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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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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에 해당되는 글 31

  1. 2023.02.03 여성형상물 전통의 시작: 부활과 다산
  2. 2023.02.01 스키타이 문화권 인간형상물: 전통의 시작에서 극대화 까지2
  3. 2022.10.11 모자와 고대 민족의 정체성2
  4. 2022.10.10 고대 유라시아 여성의 높은 모자
  5. 2022.10.09 고대 여성들의 화려한 머리장식

 

2. 여성형상물 전통의 시작: 부활과 다산(흑해지역)

 

인간은 스스로를 닮은 인형을 ‘인간형상물’을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오스트리아의 빈델도르프?는 ‘비너스’라고 일컬어졌다. 그런데 같은 시대에 유럽 뿐만 아니라 흑해 부근의 후기 구석기 문화와 시베리아의 말타 유적에서도 여성형상물을 주거지에 매장하는 관습이 있다. 흑해 부근에서는 대략 23000년 전 유적인 코스텐키 (Kостенки, Kostenki) I유적(그림 1), 가가리노(Гагарино, Gagarino) 유적, 호틸레보(Хотылево, Khotylevo) 2 유적 등에서 인간형상물이 대거 발견된다. 시베리아에서는 말타 유적 외에도 부레티 유적 등에서 출토된다.

이들 유적은 모두 당시 후기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취락 유적이다.

코스텐키 I유적은 주거지 4기가 발견되었고 그 중에 2기가 발굴조사되었다. 주거지는 타원형으로 장변의 길이가 대략 40m 너비는 일정하지 않지만 가장 넓은 곳을 기준으로는 19m가량이다. 중앙에는 8개의 노지가 일렬로 위치하고 있으며, 문지는 3개인데, 장변의 2/3지점과, 단면의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다. 뿐만 아니라 주거지에는 노지 주변과 주거지 가장자리를 따라서 수혈이 많은데, 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김재윤 2019a).

 

 

인간형상물은 1호 주거지(그림 1)에서만 여성형상물이 102 개가 집중 출토되었다. 여성상은 맘모스 상아로 제작된 것이 4점이고 그 외는 이회암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 전신상으로 머리에 눈코입을 표현하지 않고 가슴과 엉덩이를 매우 강조한 형태이고(그림 2-1), 일부러 훼손한 흔적도 발견된다(그림 2-2). 측면에서 볼 때 등을 구부린 모습이다(아브라모바 1987, 김재윤 2019a). 동시대의 가가리노 유적(그림 2-3)과 호틸레보 2 적(그림 2-2)에서도 여성형상물이 출토된다. 그런데 호틸레보 2 유적의 여성형상물(그림 2-2)은 단순히 살찐 모습이 아닌 임신한 여성으로 알려져서, 다른 형상물들과 구분하기도 한다. 가가리노 유적의 유물은 비만한 앉아 있는 여성이다(가브릴로프, 흘로파체프 2018).

흑해지역의 후기구석기시대 여성형상물은 대부분 주거지에서 출토되며, 남성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시베리아와 대조적이다(김재윤 2019a).

 

 

 

하지만 시베리아에서는 여성형상물에 비해서 숫자가 적고, 간단하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남성들도 형상물로 만들어졌다. 동유럽에 비해서 살찌거나 임신한 여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지 않은 점도 여성을 ‘생산’의 대상으로만 본 것은 아니고 어쩌면 ‘부활’의 의미를 담았다. 말타 유적의 여성형상물은 집 안에 인골과 함께 매장되었고, 무덤 속의 매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집 안에 무덤을 만들어서, 그가 다시 부활하기를 바랬을 수 있다. 미라를 만들었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김재윤 2022a).

 

참고문헌

 

김재윤 20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전통의 시작부터 극대화까지」, 『한국의 고고학』, 5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간 포스팅을 하지 못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자료를 찾지 못했고 등등 핑계가 많습니다. 그래서 2023년 1월 한국의 고고학이라고 하는 계간 잡지에 제가 기고한 글이 발표되어서 올리고자 합니다. ‘한국의 고고학’은 학계의 동향에 맞추어서 당시의 가장 뜨거운 이슈나 주제 등을 기획해서 엮어내는 잡지입니다. 고고학 전문 잡지라기 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내용입니다. 제가 기고한 글은 이미 벌써 2021년도 출판물이 되어 버린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일부 내용은 겹치는 것도 있지만 새롭게 쓴 내용을 더해서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전통의 시작부터 극대화까지」라는 제목이다.

 

I. 왜 ‘미라와 여신상’인가?

2021년 책에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하 스키타이 문화권)의 유물 가운데 왜 인간형상물을 다루었는지를 간략하게(?) 축약한 것이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이 문화권의 대표유물은 동물문양장식이다. 흑해 북안의 조사는 19세기부터 시작되었고, 황금유물이 출토되며 육안으로도 신기한 유적임을 판별가능했던 쿠르간(대형고분)이 그 중심이 되었다. 대체로 기원전 7~4세기의 유적이었는데,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흑해 북안의 이민족 스키타이 사람들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당시에 특별한 연대측정법이 없었던 까닭에 동물문양장식을 근거로 해서 유적의 연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물론 이후에 남겨진 목관이나 목판 등으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치로 세밀하게 조정되었지만 근간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는 다소 복잡한 이름은 시베리아의 아르잔-1호를 발굴하면서부터 이다. 유적을 발굴한 그랴즈노프가 명명한 것인데,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물문양장식은 결국 시베리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흑해지역에서 가장 이른 유적인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에서는 청동거울의 꼭지와 화살통 장식 등에서 몸을 말고 있는 표범장식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표범장식은 이미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져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동물문양장식의 대표 연구자인 페레보드치코바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동물문양장식이 크게 동과 서로 구분된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형상물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필자가 연구해 온 시베리아의 인간형상물은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극대화 된 모습 미라로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 나타난다. 또 동 시기의 스키타이 문화권의 흑해지역 자료에서는 여러 유물에서 여성형상물들이 발견된다. 이들 여성형상물은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들로 비교되어서 연구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21년 저서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 문화권에서 동과 서의 중심지역은 각각 시베리아와 흑해 부근이다. 흥미롭게도 두 지역은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인간형상물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전문은 아니며, 기고된 원고를 바탕으로 간추린 내용이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전통의 시작부터 극대화까지」, 『한국의 고고학』, 58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여성들이 썼던 원통형 모양의 티아라는 이웃한 지역에서도 사용되었다. 우라르투와 페르시아 등지에서도 주로 남성과 그리핀이 쓰고 있다. 아마도 당시에 유라시아에 매우 유행했던 모자였다고도 여겨진다.

 

고깔모자는 스키타이 사람들이 주로 쓰고 다니던 모자이다. 흑해지역의 대형무덤에서 나온 것들은 유기질제 모자(가죽, 천)에 금장식을 붙여서 만들었고 양 옆으로 베일을 달았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고깔모자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발굴되었다. 베일과 장식판의 위치 남은 유물로 보아서 고깔모자를 썼다고 밖에 볼 수 없다(그림 1).

 

그렇다면 삼각장식판으로 고깔모자를 만든 유물은 매우 드문경우이다. 그래서 아마도 트라키아 문화와 매우 관련이 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깔모자는 남성들도 썼다. 실제로 유물로 발견되지 않는데 대부분 썪어서 없어져서다. 대신에 유물 속에 고깔모자를 쓴 남성들이 관찰된다.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 속의 남성, 이웃한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 궁전벽화에도 고깔모자를 쓴 남성들이 나온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출토 예

 

그림 2. 페르세폴리스의 궁전벽화

 

하지만 이들은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물이다.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여성은 사슴장식을 한 고깔모자를 착용하고 있었고, 기원전 5세기에도 그 전통은 이어진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5~4세기 고대 흑해연안에 살았던 스키타이 여성들 중에는 유독 화려한 모자를 썼던 경우가 무덤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 스키타이 칼라프라고 불리는 이마를 가리도록 된 모자를 일컫는다.

 

또 티아라 라고 불리는 유물도 발견된다. 몇몇 무덤에서 발견되는데, 스키타이 칼라프 중에 높은 종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다르다. 유기질제로 된 모자 틀에 장식을 붙여서 만들었고, 상단이 편평하다(그림 3).

 

이들은 실제로 유적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여성형상물에서도 확인된다.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발견된 아르김파사는 티아라를 착용하고 있다(그림 1). 또 비슷한 시기에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속 여성도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데, 티아라와 비슷하다(그림 2).

 

 

그림 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얼굴 위는 단순한 모자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부분

 

그림 3. 크라스니이 페레코프 유적 출토

 

스키타이 칼라프 중에서 메토피드라고 불리는 이마장식을 제외하고는 티아라, 고깔모자, 칼라프 모두 머리 위로 높게 하는 것이 스키타이 여성들의 모자 특징이다. 모자는 높을수록 중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을 보면 고깔모자의 전통은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 흑해 북안에 살던 스키타이 여성들은 다양한 모자를 착용했다. 특히 큰 무덤에서 나오는 여성들은 화려한 모자와 함께 부장이 되었다. 대체로 권력자의 아내이거나 자신이 권력자이기도 하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5개의 모자가 복원되기도 했다.

 

우슨 스키타이 칼라프라고 불리는 모자는 크게 두 종류인데, 앞서서 설명한 앞 이마를 가리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위와 옆에만 구멍이 있는데 베일(위) 및 가죽(옆)에 끼워서 착용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유물을 metopid라고 불린다.  사흐노프카 유적의 유물이 대표적이다. .

 

그림 1. 사흐노프카 유적의 메토피드

 

또 하나는 stlenida이다. 이 것은 길쭉한 장방형 장식판 여러개를 쌓아서 만든 것으로 가장 위의 장식판이 두텁다. 여기에는 관자놀이 장식이 함께 달린다. 이 모자도 이마를 가리도록 쓴다.

 

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스트렌니다

 

그림 3. 스틸렌니다의 착용 예(미로시나 복원)

 

여기서 예전에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 출토된 이마 장식을 stlenida라고 한 적이 있다(포스팅)

2022.08.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 흑해 스키타이 여성의 옷 장식

 

흑해 스키타이 여성의 옷 장식

볼쇼야 블리즈니차는 처음부터 필자의 마음을 끄는 유적이었다. 왜냐하면 유적의 이름 때문이었는데, “큰 쌍둥이”라는 뜻이다. 무덤의 외관을 지역의 주민들이 그렇게 불러와서 생긴 이름인

eastsearoad.tistory.com

 

 

좀 더 정확하게는 stlenida의 부속품으로 이마를 장식했던 부분만 남아 있는 것이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의 주인공은 그리스 칼라프도 쓰고 있었지만 스키타이 머리장식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흑해북안에서 발견되는 머리장식 종류는 스키타이 칼라프 외에도 고깔모자와 티아라 스타일도 있다.

 

스키타이 칼라프는 그리스 칼라프에 비하면, 훨씬 화려하고 복잡하다. 칼라프라는 용어를 구지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이미 오랫동안 사용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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