할 수 없고, 마구가 완전히 흩틀어지게 된다. 가슴장식일 수 없다.

 

 

 

 

 

 

 

그림1. 아르잔-1호의 출토품(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그래서 스미로노프(2012)는 골제 멍에(그림 2-8)가 이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을 보고 아르잔-1호의 주인공은 전차를 타고 다닌 것으로 생각했다. 같은 무덤방(2호)에서 출토된 원형 맹수장식도 전차를 끌던 말의 장신구인데, 가슴이 아닌 말의 옆에 달았던 것으로 생각했다. 꼭지의 방향대로 끈을 끼우면 끈의 방향은 위아래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시리아 궁전벽화에서전차를 끄는 말을 장식했던 원형장식이 있다는 사실도 주목했다.

멍에(그림 2-8)는 말의 어깨에 씌워서 뒤의 운반대를 끌게 하는 부분으로 전차부속품 가운데 바퀴만큼 중요한 유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스미로노프는 알타이 유적에는 안장과 안장을 조이는 벨트가 없다는 사실을 밝힌 슐가(2008)의 연구를 참고로 했다. 거의 비슷한 마구세트 구성인 아르잔-1호에서도 마찬가지로 안장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림 2. 아르잔-1호의 전차 관련 유물(1~9)과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나시르팔 II세(10, 10a)의 궁전벽 및 사르곤 II세의 궁전벽(11, 11a) (스미르노프 2012)

 

사실 원형의 맹수장식은 끈을 위아래로 끼우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에 말의 가슴장식이 아닐 수는 있지만 반드시 앗시리아궁전벽화처럼 사용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멍에는 이 유적의 주인공이 전차를 소유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럼 타가르 문화의 원형의 맹수장식이 모두 전차를 몰던 말을 장식한 것일까?

아니다. 아르잔-1호의 유물은 직경 25cm으로 알려진 고리모양 맹수장식 가운데 가장 크다. 하지만 타가르 문화의 원형 맹수장식은 10cm미만이다.

사실 앞에서 타가르 문화의 맹수장식이 맹수로서 불분명하다고 했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매우 작기 때문이다.

또한 어제 몸을 말고 있는 형태 때문에 고양이과 맹수장식이라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동물장식의 주둥이가 너무 길다. 

1점이 아니라 대부분 그런 스타일이어서 디자인의 의도는 주둥이를 길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늑대와 가깝다. 

 

소형 원형의 맹수장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М.: 1992. 49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스키타이-사르마트 시대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역, 소비에크 고고학 시리즈 1992)

СМИРНОВ Н. Ю. На чем ездил аржанский «царь»? // Культуры степной Евразии и их взаимодействиес древними цивилизациями. Материалы международной научной конференции, посвящённой 110-летию со дня рождения выдающегося российского археолога М. П. Грязнова. – СПб., 2012. – Т. 2. – С. 424-431(스미르노프, 2012, 아르잔의 차르는 무엇을 타고 다녔나?)

ШУЛЬГА П. И. Снаряжение верховой лошади и воинские пояса на Алтае. – Ч I. Раннескифское время. –Барнаул, 2008. – 276 с.(슐가 2008, 알타이의 군사용과 승마용말의 마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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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추야 강의 한 지류인 바르부르가지 강에는 28기의 스키타이 무덤이 발견되었다. 쿠바레프는 무덤의 배치로 유적에는 5그룹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아래 표). 그러나 필자는 쿠바레프가 나눈 3그룹 가운데서 14호 아이는 기존의 3그룹에 속한 12호 무덤의 아이와 달리 부장유물이 많아서 3그룹과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14호는 3그룹의 다른 무덤과 달리 연대도 늦은 편이었다. 1그룹과 2그룹에서 아이 무덤이 먼저 배치되고 그 뒤로 남성과 여성 무덤이 배치되는 점으로 보아서 14호 무덤이 15호, 16호와 그룹이 된다면 좀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유적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그룹은 기원전 5세기 무덤이 속한 1그룹, 3그룹, 5그룹이다. 그 외 기원전 4~3세기 무덤이 속한 4그룹과 새로운 그룹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런데 2그룹에는 두향이 바뀐 8호 무덤이 있다. 6호 무덤은 좀 석연치 않다. 쿠바레프의 텍스트 중에는 남향으로 되어 있으나, 도면에는 동향이기 때문이다. 2그룹 가운데 6호는 제외하더라도 유적에서 모든 무덤이 동향인데, 두향을 바꾼 경우는 이 들의 전통과는 다른 무덤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기원전 4세기대에 만들어진 4그룹, 새로운 그룹 보다 더 늦게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쿠바레프는 또 이 유적에는 이른바 ‘노예’무덤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16호 무덤(그림 아래포스팅 참고)과 같이 아무런 유물 없이 사람만 묻은 경우이다. 아마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 무덤은 설명이 되지 않았을꺼라고 생각한다. 같은 그룹에서 특히 어린아이의 무덤(14호)에 조차 그릇과 몇 점의 유물은 넣어두는데 아무것도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무덤 조차’라는 필자의 생각은 잘 못 되었을 수 있다. 가장 귀중한 존재였을 수 있으니깐.

  뒤 쪽에 위치한 성인의 무덤은 독신자 운운 했는데, 그게 아니라 자연사 일수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성인보다는 더 약한 존재여서 죽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아이 무덤만 만들어지지 않고, 성인과 같이 그룹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이상할 수 밖에 없다. 어른이 죽어서 어른아이가 죽은 것인지 어린아이가 죽어서 어른도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현재 살펴본 유적(추야강의 유적)에서 대부분 어른과 함께 그룹이 되어 확인되기 때문이다.

 

 

 한편, 어린아이의 무덤에 유물이 부장되지 못하는 1호와 12호는 이 유적 전체가 유물이 매우 빈약하다는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즉 이 유적 자체가 앞서 살펴본 유스티드 XII유적과는 재산의 정도가 달랐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유적 안에서 어른과 아이가 그룹이 만들어지는 현상에 대한 관점에서 어린아이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해 본 것이다. 이 현상이 여러 유적(유물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에서 관찰되는 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6호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7호

 

그림 3.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8호

 

2020/11/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바르부르가지 강의 유적] - 알타이 어느 스키타이 아이의 부모는?

 

 

무덤호수

성별

필자

쿠바레프

무덤시설

크기

말 매장

상부직경(m)

시설(cm)

첫 번째열

 

1

아이

1그룹

1그룹

통나무관

6

200×50

0

 

5세기

2

나무무덤방

9.6

240×150

1

 

 

3

나무무덤방

8

 

2

 

 

4

석관묘

5.6

150×110

0

 

 

5

나무무덤방

2.7×3.1

160×110

0

 

 

6

아이(동향? 남향?

2그룹

2그룹

나무무덤방

3×4.4

160×100

0

 

 

7

남녀

나무무덤방

8.3×9

180×110

2

 

 

8

여성(서향)

나무무덤방

6.7×7.6

180×110

0

 

 

9

여성

3그룹

3그룹

석관묘

7

140×80

0

 

 

10

여성

나무무덤방

7

160×100

1

 

 

11

남성

나무무덤방

5-6

230×140

0

 

 

12

아이

석관묘

7

160×110

0

 

5세기

13

남성

나무무덤방

7

240×150

1

 

4~3세기

14

아이

새로운 그룹

석관묘

5

120×100

0

 

 

15

남성여성남성

 

나무무덤방

4-6

140×100

1

 

 

16

여성

석관묘

5

130×80

0

 

4~3세기

17

여성

4그룹

4그룹

석관묘

6

160×80

0

 

4~3세기

18

남성

석관묘

5-6

150×90

0

두번째열

4~3세기

21

남성

석관묘

5.7

145×80

0

 

 

22

남성,여성

나무무덤방

6

180×120

2

 

4~3세기

23

남성

석관묘

6

180×110

2

 

 

24

무덤없음

무덤없음

5

없음

 

 

4~3세기

25

남성

석관묘

6

 

1

 

5세기

26

남성

5그룹

5그룹

나무무덤방

9.5

180×120

2

 

 

27

여성

나무무덤방

7.2

170×110

0

 

 

28

여성

나무무덤방

8

200×110

0

 

 

29

여성

나무무덤방

7.2

180×110

2

 

 

30

남성

나무무덤방

10

180×120

1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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