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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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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과 서를 연결하는 해서 동해로 들어가는 길목이 있는 중요한 집수구역이다. 이곳에는 2개의 길이 있고, 체레무호바야 집수지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첫 번째 길은 루드나야 강 유역에서부터 고루부샤 고개를 넘어서 체레무호바야 집수지로 들어오는 길이다. 이 강의 중류역에는 체렘샤니 발해 성곽이 위치하고 있다. 또 다른 길은 아무르 강 유역과 관련되었는데,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과 연결되고, 연해주의 대륙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산의 문지 역할을 하는 곳은 포드네베스느이 성곽이다. 이 길은 볼쇼야 우수르카 강과 이르티스 강과도 관련되어 있으며, 거의 드지기토프카 강의 상류와도 연결된다. 체레무호바야 강 하류는 루드나야 강의 지류와 합쳐져서 드지기트 만의 바다로 들어간다. 이 강 유역의 전체 길이는 70km 정도이다. 이 강의 길에는 발해 성곽과 동하국 성곽이 (포드네베스나야, 드지기토프스코예, 쿠날레이스코예, 크라스노예 오제로, 클류치 성곽) 지키고 있다


왜 드지기토프카 강의 좌안으로 길이 지나갔을까? 고개성 산지성인 포드네베스느이 성곽에서 출발한 도로는 지금도 이 강의 좌안을 따라 나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는 드지기토프스코예 성곽과 쿠날레이스코예 성곽이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쿠날레이스코예 성곽에서 출발한 길은 드지기토프카 강 하류에 위치한 크라스노예 오제로와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한 클류치 성곽까지 강을 따라서 갈 수 있었는데, 가장 짧은 길이다. 그 길이가 8km를 넘지 않는다. 그 길은 지금도 일부구간이 남아 있다. 클류치 성곽은 드지기토프카 강의 좌안에 위치하는데, 드지기트 항구를 지키는 역할을 하며, 강의 하류를 통제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발해시기 까지 바다와 가까운 언덕의 아래쪽에 성지를 축조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석호가 확인되는 곳이다.

따라서, 드지기토프카 강 유역의 교통로는 선사시대 부터 확인된다. 남쪽의 루드나야 강은 체레무호바야 고개를 통해서 연결되었고, 서쪽은 포드네베스카야 고개를 넘어서 아무르 강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림. 드지기토프카강과 세레브랸카강 유역의 위치



 http://세레브랸카 강 유역의 석성 1.

위를 참고하면 세레브랸카 강 유역의 성곽 위치를 좀 더 자세히 알수 있다.


4)세레브랸카 강 유역


아르세네프는 하룻밤에 테르네이 항구에서 시호테 알린 산맥을 넘어 아무르강 유역의 이만 강 까지 갈 수는 있지만 매우 힘들었다고 기록했다. 세레브랸카 강은 세 곳의 고개에서부터 출발한 강이 하나로 합쳐진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콜룸베 수원지는 볼샤야 우수르카 강의 우안 지류로서, 이곳도 교통로라고 하는데,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첫째로 고개에는 성곽이 없고, 두 번째 주변의 대부분 고고학 유적과 성곽은 세레브랸카 강 유역의 중류와 하류역이나 좌안 지류인 자볼로첸나야 강 유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2개의 석성 유적(자볼레첸나야 성곽과 스미리코프 클류치 성곽), 세레브랸카 강 하류에는 청동기시대의 취락마을 유적인 미스-스트라시느이 유적이 있다. 고고학 유적을 바탕으로 교통로를 복원해 본다면 세레브란캬 강의 하류에서 출발해서 자볼레체나야 강 하류쪽을 돌아서 북쪽으로 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사할린 고개를 넘으면 콜룸베 강에 다다르고, 그 다음 볼쇼야 우수르카 강과 아무르강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르세네프는 세레브란캬 강의 하류에서 타요시나야 강의 하류까지 가는 길이 있다고 했다. 이 길은 산을 넘어가는 것으로 현재에도 바다로 통하는 길이 있다. 이 길의 흔적은 아마도 터널, 보초시설, 표식 등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세레브랸카 강 유역에는 2개의 육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하나는 세레브랸카 강의 하류에서 자볼레첸나야 강을 지나 사할린 고개를 통해 아무르 강까지 연결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세레브란캬 강 하류에서 타요시나야 강까지 연결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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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그 중 곶 성은 부채꼴 모양의 궁형성, ㄷ자형, 부정형으로 구분된다. 



(3) 폐쇄형 성곽

성벽이 사방으로 다 돌아가는 형태인데 고르노레첸스코예-3, 우스티-일모, 소욘스코예 성지등이 해당된다. 이 성지의 평면형태는 2개로 다시 나눌 수 있는데, 방형과 다각형 평면형태이다.

 

A. 방형 성곽

사각형 평면형태는 우스티-일모, 소욘스코예, 성곽이 해당되는데, 평면크기는 소형으로 단구대나 혹은 언덕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대체적으로 성벽의 모서리가 4개인 사각형 평면형태다

(우스티 일모 성곽의 평면도 모습은 이미 포스팅 한 바 있다. http://케마 강 유역의 성곽 1)

평면형태는 단순하고, 내성, 보루와 장대 등이 없다. 성벽에는 치가 없으며 우스티 일모 성지에서는 좀 더 방어가 필요한 곳에는 부가성과 해자를 설치하였는데, 문지에는 특히 적대를 설치하였다. 토석 혼축성벽으로 부분적으로에는 돌을 비스듬하게 쌓았다. 취락을 방어하는 용도로 축조되었다. 지표조사된 유물로 판단컨대 폐쇄형 방형 성곽은 발해의 늦은 시기로 9세기를 올라가지 못하며, 발해이후의 가능성도 있다.

기원. 평지의 방형성을 새로운 입지조건 위에서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B. 다각형 성곽.

고르노레첸스코예-3 성지로 문지가 없다.(http://제르칼나야 강 유역의 성곽: 고르노레첸스크-3 유적)

평면형태는 단순한데, 육안으로는 어떤 시설물도 확인되지 않는다. 평면형태는 오각형이다.

성벽의 축조방법. 치가 없는 석성으로 높이는 0.5m정도이다. 용도는 제르칼나야 강 유역을 통제하는 보호 감시용이다. 문화의 특징과 연대는 유물이 부재하기 때문에 평면형태로 밖에 판단할 수 없는데 발해의 평지성과 비교해 볼 수 있다.

 

곶 성은 모두 세 개의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궁형 성, ‘자형 성곽, 폐쇄형 성곽 등이다. 연해주 북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은 궁형성이다. 이곳에는 처음으로 기원전 10세기 쯤에 청동기시대의 리도프카 문화인이 살았는데, 그들을 원주민으로 부를 수 있다. 거의 변화하지 않은 형태로 중세시대 초기의 퉁구-만주족(말갈)도 유사한 성곽을 축조하였다. 그러나 곶 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성공적으로 발달시킨 것은 동하국의 여진족인데, 험준한 곳을 그대로 이용하는 입지선정에 중국 건축 기술을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곶 성 성곽의 형식에서 새로운 것으로 따로 분리했, 평지성이나 산지성과는 다른 입지에 세워진 성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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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3) 곶 성



설상으로 뻗은 곶 위에 위치하는데, 청동기시대(리도프카 문화와 다른 문화) 20곳과 말갈과 발해문화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평면형태에 따라서 궁형성, ‘자형 성, 부정형 폐쇄형 성곽으로 구분된다.

  

그림. 우스티-벨렘베 3중 토석성(곶 성중 궁형성에 해당된다)



(1) 궁형 성

이 형식의 성지는 자연의 입지에 따라서 성벽의 평면형태가 궁형모양이다.

이 형식은 곶 성 가운데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모두 16개의 성지가 해당된다. 고르노레첸스코예-1, 고르노레첸스코예-2, 우스티-제르칼노예, 두브로빈스코예, 켐스코예-스칼리스토예, 미스 알렉산드라, 우툐스노예, 쿠댜, 데두시킨 클류치, 미스 테플리이, 쿠즈네프스코예, 오아시스, 미스 스트라시느이, 우스티-페야, 에딘킨스코예, 우스티-벨렘베 성곽 등이다.

. 평면형태. 성은 장대, 보루와 내성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이다. 미스 스트라시느이, 우스티-제르칼노예와 같이 자연적 단구대 위에 취락을 경계 짓기 위해서 축조되었다. 성의 평면형태는 개방형으로 궁형인데 모두 가 다르다. 성지 가운데 가장 큰 곳은 미스 스트라시느이(28,000)이고 가장 작은 곳은 우스티 제르칼노예(15,000) 유적이다.

. 성벽의 축조방법. 이 형식의 성은 매우 단순한데 성벽은 다음과 같이 축조된다.


토성벽(쿠즈네쵸프스코예 성벽)

토석혼축벽(미스 스트라시느이, 미스 테플리이, 쿠댜, 우툐스노예, 케므코예-스칼리스토예, 우스티-제르칼노예, 두브로빈스코예)

돌로 비스듬히 쌓고 흙으로 채우는 성벽(고르노레첸스코예-1)

토석 혼축벽이 기본이고, 돌을 깔아 놓은 곳이 있는 성(우스티-벨림베)

석성(데두스킨 클류치)

성벽의 높이는 0.3~1.5~2m가량이다.

성벽에는 해자가 있는데, 성벽을 쌓을 때 이 해자로부터 흙을 퍼 올렸다. 해자의 깊이는 1m를 넘지 않는다.

 

곶 성의 문지는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단순 절개면(미스 스트라시노예)

부가성에 설치된 문지(미스 테플리이, 쿠즈네쵸프스코예)

문지가 없는 것

 

. 용도. 모든 성은 취락용이고 취락을 경계하며 방어하는 역할이다.

. 특징과 연대. 평면형태 궁형의 곶 성은 최소한 세 개의 고고문화와 관련이 있고 청동기시대 및 중세시대와 관련이 있다.

A. 청동기시대의 성. 모두 9개가 해당된다(우스티-제르칼노예, 두브로빈스코예, 켐스코예-스칼리스토예, 미스 알렉산드라, 우툐스노예, 쿠댜. 데두시킨 클류치, 스트라시노예, 우스티-벨렘베 등이다).

강의 하류와 해안가에 위치한다. 시굴이나 지표조사에서 출토된 고고유물은 대부분 리도프카 문화의 것으로 생각되며, 탄소연대에 따라서 기원전 10세기 후반으로 생각된다(미스 스트라시느이, 우스티-제르칼노예, 두브로빈스코예, 쿠댜, 우스티-벨림베 유적).

우툐스노예 성터에서는

지두문이 찍힌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아무르 강 하류의 초기 철기시대 문화인 우릴 문화의 특징을 보이는 것도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서 청동기시대 말기에는 아주 복잡한 상황이었다. 리도프카 인은 내륙이 주요 거주지인이다. 하지만 이들이 강 하류와 바다의 항구 등에 성곽을 지은 것은 적으로부터 막기 위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해안가에 살던 사람은 얀콥스키 인인데, 많은 리도프카 문화에서 그들의 흔적이 확인된다(블라가다트노예-3, 쿠날레이스코예 성지의 5~7번 유형 등)

또한 아무르강 하류의 우릴문화가 확인되는 것은 이 지역까지 아무르 내륙인이 왔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 이주민들은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그들의 고향인들은 짓지 않았던 성지를 축조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아무르강에서 우릴문화의 성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B. 중세시대의 성지.

연해주 동북지역에서 곶 성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말갈과 발해문화의 것이 있다.

말갈문화의 성곽 평면형태 궁형으로 강과 바다의 곶에 설치되는 된다(미스 테플리이, 쿠즈네쵸프스코예, 오아시스, 에딘킨스코예 성지).

유적의 입지는 강의 중류(쿠즈네쵸프스코예), 해안가 단구대(미스 테플리이, 오아시스, 예딘킨스코예 성지)인데, 이 곳은 방어나 보호가 필요한 교통로의 문지역할을 하던 곳이다.

대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말갈성곽으로 확인되었고, 성벽은 다른 어떤 돌을 섞지 않은 순수한 토성(쿠즈네쵸프스코예 성곽)과 이러한 성벽에 문지를 설치하는 성(미스 테프리이 미스, 쿠즈네쵸프스코예 성곽)이 있다.

성 내부에서 시굴조사 되거나 지표조사 된 말갈유물은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 중국 동북지방에서 확인되는 말갈문화의 것과 같다. 그 중에는 북한의 동북지역에서 확인되는 것도 있고 사할린과 일본의 홋카이도에서 출토되는 유물도 있다. 발해는 말갈족을 밑바탕으로 세운 국가로 9세기 까지 오랭캐를 현과 주로 편입시킴으로써 스스로의 땅으로 편입시켰다. 당연히 이러한 발해의 정치는 말갈족과 고아시아족 등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미스 테플르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블라고스로베노예-2(Благословенное-2, Blagoslovennoye-2), 쿠르쿠니하(Куркуниха, Kurkuniha), 툰젠(Тунжэнь,Tunjeni) 등에서 출토된 토기와 비슷하다. 이들 유적의 절대연대 측정 결과 4~5세기에 해당된다. 이는 말갈문화의 것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황은 말갈인과 고아시아인 모두 이 유적을 이용했던 미스 테플리이 유적만이 유일하다.

제르칼나야 강 유역의 고르노레첸스코예-1과 고르노레첸스코예-2 유적은 발해시기의 곶 성에 해당된다. 고르노첸스코예-2 유적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분소에서 연속발굴을 하고 있고, 발해의 것으로 규명하였다. 이 두 성지는 소형(25004000)이고 장대, 보루와 내성 등이 없는 성지로 취락용으로 취락을 방어하기 위해서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곶 성은 원주민(말갈인)의 축조기법을 따르고 있다. 여기에 말갈 성지의 존재는 그들이 9세기 어느 때 쯤 발해국가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을 판명할 수 있다.

중국 사서에 따르면 이러한 성곽은 축조시 지역 기술자나 혹은 군인 들이 지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 중에서 가장 큰 주민 집단 마을이나 성을 주 혹은 현으로 불렀을 것이다(보로비요프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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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가 강은 연해주에서 큰 강 중에 하나이다. 이 강의 수원지는 시호테알린 산맥에서 발원하는데 거의 호르 강과 우수리 강 유역과 접하고 있다. 이 강 수계의 길이는 515km이고, 강의 흐름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타타르만으로 흘러들어간다. 이 강의 집수지 너비는 7,760,000이고, 강의 길이는 212km이다. 수원지에서 하류까지 길이는 1080m에 달한다. 이 강의 좌안 지류는 다그디(Дагды,Dagdy) (길이 70km), 모이(Мои,Moi)(길이 45km), 이시미(Исими,Isimi)(길이 45km), 아그주(Агзу, Agzu) (길이 30km), 우안의 지류는 호타게(Хотаге, Khotage), 푸히(Пухи,Pukhi) (길이 60km), 쿠크시(Кукси,Kuksi) (길이 30km), 볼샤야 소하트카(Большая Сохатка, Bol'shaya Sokhatka(길이 36km), 부르리바야 강이다. 사마르가 강 유역에서 가장 넓은 부분의 너비는 105km, 길이는 140km 이다.

사마르가 강의 집수지는 예딘카, 코피 강, 안뉴이(Анюй,Anyuy) , 보트치(Ботчи,Botchi ), 넬마(Нельма,Nel'ma ), 브토라야 사마르가(Вторая Самарга,Vtoraya Samarga ), 호르, 아디미(Адими, Adimi), 루드자(Лудза, Ludza) 강과 접한다.

사마르가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시켜주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북쪽과 남쪽도 연결시켜 주고 있다.

사마르가 강 유역에서는 사마르가-6으로 명명된 자연방어적인 성격이 강한 유적과, 고라 쿠르굴나야 성곽이 알려져 있다(그림 127, 30페이지).

 

그림 127. 사마르가 강 유역의 성곽 위치도(57, 사마르가-6, 58-고라 쿠르글라야 성곽)

 

1) 사마라-6 토성(루체이 죨타야)

사마르가 강의 지류인 죨타야(Желтая, Zheltaya) 냇가에서 700~800m 아래로 떨어진 곳으로, 사마르가 마을에서 9km 떨어진 곳으로 사마르가 강 좌안의 절벽 가장 끝에 위치한다. 토성은 아주 높은 곳으로 사마르가 강의 계곡과 하류가 모두 보이는 곳에 입지하고 있다. 절벽의 오른쪽으로 가장 끝에는 그 꼭대기의 끝으로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돌로 덮여 있다. 이 절벽은 돌머리 산으로 불리는데, 사마르가 강을 기준으로 높이 60m정도이다. 이 절벽의 북쪽으로 서에서 동쪽으로 성벽이 축조되어 있다(그림 128).

이 절벽의 시작지점에서부터 성벽까지는 70~77m이고, 성벽의 전체길이는 97m, 높이는 0.5~0.5~1m이다. 기저부의 너비는 3~4~4.5m이다. 성벽은 부채꼴 모양으로 휘어진 것인데, 돌을 섞은 흙으로 축조되었다. 최소 0.5m부터 다양한 크기의 돌을 사용하였다. 흙은 해자로부터 퍼 올린 것이다. 해자는 성벽을 따라서 안쪽에 있으며, 깊이는 0.5~0.7m,너비는 1~1.5m~2m이다. 성벽은 매우 단순하며 문이 없다.

 

그림128, 사마르가-6 성곽



성벽에는 치나 다른 집석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사진 65, 그림 128)

환호의 내부는 단순한 편인데, 너비 3~4m, 깊이 0.4~0.5m의 수혈이 4기 확인된다. 동쪽의 2번 수혈은 방형으로 4벽은 동서남북 방향과 일치한다. 동쪽벽면의 토층은 다음과 같다.

 

표토-0.07~0.10m

노란색 간층과 숯과 돌이 혼입된 베이지색 사양토층(문화층)-0.35m

시굴 구덩이에서 북동과 남동쪽 모서리의 깊이는 부식토층을 기준으로 0.20~0.25m이다. 청동기시대 리도프카 문화의 토기와 석제의 자귀 등이 확인되었다(그림 129).



  

그림 129. 사마르가-6유적의 출토품


  

사마라-6번 토성은 산성으로 성벽의 평면형태는 궁형이고 크기는 소형이다. 성벽은 돌과 흙을 혼합했는데, 평면형태는 매우 단순하고 내부는 편평하다. 치와 보루, 내성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리도프카 문화의 것으로 기원전 10세기 정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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