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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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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르투'에 해당되는 글 7

  1. 2021.12.18 고대 이란의 지비예 유적
  2. 2021.11.29 아르메니아의 태양 신(神)?이 표현된 문양

 

코카서스 북쪽에 위치한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거울 중에는 원형맹수장식이 달려 있는 유물이 있다. 원형맹수장식은 켈레르메스 유적 발굴 전에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수집품 가운데서도 발견된 바 있어서 스키타이 문화의 상징으로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라루투의 남쪽에 위치한 현재 이란의 삭키즈(Saqqez) 부근의 마을에서 1947년 화려한 황금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별 다른 유구는 발견되지 않은 퇴장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유적의 유물구성은 어떤 특정 지역의 것만 출토된 것이 아니다. 앗시리아, 우라르투, 초기 이란양식(고대 오리엔트 특징+유라시아 스텦지역 특징) 등이 복합되어서 많은 연구자들에게 회자되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거울

 

이 유적에서도 원형맹수장식이 발견되어서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연구자도 있다. 왜냐하면 기원전 9세기 유적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인데, 하지만 발굴품이 아니라 20세기 초반 유적들의 운명처럼 우연하게 발견된 것이었다. 전문적인 발굴이 아니라 농민들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시장에서 구입해서 고고학자들이 입수한 것이다.

 

그림 2. 지비예 출토 원형맹수장식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지비예 유물을 처음 알린 것은 1948년에 프랑스 고고학자 앙드레 고다르인데, 유물을 판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고 약간의 유물을 박물관 카달로그에 게시했다.  농민들이  요새가 있는 높은 언덕의 큰 청동용기 안에서  금, 은, 청동, 상아 및 토기 등의 유물이 있었다고  고다르에게 전해 주었다. 그 다음해인 1949년에 유적의 위치가 지비예 마을인 것을 확인했고, 유물들은 ‘지비예 보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수십년 동안 지비예의 유물로 추정되는 것들이 이란의 상점에서 팔려나갔고, 미국, 유럽 및 기타 지역의 개인 수집가와 박물관 그리고 다수 특별 전시회에 전시되었다(Muscarella, 1977)

 

그런데  ‘지비예의 보물’이라고 주장하는 유물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특히 프랑스고고학자인 Ghirshman는 지속적으로 이 유적의 유물이라고 주장하면서 30여개체나 늘여갔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근동 미술실에도 지비예 유물이 소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유적의 유물을 최초로 알린 고다르는 1950년에 하나의 용기에서 유물이 뭉치로 출토되었다고 했지만, 1951년에는 이를 부정했다. 과연 하나의 용기에서 수백점에 달하는 유물이 전부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지비예의 보물이라고 알려진 유물 중에 아주 많은 양이 위조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Muscarella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 유적에서 여러 나라의 유물 특징이 한꺼번에 위조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인정된다.

 

참고문헌

O. W. Muscarella, “‘Ziwiye’ and Ziwiye: The Forgery of a Provenience,” Journal of Field Archaeology 4, 1977, pp. 197-219.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코카서스 남쪽에 있었던 기원전 9세기부터 존재했던 우라르투는 기원전 8세기경에 세워진 에레부니 성곽과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테이시바이니 성곽을 남겨둔채 멸망했다. 테이시바이니 성곽을 무너뜨린 것은 스키타이 사람들로 알려졌지만, 우라르뜨가 완전히 망한 것은 기원전 585년 메디아 인들의 침략에 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흑해 북안에 살던 스키타이 사람과 키메르치 사람들도 한 몫을 했다고 한다.

 

복잡한 지형만큼이나 민족도 다양하고 역사도 그랬던 것 같다. 우라르트가 있었던 지역은 기원전 6세기 이후에 아케메니드 왕조의 영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에레부니 유적에는 기원전 5~4세기 문화층에서 아케메니드 왕조의 은제 각배 등도 발견되고, 칼디 신의 사원도 방형으로 개축되어서 사용되었다.

 

우라르트는 3신을 믿었는데, 칼디 신, 테이시바 신, 시비니 신이다. 칼디 신은 믿음의 신이고, 테이시바 신은 전쟁의 신이며, 시비니 신은 태양의 신이다. 그의 다른 이름은 아르티니스 이다. 아리티니스는 현대 아르메니아 언어에 떠오르는 태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칼디 신은 사자를 타고 있고, 테이시바 신은 소를 탄 모습이지만, 시비니 신은 머리에 청동으로 된 솥을 얻고 있다(그림 1). 유물에서 청동 솥(그림 2, 3)에 붙은 날개 달린 인간의 모습을 한 사람들은 시비니 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라르트 종교의 대부분 요소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차용되었다. 시비니 신은 앗시리아 신 샤마쉬와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다. 투실라는 시비니 신의 사원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투실라는 우라르투의 기원전 735~675년의 수도였는데, 반 호수를 마주보는 반 절벽에 세워진 도시이다.

 

그림 1. 시비니 신의 모습

 

그림 2. 청동솥에 표현된 시비니 신

 

그림 3. 청동솥

 

그림 4. 테이시바이니 유적 출토, 사르두리 2세의 헬멧에 표현된 사람들

 

사실 필자가 이렇게 우라르투를 파고 있는 이유는,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있는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거울과 철검의 검집에 새겨진 문양 때문이다.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신(神)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 중에 와이너리, 맥주 양조장, 참기름 제조공장 등 어마어마 한 곳을 발견하기는 했다.

세상에는 신이 너무 많다.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신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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