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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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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 09:22 사르마트 문화

오늘날 우크라이나인 흑해 북쪽읜 초원지역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점과 사르마트 문화가 시작하는 시점에는 무덤이 아주 많아진다. 봉분이 있는 무덤, 혹은 없는 무덤 등 매우 많은 무덤이 생긴다. 그 중에 마마이-고라(Mamay-Gora)라고 불리는 유적에는 무덤이 317개가 확인되었고 그 중에 12개가 여성무덤이었다. 남성은 110명, 여성은 135명이 확인되었고, 일부 여성들은 무기를 부장한 여성전사들이었다.

드네프르 강 하류에 위치한 스켈키 라고 불리는 유적은 봉분이 없는 무덤이다. 53개의 무덤에서 22명의 전사가 남아 있었다. 그 중에 절반은 여성인데, 11명 가운데 무기를 가지고 있는 여성은 4명이다. 팔코는 전사 22명 가운데 두 번째는 여성 전사이고, 세 번째는 무기를 소지한 여성전사로 계산하기도 한다. 스켈키 유적은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돈 강 유역에서도 엘리자페토프스코예 유적에서 147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 35개는 여성의 집단 무덤이다(팔코 2010).

 

이 시점의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전사들은 연령도 다양했다. 절반은 25~25세의 여성이지만 가장 어린 여성은 16세 정도이고 가장 나이든 여성은 60세도 있었다. 젋은 여성가운데 어린아이와 함께 매장된 경우가 4명 정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미혼으로 판명되었다.

 

여성전사들이 발견되는 유적은 주로 아조프 해 연안에서 많이 발견된다. 돈강 유역에 자리 잡았던 사르마트 사람들이 서쪽으로 몰려 오면서 처음 정착한 곳이 드네프르강 하류의 아조프해 지역으로 여겨진다. 특히 여성전사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헤로도투스에 따르면)

고고학적으로도 이곳에서 여성전사 무덤들이 집중되어서 기록과 비슷하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발굴이 많아지게 되면서 돈 강 유역에도 여성전사들의 무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팔코 2010). 그냥 여성들 무덤이 (남자들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질료니예 2 유적의 남녀합장 무덤 가운데 여성은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고 여겨진다(그림 1). 남성보다 많은 부장품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여성가운데 권력자의 존재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유적 뿐만 아니라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매우 거대한 무덤 속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포스팅)

 

그림 1. 질로니예 2유적의 2호 쿠르간 2호묘, 북쪽이 여성무덤

 

 

 

2020.11.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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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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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군인으로써 전쟁에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몸에 있는 상처이다. 크게 3가지 상흔이 남아 있다. 화살에 맞은 상처, 사자의 손실 또는 골절, 두 대골과 사지가 모두 잘린 상처 등이다. 화살에 맞은 상처는 주로 두개골의 관통상처가 치명적인 것이다.

무기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뼈에 남은 상처로 인해서 남성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군인으로써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팔코 2013)

 

흑해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전사들은 주로 기원전 7세기 초부터 발견된다. 여성전사는 주로 기원전 7말 혹은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는 기원전 4세기경 무덤으로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경계상에 있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여성전사 부족이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묘사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 기원전 4세기경에 매우 혼란한 시점에 남성은 모두 전장에 나갔을 테지만 여성은 집(노인과 어린아이)을 지켜야 했다. 그 과정 중에 여성들은 똘똘 뭉쳐서 집단으로 대항했을 수 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역사가는 오해를 한 것은 아닐까. 혹은 여성들에게서 얻고 싶은 것을 못 얻었거나. 또 일부는 남성들처럼 동등하게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를 용감한 여성대신 잔인한 여성으로 묘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초원인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이니 삐딱하게 보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Андрух С. И. 2001. Могильник Мамай-Гора. Кн. 2. Запорожье(안드루흐 2001, 마마이 고라 유적)

Фиалко Е. Е. Погребения амазонок из могильника Мамай-Гора // Stratum plus. Археология и куль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 2010. — № 3. — С. 187—196.(팔코 2010, 마마이-고라 유적의 아마조너스 여성무덤)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30. 09:22 사르마트 문화

 

유라시아 초원 동유럽의 고대 여성 전사들의 유적은 드네프르강 유역 하류, 돈강 하류, 우크라이나 초원, 코카서스 지역 등에서 발견된다.

일찍이 부냐탼(1982)은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1/4이 여성무덤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성전사로 판명된 사람들은 270명 가량이다. 물론 이 숫자는 우크라이나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다. 여성전사 들은 형질인류학적으로나 무덤의 장례방법으로나 그간 스키타이 인들이라고 알려진 사람들과 동일하다(팔코 1991).

 

여성전사들의 무기는 활과 화살(그림 1-1~5)세트 혹은 창, 투석이다. 질료니예 2유적의 5호에서는 활통이 여성의 왼쪽에 놓여 있었다. 비슷하게 활통이 발견된 유적은 니크로폴 유적의 20호 쿠르간 내의 2호 분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많은 화살이 부장된 무덤(류비모프카 유적 38호 쿠르간)은 135개까지 있었다.그런데 화살의 양에 대한 규칙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활과 화살세트가 매장된 경우는 여성, 남성 통틀어 많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사 무덤에는 창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창의 자루에 철제깃봉(그림 1-8)을 달아서 사용했는데, 출토될 당시에 그 장식의 위치로 나무자루의 길이를 대략 추정할 수 있다. 여성 무덤에서 나온 창의 길이는 유적(노비예 쿠르간과 스테블레브스키 무덤)의 예로 보아서 대략 2.07~2.1m인데, 스키타이 남성 전사의 창 길이와 비슷하다. 여성 무덤에서 창은 대부분 1~2자루 부장되었으나 3자루가 나온 경우도 있다.

 

 

그림 1.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출토된 여성 무덤의 무기

 

 

 

투석(슬링)(그림 1-11)은 1~5개가 무덤에서 발견된다. 투석기는 발견되지 않고 같은 크기의 동근 돌만 확인된다. 아마도 이 무기는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근접무기인 전투용도끼와 검은 2~3곳을 제외하고는 여성 무덤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청동이나 철제 갑옷이 있는 무덤도 여성 무덤에는 거의 없다. 물론 어제 소개한 질로니예 2유적의 5호의 십대소녀의 예는 제외한다.

 

 

여성의 무덤에 근접무기와 갑옷 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이 경무장한 기병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9. 09:22 사르마트 문화

 

헤로도투스는 여성전사들의 집단 혹은 부족인 아마존의 존재를 기록했다. 좀 과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키타이 혹은 사르마트 문화 속의 여성전사들은 매우 유명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헤로두트스 뿐만 아니라 스트라보, 히포크라테스 등도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는 주로 흑해 북쪽,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있는 유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 흑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시베리아에서도 기록속의 장면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팔코는 자신이 발굴한 유적인 질료니예 유적에서 2호 쿠르간의 존재에 주목했다. 2호 쿠르간에는 모두 3개의 무덤이 설치되었다. 무덤은 구덩이를 수직으로 파고 다시 벽쪽을 파들어간 형태인데, 3개의 무덤 구덩이가 있었다(그림 1).

그 중에 2호는 남성과 여성이 각각의 무덤방에 안치되었다. 구덩이의 입구는 하나인데 북쪽에는 여성, 남쪽에는 남성이 별도로 매장되었다. 두 무덤방은 남분과 북분이 떨어진 것은 아니고 연결된 형태이다. 수직으로 구덩이를 파고 다시 벽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나무판으로 막아서 무덤방을 폐쇄했다.

 

남성은 바닥에 자신이 입던 철제갑옷을 벗어서 깔고 그 위에는 유기질제 깔개를 깔고 그 위에 자신의 물건을 부장했다.

 

여성은 철제 갑옷을 깔지는 않았지만 유기질제 깔개를 깔고 주변에 자신의 물건을 두었다. 그 중에는 철제 창(그림 1-31)과 화살통(그림 1-39)을 왼쪽에 두었다. 물론 그 이외에도 각종 장신구 등이 그녀의 옆에 놓였다. 깔개 바깥에는 목제 쟁반위에 칼이 놓여 있었고(그림 1-22,23), 그 아래에는 석제도 놓여 있었다.

 

그림 1. 질료니예 유적의 2호 쿠르간

 

그림 2. 질료니예 유적 2호 쿠르간의 2호묘 평단면도

 

그림 3. 질료니예 유적 2호 쿠르간의 여성 유물(2~18). 어제는 잘못 표기했음.

 

그녀는 목제 상자(그림 3-7)도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는 거울(그림 3-13), 구슬(그림 3-15), 송곳, 화병(그림 3-16), 목제 화병(그림 3-5)인데 원통형모양의 유물도 있었다. 이 유물은 pyxis라고 부른다. 목제 상자의 출토위치는 철제 창 바로 옆이다(그림 2-32~34).

 

질료니예 2 유적의 2호 쿠르간 내의 2호묘는 어찌되었든 부부합장묘이기 때문에 여성들만 살았다고 전해지는 아마존으로 보기에는 애매하다. 2호의 여성이 철제 창과 화살을 쏜 것은 맞지만...

 

그런데 질료니예 2유적 5호 쿠르간 내부에는 3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모두 여성들이었다. 매장방법은 2호 쿠르간과 같았다. 그런데 그 중에 2호묘의 여성은 철제갑옷, 창, 유리구슬, 칼, 거울 등이 함께 매장되었다(그림 4). 나머지 2개의 무덤은 주인공 여성보다는 지위가 낮은 여성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은 십대의 여성이다.

 

그림 4. 질료니예 유적 5호 쿠르간

 

여성무덤에서 철제 갑옷이 발견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흥미로운 자료이다.

 

이 유적은 기원전 4세기 유적이기 때문에 스키타이 가장 마지막 시기, 혹은 사르마트 시기의 시작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팔코는 스키타이 시대라고 보고했다.

 

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8. 09:22 사르마트 문화

동유럽에서 스키타이 문화 이후 기원전 4세기경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봉분이 있는 무덤이 만들어진다. 땅에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 구덩이를 파고 다시 벽을 동굴처럼 파들어간 형식이 많다(그림 1).

 

 

그림 1. 질료니예 마을 부근의 2호 쿠르간, 기원전 4세기, 1: 무덤 평단면도, 2~11: 여성무덤 부장품, 12~18: 남성무덤 부장품

 

 

무덤은 여성, 남성 무덤이 구분되어 있고 따라서 부장품도 다르다. 주로 여성 무덤에는 거울, 귀걸이, 구슬 및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장신구와 화장도구 들이 발견된다. 또 그릇이나 생활용 송곳, 바늘 등도 있다. 남성무덤에는 주로 무기와 마구 및 남성의 장신구(목걸이 및 반지)등이 부장되었다. 무기에는 활과 창, 갑옷, 굴레장식 등이 있고 간혹 청동솥도 매장되었다. 남성여성할 것 없이 나무접시나 쟁반에 고기와 쇠칼을 올려두었고 다양한 그릇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이들 부장품 가운데는 여성용품과 무기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성이 무기와 함께 부장되는 무덤을 두고 기록 속의 ‘아마존’이라고 추정하고 있다(팔코 2013). 여성들만 사는 부족의 명칭으로 알려진 이들은 헤로도투스 뿐만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스트라보, 등등 여러 사람들의 작품에서 아마존의 존재가 전해진다.

 

아마존은 매우 아름답고 재능있던 존재로 묘사된다. Kallisthenes(그리스 역사가)에 따르면 Alexander Macedonsky가 그의 어머니에게 아마존이 키가 크고, 아름답고, 매우 건강하고 날카롭고, 재치있다는 편지를 썼다. 또 Diodorus Siculus도 아마존의 힘, 지능, 기술,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런데 헤로도투스와 스트라보, 히에로니무스가 묘사한 그들의 복장은 일치하지 않았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들이 남자들이 입는 것과 같은 매우 화려한 복장을 입은 것으로 기록했다(IV, 116). 스트라보는 야생동물의 가죽으로 헬멧, 외투, 벨트를 만들어 입은 것으로 묘사했다.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ymus, II, 37)는 아마존이 가슴을 드러내고 팔과 다리로 남성 적을 유인했다고 적었다.(팔코 2013).

(아마 히에로니무스는 아마존 여성에게 당한경험을 적은게 아닐까..ㅋㅋㅋ, 뭐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한 듯. )

 

 

공통적인 점은 활, 화살, 전투도끼, 창, 창과 올가미로 무장했고, 방패도 사용한 것은 동일하다. 사실 이 무기들은 스키타이 시대부터 전해져온 전통적인 무기이다. 여성 무기를 위해서 따로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그냥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흑해 북안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후반~기원전 6세기경 여성의 무덤에서 남성 무덤에 보이는 무기들이 있는 유적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이런 무덤은 사르마트 시기인 기원전 2세기까지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대로 여성들만 사는 아마존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상흔이 남아 있는 여성 인골과 무기의 존재는 흥미롭다.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아르잔-2 유적에서도 여성전사가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매장된 예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녀의 어깨 근육이 비대하게 발달해서 궁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녀의 두개골에는 죽음으로 갈 수 있는 뚜렷한 상흔이 남아 있었다. 헤로도투스가 왕의 장례식에 묘사한 미라와 같이 여성전사의 존재는 시베리아에서도 확인된다(포스팅참고).

 

2020.06.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강의할 때 늘 시작은 지난시간에 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특히 지난 슬라이드가 끝나지 않았을때 그렇다. 며칠간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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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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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울란곰 유적은 여러 모로 인접한 러시아 알타이의 유적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앞으로 차차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차이점도 상당한데, 필자의 눈에 띤 것은 청동솥이다.

추야강 유역의 유스티드 XII 유적, 졸린 유적, 울란디르크 유적 등에서는 청동솥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유적은 기원전 4~3세기이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는 청동솥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크기가 매우 작은 것으로 10cm 보다 약간 크고, 그 안에 불에 달군 돌과 향료씨앗등이 발견되어서 향로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된 33호의 청동솥(그림 1의 1번)은 2700년 전(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유물과 닮아 있고 크기도 비슷하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아도 근거리에 위치한 추야 계곡의 무덤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에서 발굴된 청동솥

 

울란곰 유적의 나무방무덤인 23호는 7인이 매장된 곳이다. 무덤의 크기는 2.4×2.4m, 깊이는 1.1m이다. 통나무가 아닌 나무판자를 남동-북서쪽에서 깔았고, 무덤방의 덮개는 이와 교차되게 덮었다. 무덤 안에는 남성 4인, 여성 1인, 아이 1인이 같은 무덤 안에 있다. 두향은 북서쪽이고, 굴신장을 한 상태이다.ㆍ.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23호 나무 무덤방

 

그림 2에서 가장 왼쪽의 I호 인골은 남성(나이모름), II호 25세의 남성, III호 여성, IV호 남성(50~55세), V호(1~2세) 유아, VI호 남성, VII호 여성이다. 인골은 모두 돌 베개를 베고 있었다. VI호와 VII호 남녀는 앞 그룹의 사람들과 약간 떨어져 있다.

이 중에서 IV호 남성이 부장품이 가장 많다. 머리 위에는 항아리, 허리뼈 근처에는 청동송곳과 철제 축, 맹수장식의 청동장식이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동화살촉, 철제 전투용도끼, 청동칼과 각 종 화살통 청동 장식이 있었고, 엉덩이뼈와 대퇴골 아래에는 일종의 사슴뼈가 발견되었다.

IV호 남성 외에도 청동화살촉이 있었던 사람은 VI호 남성과 III호 여성이다. VI호 남성은 청동 화살촉 5점, III호 여성은 3점 청동화살촉, 2점 골제 화살통과 함께 부장되었다. 모두 머리쪽을 향했고 화살통채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여성의 왼쪽 어깨에는 용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떤 철제품과 유리구슬도 함께 부장되었다.

III호 여성은 다른 사람들과 보는 방향이 다르며, 화살통을 가지고 있던 여성이다. 직업을 보여 주는 유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사실 여성전사는 이미 아르잔-2호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유적의 22호묘 여성은 오른쪽 쇄골에 남은 근육의 흔적이 매우 발달한 것으로 보아서 활을 많이 쏘았던 여성으로 전사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2020.06.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시베리아 사람들의 삶과 죽음

 

2700년 전 시베리아 사람들의 삶과 죽음

시베리아 투바의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인 아르잔-2호는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무덤이자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의 장례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르잔-2호는 매장주체부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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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7인은 한 무덤 안에 다같이 들어갔을까? 시간차이를 두고? 아니면 동시에? 2인장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유적에서 가장 많은 사자(死者)가 발견된 곳은 9인이 발견된 곳도 있다. 이런 유적을 요즘 발굴한다면 각종 분석을 해 볼 수 있을 텐데...

 

더보기

노보고르도바가 보고한 울란곰 유적은 1989년 러시아에서 출판되었지만, 그 속의 내용을 읽어보면 1980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자신의 책에 울람곰 유적의 내용이 이미 다 출판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필자가 이 책을 여기저기 찾다가 러시아의 중고책 서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여러 판매자가 중고책을 파는 사이트 인데, 내가 찾은 판매자는 아마도 유대인인 듯 한데,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살면서 책을 판매하고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찾은 이유는 러시아 책의 도면이 너무 간략해서 이다. 어쩌면 노보고르도바는 단행본으로 자신의 도면이 책에 나왔기 때문에 매우 축약된 것만 실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독일어는 모르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꺼라고 생각한다.

 

몽골의 울란곰 유적은 러시아 학자들이 발굴해서 독일과 러시아에서 출판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독일어 책은 러시아국적의 유대인이 이스라엘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40년이 지나서  한국에 있는 내가 산 것이다. 오기만을 기다린다.  내가 유학갈때 책과 여러 물건을 배로 붙인적이 있다. 항공료는 너무 비싸서 그냥 배로 붙였다. 석달이 걸려서 러시아에서 받았는데, 부산서 출발한 그 상자는 일본부터 유럽 각국의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사진이 없는게 참 아쉽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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