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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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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28. 10:0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암각화가 그려진 바위는 바로 강가에 위치하며 화산암에 암각화가 새겨졌다(그림2). 이 유적이 발견된 것은 19세기 말에 발견되었다. 최초의 학술조사는 1950~60년대 오클라드니코프가 조사했고, 2000년대에 새로이 조사되었다. 6지점에서 103개의 돌에서 각 돌에 1~12개의 표현물이 확인되었다



  사진1. 사카치알리안을 조사하는 오클라드니코프

 

그림 2. 사카치알리안암각화의 위치변화도(라스킨 2007)(사카치알리안은 아무르강의 범람으로 인해서 보고될 당시와 현재의 암각화가 그려진 돌의 위치가 다르다. 화살표 방향은 보고당시와 2000년대 들어선 위치의 변화도이다)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것은 대부분 쪼기 기법으로 표현되었는데, 외곽선을 돌리고 내부에 표현을 한 것도 확인된다. 홈의 깊이는 0.3~1cm가량이다. 전반적으로 사실적인 표현이 대부분 많고 기하학적인 표현은 드물다. 경우에 따라서 몇 개의 표현물이 그룹을 이루는 경우도 있는데, 그 중에는 얼굴과 새가 그러하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273 의 표 1


암각화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인물을 표현한 것인데, 그 중에서도 얼굴이다. 전신상(그림 9-1,2)3곳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도면은 2개만 확인가능하다. 사람의 얼굴은 타원형, 달걀형 타원형, 하트형, 사다리꼴형, 삼각형이 있고 원숭이 혹은 거북이 등도 일부 확인된다. 얼굴은 다른 문양에 비해서 대부분 불룩한 돌을 선택해서 시문해서 윤곽을 드러나게 하였다. 그 외 짐승, , , (), 태양상징, 성혈과 동심원문양 등이 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얼굴의 내부는 비교적 간단한 문양으로 충진되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눈을 동심원으로 표현한 후 얼굴을 그렸다. 유적 곳곳에서 동심원이 확인되며, 동심원문과 코, 입만 그려진 미완성품도 확인된다(그림 3-1~4). 즉 동심원문을 기반으로 얼굴모양 마스크를 그린 것이 많다. 그 외에 단독의 동심원문, 회오리 문양(그림3-5~7)도 확인된다


사진1. 사카치알리안 유적 전경도(바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음)


사진2. 동심원문을 기반으로 한 얼굴모양 마스크

 

사진3. 얼굴모양마스크2

 


사진4. 얼굴모양마스크3



그림 3. 동심원문과 회오리 문양(1~7: 사카치알리안, 8: 세레메체보 유적)


동물문양은 두 가지 표현법이 있다. 사슴의 내부는 동심원이나 나선으로 채워진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이것은 동물의 내장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창자, 심장, 신장, 간 등이다. 이러한 표현법을 렌트겐 기법 혹은 해골기법이라고 한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여기서 고식의 동물문양은 기하학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그대로 표현되는데, 특히 사슴이 그러하다. 맹수의 동체부를 표현하는 방법과는 차이가 있다. 맹수는 등이 둥글게 굽은 것으로 표현되는데, 머리가 매우 크다. 다리선은 동체부에서 연장되는데, 가로 방향의 선이 두 부분을 구분한다 (오클라드니코프 1971). 한편, 맹수는 반구대암각화의 표현법과 유사하다는 의견이 있다(김재윤 2017b).

 

사카치알리안 연대는 인접한 곳의 발굴에서 출토된 유물과 암각화의 비교로 알려졌고, 여러 시기에 걸쳐서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1). 사카치알리안 유적의 12000~10000년 전 당시 후기구석기시대의 플라이스토세 유적에서는 새모양으로 추정된 석제품이 출토되었는데, 새그림이 가장 이른 시기로 생각되었다(1, 오클라드니코프 1971). 또한 6000~5000년 전 신석기시대 토기 가운데 콘돈포취타유적에서 타래문토기가 확인되며 이 토기의 문양과 유사한 방법으로 그려진 동심원문암각화의 얼굴모양마스크도 이때 그려진 것으로 보았다. 또한 하트모양의 얼굴문양은 보즈네세노프카 문화 토기와 비교해서 이 시기의 것으로 보았다(1).

최근 연구에서는 12000~10000년 전은 오시포프카문화에 해당한다고 정정했고, 얼굴문양은 신석기시대 발달단계(4000~3000년 전)로 보아서 오클라드니코프와 연대차이를 보인다(1).

신석기시대 이외의 중세시대 그림은 음각으로 그린 것으로 보았고, 전쟁에 참가한 말, 사냥하는

 장면 등이 그려진 것으로 대략 8세기 가량 그려진 것으로 보았고, 라스킨은 철제도구로 그어진 것으로 철기시대부터 중세시대(4~13세기)까지 내려갈 가능성도 상정했다(라스킨 2015)


* 표1은 위의 링크 참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8. 12. 27. 21:0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한 사카치알리안은 강변의 화산암에 그려졌다. 주제는 동심원문양 뿐만 아니라 새, 사슴, 호랑이, 전쟁에 참가한 말, 사냥하는 장면 등 아주 다양하다. 그 중 동심원문을 기반으로 한 얼굴형마스크 등 여러 모양의 얼굴주제는 연대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아무르강 하류의 나나이족 얼굴로 소개되면서 집중적으로 조명받았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그림 1 유적의 위치. 사카치알리안, 2. 세레미체보, 3. 쌍탑, 4. 지초리, 5. 영천보성리, 6. 포항 대련리, 7. 대구 진천동, 8. 대구 천내리, 9.고령 앙전동, 10. 고령 안화리, 11. 밀양 안인리, 12, 함안 도항리, 13. 동래 복천동(김재윤 2018)


사카치알리안의 연대는 주변에서 발굴된 유적출토 유물과 암각화 주제를 비교하면서 이루어졌다. 최초의 조사자인 오클라드니코프(1971)는 대략 네 시기정도에 걸쳐서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최근에는 신석기시대 연대 조종으로 세 시기 정도에 걸친 것(라스킨 2015)으로 보기도 한다(1).

 



사카치알리안의 주제와 유사한 암각화가 우수리강에 위치한 세레미체보 유적에서도 확인되며, 사카치알리안과 동시기의 것으로 판단되었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두만강 유역에서는 동심원문만 집중된 유적이 지초리에서 확인되었는데(서국태 2004), 동심원 및 회오리문양, 뇌문 등은 과일군 청룡리유적, 염주군 반궁리 등지에는 뇌문과 타래문이 함께 출토되고, 서포항 유적에서는 타래문이 번개문 보다 이른 시기에 출토됨으로 지초리의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중간 정도에 위치하면 기원전 5000년 전반기의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서국태 2010).

 

종합하면 동심원문 암각화는 유사한 문양주제이지만 러시아의 사카치 알리안, 세레미체보 유적, 지초리 등은 신석기시대,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본다. 또한 동심원문과 다른 문양이 복합된 양전동 암각화는 삼국시대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암각화 제작시기의 직접적인 증거는 발굴을 통한 유물에서 나온 문양과 암각화의 문양을 비교 한 방법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카치알리안, 세레미체보 유적 등도 연대추정되었다(1, 오클르다니코프 1971). 반구대암각화가 신석기시대부터 제작되었다는 주장(하인수 2012)도 동삼동 유적에서 출토된 사슴문양토기 와 비교에 의한 것인데, 비슷한 추정법이다. 이러한 연구법은 암각화가 밀집된 알타이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많이 사용된다(블라지미르 D. 쿠바레프 2003)

 

필자는 사키치알리안의 동심원문 및 얼굴모양마스크가 이미 앞서서 연구한 오클라드니코프나 라스킨 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그려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일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8. 12. 27. 13:45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한반도 영남에 위치한 순수한 동심원문만 그려진 고령 안화리, 진천동 입석, 밀양 안인리, 함안 도항리 등지에서 확인되고 있다(그림 7). 뿐만 아니라 검파형 암각화와 함께 그려진 고령 양전도, 영천 보성리, 고령 안화리 등도 확인된다(그림 8). 동심원문 암각화는 대부분 청동기시대로 보고 있는데 지석묘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울산반구대암각화박물관 2011,2012).

동심원문암각화가 대부분 지석묘관련 시설에서 확인된다 하더라도 이를 암각화의 제작시기로 단정할 수 없다. 밀양 안인리 4호는 묘역식지석묘로 암각화는 중앙상석이 아닌 가장 자리의 돌에서 확인되었다. 석검과 함께 그려져서 청동기시대로 추정되었지만(그림8-7) 두 그림이 겹쳐져서 그려진 것이 아니라 각각 그려져서 다른 시기 일 가능성도 있다.




그림 7. 1. 무산 지초리, 2. 함안 도항리, 3. 대구 진천동, 4. 복천동, 5.6대구 천내리, 7. 밀양 안인리(신안)4호(김재윤 2018에서)


지석묘와 관련된 동심원문 암각화는 축조될 당시에 이미 암각화가 그려져 있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지석묘 시기를 암각화가 그려진 시기로 단정할 수 없다. 복천동(그림 7-4)에서도 이미 그려진 돌을 석곽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청동기시대로 추정된 것은 수영천변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이 채집되었기 때문인데, 만약 신석기시대 유물이 채집된다면 그 연대는 또 변동의 가능성이 있다.

동심원문 암각화 및 일명 검파형암각화가 그려진 고령 양전동 유적은 청동기시대 설과 삼국시대 설로 나눌 수 있다. 청동기시대는 양전동암각화가 보고된 당시에 유적 주변에서 무문토기와 마제석부 등이 발견됨으로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로 편년되었다(이은창 1971). 영일 인비리 유적의 마제석검이 그려진 손잡이 부분을 양전동형암각화의 조형으로 보는 의견은 청동기시대 설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송화섭 1994). 그 이후에도 경주 안심리에서 확인된 유사한 주제로 그려진 암각화가 지석묘의 상석에서 확인됨으로 청동기시대 설이 더 확고해졌다(이상길 1996). 석장동 암각화가 발견되면서 마제석검과 양전동형암각화의 사다리꼴 모티브의 중간모습, 사다리꼴 모티브 등이 확인되면서 인비리 보다는 석장동 유적이 가장 이른 양식으로도 꼽히기도 한다(장명수 1995·2001). 분류기준을 달리한 연구자는 인비리가 석장동 보다는 이르다고 보았지만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다는 설은 변함이 없다(이하우 2011). 


그림 8. 1~4: 고령 양전동, 5. 고령 안화리, 6. 영천 보성리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5a1161a


반면에 양전동형암각화가 삼국시대에 해당될 것이라는 의견을 낸 것은 三上次男(1977)이다. 일본 구주 고분문양와 비슷한 점이 그 근거이다. 고령지산동고분30호분의 개석에서 양전동형암각화의 사다리꼴 모티브 일부가 확인되면서 이 유적의 연대를 양전동형암각화의 하한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전호태 2013, 강봉원 2017). 이를 확대해서 양전동형암각화 가운데 양전동암각화를 영남의 다른 유적과 구분해서 고령이라는 특성과 연결시켜 가야 건국신화와 연결시키고 국가제의가 이루어진 장소로 보는 관점(전호태 2017)은 그간 양전동형암각화가 청동기시대의 것이라는데 대부분의 연구자와는 차이가 있다. 강봉원은 전호태의 의견과는 차이가 있는데 5세기까지 내려올 수 있는 유적은 지산동고분군30호분의 개석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다른 유적들은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강봉원 2017).


 만약 양전동암각화가 삼국시대의 것이라면, 일명 검파형암각화가 그려진 암각화 유적 뿐만 아니라 동심원문이 같이 그려진 유적도 여기에 포함 될 수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동심원문 암각화는 이곳에서만 확인될까? 그리고 언제 그려졌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위해서 다른 지역의 암각화와 비교고찰할 필요가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8. 6. 9. 18:00 책소개

책소개..

2년 전에 원고작성된 글이 공동저작으로 나왔습니다.

제목은 고고학이지만, 신화, 민속학, 고고학 등 여러분야를 전공하는 연구자가

북방과 제사라는 주제로 적은 글입니다.

https://www.kras.or.kr:6033/?c=user&mcd=ksc0002b&me=bbs_detail&idx=101007

(링크는 한국고고학회 홈페이지의 신간소개. 제목, 목차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의 주제에 암각화도 넣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2년 전만해도 거기까지 오지랖을 넓힐 여력이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해야지...하면서도.


제의..제사...신..이런 것을 고고학으로 밝힌 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일입니다.

하지만 유물 가운데 그런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정말 실용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물론 무덤과 거기서 나온 출토품도 실용적인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그런것들이 나오거든요.

그런 것들은 종교적인 해석으로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토우(흙으로 만든 인형), 암각화...이런 것들이 해당될 것입니다.

신화학자와 민속학자가 같이 해서 더 좋은 것도 같네요.

(저의 글은 약간 이미 퇴색한 듯도 한 것이 원래 이 책이 2016년에 나와야 하고, 저의 단행본은 2017년에 나오는 것이 맞는데...이 책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하여간 나와서 다행입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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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3. 16:28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내용은 2017년 5월에 부산복천동박물관의 특강 내용입니다.


1. 페그티멜암각화
추코트카는 가장 북쪽인 동시베리아해와 인접하고 있으며 바위그림은 시베리아해로 흘러가는 페그티멜 강의 하류의 지류인 카이쿨 강에서 확인되었다. 이 지점은 동시베리아해와 거리가 50km 정도이며, 페그티멜 강과 카이쿨 강 사이 1000m~1200m가량 떨어진 곳에 바위그림이 존재한다. 1965~1967년에 걸쳐서 1차 조사가 실시되고, 1968년에 1차 조사보다 약간 하류에서 2지점을 발견하였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에 관련된 보고서가 출판된(디코프 1971) 1971년에는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얀 등 몇 몇 유적도 보고되었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당시 소련에서는 시베리아 초원지대 및 알타이 지역에서 잘 알려진 바위그림이 아무르강 하류 및 추코트카 까지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당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페그티멜 바위그림에는 머리에 모자를 쓴 사람(그림 2)이 그려져 있는데, 알타이에서도 이 주제가 큰 논란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큰 호응이 있었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미사암계 점판암의 높이 25~30m가량의 암반위에 제 1지점에는 모두 11 곳의 암벽에 그림이 모두 104장면이 그려져 있다. 크게 깊은 선각과 쪼기를 해서 면을 음각으로 처리하는 방법(그림2)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주제는 다양하며, 11곳의 장소마다 그리는 대상물의 차이가 있는 것도 있고 공통적인 것도 있다.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생활습관이 그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냥하는 장면이 가장 많은데, 대상물은 고래, 사슴, 곰 등이다 또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인데, 배에 타서 사슴을 끄는 마술과 같은 그림도 있는데(그림 3-1)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추코트카에서 행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와 함께 그려진 인간의 생활모습도 반영되어 있다. 한 그림은 배를 타고 가면서 순록을 몰던 유카리 족이 그려져 있고, 눈이 내릴 때 스키를 타고 개와 함께 걷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그림 3-2).
뿐만 아니라 머리에 버섯모자와 꼬리가 달리거나(그림 3의 가장 우측) 장화를 쓴 신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알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대규모의 성소로 알려진 바이칼 유역의 엘란가쉬 유적에서도 십여 점이 확인된 그림이다. 사람인데, 꼬리가 달린 것은 흔치 않은 것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생활습관이 그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냥하는 장면이 가장 많은데, 대상물은 고래, 사슴, 곰 등이다. 사슴도 무리를 지어 있는 도상이 있고, 혼자 있는 도상이 있다. 또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인데, 배에 타서 사슴을 끄는 마술과 같은 그림도 있는데(그림 3)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추코트카에서 행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와 함께 그려진 인간의 생활모습도 반영되어 있다. 한 그림은 배를 타고 가면서 순록을 몰던 유카리 족이 그려져 있고, 눈이 내릴 때 스키를 타고 개와 함께 걷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그림 3-2).



뿐만 아니라 머리에 버섯모자와 꼬리가 달리거나(그림 3-1의 가장 우측) 장화를 쓴 신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알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대규모의 성소로 알려진 바이칼 유역의 엘란가쉬 유적에서도 십여 점이 확인된 그림이다. 사람인데, 꼬리가 달린 것은 흔치 않은 것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고래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그림 4). 한 바위그림에는 고래가 실제로 물을 뿜어 내고 배에 탄 사람들이 이 고래를 잡은 것을 묘사한 것이 있다. 매우 사실적인데,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서 물 위로 떠오른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때 사람들이 고래를 포획하는 것을 바위그림에 그대로 그려놓은 것이다. 극동에서 고래 그림이 그려진 바위그림은 이곳과 울산의 반구대 바위그림 뿐이라는 점이 눈에 띄며 고래잡이가 생업의 한 축임을 이야기 한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에는 배가 아주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배의 모양, 배에 탄 사람의 수 등에 차이가 있다.




이 바위그림은 언제 그려진 것을 까?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한 시기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되었다. 이 유적을 조사한 디코프 박사는 추코트카 근방(북극해)의 생업과 관련을 지어서 많은 점을 해석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고래 등 해양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기원전 1000 년 기(기원전 10세기) 이전에

는 올라가지 않아서

, 바위그림에서 고래 등을 사냥하는 장면도 그 이 상 올라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추코트카에는 캄차트카에서처럼 순록유목업이 예전에는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서, 그림 가운데서 순록이 무리를 지어서 있는 것은 유목업으로 인해서 생긴 늦은 시기의 것이고, 사슴이 홀로 그려진 것이 사슴사냥을 하던 선사인이 남긴 것으로 보았다. 최소한 해양동물 사냥이 이 지역에 기원전 10세기 쯤에 생겼는데, 순록 사냥은 그 보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보았다(디코프 1971).


 그런데 바위그림 가운데 9번 암각에 79번 주제 중에는 순록이 선각기법(그림 6)으로 그려진 것인데, 이는 앙가라 강의 신석기시대 유적 바위그림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순록의 크기는 추코트카의 것이 조금 작다. 그렇다면 바위그림의 순록 그림은 앙가라 강의 신석기후기 연대를 참고해서 기원전 20세기 보다 약간 늦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았으나, 디코프 박사는 이 연대에 대해서 자신감은 없어했으며, 기원전 1000년 기 전반(기원전 9~6세기)까지도 연대가 내려 갈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 뒤에 페그티멜 바위그림의 연대는 그림의 양식으로 연대가 재고되었다. 시베리아의 것과 비교해서 순록의 굽 가운데 사람 발처럼 그려진(그림 7)이 가장 이른 것으로 보았다. 시베리아 바위그림의 연대는 암각화 주변에서 발굴을 통해서 그 유적에 산 사람이 바위그림을 남긴 것으로 보았고, 유적의 연대와 바위그림 연대가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순록의 굽 모양이 사람 발처럼 그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3300년 전(기원전 13~14세기 가랑)으로 여겨졌다(피툴코 2002).

버섯 모양의 모자나 장화를 신고 있는 사람은 이 보다 더 늦은 연대로 알타이나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연대와 비교해서 기원전 14~8세기 정도로 생각된다. 가장 늦은 그림은 순록의 그림을 묘사한 형태로 결정되는데, 몸통이 삼각형이며, 다리가 막대기처럼 쭉 뻗거나 아래로 벌어진 것인데, 발이 방사상으로 표현된 것 등이다. 왜냐하면 이는 베링해 주변에서 번성했던 고대 베링고모르스카야 문화에서 확인되는 방법과 같기 때문이다. 이 문화의 연대는 대략 기원전 8~5세기로 여겨진다(디코프 1971).
이처럼 암각화는 어느 지역 이든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연대문제이다. 제일 좋은 것은 발굴을 통해서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일 텐데, 모든 암각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다.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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