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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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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서부는 카스피해가 위치하는데, 이 곳으로 흘러가는 우랄강변에는 많은 쿠르간이 존재한다. 우랄강은 러시아에서 시작해서 카자흐스탄을 관통하기 때문에 이곳에 만들어진 쿠르간은 현재의 국경은 다르지만 당시(쿠르간이 만들어진 시점)에는 같은 문화를 공유했던 사람들이 만들었을 수 있다.

문화적으로 이곳은 우랄 산맥의 남쪽으로 우랄과 볼가 강 유역의 스키타이 문화를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라고 구분한다. 화려한 황금 사슴이 출토된 필리포프카 유적이 잘 알려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을 포스팅할 당시에 필자가 간과한 것이 이 유적이 지상식 구조물을 덮은 쿠르간이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땅을 약간 파기는 했지만 매장주체부를 지하로 만들지 않고 지상으로 만들었다. 당시에 연도와 목조시설, 감실 등만 강조되어서,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보고가 부실하다고만 여겼다.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중앙에 지상식구조물을 제외하고 동쪽벽에 숨겨진 곳에 지하로 무덤을 파고 따로 여성의 무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접한 유적들을 보면서 필리포프카 유적도 지상식 목조물 위를 덮은 쿠르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키리크-오바 II유적도 마찬가지이고, 베소바와 신타스 유적도 같은 구조이다.

 

베소바와 신타스 유적의 3호(직경 38m,높이 1.9m)에는 목조구조물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지붕이 둥근 돔형일 것으로 통나무와 나뭇가지 등으로 만들었다. 구덩이를 약간 파기는 했는데, 이해가 안되는 것은 남북방향은 깊이 60cm, 동서방향은 편평하다는 점이다(그림 1의 단면). 어쩌면 자연적인 현상을 발굴자가 놓친 부분일 수 있다. 이 무덤은 여성이 피장자로 매장되었는데, 북쪽에서 발견되었고 등을 편 채로 하늘을 본 상태로 발견되었다. 펠트천과 관목가지로 덮인채 발견되었다.

 

그림 1. 베소바 유적 3호

 

이 유적의 9호(직경 11.2m,높이 10m)에도 지상위에 목조구조물을 매장주체부로 한 것이 발견되었다. 높이가 약 3m로 추정되는데, 무덤 바닥에서는 기둥구멍의 흔적이 발견되어서 마치 집을 지은 것처럼 목조구조물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둥구멍 중앙에는 점토로 만든 시상이 있고, 연도와 연결되었다. 평면형태는 팔각형이다.

 

그림 2. 베소바 유적 9호의 바닥

 

그림 3. 베소바 유적의 낙타장식

 

우랄 강변을 따라 위치한 무덤은 연도와 목조구조물이 있는 묘실로 특징지을 수 있다. 깊지 않은 묘광에 나무판을 교차해서 놓고 그 위를 나뭇가지 혹은 갈대로 얹었다. 지상구조물이 발견된 경우에는 이를 지지하기 위한 기둥구멍도 발견된다. 바닥에 석회가루나 재가루를 뿌리고, 나무껍질 혹은 풀로 깔개를 만들어서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피장자는 사지를 펴고 등을 대고 자세이며, 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다. 이는 카디르바예프가 카자흐스탄 서부지역의 쿠르간 조사를 통해서 내린 결론이다.

 

[베소바와 신타스 유적은 쿠르간 19기가 두 마을에 걸쳐서 발견되어서 베소바와 신타스 유적으로 불린다. 우랄 강의 지류인 일레크 강의 좌안에 위치하며, 1973년 당시 소비에트의 집단 농장의 영지내에 쿠르간이 확인되었다.]

 

카디르바예프가 설명한 내용을 참고로 하면 피장자를 묻는 장법은 시베리아 매우 다르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사람들은 모두 굴신장(팔 다리를 굽힌 장법)으로 옆으로 누운 상태였다. 쿠르간 내부의 무덤구조 뿐만 아니라 피장자도 다른 장법으로 매장되었다.

이 점은 확실히 시베리아 알타이에 매장된 사람들과는 다른 관념 속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레보드치코바가 이야기 한바와 같이 ‘동물문양’은 공통된다. 뿐만 아니라 유사한 동물문양과 무기와 그릇들이 발견된다.

생활방식은 다르지만 마치 스마트폰(아이폰 혹은 삼성폰)을 세계 어떤 사람들도 쓰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스키타이 문화권의 중심권과는 차별되지만 그들도 쿠르간을 만들었고,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연도와 묘실이 있는 무덤은 기원전 6~5세기경으로(카자흐스탄 연구자) 아랄 해 동쪽이자 사르다니아 강과 아무다리리야 강 사이에 위치한 이른시기의 유적에서도 관찰된다. 아랄해 동쪽의 두 강 사이 지역에서 나오는 문화는 ‘사카’라고 알려져 있으며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내에 속한다.

 

무덤구조가 비슷하다고 볼가강~우랄강변의 유적을 두 강(사르다니아 강과 아무다리아 강) 사이의 문화를 함께 묶지 않는다. 각각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 사카 문화라고 지역문화를 구분하며,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 속한다고 연구되어 왔다.

 

참고문헌

Кадырбаев М.К. Курганные некрополи верховьев р. Илек // Древности Евразии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 Москва: Наука, 1984. – С. 84–93.(카디르바예프, 일레크 강변의 네크로폴 쿠르간)

Кадырбаев М.К., Курманкулов Ж.К. Захоронения воинов савроматского времени на левобережье р. Илек // Прошлое Казахстана по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м источникам. – Алма–Ата: Наука, 1976. – С. 137–156(카디르바예프, 쿠르마쿠로프, 1976, 일레크 좌안의 사브로마트 시기의 무덤)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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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서부의 키리크-오바 II 유적은 우랄 강변과 가깝고 탁사이-1 유적, 필리포프카 유적과 인접한 곳이다. 모두 우랄 남부에 위치한 유적이다. 키리크-오바 II유적에서 26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같은 유적 내에서도 무덤 구조가 다르게 만들어진 점은 매우 흥미롭다.

 

15호쿠르간(직경 40m, 높이 1.1m)에서는 매장 주체부를 점토벽(너비 4~5m,높이 0.5m)이 둘러싸고 있다. 점토벽 상단의 북편과 동북편에는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뼈가 대량 발견되었다. 육각형으로 둘러싸진 점토벽 안에는 연도(무덤의 복도시설)가 있는 목조 구조물이 발견되었는데, 땅을 파지 않은 지상식으로 목조구조물 아래에도 점토로 바닥을 만들었다. 나무로 된 무덤방으로 위쪽에 폭이 10~25cm인 목재가 열을 지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연도의 입구에는 말의 시신이 4구 이상 있었고, 식물로 만든 깔개가 부식된 상태로 발견되어 있다.

 

그림 1.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5호

 

16호 쿠르간에서는 무덤구덩이를 판 것으로 기다린 복도형 입구가 있고 비슷한 구조가 12호 분에서도 발견되었다. 18호 쿠르간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연도를 설치한 것으로 주인공 외에도 시신 여러 구가 더 발견되었다. 1호묘 주인공(그림 2-2) 피장자 주변에는 접시, 각배, 토르크형 목걸이, 솥 등이 발견되어서 다른 피장자와는 사회적 지위가 달랐을 것이다. 3호묘와 4호묘에는 구덩이를 따로 파고 말 1필과 피장자를 묻었는데, 주인공과 함께 철검을 부장했다.

 

그림 2.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8호와 출토유물, 1-18호 평면도, 2-1호묘의 피장자, 3~10: 1호묘 출토유물

 

그림 3.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8호의 3호묘(상단)와 4호묘(하단), 상단의 3,4, 45-철제품이고, 그 외는 청동제, 하단의 2~4: 철제품, 5: 토제, 그 외는 청동제

 

그림 4. 키리크-오바 II유적의 쿠르간 배치도

 

키리크- 오바 II유적은 일렬로 무덤이 나란히 서 있어서 규칙성이 있어 보이지만 각 쿠르간 마다 무덤의 구조가 다르다. 이웃한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와 같은 특징이 있었다. 특히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와 13호에서도 매장주체부를 점토벽으로 둘러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목조구조물이 남아 있었다. 이 유적에서는 매장주체부를 위한 구덩이를 파기는 했으나 깊지 않으며 연도가 있었다. 1호에서는 점토벽으로 둘러싼 중심 매장부와 달리 쿠르간의 동쪽에 깊게 판 수혈에 여성 무덤이 따로 숨겨진 채 남아 있어서 약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심매장부를 만드는 방법은 같다.

 

2020.1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남부 우랄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25기의 무덤이 약간은 동에서 서로 무질서하게 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V’자형이지만, 이를 벗어난 무덤도 여러 기 존재하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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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필리포프카 유적의 7호와 8호에서는 점토벽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무덤구덩이의 형태도 달라서 같은 유적에 구조가 다른 쿠르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11.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 스키타이 전통의 그리핀

 

우랄 남부 스키타이 전통의 그리핀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1호에서 고대 이란의 페르시아 유물인 금제 항아리와 은제 각배 등이 출토되기는 했으나, 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지역의 유물이었다. 입이 과도하게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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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크-오바 II유적과 필리포프카 유적의 특징으로 볼 때, 볼가~우랄 강 유역에 있던 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문화인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의 특징일 수 있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Гуцалов С.Ю. Погребальные сооружения могильника Кырык–оба II в Западном Казахстане // Россий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Москва: Наука, 2010. – № 2. – С.51–66(굴차로프, 2010, 카자흐스탄 서부의 키리크-오바 II유적 무덤구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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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에는 스키타이 문화가 영유되었던 시기에 매우 다양한 무덤이 발견된다. 카자흐스탄 중부지역에서도 ‘유사 쿠르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덤이 만들어졌다. 외형은 크지만, 매장주체부에는 관 조차 만들지 않은 무덤이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유적이 세렉티-1 유적과 같은 곳이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은 엘리트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지역의 엘리트 일 수 있지만, 왜 쿠르간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앞서 소개한 카자흐스탄 서부이자 우랄 산맥의 남쪽에 위치한 탁사이-1 유적과 가까운 곳에는 ‘키리크-오바’ 유적이 있다. 자이이크 강변에 위치했다고 하지만 사실 우랄 강변의 유적으로 보는 것이 문화적 의미로써 더 가치가 있다.

더보기

카자흐스탄은 러시아로부터 독립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역사가 많이 이용된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해는 가는데, 좀 자연스러울 필요가 있다.  문화의 지역적 구분, 연대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억지스럽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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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크-오바 II유적에서는 금제 드리개(그림 1, 그림 3-14)와 원형 맹수장식(그림 2)이 발견되었다.

금제드리개는 탁사이-1 유적의 여성과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가장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원뿔 모양이다. 원형 맹수장식은 동물이 이빨을 다 드러낸 것으로 아르잔-1호의 맹수장식과 자세는 같지만, 대상이 된 동물은 다르다.

원형 맹수장식은 2호 쿠르간 뿐만 아니라 18호 쿠르간에도 출토되었고, 같은 얼굴을 한 맹수장식이 15호 쿠르간에도 재갈멈치의 끝장식으로 발견된다. 늑대로 볼 수 있는데, 유적을 상징하는 동물일 수 있다. 평지에 위치한 유적에서는 발견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림 1. 키리크-오바 II유적 15호분(쿠르간)의 3호묘

 

그림 2. 키리크-오바 II유적 2호분(쿠르간)

 

그림 3. 키리크-오바 II유적 15호분 출토 유물, 1-12, 화살촉, 13- 거울, 14-드리개, 15-18: 장식판, 19-칼의 손잡이, 청동(1~13), 금(14~18), 뼈(19)

 

키리크-오바 II유적은 탁사이-1 유적의 여성처럼 어떤 특정 인물이 크게 조명되지는 못했지만 26기의 쿠르간이 일렬로 배치되면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제까지 소개한 카자흐스탄 서부에 위치한 유적에서는 처음 보이는 현상이다.

이 유적과 5km 떨어진 키리크-오바 I유적은 고분 3기로 구성되었다.

 

키리크-오바 II유적이 탁사이-1 유적 여성처럼 특정인물이 조명받지 못하는 것은 무덤의 구조와 피장자의 장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탁사이-1 유적 6호 쿠르간에는 2명의 여성은 목이 잘린 채 묻혀서, 주인공과 차별되었다. 하지만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5호 쿠르간에서는 인골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고, 18호는 여러 구가 한 무덤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런 점에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그 당시에 지역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 중부지역과 마찬가지로 카자흐스탄 서부에서 발견되는 무덤도 매우 가깝게 위치하지만 무덤의 구성 뿐만 아니라 구조, 출토유물은 차이가 크다.

 

 

참고문헌

Гуцалов С.Ю. Погребальные сооружения могильника Кырык–оба II в Западном Казахстане // Россий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Москва: Наука, 2010. – № 2. – С.5166(굴차로프, 2010, 카자흐스탄 서부의 키리크-오바 II유적 무덤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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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탁사이-1 유적의 여성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무덤의 구조이다.

 

탁사이-1 유적에는 무덤이 6개 존재하는데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출토된 6호분은 낮은 곳에 위치한다. 사실 1~5호분과 다른 계곡에 위치해서, 같은 구성원이 아닐 수 있지만, 발굴자들은 같은 유적으로 묶어서 6호분이라고 명명했다(그림 1).

 

탁사이-1 유적의 다른 유적은 6호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의 무덤인 6호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다.?!

 

무덤의 중앙구덩이에서도 동쪽벽에 치우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무덤구덩이의 중앙은 비워둔채였다. 그리고 무덤구덩이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도 열을 아주 많이 받았고 청동이 녹은 흔적이 둘러쌓고 있었다. 일부분만 그런 현상이 발견되었다면 우연?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무덤구덩이를 둘러쌓고 있다는 점에서 우연일 수 없고, 의례행위의 과정중에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덤을 3겹이나 둘러쌓고 있는 붉은색과 황색의 퇴적물도 내용물은 달랐겠지만 그런 행위 중에 한 부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림1. 탁사이-1 유적의 무덤 배치도

 

 

그림 2. 탁사이-1 유적의 6호 평면도

 

탁사이-1 유적의 6호분 여성과 유사한 유물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인접한 필리포프카 유적(지도에서 확인가능함)에는 무덤구조는 전혀 다르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3곳이나 있으며 지하통로를 통해서 지하로 들어가도록 된 구조이다. 무덤의 입구는 봉분 위가 아닌 측면이다. 대개 이런 무덤 구조는 한 번 무덤을 만들면 후대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흑해 지역에서 많이 관찰된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무덤구덩이를 파고 봉분을 만든 후에 따로 입구를 설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도(무덤의 복도)가 있는 무덤구조는 나중에 다시 열 것을 염두해 두었을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서 만든 무덤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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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사이-1 유적과 거리상으로는 필리포프카 유적보다 멀지만 같은 국경 내에 있는 이식 유적은 무덤구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여러 방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으로 나무 구조물 안에서 십대 남성(황금인간)이 발견되었다. 여러 방이 있었다는 점에서 탁사이-1 유적 6호와는 다르다.

 

그래서 유라시아 초원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지역에서는 알타이와 비교적 인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을 제외하고는 무덤의 특징들이 일률적이지 않다. 다만 봉분을 높이 쌓는다는 공통점은 있다. 알타이와 흑해처럼 어떤 정형성, 규칙성들이 많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필자가 소개한 베렐 유적, 실릭티 유적, 이식 유적, 탁사이-1 유적, 타스몰라 유적은 카자흐스탄 국경안에 무덤이지만 각각 다르며, 전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볼 때 중부지역에 위치한다. [여기서 베렐 유적은 알타이 산의 자락에 위치해서,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와 유사하다.]

 

따라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자신이 살아생전 지녔던 물건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묻힌 무덤도 아마도 재지적이거나 혹은 어떤 특정 계급의 무덤일 수도 있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사제(샤먼)의 신분이었을 수 있다. 특히 무덤 안에 불을 많이 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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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국가는 카자흐스탄인데, 넓은 만큼 지역간에 문화적 차이가 크다. 동부 산악지대는 알타이와 가까운 북쪽(베렐 유적, 실릭티 유적)과 남쪽(이식 유적)의 성격이 다르고, 서쪽은 우랄 산맥 남부의 유적(탁사이-1 유적)과 중부(타스몰라 문화)이 다르다.

 

[알타이와 가까운 북쪽의 베렐 유적과 실릭티 유적의 성격도 다르다]

 

그 중에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화려한 옷과 의복으로 관심을 많이 끌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대단히 지역적인? 인물이었던 같다.

 

높은 고깔모자는 동물문양으로 장식된 것인데, 고깔모자와 동물장식은 투바의 아르잔 2호 여성이 쓴 것과 비슷하다. 물론 동물장식은 차이가 있다. 같은 무덤의 남성은 고깔모자를 쓰지 않은 것으로 복원되었다는(추구노프 외 2017) 점에서 고깔모자를 먼저 쓰기 시작한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비교한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데는 이유가 있는데, 동물장식을 모자 꼭대기에 다는 방법은 남성 모자에서 발견되는 방법이다. 카자흐스탄 동부의 이식 유적의 십대 남성(황금인간이라고 불림)과 알타이의 아크 알라하-1유적의 남성과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알타이 추야 강 계곡의 여러 유적에서는 남성무덤에서만 볼 수 있는지, 여성 무덤에서도 있는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데 모자 자체가 잘 남아 있지 않았다. 동물장식의 위치가 모자의 꼭대기인지 측면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추야강 계곡의 자료들은 이 경우에는 고깔모자를 쓴 정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동물문양을 좀 더 세분화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흑해지역의 남성도 고깔모자를 쓴 모습이 항아리와 페르세폴리스의 궁전벽 등 회화적인 방법으로 볼 수 있지만, 장식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

 

관자놀이 장식은 원추형을 매개로 한 것인데, 아르잔-2호의 여성 관자놀이 장식과 비슷하게 고안된 것이다. 흑해지역의 여성들은 원형 장식이 가장 포인트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한 차이가 보인다. 혹은 필자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미 재지적인 유적에서 발견되었을 수 있다.

 

 

여밈이 있는 상의는 십자형 그리핀 장식이 달렸다. 옷의 스타일 자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베리아에서도 발견되고, 재지의 다른 유적에서도 있다는 점에서 어딘가에서 왔다기 보다는 그냥 지역적인 옷이었을 것이다. 십자형 그리핀은 알타이 및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되는 유물이고, 흑해지역에서는 볼 수 없다.

 

향유병과 금판이 부착된 목제그릇은 이웃한 볼가 강 유역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볼 수 있다. 탁사이-1 유적에선 금판이 보고되지 않았으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대단히 많은 금판은 목제그릇의 구연부에서 동체부를 감싸도록 디자인 된 것인데, 시베리아에서는 볼 수 없었다. 시베리아에서 금판으로 장식된 목제 그릇은 손잡이가 하나 달린 아르잔-2호 출토유물인데, 손잡이를 감싼 것이다. 목제 그릇을 금판으로 장식한 것을 흑해지역에서 주로 발견되고, 아마도 필리포프카 유적 혹은 탁사이-1 유적에 동시에 들어왔을 수 있다. 청동거울과 함께 가장 스키타이 문화의 서부적인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 들어왔다고 해도 기원전 4세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미 그 지역에서 유행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손잡이 달린 청동거울에 장식된 그리핀은 필리포프카 유적과 탁사이-1 유적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으로 큰 부리와 눈이 표현된 그리핀? 머리이다.

 

그리고 3인의 전사가 표현된 목제빗은 페르시아인과 스키타이 인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도 별로 놀랄 것이 없는 것은 인접한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페르시아 계통의 그릇(금제 각배와 항아리 등)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에 당시에 그 지역과 교통이 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혹은 다른 재밌는 무용담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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