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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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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년 전 시베리아 투바에는 직경 120m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지 않고 땅위에 나무를 쌓아올렸는데, 가장 중앙의 중심 무덤방을 기준으로 방사상으로 퍼져서 전체 무덤의 평면형태는 원형이다. 이 무덤의 중앙에는 무덤방 안에 또 무덤방(2차무덤방)이 있는 구조로 이곳에는 10인이 매장되었으며, 이 무덤의 북쪽에 있는 9호 무덤방은 중심무덤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중심무덤방에는 말이 무덤방의 동쪽에 매장되었다.

 

2020/05/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3000여년 전 시베리아 무덤 안의 무덤방 1번.

3000여년 전 시베리아 무덤 안의 무덤방 1번.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투바(현재)에 위치한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는 이름하여 ‘왕의 무덤 계곡’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 곳에는 마을이름이 아르잔인데, 3000여년 전 무덤이 남아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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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아르잔-1호의 평면도

 

9번 무덤방처럼 통나무관 안에 단독으로 매장된 경우는 중심무덤방 안에 있는 무덤방과 같은 특징이기 때문에 중심매장부와 관련된 사람의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르잔-1호에는 중심 무덤방을 제외하고 13번과 31번 무덤방에서 사람과 말이 함께 묻혔다. 으며, 통나무관이 2개 있어서 2인의 매장된 곳 이기 때문이다. 13번(7.5×5.5m, 높이 2.5m)과 31번 무덤방(5.5×5.5m)은 9번에 비해서 큰데, 통나무관 2개씩이 확인되었고, 13번 무덤방에는 말이 7개체분이 발견되어서 각 방의 주인공의 계급 혹은 무덤 가장 중심부에 묻힌 주인공과의 관련성이 훨씬 9번 무덤방에 비해서 클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13번 방은 이미 도굴당했는데, 무덤방 바닥에는 검은 색 모피와 양모직물로 만든 옷이 남아 있었고, 인간의 뼈와 사람과 관련된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에 13번과 14번 방 사이에 두개골 3개과 모피와 직물과 만든 옷, 청동 핀, 청록색 터키색을 상감한 금제 귀걸이와 황금 장식판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기마용 말 7마리와 재갈,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6개의 펜던트, 말꼬리를 장식한 황금판 등이 출토되었다.

 

필자는 이곳의 상황이 의심스러운데, 평면도에도 나오지 않고, 출토된 유물도 기술로만 남아 있다. 도굴꾼이 흘리고 갔다.  이 무덤에서는 사람의 뼈는 적어도 통나무관 혹은 무덤방에서 나오는데, 예외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말이 함께 부장된 또 다른 무덤방인 31번 무덤방은 도굴당하지 않았고, 말 10마리가 무덤방의 왼편에 일렬로 가지런히 놓인 상태였다. 말 10마리 모두 재갈과 재갈멈치 및 굴레장식으로 멧돼지송곳니를 이용했다.

그런데 31번 무덤방에는 다른 무덤방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 발견되었는데, 2~4번 말의 몸통 뼈 사이에는 나무걸쇠가 확인되었다. 두개골과 거리가 멀어서 굴레가 아닌 안장을 고정하는 걸쇠 일 가능성이 있다. 안장은 이미 섞어서 없어진 상태이다.

 

자 다음은 31번 방에서 출토된 말의 마구이다.(그림 2) 

그런데 그림 2을 보시면 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앞의 포스팅에서 다른 무덤방의 마구와 비교해 볼 때?

 

2020/05/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말馬 무덤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말馬 무덤

시베리아 투바에는 3000여 년 전 스키타이의 왕이 묻힌 곳일 지도 모른다는 무덤이 있는 곳이 있다.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했는데, 그랴즈노프가 조사할 당시에는 무덤이 많아서 왕들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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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아르잔-1호 무덤 31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재갈과 굴레장식. 번호는 말의 번호와 일치. 2~4번 말의 몸통에서 확인된 걸쇠는 도면이 없었다.

 

 

 

 

 

 

 

 

 

 

 

 

앞에서 설명했던 재갈만 있고 앞에서 보았던 재갈멈치가 없다.

이 무덤방에는 10마리의 말 두개골이 가지런했고 도굴당한 흔적도 없었지만, 재갈만 있었고 구멍 3개 있는 재갈멈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에 재갈의 끝 구멍(그림 2-6, 그림 3-19 )에 둥근 나무판이 청동고리로 연결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 나무판이 말의 입 옆을 눌러서 재갈멈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림 3. 아르잔-1 출토 재갈멈치, 이 유적에서는 재갈멈치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다. 그림 19와 그림 2-6은 같은 유물.

 

 

 

통나무관(전체길이와 너비: 180×60cm, 통나무관의 내부: 130×35cm, 통나무관은 중심 무덤방에서 출토된 것을 확인하시면 되는데, 통나무의 안을 다 판 것이 아니다. 도면이 제시되지 않았다.) 남서쪽 통나무관에서 40세 이상의 남성이 발견되었다. 무릎을 구부린 상태로 옆으로 뉘운 상태로 매장되었다. 다른 통나무관(전체 길이 2.3m, 관의 내부길이 1.5m)에는 뼈가 보존되지 않았다.

이 무덤방에서는 모직물과 모피옷이 많이 확인되었고, 귀걸이와 금제 장식핀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 마을에는 3000여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학자들은 이 무덤이 스키타이 문화라는 유라시아 전역에 유행했던 문화의 발원지 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유물이 동물문양장식, 무기와 마구라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다.

동물문양장식이 어떤 특정하게 고정된 자세로 때로는 과장되지만 사실적으로 표현된 유물이 유라시아 전역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겪기 전까지 필자도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 널리?

 

그런데 이 생각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행동반경이 작은 우리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농경시대를 오랫동안 거쳐왔고, 현대가 되어서는 섬나라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아니면 멀리갈수 없고 가봐야 서울-부산이 가장 먼 거리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소수민족들은 지금은 그들의 생활습관이 많이 바뀌었지만,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그들은 수천 km 반경의 지리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있다고 한다(러시아 극동과 시베리아의 소수민족).

 

다시 돌아가서, 유라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동차가 없어도 가능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래도 자신의 반경은 있었지만.

동물문양장식은 왕래가 자유로웠던 시절에 모두가 이해하는 하나의 표식?과 같은 기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각 지역의 무덤양식이 다르고 토기도 차이가 있는데, 비슷한 동물문양이 나타난다는 점, 또 동물문양은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과장되게 표현해서 체계화 된다는 점 때문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아르잔-1호를 가장 주목하게 된 것은 어제 소개해 드린 2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원형 호랑이장식 때문이었다.

이 유적에서는 동물문양장식에서 아직 형상화 된 그리핀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지릭 고원과 우코크 고원의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산양장식이 출토된다(그림3,4). 말무덤인 26a, 26b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방에서는 최소한 말 뼈 11마리분이 확인되었고 재갈과 재갈멈치 세트도 11벌 출토되었다. 굴레에 달던 각종 장식판들도 있다. 특히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된 장식판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림 1. 무덤방 26번, 무덤방 26번의 북쪽벽에서 청동산양(26)이 있었는데, 원래의 위치가 아니다.

 

 

 

 

그림 2. 무덤방 26번 출토 마구의 굴레장식 (1-7: 멧돼지 송곳니, 8-나무, 구멍에 멧돼지송곳니를 끼움, 9,10-목제)

 

그 중에서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는데, 청동으로 제작된 산양장식물이다. 산양이 발을 세우고, 청동판 위에 올라간 모습이다. 모두 5점 확인되었고, 산양 아래의 청동판은 원뿔모양과 방형의 청동판 위에 올라간 것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 손잡이(그림4-1)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산양은 꽤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앞 다리와 뒷다리의 근육, 다리의 관절, 굽 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눈이 매우 둥글고 크게 과장되었고 다리도 뚱뚱하게 과장되었다. 사슴이나 말 등의 우제류는 날씬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산양은 캐리커쳐 한 느낌이다. 뿔도 면(그림 4-2)을 각지게 표현하기도 하고, 둥글게 표현한 면(그림 4-1)도 있다. 산양을 지지하는 지지대에는 구멍이 있는데, 아래가 비어 있다. 구멍을 통해서 굴레에 달아서 장식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 무덤에서 마구와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3.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6: 상단의 3번유물과 같음, 7-상단의 1번유물)

 

 

 

 

그림 4.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1-그림 3의 2번유물, 2-그림 3의 4번 유물) 

 

그런데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는 곳이 있다. 아르잔과 멀지 않은 곳으로 저지대인 미누신스크 지역이다. 이곳에는 또 다른 스키타이 문화의 지역으로 타가르 문화라고 하는 문화가 알려진 곳이다. 필자가 스키타이 문화의 표를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 타가르문화의 위치와 시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기원전 7세기부터 확인되는 문화인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종모양의 받침대 위에 다리를 펴고, 뿔을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뿔이 아르잔 출토의 산양과는 달리 마디가 있고 더 길어서 야생염소로 생각한다. 다리를 뻗었고, 머리를 들고 있는 자세, 과장된 눈, 지지대 등 아르잔 1호의 산양표현과 같다. 물론 다리가 날씬하다는 점, 귀가 표현된 점 등은 차이가 있다. 염소아래의 지지대가 비어 있음으로 막대기에 꽂아서 일종의 지팡이 꼭지장식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림 5. 에르미타주 소장, 높이 18.6cm, 타가르문화, 기원전 7세기

 

타가르 문화가 있던 미누신스크 지역에는 청동기시대에 카라숙문화가 영위되었던 곳이다. 과장된 염소의 눈은 카라숙문화에서 사슴문양의 눈표현인데, 이 시절에는 청동단검의 손잡이 끝에 사슴머리가 달려서 출토되었다. 설명드린 바 있는데, 아르잔-1호 무덤의 봉분 위에는 등에 혹이 볼록 난 사슴이 그려진 돌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사슴돌은 이 지역 청동기시대인 카라숙문화에서 널리 유행하던 것이다.

 

스키타이문화의 기원론이 흑해북쪽일 것이라는 의견은 1850년 제국고고학위원회에서 주로 흑해북안을 위주로 발굴하면서 먼저 나온 것이고, 러시아 혁명 후에 시베리아를 발굴하면서 그 의견은 약간씩 흔들리다가 아르잔 1호의 발굴이 큰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앞서 말씀드린 바 있다. 그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것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유물에 이미 동물문양장식이 많이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잔 1호는 직경 120m의 크기와 6000개의 통나무를 써서 모든이를 압도하긴 했지만 실제 무덤은 견고함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유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점은 많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에는 3000여 년 전 스키타이의 왕이 묻힌 곳일 지도 모른다는 무덤이 있는 곳이 있다.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했는데, 그랴즈노프가 조사할 당시에는 무덤이 많아서 왕들의 무덤계곡이라고 불렀다. 그 중에서 2기가 발굴되었다.

 

아르잔-1호는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로 기원전 9세기 가량으로 생각되는 유적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파지릭 고원(파지릭 유적)과 우코크 고원(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유적과는 이 유적의 무덤 구조가 많이 달라서 가장 가까운 강이름을 따서 ‘우육문화’ 혹은 ‘투바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일종의 지역(투바) 명칭인 것이다. 무덤의 구덩이를 파지 않고 무덤을 만들었으나, 사람무덤인지, 말 무덤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 많이 묻혔다. 사람은 총 15인이고, 말은 대략 160마리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잘 남아 있지 않은 서쪽 부위의 말을 포함한 것이다.

 

말은 어떤 말일까? 기승용 말이며, 12~15세의 늙은 말이고, 수컷이다. 당연히 자연스럽지 않고 골라서 넣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말 무덤이 아닐까 하는,,,필자의 우스게 소리이다.

 

무덤의 동쪽 부위에 있는 그나마 네모 반듯한 방에는 말만 매장된 무덤방 3개가 있다. 무슨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덤방 2와 무덤방 3 사이에도 말 3마리가 확인되었고, 청동재갈이 (그림 5-2,4,6)출토되었다. 그랴즈노프도 이곳에는 무덤방 번호를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덤방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2번과 3번 방 사이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림 1. 아르잔 1호의 무덤 동쪽편

 

그림 2. 아르잔 1호의 무덤방 2번

 

무덤방 2번은 9.5×8m이고 높이는 0.9m가량이다. 말 30마리를 접어서 넣었다. 그림 2의 번호는 말의 번호이다. 말의 두개골이 무덤 중심부를 향하고, 다리를 접고 하늘을 쳐다보도록 묻혔다. 이 곳에서 유명한 청동제 원형 호랑이 장식이 출토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연구자들은 특히 아르잔-1 유적의 재갈과 재갈멈치에 관심이 많다. 2번 무덤방도 이미 당연히? 중심 무덤방과 함께 도굴당해서, 출토된 마구들은 이미 말에서 벗겨진 상태였다. 몇 번 말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출토된 유물이 거의 비슷하니깐 참고하시면 된다.

 

특히 재갈멈치에 구멍이 3개이고, 재갈멈치를 끼우기 위한 재갈의 끝에 달린 고리모양이 원형이 아니라 사다리꼴(그림 3-2)에 가까운 점에 주목한다. 재갈멈치에 구멍이 세 개인 것은 중간의 것은 재갈과 연결시키고, 위 아래의 구멍은 굴레와 고삐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재갈과 재갈멈치는 청동으로 주로 제작되었다. (재갈과 재갈멈치에 대한 이해는 그림 7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림 3-3은 굴레에 달았던 장식품이다.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되었는데, 189개가 2번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굴레에 달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가운데 구부러진 것 외에도 둥근 원판에 네모구멍이 있는 뼈로 만든 장식(그림 3-6의 오른쪽)도 출토되었다.

 

그림 3. 아르잔 1호의 무덤방 2번 출토 마구

 

 

 

무덤방 3번(12.5×7.5m)은 무덤방 2번의 동쪽에 인접했고, 2번 방 보다 2배 이상 높다(2.2m). 가로 2개, 세로 3개로 쌓아서 올린 것이다. 북쪽 반이 말의 뼈 였는데, 머리뼈가 30개 출토되었는데, 무덤방 2번 보다 더 밀도 있다. 이곳에서도 최소한 6벌의 마구 세트가 출토되었다.

 

무덤방 5번(10×6.5m)은 무덤방 2번의 북벽에 위치하고, 높이는 2.4m로 3번 무덤방과 비슷한 높이이다. 15마리의 말뼈가 출토되었고 머리는 중심 무덤방을 중심으로 한다. 역시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5-1,3,5) 등이 출토되었다

 

그림 4. 아르잔 1호의 무덤방 5호

 

 

그림 5. 아르잔 1호의 무덤방 5호(1,3,5)와 무덤방 2~3호 사이에서 출토된 마구(2,4,6)

 

아르잔-1호의 무덤에서 출토된 재갈은 우코크 고원 및 파지릭 계곡에서 출토된 재갈과 차이가 있다. 아르잔 1호의 무덤 재갈은 기능에 좀 더 충실했다면, 300년~400년 후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재갈멈치에 구멍도 없고, 고삐 구멍이 따로 만들어졌다(그림 6).

 

 

그림 6. 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재갈, 재갈멈치, 굴레장식

 

 

그림 7. 아르잔 2호에서 출토된 말, 재갈이 입에 물린 채 그대로 출토되었다. 재갈과 재갈멈치를 이해하시라고 인용한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을 휩쓸었던 스키타이 문화는 초기철기시대로 알려졌고 기원전 9세기 가량의 유적으로 알려진 아르잔 1호가 현재 알려진 오래된 유적이다. 필자가 계속 ‘스키타이 문화’라고 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스키타이 문화권’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이 공통된 특징인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각 지역의 문화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세가지 요소가 비슷하게 나타나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스키타이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흑해북안부터 시베리아를 벗어나서 중국동북지역 가운데 요서지역과 황하상류의 오르도스에도 특징 등이 보인다.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문화는 기원전 9세기부터 늦게는 기원전 4~3세기까지 영위된 문화로 본다. 그러나 이 문화가 나타나는 시점과 없어지는 시점은 지역마다 다르다. 또한 각 지역의 무덤문화나 개별 문화적 요소도 다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알타이의 기원전 5세기 가량의 유적인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 파지릭 유적과 비교해 볼 때 아르잔 유적은 비교적 가깝지만, 시간상 300년 이상 앞서기 때문에 당연히 문화적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아르잔 유적을 기준으로 해서 이 유적이 위치한 곳의 강 이름을 따서 ‘우육문화’라고 한다. 혹은 ‘투바문화’라고도 한다. 앞에서 보았던 아크 알라하 3 유적, 아크 알라하 1 유적과 파지릭 유적을 파지릭문화라고 했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른 문화로 볼 수 있는 우육문화의 아르잔 유적의 1호분은 아쉽게도 도굴당해서 유물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주인공 남녀가 묻힌 곳에는 근동지역에서 들어온 옷과 담비가죽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금,은, 동, 터키석, 갈탄, 뼈 등으로 제작된 장신구(그림 1,2, 표)가 남아 있고 중심 무덤방의 동쪽에 위치한 말 6마리 사이에서도 마구가 많이 출토되었다(그림 4).

 

 

그림 1. 아르잔 1호 출토유물. 중심 무덤방. 표의 그림번호와 일치.

 

중심무덤방의 1호 무덤방 외곽에 위치한 통나무관 6개와 2호 무덤방에서도 유물이 출토되었다(표). 5호 나무방과 6호 통나무관을 제외하고 모두 유물이 출토되었다(표는 그림으로 제시된 것만 표로 만들었다). 2호 무덤방에는 통나무관도 있었는데, 금제품과 터키석 등이 출토되었다. 주인공 남녀가 묻힌 1호 무덤방은 도굴이 심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유물의 전체 수량이나 특징은 파악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 1호 무덤방의 남쪽에 위치한 4호 관에는 청동단검 3자루(그림 1~3) 및, 모직 옷, 금제 귀걸이(그림 2-10,11) 등이 출토되었다. 4호 통나무관 박에서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서 이 통나무관도 도둑맞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동물문양장식이 붙은 청동 검의 손잡이(그림 2-4)가 출토되는데, 4호의 것인 확률이 많다.

 

 

 

그림 2. 아르잔 1호 출토유물. 중심무덤방 중에서 주인공의 무덤방 및 주변의 통나무 관 출토품. 표의 그림번호와 일치

 

 

그림 3. 아르잔 1호 출토유물 말과 관련된 유물. 주인공 무덤방, 26호, 31호, 37호 통나무관 출토품

 

 

 

그림 4. 아르잔 1호 출토유물. 말의 굴레장식.

 

 

 

 

 

주인공

그림번호

가죽

청동

금제

은제

터키석

갈탄

멧돼지송곳니

Antigorite

Argillite(퇴적암)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남 녀, 사지골만

1-1.

 

꼬인동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7.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2.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9.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10.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4.

 

 

 

 

 

고리모양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3.

 

 

 

 

 

 

고리모양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5.

 

 

 

 

 

 

고리모양

 

 

 

인간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1-6.

 

 

 

 

단추

 

 

 

 

 

(6)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1.

 

재갈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2.

 

 

 

 

 

 

 

 

?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4.

 

 

목제도 덧입힘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7.

 

 

장식판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8.

 

 

장식판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10.

 

 

장식판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6.

 

 

 

이마장식(w)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9.

 

 

 

 

 

 

 

장식판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3-12.

장식판(w)

 

 

 

 

 

 

 

 

 

중심무덤방

1호무덤방

4-1~6

 

 

 

 

 

 

 

굴레장식

 

 

인간

중심무덤방

2호통나무관

 

1-8.

 

 

 

 

장식판

 

 

 

 

 

인간

중심무덤방

2호통나무관

2-5.

 

 

장신구

 

 

 

 

 

 

 

인간

중심무덤방

2호통나무관

2-7.

 

 

장신구

 

 

 

 

 

 

 

인간

중심무덤방

3호통나무관

(18~20)

2-8.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

 

가죽집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2.

 

단검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2.

 

화살촉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0.

 

 

귀걸이(W청동)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1.

 

 

귀걸이(W청동)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2-13.

 

 

 

 

 

 

화살촉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밖

 

2-3.

 

단검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밖

 

2-4.

 

검 손잡이(금박)

 

 

 

 

 

 

 

 

인간

중심무덤방

4호통나무관 밖

 

2-6.

 

투부

 

 

 

 

 

 

 

 

인간

중심무덤방

6호통나무관

(60세이상)

2-9.

불을 만드는데 사용됨.

 

 

 

 

 

 

 

 

 

(11)

26호무덤방

26호무덤방

 

3-3.

 

 

 

 

 

 

 

 

 

?

31호무덤방

31호무덤방

사람 2

3-11.

 

 

장식판(w말총)

 

 

 

 

 

 

 

(13)

37호무덤방

37호무덤방

 

3-5.

 

 

장식판

 

 

 

 

 

 

 

표. 아르잔 1호 출토유물. 그림의 번호와 일치(표와 그림을 맞춰보시면 됨).

 

그랴즈노프는 4호 통나무관에서 담비가죽, 모피 옷, 금제 귀걸이 등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서 다른 통나무관도 비슷한 사정이었다면, 이들도 높은 계급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가장 중심부 만큼은 아니지만...

 

1호 무덤방의 주인공 남녀와 주변을 에워싼 8인은 어떤 관계였는지는 현재 였으면 바로 DNA분석을 했다면 어느 정도 단서가 나왔겠지만, 그렇지 않다. 친족관계였는지, 상하관계였는지, 혹은 가깝다면 얼마나 가까운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울러 중심 무덤방의 북쪽에 위치한 9호 무덤방에서는 통나무관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 만들어졌는데 이곳도 1호 무덤방의 주인공을 호위하는 듯 한 8인과 같은 관계였을 것이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그 외에 31호 무덤방에서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고 장식판(그림 3-11)도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투바공화국에는 왕들의 무덤계곡이라고 불리는 아르잔 유적이 있다.그 중에서 아르잔 1호 무덤은 스키타이 문화가 흑해북안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뒤집어 놓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몇 번 설명 드렸지만 동물문양장식 가운데서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혹은 표범)장식이다. 이 유물은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동물장식과 비교되면서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이 시베리아도 해당될 수 있다는 근거가 되었다. 아래의 포스팅을 보시면 알 수 있다.

 

2020/05/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몸을 말고 있는 시베리아의 호랑이

 

몸을 말고 있는 시베리아의 호랑이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발굴된 무덤은 대부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일컬어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의 지역적 명칭인데, 엄밀하게 학문적으로 이야기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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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3000년 전 무덤 속의 말 무덤과 호랑이 장식

 

시베리아 3000년 전 무덤 속의 말 무덤과 호랑이 장식

시베리아의 투바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대략 2800~2900년 전 쯤인데, 필자는 말하기 좋게 3000년 전이라고 할 것이다. (러시아는 연방국가이고, 소수민족들이 중심이 되는 공화국이..

eastsearoad.tistory.com

아르잔 1호에서 출토된 유물은 무덤방 2번에서 출토되었고, 이곳에는 말 30마리가 각종 마구 및 말 장식과 함께 출토되었다.

 

필자가 어제 포스팅에서 말과 사람이 매장된 곳을 잘 못 소개한 곳이 있는데, 26a와 26b이다. 사람이 묻힌 곳은 정확하게 9번, 13번, 31번이다. 모두 나무방 안에 통나무관이 확인된다.

 

 

 

그림 1. 아르잔 1호의 무덤 속

 

9번 방(8×3.5m)은 중심 무덤방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데, 13번(7.5×5.5), 31번(?)에 비해서 월등하게 작은 공간이어서 말이 함께 매장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혹은 13번과 31번 방에 묻힌 사람들과 비교해서 계급 등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유적에서 유일하게 사람만 들어간 곳이기도 하다. 13번과 31번 방에는 통나무 관 2개씩 들어가 있어 2인의 합장묘이다. 중심 무덤방 10인을 포함해서 총 15인이 아르잔-1호에는 들어가 있었다.

 

말이 매장된 곳은 중심매장부를 제외하고 15개의 방이다(13번, 31번 포함). 말만 매장된 곳은 13개의 방이다. 그리고 나머지 방(53개)은 빈방이다.

 

무덤의 평면구조를 살펴보면 동쪽방향의 무덤방과 북과 남쪽의 무덤방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동쪽으로는 2~7번 무덤방은 네모꼴(비교적 가까운)이고, 북쪽(8~10번, 29~37번)과 남쪽 방향(13~21번)은 중심 무덤방과 가까운 쪽은 사다리꼴이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네모꼴 무덤방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남쪽의 무덤방은 명확하지 않다.

 

중심 무덤방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가는 무덤은 북쪽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8번과 9번 방은 사다리꼴 모양이지만 이 무덤을 최종적으로 원형으로 만들기 위해서 중심부 방에서 모서리에 위치한 10번 방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10번 덕분에 36, 37번이 만들어졌고, 51~53번 방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51 번 방 옆 공간은 왜 나무가 없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8번, 9번, 29~34번 섹션과 동시에 만들어서 빈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산착오와 나무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양 쪽 공간을 동시에 만들었고, 이미 거의 축조된 상태에서 서로 아귀는 맞지 않고, 다시 허물수도 없고, 나무는 이미 수천개를 써서 부족했다면 그냥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전체 무덤방을 계속 관찰하다보면 짜투리 공간에 나무를 덧대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또 흥미로운 공간은 31번 방과 34번 방 사이에 위치한 33번과 49번 방이다. 31번방의 서쪽 벽이 29번 방에서 계속 뻗어진 대로 나무를 연결했다면 이 방도 사다리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9번의 방의 서쪽벽에서 뻗은 나무와 다른 방향으로 틀면서 31번 방은 네모꼴이 되었고, 48번 방의 방향도 정해졌다. 34번 방은 사다리꼴로 유지되고, 50번과 50a번 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31번방과 34번 방 사이 공간에 49번방을 넣어서 49a번방이 만들어졌다. 이 방은 48번과 50번 방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33번의 북벽은 49번방의 남벽이 되는 역할이 된다.

 

큰 원형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길다란 막대기로 엄청나게 계산을 했을 꺼라고 생각이 되지만,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 53개나 된다는 점이다.

 

 만든이는 어떤 심정이었으며, 묻힌이는 어떤 사람일까? 

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마 많은 분들은 이런 무덤구조에 대한 글은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를 속속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랴즈노프가 쓴 글은 참고로 했으나,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서 필자가 관찰한 부분을 덧 붙인 것이다. 사실 이 모든 포스팅이 그렇지만, 무덤의 구조는 더 그렇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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