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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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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23.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철기시대, 기원전 9~4세기)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가장 뚜렷한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주로 맹수류(호랑이, 늑대, 사자), 맹금류, 굽동물(뿔 달린 동물)이다.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여러 동물의 집합체인 합성동물인 그리핀도 있다. 그리고 매우 한정적으로만 발견되지만 물고기를 모티브로 한 것도 발견된다.

하지만 물고기 문양은 다른 동물장식에 비해서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유행한 문양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서 문양을 사용했는지는 알기 쉽지 않다.

 

 

그런데 맹수류, 굽동물, 맹금류 등은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카라숙 문화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장식처럼 이미 ‘양식’화 되어서 나타난다. 쉽게 말하면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스타일’화 해서 발견된다. 이 생각은 필자가 고안한 것도 아니고 이미 스키타이 동물문양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지적한 바 있다. 대표적인 연구자인 페레보드치코바, 아르잔-1호를 발굴한 그랴즈노프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외에도 많은데 일일이 열거하기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은 흑해지역부터 중앙아시아 스텝지역, 시베리아와 몽골의 서부 지역까지도 포함되며, 하가점상층문화의 일부 유형에서도 발견된다. 그 중에서 시베리아에는 여러 문화가 있으나 미누신스크 분지에는 타가르 문화가 알려져 있고, 거대한 쿠르간(살브익 유적, 이미 포스팅 했음)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타가르 문화의 바로 직전의 청동기시대 문화가 카라숙 문화이다. 카라숙 문화의 동물문양은 무기의 장식으로 주로 사용되는데, 이 외에도 암각화 유적, 사슴돌에서도 발견된다.

(청동기시대 카라숙 문화와 타가르 문화의 동검을 모방한 석검이 연해주의 철기시대 얀콥스키 문화에서 발견된다. 연해주도 결국 초원문화의 영향 속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시점이 늦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미미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몽골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사슴돌 가운데에는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가 그려진 것이 발견된 바 있다. 바얀 불락에서 발견된 것이다(그림 1).

 

그림 1. 몽골의 사슴돌, 바얀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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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네프르강 유역에서 가장 큰 무덤중에 하나인 가이모노바 유적은 하나의 봉분 아래에 4개의 무덤방이 설치된 것이다. 1번과 2번은 땅을 파고 무덤방을 설치한 것이고 3번과 4번은 무덤봉분을 파서 만든 무덤이다.

 

특히 2번 무덤방은 땅을 가장 깊게 파고 설치한 곳이다. 무덤평면도에서 2번 무덤방을 중심으로 생토층이 표시되어 있는데, 인간이 손대지 않은 땅을 표시한 것이다(그림 1). 2번 무덤방의 깊이는 7m 정도이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평면도

 

2번 무덤방의 중심무덤방은 매우 특이한데 입구는 돌로 막았으며 수직으로 파고들어간 무덤방 아래에 매장주체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파고 들어가고 다시 옆으로 굴을 파서 무덤을 만든 구조이다(그림 2-라). 무덤방 입구아래에 무덤을 설치하지 않고 굴을 파서 만든 구조는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무덤방의 평면 모습은 다르지만 입구 아래에 바로 무덤방을 만들지 않은 것은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무덤의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2. 가이모노바 유적의 2번 무덤방 평면도(가)와 단면도(나~다)(필자편집), 나: 평면도의 I단면, 다: 평면도 II단면, 라: 평면도의 III단면

 

2번 무덤방 입구의 서쪽에는 가짜 입구와 말무덤이 설치되어 있다. 말 무덤을 위해서 구덩이를 파고 한쪽에 돌로 채운 구조인데(그림 2-나) 2번 무덤방 입구 만큼 깊지 않다. 말 무덤 아래로 도굴괭이 다달았다. 도굴괭은 중심무덤방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말 무덤 아래까지만 있었다. 그리고 중심무덤방은 말 무덤, 입구, 도굴괭 보다 가장 깊었기 때문에(그림 3) 2번 무덤방까지 손대지 못하고 말 무덤에서 방향을 틀어서 1번 무덤방의 입구인 2번 무덤방 입구까지 연결되었던 것이다(그림 1).

 

 

그림 3. 가이모노바 유적 2번 무덤방의 단면도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은 매우 특이한 것이 크게 만들면서도 어느 정도 도굴을 방지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도 무덤입구 아래에 바로 매장주체부를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덤방을 여러 개 만들었다는 점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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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봉분을 크게 만들면 후대에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전통? 혹은 규칙?의 예절?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문헌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강 유역의 카멘스코예 성곽과 가장 인접한 가이모노바 무덤 유적은 매우 큰 쿠르간이다. 지름이 70m 정도 되는 무덤에는 4개의 무덤방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남아 있는 곳은 1번 무덤방과 2번 무덤방이다.

 

특히 1번 무덤방은 2개의 입구가 지하의 무덤방과 연결되어 있다. 1호 입구는 연도를 통해서 무덤방으로 들어가며, 2번 입구는 1번 무덤방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1번 무덤방은 2개의 감실이 따로 있고, 남쪽에 매납구덩이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 1번 무덤방의 평면도와 단면도

 

유물은 1번 무덤방은 바닥에 나무판자가 3개 깔았던 흔적이 있는데, 인골 5구, 말 1필이 발견되었다. 인골 1구를 제외하고는 인골은 무덤바닥에서 벗어난 상태인데, 도굴로 인한 것이다. 감실 2곳에도 인골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1번 무덤방은 7인의 무덤과 말 1필이 매장된 것이다. 인골 5구가 나온 중심무덤방과 2번 감실은 유물이 도굴당한 상태여서 주로 소형인 무기 종류만 남아 있다.

 

그림 2. 가이모노바 유적 1번 무덤방

 

반면에 북쪽감실과 1번 무덤방의 남쪽 바닥에는 매납구덩이는 다행히 유물이 남아 있었다.

1번 무덤방에는 인골이 입구쪽에서 발견되었고 유물은 그의 다리와 우측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리스 토기(그림 3의 토기) 및 스키타이 청동 솥(그림 4-3)과 청동받침(그림 4-7), 청동쟁반(그림 4-6), 철제 도끼(그림 4-4)와 철제 창(그림 4-5), 철제 솥(그림 4-2)의 부속품 등이 발견되었다. 손잡이가 달린 투각된 철제 바가지(그림 5-1), 그리스제작방법의 청동 그릇(그림 5-2), 그리스제작방법의 청동주전자(그림 5-3), 스키타이 청동솥(그림 5-7), 그리스 제작방법의 청동통(그림 5-8), 청동제품(그림 5-2)이다.

 

그림 3. 가이모노바 유적 1호 감실(북쪽)

 

그림 4. 가이모노바 유적 1호 감실의 출토품

 

그림 5. 가이모노바 유적 1호 감실의 출토품

 

1번 무덤방에서는 말의 굴레장식이 출토되었는데,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물이다.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 오구즈 유적등에서 출토된 유물과 흡사하다(그림 6).

 

그림 6. 가이모노바 유적 1번 무덤방의 굴레장식

 

그럼 이미 소개한 은제 그릇은 어디서 출토되었을까? 1번 무덤방의 아래쪽에 아주 작은 매납구덩이 속에서 8~9점의 각종 그릇이 출토되었다. 이 곳이 눈에 뛰지 않았던 것은 작은 구덩이 이고, 바닥에 잔뜩 그릇을 쌓아두고 그 위를 점토로 덮었기 때문이다.

 

그림 7. 가이모노바 유적의 매납구덩이, 1: 목제그릇의 금제 장식판, 2: 양손잡이 은제 그릇, 3~6: 목제그릇의 4개의 황금장식판, 7~10: 목제 그릇의 4개 장식판, 11: 1번 소형 리톤, 황금판으로 장식됨, 12: 2번 대형 리톤, 13: 은제 쿱신(항아리) 14: 가이모노바 은제그릇(4번 그릇), 14-소형은제항아리

 

그림 8. 가이모노바 유적의 매납구덩이 출토당시

 

그림 9. 가이모노바 유적의 매납구덩이 출토품

 

1번 무덤방의 매납구덩이에서 나온 유물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유적이 도굴되지 않았다면 어떤 유물이 남아있었을지 궁금하다. 1번 무덤방은 입구가 2개이고, 상대적으로 무덤방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2번 무덤방은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입구도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도굴구덩이는 바로 2번 무덤방과 가까운 곳으로 바로 들어갔고 2번 입구와 연결되어 있다(그림 10).

 

그림 10. 가이모노바 유적 2번 입구와 연결된 도굴괭

 

1번 무덤방의 입구에서는 전차 부속품인 바퀴가 1점씩 각각발견되었는데, 다른 부속품은 보이지 않는다. 의례품으로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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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규모가 큰 성곽 유적만 보니 재미가 없어서, 무덤 유적 하나를 파고자 한다. ‘가이마노바 무덤 유적이다(지도에 이미 표시되어 있음). 흑해 주변의 유적에서는 워낙 흥미로운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은제품은 덜 관심을 받는 듯 하다.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는 은제로 된 스키타이 그릇이 한 점 발견되었다. 평면형태 반원형의 손잡이가 양쪽으로 달린 그릇인데, 높이가 낮고 안정감 있는 형태이다. 드네프르강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볼가 강 유역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목제로 된 그릇이 여러점 발견되었는데 이와 같은 기형이었고, 목제그릇은 금판으로 장식된 것이었다(아래포스팅참고).물론 가이모노바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 그릇의 형태는 가까운 솔로하 유적(그림 3)에서도 출토된다.

 

그림 1. 가이모노바 유적의 은제 그릇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의 무덤 1호의 감실1호 출토

 

2020.11.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 스키타이의 목제 그릇

 

우랄 남부 스키타이의 목제 그릇

남부 우랄의 기원전 5?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이 나타나면서도 남부 시베리아 지역의 특징도 보인다. 또 이란계통의 유물 특징이 드러나서 기원전 4세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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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솔로하 유적의 은제 그릇

 

하지만 가이모노바 유적과 솔로하 유적의 은제 그릇에 표현된 문양은 전혀 다르다.

가이모노바 유적의 그림은 두 남성이 마주보고 있는데, 한 명은 왼손에 고리트를 차고 있고 또 한명은 오른손에 스키타이 검과 다른 한손에는 막대를 차고 있다. 남성의 고리트는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스키타이 고리트이고, 또 다른 남성은 실제로 유적에서 나오는 철검으로 아키나케스이다.

남성이 들고 있는 철검 아키나케스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손잡이 끝은 T자형이고, 검의 신부는 이등변삼각형에 가까운 형태는 체르토믈리크 형식이라고 불린다(그림 4). 그런데 체르토믈리크 형식의 검에는 문양이 없지만 가이모노바 은제 그릇 속의 남성이 들고 있는 검은 문양이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나온 철검에도 금으로 상감된 문양이 표현된 검이 출토된 바 있다(포스팅 참고). 그래서 같은 형식의 그릇이 나오는 솔로하 유적보다는 필리포프카 유적을 먼저 떠올렸다.

 

그림 4. 체르토믈리크 형식의 단검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의 단검

2020.11.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말 탄 전사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말 탄 전사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문화(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골제로 만들어진 말 탄 전사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남성은 고리트(스키타이식 활과 화살통)를 차고 있었고,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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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모노바 유적의 은제그릇 속의 두 남성은 얼굴이 너무 똑같아서 동일인물일 수도 있는데, 신화 속의 인물일 가능성은 있다. 남성이 입은 옷이나 턱수염을 기른 모습 등에서 차스티예 쿠르간에서 나온 인물과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 차스티예 쿠르간에서 나온 4명의 남성은 고리트, 전투용 도끼,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고 한 명은 고리트를 받는 장면이었다(포스팅). 반면에 가이모노바 유적에는 고리트와 검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무기 세트에서 차이가 있다.

 

2021.08.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은 항아리 속의 스키타이 전사들

 

은 항아리 속의 스키타이 전사들

최근 포스팅은 흑해 지역의 철기 제작소를 찾아서 헤매어 다닌 것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빠짐 없이 출토되는 것은 화살촉이다. 그런데 활과 관련된 스키타이 신화가 있다. 고리트(활과 화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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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에서는 은제그릇 외에도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Топал Д.А. Финальная линия развития мечей классической Скифии. Соотношение типов Чертомлык и Шульговка // Stratum plus: Археология и куль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 3.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 Кишинёв – Одесса – Бухарест, 2014. С. 129–156.(토팔 2014, 스키타이 전형적인 철검의  후기 발전방향)

Бидзиля В. И., Полин С. В.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Гайманова могила. — К.: «Скиф», 2012. — 752 с. (비드질라, 폴린 2012, 스키타이 차르의 쿠르간 가이마노바)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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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미 포스팅한 바와 같이 철기나 청동제품을 생산도 했지만 농경과 가축 사육(유목적 목축)이 이루어졌던 흔적이 있다.

 

농경구로 볼 수 있는 것은 철제와 골제 쟁기 및 철제 수확구(그림 1-12)가 있다. 유적에서는 체리씨와 사과씨도 발견되었는데, 종류가 이 지역에서 재배된 원산지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곳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사람들은 밀, 호밀, 보리, 완두콩, 기장, 귀리, 콩을 재배했던 것ㅇ로 알려졌다. 곡물을 분쇄하기 위한 갈판(그림 2) 및 좀 더 가늘게 갈기 위해서 금속제 막대기(그림 1-11)도 사용했다. 곡물을 말리기 위한 장소도 따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루보틴 성곽의 철제도구, 1: 도끼, 2-톱 편, 3-마치, 4-천공도구, 5,10-송곳, 6-끌개편, 7-송곳(손잡이가 있는)의 날 부분, 8,9-끌, 11-공이, 12-낫?

 

그림 2. 루보틴 성곽의 석제 갈판

 

도네츠 강 유역이 위치한 곳은 남쪽의 스텝과 북쪽의 삼림지대가 혼합된 곳으로 산림-스텦지역으로 당시에 목축하기에 유리했던 환경이다. 소, 작은 굽동물, 말, 돼지, 개, 당나귀(동물뼈 출토) 등을 길렀고 야생동물도 사냥했다.

유적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철제품은 끝이 뾰족한 직선 혹은 굽은 송곳류와 칼인데, 모피가공과 관련된 도구이다(그림 3). 모피가 주요한 교역품이었던 것인데, 주로 남성이 모피와 가죽 생산을 담당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신발 등도 제작했고, 마구 및 무기를 제작했다.

 

그림 3. 루보틴 성곽의 모피가 공구류, 철제 칼과 송곳

 

유적에서는 다양한 토제 방추차(그림 4)가 출토되었는데, 실을 직접 뽑았고 직물을 짰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일은 여성들이 담당하였을 것이라고 시람코는 판단했다.

 

 

그림 4. 루보틴 성곽의 토제 방추차

 

흑해지역 스키타이 사람들은 생산 및 무역을 바탕으로 살았다. 그 생살활동은 농경, 유목적목축, 철과 청동 제작, 모피 및 가죽제품 제작 등 이다.  무덤만 보아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참고문헌

 

Шрамко Б.А., Люботинское городище. Сборник научных трудов, Харьков: Регион-Информ, 1998. - 184 с (시람코, 1998, 류보틴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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