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스키 고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보이는 표범문양 장식과 거의 유사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옷에 달았던 유물이다. 표범장식과 마찬가지로 스키타이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는 유물은 사슴장식이다.
그림 1. 울스키 유적에서 출토된 사슴장식과 표범장식
뿐만 아니라 말머리 모양 장식판도 나왔는데, 길이가 10cm가량으로 실제로 말머리를 장식했는지는 의문이다. 장식판의 눈부분에는 감입부가 있어서 그 안에 다른 색의 돌을 끼워 넣었을 수 있다. 콧 구멍자리에 토끼 2마리가 표현되었다.
그림 2. 울스키 유적 말머리장식
유적에서는 산염소 모양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동물장식(단독)도 발견되었는데, 같은 동물장식이 청동으로 된 간두령 속에도 표현되었다. 스키타이 동물장식은 굽동물의 경우 대개 다리를 배 쪽으로 접어 넣은 모양이지만 이 유물은 머리를 뒤로 돌린 형태이다. 머리를 뒤로 돌린 야생염소 형태는 스키타이 사람들이 고대 오리엔트 전통에서 도입한 것이다.
그림 3. 울스키 유적에서 출토된 야생염소
그림 4. 울스키 유적에서 출토된 간두령장식
고대 오리엔트 전통의 특징은 토끼 장식도 해당된다. 쿨-오바 유적에서 발견된 토끼 장식은 다리우스 왕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6세기 울스키 유적은 볼가 강 유역 기원전 5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의 무덤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울스키 유적의 연대가 이르고, 이미 기원전 7세기에 나무로 된 구조물을 봉분 속에서 넣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무덤구조는 흑해지역에서 발생해서 볼가 강 유역으로 번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울스키 유적에서 나오는 고대 오리엔트 특징의 동물장식은 기원전 7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앗시리아, 그리스의 수입품, 우라르트에서 제작된 유물 등이 나와서 무덤 속에 단순히 스키타이 유물만 넣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목을 돌린 산염소장식이 표현된 간두령은 간두령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간두령은 스키타이 재지의 유물로 그곳에 오리엔트 장식이 표현되었다고 해도 그 유물 자체는 스키타이 지역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А. И. Иванчик, А. М. Лесков. Ульские курганы. Культово- погребальный комплекс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на Северном Кавказе.//Corpus tumulorum scythicorum et sarmaticorum. Т. 2//Москва, Берлин, Бордо, 2015(이반치크, 레스코프 2015, 울스키 무덤, 카파카스 북쪽의 스키타이 시대 무덤 유형)
흑해 지역의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그 외는 기원전 5세기~4세기 이후의 유적이다. 그래서 알렉세예프는 기원전 6세기의 유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암흑의 시대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앞과 뒷 시기에 비해서 없다는 이야기로 기원전 6세기 유적으로 울스키 아울이 알려져 있다. 11기의 무덤이 있는데, 1898년 2기가 발굴되었고, 1908년에 3기가 다시 발굴되었다. 1898년 발굴된 유적에는 400여필의 말이 순장된 채 발견되었다. 대부분 도굴로 상당히 교란되었다. 1호는 나무로 된 구조물을 넣은 목실무덤으로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과 유사하다고 알려졌다.
그림 1. 1898년에 조사된 1호, 왼쪽: 베셀로프스키의 야장, 오른쪽: 1898년 1호의 단면도
1982년에 조사된 무덤에서는 좀 더 자세한 구조를 알 수 있다. 나무로 된 무덤방이 지상으로 된 구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림 2. 1982년 조사된 1호의 평면도(우), 1호의 복원도
2007년에도 무덤 1기가 조사되었는데, 역시 지상위에 나무 무덤방이 있는 구조이고, 말의 매장이 발견되었다.
그림 3. 2007년 조사된 1호 평면도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등은 나무로 된 무덤의 구조물이 지상으로 세운 것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6세기의 유적에서도 비슷한 구조이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의 유적에서 구덩이를 파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나무로된 구조물만 지상으로 만든 것이다. 기원전 6세기 경에는 지상식으로만 만들어진 무덤방이 확인된다.
Ульские курганы. Культово- погребальный комплекс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на Северном Кавказе.//Corpus tumulorum scythicorum et sarmaticorum. Т. 2//Москва, Берлин, Бордо, 2015(울스키 무덤, 카파카스 북쪽의 스키타이 시대 무덤 유형)
이제까지 보여드린 스키타이 여신인 거울을 들고 있는 여신인 티파티가 표현된 네모꼴의 장식판은 여성의 베일에 달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거울을 들고 있으면서 몸을 돌리고 있는 여성이 있는 긴네모꼴의 장식판은 머리를 장식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착장했을까?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장식판은 긴 베일에 장식된 것으로 모두 58기가 출토되었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주요매장자는 여성인데, 그녀는 장식판에 표현된 모습과 흡사하게 치장되어 매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나온 장식판
그림 2. 무덤에서 나온 장식판, a- 크라스느이 페레콜 22호 쿠르간 2호묘, b-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주요 여성피장자와 출토유물(부분 복원), c-노보셀라흐 쿠르간 4호(기원전 4세기)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고, 베일을 쓰고 있으며 관자놀이에 둥근 장식을 달았고,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착장했고 거울도 발견되었다. 베일에 붙은 장식판에 자신과 닮은 여성이 표현된 있었다(그림 1). 앞머리와 베일 사이에는 삼각형 장식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른 유적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다(아래포스팅 참고).
그림 3.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복원
그림 3에서 이용된 머리장식은 이미 소개한 바 있는데 카라고데야쉬흐 무덤에서 출토된 장식판 자체가 삼각형이기도 했고, 거기에 표현된 여성도 같은 형식의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다.
포스팅(쌍두마차, 1224)
그럼 사하노프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된 긴 네모꼴의 장식판(그림 8)은 어떻게 착용한 것일까?
미로시나는 이 납작한 장식판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미 우리가 본 적이 있는데 아르김파사 가운데 가장 덜 정교하게 만들어진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출토된 여성은 마치 머리를 붕대를 감은 모습처럼 하고 있었다(그림 4). 그리고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또 다른 장식판에는 베일을 쓴 여성이 있는데, 이 여성의 머리스타일(그림 5)은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여성과 거의 비슷하게 끝이 편평하다. 뿐만 아니라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남녀가 등장하는 카펫속에서 여성의 머리장식 모습이 머리끝은 편평하지만 삼각형 장식이 있는 모습이었다(그림 6).
그림 4.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머리장식(기원전 4세기)
그림 5. 체르토믈리크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출토된 황금장식판
그림 6. 알타이 파지리크 5호(기원전 5세기)의 카페트
그림 7. 동유럽 스키타이 머리장식 티아라
그림 8. 사흐노프스키 쿠르간(기원전 4세기)
그래서 머리끝이 편평하며 모자같이 생긴 장식이 있고 그 아래 이마를 가로질러 띠처럼 두르도록 하는 장식이 필요한데 이때에 사용된 장식판(그림 8) 일 수 있다.
그런데 머리끝이 뾰족한 여성모자는 흑해지역에서는 기원전 5~4세기대에 나오지만, 시베리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의 여성에게서 이미 확인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참고문헌
Мирошина 1981 — Мирошина Т.В. Некоторые типы скифских женских головных уборов IV-III веков // СА. №4.(미로시나 1981, 기원전 4~3세기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스키타이 유물에는 의인화된 사람들이 많이 표현되는데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들과 비교되었다. 그 중에서 여신인 아르김파사와 티파티는 각각 기원전 7세기 유물과 기원전 5세기~4세기 유물에서 드러났다.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여성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부터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갑옷 장식판, 귀걸이, 마면장식, 간두령 등 다양한 유물에 표현되었다.
티파티는 거울과 각배가 나오는 의식에서 등장한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 베일에 달려서 장식되었던 것이고, 이 유적의 주인공 역시 여성이다.
거울을 들고 있는 티파티는 측면이 표현된 것이지만,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으로 전면이 표현된 머리장식이 사하노프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되었다. 역시 기원전 4세기 유적이다.
이 유물은 10인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여성을 기준으로 양 쪽에는 남성 9인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성의 좌측에는 뿔잔으로 술을 마시며 의형제를 맺는 장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우측에는 허리에 고리트를 차고 한손에는 지팡이와 각배를 들고 있는 남성이 있고, 그 옆에 하프켜는 사람, 가장 끝에는 커다란 항아리에서 술을 나누어 담는 장면이다.
그림 1. 사흐노프스키 쿠르간 출토 머리장식, 길이 36.5cm, 너비 9.8cm, 무게 64.58g
그림 2. 그림1과 동일
이 장면을 분석한 여러 연구자들은 크게 의례장면, 결혼장면, 장례식과 관련된 모습으로 해석했다. 오래된 연구일수록 의례장면(로스토프체프 1913),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포도주를 마시는 의례장면(아르타모노프 1961)으로 간략하게 분석했다. 왕과 여신 티파티의 신성한 결혼식 장면(라에프스키 2006) 혹은 결혼식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 대상은 아르김파사일 수도 있다고도 한다(베스소노바 1983). 장례식 장면이라고 추정한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스키타이 문화에 국한 하기 보다는 인도-이란 계통의 눈을 넓혔다. 먼저 쿠로치킨은 이란 청동기시대에 비슷한 도상학적인 표현이 있었음을 말했다. 베르티엔코는 인도-이란 장례식에서는 의식의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치러지는 것을 고려해서 이 유물은 주인공의 좌측인 의형제를 맺는 장면부터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2009).
베스소노바가 아르김파사라고 추정한 이유는 체르토믈리크 고분의 티파티가 측면을 향하는데 사하노프스키 머리장식의 여성은 정면을 향해서 오히려 아르김파사와 더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각배를 들고 의식을 치르는 장면(아래 포스팅)은 솔로하 유적에서도 장식판에서 표현된 남성 2인과 매우 유사해서 사흐노프스키 머리장식판의 표현과 같은 의례장면 혹은 일부 일 수 있다.
결혼장면이든지 장례식장면이든지 의례 혹은 명절에 지내는 의식일 수 밖에 없다.술마시고,사람을 죽이고,다른 한쪽에는 악기를 켜는 장면이 함께 묘사된 머리장식판은 스키타이 의례와 관련된 것을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을 것으로 보았다.그렇게 잘 만들어진(세밀한)유물은 아니어서 원래의 작품은 따로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견해(베스소노바1983)이다.
필자가 관찰한 바는 여신이 등장하는 체르토믈리크 유적,노사키 유적의 장신판에는 가장자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는데,그림1의 유물은 하단에만 꽃 장식이 있고 상단과 그 옆에는 구멍만 남아 있어 마무리가 좋지 못해서 다른 방법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또 이 유물은 편평하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머리앞을 장식하기 위한 것으로 둥글게 제작되어야 한다.인물표현도 하고 둥글게 제작하려면 두꺼운 금판은 사용하기 힘들었을 테고 그게 가능한 유기물질로 원판을 제작한 후 이를 금박으로 마무리 했다면 얇은 금박(64.58g)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금박 아래에 원래 판이 따로 제작되고 거기의 조각이 금박에 남아서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금박 위의 표현은 그다지 세밀하지 못했을 수 있다.
비슷한 유물은 가이모노바 유적의 말 굴레장식이다.목판이나 가죽,뼈등 유기물질로 제작한 뒤에 금박을 싸서 만들었는데, 현재는 금박만 남아 있다. 금박에 남은 표현은 원판의 조각에서 찍힌 것이 남은 것이다.
Г. Н. Курочкин. Богиня с зеркалом и герой с секирой (к проблеме антропоморфизации скифского искусства) // Скифия и Боспор. Материалы конференции памяти акад. М. И. Ростовцева. Новочеркасск, 1993.(쿠로치킨 1993, 거울든 여신과 도끼 든 영웅-스키타이 예술에서 인물상의 문제-)
С. С. Бессонова. Религиоз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скифов. К., 1983. (베스소노바 1983, 스키타이 종교의 표현
Д. С. Раевский. Мир скифской культуры. М., 2006. (라에프스키 2006, 스키타이 문화의 세계
М. И. Ростовцев. Представление о монархической власти в Скифии и на Боспоре // ИАК. 1913. № 49. (로스토프체프 1913, 보스포로스 해협 스키타이 군주의 표현)
각배는 무덤 뿐만 아니라 동유럽 초원의 전사석인상에서도 확인된다. 실물자료 보다는 석제 전사상에서 표현된 것이 더 많다. 그런데 각배는 또 다른 상황에서도 발견된다.
기원전 4세기 여성무덤인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황금장식판에는 각배를 들고 있는 남성과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이 표현되었다. 각배를 들고 있는 남성은 긴 머리로 바지를 입고 있으며 여성은 머리에 베일을 쓰고 앉아서 거울을 들고 있다. 여성은 스키타이 신화 속에 나오는 티파티로 보고 있다.
같은 유적에 나온 철제검(그림 2)에는 그리스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는데 어깨를 드러낸 채 얇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 작은 장식판의 여성과 남성은 그리스인이 아니라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스키타이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다.
거울 들고 있는 여성과 각배 든 남성이 있는 장식판은 쿨 오바 유적, 로가치카, 노사키 유적 등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어서 기원전 5세기에 유행한 문양이며, 특정한 의식을 치르는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티파티가 장식된 판(그림 1)은 모두 57개가 발견되었는데, 체르토믈리크 유적(포스팅)의 주피장자의 보라색 베일에 달렸던 장식이다. 그래서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은 사제 혹은 피장자였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