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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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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되는 동물문양장식은 청동으로 주로 제작되었고 주로 어떤 유물의 부속품인데, 무기를 장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외에는 청동거울과 버클 장식 등도 있다. 버클로 장식된 동물은 무릎을 굽힌 굽동물인데, 정확하게 어떤 동물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화려한 유물 중에 하나가 버클장식인데, 이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 컬렉션이다. 1716년에 시베리아 총독으로 부임한 가가린이 표트르 1세에게 10점을 보내면서 유물이 수집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보다도 먼저 시베리아 고분에서 황금 유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네델란드 과학자 Nikolas Witsen이다.

 1664년에 네델란드 대사관의 일원으로 러시아에서 근무했는데, 지리, 언어, 민족지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이었다. 러시아를 떠났지만 러시아 특파원?(스파이?)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수집했는데, 그 가운데는 도굴꾼이 획득한 금제품, 청동과 철제품도 포함되었다. 그는 1785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Cеверная и Восточная Тартария(타타르인의 북쪽과 동쪽)’에 자신이 모은 황금 유물을 자세하게 묘사한 그림을 남겨놓았다(그림 1~3). 그가 죽은 후에 수집품은 경매에서 팔렸다는 사실 외에는 더 이상 알려진 사실은 없었다.

 

그림 1. 비트젠(1785)의 수집품, 루덴코 1962 재인용

 

그림 2. 비트젠(1785)의 수집품, 루덴코 1962 재인용

 

그림 3. 비트젠(1785)의 수집품, 루덴코 1962 재인용

 

 

 

하지만 19세기에 그의 책에서 본 그림과 비슷한 수집품이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표트르 1세 컬렉션의 유물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버클 장식으로 늑대와 맹수가 싸우는 장면(그림 1의 하단)은 실제 표트르 1세의 수집품(그림 4)로도 존재한다. 이 유물은 동일 유물이 아니라 ‘쌍’으로 제작되어서 한 점은 표트르 1세의 손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 점은 Witsen의 손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비트젠이 남긴 편지에서 1714년에 인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표트르 1세에게 간 유물도 시베리아 총독이 수집해서 1716년에 보냈다. 당연히 같은 무덤에서 도굴된 것이다.

  비트겐의  사후 그의 수집품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고 했지만 상당수가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컬렉션이 되었다.

 

그림 4. 기원전 3~2세기,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그림 5. 기원전 5~4세기,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이 첫 번째 보낸 물품 중.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된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컬력션은 스키타이 시대만 국한 된 것은 아니고 기원전 3~2세기의 유물도 있다. 그림 4의 버클 장식도 기원전 3~2세기 유물로 생각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Федоровна K.E. 2006, Золото кочевников. О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НАУКА из первых рук(표드로브나 2006, 유목민의 황금,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에 대해서)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된다. 어린아이의 무덤에서도 말이 매장되어서 말과 인간은 혹은 동물과 인간은 같은 자연의 일부로서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드린 벽걸이의 오른쪽 모퉁이 하단에 그려진 남성 때문이다. 남성이 사슴흉내를 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머리에 쓴 사슴뿔 모양이 달린 모자는 말 머리에 올라가는 것과 흡사했다.

 

말은 스키타이문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재물이었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스키타이 말은 치장되었다. 주로 동물문양장식으로 치장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유물도 있었다.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는 어제 포스팅에서 보여드렸는데, 그 중에서 동물문양이 아닌 원형 모티브의 장식이 붙은 굴레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와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유물에 표현된 말의 비교(김재윤편집)

 

이 문화에서 말이 풀 착장된 것은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이미 아실 것이다. 물론 필자가 지금껏 계속 소개하기도 해서 이런 말을 드리는 것이....

필자는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유물가운데서 큰 나무 아래에 3인이 앉거나 누워서 쉬고 있는 유물을 소개해 드린 바 있다. 그 유물에는 말 2마리가 거의 반을 차지 할 정도로 크게 표현되어 있다. 말은 쌍둥이처럼 똑깥이 표현되었는데, 재갈이 물려져 있고, 굴레를 착용하고 있으며, 안장과 안장덮개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1).

말은 측면으로 표현되었는데, 말의 굴레는 얼굴 길이방향 대로 향하는 끈과 얼굴을 가로지르는 방향의 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로방향의 굴레는 귀 아래의 이마와 코 사이를 지나가면서 중간에 장식이 붙어서 이마와 콧잔등을 장식한다(그림 1).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황금유물은 크기가 가로 16.1cm, 길이가 12.3cm밖에 지나지 않지만 매우 대단히 정교하게 말이 표현되어 있고, 말의 굴레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파지릭 고분에서 출토되는 말의 굴레와 거의 유사하다. 굴레에 붙은 장식은 장식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사실은 용도가 있다. 이 부분은 가로와 세로 끈이 교차되어서 묶음이 생기는 부위이다. 황금유물의 굴레 마디에는 구멍이 3개(한마리 기준) 있는데, 다른 보석류 들을 끼워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파지릭에서 출토된 유물은 굴레장식은 대부분 목제로 제작되었고 그 위를 금박해서 입힌 기법이다.

 

 

그림 2. 파지릭 5호분 말의 가슴장식과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제 유물에 표현된 말과 파지릭 5호분의 벽걸이 일부에 표현된 말의 비교(김재윤편집)

 

그림 1의 유물을 착장한 말을 앞에서 보면 이마, 콧잔등에 장식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파지릭 문화에서는 가슴에도 장식이 붙어 있었다. 왜?

그렇다. 굴레장식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장식+기능이 있다.

말의 안장을 고정하기 위해서 말의 가슴과 안장을 연결하는데, 그 부위에 장식물을 부착했다(그림 2). 5호분에서는 열매처럼 생긴 장식물과 반원형의 목제장식이 확인되지만, 많은 말에서 동물송곳니 모양의 장식물을 부착한다. 그리고 동물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남부 알타이 산에서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2500년 전 무덤에는 죽은 자를 위해서 말을 매장하는 풍습이 이었다. 무덤의 가장 위는 둥글게 돌을 깔고 무덤구덩이를 채웠으며, 무덤구덩이 가장 아래에는 통나무를 다듬어서 만든 무덤방과 통나무관을 넣었다.

무덤방의 바깥 빈 공간에 말을 여러 마리 매장했다. 말은 대부분 말을 부리는데 필요한 재갈 뿐만 아니라 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굴레장식까지 갖쳐진 상태였다.

 알타이산에서 파지릭계곡 뿐만 아니라 우코크 고원 등 여러 지점에서 비슷한 매장풍습이 확인된다. 이러한 유적을 그룹화 해서 파지릭문화라고 부른다. 파지릭문화는 마구, 무기, 동물문양장식을 상징으로 하는 유라시아의 스키타이문화권의 일부이다. 스키타이문화권은 넓은 지역을 아루르는 명칭으로 각 지역에서 문화가 나타난다.

 

 그런데 파지릭문화에서 특히 파지릭 유적 5호분에는 말 뿐만 아니라 마차를 매장한 무덤이 있다. 마차의 바퀴는 4개이고, 수레바퀴는 통판이 아니라, 바퀴의 살이 있다. 통판의 수레바퀴가 달린 마차는 이미 유라시아에서는 청동기시대에 나타난다. 파지릭문화는 시베리아의 초기철기시대문화이다.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는 무덤구덩이의 북쪽을 빈 공간으로 두고 말 9마리와 4개의 수레바퀴가 달린 마차가 확인되었다. 말은 모두 같은 상태로 묻힌게 아니라, 말 마다 착장한 장식에 차이가 있다. 말 1마리(I번 말)는 아무런 장식이 없었고, 재갈만 물린 말 4마리(II,III,V,VI번 말), 재갈+굴레장식+안장이 있는 말 3마리(IV,VII,VIII번 말), 재갈+굴레장식+안장+머리장식까지 있는 말 1마리(IX번 말)가 확인되었다.

 

가장 복잡하고 화려한 말은 IX번 말이다. 말의 머리까지 장식을 화려하게 했다. 그림 1에서 무덤구덩이의 가장 아래에 있어서 가장 먼저 무덤에 들어갔다.

이제까지 살펴본 파지릭 문화의 무덤 가운데 말의 치장 정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무덤이기도 하다.

말의 머리장식을 한 현상은 아크 아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없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머리부터 등끝까지 치장한 말이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1. 파지릭 유적의 5호분 무덤의 북쪽 단면도 

1.바퀴의 축; 2.마차의 몸체; 3. 마차몸체의 백조장식 ; 4. 검은색 펠트로 된 마차의 덮개; 5.펠트조각; 6.펠트로 된 카펫트; 7. 삽의 손잡이; 8. 마차의 바퀴; 9. 마차를 끄는 막대;10. 말총; 11. 카펫에서 풀린 실꾸러미; 12. 13. 말의 안장과 굴레장식; 14. II,III,V,VI번 말의 마구; 15. IV번의 안장; 16, 17-VII번의 말 안장과 굴레장식; 18, 19-VIII번 말의 안장과 굴레장식; 20 ,21-IX번 말의 안장과 굴레장식 ; 22-IX번 말의 머리장식; 23-IV번 말의 굴레장식; I~IX: 말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2500년 전 무덤 안에는 사람과 함께 말이 매장된다. 한 두 마리가 아니라 현재까지 살펴본 말의 수는 6~10마리까지 매장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매장되었는데,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굴레와 안장, 안장덮개로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부터 유심히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무덤의 말이 매장된 위치는 다른 무덤은 주로 무덤방 옆에서 확인되지만, 이 무덤은 구덩이의 입구와 가까운 곳에서 확인된다. 왜 그런지는 어디에도 설명이 안되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이유는 도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미스테리와 같다.

그 덕분에 2호분의 마구와 굴레장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앞에서 알타이에서도 파지릭 계곡 보다 남쪽에 위치한 우코크 고원에서는 없었던 말장식 중에 하나가 말의 얼굴을 가리는 말의 마스크였다. 말이 다른 동물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외에는 필자가 루덴코(1953)을 삿삿이 분석해서 조각조각 여러 군데 있는 유물을 찾은 결과 아래와 같은 마구와 말의 굴레장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루덴코가 편집한 것을 필자가 재편집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한다. 눈이 팽팽돌아가는 경험이었다. 좀 있으면 논문도 쓸 수 있을 기세이다..ㅋㅋ

 

사실 파지릭 2호분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무덤이기도 하다.

온전하게 남은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고분을 도굴한 사람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림 1과 그림 2는 각 각 세트로 확인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마구의 용도에 따라서 구분했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말의 머리 장식(김재윤편집)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말의 머리 장식(김재윤 편집)

 

그림3은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 나온 말의 굴레장식인데, 참고하시라고 보여드린다. 저런 말의 굴레장식에 각 호수에서 나온 말 마다 다른 장식을 달았던 것이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5호분 말의 굴레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4.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굴레 장식: 목제 재갈멈치-동물문양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5.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굴제 장식: 가죽(김재윤 편집)

 

 

 

 

림 6. 파지릭 유저 2호분 말의 재갈: 금속(김재윤 편집)

 

 

그림 7.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8.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덮개

 

그림 9.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 관련 유물과 채찍의 손잡이(김재윤 편집)

 

 

그들의 상상력과 디자인 능력은 최고이다. 디자인의 발달은 기술의 발달이 따라주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것은 현재의 IT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계곡의 2500년 전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다. 계곡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다. 필자가 어제 공개한 유물은 2017년에 영국박물관에서 있었던 특별전에 소개된 파지릭 2호분의 유물이었고, 예전 루덴코가 펴낸 책에는 거기 없는 유물도 더 있다. 물론 꼼꼼히 보시는 분이라면 눈치 채셨겠지만...최근에 있었던 스키타이 문화 특별전 가운데서 가장 많은 유물이 공개되었다고 한다.

 

흑백사진이지만 이미 세상에 알려진 유물은 좀 더 많고, 어제 유물에 대한 설명도 점차 덧붙여 가도록 하겠다.

 

파지릭 2호분은 평면형태가 약간 이상하다. 정확하게 동쪽 단벽의 무덤방 길이가 짧아져서 북쪽의 긴벽을 약간 들여서 축조했다. 이 무덤방의 바닥에도 펠트 및 카페트 가 깔려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펠트는 무덤바닥 뿐만 아니라 벽에도 걸려있었는데, 북벽을 제외한 나머지 벽에도 달려 있었다.

기억하시겠지만,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얼음공주 무덤에서도 벽에 펠트(펠트는 양모를 고열에서 응모해서 만든 천이다. 일종의 양모로 만든 부직포이다. 양모로 짠 천과는 다르다)를 걸어 두었다. 그리고 알타이의 원주민들도 집에서 벽에도 펠트를 걸어둔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한 적이 있다.

 

벽에 걸어둔 펠트는 나무못으로 고정되었다. 길이는 8~15cm로 못대가리의 윗 부분이 볼록튀어나온 것과 거의 편평하지만 턱이 있어서 예리하게 칼로 잘라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벽에 달았던 펠트장식은 청동 못으로도 고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못은 납작한 못대가리아래에 막대기 모양으로 한쪽 끝이 뾰족하다. 길이는 9.5~11.6cm가량이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나무못

 

그림 2. 파지릭 2호분, 청동못

 

벽에는 꽃과 연봉오리 모양의 문양의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여서 만든 펠트제 장식이 확인되었다. 러시아 학계에서는 연꽃 모티브는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 3. 파지릭 2호분의 벽걸이 장식. 펠트제. 길이 47cm, 너비 14cm

 

그림 4. 그림 3을 좀 더 가까이 찍은 사진

 

펠트제 벽걸이 장식 외에도 날실과 씨실을 교차시켜서 잔 양모천으로 된 유적의 2호분에서는 양모로 짠 천으로 깔개가 확인되었다. 양모의 단위는 너비 42cm가 되도록 짠 것이다. 센티미터 당 30실의 비율로 짰다. 무덤방의 가장 바닥에는 펠트를 깔고 그 위를 이 카펫으로 덮었으며 시신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파지릭 유적의 3호분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확인되었고, 바샤다르 2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있다.

 

그림 5. 파지릭 2호분, 높이 120cm, 너비 228cm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그냥 검은색 펠트를 걸어두었다고 했는데, 파지릭 유적에서는 벽의 가장 상단에는 이런 장식까지 덧붙였다. 화려한 무덤이다....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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