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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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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과 인접한 지역에서 성채의 모습을 알 수 있고 가장 이른 시기의 성곽 유적으로 알려진 곳은 루보틴 유적이다.

유적의 연대는 탄소연대측정을 못한 경우 혹은 했다고 하더라도 유물과 비교해서 확인한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그 연대 판단의 근거가 되는 유물은 화살촉이다.

 

앞에서 흑해 지역의 시대별 스키타이 문화의 화살촉 변화를 설명한 바 있다(아래 포스팅). 기원전 7~4세기까지 가장 뚜렷한 점은 화살촉 신부의 단면이었다. 단면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기술적인 면과 관련되어 있다. 기원전 7세기의 화살촉은 양익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화살촉으로 날개가 양쪽으로만 있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 이후 부터는 삼익형으로 볼 수 있는 화살촉(그림 1-5~9, 13~19)과 단면이 삼각형인(그림 1-4,10~12) 유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양익형인 화살촉이 있기는 그 중에서 자루끼우는 부분이 없어진 유물(그림 1-3)은 기원전 7세기 유물이 아니라고 한다. 이른 유물과 후대의 유물이 같이 공존하는데, 한 세기는 백년이라는 시간이어서 이 유적을 기원전 7세기라고 못 박기에는 후대의 유물들이 더 많다.

이런 연유로 기원전 7세기 후반(혹은 마지막)에 유적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2021.08.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성곽, 마을, 생산 유적 등] - 돈 강 유역의 스키타이 성곽에서 나온 화살촉

 

삼익형인 화살촉과 단면이 단순히 삼각형인 것은 화살촉의 몸통 형태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전자는 중앙의 자루끼우는 부분에서 날개 부분이 튀어나오도록 부착된 것이다. 자루끼우는 부분이 숨어 있지 않고 나와 있다. 후자는 자루끼우는 부분이 따로 나오지 않고 삼각형 원뿔모양의 화살촉에 자루를 끼우도록 된 것이다. 청동이라서 철제 보다는 타격력에 차이는 있겠지만, 300년 이상 만들어썼다면 나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철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 유물은 무기류는 화살촉만 발견되었고 나머지는 장신구류이다. 사실 유물 가운데 많은 부분은 기능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리는 팔찌, 반지, 귀걸이 등일 가능성이 많지만 그 외에는 단순히 청동유물만으로 용도가 불분명하고 다른 소재(가죽, 직물)와 함께 어떤 기능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림 1. 루보틴 성곽의 청동제품

 

그래서 중요한 것은 청동과 철을 생산한 흔적인데, 이 유적에는 철을 생산한 노와 송풍관, 많은 철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Шрамко Б.А., Люботинское городище. Сборник научных трудов, Харьков: Регион-Информ, 1998. - 184 с (시람코, 1998, 류보틴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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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 드네프르 강 유역의 카멘스코예 성곽은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이다. 유적에서는 청동과 철을 생산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도가니(그림 1), 화덕자리 및 그 과정에서 사용된 철 생산하던 끌과 망치(그림 2)와 같은 역할을 도구도 발견되었다.

 

그림 1. 카멘스코예 성곽에서 출토된 기원전 4세기 도가니편

 

그림 2. 카멘스코예 성곽, 철 끌과 망치

 

유물 가운데는 선철을 가공해서 1차로 만든 철 소재가 발견되었다(그림 3-1~4). 뿐만 아니라 청동 화살촉(그림 3-5)과 청동 솥의 용범(거푸집)(그림 3-6)도 발견되었다. 유적에서는 당연히 청동과 철로 된 화살촉(그림 4)이 있다.

 

 

그림 3. 카멘스코예 성곽, 1~4: 1차 철 소재, 5-청동화살의 거푸집(편), 6-청동솥의 거푸집(편)

 

그림 4. 카멘스코예 성곽, 화살촉, 1-12: 청동, 13~15: 철제품.

 

청동으로 된 화살촉은 1점을 제외하고는 청동화살촉의 형태는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단면이 삼각형이며, 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튀어나오지 않은 것(그림 4-2~7, 9, 12)과 약간 바깥으로 돌출한 화살촉이다(그림 4-8, 10). [물론 이외에도 화살촉 신부(몸체)에는 홈이 있지만 이는 부차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화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루와 결합되는 부분이다]

자루 끼우는 부분이 외부로 길게 튀어나온 청동화살촉 1점(그림 4-1)은 가지가 붙었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있었던 형태이다.

 

철제 화살촉(그림 4-13~15)은 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청동에 비해서 길다. 아마 소재에 의한 차이로 인해서 생겼을 것 같다.

 

카멘스코예 유적에서도 동물장식은 발견되는데 독수리 머리(그림 5-2), 사자머리(그림 5-3) 등이 발견되었다. 사자머리는 청동팔찌의 끝에 붙은 것이고, 독수리 머리는 정확하게 어디를 장식한지는 알 수 없지만 은제품이다. 재갈멈치를 장식했던 발톱(그림 5-1)도 순동제 유물도 발견되었다. 사자다리 모양의 청동도장(그림 5-5)도 발견되었는데, 금제 장식판을 만들 때 사용된 것이다.독수리 눈모양이 달린 철제 장식품(그림 5-6)도 있다.

 

그림 5. 카멘스코예 성곽의 동물장식

 

카멘스코예 성곽에서 출토된 유물은 철기와 청동을 가공하기 위한 유물 외에는 동시기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화려한 동물장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철과 청동을 실제로 생산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청동생산 가운데 화살촉을 제외하고는 다른 청동무기 제작은 보이지 않고, 대신에 장신구와 솥 등을 생산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이전과 청동을 사용하는 범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직접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Граков Б. Н. Каменское городище на Днепре //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по археологии СССР. М., 1954. № 36(그라코프 954, 드네프르 강의 카멘스코예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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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3. 3. 12:30 스키타이 무기

 

유라시아 초원 스텦 지역의 북쪽 산림 지역에서도 유명했던 스키타이 화살은 알타이의 남쪽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동쪽의 평지 고분에서도 나타난다. 카자흐스탄의 유적은 주로 동쪽과 서쪽에서 많이 확인되는데, 예전의 수도 였던 알마티 부근에서 많이 확인된다. 그곳은 천산산맥의 자락이다. 하지만 알타이와 천산산맥 사이 구간은 평지인데, 중국의 신강성과 접경을 이루며, 이곳에서도 스키타이 문화의 지역문화(사카문화)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유적 중에 하나가 실릭티 유적이다. 이 무덤이 유명한 이유는 물론 황금 사슴장식(그림 1)과 호랑이장식, 새 장식 등 황금 유물 덕분이다.

 

 

 

그림 1. 카자흐스탄 실릭티 유적의 청동 화살통의 장식판

 

그런데 사슴장식은 화살통을 장식했던 것이다. 청동화살촉 8점(그림 4)을 황금 사슴 4마리가 달린 가죽 화살통(그림 2,3)에 넣어서 무덤에 부장했었다. 청동화살촉의 평면형태는 마름모 모양에 가까운데(혹은 사다리꼴) 정확하지는 않다. 중앙에 능이 선명하며 양쪽으로 날개가 있다. 이런형태는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그림 2. 출토 당시의 청동화살촉과 장식판

 

 

 

 

그림 3. 그림 2와 동일

 

 

 

그림 4. 카자흐스탄 실릭티 유적의 청동 화살촉

 

앞에서 필자가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청동화살촉을 설명하면서 그림 4와 같은 단면형태만 스키타이 문화의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명백하게 잘못 설명한 것이다(아래 포스팅에서 붉은 색 표시를 한 것은 켈레르메스가 아닌 오히려 카자흐스탄 유물과 가장 비슷한 것이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화살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발견되는 것이다.(화살촉 단면의 모양, 이 부분은 따로 설명하겠다.)

 

2021/03/02 - [볼가 중류: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동물장식] - 유라시아 고대 미사일-스키타이 화살

포스팅

 

 

사슴장식판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다. 흑해지역의 사슴과 비교한 것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도 화살통을 황금으로 장식한 예가 있는데, 양 지역의 것을 비교해서 과연 어떤 유물이 더 빠른가 하는 것이다.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가 동쪽 그 어디선가 왔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구체화 하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유적은 그 대상지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황금장식판도 장식이지만, 화살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사실 이점은 스키타이 문화지역에서 보다도 이웃한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것 같다. 이미 여러 번 말한 바 있지만 헤로도투스의 기록이나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벽조각에서 발견된다.

또한 실린더모양의 토제 도장(그림 5)에서도 고깔모자를 쓴 스키타이 2명의 궁수들이 활을 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체르넨코 1965).

 

 

 

그림 5. 실린더 모양의 도장에 묘사된 스키타이 궁수,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 기원전 5세기로 추정.(얀센코 2012)

 

이들이 남겨놓은 기록의 공통점은 동물문양 없이, 스키타이 화살통인 고리트의 특징을 뚜렷하게 그린것이다. 자동차가 좋아야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다. 자동차의 엠블렘만 보고 차를 사는 사람은 없다. 물론 엠블렘이 예쁘면 구매욕구가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동물장식은 화살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했을 것이지만 스키타이 화살에 대한 믿음은 정확하게 목표물을 맞추는 역할에 충실했기 생겼을 것이다.

 

참고: 실린더모양 도장

 

 

 

ru.wikipedia.org/wiki/%D0%A6%D0%B8%D0%BB%D0%B8%D0%BD%D0%B4%D1%80%D0%B8%D1%87%D0%B5%D1%81%D0%BA%D0%B0%D1%8F_%D0%BF%D0%B5%D1%87%D0%B0%D1%82%D1%8C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С.А. Яценко, Несколько изображений скифов в греческом и персидском искусстве//Батыр. Традиционная военная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Евразии 2012 №01-02 (4-5)(얀센코, 2012, 그리스와 페르시아 예술에서 발견되는 스키타이 표현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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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의 우육고원에는 30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었다. 아르잔-1호에서 대략 9km 떨어진 곳에는 2호라고 불리는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2호는 비교적 최근에 발굴된 대형무덤이고, 알타이의 유적들에서 확인되는 유물이 황금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문데, 황금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앞에서 본 우코크 고원과 파지릭 계곡의 유적은 나무를 금박으로 싼 유물이어서, 대부분 출토될 때 이미 금박이 벗겨진 상태여서 잘 남아 있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파지릭문화 유물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르잔-2호에는 금판을 이용하거나 금을 아플리케처럼 잘라내서 철제에 덧 입힌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앞에서 설명드렸던 아플리케 장식은 주로 가죽이나 펠트를 일정한 동물모양으로 오려내서 덧붙여서 만들었다. 예를 들면 얼음공주 무덤 속에 있던 일종의 펠트로 만든 레깅스의 허벅지 끝에 붙은 장식이라던지, 통나무관에 붙어 있던 화려한 뿔이 있는 사슴장식은 가죽을 잘라내서 붙인 것으로 가죽 아플리케 장식이다.

 

그런데 아르잔-2호에는 금박을 싼 형태가 아닌 얇은 금박을 잘라내서 철제유물에 덧 붙인 금 아플리케 유물이 출토된다. 특히 철검과 철촉 등 무기에 많이 장식되었다.

 

아직 설명드리지 않았지만,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녀는 5호 무덤방에 묻혔는데, 인골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남성 인골 주변에서는 화살통(고리트)에 활과 시위가 담긴 채로 출토되었다.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 등에서는 주로 활은 골제로 제작되었지만, 아르잔-2호에서는 철제(그림 3-1~11), 청동제(그림 3-12), 목제(그림 3-14) 등으로 제작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5호 무덤방의 남성, 남성의 어깨 왼쪽 끝에 화살통의 끝이 보인다. 

 

그림 2. 아르잔-2호, 5호 무덤방의 남성 왼쪽 어깨부위에 놓인 고리트(화살통), 활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중에서 금 아플리케 장식을 화살촉이 주인공 남성의 왼쪽 어깨 부위에서 출토되었다(그림 1, 2). 화살촉에 덧붙인 아플리케 장식은 금(그림 3-1)도 있지만, 금과 은을 같이 붙인 것도 있다(그림 3-2~11)

화살촉의 크기가 길이 4.1cm, 너비 1.3cm 안에 뿔이 달린 영양 혹은 산양이 새와 함께 표현되었다. 새의 신체가 전부 드러난 반면에 뿔이 있는 동물은 머리만 보여서, 새가 산양을 공격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삼면이 같은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화살촉의 단면은 삼각형이고, 자루를 끼울 수 있게 홈이 안으로 들어가 있다.

같은 모양으로 금과 은을 함께 상감한 화살촉은 일종의 새 날개 혹은 소용돌이를 형상화 했다. 기하학적 모양에 가까운데, 같은 무덤방에서 함께 출토된 산양과 새가 표현된 유물과 관련을 시킨다면 새의 날개로 볼 수 있다.

금 장식만 삽입한 화살촉은 소재는 하나이고, 표현된 동물은 2 마리, 금과 은을 사용한 유물은 소재는 2개, 표현물은 1개이다.

 

이 유물은 철제 화살촉 면에 홈을 파고 얇은 금(은과 함께) 줄 혹은 금판을 삽입해서 망치로 두드려서 제작되었다. 이 방법은 아르잔-2호의 다른 무기에서도 관찰된다.

 

그런데 그림 2는 화살통과 활의 자루는 보이지만, 그림 3과 같은 유물은 관찰되지 않는다. 발견당시에 이 유물은 금속산화물 덩어리로 흙과 함께 형태가 없는 덩어리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보존 처리실에서 처리한 것이다. 흙과 금속산화물을 다 뜯어내자 드러난 홈에 현대의 금과 은(일부)으로 복원한 것이다(그림 3).

 

그림 3. 아르잔-2호의 5호 무덤방 출토, 활(금 상감-1, 금과 은 상감: 2~11)(철제 1-1~11,13, 청동:12, 목제:14)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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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2호분은 8살 소년의 무덤이다.

8세이지만, 어른과 거의 같은 복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아래 포스팅에는 소년을 복원한 그림을 알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인 고깔모자, 바지 뿐만 아니라 허리띠도 착장 했다.)

 

2020/02/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 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스키타이문화의 8세 소년무덤부장품

2500 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스키타이문화의 8세 소년무덤부장품

러시아 알타이 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2500m가량의 우코크 고원에는 아크 알라하라고 불리는 강 줄기를 따라서 대략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들이 묻혀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아크 알라하’ 유적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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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청동칼, 투부, 화살 등 무기류도 함께 부장되었다.

 

재밌는 점은 화살이 담기었던 고리트는 없어지고, 화살촉만 소년의 발끝에서 8점 확인되었다.

화살촉은 뼈로 만들어졌고 화살꼬리와 활은 이미 없어졌다.

화살은 크기가 3cm 가량이고, 단면은 삼각형이다.

 

그런데 이 화살촉은 소년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어른무덤에서 출토된 화살촉과 어떻게 다른지?

 

앞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화살촉은 아래 포스팅에서 볼 수 있다.

 

2020/02/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15~16세의 남성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뭍힌 통나무관이 출토되었다. 소년의 관에는 동물문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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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은 거의 유사하고, 단면도 삼각형이다.

그런데 1호분에서 출토된 것은 길이가 6.5cm이다. 부장된 촉의 개수도 차이가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소년의 화살촉은 성인용에 비해서 1/2크기인데, 체격에 맞게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년이 실제로 활과 화살촉을 들고 사용했는지는 모르겠고, 또 부장용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흥미로운 점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2호분 화살촉은 모두 뼈로 제작되었다.

 

크기는 다르지만 모양과 소재가 같은 화살촉 외에도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과 2호분의 공통점은 귀걸이 한쪽이다. 1호분에는 15~16세 남성과 45~50세 남성, 2호분은 8세의 남성인데 모두 귀걸이를 한쪽 씩만 착용했으며 오른쪽 이다.

 

8세 소년의 귀걸이는 어디서 본적이 있는 것 같지 않으신지?

 

소년의 귀걸이와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의 15세 소년의 귀걸이가 거의 유사하다.

 

2020/02/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 년 전,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45세 남성전사

2500 년 전,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45세 남성전사

2500년 전 유라시아 전 지역을 휩쓸고 다녔던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묻혔는데,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여성과 동시대의 인물이었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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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링에 그 아래에 작은 링이 붙어 있고, 불꽃 모양을 거꾸로 한 듯한 모양의 펜던트가 붙어 있다. 펜던트의 중간은 소용돌이를 도려내었다. 금제품이다.

 

친자관계는 DNA 분석을 한다면 알 수 있겠지만, 자료를 찾았으나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면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들만 귀걸이를 착용했을까?

 

사실 시베리아에서는 남성들이 귀걸이를 착용하는 예가 많다.

스키타이 문화 이전인 청동기시대 안드로노보문화, 카라숙문화에서는 청동유물이 많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유물중에 하나가 청동으로 만들어진 귀걸이다. 단순하게 둥근 링만 있는 것, 그 아래에 펜던트가 달린 것 등 다양하다.

 

요즘 남성들은 자신을 꾸미는 도구가 시계, 넥타이 정도이고 커퍼스 단추, 팔찌, 목걸이 등도 착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귀걸이 하는 남성을 욕하는 경우가 있었던 시기도 있는데, 생각보다 한쪽 귀걸이를 착장하는 습관?은 오래되었다.

 

금속제라는 소재로 한정하면 귀걸이 보다 더 오래된 금속제 장신구는 반지이다. 순동시대부터 있었다. 물론 남성 혹은 여성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시베리아의 순동시대인 글라스코보 문화에서는 아주 작은 소형의 순동유물이 나오는데, 아무런 장식없는 둥근반지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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