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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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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무덤의 벽과 바닥에 깔았고, 고대인의 옷의 주요 소재였던 펠트는 유목민의 발명품이었다. 기원전 3천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에 이에 대한 언급이 알려져 있다. 펠트는 양을 길들인 후부터 발명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소재는 시베리아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에서 더 인기있는 소재였다.

 

펠트는 양털을 실로 만들어 직조하는 것이 아닌 높은 온도에서 압력을 가해서 만든 텍스틸이다. 봄에 자른 양털은 길기 때문에 실로 만들어서 직조하기 좋고, 가을에 자른 양털은 비교적 짧기 때문에 펠트 만들기 적합하다. 펠트는 양실로 만든 직조물보다 훨씬 마찰력에 강하다.

 

펠트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털을 납작하게 눕히도록 하기 위해서 두드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납작한 여러겹의 펠트를 여러 층으로 쌓고 이를 고정시키기 위해서 물이 필요하다. 물을 준 후에 카펫처럼 단단하게 말아서, 누르거나 발로 차거나 해서 롤을 단단하게 만든다.

 

펠트는 무덤 바닥의 깔개와 벽의 장식으로도 사용되었다. 바닥의 깔개로 사용된 것은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그대로 나왔고, 벽의 장식용으로 사용된 문양이 화려한 것은 파지리크 유적 5호묘의 것이 유명하다. 이 외에도 사슴털로 채워진 안장의 쿠션, 안장의 덮개, 모자, 후드가 달린 상의, 스타킹, 말 머리 장식 등 매우 많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양모 뿐만 아니라 야크의 털도 이용되었는데, 파지리크 2호와 5호묘에서 출토되었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의 5호 출토품, 펠트로 만들어진 벽장식 카페트. 카페트 속의 남성과 여성은 같은 민족이 아니어서 더 눈길을 끈다.

 

 

 

무덤만드는 기술에 이용된 나무를 결구하는 방법과 펠트를 제작하는 방법은 결국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것이었다. 필자가 소개한 알타이의 유적 가운데 미라가 나오는 무덤은 극히 일부이고 파지리크 유적, 바샤다르, 투엑타 유적과 같이 화려하고 많은 부장품의 경우도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해발 2500m의 우코크 고원에서 발견된 아크 알라하 3, 베르흐 칼쥔II유적, 추야 계곡의 수많은 기원전 5세기 사람들은 대부분 무덤 부장품이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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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시베리아에서 무덤 속에 나무방을 지었다.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로부터 시작된 나무 다듬는 기술은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유적까지 이어진다.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집과 관련된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서쪽에서는 성벽을 아주 튼튼하게 쌓은 성곽 유적들이 드네프르강 주변에 빼곡하게 발견되었다. 필자가 이는 이미 포스팅 한 바 있다.

 

시베리아 스키타이 사람들은 헤로도투스가 말한 것처럼 집도 없었을까?

하지만 시베리아 미누신스크 분지의 보야르 암각화 유적에서는 집을 그린 것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타가르 문화(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미누신스크 지역문화)에 해당하며, 가장 늦은 기원전 4세기 가량의 유적으로 알려졌다.

 

 

그림 1. 시베리아 미누신스크 보야르 유적의 말라야 보야르 지접, 볼사야 보야르와 말라야 보야르 지점이 있다.

 

 

 

그림 2.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직물들. 유적의 중심무덤방은 도굴된 상태여서 중요한 유물은 없었지만, 직물의 존재는 알려지게 되었다. 펠트 조각들이다. 

 

 

 

아마도 이들의 집은 일종의 ‘유르트’라고 불리는 텐트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유르트의 본질은 쉽게 조립되고 분해되는 것이다. 일종의 밴드로 연결된 격자벽을 둥글게 엮고 그 위에 반원형 모양의 지붕을 만들 수 있는 돔형 구조물이 있고, 이를 덮을 수 있는 펠트만 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암각화 속의 집을 일종의 유르트 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유르트는 쉽게 분해 할 수 있고, 흔적은 남지 않는다.

 

스키타이 무덤속에서 발견되는 나무를 다듬는 기술을 아마도 당시에도 텐트의 골조를 만들던 기술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아크 알라하-1 유적의 무덤방에는 이미 사용되었던 것으로 나무를 재사용해서 무덤방을 만들었던 것이 발견된 적이 있다. 물론 펠트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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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9. 09:15 고깔모자와 코트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외투 종류 가운데 모피가 아닌 펠트로 제작된 코트가 파지리크 유적의 3호에서 발견되었다. 3호는 기원전 5세기의 1호, 2호, 5호와는 달리 기원전 3세기로 이미 스키타이 문화는 없어지고, 흉노 시절에 해당하는 무덤이다.

 

모자가 달린 매우 부피가 큰 펠트로 만들어진 것인데, 옷 위에 착용할 수 있고, 고리투스를 덮을 수 있다. 후드는 탈부착 가능하다. 인접한 투바지역의 민족지 자료가운데 비슷한 옷이 비옷으로 사용되었다. 이 펠트로 된 레인코트는 카자흐스탄의 말 목동과 몽골과 투바에서도 20세기 초까지 존재했다고 한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3호의 펠트코트

 

무기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복은 시베리아 남부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유목민들 사이에 매우 인기 있었다. 사냥이나 목축 뿐만 아니라 군사작전에도 사용된 기록이 남아 있다. ‘Strategikon’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Maurice(582~602년)가 남겨 놓은 군사매뉴얼인데, 이 코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스트라테기콘에 따르면 소매가 넓은 펠트로 된 외투 또는 후드가 달린 옷이 군사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한다. 갑옷과 활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커서, 우천시 혹은 이슬로 축축해지면, 갑옷과 활을 덮어서 무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언제라도 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갑옷은 펠트 코트로 가리면 그 빛이 적에게 멀리 보이지 않고, 또한 적의 화살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에 필요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이 비옷이 나온 3호 보다 이른 시점의 무덤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남아 있었을 수 있다. 이들 무덤에서는 알 수 없는 펠트조각들이 대량으로 나왔으나, 이미 형태를 알 수 없었다. 코트 형태가 아니라도 어떤 모습으로든 비오는 날에 대한 대비는 있었을 것이다. 

스키타이 활이 다른 유목민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했고, 이 활을 만든 사람들은 잘 사용하고 보관하는 방법도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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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동남부의 알마티 시와 가까운 곳에는 ‘이식’이라고 불리는 거대 봉분이 있는 무덤 150기가 있는 유적이 있다. 이곳에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17세기 까지 거의 천년 동안 무덤으로 사용된 유적이다. 그 중에서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무덤은 15세 가량의 소년이 화려한 복장을 입은채 묻힌 무덤이다. 물론 이 무덤도 도굴된 채 발견되어서 정확한 무덤의 구조는 알 수 없다. 인접한 베스샤타르 유적을 참고로 할 때 지상위에 무덤을 축조하고 그 위를 돌로 덮었던 구조였다는 점만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소년은 황금장식을 화려하게 치장한 붉은 색 옷을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황금인간’이라고 불린다. 특히 소년은 높이 60~65cm 가량의 고깔모자(직경 22cm)를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깔모자에는 각종 동물장식 및 자연(산)을 형상화 해 붙였던 황금장식으로 인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림 1. 이식 출토, 두개골과 고깔모자의 황금장식 출토장면

 

그림 2. 그림 1의 복원도

 

간접적으로 스키타이 사람들이 고깔모자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기록과 페르시아의 궁전(그림 3-2)에 남아 있다. 헤로도투스가 쓴 역사에서 다른 민족과 구분하는 스키타이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로 고깔모자를 언급한 바 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궁전에도 스키타이 사람들을 표현할 때 귀를 덮는 고깔모자가 표현되었다.

 

그림 3. 흑해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 속 남성, 2: 아케메네스 궁전벽, 스키타이 사람들

 

 

유물 속에서는 흑해 지역의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항아리 속(그림 3-1)에 여러 남성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까운 알타이에서는 실물자료가 발견되었다. 파지리크 유적 및 가장 높은 곳의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전사, 아크 알라하-1 유적의 1호 남성 전사 들도 고깔모자를 착용했다. 뿐만 아니라 추야강 계곡의 남성전사들 무덤에서도 두개골 상단에 모자에 달았던 장식이 발견되어서 대부분 고깔모자를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림 4.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고깔모자

 

그런데 고깔모자도 종류가 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고깔모자(그림 4, 5)는 동물장식으로 모자를 꾸몄다. 모자의 끝에 새머리 조각을 붙여서 장식하는 것인데, 모자의 안쪽으로 끼우게 되어 있고, 고깔모자의 하단에도 산양이나 염소상을 붙여서 장식하는 스타일이다.

흑해지역과 인접한 지역(그림 3)에서 발견되는 고깔모자는 장식 없이 귀를 덮는 스타일이다. 대략적인 구분인데 세밀한 것은 차차 설명하도록 하자.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는 화려한 장식을 달았다는 점에서 알타이의 모자와 같은 아이디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깔모자의 가장 끝에 산양장식(높이 1.2cm, 너비 1.2cm)이 달려 있어서 모자의 끝을 동물장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같다. 또한 유적을 발굴한 아키세프는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도 펠트, 가죽, 자작나무 등으로 제작되어서 스키타이 문화가 끝난 뒤에도 아시아 여러 민족이 계속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알타이와는 다른 재질?로 제작되었고, 모자에 부착되는 동물장식의 종류와 위치, 재질의 차이가 있고, 모자의 높이도 다르다.

알타이 남성전사들의 모자는 펠트로 제작되었고, 동물장식을 나무로 만들어서 단 이유는 펠트가 저절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고깔모자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식 유적의 모자는 어떤 물질인지 정확하게 표기되지는 않았지만, 복원대로라면 매우 빳빳한 재질일 수 있다. 모자의 안쪽에 어떤 장치가 발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펠트는 알타이 무덤에서는 매우 많이 사용되는 직조물인데, 카자흐스탄의 산악지역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다.)

그래서 이식 유적의 모자를 만든 재질 자체는 유럽 스키타이 고깔모자와 가까울 수 있어서,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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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TV는 점점 커지고 벽에 딱 붙일 수 있게 개발되고 있다. 그냥 TV라기 보다는 벽을 장식한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는 주변의 환경도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바란 것은 매우 오래전부터 였던 것 같다. 2500년 전에도 확인된다.

 

우리는 앞에서 파지릭 5호분에 한 통나무관 속에 남녀가 함께 묻혔고, 미라 처리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모습이 표현된 캐노피가 확인되었다. 펠트로 제작되었다. 크기는 4.5×6.5m이다. 파지릭 유적의 5호분은 이 무덤만으로 단독으로 특별전을 열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데, 마차와 함께 이 벽걸이 덕분이다.

 

그림 1. 2010년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 사진. 벽걸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펠트제품.

 

그런데 캐노피는 무덤방의 바깥에 마차 위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무덤방이 2개인데, 외부의 무덤방 크기가 3.4×6.42m, 내부는 2.3×5.2m였다. 이 캐노피는 무덤방 크기보다 좀 더 크다. 아마도 살아생전에 자신의 집에 걸어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랴즈노프는 실제로 무덤방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았다(그림 2).

 

그림 2. 그랴즈노프(1958)가 복원한 파지릭 5호분의 무덤방 내부, 그런데 이 복원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붙어 있는 백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벽걸이에는 말을 탄 남성과 의자에 앉은 여성이 한 쌍으로 두 단으로 나누어져서 반복해서 표현되었다(그림 1, 3).

 

 

 

그림 3.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 (1958)

 

 

 

말탄 남성과 여성은 머리가 불규칙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남성의 코가 크며, 검은 곱슬머리이다. 여성의 얼굴은 상당히 다르다. 어떻게 보면 여성스럽지 않지만, 코에 수염을 표현하지 않고, 머리를 민 것으로 보아서 여성이다. 복장도 그렇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표현된 점은 또 다른 곳은 귀이다. 남자의 머리 아래에 귀가 가려져 있고, 여자는 귀의 바퀴가 반대로 표현되었는데, 루덴코는 우연히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림4). 앞에서 설명드린 파지릭 5호분에서 남성과 여성의 두개골 측량치가 다르다는 점을 알려드렸다.

 

그림 4.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의 상세(그림1,3의 상세).

 

말탄 남성의 복장은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망토와 좁은 바지, 꽉 맞는 목이 높은 칼러 자켓이다. 그러나 말은 알타이에서 볼 수 있는 말의 꼬리 장식, 안장, 굴레장식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의 왼쪽 다리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대표적인 무기류 가운데 하나인 고리투스를 착용하고 있다. 고리투스는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통을 일컫는다.

여성은 발목까지 오는 긴 일종의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삭발한 채로 머리장식을 착용한 상태이다. 이 여성이 앉아 있는 의자의 다리는 무덤에서 확인되는 목제 상의 다리와 같은 모습이다(그림 4). 흥미로운 점은 여성의 오른손과 왼손은 모습이 다른데, 한 손은 꽃 다발을 쥐고 있고, 다른 손은 입을 가리기 직전 혹은 가리는 모습을 표현했다(그림4).

 

그림 1과 그림 3에서 가장 오른쪽의 모퉁이 하단은 그림이 다르다는 점도 눈에 들어오시는지?

 

위의 주제는 불사조인 피닉스(그림 5의 왼쪽)이고, 아래 주제(그림 5의 오른쪽)는 남성이 사슴뿔이 달린 머리장식을 달고, 사슴 옷을 입은 모습이다. 스핑크스라고 괴물이라는 주장(루덴코 1953)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남성은 사슴흉내를 낸 옷을 입은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머리장식은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확인된 모자 장식에서 확인가능하다.

아무튼 이 주제는 스키타이문화에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러시아학자들의 주장대로 피닉스의 발 아래에 표현된 꽃이 페르시아지역에서 유래된 문양이라고 해도 컨텐츠만 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루덴코도 이 캐노피의 해석은 알타이적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적인 요소와 내면적인 요소가 잔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 5.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의 오른쪽 하단 부위의 피닉스?(왼쪽)와 반인반수(오른쪽)

 

 

참고문헌

Грязнов М.П.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Л.: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1958. 96 с.(그랴즈노프 1958, 알타이의 고대 예술)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https://rg.ru/2010/12/09/ermitaj-alta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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